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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무크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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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지만 하산도 잠깐 동안이지만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
아바스 왕조 제17대 칼리파
알 무크타피
المكتفي بالله
파일:Dinar_of_al-Muktafi,_AH_292.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아부 무함마드 알리 이븐 아흐메드
أبو العباس أحمد بن طلحة الموفق
출생 877/878년
아바스 왕조
사망 908년 8월 13일 (향년 31세)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재위 기간 아바스 칼리파
902년 4월 5일 ~ 908년 8월 13일 (6년 4개월)
전임자 알 무타디드
후임자 알 무크타디르
별명 알 무크타피 빌라흐(المكتفي بالله: 유일신과 함께 만족하는 자)
부모 아버지 : 알 무타디드
어머니 : 지자크
종교 이슬람 수니파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내치2.3. 외치
2.3.1. 반란 토벌2.3.2. 시리아와 이집트 병합2.3.3.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
2.4. 사망

[clearfix]

1. 개요

아바스 왕조 17대 칼리파. 알 무타디드의 통합 사업을 이어받아 툴룬 왕조 제압을 달성했지만, 신하들에게 실권을 맡기다가 일찍 죽는 바람에 왕조의 쇠락을 초래했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878년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16대 칼리파 알 무타디드와 튀르크 여노예 치차크의 아들로 출생했다. 892년 칼리파에 오른 알 무타디드는 장남이자 후계자인 그에게 문법학자 이븐 두라이드, 알 자히를 가정교사로 붙여서 우수한 교육을 받게 했다. 899년 자지라의 아미드 총독으로 임명되어 라카에서 통치를 행사했다. 902년 4월 5일 알 무타디드가 사망한 뒤, 알 무타디드 치세 대의 재상 알 카심 이븐 우바이드 알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든 아바스 왕족들을 연금시켜놓고 알 무크타피가 라카에서 바그다드에 도착할 때까지 알 무타디드의 사망을 공표하지 않았다. 4월 20일 바그다드에 도착한 그는 별다른 반대 없이 칼리파에 등극했다.

2.2. 내치

그의 치세에 살았던 아랍 역사가 알 타바리에 따르면, 그는 중간 키에 잘생겼고, 섬세한 피부색을 가졌으며, 머리카락은 아름다웠고 턱수염이 보기좋게 자랐다고 한다. 그는 잔혹한 형벌을 즐겨 사용하던 아버지와는 달리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아버지의 지하 감옥을 파괴하고 그 부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또한 드완 알마할림 회의에 직접 참석해 평민들의 탄원서를 듣고 조치를 내렸다.

그는 아버지의 바그다드 건축 사업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3번째 궁전으로 짓고 있던 타지 궁전을 완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크테시폰에 있는 사산 왕조 통치자들의 궁전으로부터 벽돌을 재활용했다. 또한 '당나귀의 큐폴라'로 알려진 반원형의 탑이 있었다. 이는 그가 당나귀를 타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주변 시골 풍경을 바라본 데서 비롯된 명칭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궁궐 감옥이 있던 자리에 자미 알 카스르 모스크를 건설했다. 903년 5월에는 바그다드를 떠나 옛 수도인 사마라로 옮기려 했지만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걸 알게되자 단념했다.

이렇듯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고 내정을 잘 운영하는 그였으나, 궁정 관리들에게 쉽게 휘둘린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알 카심 이븐 우바이드 알라는 그의 치세 초기에 여러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수감 중이던 사파르 통치자 암르 이븐 알 레이트를 처형했다. 알 무타디드 치세의 뛰어난 지휘관이었던 바드르 알 무타디드를 모함해 사형당하게 만들었으며, 그의 삼촌인 아브드 알 와히드를 체포해 역시 처단했다. 903년 9월 알 무크타피의 총애를 받던 기독교인 비서 나스라니를 추방하고 자신의 아들인 알 후세인과 무함마드를 칼리파의 비서로 삼았다. 심지어 904년 3월에 자신의 어린 딸을 알 무크타피의 갓난아들 아부 아흐메드 무함마드와 약혼시켰다.

알 카심은 중앙 정부에 봉직하는 관료들 사이의 분쟁에 개입했다. 당시에는 바누 자라와 바누 푸라트가 관료 세계를 양분하고 있었는데, 알 카심은 친 시아파 성향을 보이는 바누 푸라트를 경원시하고 바누 자라를 선호했다. 바누 푸라트의 대표였던 아부 엘 하신 알리 이븐 알 푸라트는 904년 체포되었지만, 알 카심이 도중에 병사하면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알 카심은 죽기 전에 후게자로 알 아바스 이븐 알 하신 알 자르자이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알 지르자이는 알 무크타피가 사망할 때까지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2.3. 외치

2.3.1. 반란 토벌

그는 숱한 전쟁을 치렀지만 본인은 바그다드에 머물고 장수들에게 일을 맡겼다. 902년 사파르 왕조가 레이를 점령하자, 그해 11월 15일에 이를 탈환하고자 군대가 파견되었다. 그러나 원정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사만 왕조가 레이를 점령한 걸 볼 때, 사파르 왕조로부터 레이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만 왕조가 강해지는 걸 경계해 사파르 왕조와 화해하고 그들이 파르스를 통제하는 걸 용인했다.

그의 치세 최대의 적인 단연 급진적인 이스마일 시아파인 카르마티아인들이었다. 이들은 카바 숭배, 도시 거주, 베두인 소외 등을 이슬람교의 진정한 가르침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여기고 초기 이슬람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왕조를 타도하자고 외쳤다. 899년 바레인을 공략하고 팔미라 주변 지역에 또다른 기지를 건설해 아바스 왕조와 툴룬 왕조를 동시에 공격했다. 902년, 그들은 점점 쇠락하던 툴론 왕조를 물리치고 다마스쿠스를 포위했다. 다마스쿠스는 오랜 농성 끝에 승리했지만, 그들은 시리아의 다른 도시들을 계속해서 파괴했다. 한편, 카르마티아 선교사 아부 압둘라 알 시리가 베르베르인들을 포섭하여 902년 이프리키야의 아글라브 왕조에 대한 공세를 개시했다. 이들의 공세는 909년에 완료되어 파티마 왕조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렇듯 갈수록 무섭게 팽창하는 카르마티아인들에 두려움을 느낀 그는 903년 7월 바그다드를 떠나 라카로 이동했다. 그가 라카에 남아있는 동안, 토벌대 지휘관으로 육군부의 수장인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 알 카티브에게 주어졌다. 903년 11월 29일,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은 카르마티아 본대와 하마에서 맞붙었다. 그 결과 카르마티아군은 괴멸되었고, 주요 지도자들이 생포되거나 전사했다. 무크타피는 포로들을 인솔한 채 바그다드로 귀환했고,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은 라카에 남아 농촌을 뒤져서 잔여 반란군을 체포했다. 904년 2월 13일,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과 수도의 보안 책임자 아흐메드 이븐 무함마드 알 와티치는 쿠파와 바그다드에서 모인 카르마티아 지도자들과 동조자들의 공개 처형을 주재했다. 같은 해 아바스 왕조의 바레인 총독은 카르마티아인들을 무찌르고 바레인의 수도 카티프를 탈환했다.

그러나 카르마티아인들은 이 정도로 근절되지 않았다. 906년 아부 가님이 이끄는 바누 칼브 베두인 족이 반란을 일으켜 하완과 티베리아스를 급습하고 다마스쿠스를 공격했다. 이들은 다마스쿠스 총독 아흐메드 이븐 나스르 휘하 수비대를 격파했지만 다마스쿠스 자체를 점령하지는 못하고 티베리아스로 이동한 뒤 약탈을 자행했다. 알 후세인 이븐 함단은 이들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아 출진했지만, 그들은 물 웅덩이에 독을 넣고 사막으로 철수했다. 906년 6월 16일, 아부 가님과 베두인족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히트를 공격했다. 무함마드 이븐 이샤크 이븐 쿤다지크와 무니스 알 카딤이 이들을 제압하고자 바그다드에서 진군했고, 알 후세인 이븐 함단은 서쪽에서 진군해 이들을 포위섬멸하려 했다. 이에 베두인족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아부 가님을 죽이고 수급을 바쳐 알 무크타피의 사면을 받았다.

남은 카르마티아인들은 지크라웨이 이븐 미흐라웨이의 명령에 따라 쿠파로 남하하여 10월 2일부터 쿠파를 공격했다. 그들은 쿠파를 돕기 위해 바그다드에서 파견된 구원군을 격파했지만, 쿠파 공략에는 실패했다. 이후 메카 순례에 나선 이들을 습격했다. 11월에 3개의 순례 행렬이 파괴되었는데, 두번째 습격때 2만 명이 살해당하고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907년 1월 초, 와시프 이븐 사와르타킨 휘하의 칼리프군이 알카디시아 인근에서 카르마티아인들을 섬멸했다. 이리하여 카르마티아인들은 시리아 사막에서 종적을 감췄지만, 바레인에서는 수십년간 아바스 왕조 총독을 위협했다.

908년, 갈수록 아바스 왕조에 반항적이던 아다르바얀의 통치자 유수프 이븐 아비엘사이를 토벌하고자 하캄 알 무플리히가 이끄는 군대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원정 도중에 그가 사망하자, 이븐 아빌사이는 아바스 왕조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아르메니아와 아다르바얀의 총독으로 인정받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2.3.2. 시리아와 이집트 병합

904년 5월 24일,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은 1만 병력을 이끌고 바그다드에서 출진해 툴룬 왕조로부터 시리아 남부와 이집트를 탈환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원정은 타르수스의 데미안 휘하의 킬리키아 변경 지역에서 온 함대의 지원을 받았다. 데미안은 함대를 이끌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일 강 연안을 급습해 툴룬군의 보급품이 나룻배로 운반되는 것을 막았다. 아바스군의 진군은 대부분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그해 12월, 툴룬 왕조의 에미르 하룬 이븐 쿠마라웨이는 삼촌 알리와 샤이반에게 살해당했다. 샤이반은 통치권을 이어받았지만, 다마스쿠스 총독 투그힐 이븐 주프를 포함한 많은 인사들이 아바스군에 투항했다.

905년 1월, 아바스군은 이집트의 옛 수도 푸스타트 앞에 도착했다. 샤이반은 밤에 군대를 버리고 달아났고, 푸스타트는 곧 항복했다. 아바스군은 도시에 입성한 뒤 툴룬의 거대한 모스크를 부수고 툴룬이 세운 수도 알 카타이를 파괴했다. 툴룬 가문의 일원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체포되어 바그다드로 끌려갔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이후 이사 알누샤리가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알누샤리는 신민들을 상대로 학정을 자행하다가 몇 달만에 이브라힘 알 할란지 휘하의 반란군에 의해 푸스타트를 버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달아나야 했다. 이에 아흐마드 이븐 카이할라흐 휘하의 군대가 이집트 반란 토벌에 나섰다. 905년 12월 알 할란지는 알 아리쉬에서 카이할라흐를 물리쳤다. 그러나 뒤이은 공세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906년 5월 체포된 뒤 바그다드로 끌려갔다.

2.3.3.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

알 무크타피는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도 수행했다. 902년 5월, 알 카심 이븐 시마 알 파르가니는 자지라 변경 지역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동로마 전선을 총괄했다. 904년 여름, 트리폴리의 레온이라는 동로마 제국의 반란자가 시리아와 이집트 함대 54척을 이끌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돌파한 뒤 아비도스를 약탈했다. 레온 6세는 레온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 아르히로스를 해임하고 이메리오스를 새 함대 지휘관으로 세웠다. 하지만 트리폴리의 레온은 동로마 함대를 격파한 뒤 서쪽으로 이동하여 제국의 두번째 도시인 테살로니카로 쳐들어가서 904년 7월 31일 3일간의 포위 공격 끝에 함락시키고 막대한 전리품을 확보하고 수많은 노예를 아바스 왕조로 이송했다.

904년 11월, 동로마 제국의 사령관 안드로니코스 두카스는 테살로니카 약탈에 보복하라는 레온 6세의 지시에 따라 아르히로스와 함께 아랍 원정을 떠나 게르마니케아 근방에서 모프수에스티아와 타르소스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906년 7월, 동로마 제국은 쿠루스(키루스)(를 점령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송했다. 906년 10월, 아흐메드 이븐 카이할라흐와 루스탐 이븐 바라두는 할리스 강까지 쳐들어갔다가 전리품과 포로들을 싣고 귀환했다. 동로마 제국 함대 사령관 이메리오스는 이에 보복하고자 타르소스로 항해해 사라센 함대를 완전히 격파하고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때 이메리오스와 협력하길 거부했던 안드로니코스 두카스는 토벌대를 피해 이코니온 부근의 한 요새로 도망쳤다. 두카스는 여기서 906년 3월까지 머물다가 제국군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와 함께 타르소스로 피신했다가 다시 바그다드로 도피했다.

레온 6세는 바그다드로 사절단을 보내 포로 교환 협상을 벌였다. 포로 교환은 905년 9월부터 10월까지 킬리키아의 라무스 강에서 이뤄졌다. 동로마 제국이 합의된 조건을 지키지 않아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추가 협상 끝에 908년 8월에 교환이 완료되었다. 이때 황제는 사절단에게 비밀 서신을 맡겨 안드로니코스 두카스에게 전하게 했다. 그 서신의 내용은 예전처럼 충성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원대 복귀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서신은 도중에 발각되었고, 안드로니코스 두카스는 이슬람교로 개종해 처형을 피했지만 철저한 감시를 받다가 얼마 후에 사망했다.

한편, 토스카나 변경백 아달베르트 2세의 아내 베르타와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다. 906년, 베르타는 그에게 라틴어로 쓰여진 편지와 풍부한 선물들을 보냈다. 그녀는 이프리키야와 시칠리아를 장악한 아글라브 왕조의 아랍인들의 해적 행위를 근절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이에 긍정적인 답장을 보냈지만, 당시 아바스 왕조는 이프리키야와 시칠리아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기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2.4. 사망

908년 늦봄, 알 무크타피는 중병에 걸려 약 3개월간 병세가 호전되고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그에게는 9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모두 미성년자여서 누가 되든 칼리파의 입지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병을 오래 앓은 나머지 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도 없어서 후계자를 직접 고르지 못했다. 이에 알 아바스 알 자르자이는 주요 관료들을 소집하여 후계자를 누구로 세울 지를 논의했다. 그는 처음에는 13대 칼리파 알 무타즈의 아들이며 유능한 인물이었던 압둘라 이븐 알 무타즈 왕자를 세우려 했지만, 튀르크 군부의 수장 무니스의 압박에 굴복하여 알 무크타피의 동생 알 무크타디르를 후계자로 정했다. 908년 8월 13일 알 무크타피가 사망했고, 알 무크타디르가 새 칼리파로 즉위했으나 아직 어려서 튀르크 군부와 관료들이 실권을 잡았다. 그 후 아바스 왕조는 급속도로 쇠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