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F3E46,#000><colcolor=#fff> 로이 존스 주니어 Roy Jones Jr | |
본명 | Roy Levesta Jones Jr 로이 레베스타 존스 주니어 |
출생 | 1969년 1월 16일([age(1969-01-16)]세) |
미국 플로리다 펜사콜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1] |
복싱 전적 | 76전 66승 (47 KO) 10패 |
신체 | 180cm / 188cm |
체급 | 미들, 슈퍼 미들, 라이트 헤비, 크루저, 헤비 |
스탠스 | 오소독스[2] |
링네임 | Junior, Captain Hook, RJ, Superman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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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권투 선수이자 래퍼.2. 커리어
2.1. 출생과 시작
로이 존스 주니어는 (Roy Jones, Jr) 1969년 1월 16일생으로 미국 플로리다주 펜사콜라(Pensacola)에서 태어났다.[3] 그의 아버지 로이 존스 시니어 역시 미들급 복서였으며, 베트남 참전용사이기도 했다.[4] 10대 시절부터 1984년 United States National Junior Olympics 54kg급 우승, 1986년, 1987년 내셔널 골든 글로브 각각 63kg, 71kg급 우승 등 미국 아마추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두며 복싱 유망주로 점점 두각을 나타나며 1988년 서울올림픽 미국의 국가대표 자리에 오른다.[5]2.2. 1988 서울 올림픽
2.2.1. vs. 박시헌
1988 서울 올림픽 복싱 종목에 라이트 미들급 미국 대표로 출전해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의 박시헌 선수와 맞붙었는데, 누가 봐도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개최국 선수로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등에 업은 박시헌에게 2:3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당시 대회 초반에 이미 일정을 끝낸 미국 수영대표팀이 서울 시내 모처에서 술을 마시다 만취상태로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일어나서 올림픽 기간 중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라, 남자 농구 준결승전 미국VS소련 전에서는 잠실학생체육관을 가득 매운 관중들이 큰 소리로 USSR을 외치며 우방국인 미국이 아니라 적성국인 소련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시헌의 석연치않은 판정승은 단순히 홈어드밴티지만 작용한 것이라기보다는, 홈어드밴티지 + 당시 대회기간 중 고조되었던 반미감정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해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에 더해, 로이 존스가 금메달을 가져가는 경우 미국에게 금메달 수에서 뒤져 종합순위 2위를 내줄 수도 있는 동독의 입장이 반영되어 링사이드 져지 5명 중 3명이 박시헌의 우세를 판정했다는 설도 있다. (결과적으로 동독이 금메달 하나 차이로 미국을 제치고 소련에 이어 종합 2위에 올랐으니 신빙성 있는 의심.)
당시 중계화면을 보면 박시헌은 주심이 본인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승리에 대해 전혀 기뻐하는 표정이 없이 판정결과에 대해 본인조차도 납득을 못하겠다는 듯한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승리를 확신하던 로이 존스의 허탈해 하는 반응은 덤. 이후 로이는 본인의 랩 Ya'll Must Have Forgot에 "When they stole my gold medal in Seoul, Korea / Let's look back at my whole career"라는 벌스를 넣는다.
다만, 존스는 2021년에 했던 인터뷰를 통해 당시 판정에 대해 맹비난을 하면서도 상대선수였던 박시헌에게는 어떠한 악감정도 없음을 밝혔으며,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나만큼이나 당시 상황에 의한 피해자였다.("It wasn't his fault. He was as much a victim of circumstance as I was.)"라고 말했다. 박시헌이 로이 존스를 직접 만나 사과하겠다는 것을 로이 존스가 무시했다고 하는데, 이 인터뷰로 미루어 볼 때 로이 존스는 당시 판정에 대해서 상대방 선수에게 직접 사과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박시헌이 2023년 본인의 이야기를 다룬 카운트(영화)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21년 세르비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박시헌은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듯 국내외를 막론하고 편파판정의 수혜자라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며 올림픽 직후 22세 젊은 나이에 떠밀리듯 은퇴를 해야했다. 올림픽에서 개최국 선수가 홈어드밴티지로 금메달을 강탈한 사례로 박시헌과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를 같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소트니코바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이고 자기 실력으로 딴 금메달이라고 우기는 뻔뻔한 모습을 지금까지도 계속 보이고 있는 반면, 박시헌은 시종일관 로이 존스 주니어의 승리를 인정해왔기에 두 경우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로이 존스와 박시헌의 경기는 AFP통신이 뽑은 역대올림픽 5대 오심 논란에 선정되었으며, 이후 판정시비를 없애기 위해 아마추어 복싱에서 판정승의 기준이 단순한 우세/열세 판단이 아니라, 유효타를 집계해서 점수로 수치화하는 보다 더 객관적인 방식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3. 프로 데뷔
올림픽 은메달의 아쉬움을 안고 1989년에 로이는 프로에 데뷔한다.그는 프로로 데뷔하게 되면서 여러 강타자들을 KO로 눕혀버리고 16전째 前 웰터급 챔피언 호르헤 바카를 1라운드에 KO로 눕혀버린다. 그리고 다음 경기도 KO로 이겨버리며 17연속KO를 기록하게 된다.18전째 그는 강타자 호르헤 카스트로(76전 71승 51KO 3패 2무)와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테크닉과 스피드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그 다음 상대는 24연승 무패행진을 달리던 유망주 글렌 토마스(24전 24승 (13KO)와 의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8R에 로이존스가 TKO승을 거두게 된다.그리고 이어 다음에 퍼시 해리스(18전 15승 3패 9KO)를 4R TKO로 승리를 거두게 되고 잠정 WBC 슈퍼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는다.그리고 이후 1993년 5월 22일 버나드 홉킨스(Bernard Hopkins)[6]와 IBF 미들급 타이틀전을 치르며 초 박빙의 승부 결과 로이 존스가 결국 3심 전원 116-112 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게된다. 복싱 일러스트레이티드 채점은 117-111, 고 해롤드 레더맨[7]의 채점으로는 118-110.
2.3.1. 전성기
로이 존스는 미들급 타이틀을 손에 넣은 뒤 타이틀 방어 1차전을 한 후 타이틀을 반납하고 슈퍼미들급으로 체급을 변경한다. 그리고 1994년 11월 18일 IBF 슈퍼미들급 챔피언이며 아이란 바클리[8], 마이클 넌, 마이클 멕캘럼 등을 눕힌 당시 P4P 최강인 제임스 토니[9]에게 도전한다. 존스는 무패의 제임스 토니를 3R에 한차례 다운을 시키게되고 판정승을 가지게 되는데 그가 3R에 제임스 토니를 다운 시킨 것은 존스의 하이라이트에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꼽힌다. 이때 해설가들은 슈가 레이 로빈슨을 능가할지도 모르는 복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참고로 슈가 레이 로빈슨은 알리도 도달하지 못한 올타임 P4P 1위 레전드다.제임스 토니를 이긴 뒤 존스는 2체급 석권에 성공. 이러한 존스의 무패행진으로 그는 P4P 랭킹에서 10위 안에 들게 된다. 슈퍼 미들급에서 6차 방어전을 전부 KO로 장식하며, 특히 2차 방어전에서 전 라이트미들급 세계챔피언 비니 파치엔자를 완전히 장난감 다루듯이 격침.
이렇게 6차 방어전을 마친 존스는 슈퍼미들급 타이틀을 반납하고, 또 다른 초강타자이자 3체급을 석권한 전설 마이크 맥컬럼에게 도전한다. 로이존스는 그에게 한차례 다운을 빼앗는 등 압도적인 만정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WBC 라이트헤비급 잠정 타이틀을 얻어냈다.
로이 존스의 첫 패배는 좀 어이가 없는데, 35전째인 몬텔 그리핀과의 1차전에서 흥분한 나머지 다운된 그리핀에게 펀치를 날리면서 반칙패를 당해버린다. 그리고 그리핀과의 2차전에서 1라운드 2분31초만에 KO 승. 다시 챔피언으로 복귀해 1998년 로이 존스는 27승 1패 19KO를 기록하고 있던 루 델 바레와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라이트 헤비급의 1인자로 등극했다.
라이트 헤비급 방어전 두 경기에서 모두 KO로 타이틀을 지켜내고 1999년 6월 레지 존슨과의 IBF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매치를 가져 손쉽게 승리한다. 이후 로이존스는 P4P 1위에 등극하며 되고 신설 기구들 IBO, NBA , WBF IBA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을 로이존스가 차지하며 라이트 헤비급을 제패한다. 로이 존스는 이제 더 욕심을 내서 WBA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해 2003년 3월 1일 존 루이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판정승을 거둬 WBA 헤비급 챔피언에도 오른다. 미들급에서 활동하던 선수가 헤비급까지 정복한 것은 106년만의 일이었다. 격투계에서의 월장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며 특히나 중량급에서의 월장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헤비급의 경우 체중 제한조차 없어 자신보다 체중이 훨씬 많이 나가는 상대에게 승리했다는 사실을 볼 때 로이의 기량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존 루이즈는 더티복싱으로 유명했고, 당시 기준으로 헤비급 챔피언 중에 가장 약체로 평가 받았다. 로이 존스와의 경기에서도 조금 더티한 플레이를 했지만, 로이 존스는 한창 전성기인데다 극심한 기량차이로 12R 판정승을 거두어 WBA 헤비급 챔피언이 된다.
다만 존스는 헤비급에서는 더 활동하지 않고 바로 라이트헤비급으로 감량해 내려갔다.
2.3.2. 말년
그 이후 안토니오 타버와의 1차전에서 판정승을 거두는 등 여전히 라이트헤비급 부동의 1인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던 로이 존스 주니어였지만, 본인의 노쇠화는 피해갈 수 없었다. 안토니오 타버와의 2차전에서 1라운드를 포인트에서 앞섰고, 심지어 몇차례 좋은 찬스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살리지 못했으며, 2라운드 막판에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뒷손 스트레이트를 적중시킨 상태에서 방심한 나머지 통렬한 레프트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지적되어왔던 디펜스 부족이 노쇠화와 겹친 것도 있지만, 커리어 사상 단 한번도 넉아웃 패배를 당한 적이 없는 타버의 맷집을 과소평가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타버전 패배 이후 가진 자메이카 강타자 글렌 존슨과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스텝과 핸드스피드 모두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며 9라운드 내내 압도당하다가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그대로 안면에 허용하며 또 다시 KO패를 기록한다.
그러던 와중 타버 역시 의도치 않게 글렌 존슨에게 패하며 둘의 3차전이 성사되었다. 스피드와 파워가 어느 정도 회복된 존스 주니어였지만, 예전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몇차례 스트레이트 카운터와 훅을 허용하며 데미지가 누적되었다. 그 여파로 많은 주먹을 뻗지 못했고,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연승을 달리다가 은퇴를 앞둔 조 칼자게[10]에게 패배하며 상위권 선수들을 상대로는 더 이상의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게 되었다. 1라운드에 칼자게로부터 다운을 빼앗았지만, 그 이후로 아무것도 못하며 코너에 몰려 칼자게의 펀치러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만장일치 판정패. 그 이후의 행보는 과거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해설위원을 겸업으로 삼으며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는 점은 상당히 고평가받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명목상 현역이고 실제로는 HBO 복싱 해설과 프로모션 운영을 주로 하며 복싱 관련 일에 매진하고 있다. 미 통신 기업인 AT&T가 HBO의 지주회사인 타임워너가 인수를 한 뒤 복싱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자 현재는 본인의 RJJ 프로모션 사업에 주력 중.
3. 파이팅 스타일
정석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을 보였다. 이른바 무버 스타일로 잽 사용빈도가 낮은 대신 신체능력과 빠른 스텝을 이용하여 빈틈을 만들어 훅, 어퍼같은 파워펀치를 날리는 스타일이었다. 당연히 정교한 거리싸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상대의 수비에 막히고, 오히려 카운터를 맞을 수도 있다.문제는 로이 존스는 스텝을 밟으면서 날리는 훅이 상대의 잽보다 빨랐다. 과장이 아니라 스텝을 밟고 앞으로 뛰며 상대에게 레프트 훅을 날리고 상체 움직임 및 다시 스텝을 밟아 빠져나가는 게 다른 선수가 제자리에서 잽을 날리는 것보다도 빠르다. 상대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게, 어지간한 잽보다도 빠른 속도로 궤도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파괴력도 강한 훅이 날아오는 데다가, 기껏 막은 다음에 카운터를 날리려고 하면 이미 사정거리 밖으로 달아나 있다. 반응속도가 워낙에 빠르다 보니 펀치를 맞췄다 싶어도 엄청난 속도의 헤드 웍으로 흘려보내고 카운터를 날리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답이 없다.
그의 파이팅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 뒷손 훅이 상대의 앞손 잽보다 빠른것을 볼 수 있다. 밑의 장면에서는 상대방 잽보다 빠른 쓰리-투(훅-스트레이트)를 볼 수 있다.
게다가 긴 리치에, 펀치력도 미들급에서 시작했으나 라이트헤비급까지도 충분히 통할 정도로 강하고, 12라운드 내내 펀치를 날려댈 정도로 스태미나까지 좋았다. 스테미나가 얼마나 넘쳐났는지 시합이 있는 당일에 농구 경기를 한 판 뛰고 와서 시합하러 링에 올라가기도 하였다. 테크닉도 천부적인 수준이라 말 그대로 프리스타일로 상대를 약 올려서, 도발을 시전 하여 니가와 모드를 만든 뒤 카운터를 노리기도 하고 엄청난 순발력을 발휘하여 날카롭게 선제공격을 하기도 하고 좀처럼 고유한 스탠스가 없다고 할 정도로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을 벌인다. 실제로 2000년대 복서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헤드투바디 콤비네이션, 뒷손 리드 펀치, 스위치 복싱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선수이기도 했다.
이 정도로 신체능력이 대단하다 보니 전성기의 그의 경기는 '하이라이트는 화려하지만 경기 전체를 보면 지루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 경기를 보면 경기 대부분 시간 동안 상대와 간만 보는 대치 상태에서 가끔 들어오는 상대 공격에 카운터를 하는게 로존주 경기의 양상이다. 이에 대해서 조지 포먼이 해설로 “로이 존스 주니어는 최고의 카운터 펀처는 맞지만, 훌륭한 어그레서라고는 할 수 없다.”고 평한 적이 있다. 먼저 상대를 압박하고 선제 공격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다만 이는 체급을 올리고 나서의 평가이고 슈퍼미들급 시절에는 선제 공격을 즐겨했었다. 그렇기에 초살 KO도 이 때 많이 나왔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로존주의 압도적인 카운터 능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지, 라이트 헤비급 시절에도 이 최고의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반응 못할 정도의 선제 공격을 계속 성공시켰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로존주가 카운터로 경기를 풀어나간건 사실이지만 선제 공격 옵션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라는 얘기. 반대로 계속 압박하고 들이대는 상대를 만나면 로존주의 경기는 매우 재밌어진다. 물론 로존주의 상대들은 대부분 들어갈 생각을 못했다. 그렇기에 로존주는 상대방들이 먼저 공격하게끔 유도하기 위해 도발을 사용했다.
그런 도발 스킬들이 상당히 화려한데 메롱은 기본이고 노가드로 팔을 축 늘어뜨리거나, 팔을 양옆으로 쭉 벌려서 오라고 손짓하거나 상대가 안 오면 말춤을 추거나 스텝을 밟으면서 브레이킹 댄스를 춘다. 이 행위는 가끔씩 펀치가 난무하는 경기 도중에도 시전 한다. 로프로 밀렸을 경우에도 노가드로 위빙이나 덕킹으로 펀치를 피하며 있다가 뒤로 숨긴 양팔을 채찍처럼 전광석화 카운터를 날려서 경기를 끝낸다. 이외에도 유튜브에 검색하면 다양한 기상천외한 도발 스킬을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안티도 제법 있는 편.
요약하자면 복싱 역사상 최고의 athleticism, 즉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라고 보면 된다. 제임스 토니는 자기가 겪어본 모든 복서 중 로존주가 가장 빠르다고 했고[11] 그의 핸드 스피드는 역대 최속의 핸드스피드라고 평가 받는 슈거 레이 레너드에 비견됐다.[12] 더해서 파워는 중량급인 라이트헤비급에서도 KO 정도는 쉽게 낼 정도의 수준이였고, 반사신경과 순발력은 hands-down 스타일의 선수라면 필수였는데 로존주는 당연히 최고였다. 스태미나도 부족함 없이 12라운드 소화하는 수준이였고. 전성기 기준 로이 존스 주니어의 운동능력은 역대 모든 복서를 통틀어 최고라 평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체능력에 의존하는 스타일이 커리어 후반을 망치게 되는 요인이 된다. 헤비급 증량 이후 둔화된 풋워크가 그의 몰락의 제1원인으로 꼽히는데, 전성기가 한참 지난 2010년대 경기를 보면 반사신경이 크게 느려져서 풀 가드 상태의 복싱으로 변화하여 왕년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맷집이 상당히 안 좋아져서 패배의 주원인이 되었다. 인체에서 가장 먼저 노화하는 것이 운동신경의 반응속도임을 감안하면 롱런하기 어려운 복싱 스타일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
4. 평가
권투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는 변칙파 복서. 현 세대 챔피언 복서들에게 자라올때 우상이 누구냐 하면 항상 타이슨과 로이 존스 주니어가 단골로 나올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복싱 만화에 나오는 모든 변칙파 복서들의 모델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파이팅 스타일을 자랑한다. 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도둑 맞은 선수.[13] 주된 활동 무대는 슈퍼미들급~라이트헤비급이었지만 월장을 통해 미들급, 슈퍼미들급, 라이트헤비급, 헤비급까지 4체급[14]을 제패한 대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또, 복서로서는 최장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려 47세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5. 여담
Roy Jones Jr - Can't Be Touched (feat. Mr. Magic & Trouble) | 2004 |
- 링위에서 보여주는 재기발랄한 퍼포먼스에서 알수있듯 끼를 주체할수 없는지 연예계쪽으로도 발을 걸쳤다. 랩스킬을 발휘하여 랩퍼로 앨범을 두장정도 낸적이 있으며, 특히 Can't Be Touched는 발매 당시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올라간 적이 있다. 헐리웃에서 간간히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는 중.
- 방송채널 HBO와의 관계는 굉장히 두터운 편.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복싱 캐스터 짐 래플리와 현 ESPN의 유명 캐스터 맥스 캘러맨과 함께 HBO 주요 매치업 해설을 맡을 정도. 듣기편한 안정적 발성과 살아있는 복싱 전설다운 정확하고 심도깊은 해설로 HBO 복싱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고있다. 복싱영화 사우스포에서도 해설로 등장한다.
- 2015년 12월 12일, 만 46세의 나이로 마지막 경기를 치를 정도로 오래 활동했다. 진정한 노익장. 다만 2004년 5월 15일 안토니오 타버와의 대결에서 타이틀을 상실한 후에는 승패를 반복하며 검은별을 늘려가는 상황이라 차라리 일찍 은퇴하기를 원하는 팬들도 많다. 2016년 2월 10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가 다음날 바로 번복.
- 올누드 사진이 유출된 적이 있는데 거대한 그 곳으로 화제가 되었다. 진정한 챔피언(...)
- 2020년 11월 29일 마이크 타이슨과 8라운드 시범 경기 형식으로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이벤트 경기답게 무승부. 나이가 나이인 만큼 기량의 노쇠화가 드러나지만 레전드 선수답게 거의 맞지 않고 카운터를 날리는 등 여전히 영리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다는 평이 많다.
- 2000년 5월 13일 리처드 홀과의 라이트헤비급 통합 타이틀매치에서 경기 후 두 선수 모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검출되었다. 이에 대해 존스는 컨디셔닝 코치가 준 보충제 Ripped Fuel에 해당 성분이 들어있었다고 주장했다.
- 180cm에 육박하는 큰 키[15]에 레전드급 운동신경을 가져서인지 농구선수로도 활동했었다.
6. 수상 타이틀
Major World Titles
IBF Middleweight Champion (160 lbs)
IBF Super Middleweight Champion (168 lbs)
WBC Light Heavyweight Interim Champion (175 lbs)
W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F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A Heavyweight Champion (+200 lbs)
W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F Middleweight Champion (160 lbs)
IBF Super Middleweight Champion (168 lbs)
WBC Light Heavyweight Interim Champion (175 lbs)
W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F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A Heavyweight Champion (+200 lbs)
W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Minor World Titles
IBO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N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F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O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N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F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A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IBC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The Ring/Lineal Championship Titles
The Ring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The Ring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Regional/International Titles
WBC Continental Americas Super Middleweight Champion (168 lbs)
WBO NABO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O NABO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UBO Intercontinental Cruiserweight Champion (200 lbs)
WBC Continental Americas Super Middleweight Champion (168 lbs)
WBO NABO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WBO NABO Light Heavyweight Champion (175 lbs)
UBO Intercontinental Cruiserweight Champion (200 lbs)
7. 둘러보기
1994년 링 매거진 선정 올해의 선수 | ||||
마이클 카르바할 | → | 로이 존스 주니어 | → | 오스카 델 라 호야 |
링 매거진 선정 역대 P4P 랭킹 1위 | ||||
퍼넬 휘태커 | → | 로이 존스 주니어 (1997. 4.12 ~ 1997. 5. ) | → | 오스카 델 라 호야 |
링 매거진 선정 역대 P4P 랭킹 1위 | ||||
오스카 델 라 호야 | → | 로이 존스 주니어 (1999. 6.5 ~ 2000. 6.16 ) | → | 셰인 모슬리 |
링 매거진 선정 역대 P4P 랭킹 1위 | ||||
버나드 홉킨스 | → | 로이 존스 주니어 (2003. 11.8 ~ 2004. 5.14 ) | → | 버나드 홉킨스 |
[1] 후술하겠지만 1988 서울올림픽 당시 편파 판정으로 은메달에 그쳤는데, 로이 존스가 금메달을 가져가는 경우 미국에게 금메달 수에서 뒤져 종합순위 2위를 내줄수도 있는 동독의 입장을 고려해서 링사이드 져지 5명 중 3명이 박시헌의 우세를 판정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도 종합순위에서 동독이 미국을 금메달 수 하나 차이로 제치고 소련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기에 신빙성 있는 의심. 냉전시기 동서 양진영의 스포츠 경기는 실제 전쟁을 대신하는 대리전의 성격이 강해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으로 매우 치열했다. 1988년 올림픽은 냉전시대에 치러진 마지막 올림픽이었고 이 냉전의 양진영의 맹주가 미국과 러시아(당시의 소련)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두 나라의 국적을 모두 가진 로이 존스의 지금 상황은 매우 아이러니하다.[2] 왼손이 앞을 향하고있는 오른손잡이 스타일[3] 농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농장 동물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의 복싱 스타일을 개발했다. 특히 제임스 토니전에서 양팔을 내려서 벌린 후 레프트 훅으로 토니를 강타했는데, 이는 쌈닭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라고.[4] 1977년 6월 10일 슈거 레이 레너드의 언더카드로 마빈 해글러와 붙었다. 결과는 3라운드 KO로 로이 존스 시니어의 패배.[5] 당시엔 아버지 로이 존스 시니어가 코치였는데 어릴때부터 아들을 트레이닝 한답시고 실제로 때리면서 키웠다고 말했고, 때문에 현재 아버지와 사이는 서먹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6] 이 쪽도 미들급의 전설이자 40대 후반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WBA/IBF 라이트헤비급 통합 챔피언을 지낸 만만찮은 괴수. Alien(외계인)이란 별명으로 부를만큼 뛰어난 선수다.[7] 복싱 심판 출신으로 HBO의 전담 채점자로 활동한 전설적인 인물. 지난 2019년 암으로 사망했으며 현재 딸인 줄리 레더맨이 아버지의 바통을 이어 받아 링사이드 저지로 활동 중.[8] NFL 역대 최고의 러닝백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세이콴 바클리의 삼촌이다.[9]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동네 형이며 그 지역에서 파생된 숄더롤과 카운터 복싱을 마스터한 p4p 최고급 복서였다.[10] 웨일즈 출신의 복서였으며, 주 전장은 슈퍼미들급과 라이트헤비급이었다. 가공할만한 펀치 콤보 속도가 주무기이지만, 의외로 커리어 중 넉다운이 몇차례 있으며, 마흔을 넘긴 로이 존스 주니어와 버나드 홉킨스에게 다운을 당하는 등 디펜스에서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패로 은퇴했으나, 다른 영국 복서들이 비판받았듯 홈경기를 주로 한데다 판정논란이 몇 번 있고, 상대들이 대부분 전성기를 지난 상태여서 타 복서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11] #[12] 당시 해설 코멘트에서 빈번하게 나오던 평가이다.[13] 이는 권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봐도 일방적으로 로이가 기량을 보여준 경기였다. 얼마나 분했는지 프로복서 당시 발매한 랩 "Y'all Must've Forgot" 첫 버스에서 "Seoul, Korea"를 대놓고 디스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8_gTwXIJH6k). 이와 관련해 당시 금메달을 딴 박시헌 선수는 1988 올림픽 이후 대중들에 비난 등 때문에 우울증이 걸려 제대로된 아마와 프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 2016년 국대 복싱팀 감독을 역임하였다.[14] 라이트헤비급과 헤비급 사이에 크루저급은 건너뛰었다.[15] 미들~라이트헤비급에서는 평균~큰 키이며 헤비급에서는 다소 작은 키지만 어느 체급에서건 사이즈로 불리함을 겪은 적은 드물었다. 마이크 타이슨과의 이벤트 매치에서 자신은 타이슨보다 1인치 더 크다며 본인의 키에 자부심을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