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2 05:28:35

모던 록


1. 개요2. 상세3. 용어의 기원과 산업적 맥락4. 음악적 특징
4.1. 장르적 범위와 혼용
5. 쇠퇴와 용어의 변화6. 개념적 위치와 의의7. 관련 차트 및 미디어8. 한국의 모던 록

1. 개요

Modern Rock

록 음악의 한 분류. 후술되어있듯 음악 장르적 특징보단 시대/업계적 특징이 더 강한 단어로, 보통은 모던(Modern) 록이란 말마따나 클래식 록과 구분되는 현대적이고 감성적인 혹은 가벼운 분위기의 록 음악을 싸잡아 일컫는 편이다.

2. 상세

영미권에서 모던 록(Modern Rock)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주로 북미 라디오 방송과 음악 산업에서 사용된 용어로, 클래식 록과 구분되는 현대적인 감각의 록 음악을 통칭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었다. 때문에 특정한 음악적 장르라기보다는 산업적 분류 또는 방송 포맷을 기반으로 한 시대적 카테고리에 가까웠으며, 시기적으로는 포스트 펑크,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등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록 음악의 흐름을 포괄하는 편이었다.

그 외에도 인디 록, 그런지, 브릿팝 등 다양한 현대적 록 스타일을 포괄했으며, 1990년대에는 빌보드에서 "Modern Rock Tracks"라는 전용 차트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음악 산업과 라디오 포맷의 변화, 세부 장르의 분화와 디지털 플랫폼 중심 소비의 확산 등으로 인해 '모던 록'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오늘날 서구권에서는 대신 얼터너티브, 인디 등의 용어가 더 일반적으로 쓰인다.

반면, 한국에서는 2010년대 이후에도 ‘모던 록’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비교적 널리 쓰이는 편이다. 특히 1990~2000년대 홍대 인디씬의 부흥과 함께 ‘모던 록’은, 보통 한국에서 인식하는 '록 음악 = 강렬한 헤비메탈 스타일'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보다 감성적이고 현대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 중심 록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영미권의 인디/얼터너티브 록 계열 음악들이 한국식 '모던 록'의 음악적 기준을 형성하는데 일정 영향을 주었다고 보여진다.[1]

결과적으로, 국내의 모던 록은 명확한 음악적 경계선이 있다기보단 시대성과 감성적 이미지, 대중적 소비 패턴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유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선 매년 장르 분야에서 '최우수 모던록 음반/노래' 상도 시상하고 있는데, 이 곡들을 보면 대략적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업계적으로는 무조건까진 아니지만 홍대 인디씬과 자주 연결되는 특징도 있다.

3. 용어의 기원과 산업적 맥락

“모던 록”이라는 용어는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나, 1988년 미국 빌보드에서 'Modern Rock Tracks' 차트를 창설하면서 공식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해당 차트는 당시 라디오 방송국들이 ‘메인스트림 록(Mainstream Rock)’이나 ‘클래식 록’으로 묶기 어려웠던 새로운 록 사운드를 다루기 위해 개설된 것이다.

모던 록 차트에 포함된 음악은 초기에는 더 큐어(The Cure),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REM, U2, 소닉 유스(Sonic Youth) 등 포스트 펑크,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성향의 아티스트들이 주를 이뤘다. 이후 너바나(Nirvana)와 펄 잼(Pearl Jam) 등의 그런지 밴드들이 주류에 편입되면서, 모던 록이라는 개념은 점차 메이저 시장의 흐름과도 연결되기 시작한다.

4. 음악적 특징

모던 록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해당 범주의 음악은 기존의 하드 록, 블루스 록 등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추구했다. 뚜렷한 장르적 경계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경향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밴드 기반의 록 음악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적 록의 미학에서 벗어난 실험적 요소를 도입 신시사이저, 전자음, 디지털 이펙트 등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사운드 확장 펑크, 일렉트로닉, 힙합, 포크 등 이질적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샤우팅, 파워 코드 중심의 고전적 록 창법보다는 다채롭고 절제된 보컬 스타일 등을 추구하는 편이었다.

즉, 이시기 모던 록은 특정 장르의 명칭이라기보다는, 기존 록과는 다른 감수성을 갖춘 음악에 붙인 포괄적 명칭에 가까웠다.

4.1. 장르적 범위와 혼용

모던 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이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장르들의 집합적 레이블이었다.

이처럼, 모던 록은 얼터너티브, 인디, 브릿팝, 심지어는 뉴 메탈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성격을 지녔으나, 이로 인해 용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혼란이 가중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5. 쇠퇴와 용어의 변화

2000년대 후반 이후, 모던 록이라는 용어는 서구권 산업 내에선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든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2009년 《빌보드》의 ‘Modern Rock Tracks’ 차트가 ‘Alternative Songs’(현 Alternative Airplay)로 변경된 사건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 장르의 세분화: 음악 소비자와 비평가들이 더 세분화된 장르 구분(예: 인디 록, 포스트 록, 뉴 레이브 등)을 선호하게 됨
  • 인터넷의 부상: MP3, 스트리밍, 블로그(특히 피치포크 등)
  • 중심의 비주류 음악 소비 확산 대중적 감수성 변화: 2010년대 이후의 신세대 록 음악은 ‘모던 록’이라는 이름보다 ‘인디’나 ‘얼터너티브’라는 용어에 더 익숙

결과적으로 모던 록은 과도기적인 개념으로 기능을 다하고 역사 속 용어가 된 것이었다.

6. 개념적 위치와 의의

모던 록은 다음과 같은 위치를 점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클래식 록 ↔ 메탈 ↔ 얼터너티브/인디 사이에 놓인 산업적 중간지대의 용어, MTV 시대 이후 라디오음반 산업이 새로운 록 사운드를 표기할 수단으로 창안 특정 사운드를 일컫기보다는 전통 록과 다른 감성, 시대성, 실험성을 지닌 록 음악의 집합적 명칭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모던 록은 하나의 장르가 아닌 ‘과거의 산업적 분류 방식’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7. 관련 차트 및 미디어

Billboard Modern Rock Tracks (1988–2009)
Alternative Songs (2009–현재)
CMJ Radio 200 (인디 중심의 대학 라디오 차트)
MTV's 120 Minutes (1986–2003) 참고: 모던 록과 인디/얼터너티브 록의 관계

모던 록은 결과적으로 인디/얼터너티브 록의 확산기(1980~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산업적 라벨'로 볼 수 있으며, 얼터너티브의 ‘정신’보다는 오히려 ‘시장 포맷’에 가깝다. 얼터너티브 록은 실험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반면, 모던 록은 때로는 상업적이고 메인스트림적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개념적으로 분리된다.

8. 한국의 모던 록

언니네 이발관
'푸훗' (1996)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1997)
자우림
'일탈' (1997)
롤러코스터
'Last Scene' (2002)
체리필터
'낭만고양이' (2002)

'Stay' (2003)
러브홀릭
'그대만 있다면' (2006)
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금지' (2008)
검정치마
'Antifreeze' (2008)
혁오
'위잉위잉' (2014)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2019)
새소년
'난춘' (2020)
이상의날개
'그림자' (2021)
실리카겔
'NO PAIN' (2022)

한국에서 모던 록은 인디 밴드록 밴드의 한 갈래로서 여겨지는 성향이 강한 편이며, 주로 브릿팝, 포크 록, 얼터너티브 록,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슈게이즈 등 현대적 사운드 기반에 일정 영향을 받은 음악이 많은 편이다. 좁은 의미로는 브릿팝포크 록 그리고 슈게이즈에서 영향을 받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잔잔한 록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노래들이 한국에서 모던 록이란 용어로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유는 이전 독재정권의 수입 음반 제한[2], 록의 확실한 대중화 실패[3], 정보통신기술 미발달로 인한 해외 록 정보 부족 등에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 공윤의 사전검열제도 폐지와 PC 보급의 영향으로 90년대 본격적으로 국내에도 인디 씬의 토양이 펼쳐졌고, 하이텔같은 온라인 동호회를[4] 통해 다양한 음악이 한국으로 유입되자 국내 록씬도 뒤늦게나마 영미권을 필두로 한 세계 록의 흐름을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잃어버린 20~30년의 록 데이터들을 한몸에 받다보니 얼터록이나 뉴웨이브, 브릿팝과 펑크를[5] 세세히 나눠 대중에게 소개할 경황이 없었고 그런 분야를 세부적으로 아는 평론가들도 드물 지경이니, 당연히 대중들은 개념조차 제대로 알리 만무했다. 그 결과 이 장르들을 하나로 묶어 쉽게 포장한 용어가 모던 록이었던 것. 때문에 당시 국내에서 모던록은 초기 서구권 모던록이 그러했듯 하나의 세부적인 장르라기보단 얼터나 브릿팝, 발라드, 프로그레시브 등이 혼재된 장르였고, 대중들에겐 '록 = 헤비메탈'이란 공식을 타파하기 위해 간략한 설명으로 축압시킨 슬로건처럼 사용되는 편이었다.[6]

모던 록은 1990년대 중후반 특히 홍대 지역에서 첫 선을 보인 뒤 2020년대까지도 한국 인디씬의 대들보로서 나름 근본을 지키고 있다. 한국에선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 밴드가 해당 씬의 시초로 여겨진다.[7][8] 당시 이들이 내었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deli spice 앨범은 모던 록씬의 기반을 완성시킨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모던 록은 이른바 조선 펑크와 더불어 1990년대 인디씬의 개국공신으로 취급받는다. 조선 펑크가 몰락한 이후에도 모던 록은 팝 계열과 꾸준히 명맥을 유지한다.

하여튼 1990년대 말엽부터는 모던 록을 자처하는 밴드가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덕분인지 한국의 인디씬은 기본적으로 모던록을 토대로 발전했고, 인디씬의 흥망성쇠와 중흥의 역사도 둘러보면 으레 모던 록이 중심에 있었다. 상술한 언니네 이발관델리스파이스를 포함해서 롤러코스터, 허클베리핀, 자우림, 체리 필터, 마이 앤트 메리 등의 1세대부터 시작하여[9] 3호선 버터플라이, 몽구스, 뜨거운 감자, W, , 브로콜리너마저, 옥상달빛, Pia, NELL, 검정치마, 국카스텐, 쏜애플, 로로스 등의 밴드가 등장하면서 인디의 침체기를 이겨내고 이 중 자우림, 체리필터, 넬 등 상당수는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이뤘다. 록 페스티벌 단골 손님들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이후로도 혁오, 잔나비, 실리카겔, 새소년 등 안정된 계보를 보이며, 한국에선 그나마 가끔씩 프로 뮤지션이 배출되는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등과 함께 척박한 락 관련 종사자, 매니아들의 돌파구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게 대중적 반응이 있다보니 윤하 등 모던 록으로 데뷔하지 않았던 가수들도 하이브리드형 모던 록 트랙을 발매하기도 한다. 2022년 발매한 사건의 지평선 등이 대표적이다.[10] 신해철 또한 말년에 단 하나의 약속처럼 모던 록에 가까운 음악을 만든 적이 있다.
[1] 다만 후술된 노래 영상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연히 현지화되는 과정에서 차별화된 지점도 있다.[2] 그나마 있는 것도 주로 팝쪽이었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물론 복제 테이프가 난립하긴 했지만.[3] 좀 더 정확하겐 젊은층에선 어느정도 반향이 있었지만(특히 헤비메탈이 80년대 한때 잠깐 인기를 끈다. 다만 이것 때문인지 국내에선 이후 오랜기간 '록=헤비메탈'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측면도 초래한다.), 전연령대가 즐기는 장르는 아니었고 특히 성인가요가 우세했던 80년대 이전 한국 가요계에선 더 그런 측면이 있었다. 대중적인 히트곡을 낸 신중현 사단이나 이후 사랑과 평화, 들국화, 대학가요제를 필두로 한 산울림, 송골매 등이 오히려 특이 케이스였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가왕 조용필도 데뷔 초부터 위대한 탄생과 록밴드 생활을 하긴 했다만.[4] 이 동호회에서 탄생한 밴드가 언니네 이발관델리 스파이스라는 양대 산맥이었고, 그 외에도 이적, 이승환 등 모던 록에 기여분이 있는 뮤지션들이 다양하게 활동했다.[5] 펑크는 이를 전문으로 수용한 조선 펑크가 대부분 흡수했지만, 너바나의 영향을 받은 모던 록도 존재하듯 일부 자양분은 모던 록 쪽에도 흘러갔다. 너바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고 드럭에서 첫선을 보이던 언니네 이발관이 대표적 예시.[6] 당시 일부 언론에선 헤비메탈과 대비되어 헤비하지 않은 가벼운 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7] '유앤미블루'의 Nothing's Good Enough가 먼저 거론되는 경우도 있지만, 당대 한국의 정서와는 멀찍이 위치하던데다 설익은 토착화로 인해 큰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그나마 차기작 Cry... Our Wanna Be Nation!이 컬트적으로나마 그들의 이름을 알렸다는 정도가 위안거리. 유앤미블루가 시도하고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가 완성했다고 표현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8] 여담으로, 오늘날 고평가받는 델리스파이스deli spice 앨범이 처음 냈을 때인 1997년에는 당시 PC통신발 일부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는 말도 있는데, 자세한건 챠우챠우 항목 참조. 물론 당시부터 고평가하는 평론가들도 있었다. 당장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1998년에서 최상위권인 4위로 랭크되었다.[9] 굳이 홍대 인디씬에서 시작하지 않더라도, 박기영시작 등처럼 모던록풍 곡으로 활동한 케이스 역시 있었다.[10] 다만 윤하의 경우에는 대중의 반응을 따라 모던 록 곡을 발매했다고 보기보다는 4집 이후부터 모던/얼터 록으로의 방향성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그러다 사건의 지평선이 들어간 6집에서 대중적 반응이 따라왔다고 보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