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color: #C3C96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메이지 시대| 메이지 시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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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에 후미마로 | 도조 히데키 | 고이소 구니아키 | 스즈키 간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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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 | → | 제41~44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 → | 제45~49대 고이즈미 신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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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출생 | 1942년 1월 8일 ([age(1942-01-08)]세) | ||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 |||
재임기간 | 제87대 내각총리대신 | ||
2001년 4월 26일 ~ 2003년 11월 18일 | |||
제88대 내각총리대신 | |||
2003년 11월 19일 ~ 2005년 9월 20일 | |||
제89대 내각총리대신 | |||
2005년 9월 21일 ~ 2006년 9월 26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가족 | 외조부 고이즈미 마타지로[1] 부친 고이즈미 준야[2] 모친 고이즈미 요시에 전처 미야모토 가요코 (이혼)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며느리 타키가와 크리스텔 삼남 미야모토 요시나가 | |
학력 | 요코스카 시립 야마자키 초등학교 (졸업) 요코스카시 마보리 중학교 (졸업)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고등학교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 (경제학 / 학사) | ||
신체 | 169cm, A형 | ||
종교 | 신토 | ||
정당 | |||
지역구 | 가나가와 11구 | ||
의원 선수 | 12 (중) | ||
의원 대수 |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 ||
약력 | 후쿠다 다케오 비서관 중의원 의원 대장정무차관[3] 제69-70·81대 후생대신 제55대 우정대신 제20대 자유민주당 총재 제87-89대 내각총리대신 제133대 외무대신[겸임] 제38대 농림수산대신[겸임]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제87~89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정치적 상황 변동에 따라 총리 교체가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일본치고는 상당히 긴 기간인 5년 5개월을 재임했으며, 그렇게 4년 11개월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제치고 전후 최장기 재임 4위 기록을 세웠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 정계에서 연임을 포함해 총리 임기[6]를 다 채우고 나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단임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 5년보다 더 길게 재임하였고, 그 재임 기간 중 3년 8개월(2003년 ~ 2006년)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겹친다. 게다가 정치인 치고 개성 강한 헤어 스타일을[7] 유지해서 한국인에게 여러 의미로 기억되는 일본 총리가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랜 재임기간 때문에 그에 비례해 악명을 널리 떨친 측면도 있다.[8]
한국에서 고이즈미의 이미지는 지속적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독도 문제 등으로 인해 극우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긴 했지만, 사실 후술되어있듯 고이즈미 담화를 발표하며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고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사죄의 목소리를 전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모습 역시 제법 보였다.[9] #
어찌 됐든 이 사람만큼 한국인들에게 혐오를 받은 일본 총리는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중반 한창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시기엔 '고이즈미 가지고 놀기' 등의 플래시 게임이 국내에서 유행하기도 했었으며, 같은 이유로 불멸의 이순신(게임)에서 적으로 나오거나,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독도 지키기'에서 최종 보스로 나오는 등 당시 기사, 고이즈미 가지고 놀기 게임 한국에서 일본의 악명 높은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데 세월이 약인지 고이즈미의 악명도 퇴임 후 [age(2006-09-26)]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바랬으며, 퇴임 이후 그의 정치적 제자이기도 했던[10] 아베 신조가 2013년 재집권 시작부터 막 나갈 기질을 보이면서 고이즈미를 능가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아베 집권기 당시 일본이 한창 우경화되었을 때는 아예 "고이즈미 시절 일본이 그나마 나았다"고 하소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고이즈미가 과거사 관련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은 많았지만 현대사는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았는데, 아베 정권 들어선 현대사의 대명사인 한일월드컵 개최 사실을 삭제한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으니. 또 2003년 유사법제 3법 통과 등 군사대국화 기도로 논란이 있었으나, 아베만큼은 아니었다.
이 외에도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아소 다로나 모미이 가츠토,[11] 햐쿠타 나오키, 그리고 다모가미 도시오 등 다수가 미친 존재감을 보이면서 한국에서 고이즈미의 존재감은 점점 묻히고 있다. 도리어 "이런 인간들을 거느리고도 결정적인 선을 넘지 않았던 고이즈미는 의외로 정상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재평가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독도 문제 만을 제외하면 그의 후임인 아베 신조나 일부 극우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보다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의외로 상식 선에 들었던 괜찮은 총리였다는 평가도 제법 있다. 실제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한 고이즈미 담화를 발표 했고, 본인이 직접 한국에 내한을 와서 서대문 형무소에도 갔다오는 등 일본 제국이 과거에 저질렀던 만행들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 하면 서 어느 정도 참회하는 모습도 보였다. 2004년에는 한국을 안보 우호국격인 백색 국가에 지정해 신뢰할 만한 나라라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임기 초반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국립 추도시설로 쓰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일본 우익들의 성화 때문에 무위로 끝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최초의 북일정상회담(고이즈미-김정일)도 이 시기(2002, 2004)에 이뤄졌다. 이러한 재평가는 청출어람을 이룬 그의 후임자의 탓도 상당하다.
이런 이면엔 대외정책 문제는 미일동맹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국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고이즈미는 특별한 외교적 지향이나 대외정책에 대한 정견이 없었으며, 내정개혁이 임기 내내 추구한 단일 목표였다. 그 밖의 다른 분야 정책들은 그 달성을 위해 희생되어도 좋다는 것이 내각의 일관된 기조였다. 고이즈미가 보여온 이러한 혼란스러운 모습은 이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2. 생애
3. 성격
일명 '헨진(変人:괴짜)'[12], '일언거사(一言居士)'로 불리는 등 파격적이고 독설적인 언동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 네티즌들로부터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이를 말해준다.이 성격 문제 때문에, 그의 아내였던 미야모토 카요코는 결혼한 지 4년 만에 3남 요시나가(佳長)를 임신하고 있던 중에 이혼을 당했다. 고이즈미 집안에 문제가 있다는 설도 자자하다. 또한 카요코는 이혼당한 후, 두고 온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와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때마다 고이즈미가 거절해서 멀쩡히 살아 있는 어머니와 아들들을 생이별하게 만들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인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소문.[13]
소설가 이케미야 쇼이치로에게 "오다 노부나가와 닮은 꼴"이라는 평가를 받고 대단히 흡족해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의 열렬한 팬이라고.[14]# 여담으로 이 소설가는 소설 <혼노지>의 작가로 이 사람의 소설 <혼노지>는 한국에 <난세의 파천황 오다 노부나가>라는 제목으로 정발된 바 있다.
4. 어록
출전은 일본어 위키인용집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문서.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출처는 오가타 구니히코의 '괴짜 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이다.- 결국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의 후광을 곱빼기로 받아 당선되었습니다. - 1972년 12월, 중의원 당선 시신동아 2005.11.01 통권 554호 (238~253쪽)
- 복지를 담당하는 부서이니 노인에게도 이해가 되는 아름다운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하시오. - 1989년 3월 후생성 예산설명 시
- 자민당이 증인심문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국회에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가라 생각한다. 나카소네는 좀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 - 1989년 4월 리크루트 사건 시
- 일본 경제의 발전은 민간이 노력해서 성장해 왔다. 우정의 일은 관업(官業)이 민업(民業)을 압박하고 있다. 마찰이 있는 부서지만 부서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다.
- 1992년 12월 우정대신 취임 기자회견 시
- 알기 쉽게 말하자면 부하가 책임을 지고 할복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1996년 11월, 뇌물수수 의혹 후생사무차관 사직 승인 시
- 후보자는 유권자를 고르지 못한다. 헌금을 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알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1996년 12월 후생성 소관 공익 법인 정치단체에게서 뇌물 수수시
- 행정개혁의 제일보는 정치가 자신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 1997년 9월 중의원 연속 재직 25년 표창 거부 시
- 새로운 부서의 이름이 너무나 가볍다. 노동복지성이라면 각의에 서명하지 않겠다.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
- 1998년 1월 재편예정 명칭 반대 시
- 보통 사람도 군인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남은 것은 괴짜(変人)뿐이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데 정계에서는 괴짜라고 평한다. 진짜 괴짜는 나가타초다.
- 2000년 7월 다나카 마키코의 보통 사람, 군인, 괴짜 발언 인용. 나가타초는 일본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동의 이름으로 "일본 정치권"을 의미한다. 영국에서의 웨스트민스터, 한국 언론사가 사용하는 여의도 혹은 여의도정치와 비슷한 맥락이다.
- 나는 괴짜라고 불리지만, 괴짜라는 것은 변혁하는 사람에 대한 칭찬이다.
- 2001년 3월 파벌 소속 의원 모임에서
-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
- 미국 조지아주 시아일랜드에서 개최된 G8 회담에 참가하여, 2004년 6월 9일 기념 촬영을 했을 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이탈리아 총리에게 말을 걸었을 때의 기행. 베를루스코니가 일반적인 정치인이었다면야 당연히 고이즈미의 괴짜 기질만 돋보였겠으나, 베를루스코니 또한 훗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썬탠을 잘했다고 말하는 등의 여러 망언으로 유명한 막장 정치인이다. 그런 베를루스코니조차 고이즈미의 어처구니없는 언행에 기막히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고 주변의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고이즈미를 향해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고이즈미는 이에 대해 '땡큐!'라고 대답했다.(…)
- 상술한 이야기는 일본언론을 통해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그 실체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있다. TIME지를 비롯한 영미권 언론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I love Italy! Berlusconi! Spaghetti!"(나는 이탈리아를 사랑해요! 베를루스코니! 스파게티!)라고 말했고, 외신 기자들의 반응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일본 내에서 실제와 다르게 과장된 이야기인 것으로 사료된다. #
- 그 때 갈릴레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16] 나는, 지금, 국회에서 우정국 민영화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다시 한번 국민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말로 우정국의 일은 국가 공무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지. 민간인으로는 안 되는 것인지?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공무원 삭감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어떤 행정 개혁이 가능하겠습니까?
- 우정 해산 때의 총리 기자회견. 고이즈미나 다른 우파 정치인들이 보기에, 우정성(郵政省)은 일본 국민들에게 철밥통 공무원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옥상옥식의 비효율적인 조직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관료주의로 인해서 많은 정권들이 어떻게든 손을 보려고 했지만 로비에 밀려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런 관점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 민영화의 관점에서 나왔다는 의견 역시 존재.
- 인생 가지가지, 회사도 가지가지, 사원도 가지가지 (人生いろいろ、会社もいろいろ、社員もいろいろ)
- 2004년 국민연금 미납 사실 때문에 곤혹을 치르던 와중에, 알고 보니 한 후원자의 회사에 적을 두고 거기서 직장인 신분으로 월급을 받고 연금보험료까지 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나자 한 소리. 덤으로 저 소리를 하면서 "당시 사장은 '자네 일은 의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회사에 출근한 사실은 없지만 나중에 중의원이 됐으니 사장 말대로 일을 제대로 한 셈"이라는 개드립을 날려 자민당의 지지율은 급전직하, 참의원도 패배.[17] 결국 저 말은 2004년 최고의 유행어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게 된다.
원래 저 말은 시마쿠라 치요코(島倉千代子)의 노래인 "人生いろいろ"의 가사의 패러디이다. 원래 가사는 "인생 가지가지, 남자도 가지가지, 여자도 가지가지"(人生いろいろ、男もいろいろ、女だっていろいろ). 고이즈미의 이 발언 때문에 시마쿠라 치요코는 2004년 연말에는 8년 만에 NHK 홍백가합전까지 출장하게 됐다.
- 어디가 전투지역이고 어디가 비전투지역인지 나한테 물어본다고 알 리가 없다.(私に今、どこが戦闘地域でどこが非戦闘地域か聞かれても、分かるはずがない)
- 이라크 전쟁 자위대의 해외 파병과 관련하여 민주당 의원 간 나오토가 그 근거로 든 자위대가 활동가능하다고 하는 소위 '비전투 지역'이라는 지역이 지금 전쟁통인 이라크에 어디 있는지, 단 한 곳만이라도 집어달라며 질의하자 한 답변이다. 이 답변을 들은 간 나오토가 어이 없다는 말투로 "훌륭한 답변이네요"라고 받아치자 좌중이 웃음바다로 변한건 덤. 이후 민주당이 제출한 내각불신임결의안에 어이없는 답변이나 하고 앉아있다며 그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간과 고이즈미의 해당 설전은 일본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에도 나왔다.
5. 가족 관계
- 조부 사메지마 아키미사에몬(鮫島 彌三左衛門): 동네에서 어선을 관리하던 선주로, 준이치로의 아버지 준야가 11세 때 세상을 떠났다.
- 외조부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
- 적외조모 아야베 나오(綾部ナオ): 게이샤 출신으로, 마타지로의 본처였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
- 생외조모 이시카와 하츠(石川ハツ): 나오가 자녀를 낳지 못하자, 마타지로는 하츠와의 사이에서 요시에를 낳았다. 이후 하츠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3남매를 낳았다고 한다.
- 아버지 사메지마 준야(鮫島純也): 준야는 형제자매가 8명 있는데 그 중 준야는 3남 6녀 중 차남이다. 결혼해서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데릴사위가 되면서 고이즈미로 성씨를 바꿨다.
- 어머니 고이즈미 요시에(小泉芳江)
- 첫째 누나 고이즈미 미치코(小泉道子):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지만, 이혼하고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다. 딸도 외가를 따라 고이즈미로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 둘째 누나 고이즈미 다카코(小泉隆子)
- 셋째 누나 고이즈미 노부코(小泉信子): 젊어서부터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밑에서 정치를 배웠고, 쭉 독신으로 살며 남동생 준이치로의 정치활동을 도왔다(정책비서). 준이치로가 이혼한 후로는 일상생활 또한 챙겼다고.
- 남동생 고이즈미 마사야(小泉正也): 누나 노부코와 마찬가지로 형 준이치로의 정치활동을 도왔다(사설비서). 마사야의 아내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아내인 노리코(典子)의 사촌 남동생의 딸이라고 한다.
- 전처 미야모토 카요코(宮本佳代子): 에스에스(エスエス) 제약회사의 창업주 타이도 쇼잔(泰道照山)의 외손녀. 대학교 4학년 때 맞선을 보고는 그날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했다고 한다. 이혼 후에는 공인중개사로 일했다. #
-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郞)
-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프리랜서 아나운서 타키가와 크리스텔과 결혼, 아들 고이즈미 미치노스케(小泉道之助)를 낳았다.
- 3남 미야모토 요시나가(宮本佳長)
5.1. 가정사
1977년, 당시 35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21세의 미야모토 카요코와 맞선을 봤고, 당일 프로포즈를 해 다음해인 1978년 도쿄 프린스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하였다. 하지만 카요코에게 아버지와도 같았던 외할아버지 쇼잔은 이 결혼을 반대했다.[18] 고이즈미 일족은 제약회사 회장인 쇼잔으로부터 카요코가 물려받을 재산을 기대한 듯하지만,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한 카요코에게 쇼잔은 금전적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카요코는 금방 임신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이즈미 가문에서 여러 갈등을 겪었고, 결국 부부는 4년 후인 1982년에 이혼하였다. 당시 카요코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고, 첫째와 둘째는 고이즈미 일가에 두고 나와야 했다. 두 아이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헤어져 고모들과 가정부들의 손에 자라며,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때 준이치로도 맘고생이 심했는지 "이혼이 결혼보다 10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라며, 그후로도 영영 재혼을 하지 않았다. 이건 카요코도 비슷했는지, 둘 다 이혼하고 [age(1982-01-0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쭉 독신으로 살고 있다.
장남인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郎, 1978년생, [age(1978-07-10)]세) #는 일본에서 드라마나 영화의 주조연급 배우로 활약 중이다. 대표작은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직장의 신의 원작인 파견의 품격(2007년작)인데, 파견사원을 물심양면 도와주는 사람 좋은 직장상사로 나온다. 재미있는 건 아버지 고이즈미 총리는 각종 노동법을 개악시킨 걸로 유명한데, 드라마 <파견의 품격>에서 고타로가 연기한 '사토나카 켄스케'는 노동법의 부조리에 괴로워 한다는 설정이었다는 점. 물론 선역뿐 아니라 악역으로써도 활약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변두리 로켓 (下町ロケット)>에서 주인공의 회사와 경쟁하는 대기업의 NASA 엘리트 출신의 사장으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압박하는 포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준이치로는 자식들이 정치에 입문하는 걸 반대했기에 자연스럽게 장남인 고타로는 다른 쪽 일을 알아보다 배우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달리 표정이 호감상이어서 한국의 일본 드라마 팬들에게도 나름 인기를 끌었는데, 알고 보니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이라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래도 정치 활동과는 거리를 두고 연기 쪽에 몰두하는 행보를 보이는 터라 국내에서도 크게 논란거리가 되진 않는다. 2010년대 들어선 미국 디즈니사 + 마블 코믹스의 첫 합작품인 빅 히어로 6에서 테디 하마다의 성우로도 활약했다.[19]
드라마 외에도 활약 중인데, 고시엔 등의 여러 스포츠 대회의 메인 캐스터로 자주 나오고, 예능에서는 선배 배우인 사사노 타카시와 함께 블랙마요네즈와 베키가 진행하는 "인간 관찰 버라이어티 모니터링"에 레귤러 패널로, 그리고 매주 다른 연예인들과 하룻밤을 지내는 예능인 모노모노 후타리에서 바나나맨과 함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1981년생, [age(1981-04-14)]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치계에 입문해서 활약중이다. 위에 언급된대로 아버지가 정치에 뜻을 두지 말라고 반대했지만 본인이 강하게 원하는터라 허락은 해줬는데, 그 대신 직접 뛰면서 배우라며 크게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2006년 6월 아버지가 총리직을 내놓은 뒤로 정치의 중심에서 급속히 멀어지자 미국에서 정치학 공부 중이던 신지로가 급히 귀국해 아버지의 개인 비서 자격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 2008년 아버지의 공식 정계 은퇴 후 후계자가 됐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나가 아버지의 지역구인 가나가와현 제11구에서 중의원에 당선됐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재선에 성공해 현재 5선 의원이다. 2019년 중순엔 한국의 환경부장관에 해당하는 환경대신에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2019년 8월 7일, 4살 연상의 전직 아나운서 겸 프리랜서 타키가와 크리스텔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이때 이미 임신 중이었고, 2020년 1월 17일에 장남 고이즈미 미치노스케를 출산했다. 기타 고이즈미 신지로의 행보는 본인의 항목을 참조.
막내(3남)인 미야모토 요시나가는 부모의 이혼 후 출생하여 어머니 카요코의 곁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중학교까지는 일본에서 다닌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고등학교를 마친 후로는 교토외국어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를 만나려고도 했으나 거부당했고, 어머니 카요코와 함께 친할머니 요시에의 장례식에도 참석하려 했지만 제지당했다고 한다. 카요코와 요시나가는 간곡히 애원하여 간신히 분향만 할 수 있었고, 분향이 끝나자 곧바로 쫓겨났다고. 이때 준이치로, 고타로, 신지로는 카요코와 요시나가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2016년 카요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8년 고이즈미가 정계 은퇴하면서 차남 신지로에게 “집안일은 모두 네게 맡긴다. 3형제끼리 친하게 지내라.”라고 했고, 이후 3형제가 만났다고. 그리고 2013년 말 요시나가의 결혼식 땐 다섯 식구(본인, 전 남편(준이치로), 아들 셋을 말하는 듯)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로서 아들 교육은 나쁘지 않게 했는지 2남 신지로가 타키가와 크리스텔과 결혼한다고 발표했을 때, "개인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아버지를 본받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아버지로서는 아버지를 본받고 싶다."리는 발언을 하기도 한 걸 보면, 정치인으로서 여러 가지 바쁜 와중에도 자녀들에게는 나름대로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한 듯하다.
6.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69 | 제3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구)가나가와 2구[20] | | 103,381 (16.5%) | 낙선 (5위) | |
1972 | 제3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22,188 (16.8%) | 당선 (4위) | 초선 | ||
1976 | 제3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17,698 (14.5%) | 재선 | |||
1979 |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5,125 (16.4%) | 당선 (3위) | 3선 | ||
1980 |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6,681 (17.5%) | 당선 (2위) | 4선 | ||
1983 | 제3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15,274 (15.1%) | 당선 (3위) | 5선 | ||
1986 |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67,838 (20.8%) | 당선 (1위) | 6선 | ||
1990 |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68,997 (18.4%) | 7선 | |||
1993 |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9,269 (16.5%) | 당선 (2위) | 8선[21] | ||
1996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가나가와 11구[22] | 118,955 (58.2%) | 당선 (1위) | 9선 |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57,335 (69.0%) | 10선 | |||
2003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74,374 (74.4%) | 11선[23] | |||
2005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7,037 (73.2%) | 12선[24] |
7. 여담
- 참여정부 시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한창 반일 감정이 심할 때,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사진에서 배경으로 사용된 훈민정음 벽지에 '고이즈미 ㅆㅂㄹㅁ'라 합성한 짤[25]이 유행한 바 있다. 그의 제자가 고이즈미보다 더한 병크를 저지른 이후에는 고이즈미를 까는 여론은 많이 사라진 편이다.
- 의외로 외모에 대한 평가가 좋다. 실제로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면 제법 미남이기는 했다.# 사실 나이를 감안하면 총리 재임 시절에도 잘생긴 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전자 덕분인지는 몰라도 슬하의 두 아들 역시 각각 배우, 미남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는 이런 아버지의 후광을 제대로 받아 정치인으로선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차기 총리 후보로도 꼽힌 적이 있었다. 다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백발이 다 되었다.[26]
- 특이한 헤어 스타일과 기행들로 알려져 있어서인지 해외에서는 일본의 마스코트격 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한국 내에서 나오는 CF들 중 일본인 캐릭터를 내세운 CF 중엔 고이즈미를 모델로 한 듯한 인물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 일본의 3대 폭력단 중 하나인 이나가와카이와 유착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10회나 연임한 선거대책본부장 타케우치 키요시가 이나가와카이 계열 요코스카카이의 조직원 출신이었고, 두목 이시이 타카마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와 요미우리 신문과 대립이 시작되었고, 차남 또한 요미우리와 대립 중이다.
- 정치인 오자키 유키오를 존경해서 강연에서도 종종 그의 말을 인용한다고. 사실 외조부 고이즈미 마타지로가 입헌개진당에 참가, 유흥회 시절에 오자키 유키오와 행동을 함께 한 바 있었다고 한다.
-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부시와 함께 미국 방문 당시 엘비스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가 있는 멤피스에도 방문했는데, 여기서 프리실라 프레슬리(부인)와 리사 마리 프레슬리(딸)도 만났다. 그리고 그레이스랜드에는 엘비스가 살아 생전 쓰고 다녔던, 엘비스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선글라스가 유리관 속에 넣어져서 전시되어 있었는데, 고이즈미는 이것을 당당하게 꺼내서 쓰고 엘비스 춤을 흉내냈다. 엘비스 덕후들로서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역시 총리쯤 되면 저 유일무이한 아이템도 써볼 수 있고 좋구나!"라는 조롱과 부러움이 섞인 탄식이 나오는 장면이었다고. 당시 영상.
- 일본의 록밴드 X JAPAN의 팬으로 유명하다. 고이즈미의 영향으로 X JAPAN의 노래 중에서 Forever Love가 자민당 CM 송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산업부대신을 지냈던 다카이치 사나에에 의하면, 고이즈미와 가라오케를 갔을때 Rusty Nail을 불렀는데 고이즈미가 모르는 노래였다고 한 것을 보면 발라드 곡만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고이즈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Tears라서 Tears를 CM 송으로 쓰려고 했는데 선거를 앞두고 눈물은 좋지 않다 생각했는지 결국 Forever Love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고이즈미는 X JAPAN의 멤버 hide와 같은 요코스카시 출신이다. hide 사후, 고이즈미는 자신의 지역구이기도 한 요코스카에 hide 기념관 설립에 협력하였다. 비교적 최근 2016년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We are X> 일본 로드쇼에도 참석하는 등 여전히 팬이다.
- 청년 시절에 한국 가수 계은숙의 열혈팬이라 팬클럽 회장을 맡았던 적도 있었다는 소문이 있으나, 팬 카페에 가입했다는 얘기가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계은숙의 팬임을 말하는 고이즈미 인터뷰 사실 고이즈미는 1942년생이고 계은숙은 1962년생이라, 계은숙이 데뷔했을 때 고이즈미는 이미 40대였다. 이후 일본에 겨울연가 붐이 일었을땐 여주인공이었던 최지우를 만나 자신도 겨울연가 잘 봤다며 촬영지 남이섬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은퇴한 뒤인 2009년 대괴수 배틀 울트라 은하전설 THE MOVIE에서 다름 아닌 울트라맨 킹의 성우를 맡아서 수많은 특덕후들을 충공깽에 빠뜨린 적이 있다.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힘없는 발성과, 국어책 읽기로 더빙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 경주마 하루 우라라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공식 석상에서 "하루 우라라는 우리에게 지더라도 굴하지 말라는 희망을 준다." "하루 우라라, 한번쯤은 이겨 줬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교통사고 방지 부적으로 알려져있는 하루 우라라의 응원 마권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2005년 한국 영화 청연이 친일 논란 등으로 흥행 실패를 하게 된 원흉이 준이치로의 외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임이 밝혀져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주인공 박경원을 후원해주는 일본인의 모델이 다름아닌 고이즈미 마타지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물론 청연이 망한 원인은 이것 뿐만 아니라 애초에 주인공 박경원이 친일 행적을 한 인물이였고, 그 외에도 박경원이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였다는 제작사의 언플이 실패로 돌아가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긴 했다.
- 아이돌 사변 애니메이션판 오리지널 캐릭터 중 메인 빌런으로 보이는 앵개당 당수 사쿠라바 소이치로 의원의 외모가 고이즈미 총리와 판박이다.
- 2023년 11월 일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21세기에 취임한 전현직 일본 총리 9명 중 가장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체 응답자의 호감도 평균 점수를 10점 만점 기준으로 정했을 때, 고이즈미는 6.6점의 점수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현직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는 9명 중 6위(4.2점)에 그쳤으며, 최하위는 하토야마 유키오(3.1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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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 고이즈미 담화 · 다케시마의 날 · 북일정상회담 | |||
역대 선거 | 제33대 중의원, 제34대 중의원, 제35대 중의원, 제36대 중의원, 제37대 중의원, 제38대 중의원, 제39대 중의원, 제40대 중의원, 제41대 중의원, 제42대 중의원, 제43대 중의원, 제44대 중의원 | |||
소속 | 자유민주당 · 세이와 정책연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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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선 중의원 의원, 중의원 부의장, 체신대신, 요코스카시장 역임.[2] 9선 중의원, 방위청장관 역임. 데릴사위로 본성은 사메지마(鮫島).[3] 現 재무대신 정무관[겸임] 내각총리대신과 겸임[겸임] 내각총리대신과 겸임[6] 거의 중의원의 임기 만기인 4년을 뜻한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정부(내각)이 의회 신임에 종속되므로 의회 임기가 곧 총리의 임기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7]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오히려 평범했다.[8] 아베 신조가 한국인들에게 악명을 떨친 것 또한 오랜 재임기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망언의 수위나 극우적 색체부터가 고이즈미를 따위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훨씬 강하기도 했지만.[9]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극우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아베 신조 또한 "혐한시위 하는 애들은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하는 등 마냥 극우적인 모습만 보이지는 않았다.[10] 아베 신조는 총리로 처음 취임한 2006년 이전에, 직전 내각이었던 고이즈미 정권에서 관방장관을 지냈으며, 90대 내각총리대신 지명 역시 당시 현직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원자력을 중요시하는 아베 신조와 탈원전을 주장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관계는 틀어져 현재는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자세한 것은 후술한다.[11] NHK 제21대 회장이다. 아베 집권기 NHK를 우경화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12] 다나카 마키코가 1998년 자민당 총재선거 정국에서 고이즈미를 헨진이라 부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13] 다만 후술되어 있듯, 2013년에는 3남의 결혼식에서 온 가족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고 한다.[14]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의 3영걸이라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명 중 누구를 닮았는지로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신분과 외모에 컴플렉스가 많았던 히데요시, 최종 승자이지만 음흉하고 속이 검은 이미지가 강한 이에야스보다는 호방한 성격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장 적은 노부나가의 인기가 제일 높기에 노부나가를 닮았다는 게 대개 최고의 칭찬이기 마련.[15] 하시모토는 고이즈미의 게이오기주쿠대학 선배다.[16]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17] 참고로 그때 '가지가지' 드립을 치다가 질의를 하고 있던 간 나오토 당시 민주당 의원은 어이없다는 말투로 "총리도 참 가지가지 하시네요."라고 맞받아쳤다.[18] 쇼잔은 자민당 소장파 의원들이 탈당하여 만든 신자유클럽의 지지자였다.[19] 여담으로 원판 성우가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유명한 다니엘 헤니였다. 뭐, 한국인 캐릭터라는 고고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제이미 정이 녹음하고, 일본에서는 일본 성우 아사노 마스미가 녹음했지만 말이다.[20] 중선거구제 하에서의 지역구[21]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22]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지역구[23] 2차 내각.[24] 3차 내각.[25] 원본은 2005년 부산광역시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기간에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당시 찍은 사진이다.[26] 물론 고이즈미는 현재 80대 초반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후진타오 전 주석, 마틴 스콜세지, 폴 매카트니 등과 비슷한 연령대다. 해당 인물들 전부 지금은 백발이 되고 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