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1 21:39:16

학생

1.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
1.1. 인권침해의 온상
1.1.1. 용모에 대한 인권침해1.1.2. 과도한 학업 강요1.1.3. 사회의 전반적인 무관심
1.2. 관련 문서
2. 죽은 남성 위패에서 고인을 칭하는 단어

1.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

유능한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사람인 것이다.괴테
배우려고 하는 학생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 히레르

우리가 사는 나라에선 사교육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1] / Student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속해있는 신분. 오전 시간대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볼 수 있다.[2][3]

맨 처음에는 초등학생으로 시작하며, 중학생까지가 의무적 테크트리이나, 대한민국 학생 대다수는 고등학생까지 거치고, 더 나아가 대학생 또는 재수생이 되기도 한다. 과거 20세기에는[4] 고졸만 되면 학력에서 큰 지장이 없는 편이고[5] 상·공고로 대표되는 실업계가 인문계보다 선호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어지간하면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느냐?'라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물론 상고 나와서 은행에 취직하거나 공고 나와서 대기업 생산직에 취직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인플레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현 세대가 대학 학사과정을 마치야 기성세대들이 고등학교 중퇴한 수준과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개중에는 초등학생이 되기 전 유치원생등등의 선행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단계는 학생으로 치지 않는다.

졸업장을 받을 때마다 신분이 상승한다는게 특징. 전직 다만 신분 상승 이전이 더 좋아보일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3차 전직 고등학교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많이들 느끼는 듯. 아! 공부 좀 열심히 할걸 정작 학생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사회적으로는 19세 이하를 기준으로 공통 직업군에 속하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사회적 지위면에서 이들은 당연히 공통적으로 학생에 분류하는 편[6].

11월 3일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기념하여 지정된 학생의 날이고, 민주화가 덜 된 시절에는 학생들이 이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지만 현대에는 '그런 게 있나'하는 반응들을 보인다. 가끔은 도리어 선생님들이 챙겨줘서 아는 경우도 있다. 하기사 '절'이 아니라서 한글날태극기 안 다는 게 태반인 데 무슨 스승의 날과 참 대비되는 상황. 정확히는 기념일로 승격되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데, 학생의 날보다 좁은 의미로 보여서 일각에서는 이를 비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능 전 주라서 고3들은 알아도 무시할 수밖에 없다. 광주는 고3만 빼고 학생대표들을 광주일고로 소환하지요

그러나 2011년 6월 7일 학생참여위원회와 서울특별시 교육감 곽노현이 만난 협의회에서 11월3일 신의주 학생의거 기념으로 12월에 수능이 끝난 고3까지 포함해서 학생참여대회, 학생만민공동회라는 것을 여는 문제로 논의했다. 학생들이 단체로 모이도록 지원하는 합법적 관제 행사 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학생들이 토론한 것을 광장에 나가서 학생참여위원들이 발표하는 것을 적극 지원한다고 한다.

인칭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10대나 20대 초반 무렵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 때 한 번 쯤은 "학생~"이라고 불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30대 초반인데도 듣는다... 식당 같은데 갔을 때 종업원 아줌마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식. [7]

1.1. 인권침해의 온상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발전에 비례해 인권이라는 개념이 부각, 중요시되는 와중에도 유독 교복을 입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인권은 도외시는 되는 경향이 강했다. 2019년 기준으로도 대한민국중학생, 고등학생의 인권은 상당히 도외시 되고 있다는 있으며, 주로 시간을 보내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한 편이다.

특히 아직도 강하게 잔재하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부모, 사회에 의한 강압적 통제가 유독 정당화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1.1.1. 용모에 대한 인권침해

한국의 청소년들이 많은, 혹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중등교육 기관의 상당수는 두발과, 화장, 염색 등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비록 조희연 교육감이 있는 서울특별시에서 2019년 기준으로 중고등학교 두발을 완전 자유하고 파마, 염색, 화장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빛을 발할지는 미지수. 문제는 이런 권고안을 무시해버리는 학교가 많다는 것이다. 신고가 들어가면 어느 정도 완화하거나 잠시간 없애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기 일쑤다. 학생들의 부모들부터가 그런 규제 완화에 대해 수구적인 태도를 보이므로 이슈화돼도 딱히 무서울 건 없다.

여기에 대해 일각에서는 성인과 똑같은 자유의 보장받으려면, 성인과 똑같은 의무를 져야한다며 소년법, 청소년 보호법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청소년은 말그대로 미성년청소년이기에 사회적 보호를 받는 것이지, 부분적 인권 침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특별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므로 어불성설이다. 저런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어느 정도 인권 침해를 받아야만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주장이 돼버린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모든 선진국에 존재하지만 그 나라들이 대한민국처럼 강압적인 용모 규제를 실행하진 않는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용모 규정의 결과를 학생다운 것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은 청소년이라는 특정 세대에 걸친 인간일 뿐이지, 학생이라는 직업 = 청소년은 아니다. 또한 인권침해의 결과를 근본적인 직업성으로 규정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바로 한국의 징병 군인들인데, 전역까지의 박봉과 열악한 식단, 적은 휴가 등은 엄연한 인권 침해와 부조리에 속하지만 여기에 대해 "군인답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라는 말로 권리 주장에 대한 입막음을 당해온 역사가 있다.

1.1.2. 과도한 학업 강요

흔히 한국의 입시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이건 학생들의 자발적 교육열이라기보다는 가정의 부모와 사회적 강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마치 아직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청소년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묵묵히 공부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청소년에게 공부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닌, 청소년이 해야할 유일한 것 혹은 주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봐도 한국은 유독 청소년 시기에 심각한 학업 스트레스와 여가 부족을 겪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딱히 신경 쓰지도, 개선해야할 것으로 여기는 문제의식조차 없다.

1.1.3. 사회의 전반적인 무관심

청소년들이 주로 겪는 용모에 관한 인권침해, 극심한 학업 강요 등의 문제의 근본적 문제는 사회에서 거의 문제시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엄연한 인권침해임에도, 사회에서는 굉장히 온건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혹자들은 저러한 인권침해를 당한 후에 어른이 되서 누리면 된다고 하지만, 그 시기가 얼마나 되든 사람이 관용적으로 인권침해를 인내해야 할 의무 따윈 없으며, 학업 강요, 여가 부족 등의 압박은 이미 저학년부터 시작되므로 근 10년 이상의, 일생에서 충분히 긴 시간이다.

또 저런 규정과 강요를 통해 사회 규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는 말도 많지만, 이건 거의 옛날 노예제가 잔존하던 미국 남부에서 혹독한 처우가 흑인을 문명인으로 교양시킨다고 믿었던 노예주들의 발상과 비슷한 망발이다. 즉 인권 침해를 인내함으로써 사회 규칙을 익힌다는 말 체자가 이미 청소년을 동등한 인권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이런 주장들대로라면 용모 규제, 학업 강요를 겪지 않는 다른 선진국 청소년들은 모두 설렁설렁한 무법자가 된다는 말밖에 안 된다.

1.2. 관련 문서

2. 죽은 남성 위패에서 고인을 칭하는 단어

종교적으로 다른 명칭을 넣지 않는다면 보통 고인이 남성일 경우 비석에 고(故) 학생(學生)이라고 많이들 넣는다. 본래 의미는 향교 혹은 서원의 학생이라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에게 군역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군역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 시험을 준비중인 사람들에게는 이 군역의 의무가 면제되었다. 그 과거 시험을 준비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향교에 등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만일 관직을 하지 않았더라도, 학생이라는 신분은 있기 때문에 이를 따른 것이다. 17세기가 되면 살아있는 사람은 전부 유학이라고 칭하고, 죽은 사람은 전부 학생이라고 칭한다고, 살아있는 사람도 학생인 것은 마찬가진데라는 이익의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벼슬하지 않은 사람에게 학생이란 말 빼고 붙일 표현도 없다'라는 김장생이 말처럼 그냥 그대로 굳어졌다. 그래서 '학생부군신위'라고 쓰는 비명이나 신주가 많다.[8] 관직을 지냈거나 봉작을 받았을 경우엔 그 직명을 넣게 된다.

현재는 공직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많이들 사용하는데 이 학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편. 전술했듯이 묘비의 학생이라는 단어는 선비중에서 벼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쓰는 말이었는데 그게 말이 좋아 학생이지 나쁘게 말하면 '백수'[9]를 지칭하는 말이니 현대사회에는 조선시대보다 입신양명의 기회도 많고 각자가 이룬 것도 다른데 관습적으로 학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옳지 않다는 시각이다. 생전 사기업에서 근무한 사람들의 경우 아무리 대표이사, 전문경영인 (CEO) 등의 직급까지 올라갔는데도 벼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말을 묘비에 써야 했다는 탓도 컸다.

[1] 접미사 용법으로는 -으로 쓴다(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등)[2] 초등학생의 경우 2~3시, 중학생의 경우 4~5시, 고등학생의 경우 6~7시. 그러나 대부분 학원을 다니거나 고등학생들에게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감금 제도가 있기에 2~4시간 뒤에도 볼 수 있다.[3] 단 방학기간엔 제외[4] 그러니까 지금의 40대정도 되는 기성세대까지는[5] 그러니까 대졸자보다 고졸자가 엄청나게 많다. 현 기성세대 대부분은 고졸 출신. 당연히 대졸자에 비해 차별을 많이 받았으므로 그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엄청나다는 설도 있다.[6] 다만 대학생,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공통 직업군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차피 19세 이상을 넘기면 단일 직업군이 생기고 대학이 아닌 사회로 진출하여 직업을 가지기 때문에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공통 직업군으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다.[7] 한국어의 존비어 문화참조.[8] 결혼한 여자 조상의 경우엔 '유인(孺人)'을 넣는데 유인은 벼슬을 한 사람의 아내를 칭하는 단어라고 한다.[9] 조선시대에 선비가 벼슬에 나가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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