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58:36

지리산 폭우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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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000><colcolor=#000,#fff> 1925년 <colbgcolor=#fff,#212121><colcolor=#000,#ddd> 7~9월 한반도 전역
1998년 7~8월 구례군, 산청군
2010년 9월 서울특별시
2011년 7월 중부권 전역
2014년 8월 동남권 전역
2016년 8~9월 함경북도
2017년 7월 중부권 전역 · 9월 동남권 전역
2018년 8월 강원 영동권 · 8~9월 한반도 중부 이남
2020년 6~9월 한반도 전역
2022년 6~8월 중부권 전역(수도권)
2023년 5월 한반도 전역 · 6~9월 한반도 전역
2024년 한반도 전역 (7월 압록강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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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지리산 폭우 참사
파일:지리산 폭우 참사.jpg
<colbgcolor=#bc002d> 발생일 1998년 7월 31일 금요일 ~ 1998년 8월 1일 토요일
발생 위치 지리산 국립공원 일대
유형 호우
인명
피해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103명[1]
실종 10명[2]
부상 알 수 없음
구조 알 수 없음
재산 피해 알 수 없음

1. 개요2. 발생 경과3. 기타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998년 7월 31일에서 8월 1일 사이 집중호우로 인해 지리산 근처에 위치한 계곡 및 인근 마을에서 일어난 사고.

하필 사고 공화국이었던 문민정부에서 막 벗어난 국민의 정부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사실상 사고공화국의 연장선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3]

'지리산 대참사'라고 불릴 정도로, 지리산의 대표적인 흑역사이다.

2. 발생 경과



1998년 7월 31일 밤과 8월 1일 새벽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함양군 , 하동군 일대 지리산권에 최대 시간당 145mm[4]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계곡 등지에서 잠을 자던 야영객들과 계곡 인근 마을 주민 등 100여명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급격히 불어난 계곡 물에 휩쓸려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지리산 계곡 뿐만 아니라 진양호까지 이어지는 진주시 수곡면 덕천강 변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애초에 지리산에는 피아골과 뱀사골, 대원사계곡 등 수많은 계곡이 있고, 해마다 전국에서 수만 명의 피서객들이 몰려들어 매년 기습호우로 실종 또는 조난사고가 발생하는 등 자연으로부터의 경고 메시지가 수차례 있어왔지만, 당국의 안일한 시설 관리와 야영객들의 안전불감증이 결국 큰 화를 불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식으로 퍼부은 이때의 폭우는, 게릴라성 기습폭우라는 용어를 국내에 등장시킨 배경이 되었다. 폭우의 구체적인 원인으로는 중국 양쯔강으로부터 수증기가 밀려와 엘니뇨 현상에 따른 바닷물 변화가 대기를 불안정화시킨 상황에서 수증기 구름이 지리산 줄기에 부딪히며 한꺼번에 폭우로 쏟아진 것이다. 이 한 번의 한밤중 대폭우(대원사계곡 262mm, 피아골 300mm)로 지리산 일대에서만 사망자 68명, 실종자 10명이 발생하였다. 게다가 지리산 계곡과 연결되는 덕천강 일대에서도 세월교를 통해 덕천강을 건너서 대피하려던 일부 야영객 차량들이 순식간에 불어난 강물에 휩쓸리는 바람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지리산 인근 마을에서도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여 주민들이 집에 있다가 그대로 쓸려가거나 매몰되어 숨지는 등 지리산 인근 남부 지방에서도 25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전체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여름의 절정기인 7월 말과 8월 초 사이에 국내의 대표적인 피서지로 유명한 지리산 계곡과 그 일대에서 발생한 사고였기에, 사망자들은 계곡에 피서를 온 가족 단위 야영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일가족이 몰살당해 버리거나, 자신은 빠져나왔으나 물에 휩쓸려 죽어가는 가족을 구조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끔찍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다. 거기에 근처 댐들이 수위 조절을 위해 일제히 방류한 통에 사망자 시신들 중 일부는 순식간에 덕천강 하류 진양호를 거쳐 남강댐과 사천만을 지나 남해까지 떠내려가서 발견되었거나, 시신이 물속에 가라앉아 찾을 수 없었다가 수개월이 지난 후 진양호에서 떠올라 발견되는 일까지 있었다.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10만 여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대규모 수색을 벌였음에도 최종적으로 10명의 실종자들은 결국 시신으로 수습되지 못하고 사망 인정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파일:지리산 폭우 구조대.jpg
떠내려온 차량을 수색하는 구조대원들

사천소방서 소속 구조대원 이정근 소방장과 이내원 소방위도 "떠내려가는 승용차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수색 작업을 하던 중 물에 휩쓸렸다가 10여분만에 구조됐으나 이정근 소방장은 병원 도착 직후 사망했으며, 이내원 소방위는 뇌사 판정을 받고 2주 후인 8월 14일 오전 2시 20분경에 결국 사망했다. 사후 장기기증을 하려고 했으나, 대다수 장기가 손상되어 각막만을 기증할 수 있었다고 한다. # # #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폭우라는 것만 생각하면 단순한 자연재해로 보이는 듯 싶지만 이렇게 특정 구역에서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5] 정황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외면한 피서객들의 안전 불감증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안일한 재난 대처, 홍수방지시설의 부실공사, 그리고 낙후된 기상 장비로 인한 기상청의 늑장 예보가 어우러진 총체적 인재였다.

실제 사고 당시 입산과 야영이 금지된 지역에 일부 피서객들이 몰래 들어가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데다, 집중호우가 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바로 대피 조치 및 구조활동을 벌이지 않고 1~2시간 후에 겨우 대피 방송을 시작하는 등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의 대응 또한 매우 허술하고 수동적이었다. 그마저도 정작 중요했던 경보장치들이 고장 나 있었거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바람에,[6] 사람들에게 대피해야 한다는 신호를 제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자고 있던 밤/새벽 시간이라 자는 사이에 불어난 물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휩쓸려 변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참사 이후 기상청은 '집중호우 직전 중앙재해대책본부에 3차례 전화해서 집중호우 가능성을 통보'했다고 하고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전화 통지는 공식 주의 촉구가 아니며, 참사 지역을 특정한 것도 아니었다'며 책임을 서로 떠넘겼다. 야영객들을 관리해야 할 지리산 관리공단도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일부계곡을 통제해 피해를 줄였다며 자화자찬하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관리공단의 무사안일한 늑장 대응과는 상반되게 지리산 현지 주민들은 현지 생활 경험으로 터득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고 1~2시간 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만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여[7] 마을 인근 계곡에서 텐트 치고 잠든 야영객들을 일일이 깨워서 대피시킨 덕분에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야영객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현지 주민들도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숨을 거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대한민국 기상청의 낙후된 장비와 늑장 예보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대한민국 기상청은 7월 31일 밤 10시 30분을 기해 전남 내륙과 전북 지방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었지만, 순천시지리산 등 전남 동부 내륙 지방에는 이미 40분 전인 밤 9시 50분부터 1시간 동안 145㎜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기상청이 국지성 호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첨단 기상장비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기상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분석의 신속성을 기하기 위해 슈퍼컴퓨터의 도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사고 발생 후에 사망자 유족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이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은 공단이 대피 방송도 하지 않는 등 피서객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유족들에게 11억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00여 명의 피서객들이 위험한 지역에서 야영을 하는데도 관리공단이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책임을 근거로 판결한 것이며, 불가피한 자연재해라 할지라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공공 기관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경보기만 2개 있었던 대원사 계곡에는 이 참사 이후로 자동 음향 경보 시스템이 65개로 증설되었고, 지형에 따라 강우량이 14에서 22mm를 넘으면 무선으로 연결된 자동경보장치가 작동하게 된다. 사고 당시 경보 시스템이 전무했던 피아골에도 우량계 13개와 자동경보계 20개가 설치되었다. 덕분인지 2011년 여름에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지리산 일대에 다시 한번 300mm 급의 대폭우가 쏟아졌지만 산사태 등으로 건물과 도로들이 유실되긴 했어도 철저한 재해경보 태세(와 스마트폰)로 입산금지와 대피령이 발 빠르게 이루어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3. 기타

2년 전, 스페인에서는 라스 니에베스 캠핑장 홍수라는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2015년에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단편소설 '작별 인사'(1998년 가을 발표)의 한 배경이 이 사고이다. 주인공(화자) M은 직장동료와 3년간 맺었던 불륜 관계를 정리하고자 칠레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새 출발을 하려는 의미에서 지리산에 홀로 여행을 갔다가 폭우로 인한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고 찾아간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tvN 드라마 지리산의 핵심 소재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단, 작중에선 1995년에 발생한 수해로 설정하고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2024년 6월 27일 134회에 방영되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엔 당시 사고와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링크[8]

뱀사골에 놀러간 일가족 후기

이 사건을 계기로 집중호우계곡에서의 야영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지리산은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해있고 높고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강수량을 기록하는 지역이다. 현재도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물놀이를 할 때에도 비가 오면 즉시 빠져나와야 한다.

4. 둘러보기

역대 대한민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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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colcolor=#000>사망사건명
2024년 6월 24일
23
2022년 10월 29일
159 이태원 압사 사고
2020년 4월 29일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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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2019년 5월 29일
27 25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2018년 1월 26일
51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2017년 12월 21일
29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7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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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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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사망사건명
2008년 1월 7일
40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03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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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 24일
20 진주 관광버스 추락 사고
2000년 10월 27일
22 장수 88올림픽고속도로 추돌 참사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9년 10월 30일
56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1999년 6월 30일
23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1998년 10월 29일
27 부산 범창콜드프라자 화재
1998년 7월 31일~8월 1일
103
1997년 8월 6일 228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1996년 7월 26일
20 철원 군부대 산사태
1996년 4월 4일
21 양평 버스 추락 사고
1995년 8월 21일
37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1995년 6월 29일
502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4월 28일
101
1994년 10월 24일
29 충주 제5호 화재사고
1994년 10월 21일
32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3년 10월 10일
292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7월 26일
68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6월 10일
20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1993년 4월 19일
34 논산 정신병원 화재
1993년 3월 28일
78
1993년 1월 7일
28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1992년 10월 22일
28 대양하니호 침몰 사고
1991년 11월 3일
22 인제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11월 4일
21 소양호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9월 1일
25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9년 9월 17일
24 전북 모래재 버스 추락 사고
1989년 7월 27일
79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1988년 3월 25일
22 안양 봉제공장 화재
1987년 11월 29일
115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년 8월 29일
32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1987년 6월 16일
29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1986년 7월 30일
21 고창 거룻배 전복 사고
1985년 1월 11일
38 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1984년 3월 24일
29 영덕 시루봉 CH-53 추락 사고
1984년 1월 14일
38 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3년 10월 9일
25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1983년 9월 1일
269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4월 18일
25 대구 초원의집 화재
1982년 6월 1일
53 청계산 C-123 추락사고
1982년 4월 26일
62 우순경 사건
1982년 2월 5일
53 제주 C-123 추락사고
1981년 11월 22일
33 부산 금정산 버스 추락사고
1981년 5월 14일
55 경산 열차 추돌사고
1981년 2월 28일
24 대림호 침몰 사고
1980년 6월 5일
23 광주 지하살롱 화재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9년 10월 27일
26 은성탄광 화재
1979년 4월 14일
44 함백 탄광 폭발사고
1978년 7월 23일
33 한강대교 버스 추락 사고
1977년 11월 11일
59 이리역 폭발사고
1976년 10월 28일
34 동해 어선 조난 사고
1976년 5월 18일
23 답곡리 버스 추락사고
1976년 2월 28일
32 화천 버스 추락사고
1974년 11월 3일
88 대왕코너 화재사고
1974년 6월 28일
28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년 2월 22일
159 YTL30호 침몰 사건
1973년 8월 12일
32 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고
1973년 5월 16일
22 영일 건널목 열차 추돌사고
1972년 12월 24일
30 파크로버호 침몰 사고
1972년 12월 2일
53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8월 1일
26 의암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2월 25일
166~191 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0월 13일
20 남원역 열차 추돌사고
1971년 5월 10일
80 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5월 10일
31 질자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 15일
326 남영호 침몰사고
1970년 11월 5일
31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1970년 10월 14일
46 모산 수학여행 참사
1970년 8월 21일
25 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참사
1970년 4월 8일
33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9월 17일
37 창녕 기관선 - 남지교 충돌 사고
1969년 1월 31일
41 천안 열차 추돌사고
1968년 10월 30일
48 산청 버스 추락 사고
1968년 1월 8일
41 함양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10월 16일
42 금릉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9월 15일
29 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1967년 4월 8일
80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1967년 1월 19일
39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년 1월 14일
93 한일호-충남함 충돌 사고
1967년 1월 1일
41 서문시장 화재
1966년 1월 18일
22 중구 남산동 판자 아파트 화재
1964년 7월 29일
95+ 서해 어선단 실종 사고
1963년 10월 23일
49 여주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
1963년 6월 25일
70 거제 장승포 산사태
1963년 1월 18일
140 연호 침몰 사건
1962년 9월 7일
36 한남동 나룻배 침몰 사고
1960년 3월 2일
62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1960년 1월 26일
31 서울역 압사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59년 7월 17일
67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1957년 2월 22일
21 한강 미 공군 C-124A 추락 사고
1956년 1월 12일
66 태신호 화재
1955년 3월 2일
42 부산역 열차 화재
1953년 11월 27일
29 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월 31일
56 오산 건널목 추돌 사고
1953년 1월 25일
66 행운환 침몰 사고
1953년 1월 9일
330 창경호 침몰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1년 7월 11일
94 제5편리호 침몰 사고
1951년 7월 11일
30+ 제13호 침몰 사고
1950년 6월 30일
23 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10월 5일
71 평해호 침몰 사고
1949년 8월 18일
51 대강 터널 질식 사고
1948년 6월 8일
150 미군 독도 오폭 사건
1947년 8월 19일
23 태양환호 침몰 사고
1946년 11월 13일
42 영등포역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10월 22일
59 어청도 기뢰 폭발 사고
1945년 9월 29일
73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24일
549​~𔁳,000+
우키시마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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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 인정된 실종자 포함[2] 사망 인정[3] 이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그 다음해에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추풍령 경부고속도로 연쇄추돌 참사가 터지면서 사고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을 20세기가 끝날때까지 계속 달고 있어야만 했다.[4] 2022년 8월 8일 서울에 내렸던 비가 최대 시간당 141mm의 강도였다.[5] 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태풍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 때 집계되는 사망자 수는 평균적으로 전국 기준 100명 안팎의 규모다. 자연재해로 인한 전국 인명피해의 평균치와 맞먹는 인명피해가 지리산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자연재해의 피해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그 규모가 컸다.[6] 당시 배터리가 나가거나 고장난 스피커로 인해 대피방송과 경보가 제대로 송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7] 이는 지리산에 오래 다닌 사람이라면 으레 전해지던 것으로, 대원사계곡이 폐쇄되기 전 어느 주민이 바위를 가리키며 "풀이 있는 곳 밑까지는 전부 물이 들어찬다고 생각하라"고 경고했는데, 그 바위라는 게 사람 키 세 배쯤 되는 거대한 크기였고 그 꼭대기에 풀과 잡목이 드문드문 나 있는 수준이었으니 수량이 얼마나 크게 불어나는지 알 수 있다.[8] 정확히는 링크된 글의 댓글로 올라온 이야기로 지리산에 갔는데 한 할머니가 여기서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가 많이 죽을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할머니를 본 때가 1998년으로 사고 일어나기 직전의 시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났을때 그 할머니가 떠올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