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19:42:30

배스천 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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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TION BOO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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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마이클 폴 쇼(Michael Paul Shaw)
링네임 Bastion booger
Friar Ferguson
Aaron Grundy
Big Ben Sharpe
Cousin Mike
Jed Grundy
Klondike Mike
Makhan Singh
Man Mountain Mike[1]
Mike Striker
Norman the Lunatic
Norman the Maniac
Trucker Norm
William Danger
Mike The Danger
별칭 Boogerman
출생일 1957년 5월 9일
사망일 2010년 2월 18일 (향년 53세)
신장 185cm (6 ft 1 in)
체중 182kg (401 Ib)
출생지 미국 미시간 주 스칸디아 타운십
피니쉬 무브 시츠 온 페이스[2]
유형 파워하우스
커리어 NWA 캐내디언 태그팀 챔피언 (Vancouver 버전) 2회
스탬피드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2회
스탬피드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2003년 "PWI Years" 500명의 최고의 싱글 레슬링 선수 중 403위
WWF 슬래미 어워드: 제니 크레이그[3]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사람 (1994)
레슬링 옵저버 가장 창피한 레슬링 선수 (1993)
올해의 최악의 경기 (1993년)
테마곡 Booger Man

1. 개요2.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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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WWE를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WWE에서 보기 드문 빅맨 자버였다.

2. 커리어

1981년에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마이클 쇼는 데뷔 이전에 미시간 지역에서 아마츄어 레슬링으로 이름을 날렸고, 70년대 말에는 아마츄어 레슬링 코치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그는 프로 소프트볼 선수로써 밀워키 팀에서 활약한 바 있었는데, 그가 플로리다 팀으로 이적했을 당시 리그가 도산하는 불운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플로리다 지역에서 우연히 파머 빌이란 레슬러를 만났다고 하는데, 그의 격려 덕분에 그는 프로레슬링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79년에 매사스추세츠 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전설적인 스타인 킬러 코왈스키로부터 레슬러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뱅쿠버 지역에서 프로레슬러로써의 첫 발을 내딛었는데, 당시는 그는 클론다이크 마이크란 이름으로 진 키니스키와 알 톰코가 운영을 맡고 있던 NCW란 단체에서 활약했다. 그 후 마이크 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건너가 빅 벤 샤프란 이름으로 뛰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이크 쇼는 스튜 하트의 스탬피드 레슬링에 진출해 그 곳에서 7년간 활약하게 된다. 그는 빅 마이크 쇼라는 닉네임으로 2년간 활약하다 가마 & 아캄 싱과 더불어 카라치 바이스의 멤버가 되었다. 그는 악역으로 활약하며 닉네임도 무칸 싱으로 바꿨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에드 활란 또는 짐 데이비스와 함께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오웬 하트와 대립 관계를 펼치며 노스 어메리칸 챔피언쉽을 수차례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스탬피드 레슬링에서 뛰던 시기에 그는 브렛 하트, 크리스 벤와, 브라이언 필먼 같은 훗날의 슈퍼스타와 일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WCW 소속이었던 짐 로스의 눈에 들어 WCW에 진출하게 된 마이크 쇼는 "노먼 더 루나틱" 이라는 닉네임으로 WCW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노먼은 팬들로부터 테디 베어를 선물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는데 그는 당시 받은 인형들을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에게 다시 선물했다고 한다. 인기는 많았을 지 몰랐지만, 그가 WCW에서 남긴 족적은 미미했고, 이내 그는 WCW를 떠나 미시간으로 돌아와 그 곳에 레슬링 학교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멕시코로 건너가 애런 그룬디로 활약하기도 했다. 애런 그룬디는 솔로몬 그룬디와 형제관계로 설정되어 활약했다고 한다. 그 후 마이크 쇼는 GWF에도 진출해 이블 카르텔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마이크 쇼는 WWE 소속으로 있던 JJ 딜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전화의 내용은 WWE에서 주관하는 트라이 아웃 매치를 볼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마이크 쇼는 이에 한 마디로 응하고 트라이 아웃 매치를 치렀는데, 결과가 좋아 비록 당시 하향세를 걷고 있었지만 WWE에 진입하는 감격을 맛보게 된다. 그는 맨처음 프라이어 퍼거슨이란 이름으로 수도승 기믹을 수행하게 되지만, 이 기믹은 오래잖아 폐기되었고 그는 새롭게 배스천 부거라는 기믹을 부여받게 되었다.

배스천 부거는 하수구에서 태어난 창조물 성격의 기믹이었는데, 아주 형편없는 기믹중의 하나로 지금까지도 악명높다. 기믹 자체가 대식가라서 매번 피자, 햄버거, 샌드위치, 후르츠 칵테일, , 통닭, 바나나 등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기믹이 형편없었던 만큼 WWE에서의 활약도 지지부진했고 이내 배스쳔 부거도 WWE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당시 데뷔전에서 버질과 붙었지만 패한데다, 카말라와의 대결에선 무승부가 났고, 레이저 라몬, 어스퀘이크, 도잉크 더 클라운, 뱀뱀 비겔로우 등 정식 로스터들과의 경기에선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항상 졌다. 간혹 지역 자버들과 붙으면 이겼지만, 2000년도 이전에 WWE에서 활동했던 자버들 중엔 정식 로스터한텐 거의 못이기고 지역 자버들이나 이기는 신세였던 경우가 많았는데 부거도 여기 해당했다.[4] 이후에도 그는 상당히 여러 가지 기믹을 수행했는데, 그래도 그에게 있어서 가장 성공한 기믹은 바로 무칸 싱이었다는 평이다.

WWF를 떠난 후, 쇼는 바스티온 부거 기교를 유지했다. 그는 보더 시티 레슬링을 위해 미시간과 캐나다의 독립 서킷에서 레슬링을 했다. 그는 1995년에 미국의 인디 프로모션에서 태풍에 모든 경기를 패하면서 태풍과 불화를 일으켰다. 1995년 12월 15일, 그는 스튜 하트 50주년 기념 쇼에서 고딕 전사들을 물리친 막한 싱으로 캘거리로 돌아왔다. 1997년 5월 4일, 그는 온타리오주 Arnprior에 있는 Outaia Pro 레슬링에서 Doink the Crown에게 졌다. 그 해 여름 이후, 그는 해밀턴에 본부를 둔 르네게이드 레슬링 얼라이언스에서 일했고, 또한 온타리오주 벌링턴과 오크빌에서 일했다.쇼는 1999년에 레슬링에서 은퇴했다.

2007년 12월 10일 WWE Raw 15주년 특집에서 배스천 부거로 복귀했는데, 트리플 H는 농담으로 빅 딕 존슨가 코믹 효과를 위해 신체 외모를 사용했던 또 다른 캐릭터)이 부거의 아들이라고 제안했다. 잭스 퍼시픽은 2009년 클래식 슈퍼스타즈 25시리즈에 바스티온 부거를 추가했다.

부거는 말년에 다양한 독립 프로모션을 위해 일했고, MI의 새기노에서 여러 레슬링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그는 2006년 6월 3일 뉴저지 주 사우스 리버의 내셔널 레슬링 슈퍼스타즈에서 대니 데만토에게 패하여 레슬링으로 돌아왔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09년 7월 24일 NJ 파라무스에서 악카나탄 왕자에 대한 패배의 노력으로 열렸다. 부거는 그의 고향인 미시간주 스칸디아에 레슬링 학교를 열었다.

부거는 켈리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그들에게는 조슈아와 아만다라는 두 아이가 있었다.

부거는 2010년 9월 11일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 항년 53세였다.


[1] 개리 플레처라는 동명의 링네임을 사용하던 프로레슬러가 있었다.[2] 상대의 얼굴과 목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떨어트리는 센톤 계열의 기술.[3] 미국의 다이어트 센터의 대표이자 그녀가 운영했던 다이어트 프로그램 센터.[4] 부거 이외엔 듀크 드로즈, 타이거 청 리, 판타시오, 아이언 마이크 샤프, 아웃백 잭, 더 군, 브루클린 브롤러, 배틀 캣, 맥스문, TL 호퍼, 짐 파워즈, 배리 호로비츠 등이 여기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