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7 23:47:52

젝스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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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학원별곡
(1997.04.15)
정규 2집

Welcome To The Sechskies Land
(1997.11.01)
정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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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7.15)
스페셜 3.5집

SechsKies Special
(199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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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hskies Live Concert
(1999.03.01)
정규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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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앨범

Blue Note
(200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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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지 말아요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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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문제 DSP 관련 루머 해체 재결합
제이워크 Yellow Note
Digital Single '뒤돌아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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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재진은지원장수원김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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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hs Kies
}}}
그룹명 젝스키스
Sechs Kies[1][2] (독일어)
장르 댄스, 발라드
리더 은지원
활동 기간 1997년 4월 15일 ~ 2000년 5월 18일
2016년 4월 14일 ~ 현재
데뷔 1997년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1C58A6; color: #000000"
(데뷔일로부터 [dday(1997-04-15)]일째)
([age(1997-04-15)]주년)
소속사 대성기획 (現 DSP미디어) (1997년 ~ 2000년)
YG엔터테인먼트 (2016년 ~ 현재)[3]
유통사 파일:YG PLUS 로고.svg
팬덤 파일:external/yellowkies.yg-sechskies.com/fanclub.png
Yellow Kies[4]
공식색
노란색
사이트 파일:와이지로고로고.png 파일:V LIVE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1.1. 인기1.2. 외모1.3. 음악
2. 멤버3. 결성 배경
3.1. 멤버 영입 과정3.2. 젝스키스 멤버 영입, 강성훈 역할에 대한 거짓말
4. 활동5. 해체 이후
5.1. 단체 활동5.2. 개인 활동
6. 재결합7. 팬덤8. 수상 경력
8.1. 시상식8.2. 가요 프로그램 1위
9. 여담

[clearfix]

1. 개요

안녕하세요 젝키입니다.

1997년 4월 15일에 대성기획(現 DSP미디어)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6인조로 데뷔했던) 4인조 보이그룹이다.

2000년 5월에 해체되며, 2016년 4월에 재결합을 하고,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2000년 활동 당시 H.O.T.와 함께 가요계 아이돌 돌풍의 쌍두마차였으며,[5] 아이돌 팬덤의 시초[6]로 알려져 있다. 공식색은 노랑이다.

그룹명 '젝스키스'는 독일어로 '여섯 개의 수정'이라는 뜻으로,[7] 팀 내에서 멤버 세 명씩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로 구분했다.

블랙키스는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화이트키스는 (장수원, 고지용, 강성훈)이다. 활동을 거듭하면서 이 컨셉은 초창기 컨셉으로 남는다.

젝스키스의 약칭인 '젝키'로도 주로 불리곤 한다. 공식 색은 노란색이며 팬클럽은 옐로우키스(옐키)이다.

1997년 4월 15일에 데뷔해 2000년 5월 18일 공식 해체했고,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를 통해 재결합하게 된다. 이후 고지용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이 YG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해 다시 활동에 나서게 되다가[8] 2019년 1월 강성훈이 공식제명되면서 현재는 4명으로 활동 중이다.

전 소속사인 DSP미디어는 젝스키스와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지금까지 젝스키스 상표권을 신청한 바도 없다.[9] YG엔터테인먼트와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상표권 또한 YG 측에서 정식으로 등록해 젝스키스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젝스키스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1.1. 인기

19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로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줄곧 정상권에 있었고, 다수의 음악 방송 1위를 비롯해 각종 가요 시상식 본상은 물론 98년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정상급 아이돌이었다. 데뷔 초 10대 여성 팬덤이 상당했으며 활동할수록 젊은 여성 층과 남성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아이돌 그룹이면서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매진을 기록하였으며 2000년 해체 발표 후 드림콘서트(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고별 무대에 약 5만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10] 음악 외적인 예능, 연기, 뮤지컬 등의 활동이 미비했던 당시에도 데뷔 초부터 고정 예능에 출연했고, 멤버 전원이 라디오 DJ를 하였으며, 영화, 뮤지컬에도 출연했고 젝키의 이름을 붙인 상품도 출시한 바 있다.

젝스키스가 건재하던 당시에는 (1998년 ~ 2000년 초) 같은 1세대 아이돌인 신화god보다 훨씬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11][12][13] 이러한 평가는 젝스키스가 재결합 후 과거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짧은 시간의 활동 후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지않고 있는 팬들의 관심에 대중들이 당대 인기를 실감하게 되며, 새로운 세대들까지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제시하고 있다.

H.O.T.와의 비교 문제의 경우, H.O.T.와 격차가 컸던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 H.O.T. 팬덤 규모가 워낙 컸던 것이지(방탄소년단을 포함한 역대 모든 그룹을 통틀어도 국내 팬덤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 젝스키스 자체의 절대적 인기치만 따지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컸긴 하지만, 2위와 그 밑의 격차도 컸다. 그리고 젝스키스는 노래의 대중성이 확보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커플은 역대급 대중성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14] 참고로 양 기획사 입장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통해 동반 상승효과를 얻으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돼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SM 이수만 사장이 고맙다며 젝키 매니저한테 밥도 사주고 등도 토닥여주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15]

2016년 재결합 후 현재까지 상당한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 활동 당시에 보유했던 기존의 팬덤[16]과 동시에 재결합 소식 이후 새로운 팬덤이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할 점은 젝스키스가 오랜 공백을 딛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어린 팬층[17]을 적지 않은 비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때문에 팬들의 연령 스펙트럼이 꽤나 넓은 편이며 아이돌 팬덤 중에서도 독특한 케이스.[18][19]##[20]

3년이란 짧은 활동 후 16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않은 수많은 팬들과 지금의 세대가 아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새로운 팬층까지 유입시킬 수 있는 저력있는 그룹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이 한창 활동했던 시기인 1997년~200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현재 기준 성인으로 성장했으며 해당 나이대의 현역 아이돌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젝스키스는 16년이 지나 재 결합 당시에도 많은 팬들이 응원을 겉삼아 보고싶었다 다시 돌아와줘서 고맙다 등등 훈훈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1.2. 외모

재결합 이후 1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상당히 잘된 외모[21]와 몸매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는 현재 어린 소녀팬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지난 토토가 시즌 1에 비교해서 어린 시청자들이 90년대 가수를 보고 팬이 되어버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1.3. 음악

대중적인 컨셉과 노래로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정규앨범만 5장으로 히트곡 수가 상당한데, 타이틀곡만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수록곡은 팬들만 듣는 요즘의 아이돌 앨범과는 달리, 각 앨범당 수록곡까지 2~3곡은 히트를 쳤다. 심지어 3집의 경우, 아이돌 가수 중 최초로 한 앨범에서 3곡이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운다. 대체로 타이틀 곡으로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댄스곡을 선보이며, 후속 활동으로 발라드와 부드러운 템포의 곡으로 활동으로 조화를 이루며 여러 색깔을 보여주었다. 립싱크가 많았던 활동 당시에도 격한 안무속에서도 라이브 무대가 많았으며 무리없이 소화하기도 했다. 그 중 1997년 폼생폼사기사도, 1998년 무모한 사랑, Road Fighter, 커플, 1999년 Com' Back 등은 시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젝스키스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타이틀 곡으로 활동하지 않은 앨범 내 수록곡 중에도 명곡이 많은데, 특히 기억해줄래, 너를 보내며, 예감과 같은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들이 많이 꼽힌다. 특히 오락실을 휩쓸던 펌프 음악으로도 사용되어서 큰 인기를 모아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2. 멤버

포지션은 현역 활동 때를 기준으로 한다.
블랙 키스[22]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9o9fejoHn1vuuyifo1_540.jpg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9o9fnsYi51vuuyifo1_1280.jpg
파일:ChtV-2kVEAA3gc6.jpg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1978년 6월 8일
([age(1978-06-08)]세)
리더
서브보컬
메인래퍼
1979년 7월 13일
([age(1979-07-13)]세)
서브보컬
서브래퍼
메인댄서
1979년 8월 7일
([age(1979-08-07)]세)
리드래퍼
서브보컬
리드댄서
화이트 키스[23]
파일:external/4.bp.blogspot.com/chengri560_7_momoko11.jpg
파일:SCkvkl6.jpg
파일:external/sports.chosun.com/78o15001.jpg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
1980년 2월 22일
([age(1980-02-22)]세)
메인보컬
1980년 7월 1일
([age(1980-07-01)]세)
서브보컬
서브래퍼
1980년 7월 16일
([age(1980-07-16)]세)
리드보컬

3. 결성 배경

3.1. 멤버 영입 과정

은지원과 강성훈이 제일 먼저 캐스팅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장수원, 이재진, 김재덕, 마지막으로 고지용이 젝스키스에 합류하였다.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를 K-pop 최초의 유닛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 활동도 허용이 안되고 완전체로만 활동해야 했던 당시 분위기 상 실제 유닛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24] 활동목적이 아닌, 컨셉과 파트를 둘로 나눈 것으로, 실제로 데뷔 초엔 블랙 키스는 검거나 짙은 옷, 화이트 키스는 희거나 밝은 옷을 입고 나오곤 했으나 이후엔 이마저도 별 구분 없이 멤버 전원이 옷을 통일하게 되었다.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를 나누게 된 비화가 2016년 9월 10일 콘서트 Yellow Note에서 밝혀졌는데,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이재진만이 알고 있었다. 일본 그룹 V6가 멤버들끼리 나이차가 심해서 연령대를 기준으로 20th Century(토니센)와 Coming Century(카미센)로 구분하는데,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은 하와이에서 유학 중이었고 은지원은 클럽 DJ[25]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당시 이호연 사장이 은경표 PD와 같이 하와이에 놀러왔었는데, 은지원이 일하고 있던 클럽 사장과 이호연이 친분이 있었다.[26] 이호연은 클럽 사장에게 남성 듀오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하자 사장은 은지원과 강성훈을 추천했다고 한다. 이호연은 클럽에서 즉석 오디션을 본 뒤[27] 공식적으로 두 사람에게 가수 활동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승낙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둘은 듀엣 데뷔를 예정으로 대성기획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H.O.T.가 캔디로 대박이 터진 것을 목격한 사장이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로 노선을 변경하고 급히 추가 멤버 모집을 시작하였다. 이때 강성훈은 회사를 나가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사장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

장수원은 본래 친구 따라 오디션에 따라갔으나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이 합격한 경우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아이돌 가수들의 합류 과정과 비슷하지만 정말 특이한 것은, 오디션장에서 잘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고 장수원이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사장이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시켰다는 사실이다. 당시 장수원은 학교 댄스팀에 속해 있어 춤을 잘 췄고, 이에 1차 오디션을 통과하고 2차 오디션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큰 의지가 없었고, DSP 측에서 2차 오디션에 나와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DSP 측에서 붙잡은 면이 큰 것이다(2차 오디션에서 위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점은 2015년 1월 8일 SBS 박소현의 러브게임에서 박소현도 증언했다. 당시 박소현도 DSP 소속이었는데, 이호연 사장한테서 젝스키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장수원의 경우, 친구 따라 왔는데 가수가 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님은 무조건 잘된다고 하길래, 저 친구의 어떤 모습을 본 걸까 의아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나도록 롱런하는 것을 보니, 사장님은 괜히 사장님이 아니라 느꼈다고 한다.해당영상

이어서 학창시절에는 부산에서 춤으로 유명했고 당시에 이주노의 소속사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이재진과 김재덕을 스카우트해왔다. 당시 사장이 이주노 사무실에 찾아와서 둘을 보고는 김재덕만 뽑아갔지만, 이후 이재진도 합류하게 된다. 이호연은 이재진이 화면으로 봤을 때 코가 너무 크다며 뽑기 싫어했는데,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해 뽑힐 수 있었다[28] 마지막으로 학교 얼짱으로 유명했던 고지용이 강성훈의 추천으로 합류했다.[29]

3.2. 젝스키스 멤버 영입, 강성훈 역할에 대한 거짓말

2016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강성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다.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의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그룹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는데, 강성훈은 반발하여 자신은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이에 사장이 "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성훈이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 옆에 앉아 이야기하며 멤버들을 뽑았다. 장수원은 오디션 장에서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말하는 순수함이 마음에 들어, 강성훈이 사장한테 귓속말로 "쟤 픽스 하시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재덕은 워낙 춤을 잘 추니 사장이 처음부터 OK 했다. 근데 장수원 폭로에 따르면 강성훈은 김재덕 얼굴을 보고 뽑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에 강성훈이 해명하길, 얼굴이 아니라 사투리가 너무 쎄서 오해했다고 밝혔다. 이재진의 경우, 강성훈 생각에 김재덕이 각기춤을 잘 추는 반면 이재진은 웨이브를 잘 춰서 조화가 맞아 보였다고 한다. 고지용은 강성훈과 초등학교때 부터 친구인데, 고지용이 강성훈에게 가수를 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강성훈의 추천으로 젝키에 합류하게 됐다.

이호연 사장을 싫어하는 젝키 팬덤은 이 방송을 계기로 "젝스키스를 만든 것은 강성훈이지 이호연은 한 것이 없다"는 식의 글을 많이 퍼뜨렸다. 그러나 강성훈 발언 자체부터 다른 멤버들 발언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을 뿐더러, 사실관계를 따지면 젝키를 만드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것은 이호연 사장이다.

우선 이재진의 영입은 기존 인터뷰에서 밝혀졌던 바에 따르면,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한 덕분이다. 원래는 이호연이 6명 멤버 중 이재진은 뽑기 싫어했다. 화면으로 보니 코가 커서 안 되겠다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99년도 출연한 서세원쇼나(영상 14분부터),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에 은지원과 김재덕이 회사를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30]

고지용의 경우 기존에 자서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호연이 처음 얼굴 보자마자 바로 OK해서 멤버로 영입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지용이 강성훈한테 가수를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다'라는 부분도 고지용 본인의 말과 다르다. 고지용은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장수원의 경우 이호연 사장이나 다른 멤버의 발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뽑혔다. 2차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이 '잘 하는 게 뭐냐'고 장수원에게 물었는데, 장수원은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사장이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시켰다.

영입 과정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호연 인맥의 공이 제일 컸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은지원, 강성훈 2명은 이호연이 친분이 있던 하와이 클럽 사장으로 부터 소개 받아 직접 데리고 왔다.(출처: 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 그리고 나머지 3명도 강성훈이 아니었으면 젝키 멤버로 뽑히지 않았을거라고 볼 수 없다. 장수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사장이 솔직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서 뽑고 싶어 했다. 김재덕과 이재진은 이주노 소속사의 연습생이었는데, 이호연이 찾아가 직접 데려왔다. 이호연과 이주노가 형 동생 하는 사이일 정도로 친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고지용의 경우 강성훈을 계기로 소개받았으니 강성훈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컴백 자서전의 강성훈 부분에 적힌 관련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원문: 그러나 뜻밖의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한창 5명에서 6명 정도의 댄스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멤버의 수가 6명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사장님,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멤버가 그렇게 많은 그룹에서는 노래부르기 싫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배짱이 튀어나왔는지 겁도 없이 사장님께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수의 꿈을 접고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사장님은 나를 설득하시는 한편, 어머니를 만나 내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번 품은 가수의 꿈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때 나의 마음을 돌려주신 분은 어머니셨다. "성훈아, 비록 어리지만 사장님과 이미 한 약속은 지켜야 되지 않겠니? 그리고 쉽게 네 꿈을 접을 수 있겠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어머니, 한번 해볼게요. 그 대신, 열심히 할 게요." 그리고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뀐 것은 지금의 멤버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부터였다. 착하고 세련된 느낌의 수원이, 워낙 춤을 잘 추는 재덕이 형과 재진이 형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한 지용이. 지용이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모범생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와 붙어다니던 춤꾼 중에 춤꾼이었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이자,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고 잘해낼 자신감이 생겼다.

즉, 강성훈이 젝키의 결성에 영향을 줬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은 과장됐다. 젝키 팬들이 퍼뜨리던 "젝키는 강성훈이 만든 그룹이고 이호연은 한 것 없다"는 말은 더더욱 거짓이다. 애초에 강성훈이 원하는대로 였다면 6인조 그룹인 젝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성훈이 싫어하던 김재덕이 초반부터 잘만 멤버로 가입된 것을 보면, 이호연 사장의 발언(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이 진심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나 안하겠다"는 16살 짜리 연습생을 달래느라 한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대형기획사가 사운을 걸고 런칭하는 아이돌을, 16살 짜리 연습생이 전적으로 맡았다는 것 자체부터 말이 안된다.[31]

2018년 9월 강성훈의 팬클럽 문제, 대만 공연 문제 등 여러 구설수가 터지고 나서는, 위 발언이 거짓이었다는 글이 젝키 팬덤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도에 강성훈이 젝키 만들었다며 글 퍼뜨리던 것을 생각하면 180도 태도가 변했다.

본 문단이 작성된 후, ‘예능에서 재밌으라고 약간의 MSG를 첨가해서 한 발언일 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며 위 내용이 대거 삭제됐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능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젝스키스 팬덤은 2016년경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에서 보듯이 이호연 사장에 대한 온갖 욕설과 허위루머를 유포했다. 그 과정에서 위 라디오스타 발언은 좋은 소재거리였다. 이호연은 한 것이 없고 젝스키스는 강성훈의 작품이라는 내용을 퍼뜨렸으며, 심지어 해외 케이팝 팬들한테도 그렇게 유포했다.[32] 이에 2018년 9월 강성훈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진 후에, 젝키는 강성훈이 만든 그룹이라는 옹호 글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파일:bkshfalse.png

영문 위키피디아도 같은 취지의 내용으로 수정해놨었다.## 이렇게 잘못된 사실이 퍼뜨려진 상태라면, 그에 대한 반박 내용이 작성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당시 올라온 글의 예시는 각주 참조 바람.[33] 글에서 보듯이 ‘개호연 욕하면서 안목 하나 땜에 깨림직했는데 ㅈㄴ 상쾌하다’ ‘저 새낀 결국 ㅂㅅ’ '역시 개호연 취향이 그리 고급질리없엇네' 등 모욕 글도 다수 올라왔다. 이래놓고 2018년 9월 사건이 터진 후에는 팬덤이 나서서 본 문제에 대해 강성훈을 비난하니, 태도가 완전 바뀐 것이다. 올라온 글을 보면 180도 태세 전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4.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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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정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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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활동 말기 즈음에 소속사와 정산에 관해 다툼이 있었다고는 한다. 문제는 팬덤에 의해, 한달에 100만원씩 벌었다거나 소속사가 젝키로 번 돈이 수백억이라는 등의 허위 사실이 많이 퍼졌다는 점이다. 특히 은지원의 2억 발언이 각 사이트에 많이 퍼뜨려져 있다. 이에 대한 팩트 여부, 객관적인 증언 및 자료, 90년대 연예기획사의 수입 규모 등이 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4.2. DSP 관련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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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해체 당시, 젝키 팬덤에 의해 DSP 관련 허위 루머가 많이 올라왔다. 이는 2016년 젝스키스가 재결합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국내 및 해외의 각종 사이트에 젝키가 과거 이런 일을 당했다는 글들과 악플을 수없이 올렸다. 일부 맞는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 허위 사실과 과장이 심하게 섞여 있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가 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이후 토론으로 넘어와서도 불법적인 행동이 이어졌고, 토론의 대다수 계정이 다중계정으로 발각되어 영구차단 당하는 사태로 까지 번졌다.# 동일인이 여러 명의 사람들인 척 하며 수백개의 글을 올려 문서를 지우려했다. 그러다 아이디를 헷갈려 글을 올리는 바람에 들통이 났고,# 관리자의 조사 결과 다중이 짓이 매우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이 드러났다.

2018년 2월 이호연 사장이 사망하고 나서도, 고인을 상대로 허위루머 유포를 하는 악독한 짓을 저질렀다. 특히 팩트를 조작한 짤까지 정성들여 만들어, 각종 사이트에 퍼나르며 악플과 욕설을 유도했다. "3년 한 것도 대단한 젝스키스 해체 전 상황" "90년대 아이돌 스케줄량" 등의 제목으로, 젝스키스가 노예처럼 학대 받았다는 내용이다. 워낙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라 의도대로 악플과 욕설이 가득 달렸다. 링크에서 보듯이 2021년까지도 이 사태가 벌어졌다.[34]##########################

해당 글은 사실관계를 조작하고 거짓말 친 내용 투성이다. 자세한 반박 내용은 다음 링크의 문서 참조 바람.# 이렇게 거짓 자료인데도 수없이 퍼뜨리며 악플을 달았다.

4.3.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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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발표했다. 당시엔 이유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팬들은 이호연이 강제로 찢어놔서 해체당한 것이라는 루머를 인터넷에 수없이 퍼뜨렸다. 이는 2016년 젝키가 재결합하며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그간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 마다 이에 대한 질문이 자주 나왔고, 그때마다 강제 해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재진의 경우 팬들의 루머와 비슷한 뉘앙스로 말한 바 있지만,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그것은 이재진 개인의 생각이었다. 다른 다수의 멤버들 생각은 달랐다. 자세한 내용은 위 문서를 참고 바람.

5. 해체 이후

2000년 공식 해체 이후부터, 2016년 재결합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기술합니다.

5.1. 단체 활동

2000년 7월 31일, O2MUSIC이라는 음악사이트를 통해 팬송 "Thanks"의 mp3파일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Thanks" 뮤직비디오 YouTube 링크

2001년 5월 25일, 강성훈의 솔로 1집 앨범 <비상(飛翔)>의 수록곡 "지난 1년 동안은..."에 이재진, 김재덕,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 다섯 멤버가 참여했다. 해체 후 1년 간의 심경을 담은 노래로, 김재덕이 작사, 장수원이 작곡하였다.

2003년 4월 18일, 이재진의 솔로 2집 앨범 <002 J2>의 수록곡 "우리(遇離)-만남과 떠남"에 이재진, 김재덕, 강성훈, 장수원 네 멤버가 참여했다. "지난 1년 동안은..."과 마찬가지로 젝스키스 팬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2013년 12월 14일, 전 소속사인 DSP의 패밀리 콘서트 "DSP 페스티벌"에 은지원, 장수원, 김재덕 세 멤버가 젝스키스의 이름으로 출연했다.

5.2. 개인 활동

  • 은지원
    해체 이후 가장 성공적인 솔로 활동 및 예능을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G-Production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음반을 냈다. 1집은 댄스 위주, 2집부터는 자신이 꿈꾸던 힙합 쪽으로 본격적인 전환을 한다. 3집부터 드렁큰 타이거와 함께 활동하여 타이틀곡 '만취 in melody'를 대중적으로 성공시킨다. 이후 1박 2일에서 은초딩 캐릭터로 자리매김하여 신서유기 등 예능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였고, 소속사를 차려 힙합 트리오 클로버로 활동하며 가요계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갔다.
  • 김재덕
    김재덕은 군복무를 같이한 것을 인연으로 함께 동거까지 하게 된 토니 안이 운영하는 티엔네이션에서 음반 제작 부서의 프로듀서로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동아TV 맛집남 시즌1에 김재덕토니 안 은 공동 MC를 맡으며 브로맨스를 과시한다.
  • 장수원
    J-Walk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잔잔한 발라드와 미디움 템포 등의 장르를 내세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특유의 중저음 톤으로 젝스키스 때보다 보컬이 훨씬 발전했다. 군 입대 전 마지막 음반 발매 이후 활동이 없는 상태였다가 2013년 9월부터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아이돌 특집 3편으로 복귀하였고 미생물에도 출연하며 발연기의 전설이 되었다. 장수원로봇 연기로 불리는 특유의 발연기를 아예 컨셉으로 잡고 예능 및 방송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 이재진
    해체 이후 DOUBLE J(1집), Go back(2집), 충전(3집)등 주로 댄스곡으로 활동했다. 2005년 솔로 3집을 끝으로 방위산업체에서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맡아 착실히 복무하였지만 서류상의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재입대 처분이 내려져 병역 비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2008년 8월에 현역으로 재입대하였으나 재입대 직전 홀어머니를 잃으며 우울증을 앓는 등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고, 급기야 2009년 3월에는 치료를 위한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군 복귀 후 수색대로 보직을 변경해 성실히 복무하였다. 2010년 8월 전역 이후 일본 유학을 위하여 일본어를 공부해왔다고 하며, 자신의 원래 전공인 그림 쪽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대학에서 미술을 배웠다.
  • 고지용
    해체 이후 인터넷 방송 DJ와 연기자 데뷔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2001년 이후 사실상 연예계와 인연을 끊었다.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 2013년 11월에 의사 허양임과 결혼했고 2014년 10월 경에 아들 승재를 얻었다.
  • 강성훈
    발라드 가수로 선회하여 4장의 음반을 내는 등 2004년까지 솔로 활동을 지속했다. 2002년 2집의 "My Girl", 2003년 3집의 "아껴둔 이야기" 등이 사랑받았다. 이후 10년 동안 공백기를 가진 뒤 2014년 4월, 젝스키스 데뷔 17주년 기념 "커플" 리메이크 음원을 발표했다. 공백기 동안 병역 비리에 연루돼 재입대 처분을 받고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등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유흥비에 쓰려고 지인들에게 11억 원을 사취했다는 의혹을 받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사건 때문에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16년 4월에 젝스키스 컴백 및 무한도전 측의 요청으로 MBC 출연 금지가 해제되어 무한도전에 출연할 수 있었다.

6. 재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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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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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상 경력

젝스키스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seoulmusicawards2.png
서울가요대상 대상
H.O.T.
<We are the Future>
(1997년)
H.O.T., 젝스키스
<, 커플>
(1998년)
조성모, 핑클
<슬픈 영혼식, 영원한 사랑>
(1999년)
}}} ||

8.1. 시상식

<rowcolor=#000000>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7년
12월 4일 제8회 서울가요대상 10대 가수상 기사도
12월 14일 제12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본상
KMTV 가요대전 신인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본상
12월 31일 MBC 한국가요제전 10대 가수상
1998년
3월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부문 청소년 중창 가수상
12월 5일 제13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본상 무모한 사랑
12월 6일 KMTV 가요대전 인기 가수상
12월 18일 제9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커플
대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본상 무모한 사랑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12월 31일 MBC 가요제전 10대 가수상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인기 가수상
1999년
1월 16일 KBS1 사랑의 리퀘스트 감사패 수상
12월 11일 KMTV 가요대전 본상 Com' Back
12월 14일 제10회 서울가요대상
12월 16일 제14회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본상
12월 31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2016년
11월 19일 제8회 멜론 뮤직 어워드 특별상 Hall of Fame (명예의 전당)
2017년
1월 13일 제31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베스트 남성 그룹 퍼포먼스상
1월 25일 제26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2월 22일 제6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K-POP 공헌상
2018년
2월 14일 제7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 디지털음원 부문 9월 특별해

8.2. 가요 프로그램 1위

9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가요프로그램 1위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1세대 아이돌그룹이다.
총 43회 1위
<rowcolor=#000000>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97년
12월 7일 SBS TV가요20 기사도
(2회)
1위
12월 21일
1998년
1월 4일 SBS TV가요20 기사도
(2회)
1위
1월 11일 1위
(4주 연속, 통산 4주, 왕중왕)
7월 7일 KBS 뮤직뱅크 Crying Game
(1회)
MVP
7월 28일 Road Fighter
(5회)
8월 4일 MVP
(2주 연속)
8월 18일 MVP
(통산 3주)
8월 23일 SBS 인기가요 1위
8월 30일 1위
(2주 연속)
9월 8일 KBS 뮤직뱅크 무모한 사랑
(5회)
MVP
9월 15일 MVP
(2주 연속)
9월 27일 SBS 인기가요 1위
10월 11일 1위
(통산 2주)
10월 20일 KBS 뮤직뱅크 MVP
(통산 3주)
11월 10일 커플
(3회)
MVP
12월 19일 MBC 음악캠프 1위
12월 20일 SBS 인기가요
1999년
1월 2일 MBC 음악캠프 커플
(6회)
1위
1월 3일 SBS 인기가요 1위
(2주 연속)
1월 9일 MBC 음악캠프 1위
KMTV 쇼! 뮤직탱크
1월 16일 MBC 음악캠프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통산 4주)
1월 23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통산 2주)
1월 26일 KBS 뮤직뱅크 너를 보내며
(1회)
MVP
8월 31일 Com' Back
(9회)
9월 7일 MVP
(2주 연속)
9월 12일 SBS 인기가요 1위
9월 18일 KMTV 쇼! 뮤직탱크
9월 19일 SBS 인기가요
9월 21일 KBS 뮤직뱅크 MVP
(통산 3주)
9월 25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9월 26일 SBS 인기가요 1위
(3주 연속, 왕중왕)
10월 2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3주 연속)
10월 5일 KBS 뮤직뱅크 예감
(5회)
MVP
10월 19일
11월 7일 SBS 인기가요 1위
11월 9일 KBS 뮤직뱅크 1위
(통산 3주)
11월 21일 SBS 인기가요 1위
(통산 2주)
2017년
5월 12일 KBS 뮤직뱅크 아프지 마요
(3회)
1위
5월 13일 MBC 쇼! 음악중심
5월 20일 1위
(2주 연속)
2020년
2월 6일 Mnet 엠 카운트다운 ALL FOR YOU
(1회)
1위

9. 여담

  • 파일:젝스키스_로고.png 로고 수정 모양, 멤버 수인 6, 젝스키스 첫 글자인 S, 그룹명이 모두 들어가 있고, 멤버 이재진이 디자인에 참여했다
  • 멤버 전원이 자연미남이다. 2016년 재결합 당시 3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동안이다. 날이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기도,,,,점점 리즈를 갱신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생겼고 오늘보다 내일 더 잘생길 것이다.
  • 맴버들이 하나같이 비글미를 뿜어낸다. 오죽하면 그 은초딩 은지원이 가장 정상인으로 취급된다. 예나 지금이나 맴버들끼리만 출연하는 방송분을 보면 대화의 주제가 시시각각 다른 산을 오르다가 아무말 대잔치로 변한다.
  • 이 그룹은 팬픽도 유명했다. 공식 팬픽은 젼훈(은지원,강성훈), 진죵(고지용,이재진), 숸덕(장수원,김재덕)이다.
  • 역대 가요계 라이벌을 대표하는 한팀으로[35] 실제 팬덤의 규모는 경쟁그룹인 H.O.T.가 압도적으로 컸으나은지원 왈 "계란후라이였어" 활동하는 내내 방송가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36] 현재에도 언론에서 한팀이 언급되면 높은 확률로 같이 언급된다. 충성심이 높은 아이돌팬 특성상 상대그룹에 대해 악감정이 높아 확실한 타도세력이 많았던것도 사실이며,[37] 세월이 지난 현재에도 존재한다. [38] H.O.T.의 넘사벽 인기에 비하면 팬덤이 적은 것은 맞지만, H.O.T.를 제외하면 젝키에 대적할 수 있는 다른 아이돌은 없었다. 확실한 2인자로서 H.O.T.의 라이벌로 불리기에는 충분했다.
  • H.O.T. 팬들과 젝스키스 팬들의 신경전은 매우 치열해, 심할 때는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39] 팬들의 직접적인 싸움이 워낙 격렬해서 항상 구급차가 상주하다시피 했을 정도였다. 당시 싸움이 격렬했던 만큼 큰 사고도 많았다.[40]
  • 반면 젝스키스 멤버들은 H.O.T. 멤버들과 관계가 꽤 좋은 편. 김재덕토니 안과 10년이나 동거하고 있을 정도고, H.O.T.의 재결합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젝스키스의 재결합에 자극을 받았다. 90년대 H.O.T.의 무협팬픽인 협객기가 시중에 출판되었을 당시 소속사에서 멤버들의 상표권 같은 문제로 소송을 걸었는데, 사유 중 하나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는 은지원을 작중에서 H.O.T. 멤버가 살해하는 묘사가 있어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었을 정도다.팬픽에서마저 상대 멤버 못죽여 안달인 팬덤싸움 클라스
  • 원래 그룹 이름 후보들이 하나같이 주옥같다. 마그마, 용암, 등. 특히 육계장이 유력했던 모양이다. 이에 맞춰 공식색도 빨간색이 될 뻔 했다. 그룹 초기에 공식색이 노랑 말고도 빨강이 포함되었던 것은 이 영향이다. 이후 사장이 MBC 은경표 PD에게 작명을 부탁했고 그 결과 젝스키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은경표 PD는 이호연사장과 96년도에 하와이로 놀러갔었는데, 이때 이호연이 은지원과 강성훈을 스카우트 해왔었다. 하와이에서 강성훈과 은지원이 이호연 앞에서 오디션을 볼 때, 은경표 PD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젝스키스라는 이름을 괜히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41] 콘서트 Yellow Note에서 후보였던 이름들을 언급했다. 은지원육개장이 건강식이니 괜찮다고 밝혔다.
  • 소속사가 음반을 내기도 전인 1997년 3월부터 각 통신망에 멤버들의 사진과 새로 나올 음반에 대한 정보들이 제공했다. 그로 인해 젝스키스는 매체에 출연하기도 전부터 10대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데뷔 무대 때부터 팬들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42] 라디오스타[43]에서 김재덕이 한 말에 따르면, 데뷔 전인데 팬들이 자신의 숙소에 들어와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 1999년 11월 29일 평양에서 2000 평화 친선 음악회에 참가했다. 멤버 강성훈을 여성으로 알고 혼성 그룹으로 표기하여 여러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었다. 2008년 놀러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매니저 등은 모두 한국에 남고 이호연 사장만 동행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말을 잘못하면 체크를 해, 그 기준을 넘으면 북한에 억류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핑클이랑 젝키 10명이서 한방에 둘러앉아 있을 때, 도청될지도 모르니 서로 말 조심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은지원이 갑자기 '나는 공산당이 싫어' 라고 하더니, '이거 고지용이 한거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은초딩은 이때부터 이미 시작된 듯... 2015년 해피투게더에 성유리가 출연했을 때, 당시 평양에서 젝스키스와 찍었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TV에 평양이라 하면 단골로 나오는 장소다.
  • 한편 뮤직비디오를 감독 사비로 찍게 시켰다는 루머를 퍼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정확한 사실 관계는 어떤 신인 감독이 Road Fighter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자기네 회사에서 비용을 전액 부담해 뮤비를 찍고 싶다고 DSP에 연락하여 찍었다는 것이다.(출처 : #) 놀랍게도 그 감독이 빅뱅2NE1, BLACKPINK의 뮤직비디오를 대부분 연출한 YG 뮤직비디오 전담 감독 서현승이다. 해체 16년 후 젝키가 YG로 오게 됐으니 사람 인연이란 것이 참 희한하다.
  • 데뷔 당시 고지용이 폼생폼사로 활동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나, 은지원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오르자고 밀어붙여 수록곡으로 묻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외 3.5집을 준비할 당시 이호연 사장은 은지원의 똥고집에 머리를 썩히다 은지원의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그렇게 "커플"이 3.5집 타이틀곡이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커플 때에는 사장이 반대하는 것이다보니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소문이 있다. 다만 위 서술은 출처가 없고 어디까지나 팬들 사이에 있는 소문이다. 아무튼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은지원의 선구안이 뛰어났던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경식은 작곡가로서 그때까지 제대로 된 히트곡이 없었다.# 게다가 기존에 해오던 음악과 정반대 느낌의 곡을 작곡했다. 커플 노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슬래쉬메탈 그룹 아발란쉬의 보컬이었다.가창력이 엄청나다 커플 이미지는 1도 안 떠오르는 모습이다 반면 3.5집의 '너를 보내며'를 작곡한 김석찬은, 핑클내 남자친구에게로 초대박을 쳤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너를 보내며' 노래 자체도 충분히 타이틀곡으로 지정할만한 퀄리티다.# 젝키의 대부분 뮤비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커플 뮤직비디오는 사무실 문짝이 나오는 등 유독 저퀄리티다. 커플 타이틀곡 문제로 사장이랑 대판 싸워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 데뷔 당시 보컬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다. 메인보컬인 강성훈조차 보컬 레슨을 받지 않고 평소 노래 실력 그대로 데뷔한 것이다.[44] 장수원은 해체 후에 피눈물을 흘리듯이 연습하여 득음했다. 춤은 위에 각주에 달아놓은 이재진의 컴백 자서전 원문을 보면 꽤 기간을 들여 연습한 것으로 보인다. 자서전을 보면 연습생 시절 회사에서 기계체조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팔 뻗는 것만 반 년 연습했다는 말도 있다. H.O.T. 데뷔 후 급히 멤버들을 모아 데뷔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멤버들조차 정확한 수익 분배를 모르는 상태로 활동했기에, 일부 팬들은 젝스키스로 번 돈을 핑클에게 투자하느라 젝스키스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며 비난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허위 사실이 유포되어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를 참고할 것. 멤버들이 정확한 수익 분배를 몰랐던 것은 정산이 부모와 회사 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45] 아무튼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상당수의 젝스키스 팬들은 핑클을 싫어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것은 아니다. 핑클의 데뷔전 젝스키스 후배로 걸그룹이 데뷔한다고 하여 젝스키스 팬들은 누구보다 기뻐했고, 기대했다. 일부 팬들은 핑클이란 이름도 지어주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하지만 핑클 데뷔후 멤버간의 스캔들, 핑클로 인한 왕중왕 실패, 소속사의 차별대우가 보이면서 젝스키스 팬들은 핑클을 좋아할수 없었고 이후 팬덤 간의 사이도 나빠지면서, 핑클에 대한 안티활동도 심했다.# 물론 젝스키스와 핑클 당사자들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에 공연 갔을 때 방에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고도 했고, 실제로 각 팀의 리더인 은지원과 이효리는 친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46] 2003년에는 은지원이 신촌에 실내 포장마차 점을 개업했는데, 보통 여기저기 동료 연예인들을 불러야 홍보에 도움이 되지만 은지원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효리가 새벽에 제발로 찾아왔는데, 은지원은 이효리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으니 가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남들은 이효리 못 불러서 안달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하냐"며 은지원을 혼냈다고 한다. "자리는 여분의 탁자로 만들면 된다"며 흥분하는 종업원들의 말에 은지원은 '왜 난리지'하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고...기사[47] 김재덕은 2015년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핑클과 친하게 지냈으며, 가끔 술도 한 잔 했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25일 SBS 정재형 이효리의 유 & 아이에서는 이효리와 은지원이 같이 출연했다. 이효리는 당시 젝키와 H.O.T.의 1위 대결에서 젝키가 지면, 같은 소속사라는게 뭔지 우리가 뭔가 진 것 같고 눈물이 났었다고 밝혔다. 은지원도 핑클이 어디 대결 나가면 잘하라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동료 연예인들을 깎아내려서 좋을 게 없으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젝키 멤버들은 소속사에 불만이 있었다거나 소속사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는 종종 언급했어도 핑클에게 악감정을 드러낸 적은 없...었는데 2016년 6월 1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전 소속사의 관심이 핑클에게 옮겨지고 우리는 홀대받은 것 같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물론 핑클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전 소속사에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핑클도 무계약 상태에서 활동했고, 새벽1시30분에 재벌 오너들의 술자리에서 2곡을 부르고 3천만원을 받았다는 잡지 문구가 있는 것을 보면[48], 어디까지나 젝키보다 대우가 좋았다는 것이지 딱히 공주 대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핑클도 하루 평균 2시간씩 자며 스케줄을 다닐 정도로 빡세게 활동했다. 하지만 아무 탈 없이 소화해서 매니저가 천하장사라고 불렀다고...# 다만 핑클은 젝키보다 후발주자라서 더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이긴 했다.
  • 젝키와 핑클은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젝키와 달리 핑클은 각주와 같이 소속사와의 사이가 좋게 끝났다.[49][50] 이런 차이에 대해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젝스키스는 김기영 라인이고 핑클은 길종화 라인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DSP이호연 사장이 제일 위에 있고 그 밑으로 김기영과 길종화 2명이 있었는데, 이 두명이 서로 세력다툼을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둘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호연이 데리고 있으면서 대학 학비까지 대주며 키웠다.# 다만 이호연이 뇌출혈로 쓰러진 시점 전후로 해서 둘 다 DSP를 나왔다. 김기영 라인은 젝스키스, 클릭비, SS501로 알려져 있고, 길종화 라인은 핑클, 카라로 알려져 있다. 김기영과 핑클은 거의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김기영의 경우,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젝키 멤버들이 해체이유에 대해 말할 때 사장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매니저(김기영)랑 사이가 안 좋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기영 본인 인터뷰에서도 해체 이후 젝키 멤버한테서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길종화의 경우, 2012년 본인 결혼식 때 옥주현이효리가 축가와 사회를 맡을 정도였다.# 이효리는 길종화가 나와서 차린 B2M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는데, 당시 계약서를 쓰지 않고 계약금을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계약이 오래전에 끝났는데도 계속 의리로 남아있기도 했다.기사 성유리는 2015년 인터뷰에서 "종화 오빠 생각이 많이 난다"며, "S.E.S. 친구들을 보면 요정같고 귀여운 장난을 치곤 하던데, 우리는 네 명이서 힘을 모아 매니저 오빠를 괴롭혔다.젝키랑 같은소속사 아니랄까봐 그래서 오빠들이 저희 때문에 힘들어 했다"고 털어놨다.#
  • 2007년 8월 20일 핑클이진이 야심만만에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말했다. 데뷔전 연습생 시절 사장님이 보고 있으면 열심히 연습하다가 사장님이 나가시면 딴 짓을 했는데, 당시 젝키한테 선물이 쌀자루로 몇개씩 오면 그때 그걸 풀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갖고 싶었던 것 있으면 양심상 하나만 챙기고 다시 다 정리해놨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헛나온 이야기에 자기도 당황하고 있고, 계속 죄송하다고 하고 있다. 01:02:40 정도부터 보면 된다.
  • 이재진의 매제이자 젝키의 현 소속사 사장은 한국 연예계에서 대형기획사 양대산맥 중 하나로 불리는 곳의 수장이다. 그 덕분에 눈치 안 보고 지상파에서 해체 당시의 상황을 직접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이호연 사장은 몇년째 거동불가능한채 말도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고, DSP는 이호연이 쓰러진 후 많은 직원이 나가거나 쫓겨나서 현재 젝키 시절 직원은 거의 없다. 회사 자체 상황도 암울하다. 이에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눈치를 볼 대상 자체가 이제는 없다시피 한다.
  • 2016년 젝스키스의 재결합 후 YG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소문이 돌자, 이호연 전 사장이 거동불가능한채 누워있는데 인사는 하러 왔어야 하지 않냐며 YG에 앞서 DSP에 연락했어야 한다는 언플 기사가 나왔다. 이에 대해 젝키 팬들이 몰려와서 해당기사 댓글은 악플 일색이다해당기사. 6년째 거동불가능하고 말을 못하는 상태로 누워있는 이호연이 기사를 냈을리는 없는데, 병상에 누워있다 뜬금없이 욕을 엄청 먹게 되었다. 이 언플은 이호연 사장의 공로를 부각시키는 효과보다는, 대량의 악플과 허위 루머 유포 같은 부작용이 더 컸다. 최다추천 댓글 내용들을 보면 허위루머의 총집합 편일 정도다. 강제로 해체당했다, DSP 측이 젝키 상표권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젝키로 소속사가 300억이나 벌었다, 밤무대 돌렸다, 술자리 불러냈다, 3000만원 행사 뛰고 80만원 받았다는 등의 내용인데,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에서 보듯이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팬들에 의해 최다추천에 박아놨으니, 이 기사를 계기로 일반인들이 그런 루머를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해당 언플 기사를 낸 DSP 또한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젝키 시절 회사와 트러블이 심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젝스키스 팬덤이 이호연 사장에 대해 악플로 도배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특히 요즘 대중들은 저런 식의 기사를 "앞에 인사 얘기는 그냥 쓴 것이고 결국 DSP랑 계약하자고 언플한거네"라고 받아들인다. 실제로도 그런 목적이 있었다면 어리석은 판단이다. 왜냐하면 DSP에 대한 일반인들 시선조차, 이호연 사장이 쓰러진 이후 회사가 쇠퇴하여 젝스키스를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젝키 멤버들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아무 성과 없이 욕만 먹은 언플이다. 이호연 사장이 물러난 이후 각종 오판들로 쇠퇴한 경력을 봤을 때, 그런 오판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호연 사장이 젝키를 만들고 키웠으니, 6년째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사장한테 병문안 좀 오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하면 될 일이지, 저런 식으로 언플할 사안은 아니었다. 게다가 말도 못하고 거동불가능한 상태인 이호연이 기사에서 나오는 의견을 개진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예 저런 기사가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기사 대부분이 기자의 상상이거나 DSP 측의 의견일 것이다.
  • 젝키 팬덤이 이호연을 저주하는 수준으로 싫어했던 것이지[51], 젝스키스 멤버들이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해체 이후 직접 이호연에 대해 언급한 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은지원, 장수원, 김재덕은 2013년 DSP 페스티벌에 참석해서 공연을 펼쳤다. 은지원은 "사장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사장님은 늘 우리가 무대를 하면 뒷편에 서서 함께 해주셨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으셔서 참석 못하셨다"라며 "사장님 덕에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하며 "의리"를 외쳤다. 이어 김재덕 역시 "이호연 사장님의 빠른 쾌유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재덕은 OBS와의 인터뷰에서는 "젝스키스가 있기까지 DSP라는 기획사가 있었고, 또 사장님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출연 결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영상 22초부터 강성훈은 2015년 1월 30일 러빙핸즈에서 "팬들은 (이호연 사장님을) 안 좋아하지만 DSP 사장님이 젝키를 위해서 많은 일은 하신 건 맞아..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나서 그렇지."라고 말했다. 이재진의 경우 대놓고 싫어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과거 싸이월드 시절 호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팬이 글을 남기자, 답글로 "호연이라.."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젝키 결성 당시 6명 중 유일하게 이호연이 탐탁치 않아했던 멤버가 이재진이다. '화면으로 보니 코가 커서 안 되겠다'고 퇴짜를 놓았지만, 나중에 은지원, 김재덕이 회사를 설득하여 멤버로 데려왔다고 한다.영상 14분부터 이때부터 악연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기타 김현중의 2013년 아시아 경제 인터뷰#에서 "은지원 형도 이효리 누나도 다 지금은 이적을 했지만 전 회사를 그리워해요. 사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이전 회사를 그리워하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하지만 모두가 그리워하는 걸 보면 사장님은 참 좋고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역시 정이라는 것은 위대하다는 걸 느끼죠."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더라도 90년대 SM가수들이 지금도 수시로 이수만을 찬양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호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이는 이수만은 여전히 권력의 정점에 있는 반면, 이호연은 병상에 누워있던 신세인 면이 클 것이다. 2016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해체이유에 대해 말했는데, 이호연 사장과의 관계가 아니라 가깝게 지내던 매니저(김기영으로 추측됨)와의 사이가 나쁜 것이 원인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 재결합 당시 DSP와 계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젝스키스 멤버들은 2016년 12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래 인터뷰에 언급된 이호연 사장의 경우, 명목상 대표라고는 하지만 뇌출혈로 인해 거동이 불가능하고 감정표현 정도만 가능한 상태로 수년째 누워만 있다. 이에 본 발언은 결국 완전 다른 회사가 됐다는 뜻이다.
“DSP미디어는 우리가 활동할 당시와 전혀 다른 회사였다.”

그룹 젝스키스가 재결합 활동을 데뷔 당시 소속사인 DSP미디어와 협의하지 않은 이유를 이 같이 밝혔다. 젝스키스는 1일 서울 마포구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재결합을 하며 DSP미디어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과거) 대표님은 편찮으시고 매니저는 단 한명도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전혀 다른 회사였다”고 말했다. 은지원과 제이워크로 활동했던 장수원, 김재덕은 과거 DSP미디어 가수들이 모두 출연한 패밀리 콘서트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과거 함께 일했던 매니저는 없었다고 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690448

과거 소속사였던 DSP미디어와의 연결점
“DSP는 우리가 알던 과거 소속사가 아니었어요. 이호연 대표님 말고는 우리가 아는 스태프는 아예 없죠. 다른 회사가 돼 있는 곳이라 교감할 수 없었어요.”(장수원 강성훈 은지원)
http://allets.com/bbs/board.php?bo_table=allets&wr_id=656&sca=STAR

과거 소속사 DSP미디어가 아닌 YG와 손을 잡게 된 이유도 솔직하게 전했다. 은지원은 "예전에 DSP 패밀리 콘서트에 갔는데 저희가 활동할 때 있던 분들이 단 한분도 없었다. 이호연 사장님 외에 다른 회사가 되어있어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473169

이는 그냥 둘러댄 말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2011년 카라 전속계약해지 통보 사건에서, 카라 측의 주장과 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52]
현재 카라 측은 dsp의 매니지먼트 미숙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이 문제로 삼는 것은 카라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DSP 이호연 사장의 부인이다.

작년, 이호연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사장 부인이 경영권을 쥐게 된 가운데, 그녀는 연예 소속사 관리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 경영을 시작, 그로 인해 많은 중역 간부들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이들 중역 간부 또는 베테랑 직원들은 핑클, ss501 등의 매니지먼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이었다.

또한 사장 부인은 카라의 매니지먼트를 함에 있어서도,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지지해 카라 멤버들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카라측의 주장이다.

요컨대, 이호연 사장이 자리를 비우고나서 dsp의 매니지먼트가 매우 부적절하고 미숙했고, 이것이 이번 계약 해지 소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변호사측은 “능력 있는 전문적인 소속사를 찾고 있다”고 언급했다.
http://jpnews.kr/8368
  • 토토가 2 열풍으로 인해 재입덕한 팬들과 새로 입덕한 팬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네이버 검색창에 입덕만 쳐도 연관 검색어에 '은지원 입덕', '젝스키스 입덕', '젝키 입덕' 등이 나올 정도로 인기 몰이 중이다. 3.5집 수록곡 '커플'은 2016년 5월 6일 뮤직뱅크 케이 차트에 14위로 진입했으며 다음주인 5월 13일에는 3계단 상승한 11위에 올랐다. 또한 2016년 5월 보이그룹 브랜드 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 수많은 현역 아이돌들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 무도 방영을 전후로 유튜브에 젝키가 출연한 90년대 예능 영상들이 올라왔다. 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젝키를 모르고 산 사람들은 90년대의 예능에 신기해 하고 있으며, 몇몇 신규 팬들은 덕질하려고 봤다가 화질 때문에 놀란다 카더라. 사실상 90년대 후반의 예능 프로그램에 다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도 유튭에 젝키 치면 다양한 젝키가 나온 예능들을 볼수 있다. 98년도 7월에 방영된 SBS 퍼니퍼니에서 홍진경가방을 뒤지는 영상까지 있다(...).
  • 2016년 6월 24일 방송된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 룰라김지현채리나가 출연했는데, 채리나는 룰라 시절 후배들을 때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사연을 밝혔다. 채리나는 혼낸 적은 없고 혼난 적은 있다며, 젝스키스 인사를 안 받아준다고 그쪽 대표님인 이호연 사장한테 혼났다고 말했다. 이어 채리나는 “그때 당시 저희가 선배인데 젝스키스가 인사를 건성으로 하더라. 그래서 받아주기 싫었다. 이후에는 친해져서 오해를 풀었다”며 이야기를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 DSP에 1996년 입사후 20년 이상 근무 중인 장진희 이사는, 2012년도 인터뷰에서 입사 초기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기나 정황상으로 봤을 때 젝스키스의 이야기다.기사[53]
장진희 본부장이 DSP미디어에 입사한 것은 1996년 가을. 지인의 소개로 이 회사 기획 파트에 입사해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가내수공업 수준을 면치 못했던 당시 연예계에서 기획이라는 근사한 단어는 이내 사라졌다. "일당백이 아니면 회사도 저도 버틸 수 없었어요"라는 당시 그에게 최근 분업화ㆍ산업화ㆍ세계화 등을 거듭하고 있는 최근 연예 기획사의 변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변변한 숙소가 없던 시절 지방 출신 멤버들 밥을 차려주기 일수였고 컴퓨터가 없던 시절 팬 관리에 마케팅ㆍ정산까지 모두 수기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스케줄 오갈 때 맞춰서 밥을 해놓으면 그렇게 잘 먹을 수가 없었죠. 저까지 허기를 느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쌀을 하도 많이 넣어서 밥통이 터진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죠."

온라인 뱅킹이 도입되기 전이라 매일 은행에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다. 매일 가족처럼 사무실에서 마주치다 보니 멤버들은 누나처럼 그를 따랐고 연애상담부터 가족문제까지 시시콜콜하게 회사의 대소사는 그의 손을 거쳐야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음이 숙연해지죠. 한번은 여자친구 선물 포장을 부탁하는 멤버도 있었어요. 워낙 가깝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젝키와 클릭비는 변변한 연습실도 없었어요. 연습생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 무대에 오른 경우죠. SS501 데뷔 때부터 오디션의 개념이 생겼어요. 통과한 친구를 전문 트레이너가 붙어 노래ㆍ춤ㆍ연기 같은 걸 훈련을 시켰죠."
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204/sp2012042007015895510.htm
  • 2000년 6월 16일 피자의 아침[54] 방송내용을 보면, 소속사 측은 행사에 있어서는 멤버들에게 70%를 준다고 항변했는데,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를 보면 2015년 tvn 택시 방송에서 장수원이 행사 한번에 멤버당 300만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젝스키스의 1회 행사료를 계산해보면, 2570만원이다. 99년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S.E.S.가 행사 1회당 1000만원을 받는다고 쓰고 있는데[55], 이보다 많은 액수다. 당시 대졸신입 월급 평균이 130만원 할때이니, 2570만원은 굉장히 큰 액수다. 오늘날로 치면 7000만원 가량의 가치다. 오늘날 아이돌 중 이 정도 액수를 받는 팀은 찾기 힘들다.[56]
  • 모든 멤버가 데뷔 당시 예명을 쓰지 않은 1세대 남자 아이돌이다.[57]


[1] 독일어로 '여섯개의 수정'을 의미한다. 다른 표기로, Sechs를 6으로 표기한 '6kies'와 젝스키스를 줄인 '젝키'가 있다.[2] 영미권 외국인의 경우, 영어식 발음 그대로 읽는 참사(...)가 자주 발생한다. 잘못된 독일어 표현이기는 하나 독일어 발음상으로는 [zɛks kiːs\]이며 오죽하면 팬들이 발음법 영상까지 만들었다. 사실 이런 말장난은 서양에서는 흔하다. 일례로 AVGN2에서는 트라이포스의 패러디인 '젝스포스'라는 성유물이 등장하는데, 스펠링은(...)[3] 3년 계약을 했다.[4] 영어+독일어, 참고로 노랑은 독일어로 Gelb(발음: 겔프)[5] 소방차를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DSP의 이호연 사장인데, H.O.T.가 아닌 소방차를 아이돌의 시초로 본다면 젝스키스는 소방차의 직속 후배라는 정통성도 있다. 정원관이 만든 NRG가 아니라? 데뷔 해인 1997년 2집까지는 언론이 붙인 라이벌 느낌이 있었지만 98년 3집부터는 정말 H.O.T.와 맞설 만큼 성장했고 3.5집 "커플" 시절에는 공동 대상을 수상했다.[6] 옐로우키스 문서 참고.[7] 'Kies'에는 수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뜻은 '자갈·돌멩이'이다. '수정'의 의미를 나타내려면 'Kristall(또는 복수형인 Kristalle)'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의미적으로 타당하다.[8] 김재덕을 제외한 멤버들은 기타 솔로 활동도 YG엔터테인먼트에서 담당한다. (제이워크 활동은 웤플럽 팬미팅으로 보아 YG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9] DSP가 젝스키스 해체 후 찌질하게 상표권 등록을 수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루머를 퍼뜨리는 글이 많았는데, 이는 팬들이 악역을 만들어내려고 애쓴 거짓말이다. DSP에서 젝스키스 상표권 등록을 신청한 적이 없고 어느 이상한 기업체에서 신청했다 거절당한 내역만 있다. 링크[10] 당시 젝스키스의 팬덤은 7만 석 중에 4만 8천 석을 차지하였으며, god는 1만 5천 석을 차지하였다. 젝스키스의 이 규모는 H.O.T., 서태지와 아이들의 뒤를 이어 역대 드림콘서트 팬덤 규모 3위에 해당된다. 참조[11] 신화와 god를 1.5세대로 분류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12] 신화 멤버 전진은 2008년 솔로앨범 인터뷰에서 H.O.T.와 젝스키스는 큰 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기사참조 2016년 MBC FM4U 박경림두시의 데이트에 출연한 신화 멤버 김동완은 젝스키스의 컴백이 신경 쓰이냐는 질문에 젝스키스가 H.O.T.와 당대 그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팬덤이 굉장히 거대했기 때문에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고 답한 바 있다. 영상참조 god데니 안 역시 데뷔 직후였던 1999년 1월 당시의 젝스키스를 대선배 내지 인기스타로 회고하였다. 기사참조기사참조 실제로 신화는 으쌰으쌰 활동 당시인 1998년에 젝스키스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었으나, 3위를 한 바 있으며, 영상참조 god는 젝스키스가 4집 활동을 마무리 한 직후인 2000년 1윌 초에 첫 1위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13] 다만 젝스키스의 전성기 때 신화와 god는 막 떠오르던 라이징 스타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1대1 비교는 무리가 있다.[14] 젝키 노래의 대중성에 대한 기고문: 90년대, 하얀 풍선과 노란 풍선이 부딪치던 그 시절. DSP는 따라쟁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집요하게 SM의 성공을 뒤쫓아댔다. 그 수준도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HOT가 다섯으로 성공하자 그들은 곧 하나를 더 붙인 6인의 젝스키스를 만들었고, 세 명의 SES가 등장하자 곧 한 명을 더 붙여 4인의 핑클을 내보냈다. 교실은 SM파와 DSP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희한하게 SM 소속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SM을 선택했다. 그것은 DSP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토록 첨예하게 맞부딪히면서도 우리들은 당시 유행했던 노래방에 갈 때면 어김없이 DSP의 노래를 선택했다. 커플과 예감, 루비와 내 남자친구에게 같은 노래들은 멜로디가 쉬웠고 대중적이었으며 주로 사랑을 노래해서 아이돌의 팬이 아닌 사람과 마주해도 부담 없이 그 노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마치 어른이 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HOT의 노래들은 한마디로 관상용이고 무대용이었지 노래방에서 신나게 외쳐 부르며 하나가 되는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었다. 톡 까놓고 말해 어르신들 앞에서 '아이야' 따위를 부를 수 있겠는가. 나는 모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부르는 오덕후 친구를 마주한 기분이었을 것이다.#[15] https://youtu.be/6dLgsJcoEco[16] 90년대 후반 최정상급의 대규모의 팬덤.[17] 젝스키스가 데뷔할 무렵이나 후에 태어난 세대.[18] 무한도전을 통해 젝스키스를 접하고 유튜브 등으로 과거 활동 모습을 보고 입덕을 하는 팬들이 많다. 현재 팬카페에는 03학번과 03년생이 공존하며, 97년생과 97학번이 대화를 나누는 건 거의 일상적인 풍경이다.[19] 심지어는 해외 K-POP 팬들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을 정도다. K-POP이 인기를 얻어가면서 아예 K-POP 자체의 역사에 흥미를 느껴 조사하다가 알게된 경우도 있고 무한도전 등으로 알게되어 예전 전성기 영상을 보고는 입덕하게 되었는데 컴백을 해 버리자 완전히 팬이 된 경우가 꽤 있는 편.[20] 재결합 후 다시 오른 시상식에서 201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인 EXO, 방탄소년단과 함께 대규모 팬들이 찾아왔다.[21] 2020년 기준 멤버 전원이 만 40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동안이다.[22] 팀 내 형(78~79년생) 라인이며 주로 랩과 안무를 맡았는데, 2집 이후로는 김재덕을 제외하고 서브보컬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었고, 재결성 이후로는 김재덕까지 서브보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23] 팀 내 동생(80년생) 라인이며 주로 보컬을 맡았는데, 2집 이후로는 고지용이 서브래퍼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고지용이 젝스키스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강성훈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젝스키스를 탈퇴하게 되면서 장수원만 남게 된다.[24] 최초로 유닛활동을 한 그룹은 그 해에 데뷔한 OPPA이다.[25] 젝키로서의 은지원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은지원이 20세기 미소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간단한 안무가 아닌 본격적인 댄스는 젝키를 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26] 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에서 언급.[27] 강성훈의 컴백 자서전을 보면, 그 자리에 은경표 PD도 있었다. 젝스키스라는 이름을 괜히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 원문: 연달아 몇 곡인가를 더 불렀는데, 창피해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자리에 계셨던 분이 DSP 이호연 사장님과 은경표 PD였다. 춤을 다 추고 나자, 사장님은 "너희들 가수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시는 것이 아닌가.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춤과 노래를 선보였던 나는 엉겁결에 "네!" 하고 크게 대답했다. "그래, 너희들이 무척 마음에 드는구나. 곧 연락하마."[28] 이재진 컴백 자서전 원문 : '내가 너희들 춤추는 데모 테이프, 서울에 있는 우명한 기획사에 쫙~ 돌렸다.' 1996년, 매니저를 자처했던 친구가 그랬다. 한편으론 창피한 생각에 걱정도 됐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 "너희들의 춤추는 모습이 맘에 드는구나. 연락 한번 부탁한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뜻밖에도 양현석형과, 이주노형, 그리고 OK뮤직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양현석형은, "춤을 인상깊게 봤으니 방학이 되면 꼭 한번 만나자" 라는 말까지 해주셨고, 이주노 형은 당장 압구정동에 있는 ING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겨울방학이 되자, 우리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주노형을 만났다. 그때 마침 DSP 사장님이 우리들을 보셨고, 재덕이는 새로 결성되는 그룹의 멤버로 뽑혔다. 주노형은 나를 데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머지 친구들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3여년을 함께 동거동락했던 친구들. 웬지(왠지)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재덕이는 젝키의 멤버로, 나는 주노형 사무실의 백댄서로 서울생활 을 시작하게 되었다. 재덕이를 포함한 젝키 멤버들은 주노형 사무실에 자주 놀러왔다. 처음 멤버들을 봤을때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주노형 사무실에서 만난 지원이형은 복고풍으로 잘 차려입은 세련된 모습이었다. 성훈이는 귀여우면서도 남자답고 귀티가 흘렀다. '서울애들은 다 저런가?' '서울에서도 한가닥들 하는 애들이겠구나'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수원이도 깔끔한 인상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었다. 어디서 저렇게 잘생긴 아이들만 모아놨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꺼번에 모여 있는 이들을 봤을때의 충격이란. 잘생기고 세련된 외모에다가, 노래나 춤솜씨도 수준급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맘 속에도 부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앞에서도 말했덧이 처음에는 재덕이만 뽑혔다고 해서 부러워하진 않았지만 서서히 소외감이 들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당시 재덕이는 멤버라는 이유로 빳빳한 수표를 용돈으로 받았다. 밥먹으러 갈때도 웬지(왠지) 나는 덤으로 끼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연습할 때 열심히 따라서 연습했고, 내가 아는 것들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몇달 후, 매니저인 기영이 형이 나를 따로 불렀다. "그 동안 너를 지켜봤는데....멤버들에게 춤도 잘 가르쳐 주고 하더구나. 우선. 팀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니?" 무슨 대답이 필요할까? 대답은 YES 였다. 그렇게 나는 젝키의 새로운 멤버가 되었고, 처음으로 빳빳한 수표를 용돈으로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29] 사실 추천이라기보다 강성훈이 가수데뷔를 위해 귀국했을 때 오랜 친구였던 고지용이 마중을 나왔는데, 이호연 사장이 첫눈에 보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이때 강성훈이 계속 설득했지만 열 번 이상 고사했고, 막판에 결국 하고 싶다고 연락했다.[30]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 원문 : "재덕이는 내일부터 연습하자!" 아쉽게도 나만 뽑히게 되었다. 주노형 사무실에서 약 3일을 머는 동안 DSP 이호연 사장님이 우리들의 춤을 보시더니 당시 구상중이던 젝키의 멤버로 나를 점찍게 된 것이다. 난 한번도 그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퀵실버 멤버들 중 누구는 뽑히고 누구는 떨어지고.... 정말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꽤 고민이 되었다. 원하던 가수가 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냥 부산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니... 일단 팀에 합류했다. 주위에서는 "네가 잘 되어야지 친구들도 도와줄수 있다"란 말씀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린 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누가 되더라도 웃음으로 보내주자라고... 다행히 재진이가 함께 남았다. 재진이는 주노형 사무실에 있으면서 백댄서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젝키 멤버로 사람이 부족했다. 연습하던 한 친구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능력보다 춤추는 능력이 있으면 좋은 자리였다. 난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매니저인 기영이형에게 부탁해서 재진이를 다시 한번 봐달라고 졸랐다.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예요." 함께 있던 지원이형도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그 동안 주노형 사무실에서 봤던 이미지가 꽤 좋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별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기영이형도 마음을 돌렸다. 그리곤 사장님께 허락을 받아 재진이를 젝키의 5번째 멤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31] 당시의 DSP(대성기획)는 SM과 함께 2대 기획사였다[32] 예를 들어 이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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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49604&exception_mode=recommend&page=1200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332195 https://m.blog.naver.com/my_mister_/220724827354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77466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49534&exception_mode=recommend&page=1200 https://theqoo.net/sechskies/266272420 https://theqoo.net/ktalk/574257919 https://theqoo.net/sechskies/266283108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385819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405008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409834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648656 https://theqoo.net/ktalk/457708137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63415&exception_mode=recommend&page=1170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926097 https://www.instiz.net/pt?no=3943138&page=1 https://theqoo.net/sechskies/496491603 https://theqoo.net/sechskies/266310757 https://onehallyu.com/topic/461510-instiz-eun-ji-won-kang-sung-hoon-hawaii-couple/[34] 그 댓글에는 다른 루머를 잔뜩 유포해놨는데, 반박문서에서 보듯이 거짓말 투성이다.[35] 오죽하면 현 세대 아이돌 팬덤계에서 사이가 매우 나쁘기로 유명한 EXO의 엑소엘과 방탄소년단의 아미를 언론에서는 H.O.T 팬덤과 젝스키스 팬덤에 비유할정도.[36] 현재에도 H.O.T. VS 젝스키스만한 라이벌 구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요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아이돌 포화기로 염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대중들이 더이상 댄스음악에만 환호하지 않기 때문.[37] H.O.T. 팬덤뿐만 아니라 핑클등 타그룹 팬덤과도 사이가 워낙 안좋았다. H.O.T. 팬들은 같은 소속사 그룹인 S.E.S. 와 신화를 함께 응원했지만 젝스키스와 핑클 팬덤은 소속사의 무분별한 플랜과 차별 대우 등으로 서로 경쟁관계이기도 했다.[38] H.O.T. 팬이란 이유만으로 젝스키스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39]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10100289131012&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9-01-01&officeId=00028&pageNo=31&printNo=3390&publishType=00010[40] 당시 팬덤들의 싸움은 3층에선 풍선을 터뜨리려고 압정을 뿌리고, 면도칼이나 못으로 현수막을 찢고, 우산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지고 몸싸움을 하는 등 요즘 인터넷 상에서의 키배와는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성별도 안 따졌다 공연장에서는 팬석만이 그나마 안전한 곳이었으며, 공연장 내에서 이동할 때조차 같은 팬덤 여러 명이서 무리지어 다니며 서로를 보호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당시 팬덤은 임원진을 내세워 기강을 무섭게 잡았다. 지금의 팬덤끼리 싸움은 애교로 보일수준[41] 강성훈의 컴백 자서전 원문: 연달아 몇 곡인가를 더 불렀는데, 창피해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자리에 계셨던 분이 DSP 이호연 사장님과 은경표 PD였다. 춤을 다 추고 나자, 사장님은 "너희들 가수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시는 것이 아닌가.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춤과 노래를 선보였던 나는 엉겁결에 "네!" 하고 크게 대답했다. "그래, 너희들이 무척 마음에 드는구나. 곧 연락하마."[42] 출처: 가수 매니지먼트에 관한 사례연구, 김정은,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2000[43] 2013년 3월 6일자 방송.[44] 같은 회사 직속후배 출신인 후배 보이그룹후배 걸그룹 역시 보컬 트레이닝이 없기로 유명했다. 핑클은 성악 전공이었던 옥주현이 다른 멤버들 보컬 트레이닝을 했다. SS501은 결국 사비로 배웠고, 나중에 후배들도 사비로 연습시켰다고 한다.[45] 2015년 tvn 택시 방송에 출연해서 이와 같이 밝혔다.[46] 이효리가 10minute으로 활동할 때 은지원과 콜라보 무대를 한 적도 있다.# 은지원의 곡 'Love론'을 이효리가 피쳐링 해주기도 했다.[47] 2003년 당시 이효리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잘 대접해서 가게를 홍보하려 했을 것이다. 은지원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48] 티비넷 2000년 8월호의 젝키 기사 중간에 삽입된 문구다. 티비넷은 두달 후인 2000년 10월에 폐간했다.[49] 2013년 5월 29일 라디오스타에 이효리가 출연해서 말하길, 당시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밀리면 다음에 상황 좋아지면 달라고 쿨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성유리는 무릎팍도사에서 데뷔때 신인으로서는 받기 어려운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나갈때도 DSP가 싸이더스랑 연결시켜주는 등 매우 원만히 헤어지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호연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실에 누워있을 때, 핑클 4명이 모두 찾아와서 이호연 사장이 좋아하던 노래 "루비"를 불러주었다고 한다.#[50] 옥주현은 2015년 핑클회동 당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당시 소속사 직원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 보따릴 펼쳤더니 재미난 일들이 많긴 하다. 넷은 여러모로 세고 특이했다.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다, 우린. 가수가 되고 싶단 큰 꿈도 없이 캐스팅된 아이들. 노래 안 되고 춤도 안 되는데 '연습생 시절'이란 것도 없이 그 상태로 데뷔를 시킨다고… 망할 거라고 확신하며 아무 기대도 겁도 없이 세상에 나왔다. 예상대로 데뷔곡 '블루레인'은 큰 집중을 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사장님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곡으로 방향을 바꿔 빛의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 뮤직비디오를 찍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유치한 가사를 립싱크하라니. 이걸로 앞으로 방송도 해야 하냐고. -이것봐 나를 한번 쳐다봐. 나 지금 예쁘다고 말해봐-콜미 콜미 콜콜 기 붜 코올 -난 니거야- 우린 모두 하기 싫은 티를 뚝뚝 묻혀가며 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터질 줄이야…! 그 이후 고공행진. 노래 춤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예능의 절대 강자로 시청률을 제압하던 핑클은 잠자는 시간, 가요 프로그램 출연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예능촬영에 몰두. 노래 연습은 안녕… 춤은 모두가 따라 출 수 있는 걸로. 오늘 밥 먹으면서 저 위의 내용으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 신기하지 않냐며, 잠깐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다며. 갖춰진 것도 없이 운이 억수로 좋았던 건 말이 안 되는걸 되게끔 옆에서 애써준 사람들의 공이 크다고…FBI에서 훈련 받는 것보다 우리 넷을 케어하는 게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__^) 매니저 오빠들. 불도저 이호연 사장님. 오늘 귀 좀 간지러우시겠다. 핑클을 에워싼 숲이 되어준 그대들에게 고맙고 보고 싶고 미안하고… 넷이서 이야기 나누며 많이 그리워했어요. 오겡키데스카."[51] 해체 후 16년이 지나서까지 온갖 루머를 퍼뜨리며 모욕 글을 올렸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 참조[52] 젝스키스도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당시 카라 측의 주장 역시 맞았었다고 판단된다.[53] 참고로 기사에서 홍보하는 데뷔 임박한 그룹이 A-JAX인데, 이호연이 뇌출혈로 회사를 떠난 후 DSP에서 내놓은 첫번째 그룹이었다. 선배 젝스키스와 SS501을 잇는 그룹으로 기대가 높았으나 결과는.[54] MBC에서 방송한 아침 뉴스 프로그램으로 현재 MBC 뉴스투데이의 전신이다. 여기서 '피자'의 의미는 PD와 기자가 함께 만드는 아침이라는 의미다.[55]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2900209113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9-29&officeId=00020&pageNo=13&printNo=24313&publishType=00010[56] 참고로 이 리포트는 이상호 기자가 취재하였다.[57] 신화신혜성, 전진 등 다수의 멤버들이, H.O.T.토니 안강타가, god데니 안이, NRG노유민이, 태사자김영민이 예명을 사용하였다. 다만 노유민은 후에 본명인 노갑성에서 노유민으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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