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9 14:12:23

무하마드 알리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인물인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에 대한 내용은 무하마드 알리(이집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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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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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91509377-CF43-484F-9C0C-D6A33D0BA670.png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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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1976년1977년1983년1984년1986년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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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dda0dd>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이름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분야연극
입성날짜2002년 1월 11일
위치6801 Hollywood Blvd.}}}

파일:sportsillustrated_logo.png
197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056ceca886580f17b9f51489738a2e9.jpg
재키 스튜어트 무하마드 알리 피트 로즈
}}} }}}||
파일:GettyImages-480090748-2.jpg
이름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개명 전 이름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
(Cassius Marcellus Clay Jr.)
출생 1942년 1월 17일, 미국 켄터키루이빌
사망 2016년 6월 3일 (만 74세), 미국 애리조나피닉스[1]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신장 191cm
체중 107kg
윙스팬 198cm
전적 57승 37KO 5패
체급 헤비급
서명 파일:ali sign.png
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
나비처럼 날아서 처럼 쏜다.
"...무하마드 알리의 위대함은 그저 훌륭한 선수라는 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알리와 함께 링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저 '훌륭한 복서', '훌륭한 싸움꾼'을 상대하는게 아니었어요. 이제껏 만난 사람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람과 경합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위대한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위대한 사람은 잽이니 라이트니 하는 것으로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그에 걸맞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복서, 훌륭한 펀쳐를 찾는다면 알리를 찾지 마십시오.

하지만 사상 최고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궁금하다면, 그가 바로 무하마드 알리입니다."
조지 포먼, 알리를 추모하며
1. 개요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복서 시절
2.2.1. VS 브라이언 런던2.2.2. VS 조지 포먼2.2.3. VS 조 프레이저2.2.4. 해가 지다
3. 평가4. 사회 운동5. 어록6. 가족 관계7. 기타

1. 개요

파일:150522_SNUT_AliListon-Color.jpg.CROP.original-original.jpg
The Greatest.

미국의 전설적인 복싱 선수이자 권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다. 또한 사회 운동가로써 흑인 인권 운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명 전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 원래 침례회 신자였으나 1964년 말콤 엑스가 이끄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때문에 그는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였다.

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12세에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 1960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고 이 후 프로로 전향, 헤비급으로 월장했다. 그리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성화 점화자로 참여해 36년 만에 또 다른 금메달을 증정받았다.[2]

2.2. 프로 복서 시절

1960년에 프로로 데뷔하여 1981년에 선수 생활을 완전히 은퇴했다. 선수 생활 21년 간 복싱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며 60-70년대 세계 권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통산 19차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복싱 헤비급 역사상 유일하게 3차례 챔피언에 등극했다.

2.2.1. VS 브라이언 런던

브라이언 런던과의 경기 영상.
이 경기는 알리의 명경기들에 비해 유명한 경기는 아니지만 10분 21초부터 3초에 12개의 현실판 북두백열권을 연상시키는 펀치세례로 KO를 얻어내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는 알리의 퍼포먼스다. 프로 복싱에서 일방적인 페이스와 빠른 펀치 세례, KO승리를 하는 것도 대단한데 알리는 헤비급에서 그런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특유의 노 가드 오픈 스탠스와 무빙도 확인 가능.

2.2.2. VS 조지 포먼

알리의 가장 유명한 경기는 조지 포먼과 맞붙은 "The Rumble in the Jungle" 이다. 당시 조지 포먼은 24세의 압도적인 챔피언이었고 지금까지도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핵주먹으로 평가받는 강타자였다. 게다가 알리와 싸우기 직전에도 헤비급 역사에 꼽히는 인파이터인 조 프레이저를 상대로 한 경기에 6번이나 다운시키며 2라운드 KO 승리를 거두며 기량이 절정에 달한 상태였다. 반면에 32세의 알리는 이전에 베트남 전쟁 징병 거부로 인해 선수 자격 박탈을 당해 신체적 최전성기인 25세부터 29세까지 4년간 선수 생활 자체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알리는 전성기에도 강펀처 스타일은 아니었으며 주무기였던 순발력과 민첩성도 노쇠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알리는 이토록 온갖 불리한 조건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경기를 앞두고 도발과 언론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난 저번 주에 돌을 죽여버리고 바위를 박살내고 벽돌을 병원으로 보내버렸어!"
"난 너무 빨라서, 어제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이 꺼지기도 전에 침대에 들어갔지."
"난 너무 빨라! 링 위에서 댄스를 보여주마. 포먼은 날 볼 수도 때릴 수도 없을 거라고!"
"너희들 모두 포먼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 다 알아. 하지만 두고봐라, 내가 얼마나 위대한지!"
1974년, 포먼과의 경기를 앞두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알리가 한 말들.
물론 세상 그 누구도 알리의 이런 도발에도 불구하고 알리가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알리가 늘 해오던 자신감 과시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것은 평소 알리가 해오던 언론 플레이와는 차원이 다른 작전이었으며, 완벽한 작전 성공이었다. 알리는 자신이 '댄스를 보여주겠다'며 순발력과 민첩성으로 포먼을 제압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진짜 속셈'은 따로 있었다.[3]
경기 시작은 21분 11초부터. 하이라이트는 51분 30초부터.

1974년 10월 30일, 알리는 WBC·WBA 챔피언 조지 포먼과 자이르(현 콩고 민주 공화국) 킨샤샤에서 맞붙었다. 당연히 도박사들은 전부 챔피언 포먼의 승리를 점쳤고,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알리가 포먼을 상대로 우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알리는 경기가 시작되자 특유의 경쾌한 몸놀림과 빠른 펀치 스피드로 조지 포먼에게 공격을 적중시켰다. 알리가 무기력하게 제압당할 것이라 여겼던 관중들은 알리가 본인의 말대로 현란한 스피드로 포먼과 팽팽히 맞서자 혼란과 동시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런데 2라운드에 돌입하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알리의 '진짜 속셈'이자, 가디언지 '스포츠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박' 이라고 일컬은, 'Rope-a-dope' 전술이 실행된 것이다.
파일:InformalCompleteAlaskanmalamute.gif
Rope-a-dope.
로프에 몸을 기대고 로프의 신축력과 반동을 이용해 상대의 타격을 흡수하는 전술로, 알리가 바로 이 포먼 전에서 최초로 창시한 전술이다.

시작부터 날쌔게 스텝을 밟던 1라운드의 모습은 어디가고, 갑자기 알리가 계속 후진을 하며 로프에 몸을 기대는 것이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복싱 역사상 최강의 슬러거로 꼽히는 조지 포먼을 상대로 펀치를 피하기는 커녕 로프에 몸을 기대고 펀치를 받아낸다? 관중들을 비롯, 이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전부 알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몇몇은 알리의 자살행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포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알리에게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가 포먼의 패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어지간한 복서들은 버티기 힘겨울 포먼의 펀치였으나, 이번엔 달랐다. 포먼의 강펀치들이 모두 로프의 신축력으로 인해 대미지 전달이 되지 않았고, 맞고 있는 알리보다도 때리고 있는 포먼이 더욱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펀치를 흡수하며 버티던 알리가 순간적인 역공을 펼치는 상황이 자주 펼쳐졌다. 포먼은 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관중들은 알리가 공격을 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상황이었다.

이후로 상황이 경기 전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알리는 포먼의 펀치를 모두 흡수하며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성공시켰고, 4라운드에서 펀치를 주고 받으며 살짝 비등한 모습을 보였으나 5라운드에서는 포먼에게 맞으면서도 미소를 짓는 여유를 보였다. 반대로 포먼은 경기 내내 알리의 전술과 운영에 완벽히 말려들어 효과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포먼이 아예 가까이 들이대면 알리는 클린치를 걸어 공격을 차단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왕을 상대로 백전노장 도전자는 노련한 모습을 보이며 8라운드까지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파일:Ali vs Foreman.png
조지 포먼에게 펀치를 적중시키는 무하마드 알리.

6라운드부터 눈에 띄게 지친 모습을 보였던 조지 포먼은 8라운드에 들어와서는 탈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4] 라운드 종료까지 32초 남은 상황에서 캐스터는 마치 예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남긴다.
"...아마도 이게 알리의 작전인가 봐요. 자기 펀치에 자기가 나가떨어지도록 말이지요!"

라운드 종료 20초 전, 코너에 몰린 듯한 알리의 오른손이 포먼에 적중한다. 이후 몇 번의 잽에 이어 라이트 펀치가 포먼에게 한번 더 적중한 순간 알리는 코너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운드 종료 15초를 남긴 순간, 포먼이 그로기 상태가 된 것을 확신하자[5] 알리는 재빠르게 공격하기 시작했고 종료 13초 전 눈 깜짝할 사이에 2차례의 펀치를 포먼의 턱에 정확하게 꽂아넣었다. 그리고 포먼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라운드 종료 10초에 카운트에 들어가서 라운드가 끝나는 정확히 00:00초에 KO 선언이 나왔다. 이로서 싸움은 전설이 되었다.

전성기 때 3초에 12번의 펀치를 날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고, 1초 내에 주먹 두 번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다. 비록 경기 내내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 때 알리는 32세의 나이, 8라운드 24분 가까이 뛴 상태, 그리고 헤비급 사상 손꼽히는 24세의 젊은 돌주먹 챔피언의 펀치를 계속 몸으로 받았다. 아무리 로프를 이용하며 가드로 받아낸다고 해도 누적되는 피해와 피로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6] 알리는 그 상태에서 찰나의 순간에 안면에 그림 같은 펀치 콤비네이션을 모두 적중시켰다.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알리와 포먼이라는 뛰어난 선수들이 맞붙었다는 것 이상으로 알리의 두뇌와 끈기가 빛을 발한 경기였다. 시합 전 기자 회견부터 경기가 KO로 끝나는 순간까지 알리가 완벽하게 구상하고 연출한 전략적 걸작이었고, 본인만의 주무기를 잃은 노장이 최강의 젊은 챔피언을 꺾은 기적이었으며, 승리를 위해 유례없던 도전을 과감히 행한 용기와, 그것을 견뎌내고 끝내 이겨낸 위대한 끈기였다. 그리고 팬들은 복싱 역사상 가장 강력한 주먹을 상대로 스스로를 로프에 고립시킨 알리의 용기에 열광했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왕좌에서 내려왔던 알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정상을 탈환한 것에 환호했다.[7]

그야말로 경기가 있기 전 양 선수의 배경과 상황, 서로 간의 치열한 신경전, 경기의 진행, 전술적 완성도, 해설진의 코멘트까지 스포츠 만화보다도 더 만화 같은 극적인 결과를 낳으면서 복싱 역사에 영원히 남을 명경기가 되었다.

2.2.3. VS 조 프레이저

경기 시작은 1분 35초부터.

권투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조 프레이저와의 3차전. 이 경기는 경기 전 신경전도 치열했고 경기 내용도 대단했는데, 경기장 냉방 시설마저 고장나서 선수들 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마저 지칠 대로 지쳤던 경기다.

이 둘은 세차례나 맞붙으며 복싱 역사상 가장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프레이저와 알리의 1차전,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 속에서 결과는 프레이저의 판정승. 알리의 생애 첫 패배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프레이저가 조지 포먼에게 2라운드에만 6번의 다운을 당한 끝에 KO 패배로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기고, 이후 알리가 그 포먼을 무너뜨리며 다시 챔피언이 된다. 이후 알리는 프레이저를 상대로 두 번의 타이틀 방어전을 치뤘고, 모두 승리한다. 2차전은 알리의 만장일치 판정승이었고, 3차전에선 알리의 14라운드 TKO승. 전적 2승1패로 완벽하게 설욕한 것이다.

대중과 언론앞에 나서서 흥미 유발을 즐겼던 알리와 달리 프레이저는 별 다른 마케팅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1975년 10월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알리와 경기를 앞두고 이처럼 기도했다. "신이시여, 저 녀석을 때려눕힐 힘과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덤으로 프레이저가 챔피언이 된 후 알리가 베트남 전쟁 참전 거부로 인해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자 프레이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면담[8]에서 알리의 라이센스를 다시 발급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며 여러방면으로 그를 도우기도 했다. 허나 알리는 프레이저를 '백인에게 굴종적인 흑인'이라고 말하며 그를 탐탁스럽지 않게 여겼다.[9] 이로 인해 둘의 관계는 선수 생활 내내 나빴고, 둘 다 은퇴 후 노인이 되어서야 화해했다.

이들의 혈투는 '마닐라의 전율'(Thrilla in Manila)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알리가 프레이저와의 3차전을 앞두고 "이 경기는 마닐라의 전율이 될 것이다"라며 '스릴라' + '마닐라'로 라임을 맞추는 입담을 선보였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경기 이름을 '스릴러 인 마닐라'로 부르게 되었다.

2.2.4. 해가 지다

그의 권투 신화는 1978년 2월 15일 레온 스핑크스에게 패하면서 저물기 시작했다. 이때 상실한 WBC, WBA 헤비급 타이틀 중 WBA 타이틀은 같은 해 9월 15일 다시 레온 스핑크스와의 설욕전 끝에 탈환했으나[10] WBC 타이틀은 끝내 탈환하지 못했고 1981년 완전히 은퇴했다.

이후 선수 생활을 하며 얻어맞아 생긴 펀치드렁크 증후군[11]으로 말이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파킨슨병에 걸려 고생했다. 다만 알리의 파킨슨병이 펀치드렁크 증후군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알리는 많이 맞아 본 복서도 아니고 파킨슨병이 펀치드렁크와 밀접한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성기 때 엄청나게 떠벌이였던 그가 더듬거리며 말도 잘 못하게 되었으니 팬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지... 결국 파킨슨병이 합병증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어 2016년 6월 3일 앓고있던 파킨슨병의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날 조지 포먼, 마이크 타이슨, 플로이드 메이웨더, 매니 파퀴아오 등 수많은 복싱계 인물들이 애도의 뜻을 전했다.

3. 평가

알리의 커리어는 복서가 어떻게 진화하고 노화에 대처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알리 이전 세대의 복서들은 자신만의 장기를 극대화하여 난타전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주로 택했다. 현대 복싱의 선구자인 슈거 레이 로빈슨은 이 전략의 정점에 서있었다. 알리는 아웃 복싱과 인파이팅을 모두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았고, 본인이 아마추어 복싱부터 다져진 풍부한 경험에 의해 상대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잘 이용했다.

알리 이전에 활동한 전설적인 선수인 슈거 레이 로빈슨이 풋워크 사용과 아웃 복싱으로 대성공을 거뒀으나, 로빈슨 이후에도 당시의 아웃 복싱은 비주류 스타일이었고 선수들의 파이팅 스타일도 각자만의 한 가지 스타일에 고착되어 있었다. 더불어 풋워크의 중요성도 일깨워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알리는 당시에 보기 드문 아웃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알리의 하이라이트 영상 등에 잘 나오지만 초창기 알리는 빠른 풋워크와 레프트를 이용해서 상대를 제압하고 순간적인 콤비네이션으로 다운을 따냈다. 알리는 체력 소모, 힘싸움, 움직임의 둔함이 가장 심한 헤비급에서 경량급 선수처럼 현란한 풋워크와 좌우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운 펀치 구사, 또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기력으로 수많은 승리를 거두며 오랜 기간 챔피언으로 군림했다. 이런 알리의 '탈(脫)헤비급' 퍼포먼스와 업적은 당대 복싱계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알리는 아웃 복싱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 변화를 시도했다. 몇몇 경기에서는 카운터 복서, 스워머 스타일 역시 잘 구사했다. 레온 스핑크스, 칼 밀든버거 등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Right-Hand Lead' 전략이나, 풋워크가 노쇠한 후에 조지 포먼, 조 프레이저, 어니 세이버스 등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Rope-a-Dope' 전략 등 고정적인 스타일로는 소화할 수 없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알리 스텝'으로 불리우는 본인만의 독자적인 풋워크를 개발 및 실행하여 성공했고, 이는 현대 격투계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받는 풋워크이다.

이렇듯 복싱 역사에서 알리의 위치가 높은 이유가 바로 '만능형 복서'의 프로토 타입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나이를 먹고 신체 능력이 저하된다고 퇴보하는게 아닌, 경험과 전략을 바탕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현대에는 아웃 복싱이나 인파이팅 등 한 가지 파이팅 스타일에 매몰되는 '반쪽짜리' 복서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복싱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졌고, 이러한 동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알리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 아웃 복싱을 완성해 복싱의 기초를 다졌다면, 무하마드 알리는 그 완성된 아웃 복싱을 기반으로 복싱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현대 복싱의 선구자이자 복싱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알리의 위대함은 그의 복싱 테크닉과 패러다임 전환에 국한되지 않는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서, 그 어떤 적수일지라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결국 승리한 그의 위대한 도전 정신과 업적에 기인한 평가이자 명성이며 존경이다. 그는 수많은 챔피언들을 상대로 언더독 판정을 수두룩하게 받으면서도 그들과 겨뤄 챔피언 자리를 쟁취하였고, 백인 사회의 부당한 차별에 맞서며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 당하고 재판까지 받는데도 저항 정신을 굽히지 않는 등 흑인 사회의 대표로서 숱한 투쟁을 거쳐왔다. 또한 복싱에서는 전성기가 지난 노쇠한 몸으로도 전략과 전술을 개발 및 실행, 성공하며 끝없이 발전했다. 전성기가 지난 뒤 맞붙은 역대 최강의 챔피언 조지 포먼을 꺾었고, 오랜 라이벌로 비교되던 조 프레이저와의 정면 대결에서도 전적 2대1로 승리하며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였다.

이토록 알리는 시대 정신과 권투 실력을 모두 갖춘 완전체에 가까웠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언변, 사회적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투쟁 정신, 역대 최고의 권투 실력 등 권투라는 스포츠의 전투적인 이미지와 무하마드 알리라는 한 인간의 이미지가 당시의 사회 상황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임은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흑인 사회의 영웅이자 아이콘으로, 복싱을 넘어 인류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존경받고 있다.

4. 사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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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함께 활동했던 말콤 엑스와 함께. 여자아이들은 모두 말콤 엑스의 딸들이다.

알리는 강경주의의 흑인 인권 운동가였으며, 인종차별인권침해를 일삼는 백인들과 사회적으로 분리되기를 주장하는, '흑인민족주의에 기반한 흑백분리주의자'였다.[12] 이런 강경한 사회적 노선과 알리 본인의 굳센 자존심 때문에 복싱계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심지어 같은 흑인 복서들과도 크고 작은 마찰이 자주 생겼다.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1라운드 KO로 승리한 이후, 같은 해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플로이드 패터슨이 '알리로부터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 미국에 바치는 것이 내 의무다'라며 알리를 비난했다. 심지어 알리를 두고 알리가 개명하기 전 이름인 '캐시어스 클레이'라고 부르며 거세게 비난했다. 결국 이에 화가 난 알리는 '패터슨을 줘패겠다'라고 호언했다. 당시 이슬람 신자, 흑백분리주의자, 강경파였던 알리와 반대로 패터슨은 기독교 신자, 흑백통합주의자, 온건파였다. 그리고 결국 두 선수간의 매치가 성사됐고, 결과는 알리의 TKO승리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 주류 언론들은 온건파이자 기독교신자인 패터슨을 옹호했고, 강경파에 이슬람신자였던 알리를 '고의적으로 경기를 질질 끈 후 잔인하게 징벌했다'고 비난했다. 몇 년 후 알리는 패터슨과 한 번 더 붙게 되는데 그 때도 승자는 알리였다. 흑표당 대변인을 지냈던 엘드리지 클리버는 알리와 패터슨의 이러한 대립을 두고 "이 싸움은 사상적 측면에서 흑인혁명의 정신적 성취를 반영하는 전환점이 됐다. '독립적인 흑인'이 '굴종적인 흑인'을 징벌하는 상징적인 승리였다."고 평한다.[13]

이와 같은 상황은 2년후인 1967년 어니 테럴과의 매치에서도 반복된다. 어니 테럴은 계체량 측정 도중 알리를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알리를 도발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알리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알리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 식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이유가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도중 흑인 인권 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말콤 엑스와 그가 속한 '네이선 오브 이슬람'이란 조직을 접하며 흑인 인권 운동과 이슬람에 경도됐기 때문인데, 인종차별이 극심한 그 당시에, 그것도 자신과 같은 흑인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사회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현재의 이름을 무시당하고 개명 전의 이름으로 불리는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분노한 알리는 경기 당일, 링 위에서 테럴에게 펀치를 꽂아 넣으며 "내 이름이 뭐라고? 어!? 내 이름이 뭐라고!?"(What's my name? huh? what's my name?)라고 소리쳤고, 결국 테럴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다.[14] 어느 복싱 전문가는 알리의 이런 행동을 두고 "정말 놀라운 복싱기술의 과시였고, 정말 야만적인 잔인성의 전시였다"고 평했다.[15]

권투 이외에도 196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흑인민권운동에 동참하여 미국 흑인들의 권익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이유로 일부러 1974년 조지 포먼과의 대결 때는 아프리카 콩고킨샤사에서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끝내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현재는 야구재키 로빈슨 등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으로 불리기도 한다.[16]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징병 거부를 하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무려 3년 5개월 간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옥살이를 했다는 것은 법정 싸움에 대한 와전. 당시엔 주류 미국 사회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으나, 법정 공판에서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내 조국에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요? 베트콩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합니까?"
라고 변론하며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이미 흑인 사회에서는 당연히 '병역을 통해 의무를 다 하면 우리에게도 권리가 오겠지' 같은 순진한 생각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이는 1965년 2월 18일 앨라배마 주의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경도되어 있던 26살의 젊은이 지미 리 잭슨이 시위 도중 경찰의 폭행으로부터 모친을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바로 그 지미 리 잭슨은 육군 참전 용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가 징병 거부를 시작한 1967년은 구정 공세 이전이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주류 백인 사회에서는 병역 거부는 파렴치한 반국가적 행위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에서 베트남전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알리의 징병 거부가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죄를 선고받긴 했으나 긴 법정싸움 이후 전성기의 나이가 지나 육체적으로 노쇠하였다. 법정싸움 기간 동안 링 위에 서지 못한 그는 자신만의 경쾌한 스텝을 전성기만큼 활용하지 못하며 반사신경만으로 회피하던 노 가드 전술을 버리게 되었다. 그가 전성기를 벗어나 경력 중반기에 대결한 선수들은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모두 시대를 초월해 최고로 인정받는 돌주먹들이었다. 하지만 알리는 이른바 'Rope-a-dope' 전술을 고안, 로프의 신축력을 이용해 펀치의 충격을 흡수하는 전술로 프레이저와 포먼을 모조리 쓰러뜨린다.

또한 알리는 흑인 인권 운동가 뿐만이 아닌 평화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였다. 알리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의 발가락"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신을 등에 업고 세계의 모든 어두운 곳을 뛰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린 정의의 이유였다. 때로는 저항자로서 흑인들의 권리가 법대로 실행되지 않는 것에 항의하여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렸으며,[17] 때로는 지식인처럼 부정의한 전쟁을 고발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엘리트들 앞에서 미국의 명문대에 강연을 다녔고, 때로는 광대처럼 브로드웨이에서 <백인들의 희망>이라는 연극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때로는 외교관이 되어 사담 후세인을 만나 억류되어 있던 인질들을 석방하도록 설득했으며, 정치 지도자처럼 미국의 공립 학교와 병원을 찾아다니며 교육과 의료 체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다녔고, 또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재단을 창립하기도 했다.[18]

5. 어록

굉장한 수다쟁이였지만 동시에 사려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남긴 명언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그게 다냐?[19]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가 세계 챔피언이라고![20]
절대로 누가 나를 막아설지에 대해 떠들어 대지 마!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해!
나는 세상을 뒤흔들었어![21]
난 몇 회를 하는지 세지 않아. 힘들기 시작할 때부터 세지.
내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 때가 내가 숫자를 세기 시작할 때야.
그 때부터가 진짜니까. 그게 당신을 챔피언으로 만들어주는 거야.[22]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다.
베트콩들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23]
'캐시어스 클레이'는 백인들이 내 노예주에게 준 이름이다.
지금부터 난 자유롭고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므로, 난 노예가 아니므로,
백인들의 이름을 반납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칸의 이름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영화 속 록키의 백인 이미지를 덧칠했다. 예수, 원더우먼, 타잔, 록키. 미국은 늘 그렇게 백인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나는 미국이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한 부분이다.
흑인이고, 자신감 넘치고, 건방지다.
내 이름도, 내 신앙도 당신과 다르다.
내 목표는 나만의 것이다.
내게 익숙해져라.
그저 직업일 뿐이다.
풀들이 자라나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파도가 모래를 덮치고,
나는 그들을 때려 눕혔다.
권투란 수많은 백인들이 두 흑인끼리 서로 때리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못할 정도로 용감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이제는 다른 이들의 선함을 믿는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될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자유가 있다.
만약 당신의 꿈이 당신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충분히 크지 않은 것이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눈앞의 산이 아니라 신발에 스며드는 모래알이다.
내 마음이 그것을 상상할 수 있고, 내 마음이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50살이 되어서도 20살 때와 똑같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30년 삶을 헛산 것이다.
나이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나이 먹었다.
불가능이란 나약한 자들의 핑계다.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다.
불가능이란 잠재력이다.
불가능이란 일시적이다.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곰팡이가 핀 빵에서 페니실린이 나올 수 있었다면 당신에게서도 뭔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농담하는 방식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다.
국가 간의 전쟁은 지도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과의 전쟁은 변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24]
우정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정의 참 뜻을 모른다면 아무것도 안 배운 거나 다름없다.
우리에겐 모두 똑같은 신이 있다. 우린 그저 그를 다른 방식으로 대했을 뿐이다.
강, 연못, 호수, 개울. 이름은 다 다르지만 모두 물을 담고 있다. 종교도 똑같다. 모든 종교는 진실을 담고 있다.
챔피언은 체육관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챔피언은 욕망, 꿈, 식견과 같이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패배하는 것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만이 영혼의 바닥까지 닿을 수 있으며, 승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여분의 힘을 낼 수 있다.
나는 훈련의 매 순간을 싫어했지만, 난 되뇌었다. '지금을 열심히 살고, 챔피언으로서 남은 생애를 보내라.'
불빛 아래서 춤을 추기 전까지, 나는 길을 달린다.
당신이 나만큼 위대하다면 겸손해지기 힘들다.
나의 유일한 실패는 내가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장 위대한 자다. 때려 눕혔을 뿐 아니라, 경기를 선택했다.
나는 가장 위대한 자다. 내가 깨닫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가장 위대한 사람도 한 때는 초보였다. 그 첫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한 마리의 파리가 쇠쟁기를 끌 수 있다고,
그대에게 말하는 나는 좋은 사람.
그게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내게 묻지 말고,
파리에게 쟁기를 매어줘라.[25]
챔피언이 되면, 나는 낡은 청바지와 낡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로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시골로 갈 것이다.
거기서 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작고 귀여운 여우 같은 여자를 한 명 찾아낼 것이다.
난 그녀를 백만 달러가 넘는 대지 위에 세워진 25만 달러 짜리 내 집으로 데려가서 내 캐딜락과 수영장을 보여 줄 것이다.
비가 내릴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실내 수영장까지도.
그런 다음 그녀에게 말하리라.

"이건 모두 네 거야. 왜냐면 넌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

6. 가족 관계

  • 존 클레이 (증조부)
    • 허먼 H. 클레이 (조부)
      •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시니어 (父)
        • 루돌프 발렌티노 '라만 알리' 클레이 (남동생)
      • 네테니얼 클레이
      • 이바 클레이
      • 이외에 이름이 안 알려진 고종 형제들 3명이 있다.
  • 샐리 앤-클레이 (증조모)
  • 에디스 그리츠하우스 (조모)
  • 에이브 오'그레이디 (외증조부)
    • 존 르위스 그레이디 (외조부)
      • 故오데사 그레이디 (母)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남매 5명이 있다.
  • 버디 B. 모어헤드 (외조모)
  • 손지 로이 (1처)
  • 벨린다 '칼릴라 알리' 보이드 (2처)
    • 메리윰 알리 (장녀)
    • 자밀라 알리 & 라셰다 알리 (차녀 쌍둥이)
    • 무하마드 주니어 (장남)
  • ??
    • 미야 알리 (3녀)
    • 칼릴라 알리 (4녀)
  • 베로니카 포르쉐 (3처)
    • 하나 알리 (5녀)
    • 레일라 알리 (6녀)
      • 커티스 무하마드 콘웨이 주니어 (외손)
      • 시드니 주르딘 콘웨이 (외손녀)
  • 욜란다 윌리엄스 (4처)
    • 아사드 아민 알리 (차남. 양자다)
  • 밥 월시 (2사위)
    • 비아지오 알리 월시 (외손. 라셰다의 장남)
    • 니코 알리 월시 (외손. 라셰다의 차남)
  • 커티스 콘웨이 (4사위)
    • 카메론 콘웨이 & 켈튼 콘웨이
    • 레일라니 콘웨이

7. 기타

  • 상대를 교묘하게 비웃고 도발하는 트래시 토크와 거침없고 화려한 언변으로도 유명했으며, 단순히 거칠고 조롱적인 발언 뿐만이 아니라 언변속에 녹아있는 뛰어난 라임 구성과 적인 문장 구성이 탁월했고 대중들이 자신을 지지하게끔 하는 '정치적인 시'(Political poetry)에 가까운 발언을 잘 구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전 선수간의 언쟁을 일으켜 대중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걸 즐겼다. 무하마드 알리의 언변은 단순히 마케팅에 국한되는 흥미 유발과 상대방에 대한 도발만이 아니라 이외의 영역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의 어록 문단만 봐도 그렇다. 상기한 베트남 전쟁 징집 반대로 인한 법정 공판에서의 항변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도 그의 언변 능력을 잘 나타내는 사례. 또한 알리는 '스포큰 워드'[26]의 달인이었다. 혹자는 무하마드 알리의 이런 언어 구사가 힙합에 영향을 줬다고도 한다.#
  • 알리를 상징하는 말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은 원래 경기 전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허세이자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도발이었으나, 알리는 정말 본인의 말대로 플레이하며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이와 같은 경기 전 도발을 통한 마케팅은 스포츠 계에서 하나의 전술이 되었다. 알리의 이런 언행일치는 마케팅과 캐릭터를 일치시킨 모범적인 사례로 유명하며 특히 빠른 스텝과 디펜스, 펀치 콤비네이션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006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에서는 "캐딜락처럼 날아서 BMW처럼 쏜다"로 패러디되었다.[27]
  • 현란한 스텝으로도 유명한데 아예 '알리 스텝'이란 풋워크도 따로 있다. 다른 스텝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자랑하여 복싱은 물론이고 종합격투기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다.'알리 스텝'에 대한 설명 조 루이스에 의하면 이소룡도 알리를 존경하여 격투기 트레이닝의 90% 이상을 이 풋워크 연습에 투자하였다고 한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 스텝의 중요성을 일깨운 이후, 스텝의 활용도를 확장 시킨 것이 알리라고 할 수 있다.
  • 은퇴 후 토크쇼에서 마이크 타이슨, 슈거 레이 레너드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토크쇼 진행 중 최근 주목하는 복서가 누구냐는 질문에 알리는 타이슨을 뽑았는데, 이 후 타이슨과 레너드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다. 이 당시 알리는 파킨슨병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 두명이 스테이지로 걸어오자 예상 외의 등장에 깜짝 놀랐는지 벌떡 일어난다. 진행자가 알리에게 "당신의 전성기 때 이 친구(타이슨)과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나요?"라고 하자 알리가 말대신 손으로 타이슨을 가리키며 "난 주먹이 세진 않았지만 빨랐어요. 만약 저 친구가 날 쳤다면..."이라고 말하며 뒤로 넘어지는 액션을 취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타이슨이 손사래를 치며 "전 알리의 말을 안믿어요. 왜냐하면 저분은 저보다도 강한 펀쳐인 조지 포먼, 어니 세이버스[28]에게 맞고도 이겨낸 위대한 챔피언이에요. 저도 제가 대단한 걸 알지만, 모두의 머리가 고개 숙이고, 모두의 혀가 진실되게 말해야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은 여기 이 분입니다."라고 답했고, 방청객들은 환호했다.#
  • 1976년 6월 27일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이준구의 초청으로 인해 온 것인데, 사실 당시 유신 독재 체제와 사회적 문제 및 사건들로 인한 국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정권의 이벤트에 가까웠다. 이준구의 친구인 중앙정보부 요원이 이준구에게 '알리를 한국에 데려올 수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 발단.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알리의 팬이기도 했다. 알리와 한국간의 금전 거래는 하나 없는 무대가성 방문이었다고. 알리는 한국에서 3박4일 간 머물렀으며, 신세계조선호텔에서 묵었고 MBC의 특집 방송에 출연, 육영수 묘역 방문, 공장 방문, 군 부대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갔다. MBC에서 특집 쇼를 방송하면서 여자 연예인들이 알리와 껴안거나 함께 춤을 췄다는 이유로 당시 방송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아서 그 다음 주에 경고받은 내용을 방송 전에 내보냈다. 알리의 출국일이 되서야 청와대 측의 접근이 있었으나 비행기 시간 때문에 박정희와 만나진 않았다. 입국 직후 서울 시내에서 3시간 동안 카퍼레이드를 벌였는데 20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인구가 725만명인 것을 생각하면 당시 알리의 인기가 얼마나 드높았는지 알 수 있다. 이 카퍼레이드는 MBC가 생중계했다.참고
  • 1980년대 WWF에 출연하며 락 앤 레슬링 커넥션의 주축으로 WWE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무려 WWF 레슬매니아 I의 호스트로 초대받았다.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하여 손을 떨면서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당시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이던 알리가 쉽게 불을 붙이게 하기 위해 이미 완성되어있던 성화대의 설계를 변경했다고 한다.
  • 그의 딸 라일라 알리도 여자 프로 권투선수로 활약했고 세계 챔피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며 그 아버지에 그 딸임을 보여주었으며 라일라는 2007년 이후 은퇴한 상태. 방송 진행자 등의 일을 하는 듯하다. 여담으로 라일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베로니카 포셔 알리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며, 어머니의 외모를 이어받아서 아름답게 생겼다.라일라 알리의 최근 모습, 무하마드 알리와 베로니카. 또한 아디다스 광고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서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때는 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등장. 원래는 올림픽 오륜기 게양식에 같이 참가하려고 했지만 건강상 문제로 오륜기를 만져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알리>에서 윌 스미스가 맡아서 알리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작품성은 좋았으나 흥행은 실패했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30분 가까이 삭제하고 개봉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더욱 극장에서 외면당했다. 극장 수익으론 해외 수익까지 다 합쳐도 제작비도 못 건졌고 그나마 DVD 같은 2차 판권 시장은 꽤 괜찮게 팔려 수익을 거둬들였다.
  • 위 영화의 주제곡인 R. Kelly - The World's Greatest 또한 무하마드 알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이다.
  • 이 사람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가 바로 록키의 라이벌 아폴로 크리드다. 당시 영화를 찍을 때 스타 중의 스타였던 알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실제 그는 록키를 보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으며 심지어 스탤론에게 헌정하는 시를 써서 바치기까지 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가 진짜 아폴로 크리드다!!" 라면서 뛰쳐나와 스탤론과 스파링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보러 가기 시침 뚝 떼고 도망가는 록키 여담으로 록키에는 그의 라이벌 조프레이져도 까메오로 잠깐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록키에서 아폴로 크리드는 챔피언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무명 복서였던 록키에게 도전할 기회를 준 대인배에 록키와 명승부를 펼친 훌륭한 복서였으니 무하마드 알리의 신경을 크게 거슬리게 할 것도 없었다. 딱히 있다면 영화 초반에 록키와의 경기를 계획하면서 엄청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던가, 록키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방심했다가 훅 갈 뻔한 장면 정도?
  • ebs 지식채널 e에서 무하마드 알리를 주제로 해 방영한 적이 있으며 5분 짜리 영상에 무하마드 알리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요약해 놓았으니 한번 쯤 보자.
  • 이탈리아의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알리가 수박을 퍼먹으면서 연신 트림을 하는 등 매우 무례한 태도로 팔라치를 맞았다고 한다. 팔라치는 두번째 트림을 하는 것까진 참았으나 알리가 세번째 트림을 하자 그에게 마이크를 집어 던지면서 "이런 무식한 촌놈이 챔피언이라니!"라고 욕했다고 한다. 정작 팔라치 본인이 무례한 인터뷰 방식으로 유명해진 건 아이러니.
  • 많은 1세대 미국 무슬림이 그랬듯이 흑인우월주의를 지향하는 신흥종교였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입교하였고 후에 교단과 함께 정통 수니 이슬람으로 전향하였다. 이후 알리 개인은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에 깊게 심취했다.
  • 2015년 12월에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무슬림들을 입국금지 시킬 것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자, 알리는 즉각 성명을 내고 "나는 무슬림이다."라고 말문을 열며 "우리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를 위해 쓰는 사람에 맞서 싸워야 한다" 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파리나 샌 버나디노, 그밖의 세계 어디에서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이슬람이 아니다."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알리가 언어능력을 잃기 전 공식석상에서 행한 마지막 발언으로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다. 과연 그답게 마지막 말 역시 피부색과 종교, 성별, 빈부 할 것 없이 차별로 점철된 이 세상에 철권을 날린 셈이다.
  • 알리의 개명 전 이름 '캐시어스 클레이'를 본딴 '카시우스(Cassius)'라는 바다악어가 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파충류인 바다악어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덩치를 자랑하는 악어다.
  • 미국 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흑인 스포츠 스타여서 가끔씩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초청을 받거나 방문하기도 했었다.
  • 콜드플레이의 7집 앨범 수록곡중 Everglow의 Single버전에서 노래 후반부에 알리의 연설이 나온다.
  • 세상을 뜨기 직전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은 "나 때문에 울지 마라. 난 곧 알라와 함께하게 될 거야. 난 괜찮단다."

[1] 현지 시각으로는 6월 3일, 한국 시간으로는 6월 4일 1시 40분 경에 세상을 떴다.[2] 떠도는 이야기 중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인종차별을 당해 로마 올림픽 때 받은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에 던졌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이른바 강에 금메달을 던졌다는 건 책과 영화를 통해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의 무하마드 알리 센터의 설명. "His resentment was dramatized in the 1970s book and movie, The Greatest. In this symbolic tale, Cassius Clay and his buddy sat down at a restaurant counter and heard a man's voice boom, "I done told you, we don't serve no niggers." Hurt and humiliated, Clay was described as passionately flinging his gold medal into the depths of the Ohio River. The story was fiction, but the pain is fact."[3] 때문에 이 기자회견은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언론 플레이'로 불리며, 높은 전략적 가치를 담고 있다.[4] 포먼은 이 경기 직전 3년간 치른 12경기 중 11경기를 2회 이내에 KO로 끝냈고, 다른 한경기조차 5회 KO로 끝냈다. 즉 6라운드 이상의 장기전은 거의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5] 알리의 펀치 직전을 보면 포먼이 가드는 커녕 아예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체력적으로 완전히 나가떨어진 것이다.[6] 실제로 경기가 끝난 후 알리는 자신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채 잠시 바닥에 주저앉았다.[7] 인용 및 편집 발췌[8] 당시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의 위상은 엄청났기 때문에 대통령과의 일대일 면담도 그렇게 크게 어려운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닉슨도 프레이저의 요청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일이며, 곧 알리가 복귀할 수 있을거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줬다.[9] 베트남 전쟁 거부로 인해 선수 자격이 박탈된 것이 백인 권력에 의해서인데 그 선수 자격을 다시 발급받는 것도 백인 권력에 의해서라는 점이 자존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10] WBC 타이틀은 레온 스핑크스가 챔피언 타이틀 획득 이후 다음 경기를 지명 도전자인 켄 노턴이 아니라 무하마드 알리와 다시 붙겠다고 선언하면서 규정위반으로 박탈되었다.[11] 직역하면 '펀치(punch)에 취하다(drunk)' 란 뜻으로 지속적으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 뇌세포가 차츰 손상되면서 일어나는 후유증이며 복싱선수나 미식축구 선수들과 같이 머리에 지속적인 충격을 받는 운동선수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다.[12] 훗날 알리도 점차 온건한 스탠스로 변화해 갔다. 사회적인 차별과 불공정함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점은 한결 같았지만.[13] #[14] 알리와 테럴의 경기[15] #[16] 안타깝게도 두 선수의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희소질환을 앓았다는 점이다. 로빈슨의 경우 1형 당뇨병을 앓았다.[17] 상술했듯 알리 재단에서는 금메달을 버렸다는 얘기를 부인하고 있다.[18] '어쩌면 무하마드 알리는 천사였다'[19] 조지 포먼을 상대로 6라운드 진행 중에 클린치 상태에서 포먼의 귀에 대고 한 말. 이에 덧붙여 "사람들이 네가 그렇게 잘 때린다고 하던데, 완전 헛소문이구만!"이라고 도발한다. 포먼은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을 한 알리는 포먼을 8라운드 KO로 꺾고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는다.[20] 조지 포먼을 상대로 8라운드 KO 승리를 거둔 후 인터뷰에서 한 말.[21] 소니 리스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인터뷰에서 한 말. 당시에 알리가 이긴 것 자체가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다. 도박사들 사이에서도 배당율이 리스턴 7, 알리 1 수준이었고 알리는 데뷔한 지 얼마 안된 신인에다가 리스턴은 당대 최고의 하드펀처로 손꼽히는 강자였다.[22] 윗몸 일으키기를 몇 개나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며.[23]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하며.[24] 'change maps'와 'map change'로 두 문장의 대비를 이뤄 시적인 효과를 줬다.[25] 소니 리스턴과의 1차 타이틀 매치를 하루 앞두고 알리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대중들 앞에서 즉석으로 낭송한 시라고 한다.[26] 한문으로는 '口語'. 말로 하는 시, 혹은 글을 뜻한다. 즉석에서 워드 플레이와 운율 구성에 초점을 맞춰 재치있게 언변을 구사하는 일종의 언어 예술이다.[27] 미국 VIP 의전차의 상징이 캐딜락이고, 독일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BMW다. 백악관에서 에스컬레이드를 개조한 방탄차량을 이용하고, BMW는 BMW M이라는 고성능 디비전으로 스포츠 세단의 역량을 극대화했다. 당시에는 8시리즈가 없었다.[28] 조지 포먼 못지 않은 권투 역사상 최고의 핵주먹 중 한 명으로, 이 토크쇼에서 알리가 자신이 겪어봤던 가장 강했던 펀처라고 말한 선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