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에멀린 팽크허스트 Emmeline Pankhurst | |
출생명 | 에멀린 굴든 Emmeline Goulden |
출생 | 1858년 7월 15일 |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 | |
사망 | 1928년 6월 14일 (향년 69세) |
영국 잉글랜드 런던 햄스테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민권운동가, 정치인 |
소속 | 여성 사회 정치 연합[1] ,(~ 1917년 11월), 여성당[2] ,(1917년 ~ 1919년), ,(1926년 ~ 1928년), |
종교 | 성공회 (잉글랜드 국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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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성들은 그동안 남성을 위해서 싸웠고,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인간적 권리를 위해서 싸울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의 전투적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영국의 민권운동가로 여성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여러 모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이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의 권리 문제를 제외한 다른 문제에서는 보수주의적 신념을 보였던 탓에 로자 룩셈부르크 등 좌파 성향 여권 운동가들의 집중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여성운동가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실비아는 어머니와 달리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좌파공산주의 사상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운동가로 활동했다.
2. 생애
영국 맨체스터 태생으로 그의 집안과 주변인들은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이였고 이에 따라 팽크허스트도 진보적 성향을 가지게 되어 14살때부터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석했다.[3] 21세때 여성 참정권을 지지하는 변호사 리처드 팽크허스트와 결혼했다.그는 1903년부터 ‘말이 아닌 행동’을 신념으로 삼는 여성 참정권 옹호 조직인 WSPU를 조직했고 이후 급진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전개해 유리창을 깨부수거나 우체통에 방화를 하는 행동으로 대중적 관심을 불러모았다. 그녀의 급진적 운동의 영향으로 영국 정부는 1918년부터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가했으며 그녀가 사망한 1928년에는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했다.
물론 그녀의 과격한 운동이 여성의 인권 신장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총력전이 전개되어 유례없이 여성들까지도 모두 군수 물자 제작에 동원되었는데, 따라서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아져 나라에서도 이들의 인권 신장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기도 하다.
3. 여담
-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영웅들 & 아이콘들로 뽑혔다.
- 그녀의 남편 리처드는 여성 참정권을 강력하게 지지한 법정 변호사였고, 부부가 함께 여성 운동에 참석했다. 그는 결혼 이전인 1870년과 결혼 뒤인 1882년에 기혼여성재산법안(Married Women's Property Act)을 만들었다. 당시 영국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경제권과 양육권 등의 권한을 남편에게 양도당하는 가부장적 사회였는데,[4] 이 법은 여성이 수입과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딸들 모두 여성 운동가이자 정치가로 활동했다. 증손녀 역시 현재 여성 인권 운동가로 활동중이다.
- 영국 여성이 남성과 법적으로 완전히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한 1928년, 에멀린은 주어진 소명을 다했다는 듯 세상을 떠났다.
- 영국의 제2 국적사인 버진 애틀랜틱 항공은 지난 2022년 4월에 9번째로 인도받은 에어버스사의 장거리 여객기 A350에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항공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들을 기념하기 위해 '레이디 에멀린(Lady Emmeline)'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등록 번호는 G-VLI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