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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66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 |
<colbgcolor=#172172><colcolor=#ffc224> 출생 | 1954년 11월 14일 ([age(1954-11-14)]세) |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정치인 |
재임기간 | 제66대 국무장관 |
2005년 1월 26일 ~ 2009년 1월 20일 | |
서명 | |
정당 | |
종교 | 개신교 (장로회) |
학력 | St. Mary's Academy (졸업) (-1971년) 덴버 대학교 (정치학과 / 학사) (1971년-1974년) 노터데임 대학교 (석사) (1974년-1975년) 덴버 대학교 (박사) (-1981년) |
경력 | 스탠퍼드 대학교 교무처장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정치인.콜린 파월의 뒤를 이어 2기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콜린 파월에 이어 2번째, 여성으로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에 이어 2번째 국무장관이었다. 공화당 소속이다.
콘돌리자는 미국에서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콘디 라이스"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2. 생애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 출신이다. 콘돌리자라는 이름은 음악 용어인 이탈리아어 Con dolcezza(부드럽게 연주할 것)에서 따 왔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초등학교 동창생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해 죽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덴버 대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콜로라도 주 덴버로 이주하여 성장했다.아버지의 직장인 덴버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주로 소련을 연구하였고 러시아어와 체코어에 능통하였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편을 잡아서 소련관련 강의를 하다가, 소련통으로 인정받아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소련 및 동유럽 담당 보좌관으로 재직했다. 덕분에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동유럽의 공산권 붕괴, 소련 해체를 비롯한 냉전 종식을 정책 일선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로 복직, 부총장을 지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1기에는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냈고, 2기에는 사퇴한 콜린 파월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이 되었다.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가장 왼쪽이 콘돌리자이며 오른쪽으로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콘디 라이스의 이름을 적어 냈다고 한다. 라이스도 이를 알고 있는데 농담삼아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도 그 자리를 수락하지 않을거라 했다고. 이런걸 보면 이래 저래 일이 많았지만 아직도 부시와 잘 지내는듯 하다.[1]
3. 평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차례로 역임하며[2]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대표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3]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부시 행정부가 저질렀던 대외정책상의 여러 실책들에 대한 책임자로 비판받는 대가도 치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전문 분야는 러시아 등 동유럽쪽으로 냉전기에는 가치를 인정받기에 좋았지만,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와 이라크전 등 중동에서의 테러 문제가 대외정책상 우선순위로 부각되었고, 여기서 라이스의 역량 부족이 드러난 셈이었다.국무장관 시절 새로운 외교가 필요하다며 변환 외교(Transformational Diplomacy)을 개념으로 제시, 주장했다. 이라크전처럼 미국이 무력 개입까지 불사하며 테러 지원 세력과 소위 불량 국가(rogue states)들의 정권교체를 강제하여 패권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게 골자. 한마디로 네오콘식 외교를 옹호하고 나섰던 것. 하지만 뉴욕 타임즈의 엘리자베스 버밀러는 변환외교의 이상이 외교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좌초했다며 탁상공론으로 결론지었다. 그나마 이는 점잖은 평가로 워싱턴 포스트의 글렌 케슬러는 대놓고 장관 장관 취임 직후 자신만의 차별화되는 외교를 갈망하던 라이스가 전통적 외교를 벗어나려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인턴 수준의 아이디어를 냈다고 평가절하했다.
이상돈 교수는 8년동안이나 요직인 국가안전보좌관 및 국무장관으로 재직했음에도 뚜렷하게 보여준 성과가 없으며 이라크 전쟁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그를 미국 역대 최악의 외교관 중 하나라고 비판한 바 있다.[4]
3.1. 이라크 전쟁 과정의 행적
전쟁이 준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라크 전쟁의 대표적인 찬성자였다. 부시 행정부가 국민을 오도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는 비판에 대해 "전쟁을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변론을 하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전술적 실수만 있을뿐 전략적 판단은 옳았다고 강변했지만,[5] 전 영국 외무장관 더글라스 허드는 콘돌리자 라이스의 주장에 대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전쟁의 문제점, 이후 전후 처리문제로 이라크가 이라크 내전으로 접어들자 현실부정을 시전하며 “이라크가 내전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때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과 존 아비자이드 중부군 사령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이라크 내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워싱턴 정치권에 충격을 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도 이라크 전쟁은 명분과 침공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갈수록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이 일로 연설 사례금 3만5천 달러를 지급받기로 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도 이라크전쟁을 찬성한 정치인 따위가 연설을 해서는 안된다는 반발이 커져 학생, 교수간의 갈등으로 커지자 스스로 초청 거절의사를 밝혔는데 그와중에서도 나라를 위해 봉사한 것을 영예롭게 생각한다며 이라크 전쟁을 찬성한 과거를 변명했다. #
엘리자베스 버밀러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Condoleezza Rice: An American Life (콘돌리자 라이스: 한 미국인의 삶)’의 작가 또한 콘돌라스의 장점들에 대해 분명하게 호평하면서도 콘돌리자의 이라크 전쟁 관련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맹종에 충성심은 결국 재능있고 야심찬 한 여성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거론하며 라이스 장관은 부시 대통령 1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면서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관련 정보에 대해 일체의 의혹도 제기하지 않아 결국 미국을 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밑에서 3년 간 백악관 대변인으로 일했던 '부시의 입'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은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등 측근들도 이라크 침공이 낳을 엄청난 결과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부시의 전쟁 결심을 부추겼으며, 이라크 침공과 WMD 정보 왜곡 등 자신의 책임 하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교묘하게 책임을 면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기술하며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평가했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은 오늘날 실패한 전쟁이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 기타
-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상하리만큼 라이스에게 꽂혀있었다고 한다. 이상형으로 생각했다는 듯.(...) 사진집을 모아두고 라이스가 리비아를 방문했을 때 카다피는 라이스의 활동 영상 등을 편집한 괴상한 동영상을 틀어주고 혼자서 장광설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이미 라이스는 저 양반 해괴한 행동을 할 테니 알아두라는 경고를 받아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카다피의 기행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이 있다길래 혹시 성적인 내용이 아닌가 해서 매우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행적을 편집한 것에 지나지 않아 괴상했지만 성적인 느낌은 없었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이용해 리비아와 밀당을 시도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라이스가 자기 조건을 들어주지 않자 그 자리에서 통역관을 해고하는 기행을 보였다.
- 미혼으로써 당연히 남편도 자녀도 없다. 이걸 두고 2006년, 당시 러시아 하원 부의장이었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가 독한 년이니까 남자라곤 없어서 욕구불만을 러시아 패는 걸로 해소한다고 망언을 하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UN 대사를 지낸 수전 라이스(Susan Rice, 1964 - )와는 성이 같고 같은 흑인이지만, 혈연 관계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자매인 줄 알고 있다.
-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면서도 신보수주의의 핵심 인물로, 딕 체니의 정책을 철저하게 실천하려 노력했다고 하여 미국의 진보 세력들은 거의 제 2의 마거릿 대처로 취급하는 편이다. 거기다가 도널드 럼즈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추천했다.
미군 약화의 근원?하지만 라이스 본인은 럼즈펠드가 남의 분야에 월권을 일삼고 안하무인으로 군다고 회고록에서 가루가 되도록 씹었다. 이라크군의 일방적 해산만 해도 멍청한 펜타곤이 치안 유지에 현지 부대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개삽질을 했다고 가루가 되도록 깠다.
- 2011년에 회고록을 발간했는데 장관 재직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 및 언급도 있어 국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애초에 1년여 정도밖에 겹치지 않았던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가장 길게 마주해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 없는 반미적 인물이었다고 매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미노이의 북핵 롤러코스터에 따르면 콘돌리자 라이스는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인 것은 맞았다고 한다.
- 어릴 적부터 "백악관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10세 때 아버지와 함께 백악관을 밖에서 구경하다가 “아빠, 두고 보세요, 저는 반드시 백악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내가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해냈다.
- 그녀의 회고록인 '최고의 영예'에 따르면 일본의 외무상인 아소 다로가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일본이 전승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 미식축구 광팬으로 유명하다. 상당한 미식축구 지식과 이해도를 가진 열성팬이다. NFL 커미셔너 혹은 구단주를 희망하기도 했다.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팬이다.
-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현재는 드롭박스 이사(...) 등 다양한 일을 겸직하고 있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김구라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유영철을 풀어 콘돌라자 국무부 장관을 강간해 죽여야 한다" 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참고로 김용민은 현재 기독교 목사이다.
5. 매체에서
- 영화에도 자료화면(?)으로 등장한다.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앵커(기자)역으로 나오는 해리슨 포드가 국무장관을 생중계로 인터뷰하면서 정부 정책을 신랄하게 까는데 그 국무장관으로 인터뷰 화면에 나오는 게 영화 촬영 당시 현역 미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 본인이다(...) 다만 영화상에서 대사를 치는 건 해리슨 포드만 그렇고 라이스는 침묵하고 있다. 다른 자료화면을 떼어다가 마치 영화상에서 실제 인터뷰하는 것처럼 편집해서 넣는 부분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상술한 것처럼 라이스의 신보수주의 성향 때문에, 진보적 성향이 많은 미국 영화계를 생각하면(그리고 각본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바로 그 양반이다) 라이스가 보수파로 나오는 게 이해가 가는 부분.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위에 나온 부정적인 평가를 반영해서인지 성전기사단의 일원으로 나온다.
- 올리버 스톤의 더블유에선 탠디 뉴튼이 분했다.
- 바이스에서는 리사게이 해밀턴이 분했는데 큰 비중은 없다.
- 박인권의 만화 대물에서 잠깐 나온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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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 <colbgcolor=#fff,#1f2024> 딕 체니 | |
국무장관 | 콜린 파월 → 콘돌리자 라이스 | |
재무장관 | 폴 H. 오닐 → 존 W. 스노우 → 헨리 폴슨 | |
국방장관 | 도널드 럼즈펠드 → 로버트 게이츠 | |
법무장관 | 존 애쉬크로프트 → 알베르토 곤살레스 → 마이클 무케이시 | |
내무장관 | 게일 노튼 → 디르크 켐프손 | |
농무장관 | 앤 베네만 → 마이크 요한스 → 에드 셰이퍼 | |
상무장관 | 도널드 에반스 →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 |
노동장관 | 일레인 차오 | |
보건사회복지장관 | 토미 톰슨 → 마이크 리빗 | |
주택도시개발장관 | 멜 마르티네스 → 알폰소 잭슨 → 스티브 프레스턴 | |
운수장관 | 노먼 미네타 → 메리 피터스 | |
에너지장관 | 스펜서 에이브러햄 → 사무엘 보드먼 | |
교육장관 | 로드 페이지 → 마가렛 스펠링스 | |
제대군인장관 | 앤서니 프린시피 → 짐 니콜슨 → 제임스 피크 | |
국토안보장관 | 톰 리지 → 마이클 체르토프 | |
환경보호청장 |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 마이크 리빗 → 스티브 존슨 | |
관리예산실장 | 미치 다니엘스 → 조슈아 볼튼 → 롭 포트먼 → 짐 너슬 | |
무역대표부 대표 | 로버트 졸릭 → 롭 포트먼 → 수잔 슈왑 | |
국가마약통제정책실장 | 존 월터스 | |
백악관 비서실장 | 앤드루 카드 → 조슈아 볼튼 | }}} }}}}}}}}} |
[1] 조지 W. 부시는 정치적 능력과 별개로 사교에 워낙 능하다보니 퇴임 후에도 딕 체니, 칼 로브 등 자신의 정권에 있었던 사람과 여전히 가깝게 지낸다. 심지어 재임 기간 내내 의견이 맞지 않았던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10주기 추도식까지 직접 참석했을 정도.[2] 이러한 경력은 1970년대 미국 외교를 주름잡았던 헨리 키신저가 역임했던 경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3] 콜린 파월은 부시 행정부의 1기 국무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고,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006년 중간선거 패배 직후에 경질되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인사들 가운데 8년 임기를 끝까지 함께 했던 인물은 라이스가 사실상 유일했다.[4] 이상돈은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등 공화당 대통령들을 고평가하는데 조지 W. 부시만큼은 아주 강력하게 비판한다.[5] 시간이 지나면서 정 반대의 평을 듣는다.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전술적으론 과연 미군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3주만에 바그다드를 함락시키며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지만, 명분없는 전쟁으로 미국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전후 통제에 실패 이라크 내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준동의 원인중 하나라고 평을 받는등 전략적으로는 엄청난 판단착오임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