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4 22:54:06

미카와시마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카와시마 사고
[ruby(三河島事故, ruby=みかわしまじこ)]
파일:external/www.sankei.com/dly1505030001-f1.jpg
발생일시 1962년 5월 3일
유형 다중추돌사고
원인 신호무시, 탈선
발생 위치 조반선 미카와시마역
사망자 160명 사망
부상자 296명 부상

1. 개요2. 상세3. 사고를 키운 원인4. 사고 이후, 그 이후의 대책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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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 5월 3일[1] 조반선 미카와시마역 구내에서 일어난 열차탈선 다중충돌 사고.

2. 상세

9시 37분(21시 37분) 경 밤 조반선 미카와시마역 구내 타바타 조차장(田端操車場)발 화물선에서 하행 본선으로 진입하려던 D51 364 증기 기관차가 이끄는 45량 편성 제287 화물열차(第287貨物列車)가 본선과의 합류지점 신호기를 무시한 채 본선으로 진입하려다가 탈선한 직후 미카와시마역을 출발한 우에노토리데행 6량 편성 제2117H 통근 전동열차(第2117H電車)[2]가 탈선으로 돌출된 화물열차의 타키 50044 탱크차(タンク車 (タキ50044))[3]와 접촉하여 탈선하였다.동영상이랑 사고 원인이 조금 다르다 사실 여기까지였다면 가벼운 탈선 사고로 치부될 수 있었지만...

이후 약 7분 뒤 우에노행 상행 9량 편성 제2000H 통근 전동열차(第2000H電車)가 그대로 사고 현장에 진입하여 탈선한 화물열차와 통근열차 쿠모하 60005 선두차(先頭車 (クモハ60005))[국철40계], 쿠모하 97396 두번째 차량(2両目の車両 (クモハ97396))[국철72계]을 직격하고 나서 쿠하니 67007 선두차(先頭車 (クハニ67007))[국철40계](国鉄40系電車)".]는 2000H 선두차(쿠모하 60005)와 함께 형체가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졌다. 나머지 모하 72549 두번째 차량(2両目 (モハ72549))[국철72계]이 비탈형 노반에서 굴러 떨어져 철로변 창고에 처박히고 사하 17301 세번째 차량(3両目 (サハ17301))[국철50계]와 모하 72635 네번째 차량(4両目 (モハ72635))[국철72계]이 탈선하여 전차선(가선)과 모든 철도차량들이 뒤엉키는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인해 160명이 사망하고 296명이 부상했다. 사쿠라기초 사고, 토야마루 침몰사고,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츠루미 사고와 함께 전후 일본국유철도에서 발생한 사고 중 가장 큰 피해를 낸 "전후 일본 국철 5대사고(国鉄戦後五大事故)"로 회자되고 있다.

3. 사고를 키운 원인

사고를 키운 1차적인 사고 원인은 화물열차 기관사의 신호 무시였다. 거기에 그곳은 또 다른 문제가 숨어 있었으니 바로 고가에 위치한 본선으로 진입하기 위해 상구배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것은 중량 화물열차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화물열차 기관사의 신호무시에 대해서 무작정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으며 일설에 의하면 증기기관차의 운전대 위치를 감안할 때 신호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 본선측 신호기의 진행 현시를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2차적으로는 첫 번째 사고 직후 해당열차 승무원들과 당시 해당 구간의 연선 순시를 담당하는 신호소간의 연락 불통이 문제로 지목되었는데 사고 시간이 심야였던 터라 역무원이 직접 눈으로 사고 현장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우에노행 상행 열차의 진입을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근본적으로는 1차 사고 이후 사령에서 사고가 발생한 하행선의 운행을 통제했으나 상행선의 선로 지장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4. 사고 이후, 그 이후의 대책

사건 이후에 당연하게도 해당 열차들은 폐차되었다. 그중에서 사고의 원인이었던 D51형 364호차 증기기관차는 운전실이 구겨지거나 디플랙터(제연판)이 찌그러진거 외에도 의외로 멀쩡했지만,[10]사고의 조사 증거물로 사용되었다. 이후 재판 종료까지 오쿠기관구의 구내에 놓여 있었다고 하며, 그동안, 검은 천이나 시트로 차체 일부분을 덮었다고 한다. 오쿠의 라운드 하우스가 있었을 무렵은 그 옆에 놓여져 있었지만, 하우스 해체 후에는 한동안 이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364호차는 오미야 기관구 소속으로 매각되며 1964년 10월 5일자에 폐차 되었다고 한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일부 구간에 국한되었던 ATS의 정비가 실시되어 1968년에 완전히 마무리되었으며 승무원의 직무 스트레스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철도 노동과학연구소가 개설되었다.

5. 기타

기타무라 가오루의 소설 '리셋'에서 이 사고가 등장하여 여주인공인 '미즈하라 마스미'가 죽고 남주인공 '유키 슈이치'가 폭격으로 죽은 뒤 환생한 '무라카미 가즈히코'가 살아남는 것으로 묘사되며 사고로 인해 마스미가 마치코로 환생하여 무라카미와 결혼하는 계기가 된다. 무라카미가 슈이치의 기억을 찾게 되자 충격을 받은 마스미는 도쿄로 도피하고 무라카미가 위에 언급했던 헌법기념일 연휴에 마스미를 찾아 도쿄로 갔다가 마스미와 만나고 마스미에 의해 강제로 집으로 내려가는 순간 조반선을 타고 가면서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었다. 마스미는 무라카미를 주택가 쪽으로 내던지고 앞의 우에노행 통근 열차가 덮쳐서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본 사건을 자세히 알려주는 영상(중대 사고 가상 재현 VTR)


[1] 이날은 일본의 헌법기념일이다.[2] 이날 지진의 여파로 우에노에서 늦게 출발했다.[3] 정식명칭은 "국철 타키 50000형 화차(国鉄タキ50000形貨車)".[국철40계] 정식명칭은 "국철 40계 전동차(国鉄40系電車)".[국철72계] 정식명칭은 "국철 72계 전동차(国鉄72系電車)".[국철40계] [국철72계] [국철50계] 정식명칭은 "국철 50계 전동차".[국철72계] [10] 해당 기관차에 전동차가 직격으로 가한게 아니었던 데다가, 증기기관차 문서를 보면은 증기기관차는 의외로 상당히 단단한 물건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