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7 20:36:49

마이크 타이슨

파일:Mike Tyson(2019).jpg
이름 마이클 제라드 타이슨
(Michael Gerard Tyson)
출생 1966년 6월 30일
미국 뉴욕 주 뉴욕시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신장 179cm[1]
체중 109kg[2]
복싱 전적 58전 50승 44KO 6패 2무효
체급 헤비급
별명 The Iron, The Baddest Man on the Planet[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1. 개요2. 출생과 성장3. 핵주먹 타이슨4. 몰락5. 감옥행6. 핵이빨7. 은퇴 이후의 삶8. 복서로서의 평가9. 기타10. 타이슨의 패러디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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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얼굴에 한방 쳐맞기 전까지는.[4]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1980~90년대 헤비급 복싱계 최고의 스타이다.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만큼은 무하마드 알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복서로서는 최고의 인기와 유명세를 자랑한다. 말년에 몰락이 급격히 찾아오긴 했지만 쌓아온 경력과 실력도 그 인지도에 충분히 걸맞는 수준이라 할 만하다. 프로 데뷔 후 무려 37연승[5]에 19연속 KO. 괜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말년에는 선수로서나 사생활에서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하여 복싱 전설로서의 대우만이 아니라 핵이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도 받는 양면적인 복서이다.

2. 출생과 성장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도짓을 일삼는 등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형과 나이프로 찌르며 놀았다(...)고 하니 정상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더 화이팅에도 언급되는 비둘기 사건은 실화로, 10살일 때 도둑질(!)한 돈 700달러로 새들을 사서 길렀는데 누군가가 그 중 한 마리를 훔쳐 목을 잘라놓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자 생에 최초로 싸움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둑놈 면상은 묵사발이 되었다고...

타이슨의 회고록이나 일대기를 다룬 뉴스 등을 봤을 때 어린 시절 소심한 아이였다고 한다. 타이슨 본인도 율리우스라 이름 붙인 애완용 비둘기가 동네 불량배에게 죽기 전까진 여자아이한테까지 맞고 다니던 소심한 아이였다고 회고한 바 있고, 본격적인 비행소년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은 10살의 나이로 브루클린의 흑인 갱단인 졸리스톰퍼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12살 때까지 체포된 횟수가 38번이었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에 유약[6]했단 건, 곧이 곧대로 믿기는 조금 어렵다. 비둘기 죽기전에도 절도/도둑질을 하였고, 비둘기가 죽고 난 이후 2년간 체포를 38번이나 당하는 것을 보면...본인이 그렇다고하니 그러려니 해야겠지만. 아니면 유약한것의 기준이 달랐을 수도 있고.[7]

3. 핵주먹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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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복싱 트레이너 바비 스튜어트에 의해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와의 만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복싱을 시작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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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도 WBC, WBA, IBF 벨트를 모두 가진 채 찍은 사진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체중 이동을 통한 강렬한 초스피드 연타로 1985년 데뷔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 결국 1986년 11월 26일 약관 20세의 나이로 트레버 버빅를 쓰러뜨리고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에선 핵주먹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미국 링 네임은 아이언맨(Iron Man).

이 이후 무려 36번에 달하는 경기를 모두 이겼는데 19번 연속 KO승을 따낼 정도의 엄청난 괴물이었다. 첫 1패를 38번째 경기에서 당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4. 몰락

그러나 빠른 성공 만큼 몰락도 급히 닥쳐왔다. 트레버 버빅과의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양아버지이던 커스 다마토[9] 사망한다.[10] 소년원에서 처음 만나 복싱을 가르치고 출소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복싱 뿐 아니라 글과 예절 등을 가르치면서 타이슨을 머리 빈 복서가 아닌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다. 멘토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커스 다마토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었던 존재였다. 타이슨에게 커스 다마토는 단순히 트레이너라든가 멘토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했고 커스 다마토 사망 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어리숙했던 그의 돈을 노리고 사기꾼들이 접근했다. 커스 다마토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당시 타이슨에게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아부꾼만 가득 차게 되자 타이슨은 점점 타락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전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의 상처입은 자아를 파악하고 격려와 훈육을 통해 인격적인 성장 또한 이루어 준 데 반해, 커스 사후의 멘토나 프로모터들은 강력한 복서로 성장한 타이슨에게 "싸나이라면 생각이고 뭐고 꼴리는 대로 해라 너는 싸나이다" 같은 꼴마초 식의 조언이나 하고 있었다. 유년기의 상처가 깊었던 타이슨에게 이런 조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대중의 이미지만 잃게 되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커스 다마토 사후 타이슨의 기량 역시 후퇴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88년도 전반에 제이콥스가 죽고, 후반에는 제이콥스의 뒤를 이은 매니저와 세컨드 코치 루니와의 연속된 불화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못 하였고, 그 결과 타이슨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다.[11]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복싱 팬들은 커스 다마토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도 복싱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며 아쉬워하고는 한다.[12] 게다가 코치라고 들어온 아론 스노웰과 제이 브라이트였다. 이 둘은 타이슨의 코치였지만 정작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해리 포터에 나오는 드레이코 말포이 똘마니인 빈센트 크레이브그레고리 고일이 연상되는, 타이슨의 훌륭한 부하(...) 수준이었으니... 그래도 10년 가까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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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WBA, 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왔던 제임스 더글러스를 맞아 10회에 KO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13] 이 패배로 그동안 37승 무패로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의 경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권투 선수로서의 경력를 보나 인생 전체를 보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몰락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무하마드 알리와 레이 레너드 같은 전설들을 만든 전설적인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는 타이슨이 다마토 사후에 어깨 근육을 보면 연습량이 부족한 게 티가 난다고 언급했고, 크루저에서 헤비로 올라온 홀리필드가 타이슨을 이길 수 있단 말도 했었다.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홀리필드는 더글라스를 KO시키고 벨트를 얻었지만 정작 타이슨을 피하였고, 복싱에 복귀한 조지 포먼과 붙었기는 했지만.

5. 감옥행

이 때쯤 발생한 미스 블랙 아메리카 참가자 Desiree Washington(데지레 워싱턴)을 호텔에서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로 징역 6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3년간 살기도 했다.[14]

형을 살고 나온 후 다시 재기에 나서서 1996년 9월 6일 WBA 챔피언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그러나 헤비급 강자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TKO로 패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6. 핵이빨

그리고 에반더 홀리필드와 리매치를 가지며 타이틀 탈환에 나서는데...이 리매치에서 복싱사에 길이 남을, 홀리필드의 귀를 깨무는 사고를 일으키고 Bite Tyson 핵이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15]과 더불어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몇 번을 복귀했으나 레녹스 루이스전, 윌리엄스전, 맥브라이드 전에서 패를 거듭,[16] 마침내 2005년 6월 12일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TKO 패배를 당한 직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이 핵이빨 사건은 보통 타이슨의 아무 이유 없는 정신 나간 돌발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발단은 홀리필드의 계속되는 고의 헤드버팅이었다. 물론 이빨로 물어 뜯는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홀리필드도 이 경기에서 딱히 매너 게임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잘 보면 헤드벗 뿐만 아니라 로우 블로우에 은근슬쩍 니킥까지 시전한다. 게다가 심판도 수많은 헤드버팅을 무시하다가 막상 타이슨이 버팅을 하니까 바로 주의를 주는 등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만 하면 굳이 타이슨이 아니라도 누구나 빡칠 듯(...).

7. 은퇴 이후의 삶

성격 때문에 아내를 두들겨 패고 이혼당하면서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그야말로 엄청나게 낭비하면서[17] 결국 2003년 파산신고했다(...). 복싱하면서 번 돈만 3억 달러, 즉 3000억원이 넘었다. 예금이 4억 달러였다고... 타이틀 획득 후 16년 만에 파산인 셈이니 단순계산으로 1년에 200억씩 펑펑 쓴 셈. 현재는 이벤트에 얼굴 내비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하지만 전처를 폭행한 점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로빈(전 부인)[18]에게 날린 바디 블로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인생에 한 점 후회도 없는 듯하다(...).

앨 고어는 그의 결혼 생활 동안 아내에게 헌신했다고 말합니다. 조지 W. 부시도 결혼 생활 동안 아내에게 헌신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남자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마이크 타이슨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하여 진실만을 말합니다.
난 내 부인과 삐-를 한 지 1년이 넘었어요. 내가 앤드류 골로타[19]를 신경이나 쓸 것 같습니까? 내 애들도 한 달은 못 봤어요.
(방청객: 왜요?)
네가 알 바 아니야, 이 흰둥이 놈아. 한 달은 못 봤다고
마이크 타이슨은 그의 부인과 섹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들이 알 바가 아닙니다, 흰둥이 여러분.
마이크 타이슨을 대통령으로.

부시와 고어의 선거전이 한창일 당시 코미디언 크리스 락 쇼에 등장한 영상(...).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부터는 어찌어찌 개심했는지 말썽 안 피우고 사람답게 살면서 많은 팬들을 안도시키고 있다. 홀리필드와도 화해한 상태. 토크쇼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고, 홀리필드의 조미료 사업에 대해 서로 개드립을 날릴 정도로 친해졌다. "홀리필드가 만드는 조미료가 있다면 홀리필드 귀때기도 먹을 만했을 거다"라는 드립을 쳤고, 거기에 홀리필드가 먼저 "자기 귀때기 맛을 볼 테니 물어보라"고 개드립을 날렸다.

2010년 1월 12일(한국시각)일자 WWE RAW에 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하였다. 자세한 것은 크리스 제리코 항목 참조.

외국의 동물 관련 프로에 출연해서 키우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관련 사진 사실 타이슨이 원래부터 새를 좋아했고 (위에서 기재되어 있듯 처음으로 대판 싸운 사고 자체가 키우던 비둘기를 누가 죽인 것부터 시작되는 점도 있었다) 복싱 안할 땐 늘 새 키우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경력이 워낙 길어서 이 분야에선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키우는 새가 많다 보니 소음 때문에 가끔 다른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예상과는 달리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양해해달라고 통사정한다고 한다. 사실 타이슨이 와서 사과를 하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2012년 갑작스레 스파이크 리 감독과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스 베가스에서 자기 자신을 주제로 한 원맨쇼를 진행했다. 공연 직전 그의 극장 앞에서 배트맨 상영관에서와 같이 총기난사를 하겠다는 글이 타이슨의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마이크 타이슨이 있는데 총기난사하겠다고 올리다니... 2013년 토니상 오프닝에 타이슨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

현재는 쇼프로 단골 손님에 복싱 빅매치엔 빠지지 않고 관전하는 잘 나가는 셀러브리티다.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에 언변도 좋아서 여러모로 성공적인 방송 연예인의 삶을 살고 있다.

2018년 캘리포니아 주가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하면서 대마초 농장에 투자했다.

8. 복서로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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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최강자 떡밥의 단골손님이지만 실제 복싱 매니아들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 쳐줘야 프로복싱 역대 top 50 끝자리에 들까말까하는 복서이다. 하지만 300년이 다 되어가는 근•현대 복싱 역사, 프로복싱 역사로 줄여놓고 봐도 수만명의 복서중 50위이면 결코 낮은 순위는 아니다. 약간 옛날 자료이기는 하지만, ESPN에서 뽑은 역대 최고의 복서 순위에서는 그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48위이고 매니 파퀴아오는 순위에도 없으며 역사상 최강의 미들급 챔피언인 마빈 해글러가 35위이다. 한국인들은 이름도 모르는 20세기 초중반 복서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역사성을 고려한 보수적인 랭킹이라고 봐야 한다. 복싱 역사상 최고의 피지컬을 지녔다고 칭송받는[20] 로이 존스 주니어는 46위, 괴물 조지 포먼은 20위, 무하마드 알리는 2위이며 어떤 매체에서든 평가해도 통합 1위는 슈거 레이 로빈슨이다 ESPN 랭킹 보기. 이름값 때문에 "겨우 50위?" 소리라는 반문을 하곤 하지만 당대 동급의 실력자였던 에반더 홀리필드, 레녹스 루이스에게 모두 패했고 결정적으로 자기 관리 실패로 복서로서의 전성기가 3년이 채 안 될 정도로 짧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첫 챔피언이 된 시기가 86년도이고, 더글라스에게 패한 때가 90년도이다. 데뷔에서부터 전성기로 잡으면 수감까진 6년.

헤비급 한정으로 보면 역대 10위권 정도에 포진되어 있다. 2017년 5월 링지에 올라왔던 조사에 따르면 30여명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추합한 결과 역대 헤비급 9위에 올랐다. 이는 레녹스 루이스나 에반더 홀리필드보다 2단계 높은 수치[21]로 상당히 의외의 결과인데, 레녹스 루이스 - 비탈리 클리츠코 -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로 이어지는 아웃복싱 스타일로 헤비급 자체의 흥미가 떨어진 것에 대한 향수로 해석될 수도 있다[22]. 이 조사에서 그보다 위에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전설과 같은 선수들인데다가 절반 가까이가 1960년대 이전 선수들이기 때문에[23], 1980년대 이후로 한정하면 조지 포먼 정도만이 그의 위에 있는 셈이다[24].

최대의 복싱 시장인 미국에서도 타이슨의 평가에 대해 마찬가지이지만, 신체 능력과 기량만큼은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약물 중독과 수감으로 몰락하기 전까진 무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헤비급의 체중에 라이트급의 스피드, 폭발적인 펀치력, 유연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체중이동은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의 영역이다. 여기에 경기력을 받쳐주는 스타성과 미국 팬들의 지지를 받는 헤비급 복서라는 상품성 면에서도 타이슨 이후 수십년간 이에 근접한 복서가 플로이드 메이웨더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 때, 타이슨의 경력 전체가 언급되지는 않지만 타이슨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된다.[25]
마이크 타이슨의 진정한 필살기였던 디펜스 스킬

복싱 역사상 강력한 챔피언은 여럿 있지만 그처럼 센세이셔널한 인물은 없어, 아직도 호사가들이 최강 논쟁을 벌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타이슨의 강점은 양훅의 파괴력은 물론 전무후무한 수준의 빠른 전진스텝 그리고 정말 뛰어난 헤드슬립과 위빙, 페인팅, 풋웍 등 헤비급 언더사이즈 스워머라는 전형으로 놓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인파이팅에 있다. 인파이터라면 당연히 맷집에 뛰어나겠거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위압감 이전에 거의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타이슨은 일반적인 헤비급 선수들과는 플레이 방식이 전혀 달랐는데, 110kg에 가까운 육중한 체중에도 불구하고 기계체조 선수처럼 유연한 몸과 빠른 스피드를 필두로 주먹을 피하는 모습은 마치 가벼운 라이트급 선수를 연상케한다. 허리와 등근육을 사용해 상체 전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상대방의 잽을 모두 피해내는 슈퍼플레이는 전성기 그의 주특기였다. 당장 맨 위 움짤을 보면, 자기보다 큰 상대의 펀치를 바닥에 기는 수준의 낮은 위빙으로 절묘하게 피한다. 정타가 안들어가니 그걸 무리해서 따라가려는 상대는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지치고 방어가 허술해지는 틈을 노린 카운터를 맞고 쓰러지는 것이다.

그를 상대한 대부분의 장신 헤비급 복서들은 당연히 타이슨보다 리치가 길다 보니 잽으로 찔러넣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느긋하게 아웃복싱하려 했지만 타이슨은 종전의 스워머 인파이터와는 달리 멈춰서 잽을 보거나 막지 않고 경지에 오른 헤드슬립[26]으로 그냥 잽을 흘려버린 뒤 들이대면서 원투를 치는 선수였기에 헤비급의 평범한 빅맨 아웃복서들은 타이슨의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가진 러시에 어어 하다가 후드려맞고 추풍낙엽처럼 완파당했다. 이러한 장점은 WBC 챔피언이었던 트레버 버빅과의 시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빅맨들이 즐비한 헤비급에서 타이슨처럼 엄청나게 빠른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경우는 정말 드물다. 다른 헤비급 복서보다 같은 시간에 한두 스텝은 더 밟을 정도니 미들급에서도 나오지 않는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것으로, 천부적 재능의 영역이다. 거기다 작은 키에 비해 힘이 좋고 작은 덕에 펀치를 항상 올려치는 궤도였기 때문에 막아도 가드가 들리고 맞으면 턱이 들렸다. vs 토니 터커[27] 경기를 보면 터커와 타이슨이 잽싸움을 벌이는데, 타이슨의 잽이 터커에게 먼저 닿는다(...). 타이슨의 리치와 터커의 리치는 26cm가 차이난다. 그정도로 독보적이고 당시 헤비급의 트렌드에 강렬한 한방을 먹인 복서였다.

미완성 복서로서는 사상 최강이었음이 확실하기에 팬들은 만약 복서로서 완성 되었다면 권투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들 얘기하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 하지만 프로복서로써 스타성 하나는 대단해서 복귀 후엔 90년대 당시 경기당 평균 대전료가 3000만 달러가 넘었고 홀리필드전에선 한 경기 대전료가 5000만 달러를 넘겼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흉폭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빨도 대단해서 당시 엄청난 팬과 안티들을 몰고 다녔다. 인터뷰에서 '공개 자위를 해도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꽉 채울 수 있다'고 장담했을 정도다.

아무튼 상기한 카리스마적, 문제아적 행보로 오스카 델라 호야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복싱계 최고의 아이콘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링을 떠난 뒤 헤비급의 흥행력은 비탈리 클리츠코와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라는 두 거성이 주도하는 유럽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동시에 멕시칸 복서들의 주 무대인 라이트, 웰터, 미들급 등 경중량급이 미국 복싱계 대세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이크 타이슨은 작은 신장을 빼면 헤비급 답지 않게 원투 펀치나 연타력이 구사력이 경량급 엘리트복서보다도 더욱 부드러웠다. 공격일변도도 아니며 방어와 회피에도 신경을 쓰고 신체능력에 의존하는 헤비급 복서들과 달리 영리하고도 맞지 않는 지능적인 복싱을 구사했으며 이미 15살에 커스 다마토가 "기술적으로는 가르칠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재능이 엄청났다.

2020년에는 에미넴의 Godzilla 뮤비에서 닥터 드레와 함께 까메오로 등장했는데,에미넴 얼굴에 핵주먹을 날리고 미안하다면서 F*ck!을 시전한다.

9. 기타

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벌금을 물었던 적이 있고 그 외에도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수차례 약물을 한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본인 말로는 "싸움의 역사는 약물의 역사"라나 여기서 약물 루머가 퍼졌는데 여기서 약물이라는 말은 스테로이드 계열이 아닌 마약을 뜻한다. 물론 마약류도 경기 퍼포먼스를 향상시켜 주기에 금지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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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목 둘레는 무려 약 52cm였다.[28] [29]

1980년대 후반 마이클 잭슨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타이슨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장난식으로 당시의 당황스러움과 섭섭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과는 두터운 사이였다.링크 구글에 mike tyson michael jackson 검색해보면 타이슨이 잭슨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있다.

브래드 피트가 무명 시절에 타이슨의 전처와 데이트를 했다가 그에게 폭행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빵발아저씨를 영영 볼 수 없을 뻔했다.이때 타이슨과 그의 전처인 로빈 기븐스는 이미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였으나, 이혼하고도 교류는 있었던 것.[30]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시즌8 16화에서 타이슨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우연히 지나가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부드러운 남자로 나온다.

록키 발보아의 기획 단계에서 주인공 록키의 시합 상대로 고려되었고 타이슨 본인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실베스타 스탤론이 보기에 아무리 촬영이더라도 타이슨의 주먹에 맞으면 위험할 거 같아서 무산되었다.

2009년 행오버와 2011년 행오버 2편에서 본인으로 카메오 출연하였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3년에 개봉한 실베스터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의 주연인 영화 그루지 매치에도 카메오로 출연을 하였다. 그루지 매치가 앙숙이었던 두 복서가 30년 만에 재경기를 한다는 내용인데, 영화가 끝나고 경기 매니저가 마이클 타이슨과 홀리필드를 불러서 재경기를 시키려고 설득을 한다(...).

2017년 영화 세일즈맨의 전설(China Salesman)에서 스티븐 시걸을 상대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상대편 선수의 어깨를 물어 뜯은 수아레스에 대해서 열정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개드립으로 옹호한 것은 아니고 "한순간의 열정과 뜨거운 피, 진정한 경쟁의식 때문"이라면서 "그런 순간이 엄습할 때면 우리는 진짜 경쟁적으로 변하고 나쁜 판단을 내리곤 한다"라는 발언에서 보듯이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해설한 것에 가깝다.

같은해 2014년에 어느 라이브 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타이슨의 성폭행 전과 기록에 대해 거론하자 진행자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후반에는 진행자가 겁먹어서 타이슨 눈길도 피하고 말도 더듬었다.맹수가 눈앞에 있는데 그럴 만도 할 듯 보러가기(한글번역판)[31]

어덜트 스윔에서 타이슨을 주연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나왔다. 타이슨의 수양딸로 한국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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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팬으로 알려져 있다.[32] WWF 레슬매니아 14 시즌 무렵 WWF에 얼굴을 들이밀었고 스티브 오스틴은 타이슨에게 뻐큐를 날린 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빈스 맥마흔을 신경쓰면 지는 거다 원래는 좀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을 계획이었으나, 레슬매니아 무대에서 특별 심판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 그래도 나름 애티튜드 시대 WWEWCW에 전면적인 반격을 시작할 무렵을 이야기할 때 빼먹으면 서운한 인물. 그래서 그 때의 공로로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당시에 오스틴과 사석에서도 같이 다녔는데, 오스틴은 복싱 팬이고 타이슨은 프로레슬링 팬이라 서로 즐겁게 지냈다고. 오스틴은 자서전에서 타이슨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그리고 스톤 콜드인데 타이슨은 계속 콜드 스톤이라고 불렀다 하고, 스톤 콜드라고 얘기를 해도 계속 콜드 스톤으로 불렀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팬이라서 그런지 메이웨더가 빅 쇼레슬매니아에서 이겼을 때 "이건 아니다"라고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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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영화인 엽문 3에 암흑가 보스 프랭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작중에서 견자단과 결투씬을 선보였는데[33][34], 이 결투씬 자체가 영화의 명장면으로 평가받는 데다가 타이슨과 견자단이 각각 바이슨페이롱(혹은 )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패러디되기도 한다. 화려한 액션과 더불어 영화 내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위빙 더킹’ 을 완벽하게 구현해내 그의 캐릭터성을 높이는 데도 일조했다.

2017년,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와의 대결이 성사되자 "권투와 종합 격투기는 다른 종목이다.", "권투 규칙으로 대결을 성사시킨 것은 맥그리거의 실수다.", "메이웨더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KO로 질 것이다."라고 혹평했으나, 막상 경기 당일 맥그리거가 의외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경기 후 러다오 방송 인터뷰에서 "맥그리거는 잘 싸웠다. 등급을 매기자면 A를 주겠다. 단 한 번도 프로 권투 시합을 해 본 적이 없는데도 10회전까지 버티다니 대단하다."고 재평가했다. 그리고 "주심이 경기를 너무 빨리 중단시켰다. 그는 맥그리거가 쓰러질 때까지 경기를 계속 진행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인터뷰 링크

연쇄 살인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알고서 한 것은 아니고 연쇄 살인자[35]가 스포츠 기자라고 하고 타이슨과 인터뷰 한 것. 인터뷰 후 2, 3일 후에 스왓팀 같은 경찰들이 체육관을 둘러 싸고 있기에 확인해 보고 나서야 자신이 연쇄 살인자와 인터뷰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

실제사실인지는 모르나 고릴라와 싸울뻔한 적이 있다.#[36]

브록 레스너처럼 덩치와 그 생김새와는 다르게 뜻밖에도 고음의 목소리를 가졌다.

10. 타이슨의 패러디

더 파이팅마쿠노우치 잇뽀는 타이슨이 가진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차용한 캐릭터다. 파이팅 스타일도 비슷하며 일보 역시 타이슨을 롤 모델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커스 다마토와 타이슨의 관계는 압천 관장과 일보의 관계와 많이 닮아있다.

심슨에 나오는 트레드릭 테이텀은 타이슨의 패러디. 매니저인 루시우스는 타이슨의 프로모터인 돈 킹을 모델로 했다. 해댄 전적은 엄마를 계단에 밀어트린 게 전부라 타이슨보다는 업보가 적지만. 극장판에선 아무도 안 볼 때 하반신 부분을 연타해대는 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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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나타났다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이크 바이슨의 모티브가 바로 마이크 타이슨이다.


마이크 바이슨의 테마곡과 타이슨의 경기 장면을 합친 패러디 영상. 타격음이 어색하지 않다 펄펙

스트리트 파이터 2칙칙이 마이크 바이슨도 타이슨을 패러디한 캐릭터이다.[37] 이름부터 사실 마이크 타이슨의 적절한 변형[38].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식한 악역이라는 컨셉에 타이슨을 연상시킬 요소가 너무 지나치게 많았던 탓에(이름, 흑인남, 복서, 너무 힘이 셈, 폭력을 남발해서 문제가 됨, 초상권 등[39]) 이후 대대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외수판에서 베가, 발로그와 서로 이름이 바뀌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40] 타이슨의 선풍적 인기와 스트리트 파이터의 흥행 덕에 웬만한 격투 게임의 흑인 복서캐릭터들은 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랑전설마이클 맥스가 대표적.

바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언 마이클 역시도 그의 패러디인데, 여기에서는 꽤나 대우가 안 좋다. 오토바이 몰고 다니는 폭주족이랑 난타전을 벌이다가 매니저가 복서로서 미래를 걱정하여 강제로 판정패를 당하지 않나, 교도소 3인방 콤비 파이터들에게 떡실신을 당하지 않나...여러모로 안습하다. 이렇게 요약하고 보면 안습인 장면이지만, 실상은 대결하는 두 명 다 멋지게 그려지는 명승부였다. 하드코어한 면만 두고 보면 바키 시리즈 중에 가장 훌륭했다.

수라의 문 3부에서 아리오스 킬레인과 그의 스승의 과거사는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의 관계과 비슷했다. 후에 매니저가 되는 남자도 완전 돈 킹과 판박이. 다른 점이라면 외견은 당연히 다르고[41] 스승이 사망했을 때 타락하지 않고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했다.

무서운 영화 4편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패러디한 장면에서 타이슨을 패러디한 인물이 나온다. 권투 경기 중에 닥치는 대로 귀를 물어뜯어 뱉어 죽이는 괴인.

로쿠데나시 블루스의 주인공 마에다 타이슨은 프로레슬러 마에다 아키라와 마이크 타이슨 이름을 합친 것.

11. 관련 문서

  •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 아웃!! - 처음으로 마이크 타이슨이 등장한 게임으로 최종보스로 나오는데, 난이도가 정말 흉악하기로 악명 높다. 하지만 더글러스 전에서 지고 난 뒤 얄짤없이 짤렸다(...) 마이크타이슨 본인이 직접 최종보스전을 시도했는데 본인이 본인한테 깨졌다..
  • 루이스 수아레스 - 핵이빨 사건 참조(...).
  • 커스 다마토 - 타이슨의 스승이자 아버지.
  • 마이클 잭슨 - 실제로 엄청 친한 사이였다고... 구글에 mike tyson michael jackson 치면 둘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타이슨도 시간나면 마이클 잭슨 콘서트를 자주 보러갔다고....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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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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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링 매거진 선정 올해의 선수
마빈 해글러 & 도널드 커리 마이크 타이슨 에반더 홀리필드
파일:ringmaga.png
1988년 링 매거진 선정 올해의 선수
에반더 홀리필드 마이크 타이슨 퍼넬 휘태커

[1] 저녁 신장이 정확히 5피트 10.1인치 = 178.2cm이다. 기상직후의 신장은 180cm 정도 #[2] 평소체중은 단신임에도 세계 해비급에서도 많이 나가는 편이었다.[3] The Iron과 함께 타이슨을 대표하는 별명. 구글에 The Baddest Man on the Planet을 검색하면 마이크 타이슨의 프로필이 뜰 정도로 유명한 별명이다. 국내에선 '핵주먹'핵이빨이란 별명이 있다. 후에 종합격투기 선수 론다 로우지크리스 사이보그가 성별만 바꿔서 그대로 별명으로 사용했다.[4] 실제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Then, like a rat, they stop in fear and freeze."(누구나 한방 맞기 전까지는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방 맞은 뒤에는, 쥐새끼처럼 공포에 질려 얼어붙고 만다.) 이는 독일군의 야전원수 헬무트 폰 몰트케의 유명한 어록, 'Kein Plan überlebt die erste feindberührung.'(적과 마주치는 순간 이전에 준비했던 모든 계획은 휴지조각이 된다.)에서 따온 것이다.[5] 38전째 더글라스와의 대결에서 처음 패배.[6] 이건 데니스 로드먼의 일화와 혼동된 듯하다.[7] 사실 미국 빈민가의 불량청소년은 고작 동네 아이들 삥이나 뜯고 각목으로 패싸움이나 하는 한국과 차원이 다르다. 흉기나 마약을 구하기가 비교적 쉬워 학교 다니며 마약상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살인이나 강도같은 강력범죄도 종종 일어난다. 게다가 이런 범죄는 단체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령 유약한 아이라고 해도 휘말려드는 경우가 많다. 그랜 토리노에서 이민자 가정의 소년 타오는 착하고 순한 아이지만, 동네 양아치들의 부추김과 협박 때문에 자동차 절도를 하려고 했다. 다행히 차 주인인 주인공 월트와 관계를 구축하면서 양아치들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저들과 같이 몰려다니며 (억지로) 절도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즉, 설령 타이슨이 본인 말대로 유약한 아이가 맞았어도 억지로 범죄를 같이 저질러 저렇게 체포가 많이 된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8]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열하자면, 타이슨은 알리가 소년원에 강의 온 것을 보고 호기심에 복싱을 배우겠다고 스튜어트에게 간청해서 스튜어트는 행동을 똑바로 해야 가르쳐 준다는 조건을 걸고 가르쳐 주게 된다. 그 후에 타이슨이 스튜어트에게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스튜어트는 프로 복서의 내공으로 타이슨을 떡으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타이슨이 끝까지 달려드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스튜어트가 다마토에게 데려다 주게 된 것이다.[9] 타이슨이 16살 때 어머니를 잃자,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면서 이끌어주었고 당시 타이슨을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이슨의 어머니는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을 돌보면 사람 구실은 하고 살 거란 희망을 가지고 타이슨을 맡겼으며, 타이슨 역시 자신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가족을 버린 건달인 친부보다 커스 다마토를 아버지로 따랐다.[10] 마이크 타이슨은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고 크게 상심했다.[11]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대환의 6부작 칼럼 참조. 아름다운 사제지간.[12] 일단 지미 제이콥스는 타이슨의 '서양식 친구'이자 사실상 대부, 즉 다마토 다음으로 타이슨을 잘 조절했고, 루니는 타이슨의 장점을 최대한 녹슬지 않게 연마해 주었다. 하지만 돈킹, 기븐스와 얽히기 시작하고, 88년 3월에 제이콥스가 죽고, 루니까지 주변의 농간에 의해 반강제 해고 당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자 타이슨은 재능이 급속히 추락했다. 실제로 90년도 2월 경기를 가지기 전 스파링을 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타이슨이 카운터 맞고 다운되는 동영상이었다. 마이크 타이슨 스파링 도중 다운.[13] 당시 제임스는 진짜 '떡밥'이었다. 실제로 타이슨을 역전 KO로 이긴 다음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1차 방어전에서 3R KO를 당하고 타이틀을 바로 반납하였다.[14] 이전 서술에 징역 3년이라 기록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징역 6년을 선고받고 3년만에 가석방된 거였다. 재판에서도 타이슨은 범행을 부정하였고, 타이슨의 변호사는 호텔에서 나와 병원으로 찾아간 피해자를 진단한 응급실 의사의 진단서와 범행시간 이후 피해자의 행동들을 지적하며, 주장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성폭행 이후 타이슨은 방송이나 미디어 매체에 다시 출연해서 다른 모든 잘못은 자기가 저질렀으나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죄 만큼은 절대로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5] 그 무렵에 타이슨 비슷한 모델이 권투 선수 차림으로 나와 어느 특정 회사 가방을 물어뜯는데, 핵이빨에도 끄떡 없다던 광고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애플 로고처럼 물어뜯긴 귀 모양의 초콜렛이 나온 건 덤. 이건 홀리필드의 굴욕인데...[16] 대니 윌리엄스전 때는 한창 다시 정신 차린답시고(사실 파산해서 돈 벌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파퀴의 코치인 프레디 로치를 영입해서 한창 훈련 중이었다. 그러나 너무 몰아치는 바람에 무릎 인대가 찢어졌고, 결국 역전패한다. 그 후에 몇 달간 휠체어 타고 지냈었다고 한다.[17] 어느 파파라치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돈을 그야말로 물 쓰듯 펑펑 쓰던 걸 봐서 머지않아 망한다고 예상했는데 이게 맞아떨어졌다(...).[18] 전처 이름이 로빈 기븐스이다.[19] Andrew Golota. 2000년도 타이슨과의 매치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기권패한 폴란드 선수.[20] 단, 어디까지나 라이트헤비급 시절에 나이도 최소 20~30줄이었던 전성기 기준. 헤비급으로 올라가서 노쇠하기까지 한 이후는 쳐주지 않는다.[21] 공동 11위[22]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홀리필드-루이스가 타이슨보다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었다.[23]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복싱은 보수성이 심해서 1960년대 이전 선수들에 대한 고평가가 상당하다.[24] 여담이지만 해당 투표는 크게 트레이너/언론인/프로모터/복싱 역사가로 분류되어 실시되었는데, 의외로 복싱역사가들에게 가장 높은 순위인 7위를 기록했다. 이는 8위였던 포먼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25] 야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페드로 마르티네즈,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호나우지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대 최고를 논할 때 그들의 리즈 시절이 반드시 언급된다는 점, 역대 최강을 논할 만한 전성기 포스에 비해 약간 손색이 있지만 통산 전적으로 따져도 충분히 역대급 선수라는 점, 불리한 체격조건을 극복하고 레전드급 선수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동시대 선수들 중 스타성과 상품성 면에서 압도적 우위라는 점 등 종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면이 많은 편. 이외에도 호나우두와도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다.[26] 머리만 살짝 돌려서 잽을 무력화하는 방법. 만화에나 나오는 종잇장 한 장 차이로 피하는 수준의 반응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의 V-ism 코디 트래버스의 회피를 현실에서 쓴다고 생각하면 적절하다.[27] 레녹스 루이스 전 세대 아웃복서, 전 IBF 챔피언. 타이슨과 경기 당시 34전 34승 29KO의 전적을 가지고 있었음. 타이슨과 경기를 가지고 1패를 적립한 후 90년도에 복귀, 하지만 15파운드가 쪄버리는 바람에 예전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28] 목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29] 타이슨만 하는 건 아니다... 원래 레슬링에서도 넥 브릿지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 복서들도 낙아웃으로 부터 보호하려고 목 근육 운동 많이한다[30] 2012년 12월 야후스포츠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로빈 기븐스와 이혼소송 중에도 수시로 성관계를 맺곤 했다고 한다. 로빈 기븐스가 자신 외에 브래드 피트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로는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31] 근데 이건 진행자의 말투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막에는 "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신 적이 있는데요."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 발언은 "We know you're a convicted rapist."였다. 직역하면 "우리는 당신이 유죄 판결을 받은 강간범인 걸 압니다."가 되고, 문맥에 맞게 해석하면 "당신은 유죄 판결을 받은 강간범인데요."가 된다. 즉 단순히 타이슨의 성폭행 전과 기록에 대해 거론한 것을 넘어 대놓고 타이슨을 강간범이라 칭한 것이다. 진행자가 생방송에서 대놓고 자신의 범죄 전과, 특히 성폭행 전과를 들먹이는데 그걸 달갑게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어디에 존재할까? 거기다 타이슨은 과거 이사건 이후로 크고작은 않좋은 일들이 계속 꼬였던 적이 있어서 최소 이부분에 한해선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진행자가 특정한 범죄 사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그 대신 "당신은 과거에 여러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You've done some bad things in the past.)"라고 말하는 정도로 끝냈다면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험악하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32] 특히 WWE 2대 월드 챔피언이자 최장기 챔피언인 브루노 삼마르티노의 팬이라고 한다.[33] 체격차가 워낙 엄청나서 엽문은 프랭크의 펀치를 막을 때마다 뒤로 쭉쭉 밀린다(...). 심지어 발차기를 날리는데 도리어 엽문이 튕겨나가고 막은 프랭크가 전진하는 무시무시한 상황. 그래도 기술과 속도로 메우긴 하지만 프랭크가 조금 더 우세.[34] 이거 찍다가 NG가 났는데 타이슨이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 잘못하면 견자단을 KO 시킬 뻔했다. 마이크 타이슨도 자기도 모르게 나간 주먹에 놀랐을 정도. 다행히 견자단도 무술가이기에 피했지만,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을 느꼈다고. 영상은 여길 참조(바쁜 사람은 1분 58초부터)[35] 이름은 데일 하우저이며 별명은 '아리조나의 베이스라인 슈터'인 듯하다. 진행자도 별명을 듣자마자 놀란 듯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36] 물론 고릴라는 악력만 326kg으로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기때문에 마이크 타이슨이라도 고릴라에게 덤벼들었던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것이다.[37] 사실 스트리트 파이터 1에 나온 복서 마이크도 타이슨의 패러디이다. 2편에서 사천왕으로 나온 복서와는 동일인물이 아닌 복서라는 것을 제외하면 전혀 다른 인물이다.[38] M은 마이크의 약자.[39] 예외인 건 바이슨은 거한이지만 실제 타이슨은 작은 체격이었다는 점. 그리고 바이슨은 노안이다.그리고 바이슨은 모으기 캐릭터지만 타이슨은 러시형 파이터라는 것. 그런데 바이슨은 기술들이 죄다 모으기 커맨드인 주제에 주제에 러시 플레이가 주가 되는 캐릭터이다. 이건 뭐...[40] 그러나 마이크 타이슨과 관련된 초상권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상의 착오로 변경 되었다는 썰도 있다.[41] 신체적으로 키가 작고 리치도 짧은 편이었던 마이크 타이슨과 달리 아리오스 킬레인은 작중 헤비급으로서 모든 것이 완벽 그 자체다. 무술의 업 그 자체인 무츠 야쿠모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복싱룰로는 절대로 이기는 게 불가능한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