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2:26:48

마지막 승부

1990년대 이후
한국 TV 드라마 시청률 TO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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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등장인물
3.1. 주연3.2. 명성대학교 농구부3.3. 한영대학교 농구부3.4. 신라대학교 농구부3.5. 동민의 가족3.6. 철준의 가족3.7. 기타3.8. 꿈의 캐스팅3.9. 배우들의 위상 변화
4. 결말5. 드라마의 영향력
5.1. 마지막 승부 세대
6. 미디어믹스7. 기타8. 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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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4년 1월 3일부터 1994년 2월 22일까지 방영된 MBC의 월화 드라마로, 슬램덩크와 함께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농구 붐을 일으킨 작품. 방영 당시 음향 송출방식은 스테레오였다.

대장금 등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드라마 한류의 시초가 된 작품 중 하나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 홍콩 방송에 수출되어 방영되었다. 홍콩 내 방영을 한 위성방송 스타TV[1]는 첫 방영 전 신은경 등 주연배우들의 인터뷰 등으로 꾸민 특집방송을 먼저 내보냈다. 본방송 때에는 광고로 나온 것이 당시 홍콩에 진출했던 원비디이다.

이후 한국 드라마동남아권과 중국에도 수출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선봉장을 하게 된다.

해피타임! 170회 해피타임 명작극장에서 이 드라마를 소개했다. 20여분 짜리 요약이라 중요 내용들만 소개하고 있는데, 이 영상에는 왜 동민이 신라대에서 명성대로 돌아섰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 영상만 본 사람들은 "이동민은 친구 뒤통수 치고 명문대로 떠난 나쁜놈이네" 라고 생각할 듯 하다.


종영 후 대한영상이 VHS 비디오테이프로 냈고, 케이블 TV채널 MBC 드라마넷과 Dramax, MBC ON 등지에서도 수차례 재편성됐다. 또한 MBC 홈페이지와 wavve에서도 다시보기 서비스를 하고 있다.

역대 드라마 순위는 2009년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과 시청률이 똑같은 37위이다.

2. 내용

약간 열린 결말이라는 소리도 들렸지만[2] 엔딩은 명확하다. 아직까지도 한국 스포츠 드라마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대학 최고의 슈터 이동민(손지창 분), 이동민을 따라 신라대를 가기로 했다가 이동민의 변심[3][4]으로 대학행이 좌절된 뒤 시험을 쳐 농구부가 있는 대학교에 입학[5]해 이동민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윤철준(장동건 분)의 라이벌 구도, 청춘들의 좌절과 극복, 성공스토리가 그려진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이다.

3. 등장인물

3.1. 주연

  • 윤철준(장동건) - 한영대의 에이스이자 본 드라마의 진 주인공. 고교시절엔 뛰어난 게임 운영과 어시스트 능력을 가진 포인트 가드였으나 이동민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6] 원래 이동민을 따라 신라대에 진학하기로 했다가 동민이 명성대로 진로를 바꾸면서 철준과 그 친구들은 공중에 붕 떠버리게 되고[7] 이후 역시 대학 진학을 물먹고 좌절하며 재수를 하면서 지내던 친구 호성이 철준과 술을 마시다 "너도 이동민처럼 해보란 말야" 라고 말하자 화가 나서 떠나게 되는데, 그를 뒤쫒아가던 호성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이에 철준은 동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재수를 해 한영대에 입학한다. 그럼에도 농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학과별 체육대회에서도 농구 대신 축구를 하겠다고 했지만 어쩌다 동아리&학과대항 농구경기를 뛰게 되고 마침 그 경기를 구경하던 한영대 코치 유학수의 눈에 들게 되어 농구를 다시 시작해보지 않겠나는 제안을 받는다. 처음에는 고민하다 결국 한영대 농구부에 들어갔다. 이후 과거 동민에게 가려져 있던 포텐을 한껏 폭발시키면서 어시스트는 기본에 득점력까지 갖춘 에이스 플레이어로 성장한다[8] 참고로 국가대표 선발 위원회에서 명성대 감독이 말한 바에 따르면 철준은 경기의 흐름을 잘 읽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라는 듯 하다. 득점만 하는 이동민이나 듀얼가드 느낌이 좀 있는 장용호는 그게 부족한데, 철준은 그것을 만족하는 선수라는 것. 동민과는 호성의 일 이외에도 다슬이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사이였지만, 다슬에게서 동민이 어머니의 병 치료를 위해 명성대로 갔다는 사정을 듣고 나서 동민을 찾아가 "우리가 그래도 친구였는데, 너희 어머니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한테 말만 했더라면 우리가 그걸 이해 못 했을 것 같냐?!"면서 다그친 후에 화해한다. 이후 동민과 나란히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한영대를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끈다. 수 년 뒤엔 은퇴 후 다슬이와 결혼하고 한 시골 초등학교의 농구부 코치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이동민(손지창) - 명성대의 에이스 슈터이자 포지션은 짤없는 슈팅 가드.[9]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만 하는기계로, 돌파와 외곽슛에 능하며 특히 회오리 3점 슛은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10] 사실 과거 고등학교 때부터 주목받아온 선수로 원래는 신라대로 들어가려 했으나 집안 사정(이유는 아래에 후술) 때문에 동민에게 지원을 약속한 명성대로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철준, 호성 등 고등학교 농구부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진다. 명성대로 입학해 뛰어난 활약을 하여 스타가 된다. 나중에 다시 윤철준과 화해하고 절친으로 돌아가게 되고, 나란히 국가대표에 선발된다. 철준이 은퇴한 이후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는 한편, 최종화에선 다슬에 대한 마음을 접고 미주와 결혼한다. 절대로 악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책임감과 승부욕이 강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라서 극중에서 여러 문제를 만들곤 한다. 명성대로 방향을 틀었던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라는 걸 이야기만 했다면 친구들도 납득은 했겠지만 끝까지 그걸 숨기는 바람에 여럿이 절망하고 그 와중에 죽는 친구까지 생겼으니....[11][12] 그 일 말고도 뭔가 오묘하게 단체생활에서 모난 돌이다 싶은 부분들이 하나씩 있다보니, 당시 만재에게 당하는 동민의 상황이 옳다고는 할 수 없어도 '실력있지만 개인주의적이고 속도 잘 모를 후배'인 이동민이 선배 만재에게 갈굼당하는 구도는 현실에서도 상당히 흔하게 볼 수는 것이었다. 오히려 만재가 나중에 동민과 화해하는 부분이 다소 갑작스러울 정도로.
  • 정다슬(심은하) - 본편의 진 히로인. 사실 알고보면 어장관리를 대놓고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명성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재학. 주인공 이동민과 윤철준 양쪽의 구애를 받는 여주인공으로 다슬 역시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며 답답한 모습도 많이 보여 동민, 그리고 특히 친구 미주의 속을 많이도 뒤집어 놓지만, 결국 철준에게 마음을 굳히면서 연인이 되고 나중에 철준에게 시집가고 결혼한다. 분명히 사범대학을 다녔는데 초등교사가 되어 철준과 같은 한 시골의 초등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당시 심은하의 머리 스타일이었던 포니테일이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 최미주(이상아) - 정다슬의 절친. 명성대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재학. 빨간 스쿠프[13]를 몰고 다니며 등하교 때 동민을 자주 태워준다. 동민을 짝사랑했지만, 동민이 다슬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도 뒤에서 응원해주는 대인배. 그렇긴 한데 얘도 사람인지라 많이 서운해하기도 하고, 다슬이랑 관계가 어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보답을 받았는지[14] 결국 동민과 이어지고, 최종화에서 동민이 철준과 다슬이 있는 초등학교에 방문했는데 이 때 임신 때문에 오지 못했다.

3.2. 명성대학교[15] 농구부

  • 장용호(박형준) - 명성대의 원투펀치로, 그 실력은 이동민에 절대 떨어지지 않고[16] 재능으로는 작중 최고수준이다.[17] 포지션은 포인트가드, 정확히는 현실의 양동근 느낌의 듀얼가드로 묘사된다. 즉, 득점력도 있고 경기운영도 잘하는 선수로 나온다. 동민이 다른 선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때 가장 먼저 친구가 되어주었으며,[18] 호감가는 인상에 유쾌한 성격이다. 동민과는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이며 장만재와는 고등학교 2년 선후배 지간.
  • 장만재(허준호) - 명성대 농구팀 주장.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이자 들개 수비수. 처음엔 이동민을 탐탁지 않게 여겨 괴롭히고[19] 심지어 구타까지 하는데, 사실 만재가 동민을 그렇게 갈군 이유는 허 감독의 지시 때문이었다.[20] 나중에 만재가 동민에게 "그 때 내 행동은 반은 진심이 아니었어."라고 밍아웃을 하고 말하며 화해(?)한다. 그 후로는 누구보다 동민을 아낀다.[21] 그래도 고인드립을 친 건 좀 용호와는 고등학교 2년 선후배 지간. 실업팀에 스카웃되어 명성대를 떠나게 된다. 졸업 후에 한영대와의 경기에도 지고 기강이 해이해진 후배들을 보러 찾아왔다가 실망하여 기합을 주고 엉덩이에 막대걸레자루로 매질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22] 끝에 두 명의 엑스트라가 안쪽에 충격 흡수 보호대를 착용하는 걸 깜빡하여 진짜로 맨살(...)에 맞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는 술먹고 후배들에게 갈굼만 당하다 간다... 그 시절치고 의외로 꼰대와는 거리가 있는 면모도 좀 있는데, 2년 후배라는 장용호나 이동민이 좀 심하게 기어올라와도[23] 그냥 웃고 넘어가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는가 하면, 한영대한테 진 이유가 한영대 애들이 악을 단단히 품고 나와서 그렇다는 장용호의 말에 '마, 농구를 무슨 악으로 해?'라면서 은근히 근성론을 까는 모습도 보여주는 모습이 그 예시. 리더십도 있는 성격으로 나온다.
  • 허진수(송기윤) - 명성대 농구팀 감독. 이동민의 독기를 기르기 위해서 장만재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이동민을 괴롭히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최종회 시점에선 국가대표 코치를 겸하게 됐는데, 철준의 노력하는 자세와 패스 센스를 높게 평가하여 애제자 용호가 아닌 철준을 국가대표로 선발한다. 사실 그가 작중에서 동민과 만재에게 한 행동은 실제로는 짤려도 할 말이 없다. 드라마에서는 좋게 넘어갔지만.[24] 이거 말고도 이동민의 독기를 키우기 위해서 심할 정도로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행동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이라면 이슈가 될 수준의 일들도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포장되던 시절이라곤 하나 감독의 행동은 당시에도 심하다 싶은 정도였다. 물론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해서 용호 대신 철준을 추천해서 뽑는 모습이라든가, 나중에 이동민이 방황할 때 동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모습 등을 보면 작가가 이 캐릭터를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려고 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기는 하는데, 뭐가 되었든 방영 시기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매우 나쁜 평가를 받는 극중 인물로 자리잡았다.
  • 장코치(이동신) - 명성대의 코치. 본명은 나오지 않았고, 한영대 코치 유학수와 현역시절 같이 뛰었던 절친이다.
  • 종렬(최종환) - 장만재의 친구. 설정상 5~6번째 옵션급 식스맨으로 나오는데, 의외로 명문 실업팀에 스카웃되었다고 나온다.[25][26]

3.3. 한영대학교[27] 농구부


* 김선재(이종원) - 한영대의 선수로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이자 말미잘. 과거 철준, 동민이 있는 성운고등학교와의 결승전 대결에서 경기 종료 직전 쓸데없는 공격시도를 하며 갱기를 망치고 패배했다. 실력은 이동민 못지 않지만 멘탈이 잘 흥분하는 스타일이라 경기를 망치기도 하는 양날검 같은 존재로, 자신의 마크맨이 누구이든 간에 이동민에게 달려들기까지 한다. 사족으로 주먹을 상당히 잘 쓴다. 철준과는 사이가 안좋았지만 나중에는 친하게 지내게 된다.[28] 그러다가 한영대 vs 명성대 첫 번째 대결에서 윤철준이 노골적으로 이동민에게 하드 파울을 범하자 이동민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항의하자 김선재가 나타나서는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이 새끼야!" 라며 주먹을 휘둘러서 난투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 김선재는 대걸레까지 들고 나타나 명성대 농구부원들을 구타했으며 특히 이동민은 입술이 터질 정도로 얻어맞았다.[29] 그래서 이거 때문에 한영대 농구부가 잠시 해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농구부 재건 이후에 명성대와의 경기 중 부상을 당해[30] 농구를 접는다. 나이트클럽에 가다가 그만 건달들과 조폭보스를 만났고 그만 옥상안에서 건달들에게 구타당해 얻어 맞았고, 보스는 농구경기에서 지고 온다고 고아원에 있었다고 했다. 건달들에게 구타 당하다가 다시 농구경기를 시작하게 되고, 고아원 출신으로 자신이 고아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때문에 수진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결국 수진과 사귀게 되고,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엔 자신이 자란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면서 살아간다. 다리부상으로[31] 선수생활이 끝났을 때 철준과 한 가지 약속을 했는데, 그건 바로 철준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선재의 등번호인 12번을 다는 것이었고, 철준은 국가대표가 되어 그 약속을 지킨다. 마지막회에서는 마지막 농구경기에서 이기고 승리를 하게 되었다.
  • 김수진(신은경) - 한영대 농구부의 매니저. 한영대 부속 중-고등학교 출신이고 한영의 딸로써 , 고등학교 때부터 한영대 선수단과 안면을 익혔다고 한다. 왈가닥이긴 하지만, 거친 남자 농구부 선수들을 때로는 다그치고, 또 때로는 보듬을 줄 아는 모성애의 소유자. 선재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견원지간으로 지냈지만, 그러던 중에 서로 정이 들면서 기습키스를 받고 말미잘이라 부르면서 연인 사이가 된다. 맘에 안 들면 사람을 미물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김선재에게 말미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렇다 치고 윤철준에게도 '바퀴벌레' 라고 부른 적이 있다.
  • 마이클 최(박재훈[32]) - 한영대로 유학 온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최욱. 키가 크고 탄력이 좋아 멋있는 덩크 슛이 가능한 선수이며,[33] 센터내지 파워포워드를 맡았다. 철준에게 덩크슛을 가르쳐 준 선수이며, 자신은 덩크밖에 할 줄 모른다는 대사를 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캐릭터에 충실하여 거의 리바운드와 덩크만 하며, 자유투를 못한다는 대사처럼 실전에서 연속 자유투 실패하는 장면도 있다. 방영 당시 주인공들만큼이나 인기를 누렸다. 교포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로우를 후리드로우 라고 발음한다...
  • 박용주(이정훈) - 한영대 농구부 주장. 포지션은 슈팅가드. 성격이 원만하고 자상한 성격.[34] 한영대에서 김선재에 이은 제 2의 득점 옵션이다. 물론, 윤철준의 포텐이 터진 후에는 3옵션이 되었으며 김선재가 부상 당하자 다시 2옵션이 된다. 작품 막판에 학교의 우승을 위해서 졸업까지 미룬 것이 언급된다. 농구대잔치 결승전 마지막 경기에서 윤철준이 역전 덩크슛을 넣을 때, 시간 거의 안 남은 상황에서 명성의 공격권을 빼앗는 인터셉트를 한 다음 철준의 슛을 어시스트하는 꽤 큰 활약을 한 인물이다. 배우 라재웅이 진행하는 유투브 채널 오상사가간다에서 마지막 승부를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줬었는데, 실제로 학창시절부터 농구를 했었고 실력이 좋은 편이라서 캐스팅이 되었는데[35] 다른 배우들이 슛을 하는 장면을 직접 자신이 대역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한영대 농구부 주장 배역을 맡았던 것은 아마도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인듯 하다.
  • 종순(오현섭) - 한영대 농구팀 주장 박용주의 절친, 포지션은 언더사이즈 빅맨 느낌의 파워포워드. 원래 주전이었으나 마이클이 입단하면서 벤치워머가 된다(...). 그 전부터 경기 뛰는 모습이 잘 안 나오긴 한다 애당초 별다른 목적도 의지도 없는 전형적인 한영대 농구부의 초기 분위기를 보여주는 인물상이긴 한데, 그래도 성격 자체는 둥근 편이라서 다른 부원들과 사이는 꽤나 좋은 모양. 용주와 함께 졸업까지 미루면서 농구부로 활동한다.
  • 영만(배우명 미상) - 한영대 센터. 성이 안나와있다(....) 설정상 팀내 유일의 인사이드 득점 옵션이지만, 이상하게도 종순이나 마이클보다도 비중이 낮으며, 대사는 "알겠습니다"와 "김선재랑 윤철준이 말이냐?" 란 것 뿐이다. 의외로 게임 중에 덩크도 하는데, 이마저도 아무도 대단하게 안 본다. 실업팀이나 금융단팀에 스카웃도 안 되어[36] 유학수 코치가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는데 취업마저도 잘 안 된 모양인지 졸업할 때가 지나서도 학교에 있다. [37] 그래도 우승팀 대학의 주전 센터이다. 빅맨이 없는 저 당시 한국 농구의 특성상 2, 3라운드에서 픽이 되었을 것이다.
  • 한영대 감독(강인덕) - 출중한 능력을 갖춘 코치에 비해 지도력이 떨어져서[38] 코치인 유학수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39] 선수들의 뒷담화에 따르면 학교 이사장의 먼 친척이라고 하며, 한영대 농구팀이 해체된 이후 천안캠퍼스 교직원으로 가게 된다. 그 이후 자취를 감춘다(...)
  • 유학수 코치(전인택) - 바지사장 감독을 대신한 실질적인 감독이고, 나중에 농구부가 재창단되고 정식 감독이 된다. 왕년에는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명성을 날렸으며[40] 철준의 포인트가드로서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철준에게 농구를 다시 시작해볼 것을 권한다. 이름이나 포지션에서 어찌 이 분이 떠오른다
  • 정도일(정욱) - 한영대 총장. 경기 중 난투극 사건으로 인해 이사회로부터 압박을 받자 한영대 농구부 해체를 지시한다. 이후 재창단 움직임 때 그만두라며 유학수 코치에게 압력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날 밤 전용차량[41]를 타고 가다가 야외 운동장에서 연습에 매진하는 한영대 농구부원들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는지 이후 한영대 농구부의 재창단을 정식으로 허락한다.

3.4. 신라대학교[42] 농구부

  • 신라대 감독(박인규) - 작중 이름은 불명. 당시 대웅제약 여자농구팀 감독이었던 실제 농구인인 박인규[43]가 직접 맡았다.
  • 배창훈(윤제한) - 신라대 농구팀의 주포. 골밑 플레이어이며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점에서 그 당시의 서장훈이나 현주엽을 모티브로 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작중 최고수준의 실력자로, 장용호나 이동민보다도 더 괴물같은 선수라 평가 받는다. 주인공들보다 한 학년 아래의 선수로 나오는데, 장용호 이동민 때문에 매번 깨진 신라대가 독을 품고 엄청난 돈으로 스카웃했다고...[44] 실제 명지대 농구부 1993학번인 윤제한[45]이 맡았다. 명성대와의 결승전에서 이동민을 맨투맨으로 마크해 좀처럼 슛을 쏘지 못하게 만들지만, 동민이 종료 버저와 동시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프라인에서 던진 3점이 운좋게 골인되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리타이어(...)한다.

3.5. 동민의 가족

  • 동민의 아버지(신귀식) - 동민에게 신라대에서 명성대로 유턴하게 만든, 어찌보면 만악의 근원. 적어도 이분이 자신의 형편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며 성운고 감독에게 동민의 명성대 진학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면, 적어도 호성은 한을 품고 죽지 않았을 것이고, 철준이 동민을 증오하거나 재수를 하는 일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 동민의 어머니(엄유신) - 오랜 기간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가 동민이 농구대잔치 결승전에서 역전 3점을 성공시키며 우승하는 중계장면을 보고 그 순간 세상을 떠난다. 동민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신동파의 광팬이었고, 동민이 농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동민이 신라대에서 명성대로 유턴한 이유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지원받기 위해서였다.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을 배신하면서까지 명성대에 갔고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지만 농구대잔치[46]에서 우승하던 그 순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동민의 절망은 컸다.

3.6. 철준의 가족

  • 윤칠성[47](장항선[48]) - 윤철준의 아버지. 전형적인 욕데레 스타일의 아저씨로 보이지만, 주변인들에게는 늘 아들 자랑을 하기 바쁘다.[49] 트럭을 몰면서 야채장사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이 자기 아들 대학 보내겠다고 장사 밑천인 트럭을 팔아서 대학 입학 등록금을 떡하니 마련해 주는 등 사실은 그 시절 아버지들처럼 츤데레를 잘 연기하였다.[50] 충청도 사투리가 일품이다.[51] 식사 때마다 소주 1병씩을 비우시는 분. 의외로 자식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좀 덜 툴툴대는데, 다슬이를 대하는 거 보면 며느리바보가 될 조짐이 보인다.[52] 연애 때는 나긋나긋한 남자였다고 한다. 밥상 뒤집기를 잘한다[53].
  • 윤영아(전유진[54]) - 전형적인 브라콘 스타일의 여동생. 아버지와 오빠에게 굉장히 헌신적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도맡는다.

3.7. 기타

  • 삼광국민학교[55] 감독(고 전운) - 1회 오프닝에 나오는 동민, 철준의 초등학교 시절 감독. 연습에서 싸웠던 동민, 철준을 선발출전 시키지 않고 벌을 주다가 나중에 동민, 철준이 반성하고 있다고 거짓말하자 그제서야 교체출전시킨다.[56]
  • 성운고등학교 감독(강석우) - 동민, 철준의 고등학교 시절 감독.
  • 양호성(박철) - 이동민, 윤철준의 고교 시절 절친. 동민에게 배신당한 뒤 방황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비록 짧게 나왔지만 철준이 각성하여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뚱뚱하고 코믹한 이미지가 아닌, 샤프하고 잘생긴 청춘스타 박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작품.[57]
  • 이찬식(김현석) - 이동민, 윤철준의 고교시절 절친이자 이동민의 배신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친구 중 다른 하나.[58] 졸업 후 셋이 가끔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과 이동민 원망을 하다 군대에 입대한다. 휴가나와서 자기랑 호성이 한 풀어줄 녀석은 너밖에 없다며 농구를 계속 할 것을 부탁하고는 부사관으로 말뚝을 박았는지 그 뒤엔 등장이 없다.

3.8. 꿈의 캐스팅

MBC에서 1994년 1월 3일 ~ 동년 2월 22일까지 1달간 방영한 손지창, 장동건, 심은하, 이상아[59] 주연의 스포츠를 빙자한 연고전 띄우기 월화 드라마. 조연으로는 당시 대표적인 꽃미남 청춘스타였던 이종원, 박형준, 박철에 대표적인 터프가이 허준호에다가 떠오르는 여배우 신은경 등까지 가세했는데 당시 모으기 힘든 최고의 꿈의 캐스팅이다.

이들의 당시 위상을 설명하자면
  • 손지창은 그 당시 원톱 청춘스타였다. 물론 최수종이 당시 남배우 중 전체 원톱이라고 할 수 있으나, 최수종은 이미 질투, 파일럿 등으로 청춘스타로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청춘스타가 아닌 성인 연기자가 되어가던 과정이었다.[60] 손지창, 김민종과는 나이가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최수종은 저때 당시 이미 30대 초반이었던 인물이므로 청춘스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사실상 손지창이 청춘스타로서는 원톱이었다.[61]
  • 장동건은 물론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장동건의 위상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방송가에서 한참 밀어주던 시기였다. 우리들의 천국에서 이미 뜨기도 했었고... 캐스팅 자체도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손지창과 장동건의 위상차이는 분명 존재했는데도 투톱으로 캐스팅 되었을 정도였으며 비중을 떠나서 스토리상의 진 주인공으로는 장동건이 더 가까웠다.
  • 심은하는 무명 신인이었지만 홍보 단계에서부터 이미 미모가 드러난지라 기대를 한참 모으며 기대가 되던 신인이긴 했었다. 결국 이 드라마 1회 방송만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가 되었다[62].
  • 이상아1980년대 부터 하이틴 스타로 위상이 높았으며 캐스팅 당시 마지막 승부 출연 여배우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63]
  • 허준호는 연기력과 터프가이의 개성, 신은경은 통통튀는 매력으로 나름 독자적인 위치를 가진 배우들이었다. 허준호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크레딧은 차지할 수 있는 주조연급 배우, 신은경 역시 여타 드라마에서 최소 서브 여주 정도는 가뿐하게 가능한 배우였다.
  • 이종원은 나이들어 살이 찌고 이미지가 바뀌어 불륜 전문 배우로 계속 캐스팅이 되지만, 저 당시에는 피지컬과 외모를 동시에 갖춘 몇 안되는 청춘 스타였고 최소 서브 남주는 가능한 배우였다.
  • 박형준은 그 당시 손지창, 김민종, 장동건 등과 한 단계 아래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당당히 경쟁하던 손가락 정도 드는 레벨이었고, 그 역시 음반을 두어장 낸 멀티엔터테이너이기도 하였다.
  • 박철은 갑자기 살이 찌고 탈모를 겪으며 아저씨 컨셉으로 전환한 것이지, 당시에는 잘생긴 외모로 서브 남주 정도의 위상은 가진 배우였다.[64] 박철과 비슷한 패턴을 밟은 사람이 신해철이고, 신해철도 그 당시에는 우수에 찬 꽃미남 싱어송라이터였다.
  • 박재훈은 원래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워낙 미남이라 바로 스타덤에 올랐고 뒤이어 여기서 얻은 인기를 이용해 KBS로 가서 딸부잣집에 비중 높은 조연[65]으로 캐스팅되었다.[66] 몇 년 후에 외모와 체격 등의 이미지가 은근히 겹치는 차승원이 데뷔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퍼신인이라고 볼 수 있다.
  • 그 외에 조연급 배우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위치를 가진 중견배우들과 청춘스타들이 총집합되었었다. 그래서 이미 어떻게 보면 드라마 기획 당시 기준으로는 주연급인 손지창, 장동건, 이상아부터가 한 드라마에서 다 함께 모아서 보기 힘든 캐스팅이었고, 위에 언급한 배우들마저 오늘날 기준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한 드라마에서 한꺼번에 보기 힘든 구성이다. 위에 언급한 몇명 중에 1~2명만 캐스팅하고 중급 배우들로 채워도 어지간한 미니시리즈가 가능한 캐스팅이다.

비교적 최근작으로 그나마 비교가 가능하기는 한 드라마 캐스팅은 2013년작 상속자들이 있다. 꽃보다 남자,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한류스타로 발돋음한 이민호, 박신혜 등에 흥행불패 작가 김은숙의 참여는 상당한 해외 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내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당시의 한창 유망주로 꼽히던 김우빈, 강하늘, 김지원 등이 가세하고, 유명 아이돌인 크리스탈, 강민혁[67], 박형식 등이 참여하는 캐스팅이었다. 이미 주연이었던 이민호, 박신혜는 말할 필요가 없고 앞서 언급한 인물들은 상당수가 주연급 이상으로 성장했다. 경제상황과 시대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대략 100억대를 상회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제작비의 큰 차이가 발생했다. 하지만 제작비라면 몰라도 1990년대 당시의 저 배우들의 위상과 비교하면 상속자들 캐스팅의 급과 비교불가이다.[68][69]

3.9. 배우들의 위상 변화

  • 손지창 : 촬영 이전에도 당대 원톱을 다투는 청춘스타였고 그 이후로도 그 정도 위상은 계속 유지하긴 하였다. 1994년 마지막 승부와 느낌을 둘다 크게 히트 시키면서 비슷한 세대 청춘 스타들 중에서도 좀 더 앞서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비교적 이른 결혼과 사업 매진 등으로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70]
  • 장동건 : 떠오르는 청춘스타이긴 하였고 최고급까지는 아니었지만, 파격적인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인기가 급상승 하였고 드라마가 끝날때 쯤에는 손지창이나 김민종과 비교가능한 위치까지 인기가 올라갔다. 그러나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다음 드라마 아이싱을 찍었으나 완전히 실패하고, 또 학업과 연기 병행에 실패하면서 하락세를 겪었고 1994년 마지막 승부 이후 1997년 모델, 의가형제를 찍으면서 어느정도 되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도 확연한 원톱 배우는 아니었고[71] 이후에도 주연으로 활약하지만 그냥 많은 청춘 스타들 중 하나 정도의 위상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장동건이 이 당시 위상을 회복한 것은 2001년 친구를 찍으면서 부터이다.
  • 심은하 : 그냥 신인 여배우였으나 첫 회가 방송되면서(...) 탑 여배우로 등극하게 된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아니라 방영과 동시에 스타가 되어갔던 희귀한 경우다. 그 당시 방송되면서 얼마나 실시간으로 인기가 높아져가는지 핸드폰도 없던 시대에 친구들끼리 전화하면서 여주인공 예쁘지 않냐고 얘기해가면서 보았다고 한다. 핫 샷 데뷔
  • 이상아 : 원래는 다슬이 배역이었다는 얘기가 있다.[72][73] 그러나 심은하의 등장으로 인하여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안정적으로 주연을 맡던 위치에서 주조연급으로, 이혼도 하고 풍파를 겪으며 몇 년 후에는 다시 조연급으로 위상이 낮아지게 된다.
  • 신은경 : 1987년 데뷔로 경력이 제법 있었으나 주인공의 친구나 동생 역할을 자주 하는 크게 비중 없는 조연이었다. 마지막 승부와 동시기 영화 젊은 남자, 그리고 그해 하반기 종합병원을 통해서 X세대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다. 그러나 이후 음주운전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 많아서 주연과 선역으론 자리가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연기력이 좋아 꾸준히 주조연급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주로 악역을 기깔나게 잘 소화하여 연기력만큼은 최고로 평가받는 중이다. 욕망의 불꽃, 황후의 품격, 펜트하우스 시리즈[74]가 신은경의 21세기 대표작이다.
  • 박철 : 이 당시만 해도 꽃미남 배우였고, 가끔 주연도 가능하며 서브남주 정도는 가능한 위상이었으나,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탈모와 비만도 한몫하면서 개그 캐릭터를 맡는 조연급으로 위상이 낮아지게 된다.[75]
  • 박형준 : 당시에는 흔치 않게도 꽃미남+장신+몸짱+운동능력[76]을 다 갖춘 배우였고, 최소 서브남주나 비중 큰 조연 정도는 되는 위상이었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도 실력있고 호감있고 긍정적인 역할에 서브남주 정도의 역할이었다. 이후 단독 남주 역할까지 하면서 위상이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단독 주연으로 캐스팅된 도전[77]이 실패하면서 다시 서브남주나 비중 큰 조연 정도 역할로 돌아가게 된다. 가장 최근에는 태종 이방원에서 공양왕 역할을 맡으며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 이종원 : 원래 모델로 유명했고[78] 장신에 근육질 몸매에 터프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95년작인 젊은이의 양지가 최고 전성기였고 이후 1999년작인 청춘의 덫에서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며 조강지처를 배신하는 배신남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나이를 먹으면서 외모도 후덕해지고 불륜 남편 역이나 코믹한 역할로 이미지가 바뀌게 된다.
  • 박재훈: 원래 농구 선수 출신 패션 모델이었고 농구 경력이 있던 배우를 찾다 보니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게 되었다. 훤칠한 키와 선수출신다운 운동능력과 몸에 외모까지 느끼하지만 잘생겨서 마지막 승부를 진행하면서 인기와 인지도가 급상승 하였고 이후에는 주연은 아니더라도 비중있는 조연 역할로 위상이 올라갔다. 다만 당시로서는 키가 커도 너무 컸기 때문에[79] 배역의 한계가 있었고, 연기력도 별로였다. 다시 모델로 돌아가게 된다.

4. 결말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던 철준의 한영대와 동민의 명성대가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맞붙고, 치열한 접전 끝에 철준의 덩크 슛으로 한영대가 승리. 이후 수년이 흘러 철준과 다슬은 결혼하여 시골 초등학교의 교사와 농구 감독으로 살아가고, 그런 두 사람 앞에 국가대표로 맹활약 중이며 미주와 결혼한 동민이 나타나 오랜만의 회포를 푼다. 그리고 철준의 제자들이 '둘 중 누가 농구를 잘하냐?'고 질문하자 그 질문에 답해주기 위해 1 ON 1 시합의 점프볼을 하면서 막을 내린다.

5. 드라마의 영향력

뭐니뭐니해도 이 드라마의 최대 히트는 다슬이 심은하[80]이다. 심은하를 대한민국 대표배우로 만든 대표 흥행작. 그리고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손지창의 인기가 정점에 이렀던 시기로 오프닝 중간에 손지창의 머리칼로 물 튀기는 씬에 당시 여성들이 여럿 쓰러졌으며, 대학교 농구장에선 꼭 머리를 물로 적신 다음에 저거 따라하는 사람이 있었다한다. 손지창의 턴어라운드 3점 페이드어웨이도...

이미 원톱 위상이었던 손지창은 이후에도 건재했으며 장동건이 손지창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떴으나 이후 MBC가 야심차게 시도한 아이싱이 완벽하게 망하고 학업문제로 연기에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하락세를 겪게된다.

원래 다슬역이었다가 미주역으로 배역이 바뀌면서 비중이 축소된 이상아는 마지막 승부 이후 어느정도 하락세를 겪게 되고 김한석과의 결혼 및 이혼을 겪으면서 주연급에서 밀려났다.

당시 인기리에 연재되던 만화 슬램덩크와 맞물려서 농구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81] 이와 함께 이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에 열렸던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문경은(1990)-이상민(1991)-우지원(1992)-서장훈(1993)석주일, 김훈 지못미ㅠㅠ의 환상적 라인업을 가졌던 연세대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드라마의 시너지효과도 높았다.[82][83]

특히 아래 나오는 대학농구 선수들 마지막 승부농구세대는 웬만한 연예인은 범접도 못할 정도의 유명스타가 되었고[84]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1997년 프로농구도 출범[85]했다.

게다가 후술하다시피 드라마 주제곡와 OST 일부가 타 방송사인 KBS의 가요톱10 무대에까지 올랐으며, 김민교가 부른 주제곡은 아예 1994년 3~4월 5주 연속 1위에 올랐고 극중 주인공을 맡은 손지창의 '사랑하고 있다는 걸' 또한 1994년 4월 6일자에서 1위 후보까지 올랐다. 당시 영상

5.1. 마지막 승부 세대

이 드라마가 한국 스포츠, 특히 농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노리고 키우거나 그런게 아니라 마침 이 시기에는, 실제로 재능있는 농구 유망주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로 이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실업선배들과 겨룰 수 있었고 그 덕에 스타급으로 성장한 젊은 농구 선수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데다 마지막 승부 드라마의 버프까지 받으면서 1988 서울올림픽 국가대표 세대인 선배들, 기아자동차의 허재, 강동희, 김유택[86], 삼성전자의 김현준, 김진, 서대성[87], 현대전자의 이충희, 이원우, 이문규 등의 선배들과 대결구도까지 자리잡았다.

그 덕에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전희철 등 외모까지 받쳐주는 대학 스타들이 주도하던 농구대잔치의 인기는 최절정에 달했고 이때 대학무대에 등장했던 1990~94학번대 선수들은 일명 마지막 승부 세대라는 별명을 얻으며 농구라는 종목 자체의 인기 상승을 주도했고[88], 그 결과물이 바로 이들의 마지막 종착점이었던 KBL.

이때 등장한 선수들 중 마지막이자 한국 농구의 주역인 서장훈이 2013년 3월 은퇴하면서 이제야 한국 농구는 마지막 승부 세대에서 벗어났다고 할 정도.

주요 마지막승부 세대
이들 중 연세대 선수들은 이후 국가대표선수들로 카메오로 출연했으며[90] 명지대 선수였던 윤제한은 신라대의 주포 배창훈으로 나왔다.

KBL 추억의 올스타전이나 농구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승부 세대 은퇴선수들을 초청해 진행하는데 '마지막 승부' BGM이 항상 깔린다. 그러나 은퇴선수들은 정작 '또 마지막 승부냐...이젠 안 틀때도 됐는데..'하는 표정을 짓고는 한다.

6. 미디어믹스

1995년 12월에 삼성전자게임화했지만 묻혀졌다. 솔직히, 게임이라고 보기에도 어렵고 인터렉티브 애니메이션 정도로 보면 되겠다. 잠뿌리는 게임으로 보기 어렵다며 악평했다.

7. 기타

일본 만화계의 슬램덩크와 함께 한국 스포츠 드라마 역사상 최대 그리고 최후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 <농구대잔치>는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로 흥행에 성공한 케이스.

이 이후로 이런 저런 스포츠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망했다. 애초에 스포츠물은 흥행이 안 된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영화는 이현세 원작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 외에는 흥행작이 없어서 2008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성공할 때까지는 스포츠 영화는 안된다는 이미지가 존재했다. 송강호김혜수 주연의 YMCA 야구단[91]이나 이범수가 주연한 슈퍼스타 감사용도 흥행실패였고, 유오성 주연의 챔피언은 그야말로 재앙.

스포츠 소재 미디어물은 기본적으로 매니아들의 영역이다보니 흥행에 어려움이 따른다. 거기다 실제 촬영시에는 연기자들의 스포츠 훈련이 필요해서 촬영이 더더욱 어렵다. 본문에도 언급되지만 장두익 PD는 이후 장동건과 이종원을 다시 투입하고, 이승연전혜진을 동원한 아이스하키 드라마 아이싱을 제대로 말아먹으면서 흥행 붐이 꺾였다. 이후에 때려이 죽일놈의 사랑과 같은 격투 스포츠 쪽 드라마가 나왔지만 이쪽마저 시청률이 안 나오면서 결국 스포츠 드라마의 제작은 요원해졌다. 게다가 먼 훗날 다시 축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드라마 맨땅에 헤딩이 제작되었으나, 사상 최악의 시청률 끝에 조기종영 크리를 먹고 만다. 한참 지나서 야구를 다룬 스토브리그가 나왔으나[92] 이 드라마는 선수가 아닌 프런트에 중점을 둔 색다른 길을 택했다.

드라마의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키가 큰 남자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었다. 농구라는 소재의 드라마인데 그 당시 배우들의 피지컬이 지금과는 달리 좋지 않아서 인력풀 부족에 시달렸으며, 그야말로 키 큰 남자 배우들을 싹싹 긁어모았다. 손지창, 장동건, 이종원, 허준호, 박형준, 박재훈, 박철, 이정훈, 오현섭 등등 평균신장이 180cm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캐스팅을 했다. 심지어 선수가 아닌 어른 배역에도 키 183cm의 김기현이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이 드라마에서 심은하는 유독 튀는 옷을 입는다. 외모야 당연히 주연급 배우라 튀는게 있긴 하지만, 보통 드라마의 패션은 시대와 장소에 어울리는 수준인데 비해, 다슬이는 확실히 의상도 주변의 풋풋한 대학생과 다르다.

심은하는 마지막 승부의 청순한 캐릭터 다슬이로 하루아침에 인기스타로 등극했다. 그러나 드라마 종방 직후 전남친과의 동거설이 터지면서 연기생활이 위태로울 뻔 했으나,[93] 때마침 김일성 사망이라는 큰 사건이 터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옮겨가고 영리하게 인기 요인이던 청순한 이미지를 바로 버리고 다음 작품을 호러 드라마 M의 팜므파탈 캐릭터로 선택하면서 빠르게 이미지 변신을 해 위기를 넘겼다.

이 드라마의 오프닝에서 당시 배우들의 인기도를 읽을 수가 있는데, 1994년까지 아직 하이틴 배우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장동건에 비해 손지창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날 때 쯤에 가서는 장동건이 진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되고 인기도 비슷한 레벨까지는 되었다.[94]

배경이 1990년대인지라 남존여비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간 드라마였는데 대표적으로 선재(이종원)가 수진(신은경)에게 "어디서 계집애가 감히..."라고 무시하거나 철준의 여동생이 진학도 못 하고 돈 벌어서 철준을 뒷바라지해주는 상황[95]이 나온다. 그렇다고는 해도 1980년대도 아니고 민주화 이후의 1990년대는 여성의 교육 기회의 차별은 거의 없어지고 있었다는 점(광적인 교육열 덕이기도 하다. 아들 딸 가리지 않고 좋은 대학 보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의 젊은 층 남성들(X세대)도 성평등 교육을 받았고 성평등을 대놓고 부인하는 경우는 별로 없던 세대였다는 점[96]을 고려해 보면 100% 완벽한 현실 고증이라기보다는 드라마 제작진(출연진보다는 고연령층일 터인)의 가치관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1990년대까지도 당시의 기성세대를 주축으로 한 사회 전반의 의식이 낙후되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남녀차별적인 문제 말고도 음주운전에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던 당시 상황도 있다. 술이 잔뜩 취한 만재(허준호)가 새 차를 샀다며 억지로 동민(손지창)과 용호(박형준)을 태우고 가려는 장면도, 요즘 같아서는 상당히 크게 비판받을 장면. 당장 김민구가 무슨 얘기를 듣고 사는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격세지감이다. 저 세 사람 중 아무도 그 상황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이동민이는 슬쩍 빠지긴 한다.. 사실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차 가진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기여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약했다. 꽐라가 되어 음주운전하다가 걸린 이야기나 아니면 경찰 피한 이야기 같은 걸 무슨 무용담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음주운전의 해악이란 게 공익광고로 슬금슬금 언급하기 시작하던 때였고, 그나마도 음주운전이 잠재적 살인이니 하는 요즘의 인식이 아니라, 그냥 "너 죽거나 다치지 않으려면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는 정도... 물론 지금 시선에서는 비판받아야 할 일이지만 저땐 모두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경향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안 할 사람들은 절대로 안 했고 그것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정당하진 않지만 할 수도 있다고 다수에게 여겨지는 특수한 범죄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97] 뭐가 되었든 옛날이라고 할지라도 음주운전을 한 것이 절대로 옹호받을 수는 없다. 당연히 그때도 불법이었다. 그만큼 1990년대의 술 관련 의식수준이 미개했다는 것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98]

충공깽스러운 돌발상황도 벌어졌는데, 마지막 승부를 촬영하는데 이동민이나 윤철준의 이름을 연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관중들은 갑자기 "마이클 최, 마이클 최~"를 연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원래는 연세대학교 농구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은퇴하고 연기자로 나왔던 박재훈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 덕에 딸부잣집에 캐스팅 되었다. 서구적인 마스크에 188cm에 달하며 덩크슛이 가능했던 박재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박재훈은 고등학교 시절에 시합 도중 큰 부상을 당했는데 이 때문에 왼쪽 어깨와 왼쪽 무릎의 연골을 제거해야만 했다.[99] 이 때문에 박재훈은 농구장면을 연속으로 오래 촬영할 수가 없었다.

1990년대 드라마라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그리고 남성 캐릭터들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흡연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현 시점에서는 지상파 방송에서는 흡연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건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금지된다. 당시에도 담배가 건강에 매우 나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성인 남성 사회에서는 그래도 상당히 흔했고, 사무실이나 집, 버스 안에서 담배를 태우는 광경도 흔했다. 심지어 국민학교였던 당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들도 교실에서 업무보다가 애들 앞에서 피우기도 했다. 게다가 주인공 철준(장동건)은 여자친구인 다슬(심은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더러 있는데, 만약 오늘날에 비흡연자인 젊은 여성 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있다면 거의 퇴짜 확정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비흡연자에게 담배 냄새를 풍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 오늘날에는 비매너로 인식된다. 사실 당시에도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뭐라 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간접흡연의 해악은 당시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정색하고 뭐라 하면 요새말로 진지충, 씹선비 취급 받을 수 있었다.

코렁탕 드실 만한 설정도 있다. 극 중에서 재수에 성공해 한영대에 입학한 윤철준이 속한 농축산학과와 시합을 했던 농구 동아리 이름이 남농당이었는데 이는 남조선 농구당의 약자라고... 물론 저때는 이미 문민정부여서 저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시기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소소한 사고도 끊이지 않았는데 NG가 역대급으로 많은 드라마 중의 하나가 마지막 승부이다.[100] 겨울씬을 여름에 촬영하다 보니 지하철에 탑승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죄다 반팔인데 장동건 혼자만 점퍼를 입었다든지 하는 초대박급 NG를 내기도 했으며 손지창의 경우는 산악자전거로 계곡을 내려오는 씬을 찍다가 자전거가 크게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손지창의 팔뚝에 커다란 흉터가 났다. 손지창은 그런 몸상태로 병원에도 못가고 그냥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의 MC를 하는 등 이런 저런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뒤늦게서야 병원에 갔는데 손지창의 담당의사가 하는 말이 조금만 늦었어도 파상풍 때문에 큰일날 뻔했다.고 한다(...). 지하철 승강장 씬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반인들이야 눈치 하나 채지 못할 수 있지만 철도 동호인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같은 열차가 지나가는데 열번[101]이 바뀌어 있다던가, 심지어 구동음 소리가 같은 열차인데도 다른 소리가 나는 등으로 오류가 많았다. 그리고 MELCO 초퍼와 GEC 초퍼 차량의 차이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외형에서도 소소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똑같아도 철도 동호인이 보기에는 아니라는 것.[102] 물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MELCO 초퍼와 GEC 초퍼는 차량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무동력차가 아닌 다음에야 한 편성에 섞어서 운전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심은하의 배역인 다슬이는 분명히 손지창, 이상아와 함께 종합대학교인 명성대를 다녔는데 초등교사가 되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어이없는 결말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리 1990년대 초반이라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103] 다만 김대중 대통령 시절 1997년 외환 위기와 교원정년 단축으로 인해 60대 초반 교사들이 대거 명퇴하면서 사범대 졸업생들에게도 초등교사 임용고시 응시 자격이 주어진 중초임용을 시행한 적은 있었다. 심은하가 1990학번인데다가 결말이 장동건 은퇴후라는걸 생각하면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이었을 테니 나름 적절한 고증일 수도 있다.[104] 다만 미래예측이니 고증오류니 운운할 일까지는 아닌게, 마지막 부분은 철준의 은퇴 후 일이다. 그냥 대충 10년 후쯤 일이라 치고 그 사이에 교대편입을 했든 대학을 다시 갔든, 국가 제도가 바뀌었든 해서 초등교사가 되었다면 어떤식으로든 설정구멍이랄 것도 없이 땜빵이 되는 일이다.[105]

실제 농구선수가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농구단 훈련장에서 찍을 때에는 삼성전자 선수들이 슈팅 연습을 하는 장면이 찍혔다. 김현준을 비롯하여 김진, 이창수 등이 나온다. 물론 뒷모습만. 그리고 기아자동차 체육관에서 찍을 때에는 아예 대놓고 기아자동차 마크까지 드러내며 간접 광고를 서슴치 않았다.[106] 기아자동차 체육관에서는 허재가 한영대학교를 졸업한 선배역으로 등장하며 당시 기아 감독인 최인선까지도 등장한다. 허재는 여기에 출연하며 몇 마디 대사를 하는 것만 나오는데, 이 장면을 찍으면서 NG를 많이 냈다고. 덕분에 허재의 후배 선수들이 허재를 "연기 못한다"고 놀려댔으며 촬영이 끝난 후 허재는 "농구보다 연기가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거기에 이동민과 윤철준이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훈련을 하는 장면에 동원된 엑스트라들로 대학농구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당분간 시합이 없었던 연세대학교 농구팀(!!!)이 통째로 섭외되었다. 그 중에서 서장훈은 나중에 방송인으로 데뷔했다.

명성대학교 선수 배역 중에 실제 배구 선수 출신이 있었다고 한다. 송국영인데,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단(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입단하여 활동하다 그만둔 선수이다. 장두익 PD의 말로는 여태까지 때리는 것만 하다가 던지는 것을 하려니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어색했는지 촬영하면서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박형준,[107] 이종원,[108], 장동건[109]은 그래도 최소 기본 이상의 기량을 가진데 비하여, 메인 남자 주인공이었던 손지창의 슛폼에 대하여 소소한 논란이 있었다.[110] 오죽 어설펐던지 이 드라마를 훗날 평하던 딴지일보 모 기자는 '제발 이 드라마만은 외국으로 수출되지 않기를 바랬다'고 할 정도. 그래도 촬영을 진행하면서 훈련을 열심히 했는지 손지창의 기량이 향상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슛폼도 조금씩 안정되어가긴 했다. 사실 인력풀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 그 당시 키 대충 크고 농구 좀 한다는 남자 배우들을 박박 긁어 모은다는 것이 저만큼이었고, 제일 농구 잘했다는 박재훈[111]이나 체육전공자인 박형준[112]은 드라마의 메인 남자 주인공맡을 정도로 위상은 아니었다. 즉, 탑급 남자배우 중 키가 어느 정도 받쳐주면서 취미 수준에서라도 농구를 할 줄 아는 인물로 손지창이 최선의 픽에 가까웠던 것. 그리고,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 이정훈도 농구 실력이 좋은 편이라 다른 배우들의 슛 장면을 직접 대역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를 본 MBC가 장두익 PD를 비롯한 마지막 승부 팀으로 1996년에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드라마 아이싱을 내놓으면서 마지막 승부 인기의 재림을 노렸다. 더군다나 마지막 승부에서 주연이였던 장동건이종원을 그대로 캐스팅하고 여기에 이승연 등의 호화 캐스팅을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다. 조연으로 최강희유태웅, 김명수,[113] 경인선[114] 등이 출연했던 것 정도가 흥미로운 점.

손지창은 이 시기 이미 가수로 인지도가 있었고,[115] 심지어 김민종과 '더 블루' 라는 듀오까지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지막 승부 OST에도 참여했는데, 삽입곡으로도 사용된 그 노래가 손지창이 작사까지 한 '사랑하고 있다는 걸'이다. 같이 활동한 김민종이 귀천도애로 표절논란에 휩싸이고[116] 아래도 언급되지만 김민교가 부른 주제가도 표절논란을 겪었지만 손지창이 부른 이 노래만은 그런 논란이 없어서 진정한 명곡 취급을 받는다.

한편,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제작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하여 필요 이상의 비용을 낭비했다고 회사 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으며 심은하가 맡았던 정다슬 역은 당초 우희진, 고소영, 박소현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영화 촬영 등으로 섭외가 안 되자 설득 끝에 심은하가 낙점됐다.

명성대학교의 촬영장소는 경희대학교 한영대학교의 촬영장소는 한양대학교이다. 그리고 경기장면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촬영했는데 당시 농구대잔치가 열리는 장소라 농구팬들의 뜨거운 열기를 생생하게 담을수 있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1994년 한 해동안 MBC가 미친듯이 걸작 드라마를 쏟아내면서 드라마 시청률을 완전히 독점했는데, 1994년 드라마 시청률 상위 7위까지가 죄다 MBC 드라마였을 정도로 드라마 왕국의 절정을 찍은 시기였다. 마지막 승부, 아들의 여자, 야망, M, 서울의 달, 사랑을 그대 품안에, 종합병원이 전부 1994년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1995년부터는 막 전국방송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SBS모래시계KBS2 주말 연속극 젊은이의 양지 등이 엄청난 강세를 보이면서 상황이 뒤집혀 MBC가 주춤하게 된다.

참고로, 드라마 출연배우 중 손지창, 이상아, 허준호는 이 작품 1년전에 방영된 걸어서 하늘까지에 출연했었다.

MBC가 1986년 이후 세로쓰기 제공 표기 디자인을 적용한 마지막 드라마이다.

2024년 1월 3일, 첫회 방송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동년 2월 22일, 마지막회 방송 30주년을 맞이했다.

8. 주제가

슬램덩크와 더불어 농구[117] 붐을 일으킨 드라마답게 작품 자체도 유명했지만, 가수 김민교[118]가 부른 주제가 마지막 승부[119] 역시 큰 인기를 끌며 작품을 빛내는 데 일조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KBS의 가요톱10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했을 정도다.

그 뒤 이 곡이 일본의 여가수 테라다 케이코[120]가 1992년 발표한 노래인 지미 존슨(Jimmy Johnson)이 작곡한 '파라다이스 윈드(PARADISE WIND)'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1994년 당시 한 시청자의 제보로 제기되었고, 이 논란은 현재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마지막 승부 주제곡


PARADISE WIND - 테라다 케이코

이후 종영 직후 일부 멜로디를 수정하여 공연윤리위원회(공륜) 재심의를 받아 표절 판정은 면했다. 당시 기사 그러나 수정된 버전은 일부 방송에서만 나왔을뿐, 실제 음반 발매는 초기 버전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래를 부른 김민교는 현재 트로트 가수로 활동중이라 가끔 마지막 승부 주제곡을 부를 때 1994년과는 확연하게 다른 톤이다.

안방(?)인 MBC의 경우 1993년 10월 '결정! 최고 인기가요'가 종영된 뒤 1995년 4월 인기가요 베스트 50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가요 프로그램이 없었던 탓에 종영 후에는 자취를 감췄지만, 그 대신 KBS 가요톱10 무대에 올라서 1994년 3~4월 5주 연속 1위를 달성하여 골든컵까지 수상했다. 맨 처음 무대에 올랐던 1994년 2월 23일 방영분에서는 립싱크로 활동했던 대신 농구 선수와 치어리더가 등장하는 화려한 무대로 주목받았고, 한 달 후인 3월 23일자부터 5주 연속 1위를 할 때는 표절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새로운 편곡 + 후렴구 여성 코러스 추가를 통해 색다른 버전으로 활동했다. 거기에 올 라이브로 김민교의 가창력이 돋보인 건 덤. 1994년 4월 20일 5주 연속 1위 무대

다만 MBC에서도 나오긴 했는데, 종영 후인 1994년 4월 16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심은하, 손지창, 김원준이 함께 불렀다. 직접 들어보면 후렴구가 확연히 다른데 이게 바로 수정된 버전. PARADISE WIND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1] 케이블TV는 출발단계여서 지상파 외에는 채널이 없던 그 당시 한국 내에도 시청자가 많았다. 한국에 어느정도 알려진 계열사로는 Channel V가 있다.[2] 본래 엔딩이 드라마 촬영중 변경되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종원이 드라마 촬영 중 부상을 당하게 되고, 때문에 본래 엔딩에서 장동건이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둔다는 설정이 이종원으로 변경되었다.[3] 당시 신부전증에 걸린 어머니의 치료비를 지원해준다는 명성대로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끼워주기로 한 철준, 호성은 공중에 떠버리게 된다. 신라대 진학이 무산된 친구 호성(박철)은 방황하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철준과 동민의 사이는 순식간에 틀어져버린다. 그런데 정작 치료비를 지원받은 동민의 어머니는 결국 병이 악화되어 사망, 이후 다슬(심은하)을 통해 전후 사정을 알게된 철준은 동민과 화해를 하게되고 선의의 라이벌로 거듭나게 된다.[4] 사실 명성대에서 철준은 받아주기로 했는데 철준이 의리상 가지 않았다. 극중에 이 이야기는 여러 번 나온다. 설정상 신라대와 명성대가 쌍벽을 이루는 명문사학이었고, 당시는 대학에서 실업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끼워팔기가 있었기 때문에 명문대로 진학해서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대기업이나 금융공기업 실업팀에 입단해서 벤치라도 달구다가 그 쪽 직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윤철준이 의리상 명성대로 안 따라간 것도 굉장히 큰 걸 포기한 일이었다. 다만 고등학교 때 경기 장면들을 보면 윤철준도 주전으로 뛰는 선수였는데 이동민의 배신이 있었다고 해도 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가 갈 대학이 없었을지는 의문이다.[5] 당시 철준이 입학한 과가 농축산학과. 지금도 높은 편은 아니지만 당시에 농대의 이미지는 모든 대학의 최하위권 이미지라 작중에서도 '꼭 지 같은데 들어갔네...' 라면서 한마디 들었다. 사실 초, 중, 고 내내 운동만 하던 철준이 1년도 채 안 되는 수험준비로 서울 소재의 유명대학에 한 번에 합격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일이다. 드라마 설정상으로 성적이 웬만큼은 잘 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대학으로 나온다. 모티브인 한양대의 위상이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연고대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인 걸 생각하면 농축산학과라고 해도 들어가기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6] 극 초반에 고등학교 시절 시합 장면을 보면 득점을 잘 못하는 포인트가드로 표현된다. 또한 철준이는 재능은 있는데 게으르다는 호성의 대사, 복수심 말고는 농구하는 절박한 이유도 없다는 본인의 이야기 등을 보면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재능은 있으나 농구에 큰 열의도 없었던 듯 하다.[7] 명성대에서 철준이까지는 같이 받아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철준이 "나더러 너(이동민)와 똑같이 치사한 놈이 되라는 소리냐?"며 거절.[8] 윤철준이 대학 2학년, 이동민이 3학년이던 때의 대학 대회 4강에서 철준의 버저비터로 한영이 명성을 이겼을 때, 빡쳐서 애들 군기 잡으러 왔다가 동민, 용호, 만재가 술을 마시면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철준의 실력이 확실히 강팀의 에이스 급으로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셋 다 철준의 실력이 늘었던 것이 자기들의 패배 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용호와 만재는 철준의 실력에 크게 놀라워하기도 한다.[9] 포인트가드라고 한다지만 드라마에서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무조건 슈팅가드이다. 포인트가드는 철준과 용호이다.[10] 당시에는 작품 외적으로 상당히 센세이션한 기술이라 많은 어린 선수들이 따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슛이 현실에 그것도 실전에서 통할리는 없었고, 작품이 끝난 후에 뭉쳐야 쏜다에서 손지창 본인이 사실 말도 안되는 슛이지만 드라마니까 가능한 슛이라고 언급을 했다. 다만 진짜로 전혀 말도 안되는 슛은 아닌데, 일반인일 경우에는 골대에서 3~4m이내 그리고 선수라면 골대에서 4~5m이내의 거리라면 성공 여부를 떠나서 시도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드라마상에서는 이걸 3점 슛으로 쏘고 성공률도 50%도 넘어가다보니 판타지 슛이 되어버린 것.[11] 이건 나중에 이동민의 어머니가 위독할 때 병원에 들렸던 미주가 이동민의 아버지에게 사정을 들은 뒤에야 알게 될 정도로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동민 아버지 말에 따르면 상황을 이야기하자는 말에 이동민 본인이 뭘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하겠냐며 자기 혼자서 나쁜 놈이 되어 떠안고 가겠다는 식으로 묻고 갔다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안 좋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이동민의 아버지는 이유를 묻는 고등학교때 농구 코치에게도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2] 다슬에게 동민의 사정을 전해 들은 철준이 동민에게 와서 다그치며 한 말인 "넌 임마, 진짜 배신자보다 더 나쁜 놈이야. 알어? 너 혼자서만 잘난 척, 최고인 척 모두 다 덮어 쓰고, 뭣도 모르는 우리한텐 한을 품게 하고 독을 품게 하고 악을 품게 하고, 그저 널 이기기 위해 몸부림 치고 발버둥 치는 그런 인간들로 만들어 버렸어. 그래, 나도 호성이도, 우린 너한테 친구도 뭐도 아니었어." 라는 대사는 이동민의 선택이 결과론적으로 친구들에게 어떤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를 잘 알게 해 준다. 본인은 그냥 구질구질한 사람이 되기 싫었던 것이겠지만 그게 친구들에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이다.[13] 그 당시 경제 수준으로 새내기 여대생이 스쿠프를 몰고 다닌 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 당시에는 교수들도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14] 동민이 어머니 돌아가실 때 이동민 멘탈 챙겨주고 옆에서 제일 많이 위로해 준 게 미주였는데, 그러면서도 동민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니 울면서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15] 현실의 연세대학교를 모티브로 하였다. 물론 이름은 명지대학교에서 따왔다. 유니폼도 당시 연세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 그러나 촬영장소는 전부 경희대학교이며 최종화에서는 빨간색 유니폼(빨간색은 고려대의 색깔이다.)을 입고 나온다.[16] 오히려 초반에는 이동민보다 더 뛰어난 선수로 묘사된다. 명성대는 이미 장용호를 스카우트했고, 이동민과 김선재 둘 중 하나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으며, 김선재를 잡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고교 대회 결승전 성운고(이동민의 고교)vs세영고(김선재의 고교)와의 경기에서 역전 3점슛을 넣고 우승을 이끈 이동민의 활약상을 보고 갱기를 망친 김선재 대신 이동민을 스카우트한다. 결론적으로 대학 입학 때 랭킹은 장용호>이동민>김선재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학 생활 초반 청소년대표 선발에서도 이동민을 이기고 선발되는 등 초반에는 이동민보다 경쟁에서 약간 앞서는 선수로 나온다.[17] 어느 정도냐면 전통적인 슛터인 동민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필살 회오리 3점 슛을 몇 번 보고 연습한 것만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정도이다.[18] 선배들이 집단구타를 할 때 종종 막아주었는데, 처음에는 빌면서 막아줬고 그 다음에는 자신도 주먹을 써보겠다고 말했다.[19] 한번은 호성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동민에게 "너같이 친구를 배신한 놈은 까야 제맛"이라면서 기합을 준 적도 있다.[20] 대학의 감독이 신입생들을 강하게 몰아붙이며 선배들을 시켜서 툭하면 기합이나 나머지 훈련을 시키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니 가능한 행위였다.[21] 특히 경기 중 난투극 때 선재에게 구타당하는 동민을 보면서 눈이 완전 뒤집히며 흥분하는 장면을 보면 안다.[22] 이동민과 장용호 이 두 사람이 들어온 뒤의 명성대 농구부는 작중에서는 실업팀도 잡아먹는 국내 최고의 농구팀이었는데, 항상 라이벌로 생각하던 신라대도 아니고 한 번 해체까지 한 한영대에게 패배한데다 복수하겠다고 이 악물고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설렁설렁하니 실망한 것. 물론 실망은 실망이고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행동이 맞다.[23] 이 때는 이동민을 아끼기 시작했을 시절이긴 했다.[24] 왕따당하는 사람이 받는 심리적인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어떤 이유에서든 왕따 조장이라는게 지도자로서는 절대 실격인 이유.[25] 끼워팔기로 갔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 시대에는 대학에서 실업팀 가는 데도 끼워팔기 같은 게 있었다. 보통 이렇게 된 경우 벤치에 좀 앉아있다가 은퇴해서 해당 기업의 영업사원 같은 게 되거나 했다.[26] 사실 그냥 실력으로 뽑혔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닌 게, 최상위 명문팀의 식스맨이라면 2, 3라운드로 넘어가서 픽이 될 수도 있다. 굳이 농구라서는 아니고 어떤 스포츠도 강호의 서브가 약체의 주전보다 더 잘하는 경우는 흔하다.[27] 현실의 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를 혼합하여 모티브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단 한양대는 실제로 중앙대와 라이벌리를 형성하는 관계고, 전남 여수시에 있는 한영대학교와 무관하다. 유니폼은 당시 한양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이며 촬영도 한양대에서 했다.[28] 하도 얘네가 싸워대니까, 답답해하던 주장 용주가 얘네를 데리고 가서 술을 먹이면서 하소연을 한다. 둘 다 의외로 타도 이동민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두 사람이 그 날부터 의기투합하게 된다. 윤철준은 이동민만 잡을 수 있다면 김선재에게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29] 이건 1988년 2월 19일에 있었던 기아 vs 삼성의 난투극을 오마주한 거다. 대걸레를 들고 휘둘렀던 한기범에 말하길, 기아 김유택이 삼성 임정명에게 뺨을 맞고, 김유택도 싸대기를 돌려 줬으며, 한기범은 말리기 위해 대걸레를 들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DPjhELmLlY[30] 농구부가 잠시 해체될 당시 폭력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무릎을 다쳤는데, 명성대와의 경기 중에 루즈볼을 잡으려다 그 부위를 확인 사살당했다.[31] 그래서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종원이 출연한 주말 드라마 마음이 고와야지에서는 일종의 배우 장난으로 이종원의 배역에 이 설정을 그대로 써먹어서 다리를 저는 전직 농구선수라는 설정을 반영했다. 물론 두 작품의 연관성은 없지만, 작중에서 경기 도중에 부상을 당한 장면에 대한 회상씬으로 마지막 승부의 이 장면이 가끔씩 나오기도 했다.[32] 실제로 농구선수 출신이다.[33] 극중 덩크슛을 한 인물들은 모두 작대기 덩크슛을 했고, 윤철준(장동건)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의자를 딛고 덩크슛을 하며 카메라 앵글은 하반신을 안보여줬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한다고해도 장동건같은 일반인이 작대기 덩크라도 하려면 최소 185~190cm는 넘어야 한다.[34] 주먹다짐을 하는 윤철준과 김선재에게 따귀를 날리지만, 21세기가 아니라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술까지 사줘가면서 둘이 제발 화해하라고 어르고 타이른다.[35] 그래서 허재를 비롯한 농구대잔치 세대의 선수들이 대부분 후배들이라서 친한 사이다.[36] 극중에서 키만 크고 힘이 없는 센터 자원으로 묘사된다. 당연히 실업농구에서 그리 필요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37] 사실 저 시절에는 대학졸업장만 있어도 취업이 잘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극중에 나온 한영대는 농구단을 갖춘 꽤 괜찮은 대학이다. 극중이지만 허재가 선배로 나온다.[38] 실제로도 안목이 떨어져보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가령 철준의 입단 테스트를 할 때 종순이 "2년 쉰 선수답지 않게 기초체력이 대단하고, 순발력도 있다", 용주가 "슛은 부정확하지만 근성과 센스가 있다"고 칭찬할 때 혼자만 특출난 장점이 없다고 혹평했고, 명성대 전에서 철준과 선재가 이동민에게 고의 파울을 시전하자 유 코치가 작전타임을 신청해 "그러다가 큰일난다"고 경고했지만, 이 분은 "이 페이스로 나가자"고 했다(...)[39] 철준과 선재가 시합에서 협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홧김에 그만둔다고 말한 유학수를 달래며 자네가 없으면 난 어쩌냐고 말할 정도였다.[40] 명성대 장용호가 제일 존경하는 농구선수이며, 제자 스카웃 문제로 명성대를 찾아왔을 때 엄청난 빠심을 보여줬다. 대표팀 선발 회의에서도 명성대 감독이 우리가 중국을 이기려면 유학수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가 언급했다.[41] 농구단을 가지고 있을 인서울 정도의 대학으로 묘사된 한영대라고 생각한다면, 총장 전용 차량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보통 심지어 규모가 작다는 대학에도 총장 차량 운전직 직원 TO가 있다.[42] 고려대학교를 모티브로 했다. 이름부터가 고려대를 비교하면서 따온 이름이며, 명성대와 명문대이고 라이벌 구도로 엮는 것 등. 당시 고려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이다. 당연히 부산에 있는 신라대학교와는 무관하다. 거기다 방영 당시에는 부산여자대학이었다.[43] 현재는 KBL에서 경기감독관을 하고 있다.[44] 명성대 감독 말로는 자기네도 할 만큼 해봤는데 상대가 안되더라고 했다.[45] 후에 서울 SK 나이츠에서 선수생활을 했다.[46]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당시 농구대잔치는 국내 농구 한정으로 가장 큰 대회였으며 지금으로 치면 프로농구를 싸대기 날려버릴 정도의 위상이었다[47] 극 15회에 철준ㆍ다슬ㆍ영아 모두 모인 가족회식 자리에서 본인의 이름을 윤칠성이라고 언급한다.[48] 당시 장항선은 월, 화요일엔 MBC의 마지막 승부, 수, 목요일엔 KBS2의 폴리스에서 조직 보스 역으로 출연했는데, 마지막 승부에서의 철준이 아버지와 폴리스의 그 악독한 조직보스의 갭에 당시 어린 시청자들이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카더라. 근데 뭐 여기서도 그다지 나긋나긋한 역은 아니었는지라...[49] 자기 친구라는 왔다식당 사장(박종설 분)에게 대놓고 국가대표가 될 아들이다라면서 자랑질을 해서 철준이 약간 황당해했었다. 그래도 나중에는 아들이 역전골로 명성대를 이기자 마자 그 왔다식당 사장에게 '윤씨, 축하하네' 하는 소리도 들었으며, 이 때도 아들자랑을 하며 한다는 소리가 '오늘 장사 땡이다..!! 술푸자, 술퍼...!!' 였다.[50] 철준이 국가대표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이는 반응은 그야말로 츤데레의 교과서. 철준이랑 여동생 앞에서는 뭐 그까짓 것 가지고 수선피우고 난리냐느니 국가대표가 어디 이 놈 한 놈 뿐이냐느니 하더니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죽은 아내의 사진을 꺼내들고는 온갖 감정을 다 드러낸다.[51] 주요 대사는저..저...저... 썩을 놈이... 야.. 이놈아...!! "우리 철준이 나이스여!"[52] 아들이 다슬이땜에 힘들어 하는 거 보고는 동네 선술집에 다슬이를 끌고가며 말발로 애 마음을 잡아놓을 정도.[53] 철준이 대학 진학을 물먹고 방황하던 시절 보다 못해 집에 있던 농구코트를 부숴버렸을 때 철준이 화를 내며 따졌을 때 한 번 뒤엎고, 한영대 농구부가 해체되고 방황할 때 학교을 그만 다니겠다고 말하자 빡쳐서 또 뒤엎는다[54] 제4공화국(드라마)에서 그분으로 나온 배우. 현재는 중앙일보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다.[55] 삼광초라고 했지만 극 중에서 묘사한 현재 시점에서 몇년 앞으로 당겨야하므로 1980년대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국민학교였다.[56] 여담으로 당시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만이 감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코치일 수도 있다. 물론 교육대에서 초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임용고시에서 합격하여 이 학교에 부임했다면 감독다운 감독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인물이 고령의 인물로 표현되었는데 그 시절에 남자 초등학교 교사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아서, 운동선수 출신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면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57] 사실 이 작품에서는 샤프함과는 거리가 있고 다소 잘 울고 유약한 이미지. 게다가 슬슬 탈모와 체중이 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오늘날의 박철을 생각하면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이다.[58] 진학이 좌절된 윤호라는 친구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친구는 졸업 후 배를 탄다(...)는 언급만 나온다.[59]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청춘스타였으며, 엄연히 크레딧 4번째를 차지하는 최소한 서브여주는 된다. 당당히 주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절대 조연이 아니다. 이 드라마 이전에도 그리고 살짝 그 이후에도 주연급 포지션은 갖고 있었다.[60] 최수종의 1990년대 드라마 커리어는 이 당시에도 좋았고 이후에도 좋았다. 시청률로 본다면 질투, 파일럿 등으로 청춘스타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점보다 첫사랑, 야망의 전설에 출연하던 1990년대 중후반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김수현과 유동근을 비교하지 않듯이 청춘스타의 바운더리를 벗어나고 있던 상태였다.[61] 최수종, 최민수, 손창민 등은 성인연기자로 바뀌어 가던 시점이었고 홍학표, 김찬우 등은 정점에서 조금 내려온 시기였고 김민종, 장동건, 이병헌, 이정재 등은 아직 손지창급 위상까지는 성장하지 못하였던 시기[62]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이 이때 당시부터 유행했다.[63] 최진실, 김희애, 채시라, 이미연 보다는 조금 낮고 김혜수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위상이었다. 김혜수와 같이 CF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이상아 비중이 더 높았을 정도[64] 마지막 승부 당시 탈모와 체중 증가가 슬슬 보이긴 한다.[65] 재벌2세로서 가난한 치과의사의 딸을 사랑하는 역할[66] 박재훈은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중 전운, 송기윤, 신귀식과 딸부잣집에 함께 출연하는데, 전운은 자신의 여친 권우령(변소정 분)의 할아버지로서, 신귀식은 자신의 아버지 정두일 회장(신성일 분)의 비서로서 박재훈과 접점이 많지만, 권차령(하유미 분)의 남편이 될 뻔한 송기윤과는 접점이 없다.[67] 참고로 초기 캐스팅 기사에는 미남이시네요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정용화가 참여한다고 했었다.#.[68] 35살의 장동건과 현재 35살이 된 이민호의 위상을 비교해본다면 이민호가 1단계 이상 낮다. 20살의 장동건과 20살의 이민호도 마찬가지, 박신혜와 심은하의 비교도 마찬가지... 나머지 배우들의 비교도 마찬가지이다.[69]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저 시절부터 멜로를 하던 1970년대 초반생의 50대와 40대 후반들이 아직도 멜로의 주인공을 하며 20대들과 바운더리를 나눠먹고 있다. 1990년대에는 50대들은 할아버지나 결혼 직전의 자식을 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지금의 장동건을 보면서 전원일기의 최불암을 떠올릴 수 있는가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1990년대 초반까지의 20대~30대 청춘연기자들은 정말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다.[70] 함께 더 블루를 결성한 사이드킥김민종이 이후 1990년대 후반을 휘어잡는 멀티엔터테이너가 된다. 지금도 김민종의 위상이 높지만 1990년대 후반의 정말 컸던 인기에 비하면 이상할만큼 언급이 안되는 게 사실이다.[71] 의가형제는 손창민이 진 주인공이었으며 모델은 스토리상 비중은 장동건이 더 컸으나 한재석이 더 돋보이는 역할이었다.[72] 당시 주말 예능프로에 나온 담당 PD의 인터뷰에서는 최종후보로 남은 건 당시 전속탤런트 동기간인 심은하와 황인정(커리어는 거의 조연뿐이며, 어린이 뮤지컬 인어공주에서는 에리얼이었다고 한다). 다만 황인정은 그 무렵에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 되면서 심은하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 인터뷰대로라면 이상아는 당시 다슬이 배역의 초기 후보중 하나였던 듯하다.[73] 손지창이 직접 원래 이상아가 다슬이 배역이었고 미주 역할은 다른 배우가 하게 되어있었으나 미주 배역을 하기로 한 배우의 연기에 문제가 많아서 연기가 되던 이상아가 미주 역할로 들어가고 심은하가 파격적 발탁이 되었다고 한다.[74] 황후의 품격, 펜트하우스 시리즈 둘다 막장극의 대모 김순옥의 히트작이다.[75] 옥소리와 이혼 사건도 큰 몫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논란도 없진 않았다.[76] 아닌게 아니라 체육을 전공으로 석사까지 받은 엘리트이다.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운동능력은 차이가 엄청나다고 봤을 때 극 중에서 이 정도 스펙을 갖춘 남자배우는 박재훈 정도 밖에 없다.[77] 마지막 승부의 성공을 맛본 MBC는 이후에도 스포츠 드라마를 계속 만들게 되는데, 그 마지막 승부의 스포츠 드라마 후속으로 기획된 것이 박형준이 주연이었던 도전이었고 도전이 실패한 후 또 다시 스포츠 드라마를 시도한 것이 장동건이 주연이었던 아이싱이었다.[78] 응답하라 1988에서도 나온 저 유명한 의자 넘어뜨리기의 리복 CF의 주인공이다.[79] 지금은 180대 후반의 배우들도 더러 있지만, 이 당시엔 지금보다 평균 신장이 작았기 때문에 박재훈의 188이라는 키가 지금으로 치면 190대 초중반 정도의 느낌이었다.[80] 이 경우는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아니라, 첫 방송이 되는 동시에 스타가 되어갔었던 경우(...)[81] 여기에 당시 한창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NBA의 인기도 한 몫한다[82] 당시 연세대 농구부는 문경은의 입단 이후 실업팀과 맞짱을 뜨는 전력을 갖췄으며 이상민, 우지원이 줄줄이 입학하면서 최초 대학팀 우승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후 1993학번 서장훈이 입단하면서 결국 1993-94시즌에서 우승. 연세대의 우승에는 이 드라마의 열기도 한몫했다는 썰도 있다.[83] 참고로 고려대가 우승후보급 강팀이 된 건 이듬해 현주엽(1994)이 입학하면서부터다. 1993-94 당시에는 중위권팀[84] 대표적으로 이상민, 우지원, 전희철, 문경은 등이 있었다.[85] 슬램덩크로 농구인기 상승, 마지막 승부로 대중적 농구인기 상승, 당시 농구대잔치의 미남 선수들로 여성들에 대한 농구인기 대폭 상승.... 결국 KBL이 출범되는 계기가 되었다.[86] 안타깝게도 유재학은 무릎부상 때문에 28세에 은퇴해버렸다.[87] 동국대학교 출신의 센터로 은퇴 후 동국대 감독을 역임했다.[88] 1995, 96학번 선수들을 여기에 넣기도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의 직접적인 수혜자로 보기 어렵다.[89]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초로 1만 득점 달성을 이룩했다. 서장훈이 1만 득점을 달성할 수 있는 이유는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슛터치가 뛰어나 중장거리 슛을 잘 쏜 덕에 롱런했기 때문이다.[90] 응답하라 1994 첫 회에 성동일쓰레기와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던 성나정을 향해 "야! 이상민이 나온다!"고 말하는데 그 직후에 국대 유니폼을 입은 이상민의 레이업 장면이 나온다.[91] 이 쪽은 엄밀히 따지면 야구가 소재로 쓰였을 뿐 장르상으로는 코미디 영화지만.[92] 만화가 원작인 2009 외인구단은 논외고, 2011년작 영광의 재인이나 2012년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이어서 나온 난폭한 로맨스에서도 야구가 나오지만 둘 다 주요 소재는 아니다.[93] 지금도 가십거리에 올라갈만한 일이지만 그 당시 여배우의 동거, 연애설은 커리어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94] 역전까지는 아니다. 손지창은 솔로로도 김민종과의 듀엣으로도 앨범을 내는 가수에다가 싱어송라이터(작사)이기까지 해서, 연기 원툴(...)인 장동건과 영역 크기 자체가 달랐다.[95] 1980년대까지는 드물지 않은 광경이었다. 남매가 있는 집안인 경우 아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후 대학 진학, 딸은 상업고등학교(주로 여상) 진학 후 취업인 집이 꽤나 많았다. 그보다 더 이전 세대의 딸들은, 상고조차도 진학하지 못하고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상경하여 버스 안내양이나 여공 등 열악한 일을 하여 오빠/남동생을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할 것을 강요당했다. 다만 1990년대에는 이미 그러한 사연은 옛날 사연으로 여겨져 가고 있는 추세였으니 철준의 여동생이 상황이 조금은 어색했다.[96] 어떤 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은 2020년대의 젊은층(이대남)이 훨씬 큰 편이다.[97] 이를테면 시대에 따라 불법 공유, 구타 등 이러한 영역에 속하는 범죄들은 많다. 2020년대만 해도 야동은 엄연히 대한민국에서 위법이다. 물론 단순 시청이 무조건 형사처벌 되는 것은 아니나 형사처벌될 수 있는 경우도 있게 되었고, 특히 토렌트 등을 통한 공유는 배포를 포함하기에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럼에도 야동 공유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못 느끼고 방송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해도 되는 영역에 속하는 범죄'라고 다수가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엄정하게 법집행을 하여 야동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98] 몇년 뒤 나온 영화 접속에서도 술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으니 운전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99] 실제로 이 부상 때문에 고교 때 1년 유급을 했고 연세대학교 진학 후에 부상이 재발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100] 당시 유행하던 개그 프로그램 중에 '옥의 티'라고 드라마들의 오류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마지막 승부가 가장 많이 나왔다. 오죽하면 마지막 승부의 종영 이유가, 이 프로그램 때문에 하도 시달려서 그랬다는 루머가 생길 정도. 물론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되고 애초부터 16부짜리 미니시리즈였다.[101] 열차 번호, 물론 1994년이니까 LED식 열번 표기가 아니라 롤지식 혹은 판때기식 열번 표기다.[102] 예를 들자면 2호선의 경우 전면부가 같은 외형일지라도 MELCO 초퍼는 열번 표시창 및 행선 표시창에 고무 테두리가 없고, 열번이 3자리 표기(MELCO 최후기형은 운전실 유리창 아래 부분에 4자리 판때기식 표기이다)이지만 GEC 초퍼는 열번 표시창 및 행선 표시창에 고무 테두리가 있고, 열번이 4자리 표기이다.[103] 2022년 기준 교육대학을 제외하고 초등교육과가 설치된 대학은 이화여자대학교, 제주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뿐이다. 문제는 손지창, 허준호, 박형준 등은 남자라 이화여대는 선택할 수 없어 여기에 갔다면 접점이란게 없었을 것이고, 199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상을 고려하면 2008년에서야 제주대와 제주교대의 통합으로 신설된 초등교육과에 입학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교원대는 종합대학이 아니다.[104] 과거 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에서 활약했던 지화동이 중초임용으로 초등학교 정교사가 되었다고 한다.[105] 이 드라마에서 작가가 생각한 이상향 중 하나가 결국 돌고 돌아 어린애들 앞에 서는 것이었기도 했는지 선재도 철준도 다슬이도 그 길을 갔고, 동민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로 그런 자리 하나 구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하고 돌아와 아이들 앞에서 어쩌구 하는 클리셰는 꽤나 진부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그만큼 많이 쓰인다. 다슬이의 직업이 초등교사인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106] 이것 뿐만 아니라 드라마 전반부에는 당시 학생체육관 내에 있는 온갖 광고판이 등장한다. 현대자동차도 이 중 하나.[107] 이 분은 아예 체대 출신이다. 실제로 드라마가 뜨고 나서 예능프로에서 농구실력을 자랑한 적도 있었다.[108] 당시 연예계 대표적인 몸짱스타였다.[109] 대략 운동신경이 있는 이미지는 되었다.[110] 그 당시 손지창은 180cm의 키에 60kg 정도되는 말라깽이 수준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근력이 없어서 공을 밀어서 던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111] 농구선수 출신이었지만, 당시에 신인급이나 다름없어서 손지창 역할을 맡기에는 당연히 무리가 있었다. 당시에도 이후에도 연기력으론 조연도 겨우 하는 편이다.[112] 체대 석사까지 다닌 엘리트 체육전공자였고 나름 인기 청춘스타였지만, 손지창에 비해 두단계 정도 아래 레벨의 입지였던 것은 사실이었다.[113] 왜군 전문배우이며 미역으로 웰빙하라의 그 배우다.[114] 서울-인천간 철도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그 당시 나름 인지도 있었던 여배우 이름이다. 대단히 유명했던 배우는 아니고 그냥 예능 넌센스퀴즈 같은데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긴 연예인' 정도의 문제가 나오면 답으로 등장하던 배우. 참고로 첫번째로 이름이 긴 연예인은 장항선이라고(...) 카더라.[115] 그냥 가수가 아닌 자기 앨범의 전 곡을 작사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였다.[116]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하다가 일본 노래 표절로 확정되어서 방송출장 정지를 당했고 가요톱텐에서 표절에 대한 사과를 한 뒤 2년 동안 가수 은퇴 수순을 밟았다.[117] 사실 슬램덩크의 붐으로 이 드라마가 만들어졌다고 보는게 맞다[118] SNL 코리아의 그 사람과는 동명이인이며 옥슨 89의 임원으로 '청개구리'로 금상을 차지했다.[119] 1990년대 드라마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타이틀 OST는 항상 드라마 제목에서 따오곤 했다.[120] 5인조 여성 록밴드 SHOW-YA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