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20:50:20

시몬 비젠탈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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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Wiesenthal Center

1. 개요2. 성향3. 비판4. 역사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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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7년 랍비 마빈 하이어가 설립한 유대인 이익단체이다. 약칭은 SWC. 본부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해 있다.

이름과 달리 당사자는 이 조직의 운영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지만 생전 단체의 존재를 영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시몬 비젠탈이 타계한 2005년 이후로도 건재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관용 박물관(Museum of Tolerance)을 운영 중이며 계간지 InMOTion을 발간하고 있다.

2. 성향

유대인이 주축이 된 단체답게 홀로코스트 피해자 지원 문제, 반유대주의 대항 등에 주력한다. 또한 이스라엘에 대해 (해당 단체의 기준에서) '부당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활동도 한다. 기타 인종차별 문제에도 일말의 관심을 보인다.

3. 비판

같은 유대인이 결성한 ADL과 달리 휴머니즘 인권단체가 아니라 시오니즘 단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나치 잔당 추적과 응징이란 방향성은 공익에 부합하지만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 문제에 연대하는 유럽이나 미국좌파들을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을 변호하면 반유대주의로 매도하는 수정시오니스트들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시몬 비젠탈 센터는 제러미 코빈, 라시다 탈리브, 일한 오마르 등을 반유대주의자로 지정했다. 대단한 권력자가 아니라 일개 하원의원들인 탈리브와 오마르를 "올해 최악의 반유대주의자"로 매도한 점에 대해 비판이 일기도 했다.

또한 보통 자유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불법체류자나 반유대주의자로 매도하지 않는데, 시몬 비젠탈 센터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잠재적 반유대주의자로 정의하는 특징이 있다. 이 역시 수정시오니즘의 특징이다.

4. 역사

1977년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풍화시키지 않는 시설'을 모토로 미국 LA에 시몬 비젠탈 센터가 발족되었다.

1995년 과거 일본 극우 잡지인 마르코 폴로홀로코스트 날조론 기사를 게재하자 미국 내 유대인 단체에게 알리며 같이 압력을 가해 데꿀멍시켜 해당 잡지를 퇴갤시킨 적이 있다. 일본은 사회의 우경화와 맞물려 나치에 대한 옹호 서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터라 이 단체에 꾸준히 비판 받고 있다. 美 유대단체, '유대음모론' 日서적 판매중지 요구(연합뉴스)

2007년 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미국편' 1권 유대인 파트 일부 내용이 유대인을 비하했다는 미국 유대계의 항의와 관련,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김영사와 이원복 교수를 만나 기존 서적의 폐기와 내용 수정 등을 요구해 먼나라 이웃나라 10권의 해당 부분이 수정되었다. #

2013년 아소 다로의 나치 드립에도 항의를 해서 아소 다로 측이 발언을 철회했다. ‘나치식 개헌 배우자’ 아소 부총리, 국내외 뭇매에 발언 철회(경향신문)

2017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인종주의에 반대하며 1억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인종차별 터미네이터'?…슈워제네거, 반나치단체 1억 쾌척(뉴스1)

2018년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수년전 찍은 화보에서 나치 문양이 그려진 모자를 썼으며, 그들이 참여한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콘서트 장면의 깃발이 나치 깃발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부소장 랍비 아브라함 쿠퍼의 명의로 공연자와 기획자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홈페이지 뉴스 일본 우익이 이 단체와 관련된 일본 인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해(혹은 동일인이) 제보를 하면서 원폭 피해 이야기까지 끼워넣게 한 것으로 보인다.[1] 게다가 교실이데아 공연 장면에서 쓰인 깃발은 나치 깃발과 전혀 다른 디자인이었는데, 일본의 넷우익이 악마의 편집을 가한 자료를 해당 센터에 뿌리며 선동했다.실제 공연 장면 더 황당한 점은 히틀러를 찬양해 미국 성형외과학회에서 제명된 극우 인사가 제보를 했다는 것이다. 기사 심지어 해당 센터에서 제명시킨 인물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에서는 사과문을 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들인 센터측의 입장문은 이쪽(현재 삭제된 상태)

2023년에는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학살한 나치 무장친위대 14사단(우크라이나 1사단) 갈리시아 부대원 야로슬라프 훈카를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 독립군이랍시고 의회에 초대해 박수를 보낸 캐나다에 항의했다. 결국 훈카를 초청한 앤서니 로타 하원의장은 책임지고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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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제2차 세계 대전 피해자 민족 입장을 대변하는 시몬 비젠탈 센터가 이를 지적했다는 점이 황당하다. 원폭 투하가 일본 항복과 대한민국의 즉각 독립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한국인들이 원폭 투하를 긍정적으로 기념하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게 없으며 한국인 입장에선 일본인 원폭 피해자의 입장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원폭 피해자로 반미 성향까지 있는 나카자와 케이지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핵 문제에서 한국인이 전쟁의 종식이나 해방의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방탄소년단은 나치 관련 문제에서만 사과하고 원폭 티셔츠 문제에서는 절대로 사과하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