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5:10:29

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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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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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_로고.png 가요대상 대상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1992)
김수희
애모
(1993)
김건모
핑계
(1994)

파일:mbc.png 가요대상 대상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
김수희
애모
(1993)
김건모
핑계
(199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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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수희(金秀姬)
본명 김희수(金姬秀)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3년 3월 13일
출생지 경상남도 부산시
(현 부산광역시 서구)
데뷔 1976년 노래 '너무합니다'
종교 불교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1. 초기 활동2. 대마초 혐의 무고 사건3. 트로트계의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 그리고 전성기4. 그 외 활동5. 기타6. 관련 문서

1. 초기 활동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애모

트로트계의 마지막 전성기를 장식한 가수.
국민 노래방 애창곡 '남행열차(84)'의 주인공.

그녀는 18세에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작사가작곡가로 동시에 데뷔하였다. 데뷔 무렵에는 블랙캣츠의 멤버로 활동을 했으며, 김훈의 <나를 두고 아리랑> 등 여러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 뒤 1976년에 가수로 데뷔했을 때는 극심한 생활고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그 뒤 2년 뒤 <너무합니다>와 1982년 <멍에>라는 곡을 히트시키면서 가요톱텐에서 골든컵까지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큰 위기가 닥쳐왔으니.....

2. 대마초 혐의 무고 사건

1983년 10월 4일에 정부의 대마초 파동사건에 연루되면서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4일 뒤에 방송 정지를 당하고 2일 뒤에 제명처분당했으나, 치열한 공방 끝에 10월 28일에 무죄로 판정이 나면서 다시 가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중에 2013년 기분 좋은 날에 출연했을 때, 그녀는 그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그 당시 상황을 회상했는데, 딸 이지후도 그 때 상황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뒤 그녀는 그 사건 이후에도 <남행열차> 같은 명곡을 내면서 대중들의 인지도를 높였고, 급기야 1993년 가요계에 큰 일을 내게 된다.

3. 트로트계의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 그리고 전성기


1993년 9월 8일, 가요톱텐에서 1990년대끝판왕,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 '하여가'의 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을 꺾은 곡이 있었으니 바로 김수희의 '애모'였다. 그야말로 희대의 이변과 파란을 일으킨 대사건. 이때 김수희는 수상이 확정되자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급기야 이 곡은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는데, 이 곡은 공교롭게도 트로트 곡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 역대 최고의 이변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인상적인 사건이었고, 전국의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은 "말도 안 된다!"라면서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특히 더 대단한 것은 이 곡은 3년 전인 1990년에 발매되었다는 것이다.[1] 이 때는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했던 수록곡이 2년 뒤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큰 히트를 치게 된 것. 21세기에는 가끔씩 철 지난 노래들이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2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골든컵까지 차지한 일은 가요계에서의 큰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가요계가 유행곡 위주로 재편되면서 '역주행'은 한동안 사전에서 사라졌다. 물론 그 뒤에도 부활의 <사랑할수록>처럼 발매된지 1년 이상 지난 곡들이 1위를 하고 김현정도 역주행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 몇 개월 동안 차트에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미미했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는 복고의 영향으로 다시 역주행이 유행했다.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애모>로 각종 가요계 상을 휩쓸었다.

<애모>로서의 전성기 이후, 그녀는 <너무합니다>, <표절곡정거장>, <멍에> 등의 여러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작곡가, 작사가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4. 그 외 활동

그녀는 가수 활동 뿐만 아니라 작가 활동도 하면서 1983년 가요계 현장 소설 <너무합니다>를 저술했으며, 1984년에는 소설 <설(雪)>을 집필해서 베스트 셀러 2위에 올랐다. 또한 영화 <너무합니다>에서 희련 역과 주제가 OST를 맡았고, 1994년에는 애수의 하모니카를 직접 제작했으며 별다른 흥행은 하지 못했다.

1992년경에는 희레코드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서 남자가수 한 명, 여자가수 한 명 그리고 여성 댄스 그룹 한 팀을 키워 냈는데 이들이 바로 태영이, 편승엽, 그리고 1995년부터 1997년 중반까지 활동하면서 아미가르 레스토랑, 떠날꺼야 등의 명곡으로 사랑을 받았던 쎄쎄쎄(Se Se Se)라고 한다. 1995년 5월에 정규 1집 Se Se Se(타이틀곡:아미가르 레스토랑)를 냈고 다음년도인 1996년 12월에 정규 2집 쎄쎄쎄 Vol.2(타이틀곡:떠날꺼야)를 발표하여 짧은 활동 기간에 큰 인기를 얻었으며 S.E.S., 베이비복스, 핑클 등장 이전까지 레트로 댄스 장르로 주목받은 1세대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영이는 희레코드의 첫 가수였는데, 편승엽과 달리 댄스 가수였다. '차가운 외면'이라는 노래만 남기고 가수 활동을 중단했으며[2], 편승엽은 무명생활 끝에 공전의 히트곡 '찬찬찬'을 이 소속사에서 발매했다. 이후 2집 '초대받고 싶은 남자'도 히트시켰다.

5. 기타

  • 2016년 5월 29일에 방송된 판타스틱 듀오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친구인 故 서병후의 아들이 타이거 JK라고 한다.김수희 씨의 자녀 입장에선 레알 엄친아 타이거 JK는 김수희를 이모라 부르며 성인이 된 후에도 김수희에게 종종 용돈을 받았다고 한다.
  • KIA 타이거즈의 팬인지라 승리 기원 시구를 한 적도 있다. 호남 출신이 아니라 부산 출신인데도 해태 시절부터 골수 팬이라고 한다. 대표곡인 남행열차KIA 타이거즈의 주요 응원가다.
  • 1대 100 446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그녀의 딸인 이순정은 100인으로 참여했다. 그 날 그녀는 1993년 KBS 가요대상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꺾고 대상을 수상할 때 처음에는 상을 못 탈 줄 알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상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황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526만원을 받아가는 우승자가 결정된 8단계 1:5까지 생존했다. 여담으로 그녀는 6단계에서 2인의 답 찬스를 쓸 때 본인이 선택한 답을 누르려다가 실수로 다른 답을 눌렀는데 그 답이 정답이라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정작 방송에서는 소위 말하는 꼰대질을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관련 영상
  • '정거장'은 일본 가수 사와다 켄지의 불후의 명곡「勝手にしやがれ」를 표절했다. 「勝手にしやがれ」는 1974년 발표.일본곡
  • 신신애같은 후배 가수 앨범 제작투자를 하고 수익금을 거의 차지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일로 신신애는 김수희와 다시는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결별했다.

6. 관련 문서




[1] 타이틀곡 '서울 여자'는 가요프로그램 차트에서 중상위권을 오랫동안 유지했었다.[2] 1992년 토토즐 무대에 두 번이나 출연했으며, 그 영상이 유튜브에 남아 있다. 90년대 초반의 전형적 댄스 뮤직으로 노래는 들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