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2:59:54

마거릿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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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
<rowcolor=#ffc224> 초대
로버트 월폴
조지 2세
<rowcolor=#ffc224>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로버트 월폴 스펜서 컴프턴 헨리 펠럼 토머스 펠럼홀스
<rowcolor=#ffc224> 제5대 제6대
윌리엄 캐번디시 토머스 펠럼홀스
조지 3세
<rowcolor=#ffc224>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토머스 펠럼홀스 존 스튜어트 조지 그렌빌
<rowcolor=#ffc224> 제10대 제11대 제12대 제13대
대 윌리엄 피트 오거스터스 피츠로이 프레더릭 노스
<rowcolor=#ffc224>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윌리엄 페티 소 윌리엄 피트 헨리 애딩턴
<rowcolor=#ffc224>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소 윌리엄 피트 윌리엄 그렌빌 스펜서 퍼시벌
<rowcolor=#ffc224> 제22대
조지 4세
<rowcolor=#ffc224>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조지 캐닝 F. J. 로빈슨 아서 웰즐리
윌리엄 4세
<rowcolor=#ffc224>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아서 웰즐리 찰스 그레이 윌리엄 램 아서 웰즐리
<rowcolor=#ffc224> 제29대 제30대
로버트 필 윌리엄 램
빅토리아
<rowcolor=#ffc224> 제30대 제31대 제32대 제33대
윌리엄 램 로버트 필 존 러셀
<rowcolor=#ffc224> 제34대 제35대 제36대 제37대
조지 해밀턴고든 헨리 존 템플 헨리 존 템플
<rowcolor=#ffc224> 제38대 제39대 제40대 제41대
존 러셀 벤저민 디즈레일리
<rowcolor=#ffc224>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벤저민 디즈레일리
<rowcolor=#ffc224>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아치볼드 프림로즈
에드워드 7세
<rowcolor=#ffc224>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아서 밸푸어 헨리 캠벨배너먼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조지 5세
<rowcolor=#ffc224>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앤드루 보너 로 스탠리 볼드윈
<rowcolor=#ffc224>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에드워드 8세
<rowcolor=#ffc224> 제59대
스탠리 볼드윈
조지 6세
<rowcolor=#ffc224> 제59대 제60대 제61대 제62대
윈스턴 처칠
<rowcolor=#ffc224> 제63대
윈스턴 처칠
엘리자베스 2세
<rowcolor=#ffc224> 제63대 제64대 제65대 제66대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흄
<rowcolor=#ffc224>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해럴드 윌슨 해럴드 윌슨
<rowcolor=#ffc224>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rowcolor=#ffc224> 제75대 제76대 제77대 제78대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찰스 3세
<rowcolor=#ffc224> 제78대 제79대 제80대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낙 키어 스타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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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 1922년
제1대 제2대 제3대
로버트 필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벤저민 디즈레일리
공석 제4대 제5대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귀족원)
스태퍼드 노스코트 (서민원)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아서 밸푸어
공석 제6대 공석
헨리 페티피츠모리스 (귀족원)
앤드루 보너 로 (서민원)
앤드루 보너 로 조지 커즌 (귀족원)
오스틴 체임벌린 (서민원)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22년 이후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앤드루 보너 로 스탠리 볼드윈 네빌 체임벌린 윈스턴 처칠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흄 에드워드 히스
제15대 제16대 제17대 제18대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윌리엄 헤이그 이언 덩컨 스미스
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마이클 하워드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제23대 제24대 제25대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낙 케미 베이드녹
노동당 당수 · 자유민주당 당수 · 스코틀랜드 국민당 당수
토리당 당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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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Britons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TOP 10
<rowcolor=#ffe> 1위 2위 3위 4위 5위
윈스턴 처칠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rowcolor=#ffe>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이작 뉴턴 엘리자베스 1세 존 레논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11위~100위
<rowcolor=#ffe>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어니스트 섀클턴 제임스 쿡 로버트 베이든 파월 알프레드 대왕 아서 웰즐리
<rowcolor=#ffe>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거릿 대처 마이클 크로포드 빅토리아 여왕 폴 매카트니 알렉산더 플레밍
<rowcolor=#ffe>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앨런 튜링 마이클 패러데이 오와인 글린두르 엘리자베스 2세 스티븐 호킹
<rowcolor=#ffe>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윌리엄 틴들 에멀린 팽크허스트 윌리엄 윌버포스 데이비드 보위 가이 포크스
<rowcolor=#ffe>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레오나르드 체셔 에릭 모어캠브 데이비드 베컴 토머스 페인 부디카
<rowcolor=#ffe>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토머스 모어 윌리엄 블레이크 존 해리슨 헨리 8세
<rowcolor=#ffe>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찰스 디킨스 프랭크 휘틀 존 필 존 로지 베어드 어나이린 베번
<rowcolor=#ffe>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보이 조지 더글러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rowcolor=#ffe>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rowcolor=#ffe>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프레디 머큐리 줄리 앤드류스 에드워드 엘가
<rowcolor=#ffe>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애튼버러 제임스 코널리 조지 스티븐슨
<rowcolor=#ffe>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찰리 채플린 토니 블레어 윌리엄 캑스턴 바비 무어 제인 오스틴
<rowcolor=#ffe>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윌리엄 부스 헨리 5세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로버트 1세 밥 겔도프 (아일랜드인)
<rowcolor=#ffe>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무명용사 로비 윌리엄스 에드워드 제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찰스 배비지
<rowcolor=#ffe>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제프리 초서 리처드 3세 J. K. 롤링 제임스 와트 리처드 브랜슨
<rowcolor=#ffe>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보노 (아일랜드인) 존 라이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도날드 캠벨 헨리 2세
<rowcolor=#ffe>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J. R. R. 톨킨 월터 롤리 에드워드 1세 반스 월리스
<rowcolor=#ffe>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리처드 버튼 토니 벤 데이비드 리빙스턴 팀 버너스리 마리 스톱스
출처
같이 보기: BBC 선정 최악의 영국인, 위대한 인물 시리즈 }}}}}}}}}

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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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지도자들 & 혁명가들 부문 #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980413_400.jpg
시어도어 루스벨트 블라디미르 레닌 마거릿 생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엘리너 루스벨트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다비드 벤구리온 마오쩌둥
마틴 루터 킹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
레흐 바웬사 넬슨 만델라 요한 바오로 2세 호찌민 탱크맨
같이 보기: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건설자 & 거인 부문, 영웅 & 아이콘 부문 }}}}}}}}}

파일:1200px-Encyclopædia_Britannica.svg.png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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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whit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잔 다르크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쑹메이링 탄수 칠레르 테오도라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에이다 러브레이스 어밀리아 에어하트 바버라 매클린톡 캐롤라인 허셜 도러시 호지킨
엘리자베스 블랙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히파티아 제인 구달 캐서린 존슨
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레이첼 카슨 로잘린드 프랭클린 사카자위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예술가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코코 샤넬 도로시아 랭 프리다 칼로 카라 워커
메리 카사트 쿠사마 야요이 자하 하디드
사회운동가들
앨리스 워커 앤절라 데이비스 앤 로이페 아얀 히르시 알리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레타 툰베리 제인 폰다 주디 시카고 리마 보위
나오미 클라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수잔 팔루디 타우왁쿨 카르만 와리스 디리
말랄라 유사프자이 마거릿 생어 마리아 몬테소리 해리엇 터브먼 캐롤리 슈니먼
로자 파크스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에멀린 팽크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작가들
에밀리 디킨슨 제인 오스틴 사포버지니아 울프 마거릿 애트우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헬렌 켈러 J. K. 롤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무라사키 시키부
시몬 드 보부아르 안네 프랑크 토니 모리슨
운동선수들
베이브 디드릭슨 빌리 진 킹 파니 블랑커스쿤 재키 조이너커시 미아 햄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스
퍼포머들
비욘세 엘라 피츠제럴드 캐서린 헵번 마돈나 메릴 스트립
미리엄 마케바 오프라 윈프리 사라 베르나르 움 쿨숨
정치인들
에이미 클로버샤 바바라 조던 캐롤 모즐리 브라운 엘리자베스 워런 프랜시스 퍼킨스
제럴딘 페라로 해티 캐러웨이 힐러리 클린턴 저넷 랭킨 매들린 올브라이트
낸시 펠로시 넬리 테일로 로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셜리 치점 빅토리아 우드훌
참정권주의자들
앨리스 폴 앨리스 스톤 블랙웰 캐리 채프먼 카트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 도리아 샤픽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프랜시스 하퍼 프랜시스 윌러드 해리엇 스탠턴 블래치 헤르타 아일톤
후다 샤아라위 아이다 벨 웰스 제인 애덤스 줄리아 워드 하우 케이트 셰퍼드
루크레티아 모트 루시 번스 루시 스톤 메리 처치 테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이 라이트 슈 밀리센트 포셋 소저너 트루스 수전 앤서니 버지니아 루이자 마이너
출처 }}}}}}}}}}}}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보수주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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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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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정당
파일:보수당(영국) 아이콘.svg 파일:개혁 영국 로고.svg 파일:민주연합당 로고.svg
리시 수낙 나이젤 패라지 개빈 로빈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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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내각 대처 내각 · 메이저 내각 · 캐머런 내각 · 메이 내각 · 존슨 내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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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총리 존 스튜어트 · 윌리엄 피트 · 아서 웰즐리 ·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 스탠리 볼드윈 · 네빌 체임벌린 · 윈스턴 처칠 · 앤서니 이든 · 해럴드 맥밀런 · 알렉 더글러스흄 · 마거릿 대처 · 존 메이저 · 데이비드 캐머런 · 테레사 메이 · 보리스 존슨 · 리즈 트러스 · 리시 수낙
야당 당수 윌리엄 헤이그 · 이언 덩컨 스미스 · 마이클 하워드
국무의원 리시 수낙 내각
국회의원 제58대 보수당 국회의원
그 외 인물 토머스 칼라일
언론 데일리 메일 · 데일리 익스프레스 · 데일리 텔레그래프 · 이브닝 스탠더드 · 더 타임스 · 더 썬
관련 주제 대영제국 · 미들 잉글랜드 · 일국 보수주의 · 자유시장 포럼 · 블루칼라 보수주의 · 근력 자유주의 · 토리 사회주의 · TERF의 섬
영국 정치 관련 문서 (사회주의 · 자유주의 ·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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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71대 총리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
파일:Margaret_Thatcher.png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본명 <colbgcolor=#fff,#1c1d1f>마거릿 힐다 대처[1]
Margaret Hilda Thatcher
출생 1925년 10월 13일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 주 그랜섬
사망 2013년 4월 8일 (향년 87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재임기간 제71대 총리
1979년 5월 4일 ~ 1990년 11월 28일
서명 파일:마가렛 대처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작위 대처 여남작 (1992)[2]
가터 훈장 (1995)[3]
가족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
어머니 베아트리스 스티븐슨
양어머니 세실리 허바드
언니 뮤리엘 로버츠
배우자 데니스 대처
자녀 딸 캐롤 대처, 아들 마크 대처[4]
학력 케스티븐과 그랜덤 여학교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서머빌 컬리지 (화학 / B.S.)
런던 시티 대학교 로스쿨 (GDL)[5]
종교 개신교 (성공회)[6]
신체 166cm[7]
사상 대처주의
정당
지역구 핀칠리[8]
의원 선수 9
의원 대수 42, 43, 44, 45, 46, 47, 48, 49, 50
별명 철의 여인
약력 서민원 의원 (1959~1992 / 핀칠리 )
국민연금보험부 정무차관 (1961~1964)
주택부 장관 (1965)
재무부 장관 (1966)
에너지부 장관 (1967)
교육과학부 장관 (1970~1974)
보수당 대표 (1975~1990)
귀족원 의원 (1992)
필립 모리스 고문 (1992)
윌리엄메리대학 명예총장 (1993~2000)
영국 제71대 총리
문장 파일:Coat_of_Arms_of_Margaret_Thatcher,_The_Baroness_Thatcher_(1995–2013).svg.png }}}}}}}}}}}}
1. 개요2. 위상3. 생애4. 정책노선5. 평가6. 기타
6.1. 이름의 발음
7. 선거 이력8. 미디어에서9. 어록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마거릿 대처 초상화.jpg
공식 초상화

영국 제71대 총리. 이른바 철의 여인(The Iron Lady)[9]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3차례나 영국 총선을 보수당의 승리로 이끈 정치인이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다.[10]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먼저 태어난 마지막 영국 총리다.[11]

2. 위상

역대 보수당 최장수 내각, 전후 최장수 내각의 2관왕이며, 역대로 치면 5번째다. 현대 영국 보수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윈스턴 처칠 이후 영국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구가한 총리로서 친구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의 집권기에 보수우파 진영에서 당시 막 떠오르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를 현실에 구현하려고 하였으며, 이후 자국 및 세계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 때문에 세계적으로 평가가 극히 갈리는 정치인으로, 대처를 수식하는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철의 여인'부터 '신자유주의마녀'까지 평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여러 의미에서 역사에 이름을 새긴, 영국에서 여성으로서 최고위에 도달한 사람.
좋으나 싫으나, 오늘날의 영국을 설계한 정치가라는 평을 받는다. 제3의 길이라는 중도 이념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역시 대처에 대해 "내가 한 거라곤 그녀가 만든 정책을 조금 수정한 것 뿐이다."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12] 아울러 대처는 친인척의 후광을 받지 않고도 강대국의 지도자가 된 최초의 여성이다. 대처는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부유한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 정치적 후원이나 재력 면에서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결혼이 영국 총리가 되는 데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보수당 공식 영상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거릿 대처/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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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책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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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거릿 대처/평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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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 의회 정치에 단련된 영국 정치인 답게, 현역 때는 놀라운 화술을 자랑했다. 영국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로빈 데이의 압박형 인터뷰에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구체적인 수치와 팩트 중심의 논변을 보여주었다.
  •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지만 여성 전용 칼리지인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하였다. 참고로 테레사 메이가 졸업한 세인트 휴스 칼리지는 남녀 공학이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마녀의 죽음을 축하하는 사람들 [13]
  •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은 민영화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이 실시되자, 이 청원에 3만여 명 가량 참여했다고 한다. 대처 총리 연간에 있었던 일련의 강력한 민영화 정책들을 패러디한 것. # 심지어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는 '대처 사망'이란 가상 기사 가상의 타블로이드 신문 옆으로 샴페인폭죽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14] 대처 본인도 이미 생전 자신의 장례는 "절대 국장으로 하지 말고 검소하게 치러달라"고 유언까지 남겼다. 그리고 본래 전 총리급 인물은 예우에 따라 영국 공군이 공중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관례이나, 대처는 자신의 장례식 때 이런 번잡한 행사를 금해달라고 당부했었다.

    파일:external/metrouk2.files.wordpress.com/ay107912225a-hearse-carryin.jpg

    영결식 행렬의 예행연습을 위해 영국 국기로 덮인 빈 관을 싣고 리허설 주행 중인 장의차.

    이에 따라 실제로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국장 대신 '국장에 준하는 공식적인 장례식'을 통해 장례를 치렀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2002년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장례식 규모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로열 블루[15]와 진주를 아주 좋아해서 애용했는데, 진주는 '신뢰'와 '경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하며 로열 블루는 영국 보수당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얻었다. 패션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평가받았다.
  • 심리학자들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비극적인 운명이기도 하다. 지각심리학에서 시각적 착시를 다룰 때 종종 쓰이는데, 사람의 얼굴 사진에서 눈과 입을 상하로 뒤집은 사진을 흔히 "Thatcherized faces" 라고 부른다. 이 사진이 흥미로운 점은, 그냥 뒤집힌 사진을 보고 있으면 두 사진이 뭐가 다른지 그다지 느낌이 오지 않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서 보는 순간 둘 중 한 사진이 갑자기 혐짤로 변하는 착시가 일어난다.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 놓아도 눈과 입 모양만 그대로 보존시켜 놓으면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착시였으며 이러한 착시는 대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실제로 대처의 얼굴이 가장 만만한 사례로 학생들에게 소개되곤 한다.
  • 재임중이던 1986년 5월 방한했는데, 김포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노신영 당시 국무총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심지어 꽃다발을 전달하러 온 소년에게도 똑같이 대했는데, 통상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인사 예절이 서양에선 사실상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당시 영상
  •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아들 마크 대처는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켜 대처가 살아생전 그렇게나 대처의 속을 썩였다. 심지어 용병과 무기밀매를 하던 아들 마크가 2004년에는 뜬금없이 적도 기니의 쿠데타에 관여하다가 짐바브웨에서 체포당하자 마크의 보석금을 마련하려고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이렇게 된 건 이유가 있는데 대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철의 여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 하였으나 정작 자기 아들 마크한테만은 무조건 오냐오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16] 또한 캐롤 대처도 자식 농사에 성공했다고는 애매한데, 어릴 때부터 총리의 딸이라는 꼬리표로 많은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호주로 이민갔다가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와 아나운서로 살면서[17], 보수당 앳킨 의원과 사귀었지만, 역시 총리의 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남자친구의 경력에 독이 되는 등 너무 불행한 삶을 살았다.
  • 손녀인 아만다 대처는 본인의 얼굴을 최대한 미화시켜 놓은 것처럼 생긴 미인이다.
  • 다우닝 10번가의 영국 총리 초상화 중 대처 초상화를 키어 스타머 총리 의해 치웠다는 점에서 보수당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6.1. 이름의 발음

Thatcher에서의 Th는 통상적으로는 '번데기 발음'으로, 음성학적으로는 무성 치 마찰음(/θ/)이라고 한다. 1986년부터 시행된 영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그대로 따르면 마거릿 힐다 새처라고 표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당시 외래어 표기법(정식 명칭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이 /θ/ 발음도 으로 적도록 규정했기에 당시에는 대처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였고, 이 표기가 굳어져 현재까지도 대처가 표준 표기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영국 영어상에서는 /ˈmɑːɡɹɪt ˈθatʃə(ɹ)/(마그릿 사처)에 가까우며 흔히 대처로 표기하는 /ˈθætʃɚ/(새처)는 미국 영어의 발음이다. 일본에서는 이 번데기 발음을 딱히 교정 없이 그대로 가져와서 삿차(サッチャー)라고 부른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50 제39회 영국 총선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다트 포드
24,490 (36.21%) 낙선 (2위)
1951 제40회 영국 총선 27,760 (40.91%)
1959 제42회 영국 총선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18] 핀칠리 29,697 (53.19%) 당선 (1위) 초선
1964 제43회 영국 총선 24,591 (46.58%) 재선
1966 제44회 영국 총선 런던 핀칠리 23,968 (46.50%) 3선
1970 제45회 영국 총선 25,480 (53.77%) 4선
1974.2[A] 제46회 영국 총선 18,180 (43.70%) 5선
1974.10[A] 제47회 영국 총선 16,498 (44.04%) 6선
1979 제48회 영국 총선 20,918 (52.52%) 7선
1983 제49회 영국 총선 19,616 (51.06%) 8선
1987 제50회 영국 총선 21,603 (53.92%) 9선[21]

8. 미디어에서

영화
  • 007 유어 아이즈 온리》 (1981)
    마지막 부분에서 본드가 임무를 완수한 뒤 수상관저로 무전이 연결되는데 여기서 싱크대 안에 있던 수화기를 집어들어 전화를 받는 여성이 아무리봐도 대처 판박이이다. 특히 “데니스와 저는 당신을 빨리 만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데 데니스는 실제 대처의 남편 이름이다. 그런데 이때 본드는 무전기 시계를 앵무새 앞에 걸어주고 멜리나와 검열삭제를 위해 자리를 떴는데 앵무새는 “키스해줘요”라고 반복하는 바람에 부끄러워한다.
  • 빌리 엘리어트》 (2000)
    작중 내내 마거릿 대처를 죽어라 깐다. 주 내용은 발레리노가 되고 싶어하는 빌리라는 소년이 꿈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야기지만, 그 배경이 잉글랜드 북부 더럼의 탄광 노동자 파업인 만큼 대처 시대의 혼란상이 담겨있다.
  • 철의 여인》 (2012): 메릴 스트립
    내면보다는 피상적인 겉모습만 부각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스트립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한편 스트립은 대처 사망 직후 낸 성명에서 "마거릿 대처는 정치에서 여성의 역할에 있어 선구자였다, 온갖 증오와 멸시를 견뎌내고, 부정부패 없이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유지했다. 대처는 전세계 여성들에게 공주님이 되는 것과는 또 다른 꿈, 즉 국가를 이끌 수 있다는 선택권을 줬다. 그러기에 그녀는 존경받을 만하다."라는 헌사를 보냈지만, 또 한편 "그러나 대처의 냉철한 재정 조치를 통해 영국의 가난한 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정부 개입 배제 정책에 의해 부자들만 배를 불렸다. 오직 파운드 스털링에 대한 집착으로 영국을 유럽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줬다는 견해가 있다."라는 비판도 덧붙였다.#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5)
    킹스맨 요원인 해리 하트에그시에게 자신의 과거 임무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장면에서 자신이 마거릿 대처 수상의 암살을 막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에그시는 노동 계급 출신이라 대처를 싫어하는지 "모든 사람이 고마워하진 않았겠네요."라고 비꼬듯이 답하는데, 이에 해리는 "정확히는 그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았다."라고 정정한다. 어차피 킹스맨의 활동은 모두 비밀리에 이루어지다 보니 대처의 암살을 막았다는 사실 자체도 외부인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다만 영화 외적으로는 대처를 까는 의미도 들어간 블랙 유머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 탄광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풀 몬티>, <브레스드 오프> 등에서도 극중 대사를 통해 대처를 대놓고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외 마이크 리켄 로치, 데릭 저먼 같은 1980년대 두각을 보인 영국 영화인들에게는 마르고 닳도록 까이는 존재다.
  •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뱀파이어로 묘사한 영화 공작(2023년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피노체트의 생모라고 나온다. 대처가 생전에 피노체트를 두둔하거나 편을 든 적이 많았던 것도 친자식에 대한 모성애 때문이라는 게 그 스토리인데, 현실 역사에서도 실제로 영국과 대처가 피노체트 및 그 독재정권을 옹호했던 것에 대한 풍자다. 감독부터가 중도 좌파 성향이 강한 파블로 라리안이다.

드라마
  • 라이프 온 마스》 (2006)
    애니가 "여성들이 총리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말을 하자 샘 타일러가 "언젠가 그 말 후회하게 될 거요"라고 대답한다.
  • 셜록》 (2010~2017)
    시즌 2 2화 '바스커빌의 사냥개들'에서는 바스커빌 연구소의 소장이 대처를 존경한다는 것을 추리해낸 셜록이 그것을 통해 연구소 기록 시스템의 비밀번호를 알아낸다. 시즌 4 1화 '6개의 대처'에서는 흉상으로 등장해 6개 모두 박살나고, 같은 에피소드에서 마이크로프트가 생전에 만나봤는데 거만한 인상이었다고 평한다. (거만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형한테도 거만해 보일 정도였냐는 셜록의 반응은 덤이었다.
  • 더 크라운》 (2020): 질리언 앤더슨[22]
    시즌 4에서 등장. 더 크라운에서 그려진 주요 총리들[23][24]가운데 시즌 1에서 등장한 처칠, 시즌 3에서 등장한 윌슨과 함께 가장 입체적이고 비중이 큰 캐릭터로, 엘리자베스 여왕과 다이애나 스펜서와 함께 본 시즌의 세 여주인공 중 하나다. 첫 에피소드인 발모럴 테스트에서는 중산층 출신이라 왕실의 예법에 난색을 표하고 실수를 연발하지만[25] 이내 영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태연자약하게 오로지 여가와 유흥, 행사장에서 시간만 낭비하는 여왕과 왕실에 대한 경멸감을 느낀다.[26][27] 어릴적부터 근면함과 성실한 노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영국 중산층 노동윤리를 뼛속 깊이 체화한 대처로서는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들의 생활이 나태와 안이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28] 그리고 런던으로 돌아와 왕실 인물들처럼 늙고 구태의연하며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귀족적 내각 인사들을 과감하게 내쳐버리면서 '철의 여인'임을 과시한다. 이후 대처의 강경한 행보에 대해 적을 많이 만들게 될거라며 에둘러 비판하는 여왕에게 찰스 맥케이의 시를 인용하며 "무언가를 해내려면 적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적이 없다면 투쟁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룬 것이 없는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응수하여 여왕을 침묵시킨다. 초반에 어딘가 어설프고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왕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던 것에 대해 자신이야말로 영국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인물임을 확인시키며 완벽하게 되갚아준 셈.
    반면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 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도[29] 참모총장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망나니 아들 마크를 편애하면서 딸 캐롤은 막대하는[30], 여성은 여성의 역할이 있다는 보수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면모는 여전하여 재무장관을 위시한 내각의 반대를 무릅쓴 채 포클랜드 전쟁 개전을 밀어붙인다. 에피소드 5는 전쟁의 승리로 자신이 주인공인 영광스러운 승전식을 만끽하는 대처를 보여주지만, 대처의 정치적 영광과 페이건으로 대표되는 서민 노동계급이 대처의 개혁으로 겪었던 엄청난 고통을 대비시켜 묘사함으로써 대처 내각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낸다. 에피소드 8에선 남아공 경제 제재를 완강히 거부하며 여왕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다.[31] 엘리자베스 2세가 버킹엄 궁 공보관을 통해 언론에 총리와의 갈등 사실을 흘림으로써 선공을 걸어오자 등장 총리 중 사상 최초로 접견에서 여왕과 정면대결해 찍어눌러버리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완패시켜 지시대로 사실을 흘렸을 뿐인 공보관을 꼬리자르기 식으로 해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에피소드 10에선 측근들의 배신에 의해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크게 상처를 입는다.[32] 내각에서 대처를 향한 불신임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를 반란[33]이라고 여긴 대처는 여왕을 찾아가 총리의 권한인 “의회해산요청권”을 발동한다. [34] 이에 여왕은 해산요청이 통상적으로 내각과 합의하여 이루어지는 관례에 따라 이번에도 내각과 상의했는지 묻고, 대처는 내각과 상의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총리의 권한이라고 응수한다. 여왕은 힘이 있다고 모두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 되묻고 권위를 잃은 힘은 무용지물이라고 덧붙인 후 내각과 의회, 여론조사까지 등돌린 상태에서 대처가 이 권한행사를 강행하는 것을 재고해보길 권한다. 결국 이어지는 장면에서 대세가 기운 것을 안 마거릿 대처는 총리직을 사임하고 관저를 떠난다. 여왕은 총리에서 물러난 마가렛 대처에게 군주의 재량으로 24명에게만 주어지는 메리트 훈장을 직접 수여해주며 그간의 수고와 업적을 치하한다. 1980년대 영국을 이끈 두 여성지도자의 모습이 비교되는 이 시즌 하이라이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질리언 앤더슨은 제작 과정에서 목소리와 제스쳐에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역대 마거릿 대처 배우들 중 이정도로 특유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를 매력적으로 구현한 배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 비밀일기》 1, 2권
    영국 소설가 수 타운젠트의 소설. 80년대 대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극심한 애증이 교차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대처 때문에 실직자가 됐다며 엄청나게 싫어한다.
  •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명확하게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고, 6권 시점과 시간적 배경을 일치시켜 보면 작중 등장하는 영국 총리가 대처의 후임인 존 메이저다. 6권에서 '머글 총리', 그러니까 존 메이저는 취임 당시 영국 마법 사회의 관례에 따라 코넬리우스 퍼지를 처음 만났고, 처음에는 '마법 사회'의 존재를 여느 머글들이 그렇듯 부정한다. 그러자 퍼지는 이 정도면 꽤 양호한 반응이라고 평가하며, "당신 전임자반대파가 꾸민 속셈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고 언급한다. 소설에서는 이 전임자나 작중 현재 총리나 둘 다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영국 총리'라고만 하지만, 혼혈왕자의 배경인 1996년을 따져보면 퍼지를 창 밖으로 내던지려고 했던 전임 총리는 바로 마거릿 대처다. 다만 롤링이 시대적 배경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반영하다보니 그녀를 '그(He)'라고 부르는 사소한 반영 오류가 있다. 그와 별개로 영국 독자들은 대처라면 능히(?) 퍼지를 창 밖으로 내던지려고 했을 것이라는 평.

만화
  • 브이 포 벤데타
    앨런 무어의 그래픽노블. 대처에 대해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35]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처 3기를 묘사한다.
    "지금은 1988년이다. 마거릿 대처가 자신의 3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있고, 다음 세기가 되어서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될 보수당의 집권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36] 내 막내딸은 7살이며,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에이즈 환자를 수용소에 격리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폭동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전투 경찰은 자신들을 태운 말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으며 그들이 모는 밴에는 회전하는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정부는 모든 동성애의 싹은 물론 그 추상적 개념마저도 잘라내고 싶다는 욕구를 표명했으며, 이제 어떤 소수자가 불법의 대상이 될 지는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난 몇 년 안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냉정하고 비열한 이 곳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 자라, 영국. 잘 자라, 홈 서비스. 그리고 승리의 브이 사인. 반갑다, <운명의 목소리>.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
  • 대물
    2부에서 등장하여 주인공 서혜림을 매우 상스러운 대사로 밀어주면서 당선하는데 돕게 한다.
  • 《St. Swithin's Day》
    그래픽 노블 작가 그랜트 모리슨이 1989년에 트라이던트 코믹스에서 연재한 단편. 대처를 암살하려는 정신질환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어 신문에 실렸는데 오히려 이게 광고효과가되어 더 잘 팔렸다고 한다.

게임
  • 세인츠 로우 4
    주인공이 자신의 클론 공장을 보고는 무슨 장소냐고 묻자 아샤 오데카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이는 인물'을 복제하는 장소라고 하자 주인공은 '누구? 대처?'라는 반응을 보인다.
  • 레인보우 식스 시즈
    SAS 소속 최고참 대원 마이크 베이커의 코드네임으로 쓰인다. 보수인 대처와 비슷하게 구식을 좋아하며 최신식 장비들을 싫어한다는 설정으로 사용하는 방독면과 방탄복, 소총도 모두 구식이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포클랜드 전쟁 승리 후 중국에게 홍콩 조차 연장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고 덩샤오핑이 "우리가 홍콩에 걸어들어가 반나절 만에 접수할 수 있다"라는 협박을 보내자 이를 전면적인 무력 도발로 간주해 미온적이었던 영연방 국가들을 설득하여 홍콩에 커먼웰스 군을 대규모 증강했고, 이를 눈뜨고 당하지 않으려던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37] 참고로 덩샤오핑의 저 발언은 대처와의 홍콩 반환 협상 중 실제로 있었던 발언이다.
  • GTA 산 안드레아스에선 켄트 폴의 친구인 매커가 오디오 녹음 중에 자위행위를 하며, 이름을 외쳐댄다.[38] 매커가 또라이인데다 매드체스터 붐을 이끌었던 해피 먼데이즈의 숀 라이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는걸 생각하면, 인물의 똘끼를 강화하는 요소라 보는게 정확하다. 매드체스터의 중심지인 맨체스터는 대처 쇼크의 직격탄을 받은 동네기 때문이다.

기타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2005)
    상술한 원작인 영화와 마찬가지로 작중 내내 대처를 까고 있다. 특히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 트랙은 제목부터 보다시피 그냥 대처에게 욕하는 내용이다. # 가사도 아예 "메리 크리스마스 매기 대처, 당신 죽을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단 걸 축하하네!"인데, 나중에 정말로 대처가 사망했을 때 이 노래를 부르며 파티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9. 어록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39]
정확히는 최영 장군의 예처럼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본인의 말은 아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란 의견도 있지만 이 자료에 따르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문장인 것 같다. 다만 청와대에서 대처의 죽음을 거론하며 추모한 글에서도 올라온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대처의 어록으로 여기는 것 같다.
You know, if you just set out to be liked, you would be prepared to compromise on anything, wouldn't you, at any time? And you would achieve nothing!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한다면 언제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당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1989년 언론 인터뷰

Where there is discord, may we bring harmony. Where there is error, may we bring truth. Where there is doubt, may we bring faith. And where there is despair, may we bring hope.
분열이 있는 곳엔 화합을, 오류가 있는 곳엔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엔 믿음을. 그리고 절망이 있는 곳엔 희망을.
1979년 5월 4일 취임 연설에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나 대처는 공과를 떠나서 영국에 화합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There are individual men and women, and there are families. And no government can do anything except through people, and people must look to themselves first. It's our duty to look after ourselves and then, also to look after our neighbour. People have got the entitlements too much in mind, without the obligations. There's no such thing as entitlement, unless someone has first met an obligation.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 개개인이 존재할 뿐이고 개별적인 가족 공동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정부란 국민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국민들은 먼저 스스로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더 나아가 우리 이웃을 돌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의무는 생각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합니다. 의무를 먼저 다하지 않는다면, 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987년 9월 23일 Women's Ow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I don't mind how much my ministers talk, as long as they do what I say.
"나는 장관들이 내가 말한 것을 수행하는 한 그들이 어떤 말을 쏟아내도 신경 쓰지 않는다."
1987년 인터뷰에서

We had to fight the enemy without in the Falklands and now we have to fight the enemy within, which is much more difficult but just as dangerous to liberty.
"우리는 포클랜드에서 외부의 적과 싸워야만 했다.(그러나) 우리는 항상 내부의 적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내부의 적은 더 싸우기 어렵고 자유에 더 큰 위험이 된다."
1984년 7월 20일 보수당 1922 위원회(1922 Committee)에서

In politics, if you want anything said, ask a man; if you want anything done, ask a woman.
"정치에서 뭔가 말해야 한다면 남성에게 요구하라. 뭔가 이뤄져야 한다면 여성에게 요구하라."
1965년 6월 20일 National Union of Townswomen’s Guilds의 회원들에게 한 연설

No woman in my time will be Prime Minister or Chancellor or Foreign Secretary—not the top jobs. Anyway I wouldn't want to be Prime Minister. You have to give yourself 100%.
"내 생전에 여성 총리나 여성 재무장관, 여성 외무장관같은 고위직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총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스스로에 100% 열중해야 한다."
1969년 10월 26일 그림자 내각 교육부 대변인에 임명되었을 때의 Sunday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출처
그런데 다름 아닌 대처 스스로가 이 예상을 뒤집었다. 외무장관도 2007년 대처 생전에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마가렛 베켓(Margaret Beckett)이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예상이 뒤집혔다. 재무장관은 대처 사후에도 한동안 여성이 임명되지 않다가 2024년 7월 키어 스타머 내각의 레이첼 리브스가 영국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 되었다. 여성 총리의 경우 2013년 대처 사후인 2016년과 2022년에야 비로소 2명의 여성 총리가 더 탄생했다. (테레사 메이, 리즈 트러스)
"비전이 없는 사회의 사람은 틀림없이 망한다."

Everyone should turn out in this referendum and vote yes, so that the question is over once and for all, we are really in Europe, and ready to go ahead.
모두가 이번 국민투표에 참여하여 찬성표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유럽에 있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975년 영국 EEC 잔류 국민투표 당시 텔레비전 인터뷰.
브렉시트 당시 보수당과 노동당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매우 놀라겠지만.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보수당이 친유럽, 노동당이 반유럽이었다. 대처 역시 당시에는 친유럽 정치인 중 한명이었고. 둘의 입장이 바뀐건 1990년대가 지나고서다.
We are not asking for a penny piece of Community money for Britain. What we are asking is for a very large amount of our own money back, over and above what we contribute to the Community, which is covered by our receipts from the Community.
우리는 영국을 위해 유럽 공동체에 약간의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불하여 유럽 공동체에 기여한 아주 많은 돈을 돌려받기를 요구합니다.
1980년 더블린 정상회담에서 다른 유럽 정상들에게.
일반적으로 "I want my money back"(이제 내 돈을 돌려받길 원한다)로 알려져 있다.
"오른손의 장바구니에[40] 가득 찬 것은 1974년 보수당 시절에 1파운드로 살 수 있었던 식료품입니다. 왼쪽은[41] 현재 노동당 정권에서 1파운드로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만일 노동당이 다시 5년간 집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1파운드로 쇼핑을 하려면 장바구니가 필요 없고 그저 작은 종이봉투 한 장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당신에게 식료품 가격에 대해 간섭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1979년 총선 당시.#

I am not a consensus politician. I'm a conviction politician.
"나는 여론 수렴형 정치인이 아닌 확신형 정치인이다."
1979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설득시켜 정치를 주도하는 것을 이르는 Conviction politics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유래했다.영어 위키백과
I love argument, I love debate. I don’t expect anyone just to sit there and agree with me, that’s not their job.
"나는 논쟁도, 토론도 좋아한다. 그냥 앉아서 나에게 동의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 아니다."
1980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To those waiting with bated breath for that favourite media catchphrase, the U-turn, I have only one thing to say: 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
"숨죽인 채로 그 좋아하는 언론 유행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 '유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여러분이 '유턴'하세요. 이 여인(나)은 유턴하지 않습니다."
1980년 보수당 회의에서 경제 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I must pay the £1,191. We can therefore say that no extra cost has fallen on the British taxpayer.
"1191파운드는 내가 내겠다. 그래야 납세자들에게 추가로 한 푼의 세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2월에 대처의 아들 마크가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실종되었을 때 구출 비용을 비서(private secretary)에게 듣자.
실제로 대처는 마크의 구출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
We fought to show that aggression does not pay and that the robber cannot be allowed to get away with his swag. We fought with the support of so many throughout the world: the Security Council, the Commonwealth, the European Community, and the United States. Yet we also fought alone – for we fought for our own sovereign territory.
"침략은 반드시 응징당하고 도둑은 훔친 물건을 가지고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싸워서 보여줬다. 우리는 전 세계 많은 이들 -안보리, 영연방, 유럽공동체, 미국- 의 지원을 얻어 싸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다."
1982년 7월 3일 보수당 당수 선거 당시의 연설
포클랜드 전쟁은 6월 11일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Just supposing Alaska was invaded, now you've put all your people up there to retake it and someone suggested that a contact could come in ... you wouldn't do it.
"알래스카가 침략당해 전쟁을 벌인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그곳에 투입해 되찾으려 할텐데 누군가가 연락을 해서... 당신도 그렇게 하지는(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국제 기구를 통한 협상 제안을 맞받으면서.출처

"There is nothing I could do to stop you, but the eyes of the world would now know what China is like."
"우리가 당신을 막지는 못하지만, 전 세계의 눈은 이제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1982년 영국중국의 홍콩 반환 협상에서 덩샤오핑"지금 당장이라도 중국 인민해방군홍콩에 상륙할 수 있다."라는 위협을 가하자.
덩샤오핑과 대처의 발언은 2007년에야 공개되었다.
There is no week, nor day, nor hour when tyranny may not enter upon this country if the people lose their supreme confidence in themselves and lose their roughness and spirit of defiance. Tyranny may always enter — there is no charm or bar against it. The only bar against it is a large resolute breed of men.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최고의 신념을 잃고 용기와 반항심을 잃으면 언제라도 전제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 전제 정치를 막을 부적이나 차단봉 같은 것은 없기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확고함뿐이다."
1984년 7월 20일 보수당 1922 위원회(1922 Committee)에서

The President of the Commission, Mr Delors, said at a press conference the other day that he wanted the European Parliament to be the democratic body of the Community. He wanted the Commission to be the Executive and he wanted the Council of Ministers to be the Senate. No! No! No!
"들로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럽의회가 공동체의 민주적 기관이 되고, 집행위원회행정부가 되고, 각료이사회가 상원이 되길 원한다고 말이죠. 안 됩니다! 안 돼요! 안 돼요!"
1990년 10월 30일 하원 연설에서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유럽 통합 제안에 반대하며[42]

All levels of income are better off than they were in 1979. But what the honorable member is saying is that he would rather the poor were poorer provided the rich were less rich. That way you will never create the wealth for better social services as we have. And what a policy. Yes. He would rather have the poor poorer provided the rich were less rich. That is the Liberal policy. Yes it came out. He didn’t intend it to but it did.
"모든 소득 수준은 1979년에 비해 분명히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의원께서 하신 말씀은 마치, 부자들을 덜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빈자들이 더 가난해져도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그런 식으로는 우리가 시행하는 사회 서비스에 필요한 경제력을 절대 창출할 수 없을 겁니다. 정말 기가 막힌 정책이네요. 그래요. 우리 의원께서는 부자들을 덜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빈자가 더 가난해져도 상관이 없다고 하시네요. 이런 게 바로 진보들의 정책인가 봅니다. 의원은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분명 그렇게 말했죠."
1990년 11월 22일 마지막 하원 연설에서 자유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응답하며[43]

I fight on, I fight to win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싸워서 이길 것이다."
1990년 보수당 당수 선거 1차 투표에서 이기지 못하자.
그러나 대처는 이 발언 바로 다음 날 2차 투표 출마를 포기하고 총리직을 사퇴했다.
Home is where you come to when you've got nothing better to do.
"가정은 더 이상 잘할 것이 없을 때 오는 곳이다."
1991년 퇴임 6개월 무렵 지난 후의 인터뷰에서.

Remember minister, even in diplomacy there is something called 'loyalty'.
"차관님, 외교에도 의리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1992년 한국 방문 당시 노창희 외무부 차관에게 한 발언이다. 그 당시 한국은 대만(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했다. 대처가 직전에 대만을 방문했는데, 실컷 한국 욕을 듣고 온 모양이다. 분노를 표시했다기 보다는 대만 단교 전에 섭섭치 않도록 했어야 했다는 일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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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전 성은 로버츠(Roberts).[2] Baroness Thatcher[3] Order of the Garter[4] 둘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로 캐롤이 누나이다.[5] 마가렛 대처가 다닐 당시엔 Inns of Court School of Law 였다. 2001년 런던 시티 대학교에 합병됐다. 이 학교를 다니기 전에 이미 선거에도 출마했었던 정치인의 신분이었으며, 의원으로서 경력을 쌓기위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6] 아버지가 감리회의 목사이자 지자체 의원이였기에 모태신앙의 그리스도교인이다. 1951년 감리회에서 성공회로 교단을 옮겼다.[7] 1925년생 여성 기준으로 굉장한 장신이다. 당시에는 모델급.[8] 대처의 은퇴 이후 옆 골더스그린 선거구와 합병되어 현재에 이른다. 런던 내에서 가장 유대인 인구 비율이 높은 곳으로 전형적인 교외 부촌 지역이지만 최근들어 자민당과 노동당의 성장으로 보수당의 입지가 약화되는 중이다.[9] 골다 메이어 총리에게 붙은 별칭이었는데,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특히나 유명하다.[10] 영국 역사상 현재까지 여성 총리는 단 세 명이고, 나머지 두 명은 뒷날 총리로 등극한 테레사 메이리즈 트러스이다. 셋 중 전임자의 사퇴로 인한 당내 승계가 아닌 본인이 당대표로서 총선을 이끌어 승리함으로써 총리가 된 사람은 대처가 유일하며 메이와 트러스는 단기간 집권에 별다른 치적도 남기지 못 한 실패한 총리로 평가받지만 대처의 위상은 저 둘과 비교가 불가능하다.[11] 약 반년 차이로 먼저 태어났으며 미드 더 크라운에서도 언급이 된다.[12] 실제로 블레어 정부는 영국병을 치료한 대처의 노동정책을 크게 뒤집지 않았다.[13]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동쪽의 사악한 마녀의 죽음을 축하하며 부르는 Ding-Dong! The Witch Is Dead(딩동! 마녀가 죽었다)란 곡이 2013년에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14] 특히 대처 정부 시절 큰 타격을 봤던 리버풀에서는 대처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마녀가 죽었다며 실제로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이게 그냥 타격을 입은 정도가 아니라 대처 정권은 해당 영국 북부 지역에 대해서 사실상 그냥 버리는 정책을 써버렸고 해당 지역들은 순식간에 날벼락이 떨어진 채로 일자리가 싸그리 사라지고 지원도 제대로 못받는 형국이 되어 버렸으며 하루 아침에 직장이 폐쇄되어 버린 사람들이 시위를 하자 '기마 부대'를 보내서 기병대가 사람들을 짓밞아서 사상자가 생기는 강경진압을 하는 등 그냥 피해를 입었다 수준 이상의 피해를 입은 동네라 반감이 매우 심각하며 심지어 한국과 달리 영국의 저 지역은 주류 민족도 달라서 안그래도 역사적인 골도 깊은데 저런 짓을 해서 더 골이 커졌다.[15] 영국 왕실의 관복색[16]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도 이 부분이 묘사되었으며 이 때문인지 쌍둥이 누나인 캐롤 대처가 어머니에게 크게 울분을 터트린다.[17] 물론 아나운서로서의 삶도 잘 풀리진 않았다. BBC 등 언론사에 들어갈 때, 총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정성 문제 논란 등으로 손가락질 당했으며 언론사 측도 고용하길 꺼렸다.[18] 1965년 이후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된 지역구지만, 대처가 1959년, 1964년 출마했을 당시에는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1997년 이후 핀칠리&골더스그린 선거구로 조정된다.[A] 1974년에는 선거가 두 번 있었다.[A] [21]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은퇴[22] 이 역할을 통해 2021년 골든글로브상, 미국배우조합상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23]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그리고 마거릿 대처였다.[24] 다만 작중에서 묘사되지 않은 총리들도 있는데 이 중 클레멘트 애틀리는 총리 시절 모습은 딱 1컷 뿐이고 대부분의 장면은 총리가 아닌 야당 당수 시절 모습이다. 알렉 더글러스흄은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시즌 3 1화에서 짤막한 언급으로만 묘사되었던 반면 제임스 캘러헌은 아예 등장도,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25] 야외 활동을 위한 활동화를 따로 챙겨오지 않거나, 부부가 각방을 써야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사냥을 나가는데 하이힐과 푸른 드레스를 입고 나오거나, 빅토리아 여왕의 의자에 앉아 마거릿 로즈에게 질책과 단어 선택에 대한 수모를 듣는 등이 있다.[26] 사실 첫 접견에서는 내정한 장관을 거의 다 맞추는 걸 보고 여왕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밸모럴에서 총리가 느끼게 되는 실망감과 환멸감이 더 강하게 묘사된다.[27] 이전에는 여왕과 만났을 때 무릎절을 깍듯이 올리는 모습이 자주 비춰지지만, 후술할 훈장 수훈 이전까지는 절하는 모습은 한동안 묘사되지 않는다.[28] 대처 이전에도 중산층 계급 출신 총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 직업적 커리어가 상승 곡선을 그림에 따라 자연히 상류층의 귀족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문제가 없었던 것. 반면 대처는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상류층의 귀족 문화에 익숙해지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중산층 문화에 잔류한(상술된 '소고기 값' 에피소드를 떠올려보라) 인물이기에 특히 미숙함과 반감이 강렬했던 것이다.[29] 전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재무장관 등 관료들을 노려보며 압박, 반대의견을 일축한다.[30] 다카르 랠리에서 실종되었다 돌아온 직후인데, 아들이란 놈은 알제리군 헬기까지 동원해서 아들을 찾아내느라 며칠간 사색이 되어야 했던 엄마 앞에서 뻔뻔하게 요리 투정을 하고 앉아있고, 대처는 그 투정을 죄다 받아주면서 오냐오냐한다. 반대로 딸에게는 왜 마크만 편애하냐는 반발도 묵살하고 요리나 도와달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31] 이 화 자체가 대처와 엘리자베스 2세의 인생 배경과 가치관 전반을 그대로 대조시키면서 둘의 갈등을 보여준다. 같은 21세 때 남아공에서 연설했던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 수장으로서 영연방 다른 회원국들이 인종을 떠나 연대해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같은 시기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연설을 라디오로 들은 마거릿 대처는 영연방 따윈 알바 아니고 영국의 경제가 중요하며 이미 그렇지 않아도 다른 제재를 충분히 하고 있는데 괜히 영국 경제를 망쳐서야 쓰겠냐는 주장을 하면서 대립한다.[32] 다우닝가로 들어설 때는 흔들림 없이 꼿꼿한 모습을 보이지만, 관저 안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허리가 굽고, 결국 반쯤 어기적대며 방에 들어와선 비참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소리도 못 내고 눈물을 쏟는다. 그 와중에 당시 보수당 내의 반란을 보도하는 앵커들의 목소리들이 오버랩되면서 대처의 비참한 몰락을 강조한다.[33] 각료 쿠데타[34]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대개 총리가 의회해산권을 지니지만, 영국 총리는 "형식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진 군주에게 해산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한다. 형식적으로 영국의회를 해산할 권리는 국왕에게 있으나 실질적인 결정은 총리가 하고, 요청의 방식으로 해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35] 무어는 노동 계급이라 대처를 좋게 볼 구석이 없었다.[36] 실제로도 대처의 후임자 존 메이저는 7년을 집권했고, 정권이 교체 된 1997년은 21세기(2001년)를 불과 4년 남겨놓은 해였다. 브이 포 벤데타가 쓰여진 후 9년이나 흐른 뒤였던 것이다.[37] 게임상 플레이어가 영국군이기 때문에 게임상 역사로는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지켜낸다. 심지어 유저의 플레이에 따라 선전, 옌톈 등 홍콩에 인접한 중국령들을 집어삼킬 수도 있고, 남중국 최대 도시 중 하나인 광저우 코 앞의 주강 삼각주를 영연방 해군을 이용해 농락할 수도 있다. 다만 이건 매우 수준 높은 유저의 경우이고, 초보는 물론 중수 조차도 홍콩 섬도 지키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38] 마지막에 하는 말이 Oh I Love You Maggie[39] 정작 자기는 이러한 말과 반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들먹여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불을 짚히거나 보수당 의원들이 마거릿 대처 밑에서 여러 이익을 받아먹고 토사구팽당하는 결과를 낳았다.[40] 보수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의 장바구니로, 빵, 버터, 고기 등이 가득 차 있었다.[41] 노동당의 상징색인 분홍색 장바구니로, 빵, 버터, 고기 등이 절반만 들어가 있었다.[42] 일명 'No, No, No'로 알려져 있으며 대처의 유럽회의주의적 시각을 대표하는 발언으로 정리된다. 이 날 대처는 로마에서 열린 유럽위원회 정상 회의에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하원에서 이 발언으로서 단일 통화와 경제적 통합을 골자로 하는 유럽 통합 추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당시 보수당은 물론 내각 내에서도 ERM(유럽 환율 메커니즘) 가입과 단일통화 도입을 두고 의견 대립이 이어졌는데, 친유럽주의자였던 외무부장관 제프리 하우는 이 발언 이후 대처에 완전히 실망하면서 내각 탈퇴를 선언한다. 내각 출범 이래 핵심 멤버였던 하우의 사임은 대처의 리더십에 큰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11월에 새로운 당수를 선출하는 경선이 치뤄지면서 대처 내각의 몰락으로 이어졌다.[43] 질의자는 자유민주당 의원 사이먼 휴즈(Simon Hughes). 질의 내용은 11년간 대처 내각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크게 상승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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