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9 11:43:05

장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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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장세준(張世俊)
출생 1957년 10월 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망 1997년 8월 6일 (향년 39세)
미국
가족 2남 1녀 중 장남 (여동생, 남동생 장세헌)
배우자 정경애[1]
학력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데뷔 1982년 한국방송 성우극회 17기
지인 영화배우 한석규[2], 성우 홍성헌

1. 개요2. 상세3. 사망4. 주요 출연작
4.1. 애니메이션4.2. 외화

1. 개요

대한민국의 남성 성우. 배우자는 동갑내기 성우인 정경애(1957~1997, 당시 40세)다. 자녀는 장성민(1987~1997, 당시 10세), 장재민(1994~1997, 당시 3세)이었다.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일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2. 상세

본래 TBC 공채 배우 출신이었지만 TBC는 신군부가 저지른 언론통폐합 때문에, KBS로 흡수되었다. 결국, 1982년 KBS 17기 공채 성우가 되었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감미로운, 때로는 서늘하고 섬세한 미성의 목소리가 특징으로 외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미소년, 미청년 주인공을 많이 맡았다. 실제로도 동료 성우들이 본받을 정도로 성품이 부드러웠다고 한다. 반면, 행실이 나쁜 후배들에게는 호되게 충고했을 만큼, 엄격한 면모도 있다. 성우 출신으로 연기자로 대박을 거둔 한석규의 대학선배이기도 한데, 씨네21에서 1999년에 한석규는 인터뷰하다가 고인이 된 장세준 선배 이야기를 하며 씁쓸해했다. 대학 시절에도 후배들을 아껴줘서 잊지 못한다고, 성우 초보인 자신에게도 온갖 평가도 해줬는데 장세준은 후배인 한석규에게 넌 성우로도 나쁘지 않지만, 배우로서 더 빛을 볼 거 같다고 충고해줬고 이 인연으로 성우보다 연기자가 되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한석규는 장세준 선배님이 성우 후배들도 아껴주던 분이었는데 너무나도 일찍 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용한 성격으로 말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주로 외화에서는 마이클 J. 폭스, 조니 뎁, 장국영, 브래드 피트, 성룡 목소리를 전담한 걸로 유명하다. 그밖에도 코스비 가족 만세에서 테오 코스비의 코맹맹이 목소리를 맡았다.

사실 성룡 전담 원조는 배한성이지만[3] 오히려 장세준 버전 성룡이 더욱 잘 어울린다고 평가한다. 당시 어린이들이 장세준의 목소리가 실제 성룡의 목소리일 거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성룡연기를 마지막으로 했던 작품은 폴리스 스토리 3편 까지다.

만화에서는 슬램덩크 서태웅(대원비디오판)으로 유명. 특히 후뢰시맨을 보고 자란 세대에게는 특히 친숙한 목소리이기도 하며,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중반까지 TV광고 단골 나레이션으로도 유명했다.

SBS TV방영판에서는 장세준과 절친했던 후배 성우 김승준이 서태웅 역을 밑았다. 서태웅 외에도 김승준은 장세준 뒤를 이어서 외화에서 조니 뎁, 장국영, 브래드 피트 목소리를 맡고 있다. 성룡 역은 후배 성우 김일이 이어받았으며 장세준의 역할들은 위에 서술한 김승준, 김일 외에도 구자형, 홍시호가 그 연기영역에 알맞게 이어받았다. 권혁수 성우도 담당한 적이 있다.

사후에는 유족들이 그의 생전 목소리를 듣는 것이 괴로워서 생전에 녹음되었던 성룡영화들의 성우교체를 요구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진위여부는 불명. 이때문인지는 몰라도 98년 이후 폴리스 스토리 3부작은 성우가 홍시호로 교체[4]되어 방영되었다. 지금이야 유튜브에서 간간히 자료가 나오긴 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유독 성룡영화 더빙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유튜브나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짤막한 클립의 성룡연기들이 업로드되어 있으며 방영 당시 비디오 녹화 자료에서 음성만 따와 제법 고화질 파일에 한국어 더빙으로 장세준 목소리를 그대로 덧입힌 파일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장세준의 성룡연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자료를 유료로 공개해주길 원하지만 30여년이 지났고 더빙이 한차례 교체된지라. 상당수 작품들이 손상,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저작권 문제도 있기 때문에 현실상 어려울 듯 보인다.

토이 스토리, 라이온 킹 한정으로 후배 김승준과 목소리가 매우 똑같다.[5] 라이온 킹 1과 라이온 킹 2~3의 성우와, 토이 스토리 1과 토이 스토리 2~3의 성우가 다르다는걸 눈치 못챈 사람들이 참 많다.

여담으로 평소 더빙 목소리 억양은 현대 서울 말이나 표준어 억양이 아닌 서울토박이 말씨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평소 더빙할 때 보면 다른 성우들과 달리 "니"라는 표현 대신에 "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등 이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사망 직전에는 서울 사투리 억양이 조금 희석되긴 하였지만(...).

3. 사망

1997년 8월 6일 가족동반으로 여름휴가차 괌으로 여행가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일가족 모두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가 만 39세였다. 시신 일부라도 찾아내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추락할 때 발생한 화재 때문에 사라졌다고 추측한다. 결국 온 가족 모두 무덤은 가묘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저 사건은 항공 사고 수사대에도 나왔다.

참고로 아내인 정경애SBS에서 방영하던 마법기사 레이어스 윈디(호우오우지 후) 역할에 캐스팅된 상태였는데, 방송위원회의 심의 때문에 방영을 미룰 때,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모두 사망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가 막히는데, 더욱 슬픈 것은 당초 첫 방영일이 1997년 8월 6일이었다. 만약 방영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면, 정경애가 스케줄 때문에 가족 여행을 안 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드는 일화이다.[6]

장세준 생전에 국내 공중파(SBS)에서 방송되었던 TV 외화시리즈 슈퍼맨 주인공 슈퍼맨 역을 맡은 적이 있어 항간에는 슈퍼맨의 저주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장세준의 뒤를 이어 성룡을 전담하던 후배 성우도 21년 후인 2018년 11월 18일자로 유명을 달리했다.

4. 주요 출연작

이후 김승준이 맡은 배역은(★), 김일이 맡은 배역은 (☆)

4.1. 애니메이션

4.2. 외화



[1] 1986년 결혼.[2] 원래 그는 KBS 성우극회 공채 22기 성우 출신으로, 실제로 장세준의 충고를 듣고 배우로 나아갔다. 한석규는 1998년 씨네21 인터뷰에서 자기 배우 인생에게 크나큰 기둥이신 장세준 선배님이라 언급하면서 사고로 온가족이 요절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더구나 그 사고를 일으킨 대한항공 협조로 제작된 파일럿에서 주연으로 그것도 현역으로 일하기 힘든 손떨림으로 인해, 비행학교 교관으로 전환된 부분이 있는 배역이었기에 상당한 트라우마가 추측될만한 부분이다.[3] 한국, 홍콩합작영화인 정권(금강혈인), 소권괴초, 유성검 대결같이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배한성이 거의 방영판 성룡을 도맡았다.[4] MBC의 경우이며, SBS판 4편은 김일이 맡았다.[5] 둘 다 차도남스러운 미소년, 미청년을 자주 맡는다는 공통점도 있고, 그 사례는 브래드 피트 전담이라는 점이다.[6] 그래서 이 사고 당시에 PC통신 애니메이션 관련 게시판이 완전 들끓었으며 방송위원회에 분노를 표시하는 글도 올라왔다. 당연하겠지만 방송위 잘못은 아니지만, 고인을 떠나보낼 수 밖에 없던 당시 대중들의 마음이 표현되었던 상황이다.[7] 1기 한정. 2~3기는 홍승섭.[8] 여담이지만 같은 작품에서 손오공을 맡았던 동기 백순철도 2011년에 사망했다.[9] 최근에 개봉한 3D 버전도 포함.[10] 2편 부터는 후배 성우 김승준이 맡았다.[11] 중간에 홍시호로 변경되었다.[12] 2편에서는 손원일이 맡았다.[13] 아내 정경애는 KBS판에서 앙드레의 아내인 오스칼과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리고 KBS판에서 앙드레를 맡은 사람은 한 때 동기였던 백순철.[14] 1988년 일본 애니로 1991년 비디오판에서 셀레네의 부하인 이사크를 장세준이 맡았으며 여주인공 셀레네는 아내인 정경애가 맡았다. 1995년 1월 2일 새해특선 KBS 더빙판 (제목은 마법의 뿔고래)에선 각각 홍시호송도영이 이 배역을 맡았다.[15] KBS판은 김일.[16] 그의 사후에 나오는 토이스토리 시리즈에서는 라이온킹 처럼 김승준이 맡고 있다.[17] 마지막 KBS 외국 영화 출연작.[18] 마지막 KBS 외화시리즈 출연작.[19] 마지막 외화시리즈 출연작. 나머지 미녹음 분량은 1기수 후배 유동현이 맡았다.[20] 1997년 8월 23일 MBC에서 방영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녹음한 유작.[21] 첫방송은 1996년 2월 18일 설날특선영화로 했으나 1997년 8월 6일 괌 항공기 추락사고 직후 SBS에서 긴급편성해 1997년 8월 15일 광복절 특선영화로 재방송했다. 시작전 5초 가량 암전상태에서 장세준 성우의 사망을 추모하는 자막이 나간후 방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