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용필의 백업밴드
1979년에 처음 결성되어 지금도 조용필과 함께 활동하는 조용필의 콘서트 밴드다.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조용필이라는 이름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묻히는 것이지, 이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의 실력도 어마무시하다. 멤버 하나하나가 각 분야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연주자이며, 실력은 대한민국 최정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즉, 위대한 탄생 멤버들 또한 그 분야에서는 '가왕급'인 셈.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최희선은 부활의 김태원, 백두산의 김도균같은 국내 일류 기타리스트들조차 형님으로 모시며, 김태원은 공식 석상에서도 최희선을 본인의 스승 혹은 사부로 모신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 외 베이시스트 이태윤[1], 드러머 김선중, 피아니스트 최태완, 키보디스트 이종욱, 코러스 멤버들 등이 모두 각 분야에서 프로 중 프로이며, 최고의 실력자들이다.[2]
조용필 콘서트를 다녀 온 젊은 세대 중 상당수가 위대한 탄생의 엄청난 사운드에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본인이 기타리스트 출신이었던 조용필은 일찌감치 밴드와 사운드의 중요성을 깨닫고, 1980년대 전성기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막대한 돈을 꾸준히 자신의 밴드와 멤버들에게 투자했다. 최고의 멤버들을 불러 모아서 악기, 장비, 무대 장치 모두 최고 수준으로 구비해 주었고, 완벽주의자인 본인의 성향에 맞게 곡의 편곡과 구성, 곡 연습 또한 늘 최고를 추구했다. 심지어 밴드 멤버들에 대한 수당과 처우까지 국내 최고였는데, 그래서 어떤 연주자가 '위대한 탄생' 멤버로 발탁이 되었다고 하면 연주자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일단 실력적 측면에서 국내 최고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거니와, 멤버들에 대한 처우 또한 최고였기 때문. 그래서 조용필의 전성기가 지난 1990년대 초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위대한 탄생'이 초대형 라이브 공연에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동안 조용필이 밴드에 막대한 금액과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수십 년이나 지난 조용필의 노래가 당대에서도 세련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신곡들과 견주어 촌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는 이유는 바로 밴드가 극강의 사운드로 노래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미세하게 매년, 매 공연마다 편곡 작업이 진행되고 그게 수십 년 동안 축적되다 보니, 시간이 흘러도 당대의 신곡들과 동등한 세련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밴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인 것.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들을 들어봐도, 매 공연마다 조금씩 사운드가 진화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곡들은 '몇 년도 전국 투어 라이브 공연 버전' 식으로 조금씩 연주가 달라지며, 점점 더 편곡과 구성이 세련되어진다. 거기다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콘서트 투어 중심 뮤지션이기 때문에 다른 곡과 접목시키는 능력도 상당하다. 40주년 콘서트에서 미지의 세계-여행을 떠나요 두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편곡이 그 예이다. 50주년 콘서트에서도 미지의 세계 후렴구를 반복하며 절정부를 한번 더 주는 듯한 효과도 편곡과 밴드의 힘이다.
1.1. 역사
원래 조용필의 백업밴드는 "조용필과 그림자"였으나 대마초 사건 이후 어두운 이미지를 벗기 위해 절치부심하여 "위대한 탄생"이라는 이름을 짓고는 혹독한 연습을 했다고 한다. 비공식 위대한 탄생 1기는 대구의 한 밴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베이스를 맡다가 조용필의 매니저가 된 사람이 훗날 대영AV를 만드는 유재학이다.1980년 추석 리사이틀을 위해 곽경욱(리드기타), 김택환(베이스), 김청산(키보드), 이건태(드럼)의 1기 라인업이 결성된다. 키보디스트 이호준이 객원멤버격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조용필 3집과 조용필 4집의 연주가 이들의 연주이다. 이 1기는 1982년, 멤버들이 "천하대장군"이라는 그룹으로 빠져나가면서 해산되었다.[3]
1983년 일본 NHK홀 공연을 앞두고 다시 송홍섭(베이스), 이호준(키보드), 변성룡(키보드), 김석규(기타), 백천남(드럼), 유상윤(키보드, 색소폰)의 대형 편성으로 재결성한다. 1983년의 멤버에서 송홍섭과 이호준을 주축으로 1988년까지 위대한 탄생을 이끌고 가는데, 그 기간 동안 위대한 탄생에 소속되어있던 아티스트의 면모는 화려하다. 일본인 기타리스트 아라이[4], 유재하, 김광민, 정원영, 김희현, 유영선[5], 김종진, 전태관, 최영준[6] 최이철[7], 임동신[8] 등이 있다.
2기 위대한 탄생은 당대를 대표한 아티스트가 많았던 만큼 멤버들의 작사 작곡 참여도 많았다.
- 조용필 5집 - 친구여, 이별의 뒤안길, 우울한 주말(inst.)(이호준 작곡)
- 조용필 6집 - 나그네 바람, 차라리 학이 되리라(이호준 작곡), 정말 모르겠네(송홍섭 작곡)
- 조용필 7집 - 내가 어렸을 적엔(최진영 작곡)[9], 사랑하기 때문에(유재하 작곡)
- 사랑과 인생과 나! - 이별뒤의 사랑, 청춘시대[10](유영선 작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이호준 작곡)
이렇듯 좋은 연주와 곡으로 조용필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던 위대한 탄생이었지만 조용필 개인사정으로(이혼, 건강악화, 각종 루머, 일본활동)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1989~1993년 사이 조용필은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괜찮아요"[11] 현 위대한 탄생 드러머 김선중이 있었던 "뮤직파티"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93년 조용필의 음악인생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조용필은 다시 한번 위대한 탄생을 조직하는데, 현재 멤버의 근간이 되는 3기 멤버는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김희현(드럼), 최태완(피아노), 한정호(키보드), 김영길(키보드)으로서 이 멤버는 위의 25주년 콘서트를 포함 많은 콘서트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12]에서 연주를 한다.
1995년 드럼의 김희현과 키보드의 한정호, 김영길이 탈퇴하며 1기 멤버였던 이건태와 송골매의 키보디스트였던 이종욱[13]이 각각 가입하며 4기가 만들어진다.[14]
이 멤버로 2003년까지 가다가 18집 활동 이후 이건태가 탈퇴하며 뮤직파티 출신 김선중을 영입하여 2023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15] 2013년 조용필이 오랜만에 내서 대박을 거둔 19집 라이브 공연때도 어김없이 공연을 도와서 조용필은 공연장에서 위대한 탄생 멤버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비록 조용필의 백업밴드이지만 멤버의 면면으로 볼 수 있듯 백업밴드 이상의 팀이며 음악욕심이 많은 조용필 때문인지 멤버들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고있다.
실제로 조용필의 팬클럽 중에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팬클럽이 있다.
1.2. 역대 위대한 탄생 멤버
- 0기(1979~1980): 김현기(기타), 박찬용(베이스), 최천섭(드럼), 김청산, 박병무(이상 키보드)
- 1기(1980~1982): 곽경욱(기타), 김택환(베이스), 이건태(드럼), 김청산, 이호준(이상 키보드)
- 2기(1983~1988)
- 1983 NHK홀 콘서트 : 김석규(기타), 송홍섭(베이스), 백천남(드럼), 이호준(피아노), 유상윤, 변성룡(키보드)
- 1984년(6집) : 김석규(기타), 송홍섭(베이스), 백천남(드럼) 이호준(피아노), 김효국(키보드)
- 1984년(팩스 뮤지카): 박청귀(기타), 송홍섭(베이스), 사무엘 오카모토(드럼), 김효국, 김효성(이상 키보드)
- 1984년 말: 박청귀, 최진영(이상 기타), 송홍섭(베이스), 사무엘 오카모토(드럼), 김효국, 김광민(이상 키보드)
- 1985년(7집): 최진영(기타), 송홍섭(베이스), 김정위(드럼), 김광민(키보드)
- 1985년 7월~1986년 초: 최이철, 임동신(이상 기타), 박강호(베이스), 김희현(드럼), 이호준(피아노), 한정호(키보드)
- 1986~1987(9집): 유영선(기타), 송홍섭(베이스), 김희현(드럼), 이호준(피아노), 김창남(키보드)
- 기타: 이중산, 김종진(이상 기타), 유재하, 정원영(키보드), 전태관(드럼)
- 3기(1993~1995):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김희현(드럼), 최태완(피아노), 한정호, 김영길(이상 키보드)
- 4기(1995~2004):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이건태(드럼), 최태완(피아노), 이종욱(키보드)
- 황세준(키보드, 1997), 권연우, 김령, 최훈(이상 코러스), 최정민(기타, 2002)
- 5기(2004~현재):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김선중(드럼), 최태완(피아노), 이종욱(키보드), 김효수, 김동원, 배영호(이상 코러스)
2. 노래
드렁큰 타이거 2집 앨범 및 타이틀곡3. MBC 방송 프로그램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약칭
자세한 내용은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문서 참고하십시오.4. 대신에프에스에서 만든 빵
국내 학교 매점에 납품하는 피자빵 제품이다.이후 이름이 시카고 피자로 개명되었다.
5. 빈대가족 시리즈의 가공의 프로그램명
자세한 내용은 위대한 탄생(빈대가족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1] 부활의 전신인 밴드 'The End' 이후 배철수와 함께 송골매에서도 활동했던 베이시스트. 현재는 다섯손가락의 멤버이며, 한때 국내 음반의 베이스 세션 절반을 이태윤이 담당했다고 했을 정도로 국내에서 독보적인 연주자로 꼽힌다. 당시 이태윤과 더불어 나머지 절반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전설적인 베이시스트 신현권.[2]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20~30년째 활동 중이다.[3] 조용필은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말했다.[4] 훗날 귀화해서 박청귀라는 이름을 쓴다.[5] 훗날 유영선과 커넥션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슬픔은 사라지고"라는 히트곡을 남긴다.[6] 조용필과 그림자부터 함께한 싱어송라이터[7] 정식 멤버보다는 기타 세션으로 몇몇 공연에 참가한 정도다. 조용필과 김트리오라는 그룹에서 함께 활동한 사이다.[8] 그룹 비상구에서 활동하며 "잃어버린 추억"이라는 곡을 남겼다. 가수 주현미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9] 조용필이 작사만 한 유일한 곡이다.[10] 이 곡은 당시 잉베이 말름스틴의 "Far Beyond The Sun"을 표절한 의혹이 있었고, 때문에 조용필은 유영선을 문책하고 이 곡의 프로모션을 전격 중단하였다. 표절시비가 있기 전까지 이 곡은 맥콜 CF에서도 쓰이는 등 꽤나 인기있던 곡이었다.[11] 조용필은 자신의 밴드에 크게 투자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는데,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도 역시 일본의 정상급 세션으로 이뤄진 밴드 "괜찮아요"를 결성하였다. K-ON!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햣코쿠 하지메가 이 밴드 멤버였다. 1990년에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공연한 "90 concert 추억속의 재회"는 일본인 스태프를 데리고 열렸는데 여기서 "괜찮아요" 멤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콘서트는 아직도 조용필의 팬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레전드 콘서트로 기억되는데,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지금들어도 믿기힘든 사운드와 조명,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다. 요시마타 료 또한 "괜찮아요"의 멤버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2] 음반의 이름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임에 알 수 있듯 조용필은 이때 그동안의 독재에서 벗어나 많은 부분을 위대한 탄생의 멤버와 함께 했다. 멤버들 참여도가 가장 높은 음반이다.[13] 이건태, 이태윤, 이종욱은 송골매 7집부터 9집까지 같이 활동한 이력이 있다.[14] 현재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작곡가 황세준도 1997년에 잠시 키보드로 활동한 적이 있었고, 리더 최희선의 제자인 최정민 기타리스트도 2002~3년경 객원 기타로 활동했다.[15] 현재는 기타 음향 보강을 위하여 리더 최희선의 제자 김영균이 객원 기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