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02:06:14

전영록

전영록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BS_로고.png 가요대상 대상
조용필, 정수라
어제, 오늘, 그리고
도시의 거리
(1985)
전영록, 정수라
내 사랑 울보
난 너에게
(1986)
전영록
하얀 밤에
(1987)
전영록, 정수라
내 사랑 울보
난 너에게
(1986)
전영록
하얀 밤에
(1987)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파일:mbc.png 가요대상 대상
조용필
허공
(1986)
전영록
하얀 밤에
(1987)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 ||
파일:external/sports.donga.com/5066580.1.jpg
이름 전영록(全永祿)
출생 1954년 3월 26일 ([age(1954-03-26)]세), 서울특별시
신체 165cm, 55kg, O형
가족 전 부인 이미영, 슬하 2남 2녀
학력 한양중학교
영락고등학교
종교 불교
1. 개요2. 소개3. 그 외

1. 개요

아이돌의 원조이자 80년대 만능 엔터테이너

2. 소개

가족이 참 대단하다. 부친은 배우 황해, 모친은 '봄날은 간다'로 유명한 원로가수 백설희[1], 그리고 그의 전처 배우 이미영, 전 손위처남은 개그맨 이창훈. 그의 장녀 전보람티아라의 멤버,[2] 그의 차녀 전우람은 디유닛 출신 FIVE RUN STRIKE의 보컬. 이미영과 이혼뒤 재혼을 하고 전유빈, 전효빈이라는 늦둥이 아들 둘이 있는데 나이가 아직 누나들에 비해서는 너무 어려서 그런지 잘 안드러난다.

1971년 기독교방송 영 페스티벌로 첫방송을 탔으며 기독교 방송 데뷔지만 본인은 불교 본격적인 활동은 1973년 MBC 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저 드라마에서 삽입곡 '편지'를 부른 것을 계기로 1975년 가수로 본격 데뷔한다. 이후 임예진, 김보연 등과 짝을 이뤄 청춘 영화의 주인공으로 단골 출연한다.[3]

1980년대엔 남자 가수 중 조용필의 뒤를 이어 이용, 송골매, 김수철, 김범룡 등과 함께 2인자 그룹으로 인기를 누렸다. 다른 2인자 그룹들이 상대적으로 전성기가 짧은데 비해 전영록은 80년대 내내 꾸준히 인기를 모으며 롱런했다. 이 시기 전영록은 '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을 히트시키면서 청소년들, 특히 여중고생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했으니 여러 모로 한국 가요계에 아이돌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80년대 중반 중에서도 앞 쪽의 히트곡이며, 86~88년에는 '그대 우나봐', '내 사랑 울보', '하얀 밤에', '저녁놀'로 가수로서는 최절정기를 맞았고 특히 86년과 87년 2년 연속으로 'KBS 가요 대상' 대상을 차지했다. (86년까지는 남녀가 나뉘어져 있어서 남자 대상, 87년은 통합 대상.)

특히, 아이돌 출신으로 연기, 노래, 작곡, 라디오 DJ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활약한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중년 이상이 아니면 그의 80년대 위상이 잘 와닿지 못할 수 있는데, 2000년대를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댄스 솔로 아이돌이자 연기자로도 인기를 얻었던 와 상당히 유사한 행보를 구축했기에,[4]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80년대 인기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MBC 황금어장 - 라디오 스타의 2008년 '박상민, 민경훈' 출연 에피소드에서는 1980년대와 2000년대 가요계를 비교하면서 두 사람을 직접 비교하는 시간도 가졌을 정도. 원래 80년대 초반까지 포크 음악을 주류로 선보했던 시절에는 젊은층의 팬층이 크지 않았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불티' 등 락풍의 음악을 선보일 때부터 젊은층의 팬층이 증가하였다.

특종 TV연예에 등장한 신인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평가했던 4명 중 한 명. 나머지 세 명은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양인자, 연예평론가 이상벽으로 전영록은 해당 방송에서 '평가는 팬들 몫'이라고 했는데[5] 그날 이후 한국 가요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통에,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비유하며 두루뭉술 호의적으로 평가한 데다가 팬심으로 먹고 살지 않는 이상벽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은 방송상 보여준 깐깐한 평가에 대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한다.

군대에서 보직은 통신병이었다고 한다. 연예계 대마초 파동이 일기 시작하자, 황해가 군대로, 그것도 빽써서 전방으로 보내버렸다고..

한편 당랑권 유단자[6][7]로서의 능력을 살려 액션연화 돌아이 시리즈[8]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전영록 본인의 너스레에 의하면 자기처럼 키 작은 스턴트 배우가 없어서 본인이 모든 액션 장면을 연기했다고 한다. 다만 이두용 감독이 이 영화는 막싸움이야.라고 해서 실제 액션장면에서 당랑권은 흔적도 없으니까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고 했으며 그 뒤 한국판 람보를 만들겠다면서 나온 전쟁 액션물 독불장군은 흑역사가 되었다.

한편 전영록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일면도 있었으며 자신의 노래만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9], 이지연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 등이 작곡한 히트곡 중 일부. 인기 탤런트이면서 당시 라디오 DJ였던 김희애가 불렀던 나를 잊지 말아요도 전영록이 만든 곡이다[10].

1990년대 들어선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예전의 인기는 누리지 못하지만 간간이 콘서트와 뮤지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에 역행하는 초동안[11]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에도 소개 멘트가 '만년 소년'이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와 함께 형제 무술인으로 출연했을 때 이경규가 전영록을 '형님'[12]이라고 불렀는데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3. 그 외

  • 대단한 영화 마니아로 한때 3만개가 넘는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런 취미를 살려 1990년대 중반 비디오 대여업 프랜차이즈를 시작했으나,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보급된 인터넷 때문에 비디오 대여업이 망하던 시기였던터라 그의 사업도 실패했다.
  • 작은 체격과는 다르게 싸움실력이 매우 좋다. 당랑권의 달인으로 자신의 싸움실력을 영화 돌아이 시리즈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다.
  • 음악인 활동을 너무나 갑작스레 그만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돌연 "자신의 음악성에 환멸을 느낀다"며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
  • 사업 실패로 한동안 칩거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내였던 이미영과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한 뒤 2000년대 들어 라디오 진행자로 다시 나오고 있다.
  • 최근 방송에서 대장암과 직장암으로 투병했을 때 친구 이홍렬 덕분에 극복했다고 털어놓았다.
  • 사업 실패 및 직장암에 비견되는 트라우마가 하나 더 생겼는데 그게 다름아닌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녀 전보람이 티아라에서 계약 만료로 탈퇴하였고 걸그룹 가수로서도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 김수정 작가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서도 그의 노래가 나왔으며 마이콜이 처음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는 히트곡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둘리고길동텔레비전을 보면서 말다툼을 하는 에피소드에서는 히트곡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가 흘러나왔고 둘리가 좋아하면서 따라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 다음에 조용필친구여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을 때 둘리는 감격하고 울면서 따라불렀는데 이 때 둘리가 좋아가지고 "전영록 언니(...)!"라고 불렀다. 사실 언니는 동성의 손위형제를 부르는 말이라서 수컷인 둘리가 전영록에게 말했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1] 초창기에는 연기를 하겠다고 하면 백설희가 '노래를 해야지'라고 하고, 노래를 하겠다고 하면 황해가 '노래는 무슨 노래냐'라고 했다고. 그래도 방송 데뷔에는 가족들 유명세가 좀 끼어 있기는 했다.[2] 현재 이들은 뮤지컬에 나란히 출연하고 있다.[3] 김보연과는 1979년에 개봉된 ‘꽃밭에 나비’에서 호흡을 맞췄다. 전영록은 주인공 역할인 ‘최병걸’을 연기하였다. 손창호, 김영철, 여주인공인 박영귀(극중 이름은 정미.)도 출연하였다.[4] 순전히 '가수'로서의 위상만 놓고 본다면 비와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될 정도로 전영록은 폭넓은 세대에게 사랑받은 히트곡이 많았다.[5] 시나위로 록 밴드 활동을 했던 서태지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해주었지만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온데 대한 평은 팬들에게 맡기겠다는 뉘앙스[6] MC 임성훈이 사형이라고 한다. 전영록의 말로는 임성훈은 창술, 자신은 봉술과 권법을 배웠다고...[7] 국내 당랑권의 초기 계보는 화교로 태극매화당랑권의 임풍장, 매화당랑권의 강경방으로 시작되고, 임풍장의 제자가 홍문탁이다. 임성훈과 전영록은 이 홍문탁에게서 당랑권을 배웠다고 하니 정통무술을 제대로 배운 것이다. 2010년대 기준에서도 한국내 당랑권 최고수하면 홍문탁과 화교로 한국에 들어온 이덕강이 손꼽힌다.[8] 전영록은 이 영화 시놉시스를 군대에서 썼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군대에서 자기 별명이 돌아이였다고.[9] 그런데 이게 김일병송에서 음색을 따왔다고 본인이 밝혔다.[10] 참고로 전영록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다른 가수들(특히 여가수)에게 주는 경우 노래 중간에 화음을 넣어주는 역할을 종종 했다.[11] 코미디언 이홍렬과 동갑이자 중학교 동창으로 친한 사이다. 근데 전영록이 워낙 동안이라서 친구인 이홍렬에게 "야~ 야~" 거리는거 보고 주위에서 기겁하며 "윗 사람을 왜 그렇게 함부로 부르냐?" 놀라면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티비에 나와서 말한 적 있다.[12] 실제로 전영록이 6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