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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성 防衛省 | Ministry of Defense | |
<colbgcolor=#005bac><colcolor=#FFF> 약칭 | <colbgcolor=#FFF,#1F2023>MOD |
설립일 | 2007년 1월 9일 |
전신 | 방위청 |
대신 | 나카타니 겐 |
부대신 | 혼다 타로[1] |
대신정무관 | 가네코 요조 코바야시 카즈히로[2] |
사무차관 | 마스다 카즈오 |
소재지 | |
도쿄도 신주쿠구 이치가야혼무라초 5-1 (東京都新宿区市谷本村町5番1号) | |
외국 | 방위장비청 (防衛装備庁) |
직원 수 | 266,244명 (외국 제외) 1,813명 (방위장비청) |
웹사이트 | | | | |
방위성 청사[3]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중앙성청이며, 한국의 국방부에 해당된다. 인적 규모는 27만 명 수준인데, 자위대 대원들을 뺀 '문관조(背広組)' 이른바 관료는 2만이 조금 넘는다. 문관과 '제복조(制服組)'[4] 인원들을 합쳐서 '방위성 직원'이라 한다. 자위대원 가운데는 사무원(군무원)과 교수 등 계약으로 온 민간인과 자위관(군인)이 있다.문관의 경우에는, 여성 비율이 20% 수준을 넘는다. 자위관은 5% 수준이다.
2. 업무
일본의 평화와 독립을 지키고 국가 안전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이를 위해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를 관리・운영하며, 동시에 이에 관한 사무를 임무로 한다. 인원이 많다 보니 예산 규모 등에서 일본 최대의 부서이다.또한 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방위원조협정(미일상호방위원조협정)에 기초한 미국 정부의 책무 중 일본 국내의 사무로 다른 행정기관의 소관이 아닌 것도 맡고 있다.
전쟁 포기 및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일본 헌법에 의거, 일본의 국방을 관장하는 행정기관으로 국가행정조직법 제3조 제2항 및 방위성설치법 제2조에 기초해 내각 관할 하에 설치된다. 장관인 방위대신은 자위대를 포함한 방위성 전체의 조직을 총괄한다. 1954년 7월 1일부터 방위청으로서 총리부의 외국이었고 2001년 중앙성청개편으로 내각부의 외국이었으나 2007년 1월 9일 방위성으로 승격하면서[5] 내각의 총괄에서 독립한 성(省)급 행정기관이 되었다. 방위성으로 승격한 데에는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도 한몫하기도 했다.
성급 기관으로 승격함에 따라 내각법에 의한 주임대신은 총리부와 내각부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에서 방위대신이 되었다. 즉 방위대신은 방위성의 소관사무인 국방을 관리하는 대신으로서 책임을 진다. 이전까지 방위청은 내각총리대신 직속으로 일개 청급 대우였고, 수장 역시 대신이 아니라 장관이기 때문에 권위가 말이 아니었다.[6]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국방부가 직제상으로는 경찰청(!)과 같이 국방청이고 대신 국방청장이 국무위원인 셈이다.[7] 그런데 성(省)으로 승격되고 수장 또한 천황에게서 임명장을 받는 대신으로 바뀌었음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방위대신이 자위대에 대해 명령할 수 있는 행동은 '해상경비행동'뿐이며, 이보다 상위의 '경호출동', '치안출동(治安出動)', 최상위의 '방위출동(防衛出動)[8]'은 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이 명령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으로의 승격에 따른 방위대신(옛 방위청 장관)의 직무상의 변경점은 각의에 대한 청의나 재무대신에 대한 예산 요구, 성령의 제정 등을 방위대신으로서 행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따라서 성으로 승격한 것의 구체적인 효과는 사무절차가 아주 약간 바뀐 것, 청보다 높은 성으로 승격되어 대원들과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된 것, 타국의 국방부와 동급이 된 것 정도가 꼽힌다.
일단 법적으로는 자위대를 총괄하는 방위대신은 현대 군 원칙의 기본이 되는 문민통제에 철저히 문관 출신으로 선출된다. 또한 자위대로 편성된 이후에는 제국시대 때의 반성과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입각하여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나카타니 겐이나 모리모토 사토시 같이 자위관 출신 방위대신들이 종종 배출되었지만 이들은 군복을 벗은 지 10년이 넘은지라 문민으로 간주되었다.
방위주재관(防衛駐在官)이란 이름으로 외무성을 거쳐 국방무관을 파견하고 있다.
2014년 7월 1일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안보 정책을 변경하자 방위성도 모병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2014년 7월 1일부터 기존에 18세 남성에게 SMS나 학교를 통해 배부하던 모병 홍보책자를 각 가정으로 발송했다.
자위대의 주요 인사명령도 이들이 낸다. 자세한 것은 방위성/인사발령을 참고할 것.
여러 홍보 활동도 하고 있다. MAMOR라고 홍보 잡지도 내고 있다.[9] 특이한 게 자위관의 대부분은 남성인데 이 홍보지의 표지 모델은 여성이 거의 맡는다. 2021년엔 100%였다.
3. 예산
방위성과 자위대는 일본 최대의 공무원 조직이지만 예산은 매년 GDP의 단 1% 이하만 배정받는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무지막지 하다보니 단 1% 이하만으로도 세계 5~6위에 달하는 국방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2012년 방위예산은 약 4조 6천억 엔인데, 이는 동년 전 세계 국가들 중 국방비 지출 순위 5위에 해당한다.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이후부터는 매년 방위비를 올리고 있어 2015년 5조 엔(약 52~3조)을 돌파한 이래 매해 작년 예산의 2% 이상씩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GDP 성장과 환율 하락에 따른 증액에 불과할 뿐 주변국과 일본 내 여론을 의식해 아직까진 총액 GDP의 1% 이하를 유지하긴 하다.[10] 일본은 2018년도 방위예산으로 사상최대인 5조 1911억 엔을 편성했으나 2017년 일본의 엔환산 GDP인 552조 4천억 엔의 0.94%에 불과했고, 2022년에도 본예산 기준 일본의 방위비는 5조 4005억 엔, 약 51조 원으로 GDP 대비 0.96%이며, 나토의 방위비 계산 기준인 기타 경비 예산 등을 포함하면 GDP 대비 1.24% 수준에 불과했다. 연말마다 추가로 붙는 보정 방위예산(추경예산)의 규모를 감안하면 NATO 기준 예산을 빼고 1%를 겨우 채우는 수준이기는 하다.
방위성은 2019년부터 NATO 국방비 산출 기준에 맞추어 기존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파병 비용과 퇴역 자위관 연금, 구일본군 유족 지급 비용 등을 예산에 포함시킴으로써 방위예산을 GDP의 1.15%로 산정했다. 이후 2023년까지 이를 1.3%까지 늘릴 예정이다.#
그러나 중국의 계속되는 국방력 팽창과 가속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위협에 더불어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터지면서 세계 정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자 일본 정부가 근본적으로 방위력을 증강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2027년까지 방위비 지출을 GDP의 2%로 급상승시키기로 결정되었다.# 2023년부터 전년도 대비 상승률이 무려 30%에 육박하는 6조 엔 돌파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일본이 마침내 근본적으로 재무장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 역사
경찰예비대 | → | 보안청 | → | 방위청 | → | 방위성 |
- 메이지 헌법 시기인 1872년 창설된 육군성과 해군성이 전신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폐지되었다가 1952년 보안청으로 부활했다.
- 1954년 방위청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2007년 방위성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5. 역대 방위대신
- 국무대신 방위청 장관
대수 | 이름 | 당적 | 임기 | 비고 |
마스하라 케이키치(増原惠吉) | 1950. 8. 14 - 1952. 7. 31 | 경찰예비대본부장관 | ||
오오하시 타케오(大橋武夫) | 1951. 12. 26 - 1952. 7. 31 | 국무대신(경찰예비대 상당) | ||
야나기자와 미요시(柳沢米吉) | 1952. 4. 26 - 1952. 7. 31 | 해상보안청장관(보안청의 과도기) | ||
임시 |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2] | 자유당[13] | 1952. 8. 1 - 1952. 10. 30 | 국무대신 보안청장관[14] |
1 | 키무라 토쿠타로(木村 篤太郎) | 민주당[15] | 1952. 10. 30 - 1954. 6. 30 | |
1954. 7. 1 - 1954. 12. 10 | 국무대신 방위청장관[16] | |||
2 | 오오무라 세이이치(大村 清一) | 1954. 12. 10 - 1955. 3. 19 | ||
3 | 스기하라 아라타(杉原 荒太) | 1955. 3. 19 - 1955. 7. 31 | ||
4 | 스나다 시게마사(砂田重政) | 1955. 7. 31 - 1955. 11. 22 | ||
5 | 후나다 나카(船田中) | 자민당 | 1955. 11. 22 - 1956. 12. 23 | |
대행 |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 1956. 12. 23 - 1957. 1. 31 | ||
대행 |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 1957. 1. 31 - 1957. 2. 2 | ||
6 | 코타키 아키라(小瀧彬) | 1957. 2. 2 - 1957. 2. 25 | ||
7 | 1957. 2. 25 - 1957. 7. 10 | |||
8 | 쓰시마 주이치(津島壽一) | 1957. 7. 10 - 1958. 6. 12 | ||
9 | 사토 기센(左藤義詮) | 1958. 6. 12 - 1959. 1. 12 | ||
10 | 이노 시게지로(伊能繁次郎) | 1959. 1. 12 - 1959. 6. 18 | ||
11 | 아카기 무네노리(赤城宗徳) | 1959. 6. 18 - 1960. 7. 19 | ||
12 | 에사키 마스미(江崎真澄) | 1960. 7. 19 - 1960. 12. 8 | ||
13 | 니시무라 나오미(西村直己) | 1960. 12. 8 - 1961. 7. 18 | ||
14 | 후지에타 센스케(藤枝泉介) | 1961. 7. 18 - 1962. 7. 18 | ||
15 | 시가 겐지로(志賀健次郎) | 1962. 7. 18 - 1963. 7. 18 | ||
16 | 후지타 토쿠야스(福田篤泰) | 1963. 7. 18 - 1964. 7. 18 | ||
17 | ||||
18 |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17] | 1964. 7. 18 - 1965. 6. 3 | ||
19 | ||||
20 | 마쓰노 라이조(松野頼三) | 1965. 6. 3 - 1966. 8. 1 | ||
21 | 칸바야시야마 에이키치(上林山栄吉) | 1966. 8. 1 - 1966. 12. 3 | ||
22 | 마스다 가와시치(増田甲子七) | 1966. 12. 3 - 1968. 11. 30 | ||
23 | ||||
24 | 아리타 기이치(有田喜一) | 1968. 11. 30 - 1970. 1. 14 | ||
25 |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18] | 1970. 1. 14 - 1971. 7. 5 | ||
26 | 마스하라 케이키치(増原惠吉) | 1971. 7. 5 - 1971. 8. 2[19] | ||
27 | 니시무라 나오미(西村直己) | 1971. 8. 2 - 1971. 12. 3[20] | ||
28 | 에사키 마스미(江崎真澄) | 1971. 12. 3 - 1972. 7. 7[21] | ||
29 | 마스하라 케이키치(増原惠吉) | 1972. 7. 7 - 1973. 5. 29[22] | ||
30 | ||||
31 | 야마나카 사다노리(山中貞則) | 1973. 5. 29 - 1974. 11. 11 | ||
32 |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 1974. 11. 11 - 1974. 12. 9 | ||
33 | 사카타 미치타(坂田道太) | 1974. 12. 9 - 1976. 12. 24 | ||
34 | 미하라 아사오(三原朝雄) | 1976. 12. 24 - 1977. 11. 28 | ||
35 | 가네마루 신(金丸信)[23] | 1977. 11. 28 - 1978. 12. 7 | ||
36 | 야마시타 간리(山下元利)[24] | 1978. 12. 7 - 1979. 11. 9 | ||
37 | 쿠보타 엔지(久保田円次)[25] | 1979. 11. 9 - 1980. 2. 4 | ||
38 | 호소다 키치조(細田吉蔵) | 1980. 2. 4 - 1980. 7. 17 | ||
39 | 오오무라 조지(大村襄治) | 1980. 7. 17 - 1981. 11. 30 | ||
40 | 이토 소이치로(伊藤宗一郎) | 1981. 11. 30 - 1982. 11. 27 | ||
41 | 타니카와 카즈오(谷川和穂) | 1982. 11. 27 - 1983. 12. 27 | ||
42 | 쿠리하라 유코(栗原祐幸) | 1983. 12. 27 - 1984. 11. 1 | ||
43 | 가토 고이치(加藤紘一)[26] | 1984. 11. 1 - 1986. 7. 22 | ||
44 | 쿠리하라 유코(栗原祐幸)[27] | 1986. 7. 22 - 1987. 11. 6 | ||
45 | 카와라 츠토무(瓦力) | 1987. 11. 6 - 1988. 8. 24 | ||
46 | 다자와 기치로(田沢吉郎) | 1988. 8. 24 - 1989. 6. 3 | ||
47 | 야마사키 타쿠(山崎拓) | 1989. 6. 3 - 1989. 8. 10 | ||
48 | 마츠모토 주로(松本十郎) | 1989. 8. 10. - 1990. 2. 28 | ||
49 | 이시카와 요우조(石川要三) | 1990. 2. 28 - 1990. 12. 29 | ||
50 | 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 | 1990. 12. 29 - 1991. 11. 5 | ||
51 | 미야시타 소헤이(宮下創平) | 1991. 11. 5 - 1992. 12. 12 | ||
52 | 나카야마 토시오(中山利生) | 1992. 12. 12 - 1993. 8. 9 | ||
53 | 나카니시 케이스케(中西啓介) | 신생당 | 1993. 8. 9 - 1993. 12. 2 | |
54 | 아이치 카즈오(愛知和男) | 1993. 12. 2 - 1994. 4. 28 | ||
대행 | 하타 쓰토무(羽田孜)[28] | 1994. 4. 28 | ||
55 | 칸다 아츠시(神田厚) | 민사당 | 1994. 4. 28 - 1994. 6. 30 | |
56 | 타마자와 토쿠이치로(玉澤徳一郎) | 자민당 | 1994. 6. 30 - 1995. 8. 8 | |
57 | 에토 세이시로(衛藤征士郎) | 1995. 8. 8 - 1996. 1. 11 | ||
58 | 우스이 히데오(臼井出男) | 1996. 1. 11 - 1996. 11. 7 | ||
59 | 규마 후미오(久間章生)[29] | 1996. 11. 7 - 1998. 7. 30 | ||
60 |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30] | 1998. 7. 30 - 1998. 11. 20 | ||
61 |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 1998. 11. 20 - 1999. 10. 5 | ||
62 | 카와라 츠토무(瓦力)[31] | 1999. 10. 5 - 2000. 4. 5 | ||
63 | 2000. 4. 5 - 2000. 7. 4 | |||
64 | 토라시마 카즈오(虎島和夫) | 2000. 7. 4 - 2000. 12. 5 | ||
65 | 사이토 토시츠쿠(斉藤斗志二) | 2000. 12. 5 - 2001. 1. 5 | ||
66 | 사이토 토시츠쿠(斉藤斗志二)[32] | 2001. 1. 6 - 2001. 4. 26 | 국무대신 방위청장관(내각부 외국) | |
67 | 나카타니 켄(中谷元)[33] | 2001. 4. 26 - 2002. 9. 30 | ||
68 |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 2002. 9. 30 - 2003. 11. 19 | ||
69 | 2003. 11. 19 - 2004. 9. 27 | |||
70 | 오오노 요시노리(大野功統) | 2004. 9. 27 - 2005. 9. 21 | ||
71 | 2005. 9. 21 - 2005. 10. 31 | |||
72 |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34] | 2005. 10. 31 - 2006. 9. 26 | ||
73 | 규마 후미오(久間章生)[35] | 2006. 9. 26 - 2007. 1. 8 |
- 방위대신[36]
대수 | 이름 | 당적 | 임기 | 비고 |
1 | 규마 후미오(久間章生)[37] | 자민당 | 2007. 1. 9 - 2007. 7. 4 | |
2 |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38] | 2007. 7. 4 - 2007. 8. 27 | ||
3 |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39] | 2007. 8. 27 - 2007. 9. 26 | ||
4 | 이시바 시게루(石破茂)[40] | 2007. 9. 26 - 2008. 8. 2 | ||
5 |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 2008. 8. 2 - 2008. 9. 24 | ||
6 |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41] | 2008. 9. 24 - 2009. 9. 16 | ||
7 | 기타자와 토시미(北澤俊美) | 민주당 | 2009. 9. 16 - 2010. 6. 8 | |
8 | 2010. 6. 8 - 2011. 9. 2 | |||
9 | 이치카와 야스오(一川保夫)[42] | 2011. 9. 2 - 2012. 1. 13 | ||
10 | 다나카 나오키(田中直紀)[43] | 2012. 1. 13 - 2012. 6. 4 | ||
11 |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44] | 무당적 | 2012. 6. 4 - 2012. 12. 26 | |
12 |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 자민당 | 2012. 12. 26 - 2014. 9. 3 | |
13 | 에토 아키노리(江渡聡徳) | 2014. 9. 3 - 2014. 12. 24 | ||
14 | 나카타니 겐[45] | 2014. 12. 24 - 2016. 8. 4 | ||
15 | 이나다 도모미(稲田朋美)[46] | 2016. 8. 4 - 2017. 7. 28 | ||
16 |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47] | 2017. 7. 28 - 2017. 8. 3 | ||
17 18 |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48] | 2017. 8. 3 - 2018. 10. 3 | ||
19 | 이와야 다케시(岩屋毅)[49] | 2018. 10. 4 - 2019. 9. 10 | ||
20 | 고노 다로(河野太郎)[50] | 2019. 9. 11 - 2020. 9. 16 | ||
21~23 | 기시 노부오(岸信夫) | 2020.9.16 - 2022.8.10 | ||
24 |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51] | 2022.8.10 - 2023.9.13 | ||
25 | 기하라 미노루(木原 稔) | 2023.9.13 - 2024.10.01 | ||
26 | 나카타니 켄(中谷元) | 2024.10.01 - 현재 |
6. 직제
- 간부
- 대신(현직 국회의원)
- 부대신(현직 국회의원)
- 대신정무관 2인(현직 국회의원)
- 사무차관(문관 관료 내부승진)
- 심의관
- 비서관
- 본성 내국[52][53]
- 대신관방
- 대변인
- 비서과
- 문서과
- 회계과
- 감사과
- 기획평가과
- 위생감
- 시설감
- 송무관리관
- 사이버보안·정보화 심의관
- 정책입안총괄 심의관
- 심의관(7명)
- 미군 재편 조정관
- 방위정책국
- 차장(2명)
- 참사관(3명)
- 방위정책과
- 미일방위협력과
- 국제정책과
- 운용정책과
- 운용기반과
- 조사과
- 정비계획국
- 방위계획과
- 사이버정비과
- 시설계획과
- 시설정비과
- 제공시설계획관
- 시설기술관리관
- 인사교육국
- 인사계획·보임과
- 급여과
- 후생과
- 인재육성과
- 서비스 관리관
- 위생관
- 지방협력국
- 차장(1명)
- 총무과
- 지역사회 협력총괄과
- 동일본 협력과
- 서일본 협력과
- 오키나와 협력과
- 환경정책과
- 주일미군 협력과
- 노무관리과
- 주요 위원회
- 자위대원윤리심사회
- 방위시설중앙심의회
- 포로자격인정등심사회
- 독립행정법인평가위원회
- 방위인사심의회
- 방위조달심의회
- 시설 및 기관
- 특별기관
- 육상자위대
- 해상자위대
- 항공자위대
- 공동기관
- 자위대 체육학교
- 자위대 중앙병원
- 자위대 지구병원
- 자위대 지방협력본부
- 공동부대
- 정보보전대
- 사이버방위대
- 방위회의
- 통합막료감부[54]
- 통합막료부장
- 대변인
- 통괄관
- 총무부
- 운용부
- 방위계획부
- 지휘통신시스템부
- 수석법무관
- 수석후방보급관
- 통합막료학교
- 육상막료감부[55]
- 육상막료부장
- 방위부
- 위생부
- 감리부
- 인사교육부
- 장비계획부
- 운용지원·훈련부
- 지휘통신시스템·정보부
- 감찰관
- 법무관
- 경무관리관
- 해상막료감부[56]
- 해상막료부장
- 총무부
- 방위부
- 인사교육부
- 장비계획부
- 지휘통신정보부
- 감찰관
- 수석법무관
- 수석위생관
- 수석회계감사관
- 항공막료감부[57]
- 항공막료부장
- 총무부
- 방위부
- 운용지원·정보부
- 장비계획부
- 인사교육부
- 과학기술관
- 감리감찰관
- 수석법무관
- 수석위생관
- 정보본부
- 총무부
- 계획부
- 분석부
- 통합정보부
- 지리부
- 전파부
- 통신소
- 방위감찰본부[58]
- 부감찰감
- 총무과
- 총괄감찰관(1명)
- 감찰관(3명)[59]
- 외국군용품심판소
- 외국
7. 직원
- 별정직
- 자위대원(별정직)
- 자위관
- 방위사무차관: 방위성에서 승진해서 올라가는 사람들 중에 으뜸이다. 한국으로 치면 국방부의 차관보~차관급.
- 방위서기관: 방위부원보다 위의 문관들로 장관급 장교에 해당하는 문관들이다. 방위성 본성에만 있는 관직명으로, 타 중앙성청 및 지방기관에서는 사무관/기관이다.
- 방위부원: 방위성 내의 문관으로 자위관 좌관급 장교에 상당하는 실장, 기획관, 과장보, 사무관, 기관(技官) 등을 말한다. 방위성 본성에만 있는 관직명으로, 타 중앙성청 및 지방기관에서는 사무관/기관이다.
- 방위사무관: 초임으로 부임한 문관을 말한다. 방위사무관에서 승진하여 방위부원, 방위서기관까지 올라간다.
- 방위기관: 기술직 등의 문관을 말한다. 주로 건설/토목 쪽의 기술자가 많다. 별정직으로 볼 수도 있는데 중장 출신 군의관이 자위대중앙병원장으로 들어올려면 제대하고 기관으로 들어와야 한다.
- 즉응예비자위관: 예비군과 비슷한 제도로 연간 30일을 훈련하며 비상소집 시에 제일 먼저 응소한다.
- 예비자위관: 자위관을 퇴직했거나 예비자위관보에서 선발하는 예비군이다.
- 예비자위관보: 자위관 경력이 없는 민간인을 선발하여 훈련은 연간 15일 수준이다. 예비자위관보를 거쳐 예비자위관이 되건 자위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경력차원에서 지원하는 제도이다.
- 방위대학교, 방위의과대학교 학생
- 자위관후보생: 교육훈련 중인 자위관 예정자들을 말한다.
- 고등공과학교학생: 한국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와 비슷한 부사관 양성 시설이다. 다만 병 과정을 거쳐서 부사관이 된다.
- 기타 비상근 직원
- 일반직
- 방위성 지역협력국 노무관리부서 직원
8. 방위대신기
자위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깃발 | 방위대신 깃발 |
통합막료장 | 육상막료장 |
해상막료장 | 항공막료장 |
9. 관련기관
[1] 내각부 부대신 겸임[2] 내각부 대신정무관 겸임[3] 정식 명칭은 방위성 이치가야 지구(防衛省市ヶ谷地区)로, 이치가야 주둔지로도 불린다. 좌측부터 A동, D동, E1동이다. 종전 이전에는 육군성 청사가 있던 자리다.[4] 타군의 군인에 해당하는 자위대의 자위관을 뜻한다.[5] 방위성으로 개편하기 한참 전부터 2000년(헤이세이(平成) 12년) 5월 8일 방위청 청사가 있는 육자대 히노키쵸 주둔지(檜町駐屯地)에서 현 이치가야 주둔지(방위성 이치가야 지구)로 이전 및 통합하였다. 동시에 주둔지로서 용도 폐지하여 민간에 매각하여 현재는 도쿄 미드타운(東京ミッドタウン)이 되었고, 옛 방위청 청사 자리에는 히노키쵸 공원(檜町公園)이 되었다.[6] 일본에서는 한국의 장관에 해당하는것은 대신(大臣)이고 청(庁)의 장은 장관이라고 부른다. 한국으로 치면 청장[7] 물론 내각총리대신의 직속인만큼 '청'보다는 '처'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실제로 2007년까지는 방위청 장관이 국무대신인 '대신청'이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예전 국민안전처처럼 처이지만 수장이 장관인 부처라고 볼 수 있다.[8] 적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전시 태세를 갖추는 것.[9] Mamor는 지킨다는 뜻의 마모루와 발음이 비슷하다.[10] 일본이 만약 한국의 국방비 수준인 GDP 2%대로 올리면 국방비 세계 3위가 된다. 이게 한국과 중국 등주변국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생각해 보자[11] 사실 이는 방위청이 대신청(대신이 보임되는 청)이라 가능했다. 보통 이러한 경우는 대신급 위원회 산하에 청이 있는 경우였는데 이 경우는 대신급 청(방위청) 산하 청(방위장비청)인 경우였다.[12] 보안청에 처음 등청해선 자위대에게 새로운 국군의 토대가 되라고 했다가 언론에게 질타당했다. 본인은 군부를 그렇게 혐오했으면서 정작 국군이란 말을 써서… 평화헌법도 주도했던 요시다임을 감안하면 일본군 같은 군대 보다는 정상적인 군대가 되어라 이런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13] 자민당의 전신.[14] 총리부의 외국(外局)이었다.[15] 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당으로 자유당과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이 된다.[16] 보안청 장관에서 계승하였다.[17]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이다.[18] 방위대강 등을 변경하여 자위대의 규모를 늘려보려고 애썼으나 미키 다케오 총리에 의해 실패한다.[19] 전일본공수 여객기와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추락해 여객기 승객 162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한 달이 못 돼서 물러났다. 전일본공수 시즈쿠이시 공중충돌 사고를 참고할 것.[20] 13대를 역임한 인물이다.[21] 12대를 역임한 인물이다.[22] 물러난지 1년만에 다시 복귀했다.[23] 상당한 매파였으나 쿠로스 히로오미 통합막료장의 항명사건으로 자위대가 문제를 일으키자 저자세로 일관한다.[24] 일본군 해군에서 주계(회계)장교를 했다.[25] 미야나가 유키히사(宮永幸久, 육사 54기) 육자대 소장이 소련군의 정보기관과 접촉하여 중소문제를 이유로 정보를 넘긴 사건. 미야나가 소장 본인은 소련군의 정보를 대신 받았다고 주장하나 그 과정에서 현금을 받은 게 문제가 되었고 관련된 하위 장교 둘을 포함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일로 당시 방위청장관과 육상막료장의 목이 날아갔다.[26] 자유민주당 내에선 노나카 히로무와 더불어 리버럴한 인물로 유명하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등을 비판하는 저서를 냈다. 북한의 김정일을 두고 일종의 북한의 천황이라고 표현했다가 까이기도 했다.[27] 42대를 역임했다.[28] 1994년 4월 28일 하루 대행했다.[29] 첫 방위대신을 지내기도 했다.[30] 방위청 조달실시본부 배임사건 발생으로 참의원에서 문책이 결의되자 사임했다.[31] 45대를 역임했다.[32] 65대를 역임했다. 임기 중에 총리부에서 내각부로 소속이 바뀐 탓.[33] 방위대학교를 졸업한 뒤 육상자위대 중위에서 전역한 자위관 출신이다. 이 때문에 취임하는 것을 두고 문민통제 위반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으나 전역 후 10년이 넘게 지난 상태라 유야무야 넘어갔다.[34] 60대를 역임했는데 당시엔 방위청 조달실시본부 배임사건으로 사임했고 7년 만에 다시 방위청 장관이 됐으나 방위시설청 담합사건이 생기면서 또 사임한다.[35] 59대를 역임했으며 그의 재임 중에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격상된다.[36] 방위청에서 방위성 승격[37] 59/73대 방위청장관을 역임했다.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발언하여 사임했다.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시절의 일이다. 日 방위상 "美 원폭투하 어쩔 수 없었다" 일 규마 방위상, 전격 사임[38] 최초의 여성 국방각료였으나 두 달 만에 아베 1차 내각이 총사퇴하는 바람에 물러났다. 2016년 도쿄도지사에 당선되었다.[39] 후쿠다 야스오 내각으로 들어왔다. 문제를 일으킨 바 있는 방위시설청을 해체하고 방위감찰본부를 신설했다.[40] 68/69대 방위청장관을 역임했다. 이지스함과 어선이 충돌한 사고로 어민 두 명이 실종되면서 사임했다.[41] 방위회의를 신설했으며 논문 사건을 일으킨 타모가미 토시오를 경질했다. 아소 다로가 내각을 해산하면서 임기가 끝났고 그 해 9월에 자민당은 민주당에게 참패했다.[42] "안보는 아마추어지만 그런 게 진정한 문민통제이다.(安全保障に関しては素人だが、これが本当のシビリアンコントロールだ)"와 같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발언으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문책이 결정되자 사임했다.[43] 방위대신이 된 후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무기수출3원칙을 헷갈리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비서관을 대동시켜 대답하도록 시켜 복화술이나 하냐는 비판을 들었다.[44] 9대 이치카와 야스오와 10대 다나카 나오키가 국방지식이 전혀 없고 거하게 삽질을 하는 바람에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항공자위대 소령 출신의 외교관이자 방위대신보좌관이었던 모리모토 사토시를 방위대신으로 기용했다. 그는 민주당 당적이 아닌 민간인[64]으로 민간인이 방위대신에 오른 최초의 사례였다. 그전엔 모두 국회의원이었다.[45] 67대 방위청장관을 지냈다. 1957년생으로 방위대학교 24기 출신으로 1980년에 졸업했다. 육상자위대에서 4년간 보병장교로 근무한 뒤에 1985년에 중위로 전역해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가토 고이치, 이마이 이사오, 미야자와 기이치 등의 비서를 지내다가 1990년에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장관에 기용되었는데 문민통제 위반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미 전역한지 16년이나 지난 터라 용인되었다. 미국의 경우 문민의 자격을 최근 10년간 현역 군적을 두지 않은 자로 보고 있다.[46] 일본의 두 번째 여성 방위대신. 막가파급으로 막말을 쏟아내는 데다가 극우, 혐한, 혐중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있다. 무관 출신인 전임 방위상은 임기 내내 조용히 임무를 수행하고 퇴임한 반면 이쪽은 문관 출신임에도 오히려 취임 첫날부터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데다가 핵무장도 가능하다라고 언급할 만큼 강경한 색채를 띠고 있다. 여자 아베라고 불렸고 아베 본인도 차기 총리감이라고 추켜세워주기도 했으나 아키에 스캔들에 연루된 모리모토 학원의 변호인을 맡았었던 경력과 남수단에 파견된 자위대 PKO가 실제로 교전했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당시 일일기록을 은폐, 파기했다는 사실이 들통나 결국 자진으로 불명예 사퇴하였다. 후임으로는 전임 나카타니 혹은 오노데라가 다시 맡는 방안이 대두되었으며, 일단은 외무상인 기시다 후미오가 임시로 방위대신 직책도 겸직하였다.[47] 당시 외무대신으로 임시로 방위대신 직책을 겸직하였다.[48] 12대 방위대신과 동일인. 방위성이 청에서 성으로 승격한 후 처음으로 방위대신직을 세 번 지내게 되었다. 미국 장성들이나 국방부 고위직 인사들과 친밀하고 국방 관련 직책에 오랫동안 몸담은지라 다른 방위상들이 자질논란에 휩싸일 때면 소방수 격 1순위로 고려되는 인물이다. 현재는 자민당 안전보장조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며 실제로 워킹그룹 단장으로서 그의 지휘하에 작성된 일본의 방위백서나 중기 방위력 정비 계획에 자위대의 공격 능력을 강화하는 내용들이 점점 더 많이 담기고 있다.[49] 그가 방위상이 된 지 얼마되지도 않아 터진 일본 해상초계기 사건과 관함식 욱일기 게양 여부 사건으로 한일관계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그러나 해외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하고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고, 이후에도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고 싶다는 발언 등으로 아베 내각 인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에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했는데 그 때문에 우익들에게는 물론, 자민당 내부에서까지 거센 비판을 받았었다.# 결국 그는 다음 개각에서 물러나야 했고, 훨씬 더 강경한 인물이 방위대신에 임명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50] 제3차 아베 신조 제3차 개조내각 당시 제150대 외무대신으로 제4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재기용되었다. 대한 강경파의 핵심인사로 평가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51] 6대 방위대신과 동일인.[52] 아래의 국장들은 본래 육상막료장, 해상막료장, 항공막료장보다 선임이었으나, 나카타니 겐 방위대신이 각 국장과 막료장들을 동일한 위상으로 조정하였다. 본래 국장들이 주요 제복군인보다 높게 치는 건 차관(Under Secretary)이 다른 제복군인보다 앞서는 미국의 문민통제의 특성으로 자위대에도 그대로 이식된 것. 이를 두고 문민통제 약화란 비판이 나왔다.[53] 방위성의 내부부국은 다른 중앙성청과는 다르게 내국(内局)이라고 한다.[54] 장관은 통합막료장[55] 장관은 육상막료장[56] 장관은 해상막료장[57] 장관은 항공막료장[58] 장관은 방위감찰감[59] 육해공군 소장 1명씩, 총 세명[60] 한국의 국방부장관에 상당[61] 한국의 국방부차관에 상당[62] 한국의 국방차관에 상당[63] 비상근으로 한국의 국방차관보급에 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