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2:38:33

이준구(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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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준구(李俊九, Jhoon Rhee)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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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2년 1월 7일, 충청남도 아산시
사망 2018년 4월 30일(향년 86세)
버지니아 주 매클린
학력 동성중학교 (졸업)
텍사스 대학교 (토목공학과 / 학사)
무술 종목 태권도, 공수도
신체 165cm, 64kg
가족 前 배우자 한순함[1]
現 배우자 테레사
아들 이형모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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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태권도 교육자이며, 미국에 태권도를 처음으로 알린 한국인이다. 이른바 미국 태권도의 대부다. 사실 북미권의 태권도 진입 성공이 작금의 태권도 글로벌화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공이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는 인물이다. 빌 클린턴의 태권도 교사를 맡기도 했다.

2. 생애

한국인인데도 정작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2], 인맥도 그렇고 태권도 8단의 무술 실력도 그렇고 여러 모로 대단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오히려 한창 활동할 땐 미국에서의 인지도가 한국보다 높았다. 이 사람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이 무려 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아놀드 슈워제네거, 척 노리스같은 스포츠계/액션영화계의 거물들로, 1976년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했는데, 사실 국내에 이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도 이 이벤트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3]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케이블에 가끔 나오던 선삼정 광고로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태권도를 처음 배운 건 1946년 서울 동성중학교에 다닐 때였다고 한다. 학창시절 한 영화를 보고 어린 마음에 백인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했고 그덕에 훗날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그가 입문한 청도관은 초창기 태권도 역사를 대표하는 이른바 '태권도 9개 관' 중 하나로 당시엔 쇼토칸 가라테 기반의 도장이었다고 한다. 엄운규 전 국기원장도 이곳에서 함께 수련을 한 2년 선배였다고 한다.

1956년 미국 땅을 처음 밟았고, 다시 귀국했다가 1957년 11월 본격적인 유학길에 오른 그는 대학교에서 태권도클럽을 만들었고, 이게 인기를 끌어 학비도 해결하고 계속 공부하던 중, 1962년 워싱턴 D.C.에 국방부 직원 태권도 교육차 갔다 아예 눌러앉아 도장을 차렸다.

1965년에는 강도를 당했다는 한 미국 국회의원에게 태권도 배우면 그런 봉변 당하지 않는다고 전화를 걸어, 그의 사무실로 초대를 받고 이때의 연으로 미국 국회의사당 안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일주일에 3회, 아침 7시부터 한 시간씩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40여년 간 국회에서 준리 태권도를 배운 국회의원이 300명에 이르렀다. 당연히 미국 태권도 흥행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파일:이소룡안.jpg
1968년 로스앤젤레스 해변에서 이준구 사범(오른쪽)이 이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연했다. 둘이 처음 만난 건 1964년 세계선수권 대회였는데, 이때 친분을 맺은 둘은 이후 이소룡이 배우로 뜨고 나서도 만남을 이어가 저런 사진도 찍었다.

1973년에는 골든하베스트에서 제작한 무술영화 흑권(跆拳震九州)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아무래도 이소룡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라는[4] 네임 밸류가 있는지라 서울 개봉관 관객수 10만 동원을 하며 흥행몰이를 했다.[5] 1980년에는 돌아온 용쟁호투라는 용쟁호투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했다. 시원하게 말아먹은 흑역사도 있다.

3. 기타

  • 인터뷰에 의하면 미국에 이민을 가서 태권도 도장을 차릴 당시, 근처 일본 무술 도장 사범이 도장깨기의 일환이었는지 어쨌는지 도전해오기에 발차기 몇 방에 넉다운시켰다고 한다. 다만 기사에 따라서 가라테 사범이란 말도 있고 유도 사범이란 말도 있고, 패배를 인정하곤 도장 문을 닫고 이사를 갔다는 소리도 있고 한편으론 이후에도 연을 맺어 학생들도 보내주고 교류했다는 소리도 있는 등 여러 말이 나오는 모양. 유도, 가라테 둘 다 하던 사범이었을 수도 있다. 참고로 태권도와 가라테는 의외로 해외 진출 시기가 비슷하며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고 둘 다 일본 본토의 무술이 아니라는 동병상련을 겪고 있었기에[6] 당시 해외에선 서로 간의 교류를 통해서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 딱히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 이소룡이 한국식 김밥을 무척 좋아했다고 증언한 사람도 이준구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서 여러 잡일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던 이소룡이 배고픈데 밥값이 없으면 종종 찾아가서 이준구에게 밥을 얻어먹곤 했다고 한다.[7]
  • 형태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초창기 태권도 역사 속에서 바로 미국으로 간 인물이다 보니, 말년까지도 형식에 있어선 꽤 유연한 자세를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창안한 소위 '준리 태권도'는 국내 태권도와 수련방식에 차이가 있는데, 주먹도 실전성을 가미해 권투 비슷하게[8] 개량하고 마케팅적 측면에서도 댄스 스포츠를 빨리 도입하는 등, 꽤 선구적인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손기술 쓸 수 있게 올림픽 태권도 룰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국내 태권도계와는 소원한 편이었지만, 이런 마인드 덕분에 더 현지 친화적인 모션도 많이 구사할 수 있었고, 이는 태권도의 미국 현지 정착에 도움이 되었다. 세계 무대에서 태권도의 정착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1] 1996년에 사망했다.[2] 이는 이준구가 1950년대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국내와는 연을 끊은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3] 이전까지는 거의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알려지지 못했다.[4] 태권도 자체를 진지하게 배웠다기보단, 중국무술에서는 보기 드문 옆차기와 태권도 스타일의 앞&뒤돌려차기를 배워갔다. 이마저도 사제관계라기보다는 교류에 가까웠는데, 이준구 또한 실전 손기술 연구를 위해 이소룡에게 영춘의 손기술을 배웠다.[5] 물론 이준구의 네임밸류에만 의존한 게 아니다. 이 작품엔 모영이나 임정영, 홍금보, 황가달, 황인식 등 당시 골든 하베스트의 간판급들이 줄줄이 출연하고 있다.[6] 가라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가라테는 본래 중국 남파권법이 오키나와로 전래되어 독자적으로 어레인지된 무술로, 심지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오히려 일본 본토에서 깡패, 불한당들이나 배우는 무술로 천대받았었다. 검도, 스모, 아이키도, 유도 등이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일찍 인정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7] 이소룡은 이준구를 만났던 가라테 대회에서 합기도 고수 지한재의 술기를 보고 감탄해 몇가지 술기를 배우는 등 한국 무술가들에게 친화적이었다.[8] 완벽하게 같진 않고 본인 주장에 따르면 예비동작이 있는 복싱 타격법에서 더 진화한 형태(무신호 펀치)다. 그는 태권도에 자부심이 있지만, 현대 태권도식 품새 수련은 실전에 별 도움 안되는 미련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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