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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보 항공 612편 추락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RA-85185.png
사고 이틀 전,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사진.

Авіакасторофа Ту-154 під Донецьком
(Катастрофа Рейсу Пулково 612)
Pulkovo Aviation Enterprise Flight 612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2006년 8월 22일
유형 조종사 과실, 실속
발생 위치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도네츠크주 수카 발카
탑승인원 승객: 160명
승무원: 10명
사망자 탑승객 170명 전원 사망
기종 투폴레프 Tu-154M
항공사 풀코보 항공
기체 등록번호 RA-85185
출발지
[[러시아|]][[틀:국기|]][[틀:국기|]] 크라스노다르 지방 아나파 국제공항
도착지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국제공항
1. 개요2. 사고기 정보3. 612편의 조종사들4. 사건 개요5. 추락6. 조사7. 여담

[clearfix]

1. 개요

추락 40분 전 촬영된 612편의 탑승 현장[1][2]

2006년 8월 22일 3시 38분 29초경 아나파 국제공항에서 풀코보 국제공항으로 가던 풀코보 항공 소속 Tu-154 여객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170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

탑승객의 대부분은 휴양 도시인 아나파[3]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가족 단위로 휴가를 즐기러 간 사람들도 많았고 기내에는 12살 아래의 어린이 승객이 45명 타고 있었다.

2. 사고기 정보

파일:B-2626.png
추락 10년 전인 1996년 7월 6일,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천항공 시절 사고기.
파일:20230306_205421.png
파일:8655426.png
사고기의 기내 사진 사고기의 조종석 사진[4]

사고기는 1992년 2월에 생산되어 사천항공에 인도된 등록번호 B-2626의 Tu-154M이었고 2000년 4월부터 사용하지 않고 방치[5]되던 항공기를 풀코보 항공2001년 12월 10일에 구매하면서 등록번호도 RA-85185로 바뀌었다. 사고기는 14년 6개월 가량의 기령으로 추락 전까지 24,215시간 동안 비행했다.

3. 612편의 조종사들

파일:fd3s.png
612편의 조종사들
기장인 이반 이바노비치 코로고딘(49)은 12,312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였으며 그 중 5,956시간은 Tu-154의 조종사였다. 부기장인 59세의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오니셴코는 Tu-154에서 비행한 2,200시간을 포함하여 11,876시간을 비행하였고 23세의 훈련생 조종사인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호드네비치도 이 항공기에 탑승했으며 Tu-154에서 88시간의 비행 시간을 포함해 189시간을 비행한 초보 조종사였다. 항공 기관사인 51세의 빅토르 페트로비치 마카로프는 Tu-154에서 비행한 6,701시간을 포함하여 9,064시간을 비행했다.

36세의 네비게이터 이고르 유리예비치 레프첸코는 비행 시간인 7,848시간 중 5,596시간을 Tu-154에서 보냈다.

사고 당시 부기장석에는 훈련생이 앉아서 조종하고 있었고 부기장은 부기장석 뒤 점프시트에 앉아 있었다.

4. 사건 개요

CVR 기록
ATC 기록[6]

8월 22일 3시 4분경 612편이 아나파 국제공항에서 이륙하였다. 이륙 30분 후 비행기 앞에 난기류가 나타났다.[7] 난기류 전선을 만나기 5분 전 네비게이터가 해당 난기류의 전선을 관찰하게 되었고 1분 30초 뒤에 조종사들은 육안으로도 난기류 전선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조종사들은 순항 고도를 유지하면 난기류 전선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고도를 올려 난기류를 피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난기류 전선은 조종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높았고 기장에게는 회항하거나 뇌우를 뚫고 계속 비행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당시 풀코보 항공은 연료를 아낀 조종사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규정이 있었고 사고 이전에 실시한 기장의 심리검사 결과 기장은 자신의 능력은 과대평가하고 위기상황을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겹쳐져 612편은 결국 뇌우를 뚫고 비행을 계속하였다.

비행기가 고도 3만 8천 피트에 이르렀을 때 기장은 뇌우의 고도가 예상 밖으로 높은 것을 보았지만 어떻게든 구름 위로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우로부터 13km 이전 관제사는 612편에게 좌선회를 허가했지만 이미 비행기는 난기류 전선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1분 후 612편은 난기류 전선에 진입했다. 강력한 난기류를 벗어나고자 기장은 관제사에게 3만 9천 피트 상승을 요청하였고 관제사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높은 고도에서 상승하게 되면 저고도에서 상승할 때보다 속력이 크게 줄게 되며 사고 당시 85톤의 중량을 가진 Tu-154의 속도는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우박 구름을 지나자 기장은 점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조종사들에게 불안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기장이 혼란에 빠지자 조종사들은 모두 당황하였고 난기류에서 탈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조종사들은 점점 속도계 확인을 소흘히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고도가 3만 9천 피트에 다다랐을 때 비행기의 속도는 420km[8]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난기류 전선을 벗어났지만 속도가 줄어들어 실속 경고가 조종실에 울려퍼졌다. 기장은 실속 경보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3시 35분 2초경 오토파일럿을 해제하고 수동으로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이때 훈련생 조종사 뒤에 있던 부기장이 실속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기장에게 하강할 것을 제안하지만 기장은 아직 비행기가 난기류 속에 있다고 착각하여 부기장의 제안을 거절하였다.[9] 조종사 모두 순항 고도보다 높은 고도에서 수동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기체가 위치한 고도는 공기가 충분하지 않아 조종간의 움직임에 기체의 반응 속도는 느려지게 된다. 이를 모른 채 비행기를 수평으로 유지하려는 기장의 조작은 비행기를 계속 상승하게 만들었고 기장은 요크 트림 스위치와 조종간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서 항공기의 양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항공기의 기수각은 46도로 올라갔고 12,800m[10]까지 고도가 올라가게 되었으며 계기판의 속도는 0을 가르켰다.

5. 추락

불안정한 조작으로 인해 비행기의 엔진은 자동으로 꺼져 버렸지만 조종사들은 아직도 비행기가 난기류 속에 있다고 착각하여 비행기의 기수각을 수평으로 맞추는 조작을 하였다. 비행 엔지니어는 정지된 엔진을 다시 켜 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기장과 훈련생 조종사는 죽을 힘을 다해 요크를 당겼다. 하지만 이 역시 깊은 실속에 빠진 비행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항공기는 2분 30초 동안 초속 50m의 속도로 하강하였으며 결국 비행기는 도네츠크 북서쪽 46km 지점에 위치한 수카 발카(Sukha Balka) 마을에 추락했다.
612편의 추락 직후의 상황을 담은 영상.[11]
파일:315813578.jpg
추락 현장 사진.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사고기가 추락한 지점 근처에 있던 주민들이 급히 비행기 잔해로 갔지만 생존자는 전무했다. 추락 후 화재도 동반되었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은 더욱 낮았을 것이다.

6. 조사

약 260명의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당국이 사고 현장으로의 접근을 막아 사고 수습에 실패하였다. 다음날 우크라이나 구조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이미 탑승객 170명은 모두 사망한 뒤였다.

CVR과 FDR도 찾은 후 조사 결과 실속 상황에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조종사들의 과실로 사고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12] 하지만 Tu-154 꼬리날개 설계 특성상 스핀에서 벗어나기 다른 항공기보다 매우 힘들었다는 점도 사고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13]

7. 여담

풀코보 항공은 해당 사고로부터 2개월 뒤인 2006년 10월 29일 로시야 항공에 합병되었다.

파일:wsdfefe.png

사고기가 추락한 수카 발카 마을추모 공원이 존재한다.[14]

해당 사고의 추모 사이트가 존재하는데 탑승객들의 생전 사진과 그들의 이야기가 여럿 실려 있다.[15]

[1] 화면에 나오는 노란 옷을 입은 남성과 그의 여자친구(그녀도 영상 속에 나온다), 영상 촬영자는 사고기 오른쪽의 Tu-154(유테이르 항공 소속 RA-85550)를 타 화를 피할 수 있었다.[2] 37초 경에 줌인되는 항공기가 이 사고로 인해 추락한 RA-85185다.[3] 흑해와 접해 있는 도시이며 러시아에서는 제법 유명한 휴양지다.[4] 사고가 일어난 뒤 조종석은 이렇게 변했다[5] Tu-154는 1999년부터 중국 시장에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중국서남항공 4509편 추락 사고, 중국서북항공 2303편 추락 사고가 일어난 후 러시아제 항공기의 안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6] 관제사의 음성이 제거되었다[7] 관제사의 실수로 해당 난기류의 정보는 조종사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8] 약 226노트[9] 블랙박스 기록을 보면 이때 기장은 욕설까지 사용하면서 하강하자는 의견을 묵살하였다.[10]4만 2천 피트로, 투폴레프 Tu-154의 규정최고고도는 12,100m이다.[11] 우크라이나의 한 십대 소년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블랙박스 분석 결과 실속에 빠진 후 조종간을 앞으로 미는 조작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13] 게다가 당시 현역이었던 러시아제 구식 여객기들은 보잉이나 에어버스와 같은 서방제 여객기엔 있는 자동 실속 회복 장치 또한 없었다.[14] 해당 추모 공원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전선 근처에 간당간당히 걸쳐 있으며 2023년 12월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다.[15] 단,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 사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