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은숙 桂銀淑 | Kye Eunsook |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출생 | 1961년 7월 28일 ([age(1961-07-28)]세)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수안 계씨 |
신체 | 161cm, 45kg |
학력 | 서울답십리초등학교 (졸업) 성수여자중학교 (졸업) 천호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
가족 | 아버지[1] |
데뷔 | 1977년 럭키샴푸 CF |
수상 | 1990년 전 일본가요제 특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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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일본 양국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가수.1985년 일본에 데뷔한 원조 한류 스타로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와 성량, 뛰어난 감정 표현과 미모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2. 가족사
어머니는 본부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서울에 이미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속여 허위로 결혼식까지 올리며 계은숙을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은숙을 임신한 상태에서 집을 나갔고, 그녀는 그동안 아버지가 일찍 사망했다고 알고 자랐다. 사춘기 시절 어머니의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듣게 되자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 어머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한참을 방황했다.이후 은사를 찾아가 '수안 계씨 종친회'를 알게 돼 편지를 쓰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을 성사시켰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어머니에게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후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었다. 6.25 전쟁 때 가족을 잃고 고아로 자라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오직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6.25 피난 이후 어머니와 연을 맺기 전에 이미 본부인이 있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어머니는 당당하게 결혼했고 결혼 이후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며 두 딸을 데리고 고향인 충청남도 서산시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10여년간 치매를 앓다 2016년 사망했다.
3. 활동
아역 출신으로 가수 활동을 하다 진로를 바꿔서 광고모델로 전업했고 이후 가수로 복귀했다.[2] 지금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데뷔한 시기엔 높고 째지는 음색을 갖고 있었다. 째지면서도 허스키함이 섞인 독특한 그녀만의 음색으로 인기를 끌었고, 198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여자 신인상, 1982년 KBS 가요대상 본상 후보에 드는 등, 80년대 초반에 인기를 얻으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당시 미모와 음색은 출중했으나 상대적으로 높은 인기는 끌지 못했다. 그러다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浜 圭介)를 만나 일본으로 건너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꽃피우게 된다. 일본에서는 엔카를 주로 불렀고 인기정상에 우뚝섰다.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식사 자리에도 참가했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예전에 팬클럽 회장을 한 적도 있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실제로는 회장까지는 아니었고, 열혈팬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던 2000년에는 SBS 드라마 덕이의 주제가를 불렀다.#
일본에선 조용필보다도 인기가 많았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보다 사랑받은 한국인 엔카 가수는 없었으며, 특유의 관능적인 분위기와 절제된 감정 표현, 뛰어난 음색으로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홍백가합전에 7회나 연속 출연한 유일한 한국인이며 한국인 가수 중에서 최다 출연한 인물이기도 하다.[3]
'すずめの淚'[4]
노래할 때 일본어에 많은 된소리(ㄲ..), 거센소리(ㅋ..), 파찰음(ㅈ,ㅊ), 마찰음(ㅅ,ㅎ), 목 뒤쪽에서 나는 후음(ㅎ), 연구개음(ㄱ), 모음에서는 저설모음(아), 후설모음(우,오) 등에서 허스키함이 더 돋보인다. 이 유니크한 음색은 그녀에게 대체할 수 없는 개성을 부여했다. 지금까지도 계은숙을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을 공연 영상 댓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24년 6월 11일 MBN 한일톱텐쇼 3회 계은숙쇼에 출연하며 10년여 만에 한국 방송에 복귀했다.
4. 대표곡
노래하며 춤추며 (1980) (1980년 9월 20일 KBS 100분쇼) |
다정한 눈빛으로 (1981) (1982년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
5. 소속사 문제
교통사고 후유증과 소속사와의 반환금 소송, 막대한 세금 추징 같은 악재가 겹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6. 논란 및 사건사고
6.1. 사기 및 마약
2007년 각성제 소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비자 연장이 거부되어 귀국하게 되었다. 계은숙 본인은 두통 때문에 소속사로부터 약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각성제였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2014년 포르쉐 파나메라를 리스 계약을 체결하고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 2015년 6월 25일엔 세 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 결국 2016년 8월 10일 대법원에서 마약 복용 및 위의 포르쉐 리스와 추가의 사기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 2017년 5월엔 사기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
결국 모든 지상파 방송국에서 출연정지가 되었다. 에이미에 이어 모든 지상파의 출연정지 명단에 오른 2번째 여자 연예인이 됐으나 현재는 해제됐다
7. 여담
- 1992년에 결혼해서 1997년 이혼했고 자녀는 없다.
- 2024년 6월 11일에 방송된 MBN의 한일 트롯대결 예능프로그램인 한일톱텐쇼 3회에서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여 2014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한 컴백 무산 및 출연정지의 해제 이후 무려 10년 만에 한국 예능 방송에 출연하였다. 이날 일본에서 있었던 위상이나 각종 에피소드들을 간략하게 소개하여 출연자들을 감탄하게 하였다.[5]
[1] 어머니는 2016년에 사망[2] 출처: 노사연•이성미쇼 2014년 2월 7일 방송[3] 미야자키 미호와 후지와라 토모키가 진행하는 한류 예능 프로그램 '한류라보'에서 "한국인 중에서 가장 많이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가수?"라는 문제를 출제한 적이 있었다.[4] 해당 유튜브 영상의 제목은 すず'ぬ'の淚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5] 일본의 톱가수도 자주 못나가는 홍백가합전에 7회나 출장했던 이야기와 일본 데뷔 초기에 일본어를 단 세 마디밖에 못해서 울었던 스토리, 식당에서 식사하던 도중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대면하여 악수하던 썰이 전파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