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1:33:38

WCW

북미 프로레슬링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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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WWF 인베이전
시절에 쓰던 단체마크

World Championship Wrestling

1. 개요2. 역사3. 프로그램 목록4. PPV
4.1. 기타 PPV
5. 챔피언 타이틀 목록
5.1. WCW 트리플크라운 달성자
5.1.1. 트리플 크라운 후보였던 선수들
5.1.1.1. 트리플 크라운 예비 후보였던 선수들
5.2. WCW 그랜드슬램 달성자
5.2.1. 그랜드슬램 후보였던 선수들
5.2.1.1. 그랜드슬램 예비 후보였던 선수들
6. 평가
6.1. 장점6.2. 단점
7. 몰락의 원인
7.1. 에릭 비숍의 시대 착오적 마인드7.2. 새로운 메인 이벤터 발굴의 미약 및 세대교체를 하지 못함7.3. 내부 정치 문제
7.3.1. 비숍의 전횡7.3.2. 도를 넘어선 이너서클 선수들의 행태
8. 여담9. WCW를 거친 레슬러들10. 역대 별점 5성 이상 경기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 타임워너(현 워너미디어) 계열 프로레슬링 단체.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까지 WWF(현재의 WWE)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한때 시청률에서 WWF를 앞서기도 했다.[1] 하지만 후술할 과도한 친목질 등으로 인해 WWF(현 WWE)에 흡수합병되었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WCW/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프로그램 목록

  • 새러데이 나잇 (1971~2000) - 원래는 GCW-WCW로 이어져 왔으나, 1992년부터 새러데이 나잇으로 바뀌었다.
  • 베스트 오브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1973~1987) - GCW의 경기를 다시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방영했다.
  • 월드와이드 (1975~2001)
  • 프로 (1985~1998)
  • 메인 이벤트 (1988~1998) - WWF의 새레데이 나잇 메인 이벤트에 대항하기 위한 프로그램.
  • 파워 아워 (1989~1994)
  • 클래시 오브 챔피언스 (1988~1997) - 매년 여러 차례 열렸던 PPV. 비슷한 시기의 WWF 인 유어 하우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먼데이 나이트로 (1995~2001) - WCW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 에릭 비숍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WWF의 먼데이 나잇 로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고[2] RAW와 같은 시간에 맞불 편성되었다. 이름에서 보이듯 대놓고 RAW를 저격하여 쓰러뜨리기 위해 야심차게 출범한 프로그램으로 나이트로와 로우의 시청률 경쟁은 '먼데이 나이트 워'라고 불리웠던 프로레슬링 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nWo가 흥하던 시절엔 WCW 먼데이 나이트로가 아니라 nWo 먼데이 나이트로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iTV를 통해 메이저리그 오프시즌마다[3] 방영한 적이 있다.
  • 프라임 (1995~1997) - 미드카더들이 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
  • 썬더 (1998~2001) - 나이트로에 이은 두번째 TV쇼 브랜드로 매주 목요일에 방영했다. WWF 스맥다운의 대척점에 있었던 프로그램.

4. PPV

NWA 시절부터 역사가 이어진 스타케이드가 WCW에서 레슬매니아격의 이벤트였다. 역대 PPV 구매율 역시 스타케이드가 1위는 물론, TOP10에 가장 많은 이벤트를 올렸다. 하지만,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 배쉬 앳 더 비치, 할로윈 해복, 슈퍼브롤이 WCW의 전성기에도 스타케이드보다 높은 PPV 구매율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위상 자체는 레슬매니아만큼 단체 내에서 확고한 수준은 아니었다. 레딧 등의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4대 PPV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기본적으로 스타케이드를 1순위로 뽑으며, 그외에 할로윈 해복과 배쉬 앳 더 비치를 뽑는 팬들이 다수다.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는 스타케이드와 양대 PPV로 뽑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대 PPV로도 뽑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WCW 초창기에는 스타케이드보다 PPV 구매율이 높게 나오기도 했지만 WCW 전성기에는 할로윈 해복의 PPV 구매율에도 밀리는가 하면 배쉬 앳 더 비치의 절반 수준인 구매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반면, 명성과 달리, 스타케이드와 비교될 정도로 높은 구매율을 기록한 슈퍼브롤을 4대 PPV로 평가하는 팬들도 많은 편이다. 월드 워 3는 WCW의 로얄럼블을 목표로 하였으나, 의외로 PPV 구매율은 위의 이벤트들보다 낮고 역사도 짧아서 언급되지 않는 편.
개최 시기 이벤트
1월 소울드 아웃(1997-2000)
신 (2001)
2월 시-타운 럼블 (1989)
레슬워 (1990~1991)
슈퍼브롤 (1992~2001)
3월 언센서드 (1995~2000)
그리드 (2001)
4월 스프링 스탬피드 (1994, 1997~2000)
5월 레슬워 (1989, 1992)
캐피탈 컴뱃 (1990)
슈퍼브롤 (1991)
슬램보리 (1993~2000)
6월 비치 블라스트 (1992)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시 (1995~2000)[4]
7월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시 (1991-1992)
비치 블라스트 (1993)
배쉬 앳 더 비치 (1994~2000)[5]
8월 호그 와일드 (1996)[6]
로드 와일드 (1997~1999)
뉴 블러드 라이징 (2000)
9월 폴 브롤 (1993~2000)
10월 할로윈 해벅 (1989~2000)
11월 배틀볼[7] (1993)
월드 워 3 (1995~1998)[8]
메이헴 (1999~2000)
12월 스타케이드 (1983~2000)[9]

WCW/역대 PPV

4.1. 기타 PPV

  • 벙크하우스 스탬피드 (1988)
  • WCW-신일본 슈퍼쇼 (1991~1993) - WCW와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교류전.
  • WCW-AAA 웬 월드 콜리드 (1994) - WCW와 멕시코 프로레슬링 단체 AAA와의 교류전.
  • 콜리션 인 코리아 (1995) - 미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유일하게 북한 평양에서 개최된 경기. 북한측에서는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 및 문화축전'이라고 했으며, 이 대회 역시 WCW와 신일본 간의 교류전이었다.
  • 밀레니엄 파이널 (2000)

5. 챔피언 타이틀 목록

5.1. WCW 트리플크라운 달성자

WCW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rowcolor=black,white> 릭 플레어
(Ric Flair)
렉스 루거
(Lex Luger)
스팅
(Sting)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Diamond Dallas Page)
골드버그
(Goldberg)
브렛 하트
(Bret Hart)
크리스 벤와
(Chris Benoit)
스캇 스타이너
(Scott Steiner)
부커 T
(Booker T)
총 9명


WCW도 WWE의 그랜드슬램처럼 메인 타이틀,세컨드 타이틀,서드 타이틀,태그팀 타이틀 4개의 벨트가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WWE의 그랜드슬램과 비슷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 릭 플레어 - WCW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1991년 1월 11일 하우스 쇼에서 초대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렉스 루거 - 1991년 7월 14일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에서 배리 위덤을 이기고 당시 공석이었던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스팅 - 1996년 1월 22일 나이트로에서 렉스 루거와 함께 할렘 히트(스티비 레이 & 부커 T)를 이기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 1999년 5월 31일 나이트로에서 뱀 뱀 비글로 & 크리스 캐넌과 함께 레이븐 & 페리 새턴을 이기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골드버그 - 1999년 12월 7일 썬더에서 브렛 하트와 함께 크레티브 컨트롤(제랄드 & 패트릭)을 이기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브렛 하트 - 양대 메이저 최초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1999년 12월 7일 썬더에서 골드버그와 함께 크레티브 컨트롤(제랄드 & 패트릭)을 이기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크리스 벤와 - 2000년 1월 16일 솔드 아웃에서 시드 비셔스를 이기고 당시 공석이었던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스캇 스타이너 - 2000년 11월 26일 메이헴에서 부커 T를 이기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부커 T - 2001년 3월 18일 그리드에서 릭 스타이너를 이기고 WCW U.S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5.1.1. 트리플 크라운 후보였던 선수들

타이틀을 하나만 더 획득하면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 가능했던 선수들만 적는다.
5.1.1.1. 트리플 크라운 예비 후보였던 선수들
타이틀을 하나만 더 획득하면 트리플 크라운 후보가 되는게 가능했던 선수들만 적는다.

5.2. WCW 그랜드슬램 달성자

WCW에서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은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월챔, US, 태그팀 타이틀 트리플 크라운만 인정되지만 트리플 크라운+TV타이틀을 딴 선수를 그랜드슬래머로 볼 수 있다.
WCW 그랜드슬램 달성자
<rowcolor=black,white> 릭 플레어
(Ric Flair)
스팅
(Sting)
렉스 루거
(Lex Luger)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Diamond Dallas Page)
크리스 벤와
(Chris Benoit)
스캇 스타이너
(Scott Steiner)
부커 T
(Booker T)
총 7 명
  • 릭 플레어 - WCW 최초의 그랜드슬래머. 1991년 1월 11일 하우스 쇼에서 초대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다.
  • 스팅 - 1996년 1월 22일 나이트로에서 렉스 루거와 함께 할렘 히트(스티비 레이 & 부커 T)를 이기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렉스 루거 - 1996년 2월 17일 라이브 이벤트에서 쟈니 B. 배드를 이기고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 1999년 5월 31일 나이트로에서 뱀 뱀 비글로 & 크리스 캐넌과 함께 레이븐 & 페리 새턴을 이기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면서 달성.
  • 크리스 벤와 - 2000년 1월 16일 솔드 아웃에서 시드 비셔스를 이기고 당시 공석이었던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스캇 스타이너 - 2000년 11월 26일 메이헴에서 부커 T를 이기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부커 T - 2001년 3월 18일 그리드에서 릭 스타이너를 이기고 WCW U.S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5.2.1. 그랜드슬램 후보였던 선수들

타이틀을 하나만 더 획득했으면 그랜드슬램 달성이 가능했던 선수들만 적는다.
5.2.1.1. 그랜드슬램 예비 후보였던 선수들
타이틀을 하나만 더 획득했으면 그랜드슬램 후보가 되는게 가능했던 선수들만 적는다.

6. 평가

6.1. 장점

WCW는 WWE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가지 발전을 선보였다. 테드 터너가 밀어주는 막강한 자금력이 투입되면서 WCW는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선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에피소드 시간을 두시간으로 늘린 것이었는데, 이는 한 위클리 쇼에 더 많은 레슬러들이 등장해 다양한 경기를 선보일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중에는 이게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한 해동안 방송하는 PPV 수도 과거의 WWE보다 많았으며 워 게임등의 독특한 기믹 매치,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의 활용[10], 나이트로에 이어 썬더라는 두번째 쇼를 방송[11][12], 그리고 매주마다 빅 매치급 경기[13]를 선보이는등 신선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에릭 비숍은 자신도 악덕 이사 기믹으로 등장했는데, 이는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빈스 맥마흔이 악덕 사장 기믹을 선보인 것보다 앞섰다.[14][15] 여기에 최고의 인기 스타들이었던 nWo는 그 전의 스테이블들과는 달리 정말로 단체를 장악하는 것 같아 보였기에 스토리 라인도 흥미있었다.[16] 거기다가 녹화가 아닌 라이브쇼로 방송했으니 현장감도 뛰어났다. 테드 터너의 자금력에 에릭 비숍의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WCW는 WWE를 앞서 갔었다. 에릭 비숍의 리더십과 인지도는 큰 무기 중 하나가 되어주었다. 그 이외에도 파워 플랜트라는 신인 양성소를 만들기도 했다.[17][18]

6.2. 단점

그러나 이런 장점들도 빛이 바랠 정도로 단점이 심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타리를 인수했을때의 워너 브라더스와 똑같이 해당 업계에 무지한 인사들이 높으신 분들이 되는 바람에 레알못들이 감놔라 배놔라 했던 것. 사장 및 임원진에 프로레슬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앉혔는데, 이 중에는 피자헛 경영진 출신이거나 변호사인 사람이 대다수였으며[19], 젊어서부터 레슬링 업계에서 일한 빈스 맥마흔과는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보니 초기에는 영 삽질을 거듭했다. 결국 부사장 에릭 비숍이 실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에릭 비숍은 처음에는 nWo라는 스테이블을 내놓아 WCW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곧 nWo의 성공에 취해서 몇년간 비슷비슷한 스토리만 계속 우려먹었는데, 첫등장 이후 nWo가 갈라지고 다시 붙고...이런 식으로 몇년을 끄니 처음에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계속 똑같은 스토리에 똑같은 캐릭터만 나오니 결국엔 지루해질 수 밖에 없었다.[20] 또, 에릭 비숍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입이라 당시 녹화 방송이던 RAW를 스포일링해서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는 것을 막는 부정행위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믹 폴리의 챔피언 등극을 비웃다가 오히려 시청률 역관광을 당하는 인과응보로 이어진다.[21] 거기다가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은 당시 뛰어난 기량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릭 비숍과 nWo 패거리는 그들을 들러리로만 보고 무시, 모욕했으며 크리스 제리코가 이런 대접을 못참고[22] WWE로 간 뒤[23] 래디컬즈[24][25]마저 건너가자 한창 WWE로 기울던 시청률이 더욱 넘어가기 시작한다. 케빈 내시등은 크루저웨이트를 난쟁이라 모욕하며[26] WWE로 가봤자 별 문제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문제는 관객들은 크루저웨이트 경기들을 매우 즐겼다는 것이다.[27] 따라서 자연히 크루저웨이트 계통의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던 스타들을 보기 위해 WWE로 채널을 돌렸다. 거기다가 WWE보다 빅맨우대가 더욱 심했는데, 이쪽은 아예 케빈 내쉬와 스캇 홀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서[28][29] 후배 레슬러들이 푸쉬를 받기 힘들게 되어있었다. 아예 WCW는 베테랑과 그외가 쓰는 락커룸이 분리되어 있었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기껏 브렛 하트를 데려왔더니만 에릭 비숍은 그를 어떻게 써야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등[30], 인사권의 문제는 심각했다.[31][32] 베테랑들의 텃세, 인사권의 문제, 실질적인 총책임자였던 에릭 비숍의 만용 등의 문제가 있던 WCW는 이를 바짝 쫓아온 WWE가 애티튜드 시대를 시작하고, 믹 폴리가 WWE 챔피언이 된 것을 WCW에서 조롱했다가 0.6의 시청율이 WWE로 옮겨간 뒤는 다시 역전할 힘을 내지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다.

더 멀리 갈 것 없이 WCW에서 쓸모없다고 방출시키거나 잡지 않았던 인재들이 WWE로 간뒤 대박을 터뜨렸다. 이런 인물들중에 언더테이커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트리플 H등이 있다.[33][34]

간단히 결론을 내리면, 사내정치(친목질)이 심화되면서 망조를 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지나친 연예인 게스트 스타 남용[35]에 미드카더들 푸대접, 한 명의 스타에만 매달리는 운영에 각본 조절권한에 의한 각본의 붕괴등도 큰 문제였다.[36]

빈스 맥마흔의 말년 시절 WWE도 WCW를 몰락으로 이끈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평이 많다.[37][38]

7. 몰락의 원인

7.1. 에릭 비숍의 시대 착오적 마인드

당시 WCW의 책임자였던 에릭 비숍의 마인드는 굉장히 프로레슬링에 모욕적이었는데 처음 부사장 취임했을 때는 그래도 크루저급을 끌어들여 큰 인기를 끄는데 일조했지만 WWF 출신의 헤비급들을 마구 영입하면서 이런 인기있던 레슬러들의 기회를 다 날려버렸다. 거기다 본인도 스타성 플레이어만 있으면 경기가 어떻든 흥행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실력 좋거나 잘만 키우면 차기 메인이벤터가 될만한 유망주인 선수들은 다 뒷전으로 밀어낸 다음 실력으론 정말 처참하기 그지 없는 노장들로만 메인 이벤트를 구성했었다.[39]

7.2. 새로운 메인 이벤터 발굴의 미약 및 세대교체를 하지 못함

파일:external/www.nerdly.co.uk/Nitro_Vol_2_DVD.jpg
과거 WCW의 메인 이벤터들을 한대 모은 DVD의 표지인데 사진에서 보면 선수들 가운데 그나마 어렸던게 골드버그였다. 골드버그는 66년 생으로 그가 한창 무적으로 군림하던 시기였던 98~99년은 겨우 30대 초반이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모두 40이 넘어간 노장들이었다.[40][41] 거기다 저들 가운데 DDP를 제외하면 이미 과거 NWA와 WWF에서 활약하던 즉, 관객들이 거진 20년 동안 봐 오던 사람들이었기에[42] 새로운 선수의 발굴이 없던 WCW는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더 락이라는 새로운 아이콘들을 배출한 WWF에게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43][44] 특히나 프로레슬러들한테 있어서 40살 이상의 나이는 이미 은퇴한 상태거나 현역이라 해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야할 나이라는걸 생각하면 이 당시 WCW는 차세대 메인이벤터 발굴 등의 세대교체를 해야할 상황에서 되려 내일 당장 은퇴 선언을 해도 이상할게 없을 나이대의 선수들 위주로 계속 밀고 나갔다. 결국 가령 WCW가 2001년에 망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존의 노장 선수들이 사망하거나 은퇴하게 되었으면 진작에 새로운 메인 이벤터 발굴 및 세대교체를 하지 못한 WCW가 과연 기존에 노장 선수들이 있었던 빈자리를 어떻게 메꿨을지 의문이며, 당장 2001년에 망하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망했을 확률이 높았고, 제때에 새로운 메인 이벤터 발굴 및 세대교체를 하지 못한 WCW가 언젠간 망하는건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노장들 위주로 밀고나가느라 성장할 기회를 놓친 유망주들을 그때가서 뒤늦게 키우려고 해도 이미 성장할 시기를 놓친 유망주들이라 성장하는데 한계가 컸을 확률이 높았던데다, 이 유망주들을 뒤늦게 키운다해서 무너져가는 WCW를 되살리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아래의 사내정치와 함께 '프로레슬링 쇼'에서 쇼에만 치중한 나머지 프로레슬링 부분을 등한시했다는 점이었다.[45] 에릭 비숍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프로레슬링 실력보다는 캐릭터를 중시한 나머지 노장 레슬러들만을 중용해서 한동안은 성공했었지만 사실 이게 성공한 이유는 nWo가 나오기 이전 WWF의 캐릭터성이라는 것이 유치찬란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46][47] 심지어는 스토리도 유치찬란한 것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브렛 하트가 해적 기믹인 장 피에르[48]라는 자신의 가죽 자켓을 훔쳐간 선수와 대립을 했던 것.[49] 그렇기 때문에 nWo의 성인지향 캐릭터가 대히트를 쳤지만 곧 WWF에서 스티브 오스틴이나 더 락, DX, 맨카인드, 언더테이커 & 케인 등 더 발전하고 다양한 캐릭터성에 레슬링에도 능한 선수들을 발굴해 냄으로서 역전당하게 된 것이었다.

7.3. 내부 정치 문제

뒤에서 중상모략과 정치 공작이 많았어요. 윗분들이 우리가 크는 걸 별로 원치 않았죠.
레이 미스테리오[50]

7.3.1. 비숍의 전횡

외부 말고도 WCW 내부에서도 문제가 여럿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것은 에릭 비숍릭 플레어의 대립이었다. 에릭 비숍이 집권하기 전까지 릭 플레어는 과거 NWA 시절부터 그 영향력을 발휘하며 WCW에서도 선수들 영입 등 여러 업무를 보곤 했는데 에릭 비숍은 그런 릭 플레어를 매우 싫어한 탓에 그와 툭하면 싸우곤 했고, 결국 릭 플레어가 회사에 통보하고 아들의 레슬링 경기를 보러 갔음에도 해고시켜 버린다.[51] 결국 이러한 처분으로 WCW 내부에서 릭 플레어를 따르던 젊은 선수들은 불안함과 불만이 높아졌고, 관객들 역시 오랜 시간 NWA-WCW를 지탱해오던 릭 플레어가 팽당했음을 알고, 불만을 표출했었다. 거기다 릭 플레어가 없는 동안 에릭 비숍은 폭주하다시피 하며 막장 운영을 했고, 이는 결국 에릭 비숍 본인이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원인이 된다.[52][53]

7.3.2. 도를 넘어선 이너서클 선수들의 행태

당시 선수들 가운데서도 오리지널 nWo 멤버인 헐리우드 호건, 케빈 내쉬, 스캇 홀은 백스테이지 권력을 꽉 잡고 있었는데 특히 헐리우드 호건은 자신이 벨트를 독점해야한다는 욕심으로 가득차서 벨트를 넘겨주더라도 자기랑 친한 선수들에게 넘겼으며 자기 친구들 이외의 선수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편 케빈 내쉬는 에릭 비숍의 옆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단행했는데 WCW 인기의 한 원인이었던 크루저급 선수들을 죄다 바닐라 난쟁이라 부르며 깎아내렸고, 자이언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빅 쇼가 자기 자리를 넘본다는 생각에 그를 밀어내 그가 WWF로 이적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된다. 거기다 당시부터 알아주는 알콜 중독자였던 스캇 홀은 쇼 당일에도 술에 잔뜩 취해서 온갖 사고를 다 쳤는데도 단지 저 둘의 친구라는 이유로 거금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고 회사에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54]

이런 먹튀 행태는 두번째 플래그십 쇼로 야심차게 런칭했던 썬더에 피해를 입혔는데 연봉 보장 계약이 된 메인급 선수들이 월요일 나이트로에는 멀쩡히 출연했다가 목요일 썬더 생방송에는 허위 진단서를 들이밀며 출전하지 않은 것. 결국 썬더는 로우 미드카터-자버들만 줄창 나올수 밖에 없었고 쇼의 실제 위상은 WWE의 히트보다 못한 위치였다.[55] WWE에서는 스맥다운에도 적극적으로 메인 선수들을 출전시켜 쇼의 위상을 끌어올리던 것과는 천지차이.[56]

또한 위에 언급된 릭 플레어 홀대는 비숍뿐만 아니라 이너 서클 안에서도 이뤄졌는데 케빈 내쉬는 릭 플레어를 내쫓고 그 봉급을 나눠먹자고 작당모의를 했으며 스캇 스타이너는 릭 플레어가 약속된 세그먼트를 하고 있음에도 나와 욕을 하며 슛을 하는 등 릭 플레어를 줄곧 위협했다.

뿐만 아니라 이너서클 안에서도 갈등이 발생하여 호건과 스캇 스타이너는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여 지금까지 서로 비방 중이고 후에 메인 각본가로 등장한 빈스 루소 역시 호건과 갈등을 일으켜 호건이 단체를 나가버렸다. 결국 이러한 것이 쌓이며 막장 중 막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호건은 이 점이 너무 심한데 기믹 중 그가 내놓는 코멘트만 봐도 자화자찬이 너무 과하다. "오늘날 프로레슬링이 이만큼 인기를 얻은 건 다 내덕이다"란 논지의 코멘트가 너무 많다. 물론 호건의 인기와 파급력이 강한 건 부인하지 않지만 너무나도 이 점을 강조한다는게 문제다. 특히 그가 턴힐 한 후, 헐리우드 호건 기믹을 시작하면서 이 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기믹이라 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57]

8. 여담

WCW를 멸망시킨 직후, 빈스는 여유를 찾았는지 또 한번 거대한 투자를 하는데 바로 XFL(...).

먼 훗날 헐크 호건에릭 비숍의 권력 행사 등의 전철을 TNA가 그대로 답습했고 똑같은 상황으로 망해가고 있다.

2013년에 WWE에서 DVD판매량 조사결과 1위는 WWE 레슬매니아 29였으나 2~4위까지는 WCW의 베스트 DVD가 상당한 판매량을 올리고있다. 인수되어 사라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워낙 좋은선수들이 거쳐간 단체라 아직까지도 팬들이 상당한 듯. 특히 WCW에서 큰인기를 누린 빌 골드버그의 DVD는 트리플 H의 DVD보다 2주 늦게 나왔음에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번쯤은 다시 복귀해야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에디 게레로, 크리스 제리코 등이 대놓고 WCW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깔 정도로 몇몇 베테랑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WCW라면 이를 가는 레슬러들도 꽤 있다. 브렛 하트크리스 벤와는 WCW를 보고 열정이 없는 곳이라고 깠으며 에디 게레로는 케빈 내쉬의 텃세 때문에 그가 있을 때가 가장 레슬링이 하기 싫었다고 얘기했다. 이 때문인지 이들은 WCW 출신임에도 WWE에서 챔피언까지 오르는 등 이적생 푸시를 어느정도 받았다.

반면 이후 2003년부터 2004년에 이르는 시기, 더 락과 스톤콜드가 실질적인 커리어 은퇴를 하자 각본 컨트롤 권한을 가진 트리플 H에볼루션을 앞세워 스캇 스타이너부터 부커 T, 케빈 내쉬에 이르기까지 전술한 선수들과 달리 WCW에서 메인이벤터로 군림했던 선수들을 속된 말로 아작내며 챔피언 장기집권을 이루어낸다.[58][59]끝판왕 골드버그도 결국 하우스 쇼에서 에볼루션 멤버들의 도움으로 패배시켰다. WCW 출신 메인이벤터들을 그야말로 삽으로 묻어 버린 그의 행보는 비록 데뷔는 WCW에서 했지만 찬밥신세로 1년만에 방출됐던 앙금과, 그 시절 WWF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간 WCW에 대한 작은 뒤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60] 이에 대한 연장선인지 WCW가 망한지 10년도 지나 이제 마지막 WCW 레전드로 남아있던 스팅이 WWE에 나타났을때 트리플 H와 대립하면서 트리플 H는 자신을 WWE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면서 WCW의 잔재인 스팅을 쓰러뜨리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WWF만의 팬들에게는 WCW의 메인이벤터들이 작살나는 것이 큰 선물이었을지 모르나 레슬링 팬들은 WCW의 스타들이 강력한 기믹을 유지하며 WWF의 간판들과 맞붙는 드림 매치를 원했던 것이지, 결코 예측가능한 진부하고 원사이드한 대립으로 상대를 아작내는 것을 보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상대가 WCW 존재 당시 결코 단체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라 할 수 없었던 트리플 H라는 것은 분명 코어 레슬링 팬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당시 WWE에서는 열혈 WWE 팬들의 WCW에 대한 거부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실 WWE에서는 WCW 선수들을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푸대접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원래 푸시를 주려고 해도 반응이 안 좋으면 계획을 취소하는 곳이 바로 WWE인데, 그만큼 WCW에 대한 WWE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디 보이즈의 자서전에 당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원래 WCW 침공 스토리는 WCW가 선역단체로 나올 계획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RAW에서 WCW 경기를 메인 이벤트로 넣어보는 실험을 감행했다. 바로 부커 T와 버프 배그웰의 경기였는데 반응은 정말 최악이었다고 한다. 관중들이 똘똘 뭉쳐서 야유와 악담을 퍼부었다면서 매트 하디가 선수생활 하면서 이렇게 적대적인 분위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빈스도 WWE 팬들이 그 정도로 WCW를 적대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며 그 경기 이후로 다들 걱정하기 시작하며 WCW를 악역단체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한다. 사실 WWE와 WCW의 단체의 사활을 건 대결을 겪어 온 충성도 높은 WWE팬들이 WCW 선수들이 침공해와 WWE를 초토화시키는 스토리를 좋아할 가능성은 낮았으며, 그래도 WWE 수뇌부는 WCW가 망했으니 '승자의 여유'로서, 혹은 '언더독 효과'를 노리고 시도해봤지만 반응은 처절할 정도로 냉담했고 적대적이었다. 충성도 높은 WWE 마니아들이 WCW 선수가 WWE 선수를 두들겨패는데 환호하며 열광하는 장면이 상상이 되는가. WCW를 지우고 WWE선수로 편입시키지 않는 한 거부감이 상당했다.[61][62]

당시 WCW의 메인이벤터들이 WCW의 강력한 기믹을 유지한 채로 드림매치를 펼치길 기대했던 것은 WWE와 WCW를 다 보던 양다리 팬층이었으며 WWE 열혈 팬들은 WCW는 선의의 경쟁단체로 여기지 않았기에 적대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을 모아두고 뉴욕 양키즈 간판 선수를 데려와서 환호해달라고 하는 격이었으니 반응이 어땠겠는가. 일반 메이저리그 팬과 보스턴 팬이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는 것처럼 당시 일반 레슬링 팬과 WWE 팬은 WCW에 대한 반응이 너무 달랐고 WWE는 WWE 팬들의 선호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단체다. 결국 WWE의 영웅이 WCW 메인이벤터들을 밟아버린 것은 무슨 유치한 뒤끝이라기보다는 WWE 열혈팬들이 보고 싶어했던 스토리가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매트 하디는 WCW의 침공으로 선수들도 혼란을 겪었다는데, 왜냐하면 WWE에서 선역이었든 악역이었든 그런 사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어 갑자기 모두 선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실제 당시 WWE 팬들은 WCW 선수에게는 무조건적인 야유, WWE 선수에게는 무조건적인 환호를 보냈었는데 사실 매트는 이때 WCW의 침공으로 자신이 구축해나가던 캐릭터와 입지가 퇴색되어 실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사실 알짜배기 WCW 출신들은[63] 스맥다운에서 WWE의 선수들과 잘 조합을 이루면서 스맥다운의 부흥을 이끄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RAW였는데 당시 WCW의 메인이벤터는 경기력이 저질인 막장 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WCW에서는 캐릭터빨이 먹혀서 버텼는데 실제 WCW는 nWo만 나오면 열광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WWE에서는 WCW의 캐릭터가 전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단점이 되어버린 상황이었기에 캐릭터 빼면 시체인 이들이 버틸 방도가 없었다. 경기력만 있었다면 적당한 캐릭터를 부여하여 써먹을 만한 요소가 있었겠지만[64] 사실 이들에게는 그런 경기력을 기대하기도 힘들었으니 WWE 팬들을 사로잡을 만한 무기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이들을 활용할 최선의 방법은 WCW를 화끈하게 밟아버리고 보내버리는 것 정도였는데, 사실 WWE 팬들이 WCW 선수들을 악역으로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스토리가 이미 뻔한 학살극이었기에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고 당시 시청률은 처참했다. 실제 그 후 WCW의 거물급들이 사라져도 판도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당시 WWE팬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경기력이 있던 WCW 선수들은 WWE에서도 푸쉬를 해주며 챔피언을 다 한 번씩 지내봤다.[65]

하디 보이즈의 자서전에는 트리플 H가 제프 하디에게 패하여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내주는 비화가 나오는데 원래 계획이 아니고 관중들의 반응으로 인해 급조된 스토리였다. 원래는 스톤콜드를 악역으로 전환시킬 희생양으로 트리플 H와 스톤콜드 VS 하디 보이즈의 대결이 펼쳐진 것이라고 한다. 스톤콜드가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잔인한 면을 보여 팬들의 분노를 사게끔 만들어 줄 희생양이 필요했기에 낙점되었던 것이고 실제 경기 후 여성인 리타에게도 무자비한 체어샷을 날리며 확실한 악역 전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 경기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각본 팀에서 이 스토리를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했고 트리플 H는 제프에게 패하는 각본까지 흔쾌히 허락해줬는데, 제프는 이에 대해 이 바닥에서 정상에 있는 선수가 어린 선수한테 져준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결정이 아니라며 감사를 표했다.[66] 당시 하디 보이즈는 관중들 반응이 우리 미래를 결정한다면서 관중들이 연호해주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대하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관중들의 반응을 중요시하는 WWE에서 WCW 선수들을 메인이벤트로 내세운 경기에서 관중들의 반응은 너무 끔찍했고 스토리고 드림매치고 나발이고 WCW를 내세우는건 덮어놓고 반대를 외치는 수준이었기에 WWE에서 WCW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WCW가 WWE에게 완패를 당한 시점에서 주관사였던 터너 네트워크는 프로레슬링에 완전히 관심을 끊고 손절하려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프로레슬링은 이제 한물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 WCW 주관 방송사였던 TNT와 TBS는 방송개편시 WCW를 폐지하고 이를 당시 크게 히트를 치던 드라마 방영으로 교체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으며 이를 WCW에게 통보했다. 에릭 비숍이 망해가던 WCW를 인수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꾸렸으나 터너 네트워크는 WCW를 판매하더라도 중계권은 안 산다고 못박아놓은 상황에서[67] 데드라인 이틀전에 WWE가 인수전에 치고들어와 순식간에 인수작업이 종료되었고 그렇게 마지막 나이트로를 끝으로 WCW는 문을 닫게 된다.

9. WCW를 거친 레슬러들

  • 말리아 호사카
  • 메이저 건스[69]
  • 스티브 맥마이클
  • 아시야
  • 이반 커레이저스
  • 제임스 반덴버그[71]
  • 타이그레스

10. 역대 별점 5성 이상 경기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선정 5성 경기
1989년 2월 20일
NWA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리키 스팀보트 vs 릭 플레어
1989년 4월 2일
클래시 오브 챔피언스 VI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리키 스팀보트 vs 릭 플레어
1989년 5월 7일
레슬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리키 스팀보트 vs 릭 플레어
1989년 11월 15일
클래시 오브 챔피언스 IX
I Quit 매치
테리 펑크 vs 릭 플레어
1991년 2월 24일
WCW 레슬워 1991
워 게임스 매치
브라이언 필먼 & 스팅 & 스타이너 브라더스 vs 래리 즈비스코 & 포 호스맨 (배리 윈덤 & 시드 비셔스 & 릭 플레어)
1992년 5월 17일
WCW 레슬워 1992
워 게임스 매치
배리 윈덤 & 더스틴 로즈 & 니키타 콜로프 & 리키 스팀보트 & 스팅 vs 안 앤더슨 & 뷰티풀 바비 & 래리 즈비스코 & 릭 루드 & 스티브 오스틴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선정 6성 경기
1989년 3월 18일
NWA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리키 스팀보트 vs 릭 플레어

11. 관련 문서

  • 파워 플랜트 - WCW 산하의 수련 단체.


[1] 물론 그게 헐크 호건, 케빈 내쉬, 그리고 스캇 홀의 nWo기믹 당시였다는게 옥의 티지만. .[2] 이름부터가 Monday Night RAW를 대놓고 따라하기 위해 NITRO라고 이름지었다. 빠르게 말하면 발음이 그냥 똑같아진다.[3] 1998~99년까진 부정기적으로 방영했다가 1999년 11월 19일부터 정기 방영.[4] NWA 시절부터 개최된 PPV로, 초창기에는 스타케이드보다 높은 PPV 구매율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WCW가 헐크 호건 등의 스타들을 영입하며 메이저 단체가 된 이후로는 예전만큼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했다. WWE에서 2004년에 부활한 바 있다.[5] 1996년 헐크 호건의 배신과 nWo의 결성으로 유명한 PPV. WWF 섬머슬램과 동급이었다. 2020년 상표권을 코디 로즈가 등록시켰고, AEW 다이너마이트 특집으로 부활한다.[6] 이 PPV의 메인 이벤트에서 헐크 호건이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에 스프레이로 nWo를 새기는 악행을 이룩한다. 1년 뒤에야 렉스 루거가 벨트를 탈환하는데 이 스프레이 흔적을 지우느라 엄청 고생했다고(...)[7] 스타케이드 1991, 1992에서 써먹은 배틀볼을 PPV로 독립.[8] WWE 로얄럼블과 동급이던 경기.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링이 총 3개라는 점. 그리고 참가하는 선수 역시 총 60명이다.[9] NWA 때부터 내려온 프로레슬링 최초의 PPV이자 WWF 레슬매니아와 쌍벽을 이루던 WCW 최대 PPV.[10] 특히 기이할 정도로 대단한 기량의 크루저웨이트 선수들이 한 시대에 활동했다.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 크리스 제리코등이 전부 WCW 출신이다. 이 외에도 루챠계에서 손꼽을만한 루챠도르들이 많이 WCW를 거쳐갔다.[11] 이에 맞서 WWE도 스맥다운을 시작하게 된다.[12] 사실 이 시점에서 에릭 비숍은 나이트로와 썬더를 나누어 현재 WWE가 실시하는 브랜드 익스텐션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nWo 로스터와 나머지 로스터로 분리할 생각을 하고있었던것. 아무리 에릭 비숍이라도 nWo만 나오는 쇼는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고.[13] 당시 WWE에선 위클리 쇼때는 메인 이벤터들이 자버만 상대할 뿐이었다. WCW에서 메인 이벤터들이 위클리 쇼에서도 서로 싸워댔다. 하지만 너무 자주 싸워대다보니 nWo처럼 신선함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지금 WWE에서 매주 슈퍼스타들이 붙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나, 당시엔 위클리 쇼에서는 슈퍼스타들이 자버를 상대로 자신의 주무기들을 선보이는 장이었는데, 자버를 상대로 원사이드한 경기를 보여주던 슈퍼스타들이 어느날 AFKN을 틀었는데 PPV가 열리고 시간은 무려 3시간에 강력함을 자랑하던 슈퍼스타들이 서로 붙어서 일방적인 경기가 아닌 서로 치고박고 싸운다는 것만으로 PPV의 가치는 엄청나게 높아보였다.[14] 그러나 현실감에 있어서는 맥마흔 vs 오스틴에 미치지 못했는데 실제 배경도 빈스 맥마흔이 금수저 집안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대기업으로 일으킨 억만장자였고 스티브 오스틴은 무명 시절부터 차근차근 산전수전 다 겪으며 지금의 위치에 오른 대기만성형 인물이었기에 일반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이 쉬웠다.[15] 그리고 사실 에릭 비숍은 어디까지나 nWo가 차지한 트로피이자 헐리우드 호건의 아바타 정도였지 빈스 맥마흔처럼 독자적인 캐릭터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장 빈스 맥마흔은 로얄럼블에 등장해서 우승하기까지 했는데 일개 경영인인 에릭 비숍에게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웠다.[16] 케빈 내쉬스캇 홀은 이전 WWF에서 메인 이벤터로 이름을 날리면서 WCW로 이적해 온 것이었는데다, 결정적으로 여기에 헐크 호건을 가세시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즉 초창기 멤버들이 ‘순혈’ WCW 레슬러들이 아닌 WWF ‘이적생 출신‘들이 만든 ’반란 조직‘들이었던셈. 게다가 이들은 피지컬 또한 엄청나서 이 셋 모두 2미터나 되는 거구들이었단 점에서도 엄청난 어드밴티지였다.[17] 여기를 거쳐간 선수로 골드버그, AJ 스타일스등이 있다. 의외로 밥 샙도 이곳에서 수련을 받았었다.[18] 다만 여기서는 선수들에게 기술을 굉장히 과격하게 걸도록 가르쳤기에 부상자가 많이 나오고 출신 레슬러들이 동업자 정신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워플랜트 출신 골드버그의 킥으로 피해를 본 브렛 하트 역시 이런 점을 비판하였다.[19] 주로 테드 터너의 앵무새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사장 자리에 앉았다. 말하자면 "...하랍신다."를 즐겨하는 아첨꾼들.[20] 비숍은 새로운 인력을 발굴, 육성해 스타로 키우기보다 기존의 슈퍼스타들을 이용, 다양한 방법으로 캐릭터를 개발하는 것에만 능한 인물이라 한계가 컸다.[21] 에릭 비숍과 WCW는 믹 폴리를 우습게 봤지만 당시의 믹 폴리는 원래 음울한 광기형 악역 캐릭터였던 맨카인드에 듀드 러브의 유쾌함을 가미하여 선역 전환한 덕에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WWF 입성 전에는 하드코어 전문 레슬러 정도로만 알려졌던, 실력은 있지만 정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타입의 레슬러였는데 WWF에 오면서 그 끼를 폭발시켰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동년배인 스티브 오스틴과도 비슷한 점이 있고 대니얼 브라이언나 딘 앰브로스 등과는 선배격이다. 또한 믹 폴리의 상징으로 유명한 미스터 삭코도 이때 등장하였다. 게다가 상대인 더 락은 말이 필요없는 슈퍼스타에다 직전의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선역으로 가는 척 하면서 빈스 맥마흔의 수하가 되는 뒤통수를 쳤기 때문에 스토리가 엄청나게 흥미진진했다. 거기에 믹 폴리는 이런 빈스 일가의 전횡에 의해 항상 시련을 겪으면서 시청자들과 팬들의 공감도 제대로 불러일으켰으며 일이 벌어진 당일, 믹 폴리가 챔피언이 되었던 경기만 해도 믹 폴리와 더 락 외에도 빈스 맥마흔과 꼬붕들, 거기에 디 제네레이션 엑스까지(이당시는 선역으로 트리플 H가 수장이었다.) 난입하며 후반 난장판이 됐을 때 몇 주간 부상으로 빠져있던 스티브 오스틴이 특유의 유리창 깨지는 걸로 시작하는 타이탄 트론과 함께 나타나 관중들을 전원 일어서게 만들며 열광시킨 엄청난 경기 끝에(이때는 아직 PG-13시대가 아니라서 의자로 머리를 내리치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쟁취한 승리였기에 그리 쉽게 비웃을 만한 경기가 결코 아니었다.[22] 자서전인 라이언즈 테일을 보면 스캇 홀과 충돌한 얘기등이 자주 나온다.[23] 거기다가 등장도 엄청나게 화려하게 등장하자 WCW에서 무시당하던 레슬러들이 자신들도 WWE로 가면 저런 대접을 받을 거라고 환상을 품게 되었다.[24]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페리 새턴, 딘 말렌코의 4인조 팀으로 절친한 관계이기도 했다.[25] 이 네 명과 제리코까지 합쳐 다섯 명(이들은 WCW가 망하지 직전인 1999~2000년대에 WWE로 이적했다.) 중 새턴은 WWE 적응에 실패했고 딘 말렝코는 나이가 좀 많은 데다가 크루즈웨이트 급이라 선수보다는 트레이너로서 주로 활동했지만(선수시절에는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이었고 트레이너로서도 매우 뛰어난 편이다. 텍사스 클로버리프나 크리플러 크로스페이스도 이 분이 개발한 기술로 벤와에게 전수시켜줬다.) 나머지 세 명은 WWE 챔피언까지 지냈다는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성공한 편이다. 오히려 나중에 WCW가 망하고 나서 WCW출신에 대한 WWE의 대우를 보면 이들은 줄을 아주 잘 선 셈이다. 이들보다 일찍 온 빅 쇼(폴 와이트)와 상기된 크리스 제리코도 마찬가지.[26] 이걸 나중에 케빈 내시가 WWE로 들어온 후 CM 펑크와의 대결구도때 펑크가 그대로 케빈 내쉬에게 인용해 까내렸다.[27] 그 이유는 바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내용과 아울러 가장 중요한 빠른 경기 진행속도란 점이었다. 덩치가 큰 빅맨들의 경기는 분명 파워풀하고 묵직한 임팩트를 보여줄 수 있지만 대신 거의 대부분 느릿느릿한 경기진행을 보이다 보니 경기가 늘어지는 부작용이 컸다. 거기다 케빈 내쉬같은 인간이라면 어떻게든 카메라 시간 좀 더 잡아먹겠다고 온갖 불필요한 오버액션은 해대고도 남는다. 반면 크루저웨이트는 그들의 장점인 단신과 이로 인해 날렵하고 신속한 동작과 움직임을 통한 여러가지 다양한 액션, 현란한 기술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그야말로 "경기를 볼 맛이" 났던것. 빅맨들의 묵직한 경기만 있는 것 보다는 테크니션과 플라이어 계통의 현란한 플레이의 조합도 필요했었다는 반증이다.[28] 제리코의 자서전에 따르면 스캇 홀은 제리코 등에게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 보러 오는 거니까, 니들은 대충 해라"라고 모욕했다고. 그러나 현실은 크루저웨이트 보러 온 사람도 많았다.[29] 여기에다 WWE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왕년의 슈퍼스타들보다 차세대 유망주들을 육성하려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하고 난 뒤 기성스타들이 WWE를 떠나게 되면서 공교롭게도 이를 받아들인곳이 WCW였던 것.[30] 처음 등장하고나서 브렛이 했던건 특별 심판이었다(...)[31] 빈스 맥마흔은 브렛 하트를 두고 그 혼자만으로도 프랜차이즈를 만들수 있으며 WCW가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건 자신에게 다행이었단 얘기를 했을 정도였다. 사실 빈스는 브렛이 WCW에 가기 전 결국 몬트리올 스크류잡으로 브렛의 타이틀을 잃게 만들 정도로 WCW를 경계했다.[32] 다만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브렛 하트보다는 그 이전에 여성 프로레슬러 메두사가 WCW에 등장해서 WWF의 챔피언 벨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공포를 느꼈던 빈스 맥마흔이 브렛 하트도 PPV가 끝나자마자(이 시점에서 이미 브렛은 WCW에 계약이 성립되었던 참이었다.) WWF 벨트를 들고 WCW에 등장해서 WWF 벨트를 모욕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33] 그래서 미국내의 레슬링 팬들, 특히 WCW의 열성팬들은 비숍이 오스틴을 내치지만 않았어도 WCW를 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다만 이건 비숍이 악의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오스틴이 워낙에 부상에 시달려 제대로 키워 볼 여지가 없었던 점도 있지만.[34] 스티브 오스틴이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한 건 WCW 퇴단 후 잠시 ECW에 가서 샌드맨 등을 참조하여 WWE에 가서 스톤콜드를 만들어낸 것이니 어쩔 수 없었고 언더테이커는 기믹이 대박을 친 경우로 완전 복불복이라 그렇다 쳐도(마크 컬러웨이는 WWE에 왔을 때 재능은 인정받긴 했으나 당시로서는 그리 이름난 선수는 아니었고 오히려 신인에 가까웠다.) 트리플 H같은 경우는 NWA의 제왕 루 테즈의 손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악역 중 하나인 킬러 코왈스키의 제자이기에 실질적으로 북부 프로레슬링 계보에서 성골 수준의 인물이었으니 이런 뒷배경으로 인지도를 통해 충분히 WCW에서 메인이벤터를 넘어 자신들의 슈퍼스타로 키워 볼 만한, 충분히 긁어서 좋은 결과를 뽑아낼 정도로 뛰어난 재목이었다. 즉, WCW의 프로레슬링에 대한 무지가 만든 인사참사였던 것.[35] 데니스 로드맨이야 선수시절부터 '악동'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nWo에 그를 붙힌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후는 그야말로 막장의 극치를 달렸다. 특히 더 가관인것은 로보캅이나 처키까지 등장시킨것. 그것도 막간이 아닌 정규시합 중에 등장한데다 그마저도 시합과는 관계없는 영화홍보로 등장했던 것이다. 레슬링 팬이라면 실소밖에 안나오는 이유.[36] 더구나 케빈 내쉬같은 인물들은 각본구상까지 간섭해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내용을 담은 각본은 아예 거부하고 무시했다. 다른 선수들이야 어떻든 자신에게만 스폿라이트가 비춰야 당연하다는 사고 때문에 많은 유력하고 잠재력있는 선수들이 희생되어야 했다.[37] 다만 이건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WWE는 과거의 WCW와는 상층 구조가 전혀 다르고 라커룸의 분위기도 좋은 편이고 실력 면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며 NXT의 영향으로 신인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WWE 각본진의 삽질은 여전하여 시청률은 하락 일로를 걷고 있으며, 사내 분위기 역시 여전히 정치적 역학관계가 강하게 작용하여 응당 인정을 받아야 할 선수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이전에는 존 시나 한명에게 매달리는 운영으로 정말로 WCW의 전철을 밟나 했지만 NXT의 설립 등을 통해 외부에서 인디 레슬러들을 수혈받게 되면서 많이 개선되었다. 사실 WCW와 현 WWE는 문제점이 비슷해보여도 전혀 다른 것이 과거 WCW는 경영진의 무지와 이로 인한 고참 선수들의 사내 정치로 인해 새로운 피의 수혈이 거의 되지 않았던 WCW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었다면 현재 WWE는 빈스 맥마흔이 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과 특정 선수에 대한 무한 편애가 가장 큰 문제이다. 또, WCW의 경우 경영과 쇼 운영이 전부 막장이지만 현재 WWE는 쇼 운영은 막장이지만 경영은 오히려 잘 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문제가 있는 셈이다. 완전히 똑같다기보단 그만큼 상태가 안좋아보인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그러나 2019년 6월 초, 평론가 데이브 멜처지금 WWE의 꼴은 딱 WCW 그 자체라고 평했다. 그만큼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는 것.[38] 그런데 정작 빈스가 물러나고 트리플 H가 진두지휘하면서 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을 보면 역시나 WWE가 악화된 원인은 WCW와 달리 빈스 맥마흔의 삽질이었다.[39] 애초에 비숍도 빈스 맥맨과 같은 떡대 근육맨 매니아였던 점도 아울러 크다. 다만 이는 당시 WCW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쉴드 쳐줄 수 있기도 한 것이 이 당시 WCW내에서는 2미터 이상의 거구에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선수들이 별로 많이 없던 시대였다. nWo의 핵심 축이었던 케빈 내쉬와 스캇 홀 모두 2미터에 육박하는 피지컬의 소유자였고 결정적으로 이들은 경쟁사에서 막 영입했기 때문에 이로 부터 오는 압박감도 심했다.[40] WWE에서 전성기를 구사하다가 황혼기로 접어든 노장들이 이적해 들어오면서 유망주들을 배출해내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당장 헐크 호건이나 랜디 새비지등이 옮겨오면서 이들 위주로 경기가 흘러가는 세태가 허다했고 여기에 케빈 내쉬등이 가세한 이후로부터는 이들의 꼰대짓으로 명을 재촉하는 꼴이 되어버렸다.[41] 애시당초 위에 있는 사람들 중 그나마 후배 선수들에게 잡을 해준 인물은 DDP와 스팅, 릭 플레어 정도였다. 거기에 릭 플레어는 현역이었어도 케빈 내쉬와 스캇 스타이너 등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으니 잡의 영양가도 적었다. 더군다나 후발주자로 올라온 스캇 스타이너나 골드버그, 제프 제럿은 각각 개차반 성격, 지기 힘든 절대 무적 기믹, 떨어지는 포스로 인한 잡의 영양가 저하로 더이상의 후배를 키울 수도 없었다. 그나마 부커T가 세기말 WCW에서 선전했으나 부족했고, 스팅이 퓨드를 세워가며 잡질해준 뱀피로는 기껏 키워놨더니 크루즈웨이트급의 빌리 키드먼과 대립하며 메인타이틀에서 멀어져 갔다.[42] 그나마 DDP도 거의 40 가까운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선수 생활은 그닥 길지 않았다.[43] 특히 스티브 오스틴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하면서 헐크 호건 이후 프랜차이즈 최고의 인기스타로 군림하게 되었고, 더 락 역시 데뷔 초반의 부진에서 벗어나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로 거듭나던 상황이었다. 이는 골드버그 한명만 가지고 꺽꺽대던 WCW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44] 또한 WWE는 오스틴과 더 락 외에도 트리플 H, 믹 폴리, 언더테이커, 케인 등의 메인 이벤터들도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가 빅 쇼,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커트 앵글, 에지 등 이후 메인 이벤터가 될 선수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위 선수들 중 커트 앵글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WCW가 먼저 영입했으면서도 외면했던 인재들이라는 점에서, WWE와 WCW의 스타 육성능력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또한 이 사실은 하단에 후술된 사내 정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선수들 외에도 발 비너스, 빌리 건, 리키쉬 등 부상 등으로 인해서 메인이벤터가 되는데 수차례 실패한 뒤로 추락했지만 메인이벤터가 될 기회를 날려먹지만 않았더라면 크게 성공했을 아까운 유망주인 선수들도 많았고, 딜로 브라운과의 경기에서 기술을 잘못맞아 선수 생명이 끝나버렸던 드로즈의 경우도 그 사고만 아니었다면 차후 메인이벤터도 가능했을 정도의 유망주였으며, 딜로 브라운 또한 드로즈의 선수생명을 끝장내버리는 사고로 인한 죄책감으로 기량이 저하되는 일만 없었다면 차후 메인이벤터가 될만한 유망주였다. 반면 WCW에는 분명 잠재력이 있는 인재임에도 업계내 노장들 위주로 흘러가느라 애초에 성장할 기회가 없었던 경우가 수두룩 했다. 프로레슬러로써 유망주였으나 성장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들로 션 오헤어, 마크 진드락, 척 팔럼보, 쟈니 스템볼리, 빌리 키드먼, 제이미 노블, 랜스 스톰 등이 해당하는데 이들도 앞서 언급한 빅쇼나 제리코, 에지, 래디컬즈 멤버들처럼 진작 WWF에 줄을 섰더라면 크게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WCW를 인수한 이후의 WWE가 WCW 출신 선수들한테 푸쉬를 잘 안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들중 제이미 노블은 WCW 시절보단 WWE에서 좀더 활약이 많았고, 랜스 스톰과 빌리 키드먼도 2002년 까지만해도 커트 앵글, 빅쇼, 엑스팍 등의 거물들과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메인이벤터 까지는 무리여도 최소한 하이 미드카더가 되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45] WCW의 프로레슬링은 거의 난입으로 시작해서 난입으로 끝났으며 골드버그가 크게 뜬 이유도 골드버그의 경기는 난입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크루즈웨이트 경기도 난입보다는 프로레슬링 자체에 중점을 둔 경기에 관중들이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46] 그 중에는 사바 심바맥스 문, 아이작 양켐이나 칠리 맥프리즈같은 정말로 두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울 정도의 것들도 있었고, 더 군, T. L. 호퍼, 판타시오, 배스천 부거 등 데뷔하자마자 망한 기믹이거나, 아예 자버로 데뷔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은 빠르게 퇴출되었다.[47] 후에 ECW에서 크게 활약하는 레이븐과 저스틴 크레더블도 이 시기 각각 쟈니 폴로와 알도 몬토야라는 처참한 기믹에 불과했다.[48] 과거 자크 루조 주니어와 함께 퀘베커즈라는 태그팀 선수로 활동하다가 해체하고(캐나다에서 항의했다는 말도 있다.) 유치찬란한 해적 기믹의 싱글 레슬러로 등장했다. 물론 오래 가진 못했지만... 이후 ROH에서 PCO라는 링네임으로 활동 중이었다가 ROH가 망하면서 임팩트 등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장 피에르 이후 10년 정도 후에 나온 폴 버칠도 해적 기믹을 선보였지만, 적어도 폴 버칠은 마크 헨리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만 아니었다면 차후 하이 미드카더까진 가능했을 정도로 반쯤 유망주였고, 해적 기믹 자체도 잭 스패로우를 닮아서 호응이 좋았기에 표면적으로나 해적일뿐 실상은 거의 중2병 기믹에 가까웠던 장 피에르랑 상황이 달랐다.[49] 물론 WCW에도 이상한 기믹 사례들은 적잖게 있었다. 글래이시어(게임 캐릭터 컨셉)라던지, 마에스트로(음악가) 등[50] 경량급 선수였던 레이의 입장에서 나온 인터뷰로 상단의 단점 항목에서 설명한 내용 그대로를 보여주는 내용이다.[51] 거기다 백스테이지에서 로스터들을 모아놓고 릭 플레어를 개털로 만들거다, 니들도 함부로 깝치면 X 될 줄 알아라 등 협박성 말을 해 백스테이지 분위기를 완전 작살내 버렸다.[52] 문제는 비숍이 플레어가 WCW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예전 WCW팬들이 작성해 올리는 'WCW를 패망하게 한 원인 탑 10'에서도 상위 5위권에 놓는 것이 비숍의 플레어에 행한 무례함이다. 모든 WCW소속 선수들이 플레어를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큰 형님으로 대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숍이 알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자기가 하는 일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인물이 버티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싫은 것이긴 하겠지만 비숍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53] 결국 릭 플레어는 WWE에 건너간 뒤에도 한동안 기가 죽은 채로 지냈지만 WWE에서는 WCW와 달리 숀 마이클스나 트리플 H, 크리스 제리코 같이 릭 플레어를 존경하는 레슬러들이 다수 있었고 특히 릭 플레어가 젊은 크리스 제리코에게 잡을 해주겠다고 했을때 제리코는 거절하고 오히려 이 노장 레슬러를 띄워주었을 정도로 존경심을 표시하였다. 또, 트리플 H는 릭 플레어와 손잡고 2명 정도의 유망주를 끌어들여 새로운 스테이블을 만들 것을 빈스에게 제안하여 에볼루션을 만들었고 이후에도 릭 플레어를 위한 하루 각본을 만드는 등 릭 플레어에 대한 대접을 톡톡히 했다.[54] 실제 링에 취한 상태로 술을 들고 올라갔으며, 비숍에게 구토를 한 적도 있다. 물론 샌드맨이나 스티브 오스틴처럼 링에서 술을 마시는 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샌드맨은 경기 전에는 많이 마시지도 않았고 하드코어를 표방한 ECW이기에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줄만하며, 오스틴은 경기나 세그먼트가 끝나고 나서야 먹었고 그나마 맥주 두 캔은 부딪혀 터뜨리고 쏟아부아 버리면서 실질적으로 술은 내다버리면서도 시각적인 호쾌함을 살리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스캇 홀과 달리 어디까지나 술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한 거지 술에 취해서 경기도 못 할 상태에서 링에 오른 게 아니었다.[55] 히트는 스맥다운 이전에 RAW를 보조하는 서브쇼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도 했고 메인급 선수들도 자주 나와 스토리를 진행하기도 했다.[56] WWE는 월요일 RAW 생방송-RAW 생방 종료 후 히트 녹화(일요일 방송)-화요일 스맥다운 녹화(목요일 방송)이라 일정은 훨씬 빡셌다.[57] 사실 악역으로서 자뻑 정도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들은 리얼리티가 가미된 각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자뻑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멘트 요소가 섞여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WCW는 이런 식의 시멘트 각본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다. 예를 들어 스캇 스타이너는 사이가 나빴던 릭 플레어에 대해 정말로 죽여버리겠다며 이딴 쇼를 보느니 차라리 채널 돌려서 경쟁사인 WWF의 프로그램인 RAW나 보라고 지껄였고, 헐크 호건은 벨트를 제프 제럿에게 넘겨줘야 할 때가 오자 경기를 하지 않고 그냥 링에 누워서 니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벨트를 넘겨줬다.[58] 그렇다고 트리플 H에게 안 맞은 선수가 멀쩡했냐...하면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참조. 이쪽이 수백배는 더 비참했다.[59] 사실 이건 숀 마이클스의 개과천선(...)과 골드버그의 빠른 퇴사가 복합적으로 얽힌 면이 있다. 즉, 메인 이벤터 자리에 군림할 선수들이 그 자리를 사양하거나 아예 유기했기 때문에 트리플 H가 그 자리를 꿀꺽한 것이다.[60] 물론 이건 WCW팬들 입장에서 그런 거고 당시 WWE 팬들은 뭐 어쩌라고? 모드. 당시 시점에서 노땅들이 아닌 알짜배기 WCW 출신들은(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 등) 삼치가 없는 스맥다운에서 메인 이벤터급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이들과 함께한 존 시나, 커트 앵글 등과 함께 스맥다운의 최전성기를 만들었다. 반면 에볼루션을 앞세워 이유도 모르겠고 의미도 없는 트리플 H의 WCW 부관참시질은 그대로 시청률 폭망으로 이어졌다.[61] 이 거부감의 시작은 바로 WWE가 WCW를 인수하고 열린 레슬매니아 17이었다. 당시 셰인 맥마흔은 아버지 빈스와 경기를 했는데 경기전 스카이 라운지에 있던 WCW 선수들을 소개하자 관중들이 야유를 했던 것. 셰인은 이때 선역이었다.[62] 결국 WCW 인베이전 파트에서 어쩔 수 없었던 빈스는 이 때 스티브 오스틴과 커트 앵글을 악역으로 전환시켜 WCW쪽에 합류시켰다.[63] 빅 쇼, 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 등.[64] 대표적으로 부커 T, 레이 미스테리오 등. 부커 T는 이후에도 스피니루니, 킹 부커 등의 걸출한 기믹으로 프로레슬러로서 생명을 늘렸고 레이 미스테리오 역시 WWE에 등장한 최초의 루차도르로서 정체성을 살려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했다.[65] 대표적으로 WCW가 망하기 전 미리 탈출한 빅 쇼,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와(빅 쇼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nWo와도 별 연관이 없었고 WWE에도 비교적 빠르게 적응했다. 빅 쇼의 경우에는 빈스가 환장하는 빅맨+다재다능의 선수였던데다가 적응도 굉장히 빠르게 해버려서 지금에 와서는 WCW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구 WCW 선수들 중에서도 개성있고 뛰어난 실력의 부커 T, 아직 전성기가 완전히 지나지 않았고 상품성도 남아있던 빌 골드버그, 원래 WWE 출신이고 이름값 하나만큼은 대단했던 헐크 호건 등은 WWE에서도 비교적 잘 나간 편이었다.[66] 과거 트리플 H와 클릭 멤버들은 얼티밋 워리어가 레슬매니아에서 트리플 H의 경기 제안을 묵살하고 스쿼시 매치로 박살내버리는 경기때문에 워리어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실제 피니쉬인 페디그리에 킥아웃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판국에 아예 맞자마자 아파하는 기색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엄청난 굴욕을 안겼는데, 그럼에도 트리플 H는 워리어의 상업적 가치를 알고 WWE와 화해하려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하는 등 프로 마인드를 보이기도 했다.[67] 예나 지금이나 TNT는 가입자가 많은 채널이기 때문에 중계권료가 비싼 대신 그만큼 시청률이 나올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WCW가 얼마나 망가져있는지는 터너 네트워크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던 WCW의 중계권을 터너 네트워크가 구입할리 없었던 것.[68] TNA의 멜리스[69] 2000~2001년 MIA, 팀캐나다 매니저[70] 2000~2001년 스캇 스타이너의 매니저[71] 임팩트 레슬링의 제임스 미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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