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3-29 16:27:31

앨런 튜링

파일:2DBC40C8-DA7B-4B46-9DC8-56B8F9D6697B.png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과학자들 & 사상가들 부문#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990329_400.jpg
버니바 부시 폴 에어디쉬 자쿠 쿠스토 마거릿 미드 로버트 노이스
버트런드 러셀 페트릭 스텝토
로버트 에드워즈
존 폰 노이만 이언 윌머트 지그문트 프로이트
리오 배이클랜드 라이트 형제 알렉산더 플레밍 로버트 고다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에드윈 파월 허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장 피아제 엔리코 페르미 리키 패밀리
필로 팬스워드 쿠르트 괴델 레이철 카슨 윌리엄 쇼클리 앨런 튜링
조너스 소크 제임스 듀이 왓슨
프랜시스 크릭
팀 버너스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파일:external/media.gizmodo.co.uk/alan-turing.jpg
인공지능의 발명이란 자동차에서 바퀴를 떼어낸 뒤 그 자리에 발을 달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 Alan Turing, <The Enigma of Intelligence>, P.404.


1. 개요2. 생애와 업적3. 성격4. 최후와 복권5. 대중문화 속 모습6. 기타7. 관련 항목

1. 개요

현대 전산학과 정보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년 6월 23일 ~ 1954년 6월 7일)은 영국수학자, 공학자이다. 케임브리지 종합대학의 킹스칼리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부의 요청에 따라 나치 독일군을 격파하기 위해 암호해독을 맡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로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으나 말년에는 동성애자란 이유로 경찰에 구속되고 화학적 거세를 당했으며 이 때문에 우울증으로 자택에서 자결했다.[1] 수많은 수학공학적 업적 때문에 현대 전산학과 정보공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당시에는 동성애가 범죄였기 때문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2. 생애와 업적

어릴 땐 3주 만에 읽기를 배웠고,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미적분 고등수학문제를 풀기도 하는 등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큰 점수를 받진 못했다고.(...) 이런 점을 보면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천재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물론 아인슈타인과 튜링이 청소년 때 공부 못했다고 하는 건 우등생 그룹 사이에서라는 게 함정 그래도 영국의 명문대인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럼 그렇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칼리지 재학 중에 쓴 논문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1936)은 튜링 머신 이론과 노이만형 컴퓨터에 있어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이때 교수로 있던 존 폰 노이만과 만났다.[2]

1939년 독일군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GC&CS(후일 블레칠리 파크로 불리우게 되며 현재 블레칠리 파크는 박물관이 되었다)에 참여해 독일 해군 암호를 해독하는 Hut 8 책임자가 되어 기존의 봄브(Bomby)[3]해독기를 개량한 튜링 봄비(Turing Bombe)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튜링 봄비는 후일 개발되는 콜로서스라는 프로그래밍 가능 전자 컴퓨터의 기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4][5] 이 컴퓨터는 군사 기밀로 약 50년간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 튜링은 초기 디지털 컴퓨터 개발(맨체스터 대학의 맨체스터 마크1)에 참여했고 영국 최초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폰 노이만형 컴퓨터)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특히 1950년엔 인공지능에 대한 중요한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을 발표, 거기에서 현재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인공지능 실험을 제안한다.[6]

이 이론은 수많은 찬동자와 반대자들을 만들게 되는데 특히 철학계는 일치단결하여 이 테스트를 논파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 철학자 존 설이 1980년에 제시한 '중국어 방(Chinese Room) 논증'[7]일 것이다. 다만 중국어 방 논증조차도 또 다른 수많은 논쟁을 만들면서 튜링 테스트가 세기를 넘어 과학계 영원의 떡밥으로 남는 데 일조한 감이 없지는 않다.

튜링 머신은 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명제의 증명가능성에 대한 연구에서 처음 이용된 개념이다. 튜링은 러셀의 역설이나 불완전성 정리처럼 '나는 유한번의 논리처리로는 증명 안 됨'이라는 명제가 존재함을 증명하는데, 중간에 튜링은 칸이 나눠진 긴 종이띠와, 이 위의 데이터를 읽고 바꿔쓰는 기계가 읽은 데이터에 대해서 바꿔쓰는 결과를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이게 수학적 증명, 인간의 지능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후에 튜링은 이 '만능기계'를 완전히 실현하려다 실패하고, 약간 변형된 형태가 폰 노이만에 의해 실현되어 지금의 컴퓨터가 된다.

참고로 튜링이 16세 때, 크리스토퍼 모컴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모컴도 수학에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가졌었다. 둘이 같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는데, 모컴이 1930년 사망하자 모컴의 뇌에 있던 지능을 저장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계산이론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튜링은 전산학의 기초가 되는 논문들뿐만 아니라, 자살하기 전에는 형태형성의 화학적인 토대(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라는 논문을 저작하였다. 이 논문에서 튜링은 생물의 발생에서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는 과정인 '형태형성'을 모의 실험하였고, 지금은 당연한 유전자에서 태아가 발생하는 부분을 그 시기에 예측했으며, 또한 이 논문은 카오스 이론에서 중요한 '대칭 붕괴'와 '분기 붕괴'란 현대적 개념을 미리 파악한 것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생물학을 정밀한 학문인 수학과 물리학, 화학을 통해 설명하였고, 카오스 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이미 예상하였다.

3. 성격

성격은 매우 독특해서 타인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 예로 2차 대전 당시 정보부에서 근무할 때, 동료들이 자신의 컵을 자꾸 사용하는 것에 짜증이 났는지 쇠사슬로 라디에이터 같은 곳에 묶어놓았다가, 장난이 지나치다며 동료들이 자물쇠를 풀자 그들에게 총을 쏘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극비 중에 극비 취급을 받는 과학자라, 경찰에서도 수배용 사진 하나 구할 수 없었고 결국 사건은 각하되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온 튜링에게 이후 다시 장난을 거는 동료 수학자들은 없었다고(...).

그 외에도 봄철이면 꽃가루를 조심해야 한다며 방독면을 쓰고(?) 자전거 출근을 하는 등 종종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또 지나치게 내성적인 건 아니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육체를 지니고 항상 운동을 하는 스포츠맨이었고, 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동성애자이기도 했지만 여성혐오자로, 여성을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인간의 사고를 남성적 사고와 여성적 사고로 나눈 뒤 여성적 사고의 특징을 전략의 부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되어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가 많아 서양권에선 튜링이 동성애자인 이유가 '그가 여자사랑하는 참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존재할 정도다. 이 때문에 튜링이 주인공인 2015년 개봉작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여성 혐오의 모습 없이 동성애자의 모습만 보여주며, 여주인공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 때문에 해당 작품은 사학자들과 튜링 연구가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로맨스가 들어가야 성공한다고 믿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를 것이 없나 보다 물론 실제로 실존 인물인 여주인공 조안 클라크는 황폐하다시피 한 튜링의 여자 관계 중 유일무이한 여성 친구는 맞긴 하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조안 클라크를 이성으로 사랑하기보다는, 단지 뛰어나고 성격 좋은 동료이자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봤다.[8] 후에 조안 클라크는 John Murray와 혼인하여 부부 관계가 된다. 튜링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스스로의 여성혐오 성향으로 인해 자신이 여성화 되는 상황이 일반적인 남성이 강제적 여성화를 당한 것에 비해 더 큰 아픔과 고통을 느낀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물론 튜링처럼 여성혐오 성향이 없었어도, 자신의 성을 강제로 바꾸는 성전환 처벌은 피시술자를 충분히 자살에 이를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가하는 비도덕적인 고문이다.

4. 최후와 복권

그 명성과 능력과는 달리 말년은 비참했다. 튜링은 전쟁을 치루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아널드 머리라는 19세 소년과 애인 관계를 맺고 동거를 했다. 그런데 사실 아널드는 소년범죄단과 연루되어 있었다. 어느 날 튜링이 집에 돌아와보니 온갖 물건들이 도난당하고 방은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동거하던 소년과 그 일행의 짓이었다. 튜링은 아놀드와 도난 사건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고, 또한 자신이 동료 과학자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던 것처럼 도둑과의 관계(동성애)를 경찰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동성애 사실이 기사화 되면서 반대로 아무 잘못이 없는 튜링의 인생을 처참하게 망가뜨리게 되었다. 왜냐면 그 당시에는 영국은 동성애가 금지였고 튜링은 성소수자들은 법을 어긴 범죄자였기 때문.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튜링의 성기호보다는 능력을 중요시 하던 동료들이 자신을 차별없이 대해주던 것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 튜링에게는 치명적인 비수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의 업적과 평소 행실과는 상관없이 당시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에 의하여 앨런 튜링은 사회를 혼란시키는 명백한 범죄자였다. 동성애자임이 만천하에 공개된 그는 잘못한 일이 없었음으로 당연히 당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사법부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당시 매카시즘이 만연할 때 소련측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추잡한 누명까지 덮어쓰게 되었다. 당시 튜링은 체스나 보드 게임을 매우 즐겼는데 케임브리지 재학 중 튜링의 게임 상대에 훗날 KGB의 거물 간첩이 된 킴 필비를 비롯한 케임브리지 5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전부터 1급 컴퓨터 공학자라는 위치 때문에 영국 정보부의 감시까지 받아왔는데 이런 참사까지 겹치게 된 것이다.

"사회가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본인의 유서 중 일부

결국 법원에서 동성애 혐의에 대해 여성 호르몬 투여를 통한 화학적 거세 형벌을 받게 된다. 그 영향으로 앨런 튜링은 신체의 여성화가 진행되면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고[9] 결국 1954년에 청산염 중독으로 의문사한다. 사과에다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의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깨물고 죽었다.[10][11] 사망 뒤로도 튜링에 대한 대우는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지켜내고 조국을 수호하는데 일조한 전쟁영웅이자 뛰어난 석학이었던 생전의 업적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튜링의 부고 소식은 단지 영국의 신문에 정말 조그만하게 "천재 과학자의 비참한 죽음"이라고 기사가 하나 난 것이 전부였다. 그의 재능을 생각해 보노라면 정말이지 통탄할 일.

여튼 이렇게 허무하다면 허무한 죽음과 함께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2000년대 들어 영국의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운동이 시작되며 튜링에 대한 사죄 청원 운동이 시작, 잊혀져가는 튜링의 죽음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노동당이 집권했던 2009년에 고든 브라운 총리는 영국 정부 차원에서 튜링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 정식으로 사죄하였다. 영국 우체국은 2012년 2월에 발행할 우표에 담을 '위대한 영국인 10명' 가운데 앨런 튜링을 포함시켰다. 성문법상 범죄자였지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또 그의 업적에 좀 더 비중을 두면서 반세기만에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또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튜링의 해로 만들려는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하원은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는데 2월 6일 영국 하원에 상정된 앨런 튜링에 대한 국가적 사죄와 사면 결의안이 부결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입장에서는 튜링에 대한 사면이 동성애에 대한 용인으로 비쳐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튜링에 대한 사면을 거부하는 게 아닌가라는 해석이 나왔다.[12] 하지만 2013년 12월 23일,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수만 명의 청원이 접수되면서 영국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고, 여왕 특별 사면령으로 튜링은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시안화칼륨이 주사된 한 입 베어문 사과가 시신 옆에 있었기에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사실 지금도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사고사라고 하지만, 튜링의 해외 탈출을 두려워한 당시 영국 정보부가 암살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종종 나돈다.

파일:external/1.bp.blogspot.com/IMG_1605.jpg
튜링 메모리얼의 모습. 프라이드 플래그로 장식되어 있다.

5. 대중문화 속 모습

튜링의 비범한 능력과 외골수 같은 성격, 현대 암호학의 아버지라는 점, 동성애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특이한 이력들로 앨런 튜링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창작자들에 의해 재창작되고 대중문화속에서 사용되었다.
  • WoD: 메이지 디 어센션에서는 트레디션 분파 버추얼 어뎁트의 일원이며, 최초의 전산망을 만들기도 한 버추얼 어뎁트에서 존경받았던 사람이다. 죽고 나서도 비록 육신은 죽었을지라도 정신은 살아남아 Digital Web에서 신과 같은 오라클으로 승천하게 된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도 등장. 성전기사단의 일원이었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발명품인 로봇을 만들어내려다가 로봇에 의한 실업을 우려한 기사단 상부의 저지를 받았다. 하지만 튜링은 상부의 지령을 무시하고 연구를 계속했고, 결국 성전기사단은 자살로 위장하여 튜링을 살해한다.
  •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에서도 언급된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스트레인지러브는 극도의 남성혐오(라기보다 사실 하는 짓을 보면 멸시로, 튜링의 성반전 버전이나 다름없다)자임에도 불구하고, 튜링은 보통 남자들과 달랐다며 튜링의 천재성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실제 튜링의 성격으로 보면 그녀와 사이가 좋았을 리는 없을 듯하다. 허나, 위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 이름을 열거할 정도라면, 성별을 떠나서 재능에 대한 점에서는 선입견이나 자기 고집은 과감히 접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적으로는 몰라도 공적인 인연은 상당히 강했을 것이다.
  • 하트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는 영국의 테크진으로 등장한다. 높은 기술 등급과 핵, 미사일, 수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유니크 테크진 중 하나의 속한다.
  • 아웃라스트에서는 베르니케 박사와 함께 월라이더 개발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 바이오쇼크 2DLC인 미네르바의 동굴의 초반부 진행 시 찰스 밀턴 포터의 사무실에 들어가보면 튜링이 포터에게 나치를 막기 위한 협조를 요청한 문서가 놓여져 있다.
  • 할리우드에서 앨런 튜링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제작되었다. 2014년 초 크랭크인하여 영국에서는 11월, 한국에서는 2015년 2월 말 개봉. 주인공 튜링 역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했으며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본작이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 기타

  • 튜링의 업적을 기려 컴퓨터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튜링상(A. M. Turing Award)이 1966년부터 수여되고 있다. 또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지능 구현화에 수여되는 뢰브너상(Loebner Prize)도 있다.
  • 2012년 6월 23일, 앨런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구글에서는 기념로고를 제작했다. 튜링 머신을 흉내낸 일종의 게임이다. #하러가기
  • 영국의 신스팝 그룹 Pet Shop Boys의 He dreamed of machines.은 바로 앨런 튜링에게 바치는 노래. #
  • 튜링이 베어 문 사과 모양에서 애플의 사과 로고가 만들어졌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애플社는 물론이고, 애플 로고의 디자이너도 앨런 튜링과 애플의 로고는 전혀 관계없다고 밝히고 있다.[13] 스티브 잡스 자서전의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은 딸에게 이 속설을 듣고 직접 잡스에게 디자인의 유래에 대해 물어봤다는데 잡스가 답하기를 "그런 것까지 고려하였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애플社 명칭의 유래와 로고 디자인의 계기는 그의 자서전에 모두 서술되어 있으니 궁금하면 읽고 참고해보자.
  •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시리즈로 "앨런 튜링: 생각하는 기계, 인공지능을 처음 생각한 남자"라는 그래픽 노블이 번역되어있고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평전이 번역되어 있다. 또한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 앨런 튜링과 컴퓨터의 발명"이라는 책도 나와있으니 흥미있는 사람은 읽어볼 것.

7. 관련 항목



[1]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였으며, 따라서 동성 간의 성교 및 연인 관계 역시 범법행위였다.[2] 노이만은 튜링의 동성애 사실을 알고서도 계속 친구로 남았으며 튜링이 동성애가 범죄인 영국에 되돌아가기보다는 미국에 남기를 충고했다. 튜링은 노이만의 조교직을 제안 받았으나 튜링은 조국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귀국했다.[3] 폴란드 정보부가 개발한 에니그마 해독기. 폴란드어라 봄비가 아닌 봄브.[4] 튜링은 콜로서스 개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5] 콜로서스 문서에는 관련되었다고 나온다 정확히 아시는 분께서 수정바람[6] 이 논문에서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의 이름을 언급하였다.[7] 컴퓨터가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한다고 해서 컴퓨터가 그 대답을 실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8] 근데 실제로 영화처럼 튜링이 조안에게 청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튜링은 죄책감이었는지 바로 커밍아웃을 했다고. 그래도 둘은 평생 동안 좋은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9] 성소수자 이슈에서 동성애자트랜스젠더가 전혀 다른 개념임을 논증하는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10] 생전에 튜링은 백설공주 동화를 매우 좋아했다고 알려져있다.[11] 이것이 애플 로고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말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애플 로고의 한입 베어문 모습은 로고의 사과를 체리와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실제로 로고의 모티브가 앨런 튜링과 관계 있는지 물음을 받았을 때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했다면 더 멋있었겠네요.' 라고 답했다.[12] 그런데 웃기게도 튜링에 대한 사죄와 사면 결의안을 부결시킨 영국 하원이 2013년 2월에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그냥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거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13] 초기 애플의 로고는 오히려 아이작 뉴턴의 사과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었다. 애플 문서 참조.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