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29 17:54:02

가요톱10

타이틀 가요톱10
Top 10 Songs
방송 채널 KBS 2TV
방송 시간 수요일 18:40 ~ 19:35[1]
방송 분량 55분
방송 기간 1981년 2월 10일 ~ 1998년 2월 11일
방송 횟수 852회
방송 유형 생방송
제작 KBS 예능제작국

1. 소개2. 역대 MC3. 집계 방식4. 비판
4.1. 순위 집계방식의 편향4.2. 순위 왜곡4.3. 히트곡의 기준 왜곡4.4. 그 해 최고의 히트곡의 기준의 애매함4.5. MBC, SBS와의 순위 괴리
5. 골든컵 제도
5.1. 골든컵을 총 3회 이상 수상한 가수5.2. 한 정규앨범 내에서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5.3. 한 해에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5.4. 연도별 골든컵 수상자5.5. 최다 1위 수상자5.6. 골든컵에 대한 이야기들
6. 트리비아

1. 소개

KBS에서 방송되었던 가요 프로그램으로 뮤직뱅크의 전신이다. 상단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가요톱10' 공식 로고에는 '토' 밑의 'ㅂ'받침의 형상 안에 'TOP'이 들어가 있다.

1981년 첫 방송되어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까지 많은 인기를 얻은 가요 프로그램이었으며, 1981년 2월 10일 KBS 1TV에서 첫방송됐고 그 해 가을개편 때 KBS 2TV로 옮겼다.


초기 오프닝. 로고를 보면 미국 NBC 로고랑 상당히 많이 닮았다. 표절?[2] 이 로고는 어레인지 되어 2015년 추석특집 '전무후무 전현무쇼'에 로고로 다시 쓰였다. 1990년대 초반 들어 타이틀곡이 바뀌고 1995년 5월 후반기 오프닝부터는 초기에 있던 로고가 없어졌으며, 로고는 1위 발표할 때 그래픽으로 등장했다. 1997년 들어 타이틀곡을 잠깐 바꿨다.

가요 톱10 초기 오프닝으로 쓰였던 곡은 Maynard Ferguson이 연주한 Nine To Five다. 1981년도 영화 9 to 5에 쓰였다. 1분 44초부터 듣자. 들어보기 이런 거까지 찾아내는 위키러는 누구냐.. 무서워.. ㄷㄷ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처럼 상당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프로그램으로 손범수가 실제 KBS 보도국 스튜디오에서 뉴스처럼 오프닝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시그널도 KBS 뉴스 9에서 쓰는 시그널 BGM이 나왔었다. 그와중에 여의도 신관 3층 보도국 스튜디오 뒤에서 깨알같이 마임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의 영상은 콩트식으로 송대관과 김원준, 부활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들을 모아놓고 대사가 있는 드라마처럼 상황극 컨셉으로 만든 오프닝이다.

그 외에도 송승환이 진행하던 시절에는 1위 트로피와 수상 봉투가 없어졌다고 난리를 친 뒤 그거를 전해주는 장면을 콩트 형식으로 내보내는 시도도 있었다.


1997년 H.O.T.의 행복 무대 장면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전설의 본좌급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던 가요톱텐은 1997년 말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온 국민을 충격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넣은 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KBS는 공영방송의 입장에서 급격히 떨어진 국민적 사기와 깊이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는 당시의 시기 상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기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편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명분을 내세워서 개편 시기와 관계 없이 가요톱10을 비롯한 다수의 연예오락프로그램들을 서둘러 종영시키는 바람에[3][4] 17년간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명성과 입지를 다져왔던 '가요톱10'은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명분 때문에 1998년 2월 11일 방송을 끝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렸다.[5] 그 뒤 '브라보 신세대'라고 가수들과 함께 예능쇼를 진행하며 노래를 듣는 특이한 형태의 프로로 바뀌어 진행되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6] 당시 국민 음악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10'을 주인과 마찬가지인 시청자들의 의견 반영도 없이 KBS 멋대로 무리하게 종영한 것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상당히 거셌다.

후속 가요 프로그램으로 브라보 신세대가 방영되었으나 4개월만에 종영되었으며 이후 뮤직뱅크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기획해서 '가요톱10'의 명맥을 잇는 KBS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재도약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 MBC에서는 음악캠프를 개설하고 SBS에서는 SBS 인기가요를 재개설해 이전의 KBS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으며 가요톱10의 정통성을 잇는 프로답게 옛날 공정성은 다른 공중파 가요 순위프로보다 높았지만 지금은.....

대체로 방송에 소개되는 순위는 30위부터 10단위로 끊어서 소개되었다. 30~21위까지 소개 후 한두명(팀)의 가수가 나와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소화한 후 또 다음 턴으로 똑같이 진행했다. 1위 후보곡은 2 or 3곡이냐에 따라서 10위권 안에 있는 노래는 10~3위 or 10~4위까지 소개되었다. 다만 1993년에는 10위권 순위를 먼저 소개하거나 20~11위를 먼저 소개하는 등 변동은 많았다. 1위 선정 결과는 세대별 득표수를 보여준 다음 총합을 보여준다거나, 총합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7][8]

시청자 코너 및 가요계 뉴스 코너도 있었다. 故 양종철이 거리를 찾아가 시민들에게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는 무엇인지 물어보는 코너 '요리조리 톱 10','요리조리 톱 10' 코너를 토대로한 장두석의 '무조건 메들리' 이 코너는 장두석의 노래와 함께 이창명,유재석 등 당시 신인 개그맨들의 코믹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김국진이 매주마다 한 가수를 초대해 질문하는 '피할 수 없어요' 코너도 있었다.

길보드차트도 있었으며 1995년 5월 땐 이름이 같거나 특징이 비슷한 두 가수를 부르는 코너도 있었다.

2. 역대 MC

역사가 긴 가요프로그램답게 역대 프로그램 MC의 변동 또한 많았다.
대수 MC 기간
1 하지훈 & 박혜리 1981년 2월 10일 ~ 1981년 9월 3일[9]
2 임성훈 & 박혜리 1981년 9월 8일 ~ 1982년 1월 27일
3 임성훈 & 서동숙 1982년 2월 3일 ~ 1984년 3월 4일
4 임성훈 & 임화숙 1984년 3월 11일 ~ 1985년 4월 21일
5 임성훈 & 김혜란 1985년 5월 1일 ~ 1985년 9월 4일
6 임성훈 & 길은정 1985년 9월 11일 ~ 1986년 6월 18일
7 손창민 & 예명숙 1986년 6월 25일 ~ 1986년 9월 24일
8 임성훈 & 故길은정 1986년 10월 1일 ~ 1988년 4월 27일
9 임성훈 & 서성희 1988년 5월 4일 ~ 1988년 8월 3일
10 임성훈 & 오영실 1988년 8월 10일 ~ 1989년 10월 15일
11 임성훈 & 정미정 1989년 10월 22일 ~ 1990년 9월 30일
12 김병찬 & 이한숙 1990년 10월 7일 ~ 1991년 9월 25일
13 故 김광한 1991년 10월 2일 ~ 1992년 9월 30일[10]
14 송승환 1992년 10월 7일 ~ 1993년 4월 28일
15 손범수 1993년 5월 5일 ~ 1998년 2월 11일[11][12]

크게 두 시대로 나눌 수 있다. 가요톱10의 얼굴마담은 임성훈으로 총 8년간 MC를 맡아 가요톱10의 최장수 MC로 군림했으며,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위키니트들이 많이들 기억하는 MC는 두 번째로 장수한 MC이자 가요톱10의 후반기를 함께한 손범수 前 아나운서[13]일 것이다. 손범수의 경우 단독 MC로 근 5년간 자리를 지킨 데다 다른 MC들에 비해 세련된 외모와 함께 당시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게끔 상당히 맛깔나고 재치있게 진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 가요톱10의 인기몰이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가요톱10에 애착이 굉장했기에 마지막회를 진행 후 화장실 대변기 칸에 들어가서 대성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차 이후에도 중간에 김병찬 아나운서가 손범수 대신 진행한 적이 있으며 2002년부터 2007년까지 KBS 가요대상, 가요대축제를 진행했다.

3. 집계 방식


1990년대까지만 해도 21세기 현재와 같이 인터넷이나 케이블/위성 방송등 공중파 외의 매체들이 아직 크게 발달되지 않았기에 공중파 음악순위방송의 영향력이 무척 컸으며, 특히 공영방송 KBS에서 진행하는 음악프로인데다 당시의 순위 집계 방식이 아날로그틱한 느낌이어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공정해서 대중들의 신뢰도가 무척 높았기 때문에 가요톱10에서 집계한 순위는 곧 그 시기의 가요 동향을 파악하는 척도였다고 할 수 있다.

가요톱10의 기본적인 순위 집계 방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1990년 자료)
1. KBS 경영정보센터에 등록된 명단에서 10만명을 추출해서 지역별, 연령별 2,800명 선정.
2. 집단 투표 인단(택시, 버스기사, DJ, 노래 부르기 모임, 가요 담당기자 등) 200여 명에게 왕복 엽서 발송, 회수.
3. KBS 가요담당 PD의 기명으로 10곡 추천받음.[14]
4. 전국 투표인단과 가요 PD 추천곡을 80:20 비율로 합산.
5. 경영정보센타에서 200위까지 컴퓨터에 의해 집계된 40위부터 1위까지 순위 선곡 방송.


90년대에 들어서면서 PC통신과 전화 ARS를[15] 통한 시청자들의 실시간 순위 참여 시스템이 도입되는 등, 순위 집계 방식은 차츰 발전해 갔다. 태진아,설운도,송대관 같은 트로트 가수들의 곡도 인기가 높아 10~30위권내에서 꾸준히 사랑받았고 특히 손범수 아나운서의 고정멘트 "생방송 가요톱텐 몇월 몇째주 영예의 1위 곡은?"이란 말이 화제가 되었다.

방송 중 투표 인단 엽서를 추첨하여 상품을 주는 코너가 있었으며 손범수 진행 이후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투표인단 명단이 입력된 컴퓨터에 임의의 문자를 입력하여 모니터에 출력된 투표인단에게 선물을 주는 코너가 있었다.

이 방식은 현재 뮤직뱅크 케이 차트 시청자 선호도 점수에 비슷하게 쓰고 있는 방식이다. 한국방송 리서치에서 패널로 선정되고 설문 참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음원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TOP 100곡에서 3곡을 선정하고 점수화해서 케이차트에 반영하는 것. 차이점이라면 시청자에만 한정되고 가요담당PD의 추천은 없다는 것이다. 방식 면에서도 인터넷으로 바뀐 것도 덤. 그리고 10% 밖에 반영이 안된다.

가요톱10이 방영될 당시 개국했던 SBS는 '생방송 TV가요 20[16]'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요톱10의 아성에 도전했으며, 1996년부터는 가요톱텐처럼 5주 연속 1위를 하면 '왕중왕'이란 칭호를 주면서 나름 인기를 얻었지만 역시 가요톱10을 넘어서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MBC는 가요 순위프로에서만큼은 콩라인, 더 나아가 1995년 지역민방 개국 후 타 지방에서도 3류로[17] 전락하면서, 이 당시 MBC의 가요 차트는 "여러분의 인기가요" "결정! 최고인기가요" "MBC 인기가요 BEST 50"[18] 등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잦은 개편의 난맥상을 겪었다.

4. 비판

공정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순위의 정확성에 대해 다음의 비판들이 존재했었다. 분명히 대표적인 가요순위 프로그램이었고 다른 경쟁사 순위프로그램에 비해 시청률이 높긴 했으나 정말로 공정하고 정확한 순위였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반박이 가능하다.

이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생기고 배철수가 연말마다 빌보드 연말차트를 소개하면서부터 더더욱 불붙었던 이야기다. 팝 전문 DJ들의 수준이 약했던 그 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상당히 수준급의 각도로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4.1. 순위 집계방식의 편향

앞에서 본 기본적인 순위집계방식을 보면 당시 순위 집계 방식에 근본적으로 편향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구체적인 비판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순위산정의 근간이 되는 전국투표인단 2,800명은 경영정보센터 등록 명단에서 나오는데, 당연히 이 명단에는 미성년자인 10대의 명단은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시 10대의 성향은 지나치게 적게 반영되는 것으로 왜곡된다.
2. 엽서 발송, 회수를 하는 집단 중 택시, 버스기사, 노래부르기 모임 등 시민 패널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성인가요에 취향이 쏠려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10~20대가 많이 듣는 노래에 친숙한 DJ나 가요담당기자도 패널에 들어가 있어 일부 보완은 된다고 하지만 이 방식을 쓰면 성인가요를 선호하는 중장년층의 성향이 지나치게 높게 반영되는 것으로 왜곡될 것임이 예상된다.
3. 가요담당 PD기명으로 곡을 추천 받는 방식은, 실제로는 듣보잡곡이더라도 몇몇 PD에 대한 로비만 있다면 충분히 순위에 곡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4. 이상의 방식은 지금의 순위산정방식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이 상식인 음반 판매량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가요톱텐 시절의 90년대 차트가 2000년대 이후의 차트와는 달리 아이돌 편향이 아니고, 성인가요에도 상당한 지분이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순위산정에서의 편향에 힘입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10년대의 멜론차트 사재기 의혹과 마찬가지로, 당시 강력한 공신력을 가지던 가요톱텐에 순위권 곡으로 소개되면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듣게 되고, 방송에 자주 소개되다 보니 인기도 상승하는 되물림 현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추측 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시의 성인가요에 대한 실제 대중적 인지도나 인기는 실제보다는 과대평가되어 있었으며, 대중의 인기를 이 프로그램이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성인가요의 인기나 지분이 일부 보장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위 비판점에 대해서는, 순위산정방식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재반론도 있을 수 있다. 당시는 젊은 층이 문화의 주체로 그리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지금의 아이돌 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시기였다. 즉, 가요 문화를 소비하고 유행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어쩔 수 없이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될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에서 '전국적인 인기곡'을 산정하는 취지라면 위의 산정 방식이 그나마 최선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음반판매량은 당시에 제대로 전산집계가 이뤄지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판매 순위를 반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음반판매를 순위에 활용했던 몇몇 프로그램 (예컨대 '정오의 희망곡'과 같은 라디오 프로)의 경우에는 전체 음반 판매가 아닌 특정 음반판매량만 수기집계하는 방식이었기 떄문에 신뢰도에 의문이 있었다.

또한 컴퓨터가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가정에 어느정도 보급되었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업무용이나 교육용, 혹은 게임용으로 썼고, 완전한 대중화와는 거리가 있어서 1996년 기준으로는 4가구당 1대가 보급된 수준이었다. 또한 PC통신이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PC통신을 이용하기에는 요금이 심하게 비쌌던지라 널리 보급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90년대 말 이전까지는 중산층 이상의 젊은층들이 주로 이용했으며 인터넷도 1994년에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1990년대 말 ADSL 서비스가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요금이 부담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PC통신의 영향력이 적을수밖에 없던 환경이었기에 당시 민심의 풍향계 역할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택시운전사 등 특정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도맡는 것이 당시로서는 상식이었고, 이게 그나마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대변했기 때문에 90년대까지만 해도 이상의 조사방식이 그나마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함께 놓고 고려해보면 10대, 20대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아 기계적으로 그 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더 순위 편향적이라고 여겨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당시엔 TV가 가지는 권위가 워낙 컸고, 더욱 합리적인 순위 집계방식을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위의 집계방식에 달리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을 뿐이지, 전체적인 대중가요 문화의 풍토가 달라지고 TV의 영향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에도 위의 순위산정 방식을 유지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지금의 뮤직뱅크 이상으로 순위산정 방식에 대해 강렬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시의 순위산정 기준이 지금 기준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 및 집계수단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위 기준을 쓸수밖에 없었다는 반론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인기'라는 것은 애초에 측정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므로 과거에 이 프로그램이 썼던 순위산정방식이 고정불변으로 옳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더구나 더욱 합리적으로 인기곡의 척도를 측정할 수단이 늘어난 지금까지 종전의 방법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는 TV의 대중매체에서의 영향력이 100중 80 (라디오가 나머지의 절반 이상)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절대적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젊은 층들도 결국 가요톱텐이 줄세우는 순위 산정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이돌 팬덤 문화가 본격화되고, 팬덤의 소비가 대중문화의 상업성을 지탱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자, 가요톱텐의 후신격인 이후 프로그램들은 차츰 10~20대의 취향이 차트에 훨씬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순위산정방식을 개편하는 것으로 대응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상의 결론이 뒷받침된다고 볼 수 있겠다.

4.2. 순위 왜곡

순위 왜곡도 상당히 심했는데, 연속 5주인 곡에게 골든컵을 줘서 명예졸업하는 제도가 그 하나의 이유다. 동 시대에 방송하던 MBC나 SBS의 순위프로그램은 골든컵이라는 제도가 없는지라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10주 넘게 1위를 하는 등의 또 다른 기록의 묘미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골든컵 제도가 연속 5주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어서 통산 5주 이상 같은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의제는 그 당시에도 가요팬들에게 큰 논쟁거리였다.

실제로 저 정도는 아니어도 자잘자잘하게 1위를 여러 차례 한 곡도 분명히 있었고, 심지어 총 합계로는 5주 넘게 1위를 한 곡도 있었으니까...[19] 심지어 골든컵을 받아서 나간 노래가 생긴 동안 MBC나 SBS 같으면 2, 3위할 곡이 1위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20] 그 사이에 5주를 넘어서 10주를 넘게 1위를 하는 MBC나 SBS의 예가 있다. 반대로 MBC나 SBS에서 순위가 높은 곡들이 KBS에선 순위가 낮은 경우도 있었다.

골든컵 뿐만 아니라 집계방식의 차이인지 신곡의 상위권 진입도 타 방송국보다 늦었기에, 가요톱텐 차트는 "늦게 올라와서 빨리 사라진다"는 평이 있었을 정도로 체감 차이가 심했다. 다만 경쟁 프로그램에 비해 압도적인 인지도와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자잘한 유행에 덜 휘둘리고, 확실한 히트작은 명예졸업해 주는 게 더 공신력있게 느껴진다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4.3. 히트곡의 기준 왜곡

공영방송 KBS에서 발표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히트곡의 기준을 세우면서도 왜곡이 있었다. 그 당시 가요팬들은 히트곡의 기준을 오로지 가요톱텐 10위 이내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김흥국의 59년 왕십리, 조영남의 화개장터, 1996년 상반기에 발매된 곡처럼 가늘고 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스터디 셀러 곡들이 1년 가까이 차트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주목을 덜 받았다. 이들 노래는 빌보드 연말차트처럼 집계를 하면 20~30위권이나 최소 40위 안에 들어갈 노래들이고 어지간한 1, 2주짜리 1위 곡을 뛰어넘거나 최소 비슷한 성과다.

4.4. 그 해 최고의 히트곡의 기준의 애매함

가요톱텐 기준으로는 최장기 1위곡이 없게 원천봉쇄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가요톱텐 사상 최고의 히트곡을 선정하기도 상당히 애매했다. 예를 들어 빌보드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와 Boyz II Men의 One Sweet Day나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 또는 브루노 마스, 휘트니 휴스턴 등의 초창기 1위곡들이나 페이스 힐(Faith hill)의 Breathe 같이 끈질기게 오래 생존한 곡 등의 흥미로운 주제로 최고의 히트곡을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요톱텐 초창기에는 골든컵이 없었으나 중간에 골든컵을 만들어버린 바람에 이러한 흥미로운 떡밥을 원천봉쇄하게 되었다.

4.5. MBC, SBS와의 순위 괴리

전술했듯이 MBC나 SBS는 골든컵 같은 명예 졸업이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명력이 긴 노래가 측정이 제대로 되어서 순위 공정성은 둘째치고라도 순위의 왜곡이 적었다.[21] 실제로 그 당시 MBC나 SBS의 순위는 어느 정도 비슷했는데 비해, 가요톱텐은 두 방송사와 히트곡의 시간차와 순위의 차이가 너무 도드라지게 존재했다.

5. 골든컵 제도

가요톱10의 특별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골든컵' 제도다. 원래 가요톱텐은 1위 횟수가 무제한이었다가 특정 한 곡의 인기 쏠림으로 생겨난 제도다. 최초의 '골든컵' 수상곡은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로 1982년 8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무려 10주[22]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해냈고, 이를 계기로 1983년 1월 26일 방송분부터 5주 연속으로 1위를 한 가수에게는 1위 트로피 외에 '골든컵'이라는 특별 트로피를 받고 순위제에서 명예 졸업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23]

주목할 점은 반드시 5주 연속이어야 하며 만일 중간에 1위를 한 주라도 빼앗기면 다시 카운트된다. 이 점은 통산 3주만 달성하면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인정하는 요즘음악 방송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제도 때문에 1위를 5번 넘게하고도 골든컵을 수상하지 못한 노래가 있으며, 골든컵 노래 가운데서 6번 이상 1위한 곡도 있다. 참고로 5주 제도 골든컵에서 6번 이상 1위를 한 골든컵 수상곡은 총 8곡이며, 최고 기록은 조용필의 '그대여'와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이다.(7번). 5주 제도 골든컵에서 골든컵을 차지하지 못한 최다 1위 수상곡은 정수라의 '환희'다(8번). 지금으로 따지면 이처럼 오히려 1위를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1995년에는 외국 음악의 순위를 10위부터 1위까지 발표하는 코너도 있었으며, 가요톱텐에서의 1위 수상곡들은 여기를 참조.

5.1. 골든컵을 총 3회 이상 수상한 가수

횟수 가수 노래명
7 조용필 못찾겠다 꾀꼬리, 나는 너 좋아, 친구여, 정의 마음,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허공
4 이선희 J에게, 알고 싶어요, 나 항상 그대를, 나의 거리
신승훈 미소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그 후로 오랫동안
3 김건모 첫인상, 핑계, 잘못된 만남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컴백홈

5.2. 한 정규앨범 내에서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연도 가수 앨범 집수 노래명
1983 조용필 5 나는 너 좋아, 친구여[24]
1985 7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1989 박남정 2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1990 김민우 1 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1992 신승훈 2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1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7 임창정 3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5.3. 한 해에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연도 가수 노래명
1984 조용필 친구여, 정의 마음
윤수일 밴드 아파트, 아름다워
1985 조용필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1989 박남정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1990 김민우 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1992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5 룰라 비밀은 없어, 날개 잃은 천사
1997 임창정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이 자료들은 윤수일 밴드를 제외하고 2011년 12월 KBS TV 50년 특집으로 당시 방송영상을 보여주는 식으로 방송된 적이 있었으며, 조용필 자료는 가요톱10 무대가 아닌 당시 단독 콘서트 영상으로 보여주었다.[25]

5.4. 연도별 골든컵 수상자

  • ☆는 한 해에 골든컵을 2번 수상한 경우를 뜻하며, +는 6회 이상 1위를 차지한 곡이다.
연도 수상자 수 가수 수상곡
1982 1 조용필 못 찾겠다 꾀꼬리
1983 5 혜은이 독백
김수희 멍에
허영란[26] 날개[27]
조용필 나는 너 좋아
방미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
1984 7 윤수일 밴드 아파트
조용필 친구여
정수라 아! 대한민국
김수철 못 다핀 꽃 한 송이
최혜영 그것은 인생
조용필(☆) 정의 마음
윤수일 밴드(☆) 아름다워
1985 8 이선희[28] J에게
이은하 사랑도 못해본 사랑은
나미 빙글빙글
전영록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조용필 어제 오늘 그리고
김범룡 바람바람바람
구창모 희나리
조용필(☆,+) 그대여
1986 6 최진희 사랑의 미로
조용필 허공
높은음자리 바다에 누워
이문세 난 아직 모르잖아요
구창모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정수라 난 너에게
1987 6 장덕 님 떠난 후
이선희 알고 싶어요
이재성 고독한 DJ
이치현과 벗님들 사랑의 슬픔
김범룡 카페와 여인
김학래(+) 하늘이여
1988 3 이정석 사랑하기에
최성수(+) 동행
이선희 나 항상 그대를
1989 6 이치현과 벗님들 집시여인
박남정(+) 널 그리며
이지연 바람아 멈추어다오
박남정(☆,+) 사랑의 불시착
이선희 나의 거리
김흥국 호랑나비
1990 6 김지애 얄미운 사람
변진섭 희망사항
햇빛촌 유리창엔 비
김민우(☆) 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민해경 보고 싶은 얼굴
1991 6 태진아 거울도 안 보는 여자
김지애 몰래한 사랑
이상우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신승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노사연 만남
이범학(+) 이별 아닌 이별
1992 7 김정수 당신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이상우 하룻밤의 꿈
김국환 타타타
신승훈(☆)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1993 5 장현철 걸어서 하늘까지
노이즈 너에게 원한 건
이무송 사는 게 뭔지
김수희 애모
김건모 첫인상
1994 7 015B 신인류의 사랑
김건모 핑계
김민교 마지막 승부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투투 일과 이분의 일
김원준 너 없는 동안
신승훈 그 후로 오랫동안
1995 6 룰라 비밀은 없어
김건모 잘못된 만남
룰라(☆) 날개 잃은 천사
노이즈 상상속의 너
박미경 이브의 경고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6 2 김정민 슬픈 언약식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7 4 운명
양파 애송이의 사랑
임창정(☆) 그 때 또 다시
결혼해 줘
1998 1 이현우 헤어진 다음날
합계 86[29]

특히 1984, 1985, 1992, 1994년은 골든컵을 수상한 가수가 7, 8명(팀)이 나온 인기명곡 풍작年. 1위의 영예를 한번만 누려도 대단한데 이 때는 어째 골든컵을 못 딴 1위 경험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는 안습한 일이 발생했다. 특히 1993년은 김수희의 '애모'와 김건모의 '첫인상'이 같이 맞붙는 바람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가 4주 연속 1위에 그쳤다.

반면 1996년 한국 가요계는 별들의 전쟁일 정도로 골든컵 수상곡이 단 2곡 밖에 없었으며, 1위 제조기인 신승훈도 5집 활동 때는 단 1주 밖에 정상을 밟지 못할 정도로 정말 경쟁이 치열했다. 마지막 골든컵 수상자는 이현우(헤어진 다음날)로 골든컵 수상한 시점이 바로 1998년 2월 11일 가요톱10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래 제목이 가요 톱텐 종영 시기를 잘 나타내주는 노래였다.

5.5. 최다 1위 수상자

순위가 같은 수상자는 가나다 순으로 정리했다.
공동 2위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1위의 위엄
순위 수상자 횟수
1 조용필 68
2 신승훈 26
이선희
4 정수라 21
5 김건모 19
서태지와 아이들

5.6. 골든컵에 대한 이야기들

  • 1993년 9월 8일 1990년대의 끝판왕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의 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을 꺾은 희대의 이변과 파란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수희의 '애모'였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 역대 최고의 이변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인상적인 사건이었고, 전국의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은 "말도 안 된다!"라면서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급기야 이 곡은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이 곡은 공교롭게도 트로트 곡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이다. 그 뒤 트로트 장르에서 1위를 수상한 곡은 2005년 2월 음악캠프에서 2회 1위를 차지한 장윤정의 어머나와 2007년 9월 21일에 뮤직뱅크에서 시청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한 강진땡벌이 있다.
  • 김수희와 마찬가지로 파란을 일으킨 사람이 또 있는데, 바로 클론. 이들은 기성 가수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높혔고 데뷔 전에 제작사에서는 앨범 발매 전부터 미리 클럽 등지에 데모 테입의 형태로 홍보를 하면서 데뷔 준비를 한 끝에 당대 최고의 가요프로 가요톱10에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김건모의 4집곡 '스피드'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과의 경쟁을 뚫고 대역사를 쓸 수 있었던 상황에서 그 기록을 저지시킨 뒤 dj.doc의 여름 이야기와 룰라의 3!4!와의 경쟁 끝에 골든컵의 주인이 되었다. 아울러 프로듀서 김창환과 결별한 후 첫번째 앨범이었던 김건모 4집을 김창환이 제작한 클론이 저지한 것도 의미있는 사건이었다.[30]
  • 가요톱텐에서의 순위들은 다른 방송사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서 골든컵을 탄 곡들이 다른 방송사에서도 1위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반대로 타 방송사에서 1위를 많이 했던 곡들이 1위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쿨의 운명은 지상파 3사 가요프로그램의 최고 타이틀을 모두 수상했으며, 임창정이 골든컵을 탄 곡들은 둘 다 mbc에서 3주 1위(best of best)를 했다. 반면에 1997년에 sbs와 mbc에서 모두 최고의 타이틀을 획득한 h.o.t의 곡들은(행복, 캔디, we are the future) 1위를 여러 번 하긴 했지만 골든컵까지는 가지 못했다.(캔디 2주, 행복 3주) 그 이유로는 순위 집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sbs와 mbc에서는 1위 선정을 ARS와 PC통신으로 집계해서 1위를 가리는 반면에 가요톱텐은 세대별을 대상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그렇기 때문에 sbs나 mbc에서는 10,20대 위주의 곡들이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요톱텐에서는 세대별로 인기를 얻는 곡들이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 요즘에는 매체들이 다양해져서 한 곡이 1개월 이상 차트 순위권에 있기가 힘든 시대인 반면에 이 프로그램은 1위 뿐만 아니라 다른 곡들도 꾸준히 인기를 얻어서 길면 최대 6개월 간 순위 차트에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1996년 상반기 때는 1995년 9~12월에 쏟아진 명곡들이 10위 안에 많이 있었으며 1995년 10월에 나온 음반이 1996년 6월까지 8개월간 10위권 이내에 있었다는 점이다.[31] 또한 골든컵을 탄 곡들도 아무리 인기가 좋다하더라도 최소한 3개월 동안 인기를 유지해야 골든컵을 탈 수가 있었다.[32]
  • 참고로 빌보드처럼 몇주 연속 1위 같은 그런 기록에 의한 스릴이 떨어지거나 실제 상황의 순위에 왜곡이 일어난다는 논란은 당시에도 있었다. 예를 들어 경쟁 프로그램인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와 SBS 인기가요에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각각 11, 14주 동안 장기 독주를 하고 있을 때 가요톱텐에선 골든컵을 받아서 2월 26일에 명예 졸업했고 같은 시기의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는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수상한 우연히가 2, 3위를 했다가 결국 5월 29일부터 6월 12일까지 3주 동안 1위는 했지만...
  • 또한 골든컵을 수상한 곡과 3, 4주 연속 1위를 찍은 곡의 취급이 달라지는 결과가 나오는데 골든컵을 받은 곡은 빠르면 2개월만에 프로그램에서 본의 아니게 명예 졸업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일부 히트곡은 차트에서 수개월 동안 버티다가 역주행도 소소히 해서 다시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고 골든컵 수상곡과 비연속 5주 1위 곡의 취급이 서로 다른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 반면, 골든컵 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6~8주 1위를 한 곡이 있는데 이유는 중간에 다른 곡이 1위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가요톱텐에서는 골든컵 타기도 힘들거니와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정말 치열한 접전이라서 어떨 때는 1표 차이로 1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예로 이현우의 <꿈>은 골든컵 도전 직전에 유승범 <질투>에게 한 표로 차이로 밀리면서 골든컵 기회를 놓쳤으며(1515:1514)[33], 임창정의 <결혼해줘>는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한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1892:1891)
  • 가요톱텐에서 공동 1위 수상이 나온 경우는 1991년 12월 25일에 골든컵 수상곡인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김정수의 <당신>곡이 유일하다.[34]

6. 트리비아

  • 사실 제목 자체는 영국 BBC의 톱 오브 더 팝스와 일본 TBS의 "더 베스트 10"를 적절히 짬뽕한 것 같다. 그래도 위에 적혀 있듯 공신력은 최강 수준이었고, 그래서 타 방송국(이라고 해봐야 MBC와 SBS)의 가요 순위 프로들은 개편철마다 이름이나 진행자를 바꿔대기 일쑤였다. 그나마 MBC의 '여러분의 인기가요'가 약간 롱런한 편이었다. 사실 MBC는 순위프로보다는 토토즐 같은 쇼프로에서 더 강세를 보였으며 이 경우에는 KBS 젊음의 행진이 영원한 콩라인이었다.
  • 가요톱10의 1위 팡파레는 1981년 첫방송부터 17년동안 계속 사용되어 왔으며, 이후 뮤직뱅크 초창기 방송에서도 사용되었다.[35] 다만 1989년부터 1991년까지 골든컵 수상에 한해서 다른 버전의 팡파레가 사용된 적이 있다.
  • 가끔씩 외국 가수들의 특별 무대도 마련된다.
  • 1998년 가요톱10 이후에 가요순위 신뢰도 및 권위도는 KBS 중심에서 MBCSBS 등의 다른 공중파 방송들과, 엠넷KMTV 등의 1990년대 중반에 개국한 음악 케이블 방송국들에게도 많이 나누어지는 다변화를 겪었으며, 순위집계의 공정성은 점차 떨어지고 더욱 상업적으로 변해 갔다. 그만큼 가요톱10의 순위 집계는 대중들 사이에서 권위와 신뢰도가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 가요톱10 이후 가요 순위 집계에 있어 공정성과 권위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던 KBS는 결국 후속 프로였던 뮤직뱅크에서 가요톱10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2000년 하반기에 3주 골든컵 제도를 부활했다가 순위 집계를 2001년 하반기부터 중지하는 등의 수순을 밟은 뒤 2007년에 K-차트로 순위집계 제도를 부활시키고 다시금 순위집계의 공정성과 권위를 살리고자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젠 케이블 방송을 넘어 음원사이트들까지 발달하여 가요순위의 집계 및 흐름의 판도가 더욱 다변화 되는 시대인지라, K-차트가 다른 가요순위보다 공정성이 앞선다 해도 과거 가요톱10 시절의 권위와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신해철은 자기 홈페이지 디자인할 때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 도안을 거유톱10(…)이라고 손질한 그림을 걸어놓은 적이 있다. 알고 싶다면 80 Plus(캐릭터) 항목 참조. 이 음악프로그램과 동명 이름인 인디밴드도 있으며 이쪽은 가요톱10이 아니라 가요톱텐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 1996년 10월 2째주에 순위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22위에 오른 설운도의 히트곡 쌈바의 여인을 '쌈바의 후예'라고 자막 오타를 낸 적도 있었다... 그 이전 순위인 H.O.T.의 전사의 후예 다음에 나와 조금 혼동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2015년 6월부터 새로 론칭된 케이블 채널 GMTV에서 재방송되었다. 하루 한번 오전 12시 50분부터 오전 1시 50분까지 1시간 동안 방송되었으며, 평일-주말 상관없이 매일매일 본방이었다. 즉 일주일에 7주치를 볼 수 있었던 셈. 1996년 1월 1주부터 방송되며 특정 출연자들 (룰라스티브 유)이 나옴 등으로 인해서 중간중간 주차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PC통신 참여 방법, 방청권 배부, 당첨자 명단 발표 등의 장면은 편집된 채 방송되었다. 심지어는 GMTV 로고를 가린다고 1997년 방송분부터 우측 상단에 나오는 립싱크 표시까지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었다가 1997년 2월분부터는 립싱크 표시가 하단으로 옮겨져서 이에 대한 모자이크는 하지 않았다. 현재는 방송이 종료되었다.
  • 국내 TV프로그램 가운데서 가장 먼저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된 프로그램이다, 얼마전까진 KBS에서 회당 3만 3000원씩을 주고 사야했지만 지금은 판매가 중지되었다. 물론 당대 모뎀 속도의 문제로 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영상은 볼수 없는 반쪽짜리 서비스였다.[36]
  • 가요 톱텐의 종영 이후에는 KMTV의 쇼! 뮤직탱크가 가요톱텐의 골든컵과 비슷하게 5주 연속(통산도 포함) 1위 시에는 '최강자'라는 칭호를 준 적이 있다.
  • 90년대 초반까지는 방청객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10대 방청객부터 애기 엄마, 중년의 방청객까지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는 10대 방청객의 함성소리가 들렸으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까지 대체로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게다가 연말 결선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투표인단을 초청해서 인터뷰했을 때 1990년 연말 결선에 출연한 중년 관객의 인터뷰 내용은 '우리 세대도 좋아하는 가요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현재 가요 프로그램은 3주제로 제한한다든가[37] 무제한으로 1위를 할 수 있는 시스템[38]으로 진행되고 있다.
  • 2016년 3월부터 2016년 8월까지 과거 KBS에서 방송되었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39]을 서비스하는 동영상 사이트 'tvGEN'에서 일부 회차를 무료로 볼 수 있었다. 단,로그인 해야 볼수 있었고 광고 15초를 무조건 시청해야 했다. 가요톱10뿐만 아니라 뮤직뱅크 199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방송분, 1988년에 방송한 젊음의 행진도 서비스하고 있었으나, 2016년 9월 9일에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 가요톱10의 곡목 자막은 1995년 5월 이후로 몇개월 단위로 디자인이 바뀌었다. 1994년 이전에는 디자인이 수시로 바뀌지 않았지만 1995년 5월부터 KBS의 자막 폰트가 엑스포체 등 새로운 자막폰트를 도입하면서[40][41] 계절에 따라 디자인이 바뀌었다. 이는 뮤직뱅크에서도 이어져 2001년 말~2007년까지 방송분에 한해 디자인이 몇개월 단위로 바뀐 적이 있다.
  • 뮤직뱅크 2016년 12월 23일 방송분에서 19년만에 처음으로 후신 프로그램인 뮤직뱅크와 콜라보를 하면서 19년만에 다시 당시 로고를 통해 등장하게 되었으며 제목은 가요톱10X뮤직뱅크. 여기서 시청자들 대부분의 반응은 시큰둥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2000년대에 태어난 중고생 청소년들은 가요톱10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하긴 1998년에 종영된 뒤 19년만에 후신 프로인 뮤직뱅크를 통해서 다시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90년대 중후반생들이나 2000년대에 태어났던 중고생들 입장에서 행여나 안다고 해도 대부분은 가요톱10이 낯선 존재일만도 했다. 사실 이 방송분은 가요톱텐보단 뮤직뱅크의 초창기를 재현한 것에 가까우며 이 날 방송에서는 가요톱텐에서 나온 90년대 인기곡을 후배 아이돌 가수가 불렀고 뮤직뱅크 초창기 오프닝과 립싱크 표시를 그대로 재현했다. 손범수를 일일MC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2017년 6월 30일에도 상반기 결산 때에도 콜라보를 했다.
  • 가요톱10의 후속 가요프로그램인 뮤직뱅크2016년 9월 9일 방송을 시점으로 가요톱10의 방송횟수를 넘어서게 됐다.
  • 80년대부터 1992년 말 이전에는 KBS 별관 공개홀에서 진행했고 1992년부터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했다. 신관 공개홀뿐만 아니라 공개홀 로비와 공개홀과 KBS홀 사이 앞 마당, 연못에 무대를 마련해 공연하기도 하였다. 종영 후 후속작인 뮤직뱅크에서도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하고 있다.
  • 2017년 5월 11일부터 KBS의 모든 채널들과 드라마, 뮤직, 라이프, 팟캐스트 채널 등을 라이브로 볼 수 있는 MY K와 MY K앱에서 '다시보는 가요톱텐'이라는 채널이 개설되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방송되었던 회차들을 순서대로가 아닌 무작위로 방송하는 서비스를 했었다. 라이브보기를 제외한 다시보기, 예약설정은 로그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채널이 사리지게 되어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 1994년부터 가요톱10 1위 발표 때 사용했던 트레몰로 효과음은 2018년 현재까지 KBS 시상식에서 (특히 대상 시상시) 효과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 현재 KBS 라디오의 추억의 가요를 소개하는 코너 중 순위를 소개할 때 100% 가요톱10 순위를 소개한다. MBC 라디오는 TV 순위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방영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정오의 희망곡의 일요일 코너 '정오의 희망곡 TOP 20'의 전신인 '금주의 인기가요 20'[42]을 참조하여 순위를 소개하는 듯하다.
  • 2018년 9월 10일 네이버TV카카오TV에 과거 80년대 90년대 KBS에서 방송된 가수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Again 가요톱10' 채널을 만들었다. 가요톱10 뿐만 아니라 젊음의 행진 등 쇼프로 무대를 볼 수 있다. 네이버TV MBC는 2012년 MBC가 인기가요 베스트 50 같은 90년대 무대와 2015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 80년대 무대 영상을 올렸는데 KBS가 뒤이어 영상을 개방했다. 이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아카이브를 단계적으로 개방한다는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이다.[43] 하지만 가요톱10의 80년대, 90년대 초반 녹화분이 MBC와 다르게 상태가 부실하고 녹화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상반기결산과 연말결산 특집분, 가요톱10 울산특집분만 고화질로 보관되어 있고 일부 80년대 방송분은 VHS로 실시간 녹화한 탓인지 저화질이고 소리도 오른쪽만 들리는 등 불량인 게 있다. 2018년 9월 30일에는 유튜브 채널도 오픈했다.[44] 2018년 연말에는 1981년부터 2001년까지 'KBS 가요대상' 무대를 업로드 했고 2019년 4월부터 90년대 초반에 방송된 쇼 프로인 '토요대행진'[45]을 91년 방송분부터 업로드 하고 있다.
  • POOQ에서도 일부 회차를 시청할 수 있다.


[1] 가장 최근 방송 시간 기준이다.[2] 참고로 NBC 로고의 공작 날개 모양은 6개, 가요 톱텐 로고는 그보다 1개 적다.[3] 그 외에도 일부 드라마를 종영하기도 했으며 그 중 수목드라마를 종영한 것인데, 이 때 방영되었던 '그대 나를 부를 때'가 조기 종영되었다.[4] 단, 서세원쇼, 코미디 세상만사,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은 제외.[5] 종영 전 1998년 1,2월에는 시대가 그런지 관중소리도 작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6] 당시 MBC도 3년간 방송됐던 인기가요 베스트 50을 종영하고 젊은 그대를 신설했다가 얼마 못 가고 그 뒤 음악캠프를 신설했지만 2005년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사건으로 어처구니없이 막을 내리고 쇼! 음악중심으로 다시 시작,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 중이다. SBS도 TV가요20을 종영하고 SBS 인기가요를 신설했다.[7] 예외적으로 1995년 12월 둘째주는 30~18위, 17~6위까지 소개하고 세대별 선호도 순위를 발표한 다음에 5위부터 2위를 소개하고 1위는 직접 무대 공연으로 공개했으며, 93년 11월 둘째주는 순위소개를 평소와 같이 진행한 뒤 연령별 1위 가수의 무대를 만나 보았다.[8] 초창기에는 시상식 형태, 결과만 알려주는 형식으로 1위를 알려주었으며 1993년 9월 2째주는 10~6위를 소개했고 1995년 4월 2째주의 경우에는 10위 권 순위만을 소개했다. 그 외에도 50~31위 곡을 자막으로 보여줬을 때도 있다.[9] 하지훈은 2000년대 이후로는 거의 잊혀진 이름이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주택복권 추첨쇼의 MC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전문 MC다.[10] 중간에 김현주(이 김현주가 아니다. 1990년 전후로 나름대로 명성이 있었던 방송인. 배철수와 연애 경력이 있다.)가 1992년 1월 8일부터 1992년 5월 27일까지 故 김광한과 같이 진행했다.[11] 이 시기에 손범수 아나운서가 결혼식을 올려 한 주는 김병찬 아나운서가 대리 진행했으며, 1997년 1월에는 방송사 파업으로 인해 유열이 두 주간 대리진행을 했다.[12] 후속 프로그램인 브라보 신세대도 채림과 함께 진행했다.[13] 그가 MC를 맡은 프로그램으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열전 달리는 일요일 등이 있었다.[14] KBS 라디오, TV 음악 PD로 구성.[15] 93년 11월 둘째주부터 진행,이 주는 전화 ARS 집계 특집으로 진행했다.[16]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위부터 소개했으며, 21~50위까지는 자막으로 표시했다.[17] 강원, 제주 지역은 예외.[18] 여기서는 70위까지 소개했으며, 31위 이하는 자막으로 처리했다.[19] 아래 1위 곡을 참고하면 된다.[20] 양수경의 사랑은 차가운 유혹이 대표적인 예. 가요톱10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 골든컵 명예 졸업을 하면서 2주 1위를 차지한 반면 SBS 인기가요에서는 14주 동안 정상을 차지한 보이지 않는 사랑 때문에 콩라인에 머물렀다.[21] 그 뒤 이 두 방송국도 1996년부터 연속 1위 제한을 두었다.[22] 특집 편성 때문에 중간에 2주간 결방되었으므로 사실상 12주나 다름없다.[23] 초창기에는 골든컵 뿐만 아니라 소정의 상품이 증정되었다.[24] 1984년에 수상했다.[25] 당시 연말 디너쇼 관계로 출연하지 못해 인터뷰+공연 영상으로 대신했다. 1985년 가요톱10 연말결산 영상[26] 우리가 생각하는 그 유명한 시트콤에 출연한 동명이인의 배우가 아니다. 이쪽은 1970년대에 그룹 히식스와 딕패밀리의 멤버였으며 해체 후 솔로로 전향하여 활동하다 돌연 은퇴했고 현재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중이다.[27] 허영란이 솔로로 전향한 후 발매된 곡은 가사 내용이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경제 개발이 한창 중이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해에 돌연 은퇴하면서 이 곡이 허영란의 처음이자 마지막 히트곡이 되었다.[28] 해당 영상에는 이선희가 나오지 않는데, 당시 이선희는 'J에게'로 1984년 11월 넷째주부터 1985년 1월 첫째주에 걸쳐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 수상은 1985년에 한 것이 맞다.#[29] 만약에 첫방송부터 5주 연속 골든컵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6곡이 추가로 골든컵을 수상하게 된다.[30] 만약 스피드가 골든컵을 수상했다면 조용필 이후 정규앨범 4장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는 대기록이 수립되었을 것이다.[31] 참고로 1996년 1월 3일 ~ 5월 15일 방송분 내내 1위를 차지했던 곡 모두가 1995년 발매곡이며, 설운도의 삼바의 여인은 발매된지 10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 10월 말까지 가요차트 순위권에 있었다.[32] 대표적인 예로 이들의 전성기를 열었던 쿨의 운명과 임창정의 그 때 또 다시는 발매된지 3~5개월만에 골든컵을 탈 수 있었다.[33] 그 대신 6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아까 말했다시피 중간에 다른곡(질투) 에게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먼저 2주 1위를 했다가 <질투>에게 3주 동안 1위를 뺏긴 뒤 다시 탈환해 4주연속 1위를 하다가 다시 <질투>에게 1위를 뺏겼다. 그 이후 <꿈>은 <환상 속의 그대>에게 밀리면서 1위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헤어진 다음날로 아쉽게 못탔던 골든컵을 탔으나 그 날 가요톱텐이 종영되서 방송 현장 분위기가...[34] 한국 가요프로그램에서의 또 다른 공동 1위 수상곡은 1995년 8월 20일 TV가요20에서 나온 r.ef의 <고요속의 외침>과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2007년 11월 1일 엠카운트다운에서 나온 슈퍼주니어 'Don't Don', V.O.S '매일매일'이 있다.[35] 우승팀 발표는 다른 팡파레를 사용했으며 (이 팡파레는 1995년 KBS 가요대상 대상 팡파레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MVP 발표 때 이 팡파레를 톤을 높여서 사용한 적이 있다.[36] PC통신 최후반기 들면서 TV프로그램의 다시보기 서비스가 시작되어서 동영상으로도 볼수있게 되었지만 PC통신으로 볼 경우에는 영상화질이 저질이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다.[37] SBS 인기가요, Mnet 엠카운트다운 등.[38]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등.[39] 어플 설명에서는 KBS, MBC, SBS라고 되어있지만 거의 100% KBS 프로그램이었다.[40] 1994년 말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하다 1995년 봄개편부터 확대 적용되었고 이는 2000년 중반까지 주로 사용되었다.[41] KBS뿐만 아니라 MBC, SBS도 1994년을 기점으로 하여 엑스포체 비슷한 폰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42] 이때는 정오의 희망곡 코너가 아닌 독립 프로그램이었다.[43] MBC보다 늦은 감이 있지만 1987년부터 현재까지 KBS 뉴스 9 방송분을 개방한 것도 이 약속의 일환이다.[44]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은 KBS에서 Contents ID로 등록이 되어서 개인 유튜버가 직접 녹화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Contents ID에 의해 차단되고 있다.[45]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와 달리 인터넷에 영상이 많지 않았다. 물론 영상이 많지 않은건 SBS의 쇼 서울서울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