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4:05:08

사쿠라기초 사고

사쿠라기초 참사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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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유철도 전후 5대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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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사고 1951.04.23. 사쿠라기초 사고
해상사고 1954.09.26. 토야마루 침몰사고
해상사고 1955.05.11.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철도사고 1962.05.03. 미카와시마 사고
철도사고 1963.11.09. 츠루미 사고 }}}}}}}}}


1. 개요2. 사고 상세3. 사고를 키운 원인4. 사고후 대책5. 기타6. 둘러보기

1. 개요

桜木町事故 (桜木町事件)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akuragicho_Train_Fire_1951.jpg

사쿠라기초 사고 당시의 모습. 출처는 위키백과.#

쇼와 26년(1951년) 4월 24일 13시 45분 무렵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일본국유철도 도카이도 본선의 지선인 게이힌선(현재의 네기시선) 사쿠라기초역 구내에서 발생한 열차 화재 사고. 일본에선 전후 일본 국철 5대사고(国鉄戦後五大事故)로도 손꼽힌다.[1]

2. 사고 상세

사고는 케이힌선 사쿠라기초역 구내의 상행선에서 가선의 절연체(애자) 교환 공사를 진행 중이던 작업원이 실수로 스패너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일어났다. 이로 인해 가선이 고정되지 않고 아래로 처쳤는데 여기에 케이힌선의 하행 제1271B 전동열차(第1271B電車)[2]가 그대로 진입하여 선두차의 집전장치와 가선이 엉켰다.[3]

기관사는 서둘러 집전장치를 내리려고 했지만 선두차의 집전장치가 파손되어 가선이 차체와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전기가 합선되어 격렬한 불꽃이 튀었다. 당시 열차의 지붕은 나무로 만들어 가연성 도료를 발랐는데 여기에 불꽃이 튀긴 탓에 불이 붙었다. 그 결과 선두차인 모하 63756이 전소되고 2번째 량인 사하 78144가 반소되어 사망 106명, 중경상자 92명이 발생한 대참사가 터졌다.

이 사고는 20세기 일본의 철도사고 중 사망자 수 5위, 1872년에서 2011년까지 일어난 일본의 철도사고 중 세 자리 수 사망자를 기록한 6대 사고 안에 들어가는 참사였다.

합선이 일어난 탓에 자동문이 작동하지 않은 데다 승무원이나 역무원도 비상용 코크의 위치를 몰랐기 때문에 문을 외부에서 수동으로 여는 것도 시도할 수 없었다. 기관사가 차단된 관통로를 통해 승객을 구출하려고 했지만 당시 차량의 관통로는 객실 사이의 관통이 목적이 아니라서 관통로의 문이 바깥쪽에서 잠겨 있었다. 가까스로 2번째 량의 관통로는 열렸지만 첫 번째 량은 탈출하려는 승객들이 몰리는 바람에 압력을 받아 열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량에 탑승한 승객은 유리창을 깨는 것 외에는 탈출경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

사고 당시 사쿠라기초역 부근의 가선에 전기를 공급하던 곳은 요코하마 변전소와 츠루미 변전소였다. 요코하마 변전소는 고속도 차단기가 작동하여 급전을 정지할 수 있었지만 츠루미 변전소는 고속도 차단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약 5분 동안 가선에 전기가 계속 흘러 화재를 더 키웠다.

3. 사고를 키운 원인

이 사고를 키운 원인이 여럿 있지만 그 중 중요한 요소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수탈(공출)이다. 일본군은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다. 단순히 수저나 놋쇠뿐만 아니라 철로까지 떼어갔을 정도인데 열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군은 열차에 들어가는 철을 줄이기 위해 기존 금속제 객차의 금속을 떼내고 목재로 대체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목제 열차를 만드는 기행을 저질렀다.[4] 이 과정에서 화재 위험이 수직 상승했다.

차체에 가연성 소재가 많다는 것은 전쟁 이전의 차량들도 가지고 있던 문제였지만 63계에는 가연성의 도료나 베니어판의 천정내 의욕 등 가연성이 높은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고 그 결과 내연 구조는 전쟁 전 차량보다 오히려 더 뒤떨어졌다. 게다가 다른 객차로 이동할 수 있는 관통문조차도 없는 차량이 있어서 출입문이 고장나면 나갈 방법 자체가 아예 없는 데다 대형 유리판 제작도 자재부족으로 중단되어 3단식 유리창[5]이 붙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유리창을 깨고 나갈 여지도 없어졌다. 목재로 된 열차 출입문을 강철문으로 교체하면서 비상시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는 장치의 위치를 표시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더군다나 전선 처리에도 문제점들이 있었다. 실외 배선을 절연용 피복으로 덮어야 하는데도 노출된 채로 방치된 것, 전기 합선사고가 일어날 때 대비해야 할 보안기기가 일부 누락된 점 등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화재 직전까지 버틴 게 용한 셈이다.

4. 사고후 대책

이 사건의 여파로 국철은 사고 수일 후 모든 차량에 수동으로 차량문을 열 수 있는 장치의 위치를 재빨리 표시했고 전시 설계로 만들어진 열차들을 점검해 문제점을 고쳤다. 2년에 걸쳐서 대상 열차 800여 량을 대대적으로 보완하는 등 국철은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5. 기타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국철은 일본국유철도 3대 미스터리 사건 등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야구단 고쿠테츠 스왈로즈(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을 창단하고 신형열차들을 투입해 태평양 전쟁 때 중단되었던 특별급행열차, 식당차, 침대차 서비스를 복원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중이었지만 이 사건이 이런 노력을 날려 버리고 말았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프로야구에 참가할 정신 있으면 열차나 더 점검해라고 국철을 대대적으로 비판했으니 할 말이 없다(...).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던 사자에상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에서 밀폐식 스크린도어 도입을 주저했던 이유 중에는 바로 이 사고처럼 화재시 전원 소사(燒死)하거나 유독가스로 질식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서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실제로는 일본의 경우 JR과 사철이 혼재되어 다니는데다 각 열차마다 출입문 방식이 몽땅 제각각이기에 설치하고 싶어도 설치할 수 없는 것이다.[6] 즉 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려면 출입문 규격을 한국처럼 완전히 통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굴러가는 수천 가지 형식, 수만 대의 전동차와 디젤동차의 출입문 방식을 개조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극한작업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해서 일본의 스크린도어 완전 설치는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현재는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난간형이나 로프식 등 다른 형태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고 있다.

6. 둘러보기

역대 일본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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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colcolor=#000>사망사건명
2022년 4월 23일
26 카즈 1호 침몰 사고
2021년 12월 17일
27 2021년 오사카 빌딩 방화 사건
2020년 9월 2일
43 걸프 라이프스톡1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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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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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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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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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일
44 가부키초 빌딩 화재사건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6년 2월 10일
20 토요하마 터널 붕괴 사고
1994년 4월 26일
264 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
1991년 5월 14일
42 시가라키 고원철도 열차 충돌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8년 7월 23일
30 나다시 사건
1988년 3월 24일
29 27 상하이 열차 붕괴 사고(1988년)
1987년 11월 28일
159 47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 추락 사고
1986년 2월 11일
24 호텔 다이토우칸 화재
1985년 8월 12일
520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1985년 5월 17일
62 미츠비시 유바리 탄광 사고
1985년 3월 31일
26 세토선 카이요마루 사고
1985년 1월 28일
25 사이가와 버스 추락 사고
1983년 12월 7일
93 34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충돌 사고
1983년 9월 1일
269 28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2년 2월 9일
24 일본항공 350편 추락 사고
1982년 2월 8일
33 호텔 뉴재팬 화재
1982년 1월 6일
32 제28아케보노마루 침몰 사고
1981년 10월 16일
93 호쿠탄 유바리 신탄광 가스 누출 사고
1980년 11월 20일
45 카와지 프린스 호텔 화재
1980년 9월 9일
44 더비셔호 침몰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9년 11월 28일
257 24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1977년 9월 27일
34 일본항공 715편 추락사고
1975년 1월 1일
24 아오키호 버스 추락 사고
1974년 11월 9일
33 다이쥬오 요마루 침몰 사고
1974년 3월 3일
346 48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11월 29일
103 다이요 백화점 화재
1972년 11월 28일
61 일본항공 446편 추락 사고
1972년 11월 16일
30 호쿠리쿠 터널 화재
1972년 6월 14일
86 일본항공 471편 추락 사고
1972년 5월 13일
118 센니치 백화점 화재사건
1972년 3월 19~20일
24 후지산 대량 조난 사건
1971년 10월 25일
25 킨테츠 오사카선 열차 충돌사고
1971년 7월 30일
162 전일본공수 시즈쿠이시 공중충돌 사고
1971년 7월 3일
68 동아국내항공 63편 추락 사고
1970년 4월 8일
79 덴로쿠 가스 폭발사고
1970년 1월 24일
24 캘리포니아 호 침몰사고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4월 15일
31 미 해군 C-121 추락 사고
1969년 2월 5일
31 반코 호텔 화재
1969년 1월 4일
31 보리바아마루 침몰 사고
1968년 11월 2일
30 이케노보만게츠죠 화재 사고
1968년 8월 18일
104 히다 강 버스 추락사고
1966년 11월 13일
50 전일본공수 533편 추락 사고
1966년 3월 11일
30 키쿠후치 호텔 화재
1966년 3월 5일
124 영국해외항공 911편 추락 사고
1966년 3월 4일
64 캐나다 퍼시픽 항공 402편 사고
1966년 2월 4일
133 전일본공수 602편 추락 사고
1965년 10월 7일
209 마리아나 해역 어선 집단 조난 사고
1965년 6월 1일
237 야마노 탄광 가스 폭발 사고
1964년 2월 27일
20 후지 항공기 추락 사고
1966년 2월 4일
133 전일본공수 60편 추락 사고
1963년 11월 9일
458 미이케 탄광 폭발사고
1963년 11월 9일
161 츠루미 사고
1963년 2월 26일
47 토키와마루 침몰 사고
1962년 11월 18일
39 제1 무나카타 호 침몰 사고
1962년 5월 3일
160 미카와시마 사고
1962년 5월 3일
28 히에이산 버스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58년 8월 12일
33 시즈오카현 전일본공수 추락 사고
1958년 3월 7일
26 미 해병대 C-119C 추락 사고
1958년 1월 26일
167 난카이마루 조난 사건
1957년 4월 12일
113 제5 키타가와마루 침몰 사고
1956년 10월 15일
42 롯켄 열차 충돌 사고
1956년 1월 1일
124 야히코 신사 사건
1955년 7월 28일
36 하시호쿠 중학교 수난 사건
1955년 5월 11일
168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1955년 4월 16~17일
73 아베 광업 보타산 붕괴 사고
1955년 2월 17일
99 성모의 양로원 화재 사건
1954년 10월 8일
22 우치우마루 침몰 사고
1954년 9월 26일
1159 토야마루 침몰사고
1954년 9월 26일
35 이와나니 화재
1954년 2월 1일
35 홋카이도 미 해병대 C-46D 추락 사고
1953년 8월 15일
107 다이쇼이케 댐 붕괴 사고
1953년 6월 18일
129 타치카와 미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1953년 2월 14일
21 오카츠타마 화학공업 폭발 사고
1953년 2월 4일
80 신세이마루 침몰 사고
1952년 9월 24일
31 다이고타이요마루 조난 사고
1952년 4월 9일
37 일본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51년 11월 3일
32 오즈행 버스 화재
1951년 7월 15일
28 텐류가와 버스 추락 사고
1951년 5월 19일
42 오하라 극장 화재
1951년 4월 24일
106 사쿠라기초 사고
1950년 11월 7일
34 하시가와노 버스 추락 사고
1950년 9월 26일
23 미 해병대 C-54D 추락 사고
1950년 7월 26일
25 미 공군 C-47D 추락 사고
1950년 4월 21일
35 카타가와현 미군 C-54기 추락 사고
1950년 2월 11일
22 구마모토 버스 추락 사고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9월 22일
29 이노타니 대교 붕괴 사고
1949년 4월 30일
63 나타치 기뢰 폭발 사고
1948년 3월 31일
49 킨테츠 나라선 열차 추돌 사고
1948년 1월 28일
188 죠오마루 조난 사고
1948년 1월 5일
36 메이테츠 세토선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5월 29일
41 미 공군 C-54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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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철 5대사고 중 나머지는 1954년 토야마루 침몰사고, 1955년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1962년 미카와시마 사고, 1963년 츠루미 사고다.[2] 국철 63계 전동차 5량 편성, 당초 운전시각표보다 9분 지연되었다.[3] 열차는 당시 하행선으로부터 포인트를 건너 상행선에 진입하던 중이었다.[4] 일본은 1926년 9월 23일 산요선 특급열차 탈선 사건에서 목제 객차가 파손되어 사망자 34명이 나온 후 전금속제 차량을 도입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객차의 전금속화를 달성하였다. 전시의 목제 객차는 이러한 선진적인 대책에 완전히 역행하는 퇴화적인 조치였다.[5] 창틀을 상, 중, 하단으로 나눠 붙였는데 중간 창이 고정되고 상단 창틀을 아래로 내리거나 하단 창틀을 위로 올려야 창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이 상태에서 창문을 열면 상단 하단 모두 최대 29cm밖에 열리지 않았고 유리창을 깨더라도 창틀이 가로막아 탈출이 불가능했다.[6] 홍콩의 동철선 역시 2022년 5월 이전에 대부분 역이 비슷한 이유로 스크린도어가 없었다. 승강장 밑 철로로 투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철로 밑으로 떨어진 노인,장애인,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몇번 일어나 2022년 노후화된 교류형 전동차를 전량 퇴역 시키고 같은 해 이용객이 많은 역 위주로 난간형 스크린도어를 설치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