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21:09:59

미군 vs 소련군

VS놀이: 미군 vs
조선인민군 중국 인민해방군 러시아군 세계연합군 소련군 대한민국 국군 자위대

VS놀이 - 소련군 vs
미군 자위대

미군 VS 소련군
파일:미국 국기.png 파일:소련 국기.png

1. 개요2. 군사적 비교
2.1. 시기별 비교: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2.2. 서방진영과 공산진영
2.2.1. 미국NATO: 군별 비교2.2.2. 소련바르샤바 조약기구 : 군별 비교
2.3. 만약 전쟁이 일어났다면?
2.3.1. 전면적 핵사용을 전제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공세2.3.2. 핵탄두 사용을 배제한 재래식 전쟁
3. 경제적 비교
3.1. 서방 세계3.2. 동방 세계

1. 개요

냉전시대의 전면전은 언제나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들 전체의 전쟁을 상정하고 있고, 미군소련군이 단독으로 싸울 일은 없으므로, 본 문서의 이름인 '미군 vs 소련군'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이름이다. 그러나 NATO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미군이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주력 역시 어디까지나 소련군이었다. 뿐만 아니라 NATO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고 바르샤바 조약기구 역시 소련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었던 관계로 나무위키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여 편의상 본 문서의 이름을 'NATO vs WTO'가 아닌 '미군 vs 소련군'으로 정하고 있다.

실제로 단순히 군사적인 면만 보면 현재의 그 어떤 것보다도 흥미 있으며, 당장 나토군바르샤바 조약기구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두 군사집단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군이며,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은 세계멸망과 동급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유일하게 미국과 군사적으로 비등비등했던 국가란 인식이 있어서인지, 관련 2차 창작물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두 국가가 대놓고 맞붙어 싸운 적은 없지만, 한 국가가 어떤 전쟁에 개입하면 다른 한 쪽에서 지원하거나 몰래 병력을 투입시키거나 하여 대리전이 벌어졌다. 당장 미국이 직접 참전한 한국전쟁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소련이 만든 탱크, 무기, 전투기들을 상대해야 했고, 수만 명 단위의 소련군이 실제 참전했었다. 소련이 직접 참전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은 미제 무기들을 상대해야 했었고, 무자헤딘군은 미군에게 훈련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 발발했다면, 설사 재래식 전쟁이었더라도 불리한 쪽은 핵탄두를 사용해 에스컬레이션을 일으켜 전면적인 핵전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에는 인류의 절멸 혹은 절멸은 면하더라도 문명의 멸망을 가져왔을 것이라는게 과학자들의 예상이었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대규모 연소로 생긴 분진이 태양 에너지를 막아 생길 핵겨울이나, 심각하게 지표면을 덮을 방사능 물질, 그리고 수백년 후 핵겨울이 끝나더라도 이후에 이미 오존층은 파괴되어 지상에서 인류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냉전 피크(1980년대)에 미국소련핵탄두 수는 25,000기, 45,000기였으며, 현재 미국러시아는 각각 8,000기, 12,000기씩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는 수백기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프랑스, 영국 같은 2류 핵보유국가와는 넘사벽인 셈. 일단 냉전 당시의 양은 지구를 7번 멸망시킬 수 있는 양이라고 추정되며, 지금 보유한 양도 2-3번은 문제없을 지경이다.

2. 군사적 비교

사실상 이 이야기가 아직도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2.1. 시기별 비교: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

2.1.1. 1959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70px-1959_NATO_and_WP_troop_strengths_in_Europe.svg.png

2.1.2. 1973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70px-1973_NATO_and_WP_troop_strengths_in_Europe.svg.png

2.2. 서방진영과 공산진영

2.2.1. 미국NATO: 군별 비교

붉은 폭풍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초반, 보다 정확히는 위기 의식이 극에 달했던 1970년~1980년 당시 기준으로 양군의 지상전력을 비교하고자 한다.

정확한 해당 소스를 통해 크게 독일이 중심이 되는 중부전선과 발칸 반도 일대가 중심이 되는 남부전선으로 유럽을 분할하며, 증원이 아닌 즉응 가능성을 가진 부대 위주로 서술할 것이다. 즉 유럽 대륙 내에 당장 주둔하고 있는 부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다만 중부유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스페인군이나 포르투갈군, 다른 NATO 국가들과 달리 홀로 북부유럽에 떨어진 노르웨이군 등은 생략했다.
나토의 군사적 편제는 NORTHAGCENTAG 집단군으로 기본적으로 나누어진다.
  • 중부전선
  • 미군
    • 제7군
      • 5군단
        • 3기갑사단/8보병사단
        • 11기갑기병연대
      • 7군단
        • 1기갑사단/3보병사단
        • 1보병사단 3여단/2기갑기병연대/캐나다군 1보병사단 4기계화여단[1]
      • 199보병여단[2]/2기갑사단 3여단
  • 서독연방군[3]
  • 영국 라인 군단[6]
    • 1기갑사단/3기갑사단/4기갑사단
    • 1왕립포병사단
      • 9~12왕립척후창기병연대/13~18왕립척후검기병연대[7]
    • 베를린 여단[8]
    • 본토 주둔 영국군
      • 왕립기병대
    • 1기병연대 라이프가드/1용기병연대 블루스 앤 로얄스
    • 2보병사단
    • 1보병여단/2보병여단/8보병여단/19보병여단/42보병여단/43보병여단 웨섹스/51보병여단 하이랜드/52보병여단 로우랜드/54보병여단/56보병여단/143보병여단/160보병여단 웨일스
  • 네덜란드군[9]
    • 1군단
      • 1기계화사단/4기계화사단/5기계화사단[10]
  • 벨기에군
    • 1군단
      • 1기계화사단/16기계화사단
      • 3창기병대대
  • 프랑스군
    • 1군
      • 13공수용기병연대
      • 1군단
        • 1기갑사단/7기갑사단
        • 12경기갑사단/14경기갑사단
        • 8검기병연대
      • 2군단
      • 3군단
    • 신속대응군
      • 4공중기동사단
      • 6경기갑사단
      • 9해병사단
      • 11공수사단
      • 27산악사단
      • 외인부대
  • 덴마크군
  • 남부전선 : 남동부 유럽, 즉 발칸 일대를 임의로 나누었다.
  • 그리스군
    • 1군
      • 1개 독립기계화보병여단/1개 기갑정찰여단
      • A군단
        • 1차량화보병사단/2차량화보병사단/3차량화보병사단
        • 4보병사단/5보병사단/6보병사단
      • C군단
        • 7보병사단/8보병사단/9보병사단
        • 20기갑사단
      • D군단
    • 3군
      • 1개 기갑정찰여단
    • 4군
      • 1개 기갑정찰여단
    • 공수특전사단[11]
  • 터키군
    • 3기계화사단/66기계화사단
    • 1기갑사단
    • 2개 기계화보병여단/4개 기갑여단

NATO의 국가들은 사실상 2차 대전의 참전국으로 한몫을 챙기던 국가였고, 1차 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시기엔 엄연히 초강대국이던 국가들이었으며, 동유럽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인지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처럼 일방적으로 미국이 감놔라 대추놔라 한다고 놓는 국가들은 아니었으며, 2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그래도 알아서 조금씩 기긴 기어야 하지만 영국프랑스의 경우 독자적인 핵무장까지 이룩했던 국가들이었다. 서독은 패전국이었지만, 사실상 유럽최전방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주요 외계인 고문국 중 하나고

다만 이탈리아의 경우 분명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위의 전력비에 포함시키지 않는데, 이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정치 상황을 고려한 것이며, 실제로도 전시 이탈리아군은 즉응하는 임무가 아닌 국가 내부 안정 및 전선 증원에 중점을 두는 역할을 맡았다. 이탈리아군이 너무 형편없어 나토군 총계에서 뺐다는 소리도 있지만, 900대의 레오파르트1 전차와 300대의 M60 패튼을 보유한 군대가 전력이 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근대 이후의 역사만 본다면 전력에 의구심이 들 수도 있긴 하겠지만 이 이야기 대다수는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폴고레 공수사단 등 열악한 군사장비의 한계를 넘어 맹활약하던 이탈리아 군인들도 많았다.[12]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NATO는 동구권의 압도적 숫적 우위, 특히 무지막지한 기계화부대의 진격을 MLRS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지연 및 섬멸하려 하였다. 여기에 독일군영국군, 미군이 그 화력의 엄호를 받으며 바르샤바 조약군의 주력을 섬멸, 프랑스군 등 직접적으로 주력이 초기에 노출되지 않는 후속 부대의 증원을 통해 최종적인 지상전에서의 승리를 얻어내려 했을 공산이 높다. 간혹 이 시기의 NATO가 소련의 수적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전술핵을 운용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는 시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유럽 전선은 재래전으로 포커스가 이동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70년대 핵균형이 성립해 양측 모두 MAD능력을 갖게 된 이래, 전술핵 사용은 에스컬레이션을 불러일으켜 전면핵전쟁에 의한 상호 공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비핵 재래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증대되고 재래억지나 재래전력 균형이 국제안보연구와 군사학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자연히 군의 작전계획과 전력발전 역시 재래전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공지전 교리 개발이나 소련 종심전투교리의 부활 같은 작전술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나토도 선제핵공격 계획을 수립하긴 했다.

해군력의 경우, NATO에는 미국이 있으므로 두말 안해도 잔소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해군에서의 전력비는 잠수함을 제외하면 안드로메다로(…) 게다가 미국을 제외하더라도 영국, 프랑스는 전통적인 해군 강국이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도 해군 전력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였다. 반면 공산권은 소련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해군력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공산권의 다른 축인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냉전 시기에는 해군력이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외에도 미국과 영국의 동맹국들인 호주와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참전하고, 미국과의 방위 협정에 따라 일본의 해상/항공전력과 한국의 지상군 전력이 극동에서 가세할 경우 소련은 다중 전선을 강요받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을 것이, 지상군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본격적으로 서방 진영 내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냉전 당시에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이기는 하나, 지상군에만 치중한 전력 불균형으로 인해 3차 대전이 벌어지면 상당히 애매한 위치에 있는 개도국 중 하나였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력은 북한 상대로는 쓸만했으나, 소련이나 중국을 상대로는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13], 일본의 지원 없이는 싸움조차 못 할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제대로 된 지역 강국 겸 군사대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널리 인정 받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쯤으로, 냉전이 끝나고도 근 20년이나 지난 뒤였다. 실제로 한국의 해공군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했고, 이 이후에서야 차차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국의 지상군은 냉전기에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 일본의 해상 전력과 항공 전력과 함께 작전하면 그래도 제몫은 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자체적인 항공 전력과 해상 전력이 너무나 취약해 전체적인 평가를 깎아먹었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는 지상군 이외의 전력 증강을 뒷받침할 경제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선진국 타이틀에 걸맞는 경제력을 갖춤과 동시에 과학기술과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어느 정도 국제적 위상도 갖게 된 2000년대 후반부터 서방 자유 진영의 주요 국가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2.2.2. 소련바르샤바 조약기구 : 군별 비교

  • 중부전선
  • 소련군
    • 소련군 서부군집단
      • 1근위전차군
        • 9전차사단/11근위전차사단
        • 20근위차량화소총사단
        • 1근위전차연대
      • 2근위전차군
        • 21차량화소총사단/207차량화소총사단/94근위차량화소총사단
        • 16근위전차사단
        • 94전차여단
      • 3충격군
        • 7근위전차사단/10근위전차사단/12근위전차사단/47근위전차사단
      • 8근위군
        • 27근위차량화소총사단/39근위차량화소총사단/57근위차량화소총사단
        • 79근위전차사단
        • 47전차여단
      • 20근위군
        • 35차량화소총사단
        • 25전차사단/32근위전차사단/90근위전차사단
        • 5전차여단
        • 6차량화소총여단
    • 소련군 북부군집단
      • 6차량화소총사단
      • 20전차사단
    • 소련군 중부군집단
      • 4근위군
        • 18근위차량화소총사단/30근위차량화소총사단/48차량화소총사단
        • 1근위전차사단/51전차사단
        • 단대호 미상 전차여단 1개
    • 소련군 레닌그라드 군구
      • 6제병협동군
        • 37근위차량화소총사단/54근위차량화소총사단/63근위차량화소총사단/65근위차량화소총사단/68근위차량화소총사단
      • 바이보르그 군단
        • 45근위차량화소총사단/64근위차량화소총사단/111근위차량화소총사단
      • 아르항겔스크 군단
        • 45차량화소총사단/69차량화소총사단/77차량화소총사단
  • 동독군
    • 3군
      • 4차량화소총사단/11차량화소총사단
      • 7전차사단
      • 2근위차량화소총연대
    • 5군
      • 1차량화소총사단/8차량화소총사단
      • 9전차사단
  • 체코슬로바키아군
    • 1군
      • 2차량화소총사단/19차량화소총사단/20차량화소총사단
      • 1전차사단
    • 4군
      • 3차량화소총사단/15차량화소총사단
      • 4전차사단/9전차사단
    • 동부 군구
      • 13전차사단/14전차사단
  • 폴란드군
    • 1군
      • 1차량화소총사단/3차량화소총사단/9차량화소총사단
    • 2군
      • 8차량화소총사단/12차량화소총사단/15차량화소총사단
      • 16전차사단/20전차사단
    • 3군
      • 2차량화소총사단/4차량화소총사단
      • 5전차사단/10전차사단/11전차사단
  • 헝가리군
    • 11전차사단
      • 4차량화소총여단/8차량화소총여단/9차량화소총여단/15차량화소총여단/17차량화소총여단
    • 1전차여단
  • 남부전선
  • 소련군
    • 소련군 남부군집단
      • 9근위군
        • 93근위차량화소총사단/253차량화소총사단
        • 2근위전차사단/13근위전차사단
  • 루마니아군
    • 1군
      • 1차량화소총사단
      • 4전차사단
    • 2군
      • 7차량화소총사단/19차량화소총사단/57차량화소총사단
    • 3군
      • 2차량화소총사단/8차량화소총사단
    • 4군
      • 11차량화소총사단/81차량화소총사단
  • 불가리아군
    • 1군
      • 1근위차량화소총사단/28차량화소총사단
      • 9전차여단
    • 2군
      • 2차량화소총사단/17차량화소총사단/19차량화소총사단
      • 5전차여단/11전차여단
    • 3군
      • 3차량화소총사단/7차량화소총사단/18차량화소총사단
      • 13전차여단/24전차여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전차만 놓고 비교하자면 1:2를 넘는 수다. 게다가 특정 전역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통해 전선의 돌파 및 전과 확대를 지향하는 소련 지상전 교리를 감안하면 이는 순간적으로 1:5~1:10까지 벌어질 여지가 있는 정도.

NATO 국가들이 엄연한 2차 대전 참전국에 전세대 슈퍼파워였다면, 동유럽 국가들은 2~3류국에 독소전쟁의 최전방이었다. 즉 NATO 국가들처럼 회원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련위성국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경제력 역시 NATO 구성국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NATO와 1번 떠볼 정도의 군사력은 갖고 있었다. 단지 소련과 마찬가지로 그걸 유지하기 위한 경제력이 딸렸다.

주로 이들은 소련군교리를 채택하고 실제로 통제도 거의 소련군이 일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소련군식 교리 아니랄까봐 지상군이 상당히 강하고 숫자도 많았다. 유일한 예외는 동독인데, 다른 나라는 해당 군대가 탱킹을 하고 소련군이 딜링을 하는데 반해, 동독은 반대다. 서독군에게 동독군이 무저항으로 투항할 것을 우려한 정치적 안배라는 이야기도 있고...

어쨌든 전쟁이 벌어졌다면 위협이 됐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2.3. 만약 전쟁이 일어났다면?

2.3.1. 전면적 핵사용을 전제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공세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작전계획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훈련 영상을 적당히 편집하거나 3D 그래픽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후반부에 양측의 핵공격에 주요 대도시[14]이 잿더미가 되는 장면이 압권.

파일:CNywwHPr.jpg
Plan of Action 계획 작전지도.

2007년, 역사학자 페트르 루나크(Petr Lunak)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Plan of Action 계획 문서를 발견한다. 영문판 PDF[15] 1964년에 기록되어 체코슬로바키아 서기장의 서명이 들어 있는 이 문서에는 유럽에서의 바르샤바 조약군의 "반격 작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조치를 다루고 있었다.

이 작전은 나토군의 기습에 대한 바르샤바 조약군의 반격을 가정하며, 이 문서에서는 NATO의 침공 전략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의 정치, 경제 중추에 대한 핵 타격과 기습적인 비행장, 통신소 등의 군사시설 타격, 국경 지대 병력의 주력 섬멸로 보았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계획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NATO의 핵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핵공격의 지원을 받으며 지상군을 진격시키려 했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자세한 계획을 살펴보자. 작전에서는 핵미사일핵탄두 총 131개가 필요하며, 핵미사일 96기, 핵탄두 35기이다. 1차로 핵무기 41기로 핵공격을 가해 적군의 주력 야전 병력을 섬멸하고, 바르샤바 조약군 전력은 서독의 주요 도시로 진격하게 된다. 서독을 점령하고 NATO의 반격이 없다면 1주일 내로 프랑스 전역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군은 국경이 접한 서독 바이에른 주의 주요 도시와 적 주력의 야전 병력을 핵탄두 10기로 타격하게 되고, 소련군과의 협조로 미군프랑스군의 주력을 궤멸시킨 후, 공수부대를 동원해 네카 강과 라인강을 건넌 후, 프랑스예비대를 격퇴하고 리옹 방향으로 진격하기 위해 프랑스 국경 지대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공군은 핵 반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뉘른베르크스트라스부르NATO벙커와 공군 사령부를 타격할 예정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robable_Axes_of_Attack.jpg
Seven Days to the River Rhine의 작전 계획도. 1979년에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수립한 공격 계획이다.

2010년 9월 4일 독일 슈피겔지에는 과연 동구권측의 고전적인 설명대로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방측으로 공격에 대비한 방어-내지는 반격 전략만을 수립해놓았는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슈피겔동독에 산재해 있는 1,200여개의 벙커들과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들을 연구한 학자들과 전직 동구권 장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측은 선빵도 염두를 해두고 있었다는 것.

바르샤바 조약군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전장서독-동독 지역이 포함된 중부유럽에 대한 개전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전쟁 개시 90분 동안 바르샤바 조약군은 NATO의 주요 시설과 공항, 정부 부서 등,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인프라 시설에 수천 개의 핵탄두로 공격을 가한다.[16]초기 공격대상에는 라인강을 넘어 브뤼셀, 앤트워프, 암스테르담, 브레멘, 함부르크, 쿡스하펜, 엠덴, 뮌헨이 포함된다. 평화 협상은 누구랑 하려고 이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현대 밀덕계에서는 소련군기동전 교리상 마비를 중시하기에 이런 공격을 가하는 것을 계획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섬멸병기인 핵의 투발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NATO가 먼저 핵을 쏘기 전에 이쪽이 한 발 앞서서 먼저 핵을 쏘아 선빵을 날림으로서 NATO가 핵을 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 물론 이럴 경우 협상 따위는 이미 안드로메다. 진짜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게 된다.

핵공격의 시작과 함께, 중부유럽에서 지상군 주력이 전개된다. 북부에서는 폴란드군덴마크 인근의 유틀란드 반도까지 6일 내에 도착한다. 남서쪽 전선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지원을 받아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주로 진격한다. 중부에서는 소련군의 지원하에 동독군이 국경을 넘어 루르 지역, 프랑스알자스-로렌 지방까지를 목표로 삼는다. 최종적으로는 라인강까지는 7일 이내에, 대서양 해안 지대까지는 12일 이내에 진격한다.

하지만 이 작계를 본 위키러라면 "핵으로 선빵 날린다 치자. 그런데 아군 피폭은?" 라고 궁금증을 품을 법 하다. 거기에 이 친구들 왈.

작전계획에 따르면, 라인강변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방사능 피폭증상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라인강변에 도착하면 이들 방사능피폭된 병사들은 제2전략군으로 재배치할 예정이었죠.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는 소련 입장에서는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작계일 수도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권은 핵미사일 완전 자동 발사장치를 구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 날릴 수뇌부가 사라지면 핵 맞을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줄어버린다는 것. 설사 이런 방식으로 선제공격이 시작된다 해도, 나토 역시 이런 전쟁에 대비하지 않은 게 아니므로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

실제로도 소련군은 이런 작전을 수행하는데 충분한 능력을 갖춘 병기들을 양산하였으며 소련군 차량들은 일반적으로 공수주 스팩만 그럭저럭 괜찮을 뿐 소프트스팩이 서방식 차량에 비해 열등하여 훨신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핵전쟁 상황을 가정한 양압식 NBC 방호 장치등의 장비는 당시의 미제 차량을 그야말로 완전히 압도한다.[17] 당시 소련군은 보병부대를 포함한 전군의 기계화가 되었고 차량 내부에서는 당대 최고 수준의 대 방사능 보호 장비의 혜택을 볼 수 있었기에 현실적으로도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2.3.2. 핵탄두 사용을 배제한 재래식 전쟁

위 항목에 서술된 내용은 적극적인 전술 핵탄두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핵사용을 배제한 재래식 전쟁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을 배경으로 한게 톰 클랜시의 유명한 붉은 폭풍 이라는 군사 소설이다. 이 경우 동유럽에서 시위가 발생해 나토군이 개입하거나, 바르샤바 조약군의 전면적인 기습, 또는 나토군의 선제공격등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수 있다. 다만 이 항목에서는 동북아시아 전선의 경우는 제외하고 서술하겠다.

먼저 동유럽에서 대규모적인 시위가 발생해 나토군이 개입하는 경우, 이럴땐 나토군 또는 바르샤바 조약군 서로 기습당할 이유없이 개입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전무장을 하고 격돌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프라하의 봄이나 폴란드 자유노조 사건 에서 볼 수 있듯이 동유럽에서 시위가 일어난다는건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동독 등의 추가 전력고기방패 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는것이다. 심지어 동구권 국가의 군부들 마저도 소련에 반감을 가져 오히려 역으로 소련에게 총을 겨눌 수 있다. 아무리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소련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동유럽 국가들의 지원과 시간끌기 뿐만 아니라, 소련 국경에서 직접적으로 오는 공격을 막는것은 소련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당장 중국이 왜 1950년대에 북한을 지원군을 보내면서 까지 사수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보자.

그러나 이런 시위상황은 일단 서방 측이 유리하긴 하나, 결국 그 시위가 서방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를 것이다. 시위대가 대부분 민간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들을 사이에두고 양진영의 두 군대가 직접 충돌하게 되면 대규모 유혈사태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러면 동유럽 사람들의 민심은 서방한테 기울기가 힘들 것이다. 시위대들은 더이상의 무력,폭압적 진압과 통치를 막기위해서 싸운다지만, 그래도 나토의 개입때문에 나라가 개발살이 나도록 싸우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토군은 소련을 압박함과 동시에 시위에 참가하는 민간인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환경 때문에 광범위 타격무기같은 것은 꿈도 못꾼다. 모든 사람들이 시위때문에 거리에서 북적북적거리는데 거기다 대고 포격이나 폭격을 했다간 나토군의 입장이 말이 아닐것이다. 따라서 소련군에 대한 정밀타격 무기(유도 미사일 등)가 더 많이 이용될 것이다.

두번째는 바르샤바 조약군 (이하 조약군)의 전면적인 기습상황인 경우다. 조약군은 성공적인 기습을 위해 간첩을 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에 따라 정찰 특수부대들이 작전에 나선다. 참고로 조약군이 전시상황때 주로 운용한 교리는 적 깊숙히 지휘부를 마비시켜 신속하게 적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가는 "종심 작전 이론" 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러한 특수공작이 매우 중요하다.

3. 경제적 비교

3.1. 서방 세계

경제규모가 가장 큰 미국이 주도하며 서유럽 역시 경제대국들인 서독, 영국, 프랑스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냉전 대부분의 기간동안 서유럽 자체로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전체의 총생산/국민소득과 맞먹었으며, 특히 미국1950년대에는 전 유럽 전체와 맞먹는 총생산을, 1980년대에도 서유럽 또는 동유럽(소련 포함) 전체와 비슷한 총생산을 가지고 있었다.[18][19]

3.2. 동방 세계

동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여겨진 것과는 달리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하게 중상위권 정도의 소득은 되었다. 특히 동독이나 체코슬로바키아는 절대적으로 본다면 잘 사는 나라들이었다. 냉전 절정기인 1980년에는 미국서독이 12,000달러, 동독체코슬로바키아가 9,000달러, 소련이 6,000달러 정도였고 공산권 붕괴 당시인 1990년에는 미국 20,000달러, 서독 15,000달러, 동독/체코슬로바키아/소련이 10,000달러 정도였다.[20]

동유럽에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등 그럭저럭 산업이 갖춰진 국가는 나았지만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나라들은 상황이 무척 안 좋았다. 그리고 소련도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졌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50%정도였고, 참고로 붕괴무렵에는 경제규모가 일본에게도 밀렸다.[21]

소련동유럽중화학 공업은 군수산업과 항공우주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획경제의 핵심으로 발전했지만 식량 자급자족을 하지 못했고 경공업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는데 이건 공산주의와 소련의 관료제 탓이 크다. 소련의 경우 식량 수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서 충당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이 소련에 대한 식량 수출은 수출 자체로 인한 경제적 이득 외에도 정치적인 이득이 있었기에 이를 용인했다. 잉여 농산물을 수출함으로서 미국 내 농산물 가격의 조절이 가능하고, 소련의 식량난을 완화해서 소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나 북한, 쿠바, 아프리카·동남아 공산국가의 경우에는 설명이 필요없다. 국민소득 1000$를 넘는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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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시에는 캐나다군 1보병사단 전체가 미 7군단 지휘하에 들어올 예정이었다.[2] 일명 베를린 여단. 3개 보병대대에 1개 전차중대/1개 자주포대를 혼성 편제한 여단으로, 서베를린 방어에 투입되어 있었다.[3] 아래 나열된 부대 외에도 지역사령부(Heimatschutzen이라고 하며, 전시에는 나토군 산하에 편입되어 실전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산하에 다수의 예비 부대를 확보하고 있으며, 6기갑척탄병사단을 주축으로 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 사령부하노버 지역의 1지역사령부가 각각 군단급 편제로 개편되어 사단급으로 편제된 산하 지역 사령부를 흡수하여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무서운 건 향토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사령부 산하 부대들도 모두 기계화/차량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정도? 여기에 이 부대의 주력 전차는 레오파르트1.[4] 전시에는 1군단에서 분리되어 군단급으로 편제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 사령부 예하에 배속될 예정이었다.[5] 말만 산악엽병이지 예하 3개 여단 중 2개 여단이 기갑/기계화보병여단이었다.[6] 이후 BFG(British Forces Germany)로 개편된다.[7] 이 두 연대는 한국군 편제로 치면 기갑수색대의 역할을 수행했다.[8] 미군과 마찬가지로 1개 기갑중대를 혼성편제한 보병여단이었다. 다만 이 쪽은 기계화보병이 주력이다.[9] 여기에 예비군 1개 보병여단이 존재했다.[10] 이 중 1개 사단은 예비대 역할을 맡았다.[11] 공수부대해병대를 결합한 전투사단.[12] 굳이 폴고레 공수사단만이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병사 개개인의 자질은 롬멜한테서도 높게 평가받을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이 2차 대전당시 참패를 당해온것은 전쟁준비도 안됐는데 덜컥 참전을 결정해버린 무솔리니의 실책과, 그 때문에 형편없는 무기를 그나마도 적게 받을수밖에 없었던 이탈리아군의 사정 때문이었다.[13] 주한영연방군을 파견하거나 한국에 물자/금융 지원을 보냈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14] 런던, 바르샤바, 브뤼셀, 암스테르담, 쾰른, 파리[15] 원문은 러시아어다. 바르샤바 조약군은 소련의 절대적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히 고통받는 위성국 체코슬로바키아[16] ICBM들은 미국과의 확전에 대비해 아껴두고 주로 Tu-22Tu-95를 응용한 항공기 핵공격이나 SS-4같은 MRBM과 SS-20 IRBM으로 공격할 계획이였다.[17] 이 분야에서는 차량 단위의 양압식 NBC 방호장치가 존재하는 구형 T-55가 승무원용 마스크를 방호장치라고 달아둔 상당수의 서방제 3세대 전차보다도 우월하다. 그리고 그 상당수의 서방제 3세대 전차에 포함되는 것이 국군의 K1E1 계열을 제외한 모든 K1 전차.[18] 사실 지금이 미국20세기 이후로 제일 후퇴한 때이다. 20세기 거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미국은 국민소득으로 1위를 기록했다.[19] 90년대에는 일본도 서유럽 전체랑 맞먹는 gdp를 기록했다.[20] 참고로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1980년 기준으로는 3,000달러였으며, 1990년 기준으로는 6,000달러였다. 한강의 기적이 여전히 진행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 같은 여러 변수들 때문에 1980년부터 1990년까지 10년동안 국민소득은 겨우 2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한민국소련 붕괴 3년 후인 1994년에 국민소득 10,000달러를, 그로부터 12년 후인 2006년에 20,000달러를 돌파하였다.[21] 물론 국력자체는 소련이 압도적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