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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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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金慶皓| Kim Ky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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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1년 6월 7일 ([age(1971-06-07)]세)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1가 5번지[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거주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2]
본관 김해 김씨 (金海 金氏)[3]
신체 178cm[4][5]|65kg[6]O형|245mm[7]
학력 북교초등학교 (졸업)
문태중학교 (전학) → 순천이수중학교 (졸업)
순천효천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신학교 (연극영화과 / 학사)
병역 면제(간질병)
데뷔 1994년 {{{#!wiki style="background-color: #000000; border-color: #000000;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2px" KIM KYUNG HO
데뷔일로부터 D[dday(1994-10-01)]일[8] | 30주년
가족 부모님[9], 형 김기호(1969년 ~ 2019년 별세)[10]
종교 개신교[11]
소속사 파일:이황로고.png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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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2]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3]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4]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15]
팬 커뮤니티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 -11px"
별명 악마,국민 언니, 경호 언니/누나, 로큰롤 언니, 상남자, 주부 락커[16], 깜찍이 락커[17], 쁘띠 락커, 예쁜 치타, 노친네[18], 헤어 마스터, 애기[19], 앵두[20]
좋아하는 색 핑크[21]
MBTI ISFJ
성격 명랑, 쾌활, 내향적[22]
반려동물 반려견 아르[23] }}}}}}}}}
직접 쓰는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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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활동
2.1. 데뷔 이전2.2. 1994~20032.3. 2004~20102.4. 2011~20192.5. 2020~현재
3. 공연 장면
3.1. 전성기3.2. 제 2의 전성기
4. 가창력
4.1. 음역대4.2. 보컬4.3. 창법
5. 음반6. 수상 경력
6.1. 시상식6.2. 가요 프로그램
7. 특징
7.1. 언니7.2. 의외의 모습
8. 방송 활동9. 공연 활동10. 광고 및 홍보대사 활동11.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김경호사진1.gif 파일:김경호사진2.jpg
자! 지금부터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목소리를 풀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여기있는 사람중에 내일 아침에 목소리 쌩쌩한 사람 있으면 미워할거야~
김경호가 skid row의 youth gone wild를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대표적인 공연 멘트[25]

대한민국가수.

대한민국 씬을 대표하는 레전드 가수 중 한명으로, 최전성기 무렵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전설적인 록 보컬리스트였다. 힘 있는 미성과 시원한 고음, 폭발적인 샤우팅, 압도적인 성량, 그리고 멋진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라이브로 유명하다.

록 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26] 대한민국에서 록 가수로서는 정말 드물게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1위 곡[27]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락커이며, 김종서와 더불어 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가수 중 한명으로 평가 받는다.[28] 오늘날에도 대중적 인지도는 여전히 높은 락커이다.

2. 활동

2.1. 데뷔 이전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였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인해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고, 당시 마른 체구과 하얀 얼굴, 내향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그러다 학교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존경하는 친형이 학교 축제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락 음악 이외에도 이선희, 조용필, 해바라기의 곡도 좋아해서 여성 가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변성기가 거의 없었던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았고 성별이 구분 가능한 정도로 미세하게 바뀐 특이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보통 이런 목소리가 고음을 무리없이 내지를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음색만 좋다면 가수로서는 복 받은 셈. 하여튼 그러다 락밴드가 한순간에 관객을 휘어잡는 모습을 보고 락 음악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89년 KBS 제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꿈 그리고 사랑>으로 동상을 받았으며, 청소년 프로그램 <비바청춘>에서도 얼굴을 내밀었다. 199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긴 이별>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감성적인 발라드를 불렀기 때문에 헤드뱅잉을 하고 샤우팅을 구사하는 지금과는 이미지가 매우 달랐다. 이후 <긴 이별>은 1집 앨범 트랙에 편곡되어 실렸다.

본인 말에 따르면 당시 스타 등용문 정도로 여겨지던 대학가요제 동상을 땄으니 기획사들 연락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그렇게 희망고문만 하다 몇년을 허비했다고 한다. 의외이지만 이시기 KBS 개그맨 공채 시험을 본 적도 있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수준급의 입담이 괜히 나온게 아닌듯하다. 김경호가 개그맨에 합격했다면 개가수 장벽이 너무 높아진다.(...)

2.2. 1994~2003

마지막 기도
세션을 잘 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현석이 김경호만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할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해 만든 첫 시작 <마지막 기도>.[29] 왠지 주성치 닮았다.

1994년 10월, 1집 KIM KYUNG HO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마지막 기도>로 충격적인 데뷔를 해 1995년까지 활동했다. 1집은 김경호 본인이 망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김경호 실력이 어디 가는건 아니라 시원한 고음과 파괴력 있는 목소리로 록 매니아들의 기억에 김경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실제 김경호 본인은 망한 앨범이라고 표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경호 1집을 추억하는 뮤지션들이 꽤 많다.
  • 가수 박완규는 군복무 당시 친구에게 김경호 1집을 선물 받았다고 하며,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많이 들었다고 한다.
  • 유리상자이세준도 군복무 당시 생일 선물로 다른 친구 2명에게 김경호 1집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 가수 홍경민은 1995년 CRASH의 공연에 게스트로 나온 김경호를 보고 바로 1집을 구매해 듣고 다녔다고 한다.
  • 가수 백청강은 중국에 있을 때, 음반 가게에 가서 아무 앨범이나 달라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딱 김경호 1집을 건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김경호의 팬이 되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1집 수록곡인 '누명 쓴 아이'는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1993년 7월 26일 사고)로 조카와 이모를 잃은 김경호가 추모를 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1집 활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김경호는 이승철이나 N.EX.T, 기타리스트 이현석 등의 콘서트 게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조금씩 라이브 경험을 쌓아나가며 입지를 다졌다. 김경호 왈 1집 이후 약 2년 동안 가수들 보컬 트레이닝 등을 하면서 2집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 기간 머리를 기르고[30] 의상과 액션을 다듬어 1997년 2집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그렇게 나온 2집 타이틀곡이 이경섭이 작곡하고 강은경이 작사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대중들이 흔히 아는 김경호의 모습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대박나기 전까지의 시기는 무명 시절이라고 보는게 더 맞지만, 사실 이 시기에도 김경호는 가요계 관계자들이나 매니아층에게 인정받는 뮤지션이었다.
  • 김경호가 데뷔하고 처음 나온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소라는 "우리나라에도 이제 저런 록 보컬리스트가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 김연우는 머리 짧은 김경호가 쉬즈곤을 원키로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 물건이다. 쟤 뭐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한 윤도현은 데뷔 시절 김경호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고 회고했다.
  • 부활 5대 보컬이 된 박완규도 부활에 막 들어갔을 때 멤버 형들이 "대학로에 괴물이 하나 있어. 그 친구 노래 참 열심히 잘해. 그런 부분에서 너도 연습 많이 해야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 신동엽불후의 명곡에서 밝히길, 90년대 중반에 대학로에 어마어마한 친구가 공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며, 그렇게 대학로에 찾아가 김경호의 공연을 보고 놀랐다고 회고했다.
  • 작곡가 주영훈은 "김경호 씨가 데뷔할 때 이미 가요계 관계자들에게 입소문이 났어요. '대단한 가수가 나왔는데 여자 키보다 높은 가수가 나온다. 그 이름이 김경호다'라는 소문이 자자했어요"라고 밝혔다.
  • 히든싱어에서 밝히길, 가수 이선희는 김경호가 앨범을 내기 전, 가녹음 상태의 김경호 목소리가 담긴 음원을 들었다고 한다. 어느 음반 관계자가 무명 시절의 김경호가 노래하는 걸 이선희에게 들려줬고, 이선희는 "굉장히 잘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31]

1997년 발매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장르의 한계를 가지고도[32] 88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2주간 1위를 차지했고 당시 락커들에게는 금기(...)의 구역이었던[33] <KBS 가요톱10>에서는 DJ DOC, H.O.T., 임창정과 함께 1위 후보까지 오르고 <SBS TV 가요 20>에서도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선전하면서 히트를 쳤다. 특히 골든컵을 차지하게 되는 임창정의 <결혼해 줘>와 대결했을 때는 한 표(1892:1891) 차이의 접전을 펼쳤다.[34]

이런 인기는 2집 발매 이후 출연하게 된 KBS 심야 음악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 신인 가수 소개 코너에서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스키드로우의 <Youth Gone Wild>를 열창한 덕분이기도 했는데[35],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2집 앨범 선 주문만 50만 장이 들어왔다고 한다. 당연히 이날 소속사는 난리가 났다. 김경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뀌어 있었어요'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36] 이는 무명 탈출의 시작이었지만 지옥 스케줄(...)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1997.07.27)
여담으로 훗날 김경호는 이때 자신을 보고 왜케 촌스럽냐고 까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선 '나슬사' 키를 낮춰 불렀다. 'Youth Gone Wild'의 경우 당시 제작진들은 신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다는 곡 해서 잘 되는 경우 잘 못 봤다며 꺼렸는데, 김경호 측이 밀어붙였고 실제 관객 반응을 이끌어내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곡 초반부부터 3옥 솔 샤우팅을 내질러버린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MV]
김경호의 첫 뮤직비디오. 이 뮤직비디오에서 김경호는 흑백 화면 속에서 웃통을 벗고 장발과 마른 몸매를 그대로 보여주며 홀로 열창하는데, '록은 이런 것이다!'를 외치고 있는 듯하다.[37]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1997)
1997년 가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원키로 열창하는 김경호.

이후 후속곡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2집 수록곡 <금지된 사랑>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38] 3집 <나의 사랑 천상(天上)에서도>(60만장), 4집 <비정>(30만장), 5집 <와인>(30만장) 등이 히트하면서 최정상급 록커이자 대중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김경호는 1997년 2집 앨범으로 유명인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린 해부터 5집 활동기인 2000년까지 수많은 콘서트와 행사, 방송 활동을 하며 90년대에 댄스음악과 힙합, 발라드에 묻혀 죽어가던 록씬을 다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음과 동시에 록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이 가진 기량을 완전히 내뿜는 최전성기를 누린다. 김경호의 활약은 특히 자신의 단독 콘서트에서 두드러져, 록발라드부터 메탈스런 곡들까지 범위도 넓었고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지치지 않는 고음으로 동시대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다.

1999년 3월에는 일본의 유명 록 잡지인 'Burrn' 이라는 잡지에 김경호의 3집 앨범이 소개되었다.[39] 여기서 김경호의 3집 앨범은 무려 91점을 받으며 수입음반부분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일본과 영국에서도 꾸준히 러브콜을 받는다. 허나 빠른 해외 진출을 원한듯한 김경호와 달리 소속사는 신중한 입장으로 4집 활동 이후 해외 진출을 원했고, 이게 이후 소속사와의 불화 요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 모양. 결국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하여 독립 후 개인 회사를 차리고, 본인이 모든 것을 감독하며 발매한 6집 앨범은 이전보다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40]

2001년 당시, 공연 연습을 하던 도중 목이 너무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성대결절이라는, 가수로서 치명적인 진단을 받게 된다. 6집 타이틀곡인 <희생>과 후속곡 <사랑했지만> 등은 기존 곡과는 달리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김경호가 새로운 창법을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지만, 기존에 비해 부드러워졌다는 것은 타이틀곡 한정으로 나머지 수록곡은 여전히 파워풀했다.

김경호는 1997년, 당시 소속사 측과 3년간의 전속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시절에 비인간적인 스케줄로 인해 목을 많이 혹사하게 되었고, 2000년에 계약 만료와 전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해 새 소속사로 옮긴 5집 이후에도 한동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됐다. 당시의 스케줄이 얼마나 빡빡했냐 하면 97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출연 전 즉, 유명인사가 되기 전부터 그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라이브 활동을 뛰고 있었으며, 99년 4집 발매콘서트에서 그의 오피셜에 따르면 콘서트 횟수만 192회째를 맞는다고 직접 언급하였다. 방송 출연과 비공식 행사 무대까지 포함하면 그는 5년의 전성기 동안 총 1,000회가 넘는 라이브 활동을 뛰어왔다고 한다.

거기에 잦은 샤우팅 구사, 지나치게 높은 음역대로 구성된 앨범 수록곡들[41] 등의 부차적인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성대결절로 이어져, 올드 팬들조차 4집에 비해 5집 활동 시기는 컨디션 기복이 극심했다고 회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자신이 회사를 직접 차려 냈던 6집의 상대적 실패와 성대결절 이후, 그에게는 당연히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악재가 겹쳤다. 당시 소속사 관계자들이 음악활동에 써야했던 자금을 사치와 유흥에 탕진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는 큰 빚을 져야 했고 활동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새로운 소속사와 만나 매니아들만의 음악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락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걸그룹 핑클의 <Now>를 리메이크하여 2003년 7집 앨범을 발표한다.[42]

데뷔 이래 고수해 오던 록커의 상징인 긴 머리를 자르고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출연하며 자신의 상황과도 타협하여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변화를 시도했지만 일부에선 변절자, 배신자, 자존심까지 버린 락커라는 비난을 했고[43] 또한 2003년 7집 활동 사이 두번째 성대결절[44]과 가성구의 손상까지 겪음으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자 결국 김경호는 평단에서의 외면과 앨범 실패 등으로 인해 퇴물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점점 잊혀져 갔다.

2.3. 2004~2010

2004년에 데뷔 10주년 7.5집을 발매했으나 별다른 활동 없이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다가, 2006년에 8집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과 콘서트 무대 활동을 시작하며 재기를 꿈꿨다. 그러나 여기서 김경호에게 또 시련이 찾아오는데 뮤직 비디오 촬영 도중 쓰러지는 바람에 입원한 병원에서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게 되면서 앨범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45]

2004~2008년 시기에는 <금지된 사랑>을 F키[46]로 소화하거나 E5를 다시 올리는 등 (8집의 <수호천사>, 9집의 <비가 되어 흐르는 너> 등) 성대결절 후 부르지 못했던 넘버들도 다시 부르게 되어 목 상태가 꽤 호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8집, 9집 활동시기인 2006년~2008년 사이 감성 가득한 발라드곡을 많이 부른 이때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팬들도 은근히 많다.

이 시기에 그가 그토록 원했던 해외 공연을 조금씩 시작했다. 유튜브에 2006~2008년 사이 일본에서 한 공연 영상들을 찾을 수 있다.[47]

2008년 4월부터 다시 컨디션 기복이 심해졌고, 2009년 9.5집 발표를 기점으로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본인의 보컬에 대해 고심하며 최전성기 때의 발성법과는 다르게 중고음 중심으로 초점을 바꿔 지금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정립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48]

2008~2009년엔 보통 남자들 정도의 음계로 노래를 불렀으나[49] 이후 중고음대의 공격적인 창법을 이용하며 음역대를 회복해갔다. 2014년 6월 26일 엠넷의 <音담패설>에 출연하여 보여준 창법이 그 예다.[50]

2.4. 2011~2019

2011년엔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기운의 바람이 불었는데, 과거에 명성을 떨쳤던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MBC 게시판에 청원하여 당시 높은 화제성을 자랑하던 음악 프로그램인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였고, 여기서 활약하며 이른바 '제2의 전성기'를 맞아 2012년 초 명예졸업에 성공, 2014년 8월부터는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참가 가수로서 간간히 출연, 2015년도에는 MBC 나는 가수다 3 경연에도 참여했다.

나는 가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2012년 초~중반에는 최전성기 이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전국투어 콘서트, 각종 행사 및 스케줄이 2012년도에 매우 많았다. 또 모든 콘서트에서 3옥타브 레를 진성으로 깔끔하게 냈다.

2014년 말부터는 전성기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이 부활하여[51] 2014년 돌발 콘서트 즈음, 방송으로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고추잠자리> 무대부터 샤우팅을 구사하여 무대를 펼치기 시작했다. 비록 전성기와 같은 초고음을 바라는 건 무리지만 음역대만 좀 낮추면 전성기의 진성+샤우팅 조합이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후의 명곡>에서 김경호가 출연한 방송 회차를 살펴보면 샤우팅 음역대를 회복할 때 단기간에 이룬 것이 아니라, 경연 무대를 준비할 때마다 꾸준히 확보해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회복해나가다가 2016년에 들어 243회 경연곡 <초우>의 무대에서는 편곡에 매쉬업한 <영원의 성> 후반부의 샤우팅 최고음으로 '3옥타브 파♯(F♯)'를 구사하였다.

2015년 10월에는 중국에서 공연 활동을 갖기도 했으며, 이 시기 출연한 중국판 복면가왕몽면가왕에 출연한 이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2015년 말 락크리스마스 콘서트와 2016년 3월 19일 돌발콘에서의 모습을 보며 전성기가 다시 찾아온 것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52] <탈출>을 현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셋리스트에 추가하며 특히 2016년 3월 돌발콘에서의 <탈출>은 전성기 못지않다는 평. [53] 성대결절에 시달리는 이유로 인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이러한 곡들을 셋리스트에 올릴 수 밖에 없게 되겠지만 과거보다는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현재 자신의 역량에 따라서 전성기의 메탈곡뿐만 아니라 가능한한 소화할 수 있는 록 발라드들 또한 부른다. [54]

2016년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마그마의 해야를 불렀고,샤우팅으로 3옥타브 미(E5)까지 냄으로써 건재함을 증명했다. [55]

2017년 5월 13일 드디어 10집 앨범 Part 2의 일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단, Part 2를 전부 발표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를 episode 1로 묶어 같은 날 전국투어 서울 콘서트에서 선공개한 후 싱글로 두 곡을 발표한다고 한다. 추후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싱글을 발매한 뒤 합쳐서 10집 정규앨범으로 낼 계획이라고. 7집 이후의 앨범들이 소프트 록과 발라드에 중점을 둔 반면 10집 Part 2는 메탈 위주의 곡들로 이루어 진다고 한다.

2017년 6월 불후의명곡에서 '목포는 항구다'를 불렀는데, 여러번의 3옥타브 솔♯(G♯5)이라는 음을 냈다. 또한 동년 동월 공연들을 보면 샤우팅 뿐만 아니라 진성에서의 음역대에서도 과거 시절의 음색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들을 셋리스트에 추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가 있다.

2018년 2월 불후의명곡에서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불렀는데 모든 출연자들을 제치고 우승하는 클래스를 보여준다. 이때 곡의 편곡 스타일이 EDM트로트와 김경호식 헤비메탈의 융합이 절정에 이르러 관객들에게 많은 호응과 환호를 이끌어냈다.[56] 이후 3월, 불후의 명곡 작곡가 이영훈편에 한번 더 출연하여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를 불러 자신의 클래스가 여전히 변치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최후반의 '와인' 변주음과 곁들여진 울부짖는 듯한 절규의 샤우팅은 듣는 사람에게 가히 소름이 돋게할 무대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 되던 시기에는 경기장 내 초대가수로 가게 되어 올림픽 경기를 보러 온 관람객들에게 '사랑했지만', '밤이면 밤마다', 'Hey Hey Hey', '해야' 등을 선 보였고 계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아가는 중이다.

2018년 3월 22일 프로젝트 형식의 그룹인 '포에버(FOURever)'의 멤버로 들어 가 첫번째 디지털 싱글 음원 'PROMISE'[57]를 발표 할 계획이라고 한다.관련기사 그룹 구성원은 김경호 본인을 포함 해 김태원, 김종서, 박완규 이렇게 4명으로 구성 되어 있다.[58]

이때의 활동으로 볼 때 음이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가정할 경우 실질 최고음은 최대 3옥타브 라#(A#5)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며 콘서트를 주로 하는 이유 상으로 난이도가 매우 높은 곡들을 키 조정을 통해 부르긴 하지만, 2018년 5월 16일 FOURever 멤버들과 함께 한 주간아이돌에서 클레오파트라 게임을 통해 3옥타브 라(A5) 샤우팅을 할 수 있음을 드러낸 적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성 음역대는 3옥타브 도~3옥타브 도#이 마지노선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2.5. 2020~현재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으나, 경연 프로그램인 로또싱어에 출연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백두산의 '말할걸' 무대가 호평을 받았었다.영상

2021년 역시 코로나19이 장기화되어 별다른 활동이 없었으나, 박완규와 같이 유튜브 채널 '쉰호규전'을 개설하여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21년 말 시즌1이 종료되어 휴식기를 갖고 있다.

2022년 초중반에는 두차례의 단독 콘서트를 진행하였는데, 6월 서울 콘서트에서 김경호 스스로도 '코로나 탓에 잃은 것도 많지만 목소리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2022년 9월 열린 전국투어 콘서트에서 2024년에 30주년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59]

2022년 10월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오프닝인 '천원짜리 변호사[60]' OST 에 참여하였다. 음원은 10월 14일에 발매되었다.

2023년 3월 9일,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명은 '습관처럼 김경호'로 팬들을 위해 소소하게 시작했다고 한다.습관처럼 김경호

2023년 12월 23일, 락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2024년 5월에 30주년 앨범을 발매하도록 하고 팬미팅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024년 투어가 12개 잡혔다고 말했다.

2024년 3월 30일, 2024년 데뷔 30주년 전국투어 일정과 11집 발매일이 5월 20일이라고 발표했다.

2024년 4월 27일,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였다.

3. 공연 장면

3.1. 전성기

1997년 ~ 2002년
김경호 자신이 가졌던 모든 보컬적 역량을 쏟아부었던 최전성기.
MBC 인기가요 -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1997)
1997년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방영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원키다.
KBS 가요톱10 -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1997)
1997년 10월 8일 KBS 가요톱10에서 방영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공연 장면. 작곡이 이경섭인데, 이경석으로 잘못 나와 있다.[61][62]
To Hell With The Devil (1997)
1997년 가을 연세대에서 열린 윤도현 콘서트 게스트 출연, <To Hell With The Devil> 공연 장면.
SBS TV 가요 20 - 금지된 사랑 (1997)
1997년 12월 21일 SBS <TV 가요 20>에서 방영된 2집 후속곡 <금지된 사랑> 공연 장면.
KMTV - SHOUT (1998)
KMTV 방송 골든힛트송에서 소개된 98년도 <SHOUT> 공연 장면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 비정 (1999)
1999년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방영된 4집 타이틀곡 <비정> 공연 장면.
iTV 윤상의 라이브클럽 - 탈출, Shout (1999)
2000년 iTV 윤상의 라이브클럽에서 방영된 대표 메탈 사운드 곡 <탈출>, <Shout> 공연 장면.

3.2. 제 2의 전성기

2011년 ~ 2017년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성대결절 등 길었던 암흑기가 끝나고 그의 새로운 음악인생이 펼쳐지게 된 시기.
MBC 나는 가수다 - 이유 같지 않은 이유 (2011)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서의 경연 장면. 선곡은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이다. 김경호는 이 곡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댄스메탈을 함께 접목시켰고 이 무대를 통해 전체 1위를 차지했으며, 제2의 전성기로 가는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63]
SBS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저 - Youth Gone Wild (2013)
2013년 SBS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저에서 부른 스키드로우의 <Youth Gone Wild> 커버 공연 장면. 성대결절 이후 잃어버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을 다시 보여주기 시작한 해다. 아직 완전히 고착화 시킨 상태는 아니었지만 저때 당시 김경호의 강렬한 스크래치는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윤도현의 MUST - 달의 눈물 (2013)
2013년 윤도현의 MUST에서 부른 10집 Part1.의 수록곡 <달의 눈물> 공연 장면. 2010년대 이후 새롭게 창법을 바꾸고 부른 곡들 중에서 극찬을 받은 노래다.
KBS 콘서트 7080 - Don't Be Quiet! (2017)
2017년 KBS 콘서트 7080에서 부른 10집 Part2.의 수록곡 <Don't Be Quiet!> 공연 장면. 현재로서 가장 최근에 발매된 앨범의 곡 라이브로, 헤비메탈 보컬에 더욱 정형화된 김경호의 에너지 넘치는 전율을 선사받을 수 있다.[64]

4. 가창력

4.1. 음역대


음역대 : 0옥타브 솔(G2)[꿈그리고사랑] ~ 3옥타브 라#(A#5)[아버지] ~ 5옥타브 도(C7)[67]

락커로 타고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음역대와 성량[68]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샤우팅과 무난한 중저음역까지 보여주는 국내 가요계의 레전드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특히 락 분야에 한정하자면 최전성기 기준 고음력은 GOAT급이라고 해도 별 이견이 없을 정도다. 최전성기 당시의 성종은 하이 테너, 현재의 성종은 미들 ~ 로우 테너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69]

음역대가 넓다 보니 전성기 당시 기사를 봐도 라이브 잘하는 가수 1위에 자주 뽑혔다. 20~30대가 뽑은 「베스트 라이브 가수 20」 (1998. 11. 28.). 1999년 기사에서도 1위는 김경호, 2위로 김현정박정현이 꼽혔다. 여담으로 김경호와 박정현은 나가수에서도 1위를 가장 많이 기록한 가수들이기도 하다.

최전성기 김경호의 엄청난 고음은 당시 중고딩들이 고음병발성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원인이 되었고, 쓰잘데기 없는 발성 지식과 고음 내는 방법 등 속칭 입발성을 널리 퍼뜨리는 데 본의 아니게 일조했다.[70]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포스트 김경호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있는데, 2010년대 오디션 방송 MBC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위원이었던 김태원 왈 "김경호는 한 사람이다. 그를 아무리 똑같이 따라 해본들 김경호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김경호의 노래 스타일이나 발성은 굉장히 유니크한 것으로 그렇게 노래를 잘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발성적 지식을 모르고 함부로 따라 하다간 나쁜 버릇이 들기 딱 좋다.[71]

4.2. 보컬

많은 대중들은 김경호를 한국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 혹은 한명으로 꼽는데 큰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72] 2020년대엔 쇼츠 컨텐츠의 발달로 전성기 가창력이 일명 '김경호 악마시절'이라는 별칭으로 젊은층에 새롭게 알려져 다시 유명해진 감도 있다. 평이 보수적이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록씬에서도 '국내 록씬에 김경호 같은 보컬 한 명만 더 나와줬으면.' 이라 생각할 정도이다. 참고로 김경호는 록발라드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정작 자신의 공연에서는 록발라드보다 강렬한 하드록, 메탈 넘버들을 더 많이 불렀다.

데뷔 무렵 전후만 해도 미성이 혹은 미성만 돋보이는 보컬이였지만, 2집 이후부턴 다소 흉성의 비율을 높인 중성에 기반한 발성법이 두터운 미성에 결합되어 만들어진 개성있는 음색에 강한 비브라토와 스크래치 같은 기교적 요소가 합쳐져 8비트 기반의 록발라드에도 강점을 보인다.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김경호는 록에 더 부합하는 보컬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성대결절 이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정이 점점 더 깊어지고 저음도 더욱 잘 낼 수 있게 되었다.[73]

많은 고음역대 가수들의 큰 단점으로 고음에서 감정이 없어 소리만 빽빽 지르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고[74], 이것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김경호는 파워풀하고 단단한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게 곡을 표현하며, 이는 저음부 뿐 아니라 초고음에서도 마찬가지라서 감성적인 발라드에도 강점을 보인다. 성대결절 이후 중고음역대 발라드를 부르기 시작한 이후엔 더 감성적인 발라드를 불렀다.

무엇보다도 김경호의 가창력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샤우팅이다. 이 메탈릭한 샤우팅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하다.[75] 무대를 빈틈 없이 꽉 채우는 강렬한 사운드와 무시무시한 음역,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김경호의 스크래치 창법이 결합된 샤우팅은 그의 음악적 감각에 의해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 당시의 김경호를 보지 못해 이 샤우팅의 비중이 잘 실감되지 않는 10 ~ 20대 사용자들은 전성기 나얼의 애드립 능력이 그의 보컬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또한 전성기, 성대결절의 고난을 지나 현재진행형으로 흉성에서 끌어올리는, 날카롭기보다 묵직하다라는 표현에 더 걸맞은 샤우팅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16년 03월 19일 돌발콘에서 정점을 찍는다. 또한 발성적인 면에서, 전성기 때 샤우팅보다 덜 무리가 간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샤우팅이라는 창법 자체가 무리가 갈 수밖에 없으므로 샤우팅이 많이 가성틱해져도 이만큼 회복한 것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스스로 변성기를 겪지 않고 음색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에서 일단 타고난 하이테너라는 건 따질 것도 없는 사실이고, 여기에 중음에서 초고음까지 배음이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강한 악센트를 계속 걸어주는 게 가능할 정도로 성대의 탄력이 매우 탄탄하다. 여기에 마이클 베세라, 마이클 스위트, 세바스찬 바흐 등의 네오클래시컬/팝 메탈 보컬의 특징을 카피하면서 자기만의 발성을 단련한 경우인데, 참고로 저 세 보컬 역시 겁나 타고난 하이톤의 소유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김경호 스스로는 80년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가령 롭 핼포드, 로니 제임스 디오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를 동경했다고 하지만 사실 라이브 레퍼토리로 트리뷰트하는 성격이 강했지 실제로 보컬링에 큰 영향을 준 경우는 아니다. [76]

김경호는 해외의 여러 보컬들의 장점을 가지고 있고 아랫 문단처럼 스트라이퍼의 보컬 마이클 스위트와 자주 비교되고는 하지만, 사실 김경호의 음색과 창법은 마이클 베세라와 가장 흡사하다. 속주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잉베이 말름스틴과 밴드를 하던 시절 마이클 베세라의 노래는 김경호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Seventh Sign이라는 곡은 링크 영상 기준 1분 11초부터 노래가 나오는데 김경호가 불렀나 할 정도로 유사하다.

김경호는 여러 해외 보컬들을 커버했지만, 그 중에서도 스트라이퍼의 보컬 마이클 스위트 관련 커버가 유명하다. 김경호 특유의 발음 엑센트가 마이클 스위트의 발음과 거의 닮았던 적도 있었다.[77][78]
마이클 스위트의 'To Hell With the Devil 김경호의 'To Hell With the Devil

이와 같이 김경호는 마이클 스위트의 보컬을 가장 많이 커버했으며, 오디션을 볼 때 '스트라이퍼'의 발라드 명곡 'Honestly'를 주로 불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디션에서 자주 떨어지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 기획사에서는 댄스 음악을 권하고 김경호는 록 음악을 지향하는 등의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편,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도 구로공단의 작은 월세방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며 꾸준히 연습해 창법을 연마해 나갔고, 그 창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샤우팅 창법이다.

뿐만 아니라, 김경호는 80년대의 보컬들 중 무대 액션이 컸던 ''의 프레디 머큐리[79], '스키드로우'의 세바스찬 바흐, '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 등의 무대매너를 참고하면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컨셉과 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80년대 헤비메탈 록 보컬들의 올드스쿨스런 이미지와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강력한 샤우팅 창법을 마스터하고, 좀 더 극적인 무대 연출까지 더해져 나온 괴물이 바로 '김경호'였다.

4.3. 창법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든든하다. - 김연우

전성기에는 두성을 주로 사용하고 흉성을 당기는 묵직한 고음과 특유의 폭넓은 비브라토를 선보였고, 어느 정도 방향성이 잡혔던 3집 이후부터는 노래에 스크래치를 섞어가기 시작했다.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 정도까지 구사 가능했고# 그 이후 초고음역에는 샤우트 창법을 택했다. 또한 샤우팅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만큼, 메탈릭한 노래의 경우 곡 중간중간에 샤우팅을 넣어 흥을 돋구는 보컬 운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점점 사용 빈도가 많아져가는 샤우팅 구사와 지나치게 높은 음역대의 곡 구성, 거기다 혹사에 가까운 공연 일정으로 인해 결국 2000년 8월에 목상태가 굉장히 안좋았다가 2001년 초반 어느정도 안정되었으나, 6집 활동으로 컴백하면서, 기존과는 달리 목을 조이고 얇은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7집 앨범 녹음중에 공식적으로 성대결절 판정을 받는다.[80] 김경호는 당시 소속사의 이사 2명이 빚을 내서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81]계속 무리하다가 7집 활동 때 성대결절 판정을 받고 가성까지[82] 상해서 2004년, 결국 샤우팅을 잃어버렸다.[83] 결국 'Shout', '탈출', 'Rock N' Roll' 등의 초고음 곡은 셋리스트에서 빠지게 된다.[84][85]

그 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을 배제하고[86] 중저음의 미드 템포 발라드를 부르면서 최악이었던 목 상태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인터뷰에서 가온다를 기준으로 3옥타브 미(E5)까지는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87] 나아가 꾸준한 연습을 통해 극복하고 진성을 위주로 한 힘 있는 보컬이 가능하게 되었고,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비추고 나는 가수다에서 최다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후로도 연습과 관리를 꾸준히 해 나가면서 컨디션을 서서히 끌어올려 2014년 하반기부터 샤우팅이 부활했으며, 기량 면에서도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젊은 시절보다 샤우팅의 파워가 다소 약하단 의견도 있으나[88]샤우팅의 유무는 김경호가 무대를 꾸미는 데 있어 굉장히 큰데, 전성기의 김경호가 빠른 메탈 곡을 소화할 땐 간주 중간마다 3옥타브 솔(G5)~라(A5) 정도의 샤우팅을 냄으로써 흥을 돋우고 무대의 사운드를 채웠다.[89] 그러나 샤우팅을 잃은 후, 김경호는 샤우팅을 했던 부분에 ‘어이!’나 2옥타브 라(A4)~시(B4) 정도 되는 ‘워~이예’ 등의 중음역대 애드립을 사용해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창법 운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성대결절을 겪고도 어느 정도의 음역대를 수복한 김경호는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1위를 4번이나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예전의 엄청났던 메탈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 시점부터는 되살아난 샤우팅을 통해 메탈 무대를 다시금 화려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샤우팅이 들어가지 않은 140823 ‘첫차’ 무대샤우팅이 들어간 151003 ‘첫차’ 무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샤우팅 부활의 위력은 '불후의 명곡' 247회에서 '돌팔매'가 첫대결 최고점에 올킬을 기록하면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2016년 9월 말 대전콘서트에서 부른 'Exodus'는 키조정을 거쳤지만 3옥타브 솔(G5)을 샤우팅으로 선보였다. 불후의 명곡 273회 아리랑 특집에서는 '아리랑 목동' 무대에서 3옥타브 파(F5)샤우팅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불후의 명곡 6월 3일 방송에서 이를 뛰어넘는 3옥타브 솔♯(G♯5)을 샤우팅으로 선보였다! 결절로 인해 상당 부분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다시 찾고 있다는 증거로서 팬들에게는 반가운 무대일 듯. 그리고 무턱대고 불렀다가는 성대결절 피하기 어렵다던 그 샤우트를 1키 낮춰서 5월 13일 서울 낮콘에서 불렀었다!!! 게다가 그 후에 돌발콘, 부산콘에서도 불렀는데, 점점 육성도 뚫릴 뿐만 아니라 샤우팅도 발전하고 있다. 부산콘에서 부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에서 3절 하이라이트 구간 3옥타브 레(D5)을 깔끔하게 진성으로 처리했다. 이걸로 볼 때 순간적으로 뽑을 수 있는 진성 한계가 3옥타브 레(D5)까지 가능한 듯. 그러나 2018년도에는 진성이 많이 낮아져 플랫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한계 진성음 역시 3옥타브 도♯(C♯5)으로 많이 낮아졌고, 그마저도 잘 나오지 않는다. 무리한 일정과 잦은음주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실한 것은 목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목상태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샤우팅 음역은 2018년에 3옥타브 라(A5)을 기록한 후 여전한 듯 하나 진성을 배제하고 샤우팅 처리를 하는 것은 노래의 완성도도 떨어뜨리고 목건강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90]

정리해 보면, 과거의 샤우팅이 어마어마한 음역대와 성량을 기반으로 진공을 가르는 느낌을 준다면, 현재는 깊이 있는 목소리를 바탕으로 포효하는 느낌의 샤우팅으로 변했다고도 볼 수 있다. Youth gone wild 도입부를 과거와 현재 순으로 편집해 놓은 유튜브 영상 댓글 중에 리즈는 전투기 같고 현재는 전차같다는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91] [92] [93]

2018년도에는 샤우팅이 14~15년도에 비하면 매우 좋아졌다. 실제로 15년 초 김경호 본인도 샤우팅은 힘들면 못 한다고 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고 연달아 샤우팅을 한 뒤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정도로 실제로도 많이 힘겨워 하였으나 지금의 김경호는 탄탄한 샤우팅을 연달아 구사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성대를 회복 했다. 반면 진성은 2014년부터 서서히 호흡이 짧아지고 3옥타브 도#(C#5)이상의 음을 내기 힘들어 하기 시작 했다. 17년 이후에는 3옥타브 도♯(C♯5)~레(D5)음을 진성으로 낼 경우 플랫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샤우팅으로 처리 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금지된 사랑과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17년 이후로 모든 음정을 제대로 소화 한 라이브는 매우 드물다. 3옥타브 도♯(C♯5)까지의 진성음이 단단해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그 음역대를 찍고 내려 오는 아스파라거스, 나사천 등에서의 모습으로 볼 때의 이야기다. 반면 2옥타브 라(A4)이상의 고음이 많이 지속되는 곡에서는 과거 날카로움을 과시하던 2013년대까지와는 상대적으로 많은 플랫이 일어난다. 진성 최고음(~D5) 사랑했지만 등 2옥타브 후반 대의 음역대, 샤우팅에서는 오히려 소리가 더 탄탄해졌으나 샤우팅 음역과 달리 진성음역대가 떨어져 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호흡도 짧아져 가사를 끊어 부르는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짧아진 호흡이 나슬사의 최고음 브릿지 부분의 고음 연타 부분을 더 소화 하기 어렵게 된 이유로 보인다.[94]

18년에는 그의 목 상태는 샤우팅을 제외하면 2003년~2004년 이후로 가장 좋지 않다.[* 솔직히 03~04년 당시보다는 괜찮다. 03~04때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많이 상해있었다.[95] 현재 목 상태를 엄밀히 비교하자면, 현재의 창법으로 바꾸기 직전과 창법을 바꾼 직후 시기인 2008년 말~2009년 초 당시의 목상태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2008년 말에 기복이 엄청 심했고, 나슬사랑 금사 키는 08년 락클 때 부터 지금 키로 낮췄다. 낮추고 나서 09년 초에 창법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도 이런 플랫 현상은 지속되었다가 09년 중반부터 다시 안정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2018년 말부터 서서히 목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나슬사 같은 경우엔 여전히 발음이 뭉개지고 플랫도 자주 일어나지만, 금지된 사랑 같은 경우 "은퇴는 없다" 라고 멘트를 한 후 부터 먼 훗날 우리 구간에서 3옥타브 도#(C#5)을 다시 깔끔히 소화하고 있다.

2019년 6월 이후로 김경호는 지금까지는 별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창법을 운운하기 어려워진 것이 진성 음역대가 더 올라가는 건 바라기 힘들고 이제는 컨디션과 체력관리가 중요시되어야 할 것 같다.

2020년 하반기 이후 나가수 시절부터 보여줬던 스크래치를 절제하고 최대한 깔끔하게 부르는 걸 지향하는 것으로 바뀐 듯. 불가피하게 바꿨던 창법을 다시 복구하려는 듯하다. 2021년 12월 25일 락 크리스마스 공연을 보면 알 수 있으며 락을 부를땐 파워풀 하다.

2022년 6월 서울콘서트에서 '슬픈 영혼의 아리아'를 최대한 정박에 가깝게 부르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회복된것으로 보이나, 2022년 9월 청주콘서트에서 다시 셋리스트에 올라온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3키로, '비정'이 -4키로 조정된 것으로 보아 진성으로 내는 음역대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김경호는 10년을 주기로 목소리가 바뀐다고 했었고 실제로 그래왔다. 이번에 키 조정을 함에 따라 그 주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5.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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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상 경력

6.1. 시상식

연도 시상식 명 수상 부문
1989년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 동상
1991년 MBC 대학가요제 동상
1997년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 디스크 부문 본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1998년 SBS 가요대전 특별상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 디스크 부문 본상
한국방송 프로듀서상 올해의 가수상
1999년 KMTV 가요대전 최우수 락 가수상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인기상
2000년 서울가요대상 특별상

6.2. 가요 프로그램

날짜 곡명 방송명 비고
1997.09.27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7.10.04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2주 연속 1위
1997 (날짜 미상)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Mnet 가요베스트27 8주 연속 1위

7. 특징

7.1. 언니

무대에서의 폭발적인 모습과 정반대로, 평소에는 매우 섬세한 성격이라고 한다. 덕분에 국민언니라는 별명도 있다.[96]

취미는 그릇 수집과 화장품 샘플 수집. 나가수에서 그렇게 밝혔다. 부쩍 늘어난 아줌마 팬들이 화장품 샘플을 많이 보내준다고 한다.

특기는 집안일. 2집 활동 당시 라디오에 출연해서 잘하는 음식이 닭볶음탕이며 자주 만들어 밴드 멤버한테 먹인다고 했다.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 정말 엄청 좋아한다.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자신이 여성이었다면 분홍색으로 집을 도배했을 거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도 팬카페 단체 티셔츠가 언젠가 핑크였던 것을 밝히기도 했다. MBC 파일럿 방송 백투 더 스쿨에서 본인의 가방에서 핑크색 필통을 꺼내기도 했다.

집이 너무나 깔끔한 데다 피부가 약해 여자 화장품을 쓰는가 하면, 긴 생머리를 가졌고 신장 178cm에 체중 59kg라는 몸매 등으로 인해 나가수 여신[97]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된다. 게다가 각선미도 장난이 아니다.

별명은 경호 언니, 락 언니, 국민 언니, 락큰롤 언니 등등... 2011년 12월 26일에 방송된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는 자신을 락큰롤 언니라고 칭했다. 이젠 뭐 자신도 적당히 즐기는 듯. 사실 락 언니 이전에 락 마미라는 별명도 있었으니, 지금은 오히려 한 단계 어려졌다. 친구인 윤도현의 별명이 과하게 '베이비' 가 된 거에 비하면 적절하긴 하지만. 게다가 김경호 본인도 김태원의 별명인 '국민할매' 보다 훨씬 낫다고 좋아했다.

백지영은 김경호를 나가수 5대 미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1대 백지영, 2대 박정현, 3대 옥주현, 4대 장혜진, 5대 김경호. 게다가 나는 가수다에서 어린 팬이 직접 그린 팬 아트에는 김경호가 긴 머리 언니로 묘사되어 있었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37523205.2.jpg
고정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 주문으로 김연우와 함께 커플룩 투샷을 찍은 적도 있다. 이 사진 때문에 김연우가 위장 결혼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문제의 사진은 김연우와 김경호가 부른 MBC 로고송 영상의 첫 장면에도 나온다. 그리고 케이블 MAGAZINE1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해당 사진에서 김경호의 얼굴을 지워 놓고 김연우의 아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김연우가 식신로드에 출연했을 때는 최희가 '아내 분이 참 미인이시더라구요.'라고 말해서 김연우가 아내 얼굴을 본 적이 언제냐며 당황하고, 혹시 김경호 사진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당연히 최희는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신세가 되었다. 방송 캡쳐본

긴 머리 때문에 지하철에서 치한의 기습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 때 김경호의 반응은 걸걸한 목소리로 "아따 취향 독특하쇼잉" 치한이 놀라서 달아났다. 두시탈출 컬투쇼 2008년 4월 18일 자 방송을 들어 보면 성추행 당했을 때 추행범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손을 딱 잡고 "아따, 취향 겁나게 독특하쇼잉~" 한다고 하자 정찬우가 예전에 나온 아주머니 사연 중에 아주머니가 추행범에게 "어이구 신났다, 신났다" 했다는 사연을 들려줬고 김경호는 여기에 빵 터졌다. 그 뒤에 이걸 써먹은 듯. 해피투게더 조동아리에 나왔을 때도 뒷태의 위엄을 선보였다.

5분 28초부터어따~ 취향 겁나게 독특하쇼~잉?!

여담으로 FNC엔터테인먼트에서 마녀라 소문난 김영선 이사와 닮았다는 설이 있다. 김영선 이사를 아는 사람은 둘이 남매가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고 한다. 가녀린 몸매와 긴 생머리 때문에, 가수 크리스탈헷갈려하는 사람도 꽤 있는 모양.

예능 세바퀴에서 모낭충 없는 피부 1위를 차지했다. 이때 피부 관리 비법으로 냉동실에 차게 얼린 숟가락으로 피부 결을 따라 얼굴을 마사지해주는 것을 뽑았다.

7.2. 의외의 모습

기계치. 2집의 성공 덕분에 집에 큰 TV를 장만했을 때 리모컨을 잘못 만져서 화면을 12 분할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난감하게도 원상 복귀하는 방법을 몰라 뒤늦게 매니저가 와서 고쳐주기 전까지 그 상태 그대로 TV를 계속 봤다고 한다.[98] 2021년에도 여전히 키고 끄고 채널 돌리는 거 외에 TV 사용법을 모른다고 한다. 본인이 방송에 나오더라도 채널을 못돌려서 TV로 못보는 경우도 있다며 언급한 적 있다.

더불어서, 엄청난 컴맹인데 Ctrl+C와 Ctrl+V를 몰랐다고 한다. 배웠는데 까먹었어또 F5(새로고침), 메모장 기능과 확장자 등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모양이며 독수리 타법인 것 같다. 본인 말로는 인터넷 쇼핑 장바구니 기능도 잘 모르겠어서 물건은 그냥 직접 나가서 산다고(...) 하였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온라인 쇼핑을 잘 이용한다고 한다. 특히 G마켓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신조어나 최근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하다. 줄임말에 대해 모르는 것은 기본이고, 포스트잇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쪽지사연이라고 말한 적 있으며 컵홀더라는 단어도 몰라서 잔감싸개라고 말한 적 있다. 과거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될 즈음에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헷갈렸는지 스마일폰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덧붙여, 요즘 사람들이 주로 쓰는 초성어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하다.[99]

평상시에 조반, 후앙, 자네, 분칠, 선전 등 옛스러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는 달리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는 여성스러운 평범한 말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종종 예능 등의 방송에서도 흥분하면 사투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갭 모에? 사석에서 친한 이들에게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은 최근에 와서는 예능에 출연해서도 그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재

라디오 스타에서의 김경호는 매우 겸손해 보이는데,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반농담으로 말하길 컨셉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게스트로 나온 정성호가 김경호 형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라는 에피소드[100]를 말한 적이 있다.[101]

아버지, 어머니 모두 아나운서 출신이다. 아버지도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구사하다 녹화가 끝나면 전라도 사투리 모드로 돌아온다고. 아따 오늘 발음이 허벌나게 꼬이네잉

박완규는 '1996년부터 경호형에게 여자친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너무 잘해줘서 이용만 당하다 결국 상처받았다' 고 말했다. 김경호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했으니 충분하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관리와는 별개로 화장품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몰랐는지 화장품을 8년이나 써온 게 쉰 호규전에서 밝혀졌다(!) 같은 제품을 8년 동안 구매해온 게 아니라 8년 전에 샀던 화장품을 아직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모낭충 없는 피부 1위를 했던 세바퀴 동안 특집 방영 당시부터 지금까지 썼단 얘기가 된다. 모 네티즌은 화장품은 개봉하면 6개월 안에 써야 한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다른 화장품도 유통기한이 지나 있다는 걸 알았고 그제서야 피부가 푸석푸석해진 이유를 알았다고..

나이가 들어선 집 텃밭에 작물을 기르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영농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상추, 옥수수, 피망 등 다양한 작물을 직접 재배하여 음식을 해먹고 있다고 한다.

8. 방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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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공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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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광고 및 홍보대사 활동

연도 기업명/기관명 제품명/홍보대사명 비고
2006년 K-1 FN KHAN 홍보대사 관련 기사
2015년 광주광역시 2015광주하계유니버사이드 홍보대사 광주U대회 홍보대사 김경호 홍보 영상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6년 ~ 2017년 이니스프리 마이 헤어 레시피 22년차 긴머리 김경호, 헤어케어의 답을 제시하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2년차 긴머리 경호언니의 두피관리법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2년차 긴머리 경호언니의 헤어 스타일링팁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7년 동사모 동사모 2018 홍보대사 관련 기사
2017년 환경부 폐가전 무상방문수거 서비스(폐스) 무료! 폐가전 무상방문서비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1. 여담

  • 으레 겸손하며 유머 감각도 있고, 자기관리도 철저한 편이라 수십년간 활동하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거의 전무한 가수다. 악성 루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경호는 연예계에서도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가수이며 보통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들은 인지도가 높은만큼 사건사고에 휘말리기가 쉬운데도 수십년 동안 사건 사고 없이 무탈히 생활 해온 것을 보면 대단하다.
  • 김경호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한 팬이 10년 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우연히 김경호의 집에 배달을 갔는데 사인을 받고 싶어도 일하는 중이라 종이와 펜이 없는 상황이어서 김경호에게 조심스럽게 사인을 부탁했더니 김경호가 손수 방으로 들어가 종이와 펜을 들고 나와 사인을 해 주었다고 한다. 팬 본인은 김경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좋은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며 단순 배달 알바생이 아닌 팬으로써 또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 피아노, 기타 등 각종 악기를 능숙하게 잘 다루며 밴드 전체를 지휘, 통솔한다.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거나 직접 일렉기타를 치면서 외국의 유명한 락, 헤비메탈 그룹의 명곡들을 커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게다가 드럼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으로 매우 잘 알고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럼 필인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다. (밴드 합주 시 드러머의 조그만 실수까지 놓치지 않고 다 잡아내어 따끔하게 지적하는것은 물론이고 다른 보컬리스트들은 잘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일일이 지적하여 고치도록 해준다. 한번은 드러머가 원곡에 없는 필인을 계속 남발하자 똑바로 칠때까지 무한반복하며 매섭게 지적하는 모습이 영상에 나온적이 있다.) 김경호는 밴드와 합주하거나 공연 전 리허설을 할때 멤버들이 잘못하거나 실수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 생기면 멤버들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고쳐야 할 부분만 정확하게 짚어주기 때문에 유튜브에 합주하는 영상이 업로드 되었을 때 팬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 일각에선 본인이 직접 곡을 쓰지 않는다고 까는 안티들도 가끔 있는데, 김경호의 자작곡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데뷔도 자작곡으로 했으며 음반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102] 애초에 김경호는 록 보컬리스트를 지향한 것이지 작사, 작곡, 노래를 전부 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지향하진 않았다.
  • 2023년 1월 28일 대구 콘서트 당시 가수 박완규가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는데 김경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완규가 우연히 프롬프터에 뜬 셋리스트를 보고 경악하며 김경호에게 말하기를 " 아니 뭔 노래를 이렇게 많이 불러? 아니 25곡을 부르는 가수가 어디 있어! " 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경호가 말하기를 " 곡 수를 이렇게 해도 (관객들이) 뭐라해 " 라고 말하자 박완규가 "그만 좀 뭐라 하세요! 이게 말이 돼! " 라고 장난으로 버럭했다가 곧 바로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팬들에게 사과했다. 김경호는 옛날부터 콘서트를 할때마다 하루에 2회씩 해왔는데 1회당 2시간 공연인데 보통 20~25곡씩 부른다. 그럼 콘서트 때마다 (하루에) 최소 40곡에 4~5시간 공연한다는 얘기가 된다. 마지막 앵콜곡만 보통 3~4곡이다. 더군다나 음악 장르중에서 가장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록, 헤비메탈이니 이정도면 말 다했다. 대중들은 김경호에게 대단하다거나, 놀랍다거나, 클라스는 영원하다 등의 반응이 대다수였다.
  • 축구를 정말 좋아하며 축구팬이자 K리그 광팬이다. K리그 5부 리그까지 다 챙겨보며 공연 전 대기실에서 수원FC 경기를 보는 것이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103] 한 프로그램에선 동료 가수 박완규와 함께 출연하여 경기를 직접 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뛰지 못하고 엄청 힘들어했다.(...)
  • 온라인 쇼핑도 애용하는 모양.
  • 평상시에 조반, 후앙, 자네, 선전, 다방, 분칠, 잔감싸개, 벗 등 옛날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며 기계치이다. TV는 리모컨으로 켜고 끄는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줄 모르며 잘 모른다고 한다. 데뷔 초창기에도 집 TV를 실수로 잘못 건드려 화면을 12분할로 만들었는데 매니저가 와서 고쳐줄때까지 그대로 봤다고 한다.
  • 나이가 들어 애완 달팽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 전성기 시절부터 유독 매년 10월에 목 상태가 안 좋았다. 이 때문에 98, 99, 00년 10월에 있던 대학가요제에서의 공연들은 전부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1997년 10월에는 나슬사 -1키 완창도 버거워할 정도로 나빴고, 98년도에는 목소리가 두꺼워져서 고음이 올라갈 때 찢어지고, 99년도에는 목소리가 갈라지면서 중음이 비기 시작했고, 00년도에는 성대결절로 인하여 중음이 심하게 비는 데다 목소리도 갈라졌고, 01년도에는 중음이 더 비었고, 02년도에는 고음도 잘 안올라가고 샤우팅도 얇아지다가, 03년도에는 고음은 물론이고 샤우팅에서 괴물 목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말과 연초에는 다시 목상태가 좋아졌다[104]. 반면 매년 8월에 열리는 강변가요제에선 98년, 99년 모두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 성량이 현대 음향시설이나 스피커도 버텨내지 못할만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워낙 커서 마이크가 잘 사망한다.[105] 밴드 사운드가 김경호의 미친 성량 때문에 파묻히는것은 기본이고 방송용 사운드나 노래방 스피커 조차도 김경호의 미친 성량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전성기가 지난 후 2007년 한국외대 축제에서 공연을 할 당시 캠퍼스 안쪽에 있는 노천극장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졌다)에서 공연을 했음에도 지하철 역에서까지 희미하게 들리는 미친 성량을 자랑했다. (캠퍼스에서 지하철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10분이상 걸렸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인 1997년 2집 앨범 활동 당시 절친한 동료 가수 윤도현의 콘서트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을때도 공연장 스피커를 찢어버릴듯한 미친 성량을 자랑하며 무대를 압도했으며 1998년 3집 앨범 발매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당시 한 방송에 출연하여 공연 전 리허설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빠른 헤비메탈 곡 <shout> 를 불렀는데 김경호의 엄청난 샤우팅 때문에 김경호를 소개중이던 아나운서 2명의 목소리가 완전히 파묻혔다. 1999년 4집 앨범 활동 당시에도 연말 생방송 무대에서 <for 2000 AD> 를 열창했는데 마이크가 김경호의 미친 성량 때문에 고장날뻔 했으며 2000년 5집 앨범 활동 당시에도 소요산 락 페스티벌 공연에서 앵콜로 skid row의 <youth gone wild> 를 부르던 중 곡의 막바지에 마이크가 김경호의 미친 성량때문에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고치느라 애를 먹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김경호는 마이크가 고장나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했는지 마이크를 고치자마자 샤우팅을 질렀다. 그외에도 확인된 것만 3개다.
  • 어렸을 때부터 앓았던 간질에 의한 뇌전증 때문에 병역면제를 받았다. 그때문에 전성기 때부터 공연할 때 무리한 공연을 소화한 후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완치 후 30대 중반이 돼서야 운전 면허를 취득했다고 한다.
  • 입담이 수준급이다. 정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이나 히든싱어, 나는 가수다에서 보면, 입담이 수준급이다. 소극장 공연 때부터 온갖 에피소드를 다 털어놓았다고. 개그맨 될 뻔 했다는게 과언이 아닌듯
  • 놀랍게도 코미디언이 될 뻔했었다. 1991년도 KBS 공채 오디션에서 친구를 따라가 본인도 오디션을 봤는데 무려 2차까지 붙었었다고.[106]
  • 가수 서지원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정 게스트로 함께 참여 했었다고 한다. 그때 많이 친해졌지만, 서지원 사후 많이 힘들어했으며 후에 나가수에 그를 언급하며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를 불렀다. 이 때 "너무 못 불러서 지원이한테 미안하다."고 아쉬워했다.
  • 동갑내기인 가수 김연우와는 라디오 게스트로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 본인이 1999년 4집 앨범 활동 당시 소극장 공연에서 밝힌 일화로는 H.O.T.,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전부 선생님 보듯 하는게 서로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서, 아예 그냥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긴머리를 하면서도 생긋 웃고 다니면서 반말도 안했다고 한다. 본인이 다른 가수들 대기실에 먼저 방문해서 인사를 해줬다고 한다. 토토가에서 S.E.S.의 바다가 "활동 시기일 때 컨셉이 요정이라, 다른 가수분들께 방문을 못 해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바닥도 선후배 관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데, 김경호는 그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무서워할까봐 웃고 다닌 거였다고 한다. 문제는 김경호가 거느린 밴드 멤버였는데 그 멤버들의 인상이 살벌하기에 다른 아이돌 댄스팀이 겁을 먹고 도망을 다녔다고 하며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벽만 쳐다봤다고 한다.
  • 2003년 핑클의 곡 'Now'를 리메이크했을 당시 후배이자 동료였던 가수 박완규와 사석에서 멱살을 잡을 정도로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록부심 충만하던 시절, 자신의 롤 모델로서 존경하던 선배이자 친한 형인 김경호가 변절(?)한 모습에 매우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이후 화해하긴 했다. 참고로 당시 핑클은 'Now'를 리메이크 해 주셔서 영광이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핑클의 소속사 대표에겐 '니가 뭔데 Now를 부르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관련 설을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자면 말들이 좀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일단 박완규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김경호는 소속사의 압박으로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박완규가 김경호의 모습을 처음 본 건 박기영과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여기서 김경호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잘랐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요즘 시대에 락 음악은 안 돼, 변신이 필요해"라는 식의 거짓말을 했고, 여기에 화가 난 박완규는 그 자리를 다 엎어 버리고 술병을 던지며 "형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며, 덤볐다고 한다. 그 후 2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박완규가 다시 용서를 구하면서 전화를 하고 무릎을 꿇었다.[107] 그런데 박완규는 김경호가 머리를 자른 이유가 소속사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랐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경호는 윤도현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온 것을 보고 영향을 받기도 했고, 마침 긴 머리가 싫증나기도 했겠다, 거기다 소속사에서도 머리 가지고 자꾸 잔소리를 하겠다, 그래서 겸사겸사 자기 발로 미용실에 가서 자른거라고 여러 방송에서 언급했다. 여하튼 어찌저찌 화해를 했다고 한다. MBC '라디오 스타'에서 김경호 왈 "이 녀석, 제가 골반 춤 추고 예능 나갔을 때 어떻게 록커가 그럴 수 있냐면서 그리도 절 욕하더니, 2년 만에 전화 와서는 같이 '찾아라 맛있는 TV' 하자고 하더라구요" 이후 관계가 회복되어 듀엣 공연이나 간간히 함께 방송 출연도 하고 있다. 이후 같이 유튜브도 하며 찐친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김경호가 박완규에 대해 '그래도 이놈이라도 옆에서 놀아주고 얘 하나 건졌으면 됐지' 라고 말할 정도인 것을 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 이 외에도 걸그룹 파파야의 정규 2집 타이틀곡이었던 '사랑만들기'를 많이 좋아해 그의 애창곡 중 하나였다. 하도 라디오 등지에서 흥얼거려왔기에 오랜 팬들은 알음알음 아는 정도였는데 결국 2007년에 이르러서는 아예 라디오 방송에서 해당곡을 부르기까지 했다. 러블리즈의 팬임을 자처했던 이성우(노브레인)와 많이 닮은 꼴이다.
  • 작곡가 박정식과의 인연으로[108]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은혼의 오프닝곡 '질주'였으며, 원피스 7기 오프닝곡 '꿈이 있기에' 를 부르기도 했다(둘 다 신동식 PD 작사). 함께 작업했던 신동식 PD의 블로그에 따르면 처음으로 부르는 애니메이션 주제가 섭외였지만 흔쾌히 응해주었다고 하며 또한 KBS 1TV 애니메이션 메타제트의 오프닝을 부르기도 했다.
  •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109]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2006년 8집 앨범 활동이 조기에 중단됐으며 썩은 뼈를 도려내서 키가 2cm 정도 줄었다.
  •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백청강을 위해 스케줄을 잡았다고 언급했고, 실제로 출연 하여 듀엣 무대를 선 보이게 되었다. 상술했듯 백청강은 김경호의 광팬.
  • 독거총각 생활이 너무 외로워 말티즈 반려견 뭉실이와 루루를 키웠던 적이 있다. [110] 이에 대한 부러움으로 디시 김경호 갤러들은 본인들을 뭉실이라고 부르며 여담으로 예전 반려견 이름은 김종서강산에였다고 한다. [111] 최근에는 아르라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유일한 짝은 아르 개밖에 없다고 한다.
  • 자서전을 발매한 적이 있다. 책 제목은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로 김경호의 신조이기도 하다. 현재 절판되었다.#
  • 김경호 갤러리에서 우연히 찍힌 고구마 먹방이 요리경연 대회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 의외로 을 잘 춘다.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콘서트 등 무대에서 많은 춤을 보여 준 바 있다.[112]
  • 최재훈과 노래 주점에 갔는데, 김경호가 최재훈을 음정박자 못 맞춘다고 혼을 냈는데 최재훈은 이런 데까지 와서도 그런 걸 따지냐고 화를 내서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금세 화해 하고 듀엣곡을 불렀다고 한다.
  • 연예인 야구단인 '조마조마 야구단'의 멤버이기도 하다. 다만 절친노트 출연 당시 야구단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특히 단장을 맡고 있는 배우 정보석에 의하면 야구공을 무서워해서 오는 공을 피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당시 방송에서도 날아오는 송구를 보고 기겁하는 모습으로 이 사실이 증명되었다. 정곡을 찔린 후 정보석에게 연습에 자주 나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후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는 불분명.
  • 2014년 7월, 4년간 교제했던 13살 연하 일본인 여자친구와 2014년 안에 결혼 하겠다고 발표 했다. 해당 기사. 2014년 11월 8일, 교제 중이던 일본인 여자친구와 드디어 결혼에 골인 하게 되었다! 관련 기사. 2018년 8월 6일, 지난 6월 결혼 4년만에 협의이혼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성격 차이와 문화 차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2015년 1월 17일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 하였을 때 마침 함께 출연 한 EXID와 의상 코드가 겹친 덕분에 6번째 멤버드립이 성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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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의 모습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 초~중반의 걸그룹 후배들 사이에서도 위화감 없이 섞이는 위엄을 보여 줬다.
  • 2017년에 헤어 제품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광고 중에 헤드뱅잉을 하며 샤우팅을 한다.. 광고 영상 이 광고로 '헤어마스터'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 2019년 6월 6일 밴드 합주실에서 콘서트를 준비하다가 우연찮게 연습하러 온 부활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당시 목디스크 수술 이후 재활 중이었다고 언급했다. 출처.
  • 자신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금지된 사랑을 노래방에서 부르고 100점이 나온 적이 있다. 영상
  • 유노윤호와는 어머니들끼리 아는 사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한다.
  • 2021년 9월, 드디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박완규와 같이하는 채널로, 채널명은 김경호·박완규의 쉰호규전이다. 쉰호규전 그러나 그러나 같은 해 12월 29일 시즌 1 종료 공지를 올린 후 현재까지 영상이 업로드되지 않고 있다. 이후 2023년 3월 9일 '습관처럼 김경호'라는 개인 채널을 만들어 현재까지 꾸준히 근황을 보여주고 있다.
  • 2022년 2월 16일, 1집 발매일이라고 알려진 1994년 10월 1일을 기준으로 10,000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 알려진 1집 발매일이 정확하지 않아서 10,000일 기념을 축하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 전성기에 괴물같은 엄청난 가창력을 지녔었다보니 동료 가수들이 그의 라이브에 벙쪄버리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1999년 4집 앨범 활동 당시 시상식 무대에서 아름답게 사랑하는 날까지를 듣던 토니 안이나 1999년 12월 24일 락 크리스마스 콘서트 당시 게스트(신인)로 무대에 올라 김경호와 함께 그 유명한 스틸하트She's Gone 을 불렀던 가수 서문탁이 있다. 토니 안은 넋이 나가버렸고 서문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 어떤 유튜버가 김경호가 한 공연에서 얼마나 3옥타브를 많이 구사하는지 그 수를 전부 세어본 적이 있는데, 그 수가 무려 895개이다. 영상
  • 마이크를 잡을 때 유독 마이크의 꼬리 부분을 잡고 상체를 뒤로 젖힌 채 잡고 노래를 하는 경향이 있다. 고음을 발성할 때 유독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고음이 다소 힘겨워진 게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 2013년과 2016년에 지금은 폐지된 1 대 100에 두 번 출연하였는데, 각각 9단계 1:1 대결과 10단계 1:4까지 가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두 번 모두 마지막 단계에서 남은 1인들과 함께 떨어졌다. 그래서 두 번의 출연에서 상금을 탄 사람은 없다.
  • 김경호의 공연 영상을 보면 고개를 틀고 노래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김경호가 존경하던 록 그룹 스키드로우 보컬 출신 세바스찬 바흐의 퍼포먼스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 생긴 게 고와도 결국 아저씨인건 숨길 수가 없는지 유튜브 채널 쉰호규전의 집 소개 영상을 보면 냉장고에 소주가 가득하다. 얼간김준호에 출연하여 밝힌 본인의 주량은 혼자 마실 때 기준 소주 5병, 누군가와 함께 마실 때는 소주 10병까지도 마시는 엄청난 주당. 링크
  • '상남자'라는 단어를 만들어 유행시켰다. 2011년 12월 14일 방영된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진행자가 게이라는 설이 있다고 농담조로 던진 말에 '천생남자'[113]를 잘못 말하여 "저 상남자예요"라고 말했으며 이 말이 유행하여 방송 후 10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도 상남자라는 단어는 시쳇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 팬 및 존경한다고 밝힌 연예인 #===
가수
  • 강균성(노을) - 학창시절에 김경호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콘서트가 김경호 콘서트였다고 밝혔다.
  • 강형호(포레스텔라) - 방송에서 김경호의 팬이라고 밝혔으며 그 후 불후의 명곡 '오 마이 스타'편에 함께 출연해 "학창 시절부터 모든 음악을 함에 있어서 교과서다. 나의 뮤즈다. 지금 신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고유진(플라워) - 불후의 명곡에서 동경했던 k-pop 뮤지션은? 이라는 질문(1:08초)에 김경호, 김성면의 음악을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으며 이십세기 힛트쏭에서는 "(록발라드의)선구자"라며 "엄청 좋아했다"고 팬심을 고백했다. 김경호의 전설적인 유행어 '미워할 거야'도 고유진이 최초로 성대모사하여 유명해졌다.
  • 곽동현 - 히든싱어1 김경호 편에 '진주 김경호'로 출연하였으며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성덕이 되었다. 최파타(17:16초)에서는 "제 마음 속에 단 한 사람이다. 그 분 말고 누군가를 존경해본 적이 없다"며 유일하게 존경하는 가수가 김경호라고 말했다.
  • 권정열(10CM) - 학창시절 김경호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하며, 라디오 '딱 듣기 좋은 밤, 배인혁입니다'에서는 "저는 고등학생 때 그냥 김경호였어요. 옷도 똑같이 입고, 액션도 똑같이 하고"라고 말했다.[114]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롤 모델이 해외 팝 밴드인 '마룬 5'의 보컬 애덤 르빈이며, 국내에선 록 가수 김종서, 김경호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다.
  • 김경현(더 크로스) - 유튜브 댓글로 자신의 롤모델이 김경호라고 밝혔으며 김경호영상에는 'my hero'라는 댓글을 남겼다.
  • 민규(DKZ) - 인생 리셋 재데뷔쇼 - 스타탄생에서 김경호와 박완규의 노래와 같은 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특히 누구 음악을 듣고 록을 좋아하게 됐냐는 질문에는 '모든 록 음악이 좋다'라며 박애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래도 김경호 선배님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 배인혁(로맨틱펀치) - 라디오 '딱 듣기 좋은 밤, 배인혁입니다'에서 배인혁은 김경호를 보며 "최고의 락스타이자 가수, 제가 제일 존경하는.."라고 말했다. '김경호 세대'를 살았다고 표현하며, 해외 락밴드들을 김경호 때문에 알았다고 밝혔다. 김경호의 희귀 영상까지 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동료 뮤지션과 김경호 이야기를 하거나 김경호의 영상을 공유한 적도 있다고 한다. 김경호를 팬으로서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 백청강 - 2011년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경호의 팬이라고 밝혔으며 선배가수의 스페셜 듀엣 무대에서 김경호와 '아버지'를 부르며 성덕이 되었다. "김경호는 내 우상이었다. 같이 노래를 부른 게 꿈만 같고 매우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그 후에도 콘서트 게스트로 참석하는 등 인연을 이어 나갔다.
  • 빛(BIT)(BAE173) - 인터뷰에서 Which artists inspired you to pursue this career while growing up? 라는 질문에 김경호를 아시느냐 소개하며 8살 때 티비 보다가 김경호 선배님이 헤드뱅잉 하면서 노래 부르는 걸 봤는데 그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회가 있었으면 락커가 됐을거라고 답했다.
  • 손가람 - 인터뷰에서 "청소년기에 김경호 선배님을 동경했고 고교 시절 플라이 투더 스카이 멤버 환희 선배님에게 꽂혔다"며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배가수들을 소개했다.
  • 손진욱(당기시오) - 인터뷰(3:33초)에서 롤모델이 김경호라고 밝혔으며 네이버나우 응수C네(5:29초)에 출연하여 인생 터닝포인트는 '김경호 선배님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나서'라고 밝혔다.
  • 영탁 -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팬 생활했던 연예인이 있었냐는 질문에 김경호 선배님이라고 대답했다.
  • 이승기 - 고교시절 김경호를 동경해 록커를 꿈꿨다고 한다. 2008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리메이크했으며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어려서부터 존경한 김경호 선배님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영광"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경호가 집사부일체에 출연했을 때는 '고등학교 때 우상'이라며 팬심을 드러냈다.
  • 이진성(먼데이 키즈) - 인터뷰에서 "저도 어렸을 때 여자 가수보다 남자 가수들을 더 좋아했다. 김경호, 이승철, 임재범 선배님을 좋아해서 연습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 이창민 - 함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후 자신의 트위터에 '고등학교 때 제일 좋아했던 김경호 선배님과 함께해서 너무 즐겁고 재미있던 녹화'라고 남긴 적이 있다.
  • 이혁 -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커버하며 제가 존경하는 김경호 형님의 곡이라고 소개했다. 한 유튜브 채널(3:51초)에 출연하여 전성기 기준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로 김경호, 박완규를 뽑기도 했다. 2016년 노라조 활동 시절, 김경호 콘서트에 게스트로 왔을 때 조빈은 이혁을 보며 '이 친구야말로 정말 김경호를 사랑하는 김경호 다. 노라조로 10년을 넘게 스케줄 하면서 가장 설레하는 모습을 봤다'라는 멘트를 했다.
  • 정대광(보이스퍼) - 인터뷰에서 "나의 롤 모델은 독보적인 색깔을 가진 김경호 선배님이나 김바다 선배님을 좋아한다. 혼자 개인 연습시간엔 그분들의 음악을 들으며 연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조규찬 -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 김경호가 부른 '암연'을 듣고 "내가 정말 동경하던 록 보컬리스트다"며 "작곡 편곡을 해서 내 곡을 노래하게 하고 싶다. 욕심나는 보컬이다. 나를 그의 소리로부터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고 극찬했다.
  • 조빈(노라조) - 김경호 콘서트 게스트로 온 조빈은 김경호 키드였다고 밝혔다. 어렸을 때 소원은 노래 잘하는 것 보다도 그냥 경호형이랑 아는 형 동생 사이가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 주연(Xdinary Heroes) - 불후의 명곡 김경호 편에서 "경호 형님의 창법도 굉장히 많이 연습해봤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많이 본받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내적 친밀감이 생길 정도로 많이 찾아보고 노래도 많이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115] 박소현의 러브게임에서 김경호 선배님 앞에서 노래할 때 마음은 어땠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그분 앞에서 저희의 목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 굉장히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 주학년(더보이즈) -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이혁, 김경호 선배님 같은 록 발성을 좋아해 어떻게 하면 그런 발성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말했으며 불후의 명곡에 함께 출연했을 당시에는 "너무 팬이라서 노래방 갈 때마다 항상 부른다"며 팬심을 드러냈다.
  • 지오(엠블랙) -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과거 누나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누나 때문에 같이 좋아하는 척 했다고 하며 "나는 어렸을 때 록에 빠져 김경호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 진민호 - 앨범 발매기념 쇼케이스 인터뷰에서 자신의 곡을 어떤 가수가 커버해 주면 좋을 것 같냐는 질문에 "노래기 높다 보니 중학교 때 저에게 신이었던 김경호 선배님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또한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중학생 때 노래방에 많이 다녔다. 김경호 선배님 노래를 많이 불렀다. 정말 팬"이라고 말했다.
  • 하현우(국카스텐) - 이타카로 가는 길에서 윤도현[116]이 가장 어려운 곡이 뭐냐라고 했을 때 고민 없이 바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불렀고[117] 락타운 시절에도 김경호 노래를 자주 불렀으며 복면가왕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가 김경호 형님이고 가왕자리를 내줘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존경심을 드러냈다.
  • 홍경민 - 예전 자신의 홈피에 김경호의 1집 때부터 팬이었다는 을 남긴 적이 있다.
  • 휘성 - 해피투게더에 함께 출연 했을 당시 김경호의 심각한 팬이었다고 밝혔다.
  • THAMA(따마) - 불후의 명곡 '오 마이 스타' 편에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출연했는데 인터뷰(2:34초)도중 "김경호 선배님의 노래를 학창 시절 듣고 자랐고 콘서트도 네다섯 번 갔다"며 고백타임(?)을 가졌다.
배우
  • 권혁수 - 그는 스스로를 '김경호니즘' 세대라고 칭하며 아무리 노래 못하는 남자도 노래방에서 김경호 모창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라며 "김경호 형이 너무 좋아서 공부 안 하고 노래 가사를 외우고 그랬다. 개인기는 오랜 시간 축적돼 온 것"이라고 팬심을 드러냈다.
  • 나인우 - 인터뷰(3:26초)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김경호의 '비가 되어 흐르는 너', '비정',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와인', '희생'이라고 답했으며 라디오 스타(1:55초)에 출연해 "초등학교 때 캐나다에 있었는데 친구 권유로 메탈을 들었다가 취향저격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음악을 듣는데 그런 류의 음악을 잘하시는 분이 김경호 님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 윤상현 -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서 아내인 메이비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자 딸 나겸이가 김경호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고 패널들은 "얼마나 많이 불렀으면 애들이 다 외웠어"라고 말했다.
  • 장승조 -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은근히 빼다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학창시절 김경호 씨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 정보석 -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내가 경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콘서트를 따라다닐 정도였다"고 밝혔다.
  • 한재석 - 김경호와 함께 '미스터 피터팬'에 출연했을 당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록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며 김경호의 앨범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방송인
  • 구잘(구잘 투르수노바) - 대한외국인에 출연해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듣고 입덕을 했다”면서 김경호의 ‘찐팬’임을 입증했다. 특히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 이 곡이 있다”며 김경호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보였다.
  • 양세찬 - 판타스틱 듀오에서 이용진과 함께 노래 제목을 줄여 부르며 경호바라기임을 인증했다.
  • 유세윤 - 2016년, 김경호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헌정곡 금지된 경호를 발표했다.
  • 이용진 - 여러 방송에서 김경호의 모창을 하며 김경호의 노래를 좋아했다고 말했으며 판타스틱 듀오에서 '나슬사', '나사천' 등 노래 제목을 줄여 부르며 경호바라기임을 인증했다.
  • 장재영 - 김경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장재영은 개인적으로 팬이었기 때문에 김경호와 친분이 없었음에도 무작정 병문안을 갔다고 밝혔다.
  • 곽범, 이창호 - 유튜브 '쉰호규전'에서 김경호와 박완규를 보고 자랐다고 밝혔다. 이들은 김경호의 노래와 특징들을 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찐팬 리액션을 펼쳤다. 참고로 이창호의 부캐인 이호창 본부장도 김경호의 노래를 즐겨 듣는 인물이다.[118]

그 외 인물
  • 김현심(성우) - 학창시절에는 김경호 등을 동경하며 락커가 되어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다고 한다.
  • 이명관(농구선수) -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농구단 공식채널 영상(1:21초)에서 김경호 선배님한테 빠졌다고 밝혔는데 농구선수가 가수에게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써서 웃음을 주었다.
  • 정유정(소설가) - 소설 쓰면서 즐겨 들은 노래는 김경호 초기 앨범이라고 밝혔다.2
  • 조석(만화가) - 김경호가 런닝맨 개사 배틀 특집에 출연했을 때 조석은 무대를 평가하는 역할이었다. 조석은 김경호의 엄청난 팬임을 밝혔고, 김경호가 나오는 순간 퍼포먼스 부문에서 만점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사심을 담아 평가했다.

==# 역대 프로필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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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UNG HO kim:kyungho 1997 00:00:1998 KYUNG-HO KIM KYUNG-HO KIM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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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ungho-5th The Life Open Your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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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limited 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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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Part.01 - Sunset 그대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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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오포읍은 오포 1, 2동, 능평동, 신현동 4개의 행정동으로 분할 개편되면서 폐지되었지만, 본인이 이렇게 언급하였다.[3] 과거에 팬들과 PC통신 채팅할 때 알려졌다. 그리고 콘서트 할 때 김해평야 드립을 치기도 했다.[4] 2007년 즈음에 희귀병으로 인해 키가 2cm 정도 줄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180cm 정도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5] 키에 대해 얘기가 많은데, 다리가 길고 비율이 좋아 커 보이는 경향이 있고, 178cm인 사람들과 나란히 서면 확실히 더 컸다. 그런데 180cm랑 같이 서면 살짝 작아 보이는게 아이러니 하다. 정확히는 179cm에 근접한 키로 보인다.[6] 가수 박완규와 함께 하는 유튜브 채널 쉰호규전의 첫 라이브 방송에서 65kg 안밖으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7] 발 사이즈가 키에 비해 굉장히 작은 편이다. 발 사이즈는 245mm지만 실제로 신는 사이즈는 더 큰 사이즈를 신는다고 한다.[8] 1집 앨범 발매 날짜가 음원 사이트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 멜론 제외 다수의 음원 사이트는 1994.10.01 로 표기하여 1994.10.01 기준으로 하였다.[9] 부모님 두 분 다 아나운서였다. 아버지는 KBS 본사 아나운서로 지내다가 KBS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로 퇴직하였고, 어머니는 CBS 아나운서였다.[10] 중국에서 사업을 했다고 한다. 가끔 디시에도 인증하기도 했다. 2019년 6월 18일 김경호 공식 홈페이지에 그의 부고가 전해졌다.[11] 어머니는 CBS 기독교방송 아나운서였고, 본인도 잠시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강의를 했었다. 7집 수록곡 Open your eyes는 CCM 가수인 천강수 전도사의 곡으로 기독교적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12] 유튜브인스타그램 채널을 개설했지만 본인이 직접 관리하지는 않기에 김경호가 유일하게 온라인에서 글을 올리는 곳이다.[13] 2023년 3월 9일 개설된 김경호 단독 유튜브 채널이다.[14] 가수 박완규와 같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15] 가수 박완규와 같이 운영하는 쉰호규전 인스타그램 계정이다.[16] 가수 윤도현윤도현의 러브레터 방송에서 김경호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17] 2011년 6월 방영 된 <오천만의 대질문>에서 김경호가 "안녕하세요? 깜찍이 락커 김경호에요!" 라고 외친 적이 있다. 마냥 본인 생각만은 아니고, 과거 젊은 시절 깜찍이 락커라고 부르던 팬들이 있어서 나온 드립인 듯 하다. 젊은 시절에는 부르지 말라고 했다. 영상 47초경 참조 이를 곱씹다가 예능에 활용한 듯 하다.[18] 디시인사이드 김경호 갤러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별명이다. 단, 갤러리 내에서만 자주 쓰이는 별명이다. 아직 50대 중반이라 노친네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지만, 사용하는 어휘가 심히 예스러운 점이나 컴퓨터나 TV를 도통 다루지 못 하는 점 등등 때문에 이러한 별명이 붙게 되었다.[19] 로또싱어에서 스스로가 "난 애기(?)네~" 라고 한 뒤부터 사용되는 별명이다. 보통 팬들이 부르는 별명이다. 김경호 본인 스스로도 '51살이면 아직 애기입니다.' 라고 말한 적 있다.[20] 유튜브 채널 쉰호규전에서 헬스를 하다가 좋아하는 과일이 뭐에요? 라는 질문에 '앵두요' 라고 답한 후 별명이 되었다.[21] 데뷔 초부터 좋아하는 색 이야기에 모두 핑크라고 답했다. 자신이 여자였다면 온 방을 핑크로 도배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할 정도[22]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저 성격들이 복합적으로 전부 나타난다.[23] 2023년 기준.[24] 2001년 6집 앨범 활동 당시 성대결절로 힘들어했고, 로드 매니저의 사기로 무려 5억 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이 생겨 활동을 쉴 수가 없었다. 빚은 2008년경 모두 갚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2001년에서 2007년까지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25] 김경호 성대모사시 자주 사용되는 멘트기도 하다. 특히 미워할꼬야~부분.[26] 물론 엄밀히 따지면 헤비메탈같은 쪽이 그렇고, 모던 록같은 계열은 인기가 제법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사실 김경호의 히트곡들도 록발라드 곡들이 많긴 하다.[27] 김경호의 정규 2집 타이틀 곡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MBC 인기가요 BEST 50에서 1997년 9월 말~10월 첫째 주까지 2주 연속으로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가요톱텐에서는 4주 연속으로 1위 후보 기록이 있었다.[28] 참고로 윤도현은 나잇대는 비슷하지만, 좀 더 늦게 떠서(99년) 2000년대가 주 활동 시기였다.[29] 이현석은 1집 기타 세션 중 한 사람이었던 굴지의 국내 네오 클래시컬 장르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한편, 2집 활동 후반기부터 전성기 동안 꾸준이 같이 활동했고 나는 가수다에서 김경호의 특별 세션으로 활약했던 박창곤 역시 네오 클래시컬 스타일의 연주가 특기인 기타리스트로, 이를 통해 김경호가 네오 클래시컬 메탈을 선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30] 이미 마지막 기도 후반기 활동 당시부터 머리가 꽤 길어졌던 걸 볼 수 있다.[31] 참고로 이선희는 어릴 적 락커를 꿈꾼 락 매니아였다. 그래서 본인은 맑은 자기 목소리 맘에 안들었다고.[32] 물론 당시엔 록발라드가 한창 인기있던 시절이긴 했다. 김경호 본인 콘서트에선 메탈스런 곡들도 잘만 불렀고 Shout같은 히트곡도 나왔지만, 역시 대중적인 히트곡들은 록발라드풍이 많았다.[33] 당시만 해도 보수적인 나쁘게 말하면 꼰대스런 방송국 문화 덕분에 두발 규제 등 각종 규제가 많았다.[34] 참고로 가요톱10에서의 공동 1위는 1991년 12월 25일 방송분에서 골든컵을 탄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김정수의 <당신>이라는 곡이 유일하다.[35] 김경호 왈 당시 이소라의 프로포즈 시청률이 (심야 음악 프로그램임에도) 거의 18~20% 가까이 나올 때였다고 한다.[36] 이소라의 프로포즈 방송 다음 날 회사로부터 "큰일 났다"는 연락을 받고 무슨 일인가 해서 사무실로 출근하니,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모세의 기적의 갈라진 바다처럼 서서 대표실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며 박수를 쳐주었다고 한다.[37] 정작 김경호는 MV 촬영 당시 더는 보여줄 것이 없으니 웃통을 까자는 말에 도저히 맨정신에는 할 수 없어서 소주 3잔을 마시고 촬영했다는 일화가 있다. 실제 훗날 유명가수전에서 자료영상으로 이 뮤직비디오가 나오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을 보면, 상의 탈의한 이 뮤직비디오 영상을 김경호 스스로는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김경호는 이때 깡소주를 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5집 타이틀곡 와인의 뮤직비디오를 첫 뮤직비디오라고 착각하기도 했다.[38] 비록 가요톱텐에서는 유해가수(...) 판정을 받는 바람에 이후 활동이 전무해서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SBS TV 가요 20에서는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1위 후보에도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39] 당시 'Burrm' 은 세계적인 록 밴드들에게도 85점 밑으로 점수를 짜게 주었다.[40] 김경호 본인은 6집을 실패한 앨범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존 앨범에 비해 저조했던 거지 당시 판매량은 약 17만 장으로 결코 망한건 아니었다. 김광석 리메이크 수록곡 <사랑했지만>도 나름 히트했다.[41] 그 어려운 곡들이 수두룩한 김경호의 역대 앨범 중에서도 가장 괴물같은 난이도의 노래들이 즐비한 음반이 5집이었다.[42] 새 소속사의 사장이었던 김진권이 <Now>의 작곡가로서 이 노래의 리메이크를 권유했다고 한다.[43] 록부심 충만하던 박완규도 이때 빡이 쳐서 김경호랑 싸웠다고 한다.[44] 성대결절은 점점 심해졌고 2003년 탈출 라이브에선 삑사리를 내거나 중음이 불안정하는 등 굉장히 힘든 모습을 보여줬다. 그나마 이때는 원키를 겨우 소화하긴 했고 샤우팅에서 성대가 갈라져 나오는 쇳소리가 오히려 매력적이라며 꽤 호평하던 의견이 있었던 반면, 7.5집 활동때였던 2004년~2005년 사이 <Shout> 라이브에선 거의 소음 수준의 괴성을 선보이고 혹평을 받기도 했다.[45] 2006년 발생한 희귀병은 인공 관절 이식과 꾸준한 재활과 운동을 통해 키가 2cm 가량 줄어든 것 외에는 제 컨디션을 되찾았으나, 투병 사실을 자주 밝히지도 않았는데 희귀병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마치 곧 죽을 사람처럼 기사를 쓰는 기자들 때문에 대중들이 자신이 활동을 하는지도 잘 모르게 되어 잊힌 감이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46] 음원은 F♯이지만 전성기에도 항상 반음 낮춰 불렀다. 그래서인지 tj미디어 반주기에서도 F키로 나온다.[47] 하지만 샤우팅은 하지 못하여 안 그래도 조용한 일본인 관객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48] <금지된 사랑>은 2009년부터 E키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컨디션이 안정된 현재까지도 E키로 부르는 중이며 이후 부분 립싱크가 아니면 이 곡을 원키로 소화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2010년 공연 영상에서 원키 풀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애초에 키조정은 보컬과 연주의 합에 따라 맞춰지는 것이라 밴드와 같이 무대에 많이 서고 콘서트 투어를 뛰는 가수에게 원키 소화 여부가 크게 의미를 지니는건 아니다.[49] 사실 말이 보통 남자들 정도 음계지 낮아도 2옥타브 후반대다.[50] 김경호 본인도 그렇지만 흔히 사람들이 그의 창법을 그로울링 창법이라 칭하는데, 엄밀히 말해 그로울링 창법이 아니다. 그로울링 창법은 데스 메탈이나 블랙 메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특유의 중저음대 소리를 표현하는 창법이다. 김경호가 구사하는 창법은 예나 지금이나 스크래치를 섞은 비브라토로 다만 전성기 때가 워낙 괴물이었을 뿐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재에도 창법의 기본 틀이 바뀐 적은 없다. 김경호 본인도 이를 정확하게 알고서 쓴 표현이 아닌 단순히 긁어서 나온 굵은 목소리를 그로울링이라 표현한 것일 확률이 높다.[51] 김경호 본인도 2014년 중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목소리가 점점 열리고 있다는 언급을 했었다.[52] 물론 전성기에 비할 정도의 초고음은 없지만 이 정도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한 팬도 역시 없었다. 나는 가수다 시기가 가수 커리어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라면 현재의 김경호는 기량면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다.[53] 사실, 이 곡은 음역대를 지나치게 높게 잡아 녹음한게 아닌가하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성대결절 이전의 김경호도 힘들어 한 초고난도의 곡 중 하나다. 오히려 키를 낮추니 현재의 김경호의 소화 음역범위에 딱 걸쳐지게 된 것.[54] 컨디션이 회복되고 샤우팅이 부활했으며, 나는 가수다 시절의 중음 비브라토를 거칠게 쓰는 창법 뿐만 아니라 리즈시절에 가까운 비브라토도 활용 가능해진데다, 진성 음역의 최고음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 하반기부터 다시 부활한 예의 커버곡 <To Hell With the Devil>이다.[55] 창법이 예전과 달라져 호불호가 약간 갈린다는 말이 있으나, 김경호는 창법 운영을 바꾼적은 있어도 기본적인 창법틀인 비브라토+스크레치 자체를 바꾼 적은 없다. 과거의 방송 송출이 김경호의 무지막지한 성량을 다 송출하지 못해서 방송 영상으로는 다소 깔끔하게 들렸을 뿐, 김경호 특유의 폭넓은 비브라토 음폭은 당시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로 꼽히기도 하였다. 김경호는 예나 지금이나 그 성량이 방송에서 온전하게 송출되지 않는 가수이기도 한데 <복면가왕>에서 그의 무대를 직접 지켜봤던 방청객들의 방영 후 후기에 따르면 현장과 방송 송출의 차이가 컸다고 하며, 하현우도 인터뷰에서 압도적인 무대로 김경호의 무대를 꼽기도 했으니 단순히 방송상으로 나온 모습만이 전부라고 판단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56] 그의 무대를 본 어느 한 평가단은 마치 자옥에서 열리는 악마들의 파티를 본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였다.[57] 작사 - 김태원, 작곡 - 김종서 // 이 곡을 작곡한 김종서는 "락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이 곡을 바치며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여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 했다.[58] 구성원들이 하나 같이 대한민국 락을 대표 하는 뮤지션들인데다가 특히 김종서는 김경호 본인이 가장 존경하고 롤모델로 여기는 선배이니 만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59] 여담으로 낮공에서 실수로 2023년에 30주년 앨범을 발표하겠다고 말했으나, 밤공에서 낮공때 발언은 실수라고 2024년이라고 정정했다. 30주년은 2024년이 맞다.[60] 곡명이 드라마 명과 동일하다.[61] 의상이 왜 저렇냐면, 저 시절에 KBS에서는 긴 머리가 청소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하여 김경호가 청소년 유해 가수(...) 판정을 받아 버려 머리를 하나로 묶고 모자를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검열이 심했기 때문이다. 6월 항쟁으로 정치 민주화가 된 지 10년째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여담으로 이른바 박진영의 비닐바지 사건도 오늘날엔 희화화되지만 박진영 본인은 당시 보수적인 문화에 대한 불만 때문에 벌인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규제는 3년이 더 지나서야 풀린다. 하여튼 1위 후보곡으로 올라가 있었는데, 한 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그 때 1위를 했던 곡이 '임창정 - 결혼해줘'. 나중에 자서전에서 김경호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1위를 안주나" 하며 한탄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김경호는 장발 규제가 풀리는 2000년까지는 KBS에서 하는 음악 방송에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말고는 출연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머리를 묶고 출연. 그런데 1998년 1월에는 머리를 묶지 않고 나왔다. 시기가 대선 직후라 일시적으로 허용했을 수도 있다.[62] 당시 김경호의 장발은 남들과는 좀 다른 스타일의 장발인데, 레이어드 컷을 수직으로 자른 머리라서 머리를 묶어도 한 번에 다 묶이지 못해서 옆머리는 긴 상태로 남겨지기 때문에 모자로 머리를 전부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63] 여담으로 이 무대는 당시 나가수에서 나온 역대 득표율 1위를 갱신한 29%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투표 규칙인 1인 3표제의 제도상 500표의 87%를 얻은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500명의 청중 평가단 중 430명 안팎이 김경호에게 표를 줬다는 이야기.[64] 참고로 이 곡의 작사/작곡 모두 김경호 본인이 쓴 것이며 2017년 당시 사회의 어두웠던 내면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경고를 내포하여 담았다고 한다.[꿈그리고사랑] [아버지] [67] 2004년 Shout 라이브. 다만 이 옥타브는 목이 상할대로 상해서 비명이 나오는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68] 가끔 그의 라이브를 들어 보면 알겠지만, 강하게 샤우팅을 내지를 땐 밴드 소리가 완전히 묻힌다. 디스토션 깔린 기타 2개, 베이스, 드럼 소리를 샤우팅 하나로 묻어 버리는 건 기본이며, 국내에서 베이스연주는 TOP으로 통하는 현재의 미친 베이스 소리마저 뚫고 나올 정도다. 성대결절을 겪은 후에도 2007년 한국외대 축제에서 공연을 할 당시 캠퍼스 안쪽에 있는 노천극장(지금은 없어졌다)에서 공연을 했음에도 지하철 역에서까지 희미하게 들리는 미친 성량을 자랑했다. 물론 외대 캠퍼스가 작은 데다 역도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빠른 걸음으로 10분 걸리는 곳이다.[69] 물론 성종은 전문 병원 가서 성대 검사 해보지 않는 이상 단순 추정의 영역이긴 하다.[70] 사실 이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당시 인터넷에 퍼진 이른바 보컬 강좌 영상들이었다. 대표적으로 '김명기의 보컬 강좌' 등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 와서 보면 좀 시대착오적인, 평이 엇갈리거나 심지어 틀린 강좌들도 많았다. 그러니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이런 강좌 내용들을 독학해봤자 본인만 만족할 뿐 현실은 입발성과 더불어 노래방 테러의 주 원인이 될 수 있었다. 혼자서는 본인의 잘못된 점과 부족한 점을 제대로 알 수도 없거니와 괜한 친구들의 칭찬 버프 때문에 잘못된 습관이 더 굳어질 수도 있는 것. 그러므로 발성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싶어서 강좌를 듣는 것이라면, 성구전환이 가능한 전문 트레이너에게 몇달만이라도 직접 개인 교습을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71] 복면가왕에서 조장혁도 김경호의 창법을 두고 깊은 내공이 있지 않으면 발성하기 쉽지 않은 창법이라 평가한 바 있다. 사실 클래식과 달리 대부분의 록 보컬, 그리고 상당수의 팝 보컬들은 무슨 "정석"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목소리와 음악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자신만의 소리를 개발해낸 경우가 대다수라 무작정 따라하면 도리어 성대에 무리가 갈 수도 있고, 그 가수의 느낌도 안 나온다. 물론 이런 사람들도 처음 목소리를 만들 땐 존경하는 선배들의 목소리를 따라하면서 시작을 하지만, 그래봤자 그건 선배 가수의 카피캣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가수로서 성공하려면 스스로의 소리를 틔우는 과정은 불가피하다.[72] 김경호와 비견할만한 국내 록커 혹은 록커 출신으론 임재범, 김종서, 윤도현, 박완규, 하현우 정도에 극소수 몇명을 더 꼽을 수도 있겠지만, 록커 특히 메탈 분야에 한정해서 보자면 김경호 특유의 날카로움은 이들 사이에서도 돋보일만한 수준이다.[73] 그 예시로서 2015년 나는 가수다 3 에서 불렀던 열애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74]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중저음역대의 음색을 고음에서 유지시키지 못하기 때문도 크다. 물론 이지 리스너 등에선 그런거 상관없이 시끄럽다고 초고음 자첼 싫어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75] 물론 전체적인 보컬의 밸런스가 대한민국 최고기 때문에 이 샤우팅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샤우팅만 잘 하는 보컬이 아니다.[76] 다만 롭 핼포드같은 경우는 그 특유의 톱날같은 비브라토가 김경호의 것과 유사한 편. 또한 2000년대에 구사하던 창법은 로니 제임스 디오의 것과 유사했다.[77] 하단 영상에서 마이클 스위트 2:58, 김경호 2:08 부분부터 동시 재생시켜보면 거의 판박이다.[78] 이 경우는 초창기 때 한정이고, 스크래치를 전격 도입하면서 소위 성대를 강하게 마찰시켜서 내는 파열음은 오히려 마이클 베세라와 판박이다. 경력이 쌓이면서 2집 정도까지는 조음을 잘 조절하면서 싸서 내는 소리와 까서 내는 소리 다 잘 활용했다면, 3집부터는 후두가 들려진 상태에서 까서 내는 소리를 더 많이 사용했다. 사실 발성학적인 면에서 이런 발성은 인골라 + 성대화상을 유발하기에 많이 안좋은 습관이긴 한데 하필 그게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79] 락 역사상 최고의 프런트맨으로 꼽힐 정도로 관중을 휘어잡는 실력이 엄청나다.[80] 자신이 언젠가는 목이 안좋아 질것을 알고 있었으나 앞으로 몇 년간은 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밝힌적이 있다.[81] 당시 김경호는 소니와 손을 잡고 직접 소속사를 차려서 대표로 활동했다.[82] 가성대는 가성을 내는 성대의 부위가 아니라 성대의 습도를 유지시켜주는 기관이다. 성대결절이나 구증, 폴립 등으로 성대의 접촉면이 매끄럽게 붙지 않고 불규칙해지면 가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가성은 성대가 전체적으로 붙을듯 말듯 살며시 접촉해야 나오기 때문.[83] 성대결절에 걸리면 성대 조직의 표면에 굳은살이 생기며 유연성이 떨어진다. 고음을 내기 위해선 성대가 늘어나야 하는데 유연성이 떨어져버려 더이상 예전의 초고음 샤우팅을 잘 내지 못하게 된것.[84] Shout는 결절 이후에도 샤우팅을 제외하고는 간간히 불렀고, 결절 직후에는 '금지된 사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도 겨우 불렀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브릿지의 샤우팅 구간과 같은 초고음 애드리브들도 당연히 포기.[85] 물론 'Shout'도 가끔 샤우팅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목소리가 찢어지며 소음 수준의 괴성이 났다. 또한 'Shout'에서 '끝없이 노력해 보는 거야~' 부분의 3옥타브 미(E5) 샤우팅도 목소리가 찢어졌다.[86] 사실, 성대결절로 인해 한동안 샤우팅을 낼 수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김경호 본인이 당시에 샤우팅 등의 창법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기도 했다. 나가수 출연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과거의 모습에 비해서도 당시의 목소리에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김경호는 리즈 시절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깊이있는 목소리를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87] 김경호 자서전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4옥타브 솔♯(G♯6)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당연히 팔세토를 포함해야 가능한 영역이다. 참고로 일반적인 남성 보컬의 가성 최고음은 3옥타브 솔(G5) 정도. 관련기사에 따르면 본인이 4옥타브 파(F5)와 솔(G5) 사이였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다만 노래에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를 기준으로 한 것인지는 불명.[88] 하지만 예전부터 김경호를 지켜보고 응원했던 올드팬들에겐 이 정도의 샤우팅만으로도 반가울 따름이다. 김경호의 성대는 결절로 인해 여러번 망가진데다 그의 나이가 50을 바라보는 것을 감안하면, 샤우팅이 부활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 의견은 결정적으로 가수의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89] 'Singing out', 'Here we go', ‘Come on!’, ‘여러분! 워어어어!’ 등이 그 예.[90] 그래도 2018년도 말에 콘서트에서 은퇴 없다고 선언했었던 후, 진성 음역대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91] 그로울링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에 언급한 대로 그로울링은 데스메탈 계열에서 쓰는 특유의 창법이다. 자세한 것은 그로울링 참조.[92] 하지만 다시 최근 들어서 과거의 하늘을 찌르는 느낌의 샤우팅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아마 2016년 후반부터 조금씩 공명을 머리와 코쪽으로 울리다가 2017년으로 와서는 전성기 때처럼 완벽히 두성공명을 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93]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2018년 중반까지는 체력 문제도 있고 성대가 안 따라주는지 진성 음역대가 낮아졌었다. 그러나 2018년 말, 은퇴 없다고 선언 후에 금지된 사랑에서 마지막 먼 훗날 우리를 아예 깔끔히 찍어버리면서 다시 진성 음역대를 회복 중인데, 2019년 들어서 금지된 사랑 마지막 부분의 '먼 훗날 우리' 는 이젠 2010년대 초반 때와 다를 것 없이 그냥 불러버린다. 2017년 후반기, 2018년 초반기까지 마지막 사비 부분은 관객들 방향으로 마이크를 돌렸던 것을 현재와 비교해 보면,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게 참 믿을 수 없는 상황. 장난이 아니라 이 정도면 '누나 당신은 대체' 라는 말 밖에 안 나올 정도다.[94] 나슬사의 하이라이트인 '다른 이 세상 누구보다'는 발음이 많이 뭉개지고 3옥타브 레(D5) 또한 플랫이 되어 버려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 하고 있다.[95] 하지만 진성은 2003년~2004년보다 낮다.[96] 다만 김경호의 '언니' 이미지나 별명은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더 강한 듯 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언니가 방송에서도 언급되는 대중적인 김경호의 별명이긴 하지만, 정작 팬들은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팬이 아닌 사람들이 언니 혹은 누나라고 더 많이 부른다는 것.[97] 사실 나가수 5대 미녀 이전에 나가수 3대 여신이 있었다. 요정 박정현, 선동여신 김윤아, 숨막히는 뒷태 김경호다. 미녀니 여신이니 하는 소리가 김경호의 출연 이후에 나오기 시작했다![98] 이는 1 대 100 465회 방송에서 언급했다.[99] 덕분에 대한외국인에 출연하였을 때, 초성퀴즈가 나오자 1단계에서 광탈했다.[100] 타인에게 매번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니까 연예인답게 좀 누리고 살아' 라고 말했다가 연예인병 걸린 사람 취급 받았다고[101] Kim Kyung Ho Live 앨범 부클릿에 김학래가 기고한 글에는 김경호의 이러한 사람됨이 잘 드러나는데 당시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은 물론 대중적인 인기 공히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라이브 앨범 발매를 앞두고 김학래를 찾아와서 한 말이 '제가 감히 라이브 앨범을 내도 괜찮은 걸까요?'였다. 이 말을 들은 김학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무공해 인간이 아직 존재했다니' 라고 내심 경탄했다고 술회하였다.[102] 김경호/음반 항목에서 김경호 작곡, 작사한 노래 참조.[103] 이외에도, 수원삼성 홈경기, 김포FC 홈경기 등도 직관한적이 있다.[104] 목 상태가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03년에도 연초에는 목상태가 나은 편이였다.[105]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하여 성량 테스트를 했는데 130.2데시벨이 나왔다. 영상 이정도면 제트기 엔진소리와 맞먹는 수준.[106] 그때 했던 개그가 박준형이 해서 히트된 생활사투리 였다고 한다.[107] 헌데 무릎을 꿇었다는 박완규의 주장은 김경호 본인이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사과 없이 바로 자신과 '찾아라 맛있는 TV' 방송을 하자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108] 박정식은 김경호 9집 수록곡이었던 '비가 되어 흐르는 너'의 작곡가인데, 이 곡을 김경호가 불러줄 것을 상정해서 만들어 두었다가 무려 10년이나 지나서 김경호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이때의 인연인지 박정식 작곡가가 EMP 프로젝트를 할 때 김경호도 참여하여 '헌신'이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109] 희귀병으로 고관절 뼈에 피가 돌지 않아 점점 썩어가는 병이다.[110] 2020년 기준으로 뭉실이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고 루루는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111] 참고로 김종서는 김경호가 데뷔 초창기부터 롤 모델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존경하는 선배 중 하나다. 불후의 명곡에서 7인의 스타가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기 특집 때, 함께 등장했는데 이 때 김경호는 공식적으로 김종서의 노래를 처음 불렀으며(비공식적으로는 상당히 많다) 이 때, 김종서도 김경호에게 상당히 기대를 하였고 노래를 듣자 이게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라고 말 하며 김경호를 극찬 했다. 이 무대에서 김경호는 김종서의 노래에 누를 끼치게 않겠다는 부담감이 껴서인지 특유의 마이크 퍼포먼스를 실패 해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할 정도였다.[112] 대표적으로 1998년 락 크리스마스 콘서트 당시 마이클 잭슨의 춤을 선보인 바 있으며 본인이 작사, 작곡한 곡인 4집 Non-Stop, Yazzo의 'Don't Go', Queen의 'I Want To Break Free', 핑클의 'Now', 나는 가수다에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 크레용팝의 '어이' 등 무대에서 춤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여러차례 증명한 바 있다.[113] 천생(天生)남자의 사투리인 '천상남자'를 잘못 말한 것으로 추측함[114] 라디오 '딱 듣기 좋은 밤, 배인혁입니다'에서 배인혁이 '다시 태어나면 김경호 vs 권정열'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권정열은 김경호를 선택했다. 옆에서 고영배는 "저도 물론 좋아하긴 했지만, 이 진짜 팬이어서"라며 이들의 팬심을 인증했다.[115] 불후의 명곡 김경호 편 섭외가 왔다는 말에 바로 "이건 나가야 된다. 나 경호형 봐야 된다"라고 말하며 출연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전날 귀국했는데 컨디션 괜찮냐는 질문에는 "제 몸의 컨디션은 상관 없습니다. 경호 형님을 뵈는 데 집중이 돼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116] 아이러니하게도 김경호의 절친이 바로 윤도현이다.[117] 대본대로 갈 상황이 아니었고 어려운 곡이면서 즐겨부르는 애창곡이라 바로 나온 듯 하다.[118] 이호창 본부장은 와인을 따르다가 "김경호 씨 노래 참 좋아했는데.. 와인 좋아해서 와인 노래 듣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119] 역대 음반 발매시 음반 컨셉 사진 또는 특정 활동 당시의 대표적인 화보 사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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