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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20대 칼리파 알 라디 الراضي بالله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 아부 알 아바스 아흐메드 (무함마드) 이븐 자파르 알 무크타디르 أبو العباس أحمد (محمد) بن جعفر المقتدر |
출생 | 909년 12월 20일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사망 | 940년 12월 23일 (향년 31세) |
아바스 왕조 메디나 | |
재위 기간 | 아바스 칼리파 |
934년 4월 24일 ~ 940년 12월 12일 (6년) | |
전임자 | 알 카히르 |
후임자 | 알 무타키 |
별명 | 알 라디 빌라흐(الراضي بالله: 신과 함께 만족하는 자) |
부모 | 아버지 : 알 무크타디르 어머니 : 잘문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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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제20대 칼리파. 칼리파로서 정치와 종교적 우두머리 노릇을 한 마지막 아바스 칼리파로 일컬어진다.2. 생애
909년 12월 20일 바그다드에서 제18대 칼리파 알 무크타디르와 동로마 제국에서 끌려온 여노예 잘문의 아들로 출생했다. 4살 때 명목상이나마 이집트와 마그레브 총독위를 하사받아 후견인 무니스 알 무자파르와 함께 푸스타트로 보내졌다. 927년 부왕과 무니스가 충돌하자 라디와 와지르 알리 이븐 무클라는 둘 사이를 중재하려 했으나 소용없었고, 결국 932년 알 무크타디르는 무니스에 패해 살해되었다. 무니스는 라디를 칼리파로 옹립하려 했지만 대신들의 반대에 못 이겨 그의 삼촌인 알 카히르를 새 칼리파로 선출했고 알 카히르는 칼리파가 되자마자 무니스를 연금했으며 그를 933년에 살해하였다.이후 934년 4월 24일, 알리 이븐 무클라가 근위대를 매수한 뒤 쿠데타를 일으켜 술에 취해 있던 알 카히르를 체포했고 그가 연금되어 있던 알 라디를 구출하면서 알 라디는 칼리파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알 카히르의 축출 이후 아바스 궁정의 권력은 무함마드 이븐 야쿠트와 무클라가 양분했다가, 935년 4월 야쿠트가 해임되면서 무클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시기쯤 한발리파 광신도들이 바그다드에서 사람 습격, 민가 약탈 등 여러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당국은 이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한편, 각지의 지방 총독들은 중앙 정계가 혼란 한 것을 보고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등 아바스 왕조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클라는 이들을 무력으로 응징해 통제권을 확보하기로 하고, 함단 왕조가 지배하는 북부 메소포타미아(자지야)를 첫 번째 목표로 선택했고 함단 왕조의 모술을 공격해 일시 점령했으나 함단 에미르 나시르 앗 디울라 하산의 반격으로 패배했다. 칼리파 정부는 어쩔 수 없이 함단의 함단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7만 디나르의 연공과 바그다드 및 사마라의 밀 공급을 받는 선에서 충돌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936년, 무클라는 와시트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총독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 토벌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쓰는 바람에 재정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무클라는 무함마드 이븐 야쿠트의 동생 알 무자파르에 의해 체포되어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 후 그는 무클라의 정적이었던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를 신설 직책인 아미르 알 우마라 (장군 중 장군)로 임명해 질서 유지를 맡겼다. 총독들은 이웃 지방의 총독조차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칼리파를 대놓고 무시했고, 이로 인해 아바스 왕조의 권력은 바그다드와 그 근방에만 미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알 라디는 금요 예배를 진행하고, 정무에 참가하고, 빈민 구제에 나서며, 탐관오리들을 제어하려 했으나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의 이름이 금요 예배에서 알 라디의 이름과 함께 거론될 정도로 권위가 추락했던 탓에 그가 시행한 정책들의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거기에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는 칼리파의 근위대인 후자리야를 숙청하여 칼리파에 충성하는 마지막 군사 집단을 소멸시켰고 이에 따라 바그다드 정부의 전권을 차지하는 듯 하였으나, 938년 무함마드의 부하였던 바즈캄이 도전장을 내밀며 내전이 터졌다.
무함마드는 바즈캄의 바드다드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의 수로들 중 최대 규모인 수로인 나흐라완 운하를 터뜨려 홍수를 일으켰는데 이로 인해 이라크의 농업은 향후 수세기간 쇠퇴했을 정도로 엄청난 홍수를 일으켰다.[1]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부질없었고, 938년 8월 바즈캄이 바그다드로 입성해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를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알 라디는 바즈캄을 아미르 알 우마라로 임명했다.
938년 가을, 알 라디는 바즈캄과 함께 모술 원정에 나서 도시를 점령했으나, 주민들이 반발한 데다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가 카르마트와 연합해 바그다드를 위협하자 연공 납부를 대가로 회군했으며 시리아 북부의 지배권을 주는 조건으로 라이크를 회군 시켰다. 이후 바즈캄은 동방의 부와이 왕조에 맞서 바스라의 군벌 하산 알 바리디에게 와시트를 할양, 와지르로 임명하고 그 딸과 결혼해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에 하산은 후제스탄의 부와이 세력을 축출하고 서부 이란을 공격했으나 격퇴되었다. 이후 바즈캄과 하산은 대립했고, 940년 8월 말 바즈캄이 하산을 와지르에서 해임하고 와시트를 점령했다. 이와 동시에, 바그다드는 한발리파의 난동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렇듯 정국이 혼란한 와중이던 940년 12월 12일, 알 라디가 사망했다. 바즈캄은 와시트에 머무르면서 비서를 바그다드로 보내 아바스 귀족 회의를 소집한 뒤 알 라디의 형제 알 무타키를 새 칼리파로 세웠다. 그가 사망할 당시에 이집트의 익시드 왕조, 자지라의 함단 왕조, 아제르바이잔의 살라르 왕조, 이란의 부와이 왕조와 사만 왕조, 아라비아의 카르마트 등 제국의 주요 지역들이 모두 독립하면서 인바스 조의 강역은 시리아-이라크 일대로 축소되었다. 그마저도 시리아 북부는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 이라크 내에서도 와시트는 바즈캄, 바스라는 하산 알 바리디가 사실상 개인 영지로 지니고 있었기에 직할령이 부족했던 아바스 중앙 정부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