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0:32:10

이장호

이장호 감독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옥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03년
이름 이장호
분야 영화
옥관문화훈장(4등급)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감독상
제18회
(1979년)
제19회
(1980년)
제20회
(1981년)
정진우
(심봤다)
이장호
(바람불어 좋은 날)
임권택
(만다라)
제20회
(1981년)
제21회
(1982년)
제22회
(1983년)
임권택
(만다라)
이장호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두용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
이장호
李長鎬
파일:0002721521_001_20180821105742745.jpg
출생 1945년 5월 15일 ([age(1945-05-15)]세)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79kg
데뷔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
형제 남동생 이영호
배우자 정은영
자녀 이슬기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과 / 중퇴)
소속 하보우만 (대표)
경력 1971 ~ 1972
민족극단 단원
1965 ~ 1973
신필름 조감독
1984 ~ 1985
이장호워크숍 설립 및 운영
1986
판영화사 설립, 대표이사
1986 ~ 2000.8
중부대학교 예술학부 연극영화학전공 부교수
1996 ~ 2000.8
한국영화연구소 이사
1996.12
아트센터 영화학교 공동설립, 사무총장 운영위원
1997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2000.9 ~ 2010
전주대학교 영상콘텐츠학부 영화영상전공 교수
2002.11
서울시 문화상
2003.10
옥관문화훈장
2006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2010.2 ~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2011.4
2011 경기국제항공전 홍보대사
2011.7
2012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
2013.4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부학장
2022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2023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직위원장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필모그래피
3.1. 연출
4. 수상 경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2. 생애

1945년 5월 15일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영화 검열관이라 국내에서 제작, 수입된 영화들을 개봉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미리 볼 수 있었고,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계로 진출할 꿈을 키웠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16회)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배우다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1]으로 입봉에 성공했고, 당시 별들의 고향은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당시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46만명을 모았다.

이후 공포 영화 등을 포함한 4편의 작품을 빠르게 만든 후,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3~4년 간 활동정지 상태로 있다가 1980년 해금 후 복귀작은 사회적인 소재를 적극 표현하였다.

배우 안성기의 성인 연기 복귀작 바람불어 좋은 날을 시작으로 어둠의 자식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바보선언,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의 외인구단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흥행시키면서 배창호와 상호 경쟁하는 1980년대 대표 감독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기 들어와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부터 기획영화의 시대가 오면서, 영화의 트렌드가 바뀌고, 신예감독과 신예배우들이 들어서면서 세대교체가 되면서 본인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

1992년, 당시에는 엄청난 제작비인 15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가면서[2] 러시아와 일본을 오고 가며 촬영한 <명자 아끼꼬 쏘냐>가 제대로 비평과 흥행에 실패하면서 주연과 제작을 맡은 김지미의 영화 현역을 끝장내 버렸다.

1995년에 ‘바보 선언’의 후속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천재 선언>또한 흥행에 실패한 후 영화계를 잠정은퇴하게 된다. 본인과 함께 1980년대를 대표했던 임권택 감독이 바뀐 영화 환경에도 적응하며 2000년대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찍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일.

2014년, 19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본인의 20번째 영화인 시선을 연출하지만, 평론가와 관객의 싸늘한 시선 끝에 전국 관객 11,900여 명을 기록하며 소리 소문 없이 내려졌다.

2020년, 신한대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 함께하는 NFF 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인태 국회사무총장매제 중 한 명이다.

2022년 북한 비난 및 반공 우선 등등의 이념을 내세우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현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라 밝혔는데, 제목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할 것이라고 한다. # 당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알리겠다며 기획을 시작했다가 현재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부터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루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스케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보수진영의 궤멸로 끝나서 영화가 엎어질 것 같다는 예상이 많다.

1990년대에는 영화계 일반의 정서에 맞추어 진보적인 언행을 보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매우 보수적이 되었다.

3. 필모그래피

3.1. 연출

연도 제목 역할 비고
1974 파일:별들의고향.jpg
별들의 고향
감독 데뷔작
1974 파일:어제내린비.jpg
어제 내린 비
감독
1975 파일:너또한별이되어.jpg
너 또한 별이 되어
감독
1976 파일:그래그래오늘은안녕.jpg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감독, 각본
1980 파일:바람불어좋은날.jpg
바람불어 좋은 날
감독, 각본
1981 파일:어둠의자식들.jpg
어둠의 자식들
감독, 각본
1981 파일:그들은태양을쏘았다.jpg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감독, 각본
1982 파일:낮은데로임하소서.jpg
낮은데로 임하소서
감독, 각본
1983 파일:바보선언.jpg
바보선언
감독
1983 파일:일송정푸른솔은.jpg
일송정 푸른솔은
감독
1983 파일:과부춤.jpg
과부춤
감독, 각본
1984 파일:무릎과무릎사이.jpg
무릎과 무릎사이
감독, 각본
1984 위대한 유산 감독
1985 파일:어우동.jpg
어우동
감독
1986 파일:이장호의외인구단.jpg
이장호의 외인구단
감독, 제작
1987 파일:나그네는길에서도쉬지않는다.jpg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감독, 제작
1987 파일:YSTORY(와이의체험).jpg
Y STORY(와이의 체험)
감독, 제작
1989 파일:미스코뿔소미스터코란도.jpg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감독, 기획
1992 파일:명자아끼꼬쏘냐.jpg
명자 아끼꼬 쏘냐
감독
1995 파일:천재선언.jpg
천재선언
감독, 각본
2011 파일:마스터클래스의산책.jpg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괴로우나 아름다워)
감독, 각본 옴니버스
2013 파일:시선.jpg
시선
감독, 각색

4. 수상 경력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74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 별들의 고향
1975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 별들의 고향
1980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바람불어 좋은 날
1982 제21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7 제2회 도쿄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8 제2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특별상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2018 제38회 황금촬영상영화제 영화감독부문 공로상
2019 제6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공로상
2019 제3회 신필름예술영화제 공로상
2021 제15회 상록수디지로그월드영화제 영화발전공로상
2022 제27회 춘사국제영화제 공로상


[1] 원작자인 최인호는 이장호 감독과 고등학교 시절 급우였다.[2] 당시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 3배가 넘는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