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LCT 1141호 폭발 사고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colbgcolor=#fff,#191919> 1948년 8월 6일 오후 5시 경 | |
발생 위치 | 미국 통치기 류큐 열도[1] 이에지마 부두 | |
유형 | 선박에 적재 중이던 탄 폭발 | |
원인 | 적재 과정 부주의 및 흡연[2] | |
사망 | 107명 | |
부상 | 77명 |
1. 개요
1948년 8월 6일 일본 오키나와현 이에지마에서 발생한 선박 폭발 사고.참고 사이트. 잔인한 사진도 있으니 열람 시 주의.
2. 상세
이에지마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4월 중순부터 며칠간의 전투 끝에 미군이 점령한 지역이었다. 비행장을 갖춘 꽤 큰 섬이고 본섬 북부 확보를 위한 교두보였다 보니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3]워낙 치열했던 전투의 여파로 불발탄 및 미사용탄이 워낙 많아 이를 처리하는 작업이 오키나와 각지에서 몇 년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6월 이에지마 북부의 탄약 집적장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였고 며칠간의 화재 진압 이후 탄 처리가 추진되었다.[4]
1948년 8월 6일, 5인치 로켓포탄 약 5000개(12.5톤 가량)을 적재 중이던 미군의 탄약 수송선 LCT(Landing Craft Tank) 1141호가 폭발하는 일이 발생한다. 당시 사진을 보면 폭발 지점으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잔해가 날아갔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미군 사고조사 보고위원회에 의하면 사망자 107명, 부상자 70명이 발생했으며 사망자 중 90명이 지역 주민이었다. 큰 인명피해의 이유로는 다른 선박(연락선)의 존재, 여름방학 기간 중, 수영하러 온 사람들 등이 지목됐다. 당시 연락선 선원이었던 생존자 인터뷰(NHK)
3. 사고 발생 이후
이후 공개된 조사 보고서 내용 및 주민(생존자 포함) 증언에 의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밝혀졌다.- 탄약 처리를 담당하던 병사들은 필리핀계 또는 아프리카계였다.[5]
- 지역 주민들도 무보수로 도왔다.[6]
- 흡연[7]을 했으며, 탄 위에 올라가 탄을 쌓다가 무너졌다고 한다. 기존에는 적재물 무너짐만 사고 원인으로 알려졌다.[8]
이러한 막장 사항들 때문인지 관리책임자는 자살했다.
일본의 미군정기와 오키나와 미군정기를 포함하여 당시 주일미군과 연관하여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사고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데다 오키나와였던지라 당시에는 별 반응 없이 묻혔다.
이후 오키나와 반환 요구가 터져나오던 60년대 미군과 관련된 다른 사고들이 터지면서 이 사고도 재조명받았다.
[1] 현재의 일본 오키나와현[2] 미군 사고 보고서 상의 추정[3] 한편 일본군은 전투 1달 전 섬 점령에 대비해 비행장을 스스로 파괴했지만 미군은 점령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복구,사용하며 뻘짓이 되어버렸다(...).[4] 원문 : 報告書は、火災を受けて、伊江島での砲弾処理の遅延がないように指摘。米軍はこれを受けて、処理を急いだと見られる。報告書がまとめられた約1カ月後に、LCT爆発事故が起きた。[5] 원문 : 知念さん「ぼくは一回は自動車に爆弾を乗せるのに行った事がある。知念さんが?うん、上では黒人兵が受け取る。下からは自分たちがトラックに揚げる、先はぶつけるなよ〜と言って」[6] 원문은 위와 동일[7] 군복무를 마친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탄약고 주변에서 흡연하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8] 원문 : 爆弾の取扱規則に反して、船上の喫煙があったこと。Q「その黒人兵は、爆弾の上を歩いたのか?走ったのか?」A「駆け上がったから、爆弾が崩れ始めたん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