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8 17:38:06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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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크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1]
국적 오스트리아
출생 1856년 5월 6일
출생지 오스트리아 제국 모라비아 지방 프라이베르크
사망 1939년 9월 23일(83세)
사망지 영국 런던
신체 172cm

1. 개요2. 생애3. 정신분석학 제시4. 평가
4.1.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
5. 트리비아6. 프로이트에 대한 말, 말, 말





1. 개요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문명은 화가 난 사람이 돌을 던지는 대신 최초로 한 마디 말을 내뱉었던 순간에 시작되었다.
Civilization began the first time an angry person cast a word instead of a rock.

오스트리아 출신의 의사, 의학자, 생리학자[2], 심리학자, 철학자[3]이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거의 모든 이론을 성적욕구와 연관지어 설명했으며, 인간무의식을 최초로 규정한 사람이다.[4]

프로이트는 20세기 사상사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학자다. 심리학은 말할 필요도 없고[5] 근대 철학에서도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과 함께 무겁게 다뤄지는 학자들 중 한 명.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엘렉트라 콤플렉스[6]란 개념을 만든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명칭은 융이 붙였지만. 한편 최면이 당연시되던 정신분석학계에 자유연상을 제안한 것 역시 프로이트의 업적이다. 그 외에도 정신분석학계에서 프로이트가 새로이 도입한 개념을 보자면 셀 수도 없다.

저서인 《꿈의 해석》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 명서다. 성에 관한 이야기도 적어서 프로이트가 꿈을 어떤 대상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부작용으로 자꾸 꿈을 해석하게 된다고... 30년 쯤 전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이 시절부터 정리되어온 꿈과 상징에 대한 사전을 들고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꿈을 보편적인 상징으로 치환하여 해석하는 방식은 정신분석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이다. 성적인 상징들이 갖는 공통적인 경향성은 존재하지만, 프로이트는 문화와 언어, 개인의 경험에 기반하여 꿈에 등장하는 상징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2. 생애

파일:attachment/지그문트 프로이트/변화.jpg
  • 1856년 - 5월 6일, 체코슬로바키아(당시 오스트리아 영토)의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남.
  • 1866년 - 오스트리아 빈의 김나지움에 입학.
  • 1873년 - 빈 대학의 과학부에 들어갔으나, 곧 의학부로 옮김.
  • 1877년 - 가재의 신경 세포에 관하여 오늘날의 세포설에 가까운 이론을 발표함.
  • 1882년 - 7월, 경제적인 이유로 연구 생활을 그만두고, 빈 대학 부속 병원 수련의가 됨.
  • 1884년 - 코카인의 마취 작용에 대한 논문 '코카인에 대하여'를 발표함.
  • 1885년 - 가을, 파리에 유학. 사르코 교수에게 히스테리 이론을 배워 본격적으로 신경증을 연구하게 됨.
  • 1886년
    • 4월, 빈에서 병원을 열고, 신경증 환자 치료를 시작함.
    • 9월, 유대인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결혼함.
  • 1891년 - 최초의 저서인 <실어증의 이해를 위하여>가 나왔으나, 혹평을 받음.
  • 1895년 - 브로이어와 같이 <히스테리 연구>를 펴냄.
  • 1896년 - '정신분석'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함. 가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정신분석을 시작함.
  • 1900년 - 자신의 정신분석과 꿈의 분석을 담은 <꿈의 해석>을 출간함.
  • 1901년 - '일상 생활의 병태 심리'를 발표하여, 우발적 행위의 의미를 명백히 함.
  • 1905년 - '성 이론에 관한 세 논문'과 '위트와 무의식과의 관계'를 집필함.
  • 1906년 - 정신분석학의 지지자인 카를 융과 만남.
  • 1908년 - 4월, 잘츠부르크에서 제1회 국제 정신분석학 대회를 개최함.
  • 1909년 - 9월, 클라크 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을 강연함.
  • 1910년 - 국제 정신분석 학회가 정식으로 발족됨.
  • 1912년 - <이마고(Imago)>를 창간하여 '토템과 터부'를 연재함.
  • 1914년 - <정신분석 운동사>, <미켈란젤로의 모세>를 출간함.
  • 1915년 - 빈 대학에서 정신분석학 입문 강의를 시작함.
  • 1917년 - <정신분석학 입문>을 출간함.
  • 1922년 - 4월, 구개암 수술을 받음. 이후 죽을 때까지 32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도 연구와 치료에 힘씀.
  • 1923년 - 4월, <자아와 원초아>를 저술하여, 자아와 원초아의 개념을 제창함.
  • 1930년 - 괴테 문학상을 받음.
  • 1938년 - 6월,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함.
  • 1939년 - 9월 23일, <정신분석학 개론>을 집필하던 중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남.
※ 출처 : 만화로 만나는 20세기의 큰 인물(웅진출판사)

생애를 이론들과 함께 보며 덧붙이자면, 프로이트는 1885년 파리에 유학하며 스르코 교수의 수업에서 최면을 접한 이후로 당시 최면치료를 하던 브로이어와 가까이 지내며 최면을 배워 치료를 진행한다. 안나-오 라는 신경증 환자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지만 최면치료는 일시적으로 증상의 호전을 보이고 가능한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어 이후 압박법->자유연상법 순으로 치료법을 발전시키게 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틀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성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브로이어와는 결별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많은 신경증 환자를 돌본 치료자이기도 하였으나, 자신 역시도 불면증과 우울증을 비롯한 수많은 신경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연구 중에는 자기 자신을 관찰하며 얻은 결론을 토대로 세워진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꿈의 상징성에 대한 해석 같은 것들이 그의 아버지 사후 자기관찰을 통해 나온 것들이다. 이외에도 로마에 맞서 싸운 한니발 장군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로마에 갈 수 없어 노년에 자기관찰을 끝내고 나서야 갔다던지 하는 얘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3. 정신분석학 제시

19세기 들어 산업화자본주의가 시작된 서유럽은 가족에 대한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빅토리아식 가족으로 규정된 이 개념은, 가족을 신성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규정지었다. (性)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문란한 성적 규범들은 비난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게 어쩔 수가 없어서, 외적으로는 성을 금기시하면서도 내적으로는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가 되고, 빅토리아식 가정은 출산율과 영아사망률 감소[7]로 인해 미국식 핵가족화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성에 대한 개념도 양지적으로 변했다. 성혁명이라 불리는 이 현상을 주도한 것이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의 심리는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이드(원초아)와 에고(자아), 그리고 슈퍼에고(초자아)이다. 이드(Id / Es)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의 욕구이며, 자아(Ego / Ich)는 이드의 무분별한 욕구를 통제하고, 현실과 조화시키려는 욕구이다. 초자아(Superego / Über-Ich)는 사회적 관념과 형성된 도덕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이드와 자아의 욕구를 비판하여 행동을 사회규범의 범위로 이끄는 일을 한다. 즉 르네 데카르트 이후부터 계속되어 온 이성적 주체라는 존재가 프로이트에 의해 크게 빛이 바래 버린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아가 외부세계, 초자아, 그리고 이드라는 세명의 주인을 섬겨야 하는 아주 까다로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설명한다. 자아는 외부세계로부터의 요구, 이드의 충동적 본능, 그리고 초자아의 엄격한 자기비판을 잘 조율해야 하는데, 이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살이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심리학에서 억눌린 욕구 등의 개념을 떠올린 인물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일 듯[8]. 그러나 살아있을 적에는 툭하면 섹스 얘기를 꺼내는 미친 사람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의 이론에서 성과 관련된 부분을 빼면 남는 게 없긴 하지만(…), 리비도가 단순히 섹스 에너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발달 에너지를 가리킨 것이란 점은 염두에 두자(이것도 말년에 수정한 이론). 말년에는 에로스 말고도 죽음에 대한 욕구(타나토스)에도 신경을 썼다.

왜 하필 섹스라는 주제를 자주 이용했는가에 대해 어떤 책(집단심리학, 좀 낡은 책이다.)에선 프로이트 어머니가 젊었기 때문에 남편 몰래 나이어린 삼촌들과 애정관계를 맺어온 것NTR?을 프로이트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프로이트는 크게 그의 히스테리 이론과 유아 성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시켰다. 그가 치료했던 히스테리 환자의 대부분이 성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 성적인 폭력이나 유혹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에 기반하여 아이는 모두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매우 어린 시절부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성이론을 만든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이때 성적인 쾌락은 성기뿐만 아니라 구강, 항문, 배설, 가학성 등과 연관된다. 이런 성욕의 다양한 형태가 후에 보편적인 성욕인 '리비도'를 상정하는 근거가 된다.

4. 평가

학부생 1학년의 원수
프로이트의 이론은 잡지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서는 인기가 많다. 특히, 웹이나 서브컬처 매체상에서 심리학이 어쩌구 하면서 떠드는 글들의 상당수는 프로이트나 카를 융을 내세운 개똥철학적 뜬구름 잡기가 대부분. 특히 성(性)에 관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이론[9]이라 사람들 흥미를 자극하기에 아주 좋아서리...

일단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의 아버지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은 빌헬름 분트다, 하지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으로서의 현대심리학에서는 대부분 배제하지만, 큰 패러다임의 영향을 받았으며 분야에 따라서 유효하다고 여겨지기도 하기에 많은 심리학 서적에서 등장한다. 그의 이론은 사실상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으나, 실제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10] 여전히 검증해봐야 할 영역으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정신분석학을 반증하는 연구뿐만 아니라, 신경과학으로 정신분석학을 뒷받침하려는 시도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프로이트 시대보다 연구나 이론이 훨씬 진보되었으나, 무의식의 영역만큼은 프로이트 이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11] 그리고 무의식을 비롯하여 그전까지 철학의 영역이었던 정신세계에 대한 정리를 최초로 시도한 것이 바로 프로이트였다.[12]. 그 때문에 심리학의 기초 이론엔 프로이트의 이론이 남아 있다. 이 탓에 조금이라도 심리학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융은 몰라도 프로이트는 알 수 밖에 없다.하지만 융심리학은 존재하지만 프로이트는 '심리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심리학계에선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하며 현대심리학이 탄생하였고 행동주의가 대두된 이후로 필연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분야는 배척되었다. 따라서 최근까지도 상담이나 발달 등의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심리학 분야에선 프로이트가 비중이 낮거나 비판의 대상이다.[13] 특히 의학계에서는 임상에서 효과가 있으면 이론이나 근거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아도 사용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의대에서는 전문의가 아니라도 나름대로 비중을 두어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분석의를 찾아보기 힘들지만[14]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본적인 옵션으로 정신분석 치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실 프로이트주의의 가장 큰 의의는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으로, 프로이트 이후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도 비슷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지속되어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하면서 만연했던 잘못된 우생학적 사상에 간접적으로 일격을 가했다.

다만, 이 사람의 책을 생각없이 읽다 보면 '뭐 이런 변태 늙은이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박사님 히토미 좀 꺼 주십시오 실제로도 인간의 이성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인간을 너무 성적인 존재로만 해석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철학 분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과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은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한다'(...) 같은 부분. 물론 달이 무조건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며, 아무런 근거 없이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는 독일어 속어로서의 의미에 기반했다. 프로이트의 저서를 보면 이러한 언어적 연상을 자신의 이론의 근거로 삼은 부분이 많다. 이는 후에 언어학과 구조주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말년에는 본인도 좀 지겨워졌는지 '담배가 언제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터뷰 중 한 언론인이 "프로이트 박사님이 항상 시가를 피는 것도 구강기적 집착 때문이 아니냐", 즉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항상 크고 우람하고 시커먼 성기를 빨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본인도 쪽팔렸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시크하게 던진 대답이다.(…) 그러나 구강기는 빠는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는 시기이지 '성기'를 빠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구강기적 특성을 쿨하게 인정했으며, 자신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구강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마 이름이 알려진 학자 중에서는 현대 페미니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까이는 사람. 이유는,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음경을 선망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으며,후타나리 본능설 여성의 성적인 행동은 그것을 갖지 못하기에 보상심리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해괴하기 말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성역할을 확립하는 게 더 어렵다는 주장도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의 이론이 학계에 일으킨 파문과 정신분석학의 시조로서의 의의와는 별개로, 이런 이유로 그의 학문적인 성과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프로이트의 주장은 '여성은 정말로 남성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성기의 차이로 인해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여길 뿐이다'에 가깝다[15]. 그는 당시 대부분 여성이었던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여성의 열등성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인식에 의한 것이라는 근거를 즉 여성이란 실제로 열등한 존재가 아닌 사회적 인식에 의해 열등하다고 조건지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근거를 마련했다.[16]

한편,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는 프로이트(Freud)와 사기꾼(Fraud)은 한 글자 차이라면서 깐다근데 묘하게 말이 된다. 언사이클로피디아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으로 보기 때문.[17] 이건 칼 포퍼의 영향인 듯 하다.

현상학파, 실존주의 사상가들 역시 프로이트에 대해 비판적이다. 신학적, 형이상학적 토대를 배격하고 자연과학적 모델이 인간의 영역까지 무차별 적용되는 것에 반감을 갖는 이들에게 프로이트 이론은 신학, 형이상학, 자연과학과 마찬가지인 또 다른 형태의 토대주의(fundamentalism)일 뿐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적어도 그의 제자들 중 다수가 거의 판타지 소설 수준의 정신분석학을 한 것에 비하면 나름대로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이론을 세우며 그 이론을 수정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이비과학이라는 비난을 프로이트 혼자서 덮어쓰는 것은 부적절하며, 그 죄는 융과 자크 라캉과 같은 후대의 정신분석학자 혹은 철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융의 경우 신비주의에 빠져있어, 자신의 학문에 비이성적인 것들을 함축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편이었다. [18] 그렇다고 프로이트가 과학적으로 자기 이론을 세웠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프로이트는 자기 이론을 환자와의 경험보다는 대부분 자기에 대한 공상으로 만들었고, [19]자기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하려는 사람에게 내 주장은 많은 관찰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굳이 검증할 필요 ㄴㄴ라고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20] 연구방법론을 좀 배운 사람이라면 저게 무슨 개소린지 잘 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석학을 유심론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프로이트는 평생 과학자의 위치를 고수한 철저히 유물론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리비도에 도입한 양적인 개념과 경제적인 원리들 역시 유물론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며, 그는 신경과학자로서 언제나 물리적 실체를 가정했다.

프로이트는 젊을 적에 어류와 새우의 신경계를 연구했던 의학도로써, 그 길을 계속 유지했다면 신경과학에 나름대로 족적을 남길 가능성도 있었다고 평가하는 축도 있긴 하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젊었을 당시엔 두뇌의 신경 구조에 대한 연구가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었는데, 뇌가 연속적으로 연결된 단위들로 구성된 '연결망'인지, 서로 개별적인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논쟁이 격렬했다. 결국 이 논쟁은 축적된 자료로 인해서 후자가 승리하게 되었고, '뉴런'이란 용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프로이트 역시 신경세포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했던 축이기 때문. 뭐.. 상상은 자유지만, 프로이트가 독자적으로 내보인 이론도 아니고, 같은 학파 내에서 비슷한 이론도 발견되는 만큼 신경학에서의 프로이트는 "논쟁에 참여했다가 떨어져나간 무수한 학자들 중 하나" 정도의 비중이 있었다.

회의주의자 사전의 정신분석과 프로이트

덧붙여 알튀세르[21]라캉 등의 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의의를 무의식을 논할 수 있는 '과학'을 설립한 데에 있다고 평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일부로 편입시킨 것은 생존의 문제였으며 [22], 정신분석학의 가치는 심리학 내에서의 학문적 성과보다는 오인 misrecognition의 구조를 이론화시키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 있다는 것이다. [23]

이 연장선상에서, 현대에 있어 (반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말 장사꾼들의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프로이트가 등장하는 공간은 주로 심리학이나 의학이 아닌 인문학과 철학사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프로이트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의 정신(특히 무의식)을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한 첫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객관적인 관측과 실험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시대적이고 기술적인 한계로 인하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엄밀한 과학이라고 보기는 도저히 어려우나, '경험적으로 관찰된 사실들을 일관된 가설로 설명하려 시도하고, 가설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수정하여 새로운 이론으로 다듬어나가는' 프로이트의 시도 자체는 일단 과학적 방법론에 대강(...) 부합한다는 것. 이는 결국, 프로이트라는 인물이 소위 "이성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로써,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이성에 의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함으로써 인간이 진보하여 발전하리라고 여기며 인간의 정신이라는 극히 불확실한 영역을 이성적으로 규명하려 시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연구 결과는 인간의 정신은 이성적인 의식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연구 성과마저 대부분 비과학적(즉, 이성적으로 제대로 논증되지 않음)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던 시기에 인류가 직면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을 비롯한 참극들로 인하여 인간은 자신의 이성에 대한 신뢰 자체를 상당부분 상실하게 됨으로써 흔히 '이성의 시대'라 불린 근대가 끝나고 현대가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런 면에서 볼 때 프로이트는 역사의 발전을 정치경제학적인 현상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나 생물종의 탄생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려 했던 찰스 로버트 다윈 등과 함께 근대의 절정기와 현대의 시작을 동시에 상징할 만한 인물로써 철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4.1.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

  • 알프레드 아들러
  • 칼 구스타프 융
  • 오토 랑크 - 프로이트의 제자였으나 프로이트 이론이 부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인간은 부성보다 모성으로부터 더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고, 특히 범결정론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일방적으로 무의식에 지배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강조했다. 프로이트는 랑크에게 이러한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랑크가 이를 끝내 거부하자 결국 정신분석학회에서 제명시켰다. 때문에 정통 프로이트학파에서는 랑크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 자크 라캉
  • 에드워드 버니스(Edward Bernays) - 프로이트의 조카이면서 오늘날 PR(Public Relations)이라고 불리는 마케팅 부서를 만든 사람이다. 프로이트에게 조언을 자주 구했고 심리학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기자로 시작하여 1차 세계 대전 때는 미국편에서 프로파간다를 만들며 심리전을 이끈 인물이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기업들이 전시의 프로파간다를 전쟁이 없는 평화 상태에서 사용하자고 하여 만든 것이 Public Relations라는 용어라고 한다. PR부서의 대표적 고객이 바로 담배회사였는데, 당시에 했던 일은 바로 여성에게 담배를 저항과 자신감의 상징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덕분에 담배 매출이 늘어서 담배회사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프로이트의 조언이 버니스의 사업에서 먹혀들고 지금까지 마케팅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프로이트의 심리학 연구가 오늘날 낡긴 했어도 꼭 인문학적인 상징성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정치에도 개입한 적이 있으며 프로이트 저작의 출판을 담당하기도 했던 나름 중요한 위치의 사람이다.
  •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이며 아버지 이론을 정리 발전하여 방어기제 발표하였다.
  • 에릭 에릭슨(E. Erikson)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긍정했지만 그는 발달 과정이 전생애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노년기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특히 각 발달과업에서 실패하거나 억제되면 그 과업에 대립되는 감정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피아제와 더불어 발달이론의 주축이며, 안나 프로이트의 연구를 도와줬다.

5. 트리비아

  • 약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아편중독자 친구에게 코카인을 권한 후 조금 중독증세가 나아졌다고 생각하자 바로 코카인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유명해지고 결국 결혼에 성공한 과거가 있다. 그런데 친구는 아편과 코카인에 함께 중독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본인도 담배를 끊기 위해 코카인을 했다가 담배와 코카인에 함께 중독되었고 결국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 프로이트가 쓴 책은 알기 쉽게 쓰여있다고 한다. 하지만 번역판을 보면 이해가 안되는 난해한 말로 쓰여져 있는데, 심리학자들은 알기 쉬우면 심리학스럽지 못하다면서 용어를 고상하게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문제는 최초로 프로이트 전집을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제임스 스트레이치(James Strachey, 1887 ~ 1967)에게서 시작되는데, 사실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이드(Id)'는 올바른 번역이 아니다[24] 프로이트가 쓴 원문에는 자아는 Ich, 초자아는 Über-Ich, 이드는 Es라고 되어있다. 번역하자면 '나,' '초월-나'(Über는 영어의 Over에 해당한다), '그거'이다. 이 단어들은 독일어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들이다. 사실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독일어로 쓰여진 다른 사상가들의 글은 한글보다 훨씬 읽기가 쉬운데, 영어나 프랑스어가 고급단어로 갈수록 일상언어보다는 라틴어 어원의 단어가 많아지는 데 반해 독일어의 추상명사 등은 일상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25] 딱히 프로이트뿐 아니라 대다수 독일 철학 용어들이 다 그렇다.[26] 이 부분은 한자어로 추상적인 개념어를 정립하려는 학계의 경향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27]
  • 그럼에도 정신의학 방면에 문외한인 인문학자들에겐 프로이트의 저작이 융이나 아들러, 라캉의 저작보다는 접근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사실 프로이트는 학생 시절부터 돈 키호테를 원문으로 읽고 해석할 만큼 인문학적 소양이 높았고, 인문학자들에게 생소한 정신의학적 용어를 제시하기보다는 신화나 문학 작품 속의 인물에서 개념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인문학 방면에서는 프로이트가 융이나 라캉보다는 더 많이 인용되는 편이다. 그 외에 다른 정신분석학 학자들은 관련 지식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괜히 문학상을 받은게 아니다
  • 여섯 아이들 중 넷째 에른스트는 건축가로, 막내 안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자로 유명하다. 한편 프로이트의 여동생인 앤나 버네이스(결혼 후의 성)의 아들, 다시 말해 프로이트의 조카가 언론(public relation)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버니스이다. 그는 심리 분석을 이용한 선동 및 광고에 능하여 프로파간다의 대부로 불렸으며, 심지어 괴벨스마저 그의 방식을 배우려 노력했다고 한다. 근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과 언론을 창시한 후덜덜한 집안. 과테말라 전복에도 상당히 관여된 선동가로 히틀러가 그를 섭외하려 노력한 것은 위의 빅데이터가 의미심장하다.
  •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언급을 남기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사라예보 사건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자 이를 지지하며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뒤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되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영국으로 망명했고, 나치는 그의 책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학을 가르치는 것을 금했다. 반면에 순수 게르만 혈통이던 융의 이론은 아무 제약 없이 가르칠 수 있었다고. 영국으로 망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씹는 담배의 애용으로 인한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이때 그의 자식과 손자들도 같이 영국으로 망명가게 되는데, 그 손자 중 하나가 바로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루시안 프로이트'다. 그의 작품 중 하나는 생존화가 작품으로 최대가를 찍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2011년에 별세. 루시안의 형제 클레멘트는 정치인이자 방송가, 작가로 Sir 칭호까지 받았다.
  •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모성 역시 자주 언급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반쯤 농담으로 패드립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사진을 아무 거나 가져다놓은 뒤 그 밑에 “Your mom”만 적어놓아도, 그게 드립이 된다.

6. 프로이트에 대한 말, 말, 말

프로이트 당신에 비하면 나는 놀라운 물고기를 낚기 위해 매달린 작은 벌레에 불과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르크스 이후 우리는 인간 주체가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인간 주체에는 중심이 없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는 작가이고 정신 분석은 문학이다. 작가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그의 글 속에 드러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그의 사상의 매력은 실제 신화의 매력과 닮아 있다. 모든 고통은 단지 기원적인 고통의 반복을 표현할 뿐이라고 단언할 때가 그런 경우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시인들은 언제나 당신의 편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시인들이 당신의 글에서 시를 읽게 될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
데카르트, 칸트, 마르크스, 헤겔 그리고 몇몇 저자들은 넘어설 수 없다. 그들은 진정한 연구 방향과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역시 넘어설 수 없다.
자크 라캉
그에게는 신앙도, 꿈도, 인류의 의미나 임무도 문제되지 않는 광대한 무한까지 나아갈 용기가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1] 독일어 발음은 '지크문트 프로이트(/ˈziːkmʊnt ˈfʁɔʏt/)'에 가까우며, 외래어 표기법으로도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정확하다.[2] 당시 생리학은 비임상의학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연구학문으로의 의학은 생리학과 같은 것으로 보기도 했다.[3]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규명했다.[4] 다른 건 다 빼도 이거 하나만으로 20세기 사상사에 발자국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근대 모더니즘은 이성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 자체에 경악했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탄생에도 한 자리 차지한다.[5] 다만 현대심리학에선 그다지 무겁게 다뤄지지 않는다[6] 현재는 양쪽 모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부른다.[7] 식량 생산량 증가, 항생제 발명, 위생개념 강화에 기인한다.[8] 아니, 사실 프로이트 시절에는 엄밀히 말해서 정신과 의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아직 의학의 분과가 불분명한 시절이었고, 현재 정신질환으로 보는 것들은 이 시절에는 다른 질환에 의한 증상/종교적 문제/정상범주/범죄자의 특질 정도로 보았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의학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내과적 방법에 입각한 향정신성 의약품의 개발로 1940-50년대 사이에 정신의학은 다시 한 번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현재의 정신의학의 주류는 바로 이 약물, 그리고 내분비적/신경계적인 반응에 있으며, 정신분석학과 기타 인지치료 등은 비주류인 상태.[9] 애초에 모든 심리와 무의식과 행동 즉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성적 충동으로 규정짓는다 봐도 과언이 아니니.[10] 혹은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11] 이는 검증가능한 연구방법이 미흡하기에 크게 다뤄지지 않은 영향도 크다.[12]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는 이미 그전에 브로일러 등에 의해 시도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미 최면술이나 자유기술법 등이 나타났다.[13] 현대심리학정신분석학은 크게 다른 학문이다. 내용상으로는 주요 응용심리학에서 그 개념들을 채용해 아직 현장치료에 응용되고 있지만 학문의 성격은 철학과 더 가까운 분야.[14] 2015년 현재 한국의 국제정신분석학회 정회원은 단 5명이다. 정도언(서울대), 유재학(건국대), 이무석(전남대), 홍택유, 김미경[15] 사실 프로이트가 오히려 여성학에 기여한 부분이 많은데, 일부 여성학은 그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파생된 이론이 많기 때문이다. 즉, 학문적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이론을 학문적으로 비판하여 발전시켜나갔다.[16] 뿐만 아니라 당시에 히스테리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부정하고 남성도 히스테리를 가질 수 있다 주장하여 의사학회에서 제명당하기 까지 하였다.[17] 과학이론으로써 반증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과학이론이라도 그에 반증하는 실험이나 자료가 나오면 그 이론은 폐기되거나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일단 결과가 나온 후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기 때문에 반증 따위 나올 수 있을리가 없다. 그의 저서 꿈의 해석에서는 자신의 이론을 반증하는 꿈을 꾼 환자에 대한 사례에서, 나의 이론이 틀렸으면 하는 무의식적 소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18] 프로이트는 이러한 융의 태도를 비판하였지만, 융은 그러한 비판을 간단히 씹어버렸다.[19] Anzieu, D. (1986). Freud's self-analysis. Hogarth Press and the Institute of Psycho-analysis.; Hardin, H. T. (1987). On the vicissitudes of Freud's early mothering: I. Early environment and loss. The Psychoanalytic Quarterly.; Hardin, H. T. (1988). On the vicissitudes of Freud's early mothering: II. Alienation from his biological mother. The Psychoanalytic Quarterly.; Hardin, H. T. (1988). On the vicissitudes of Freud's early mothering: III. Freiberg, screen memories, and loss. The Psychoanalytic Quarterly.[20] MacKinnon, D. W., & Dukes, W. F. (1962). Repression. Psychology in the making. New York: Knopf, p702,[21] Louis Althusser, 푸코의 스승이자 정치철학, 인류학 등에서 이데올로기 이론 연구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Ideological State Apparatus 개념이나 호명 interpellation 등은 이데올로기와 국가, 정치의 문제를 논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로 다뤄진다.[22] 기존의 과학이 정신분석학을 때려눕혀서 발언의 기회를 없애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과, 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소통의 범주에 넣기 위한 노력의 산실[23] 실제로 '오인'의 개념은 국가와 권력, 정치 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알튀세르의 좀 더 자세한 평이 궁금하다면 '프로이트와 라캉'이라는 그의 짧은 글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24] 스트레이치는 그래서 나중에 라깡에게 여러모로 까였다. Ego는 라틴어의 1인칭 대명사, id는 영어의 it에 해당하는 라틴어의 중성 3인칭 대명사. 그러니까 이 인간 멀쩡한 독일어로 써 있는 걸 괜히 라틴어로 바꾼 거다.[25] 예를 들면, 하이데거의 개념 중 하나인 '피투성'은 독일어 원어로는 Geworfenheit. 우리말로 풀어쓰면 '내던져짐'. 'geworfen'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던지다(werfen)'의 과거분사형이다.[26] 다만 독일 철학은 다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애초에 쓰는 말이 쉽다고 그 사유의 깊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 데다가 기존의 개념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 좀 그렇다 싶으면 별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버린다.[27] 이런 경향은 재야라고 어디 가는 것이 아니어서, 80년대에 숱하게 번역되어 90년대 초까지 출판되던 사회주의 관련 철학서는 차라리 대학교 교재가 읽기 쉬운 면이 있었다.[28]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