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7:37:07

윌리엄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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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Britons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TOP 10
<rowcolor=#ffe> 1위 2위 3위 4위 5위
윈스턴 처칠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rowcolor=#ffe>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이작 뉴턴 엘리자베스 1세 존 레논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11위~100위
<rowcolor=#ffe>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어니스트 섀클턴 제임스 쿡 로버트 베이든 파월 알프레드 대왕 아서 웰즐리
<rowcolor=#ffe>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거릿 대처 마이클 크로포드 빅토리아 여왕 폴 매카트니 알렉산더 플레밍
<rowcolor=#ffe>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앨런 튜링 마이클 패러데이 오와인 글린두르 엘리자베스 2세 스티븐 호킹
<rowcolor=#ffe>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윌리엄 틴들 에멀린 팽크허스트 윌리엄 윌버포스 데이비드 보위 가이 포크스
<rowcolor=#ffe>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레오나르드 체셔 에릭 모어캠브 데이비드 베컴 토머스 페인 부디카
<rowcolor=#ffe>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토머스 모어 윌리엄 블레이크 존 해리슨 헨리 8세
<rowcolor=#ffe>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찰스 디킨스 프랭크 휘틀 존 필 존 로지 베어드 어나이린 베번
<rowcolor=#ffe>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보이 조지 더글러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rowcolor=#ffe>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rowcolor=#ffe>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프레디 머큐리 줄리 앤드류스 에드워드 엘가
<rowcolor=#ffe>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애튼버러 제임스 코널리 조지 스티븐슨
<rowcolor=#ffe>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찰리 채플린 토니 블레어 윌리엄 캑스턴 바비 무어 제인 오스틴
<rowcolor=#ffe>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윌리엄 부스 헨리 5세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로버트 1세 밥 겔도프 (아일랜드인)
<rowcolor=#ffe>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무명용사 로비 윌리엄스 에드워드 제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찰스 배비지
<rowcolor=#ffe>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제프리 초서 리처드 3세 J. K. 롤링 제임스 와트 리처드 브랜슨
<rowcolor=#ffe>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보노 (아일랜드인) 존 라이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도날드 캠벨 헨리 2세
<rowcolor=#ffe>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J. R. R. 톨킨 월터 롤리 에드워드 1세 반스 월리스
<rowcolor=#ffe>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리처드 버튼 토니 벤 데이비드 리빙스턴 팀 버너스리 마리 스톱스
출처
같이 보기: BBC 선정 최악의 영국인, 위대한 인물 시리즈 }}}}}}}}}

<colbgcolor=#000><colcolor=#fff> 윌리엄 부스
William Booth
파일:윌리엄 부스.jpg
출생 1829년 4월 10일
영국 잉글랜드 노팅엄 스나이톤
사망 1912년 8월 20일 (향년 83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하들리 우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목회자, 자선사업가
배우자 캐서린 부스[1]
자녀 브램웰, 에반젤린, 밸링턴
케이트, 엠마, 허버트
루시, 마리
형제자매 조지 스콧 레일튼
엠마 부스
앤 부스
메리 뉴웰
헨리 부스
윌리엄 해드콕 부스
종교 개신교(감리회구세군)
서명 파일:Lefnadsteckning_öfver_Catherine_Booth-039-William_Booth-signature.png

1. 개요2. 신학적 성향3. 어록4. 기타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개신교 교파이자, 자선단체인 구세군의 설립자이자 초대 대장[2]이다. 영국 감리회 목사로 사역하다가 당시 빈민들의 비참한 현실과 빈민들을 차별하던 교회에 실망하여, 소속교단과 결별하고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빈민들을 대상으로 자선 및 선교활동을 하였다.[3] 그후 그가 창설한 자선단체는 지금의 구세군이 되었다.

과거 성공회와의 신학적 마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공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축일은 8월 20일이다.[4]

2. 신학적 성향

윌리엄 부스의 신학적인 성향은 그가 속해있던 감리회 신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신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당시 그가 속한 감리교회가 빈민들과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을 이유로 그가 직접 빈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독립한것이기 때문이다. 생전 감리회 창시자인 존 웨슬리를 무척이나 지지했다고 한다.

다만 생전 신학적으로 성공회와의 마찰도 있었는데, 구세군의 모토이며 로고에도 들어있는 "피와 불"(Blood and Fire)이 신학적인 오해를 산다거나, 당시로서는 여전히 급진적이었던 여성 평등에 대한 마찰이 있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으로도 구세군이 일종의 가족 사업이 아니냐는 의심이나[5], 심지어 돈에 눈이 먼 사기꾼의 모금 행각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알콜 중독자들이 많았던 빈민들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금주, 금연, 도박 금지 등을 계율로 제시했는데, 이 때문에 주류 취급자들과의 반목도 있었고 이들은 해골군(Skeleton Army)을 결성해서 구세군 시위와 유혈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3. 어록

불가능한 일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위대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지금과 같이 여성들이 울고 있는한
나는 싸우리라
지금과 같이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한
나는 싸우리라
지금과 같이 교도소에 드나드는 남성들이 있는 한
나는 싸우리라
술에 취한 사람이 남아있는 한
거리에 잃어버린 가련한 소녀가 있는한
하나님의 빛 없이 살아가는 영혼이 한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나는 싸우리라
나는 끝까지 싸우리라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예에 있고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에 있고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에 있지만
나의 야망은 사람들의 영혼에 있다
1904년 6월 24일 에드워드 7세를 만나기 위해 왕궁을 방문하였을때 방명록에 적은 말이라고 한다

4. 기타

  • 슬하에 8남매를 두었으며, 대부분 구세군 사관으로 종사했고 맏아들 브람웰 부스는 구세군 2대 대장을, 딸 에반젤린 부스[6]는 4대 대장을 지낸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구세군의 군대적인 문화나 아버지와의 반목으로 구세군 활동을 접거나 탈퇴하였고, 그렇게 탈퇴한 이들 중 아들 발링턴 부스의 경우 이후 비영리 단체 Volunteers of America을 설립하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1] 참고로 윌리엄 부스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 또한 구세군 내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였으며, 사관으로 함께 사역했다. 그런 측면에서 전세계 개신교 교단중 가장 먼저 여성에게 목회자의 자격을 부여한 교단은 구세군이라고 할 수 있다.[2] 천주교의 교황과 비슷한 위치이다. 참고로 구세군은 군대식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3] 당시 영국의 교회의 분위기는 빈민들을 더럽고 냄새가 난다며 배척하고 귀족들과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기껏 전도한 빈민들이 교회에서 쫒겨난 후 윌리엄 부스에게 돌아오는 일이 잦았고 빈민들 또한 차라리 윌리엄 부스와 예배를 드리기를 원했기 때문에 소속 교단의 지시에 구애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떠나 직접 빈민들을 위한 단체를 세운 것이다. 더불어 빈민들에게 옷을 제공하기 위해 당시 구하기 쉬웠던 영국 해군의 군복을 착용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군대 형식의 운영체계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다만 군대식 명칭을 뺀 중앙 집권식 운영체계는 가톨릭성공회 등과 유사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톨릭과 비슷한것이 있다면 극도로 경계하는 국내의 일부 극보수주의 저교회파 교단들이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4] 성공회의 경우 기독교계에서 위인으로 여겨질 경우 종파에 상관 없이 성인으로 공경하기도 한다. 일례로 성공회를 탄압한 가톨릭의 인물도 성인으로 공경하기도 하고, 종교개혁자이자 루터교의 창시자인 마르틴 루터와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자이자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뱅, 그리고 침례교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또한 성공회의 성인으로 공경되고 있다.[5] 주요 근거로는 가족 대부분이 구세군 조직에 참여한 것, 구세군 사관인 사위들 역시 아내 성을 따라서 Booth를 이름에 넣은 것, 구세군 2대 대장이 맏아들에게 넘어간 것 등등이 지적되었다.[6]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전을 치르던 미군 병사들에게 도넛을 구워 보급하던 도넛 걸의 창시자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