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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 (UTC+1/+2) | ||||
주 | 니더작센 | ||||
레기온 | 레기온 하노버 | ||||
인문 환경 | |||||
면적 | 204.14km² | ||||
인구 | 548,186명(2023년 12월) | ||||
인구 밀도 | 2,683명/km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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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북부의 도시. 라이네 강(die Leine) 중류에 위치한 니더작센의 주도다.
1241년에 시로 승격된 하노버는 1815년부터 1866년까지 하노버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그 전까지 이 지역 중심이던 브라운슈바이크와는 그 이후로 라이벌이 되었다.[1] 이는 현대 영국의 왕가인 윈저 가문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의 시조인 조지 1세가 바로 하노버의 선제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노버는 제조업의 중심지로 사무용품, 기계류, 자동차 등등을 생산하며 해마다 산업박람회도 개최한다. 또한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며,[2] 미텔란트 운하가 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14세기에 건설된 고딕양식의 마르크트 교회와 15세기에 건설된 옛 시청[3] 을 비롯해 역사 깊은 건물들이 많다. 17세기에 만들어져 하노버 왕가의 별궁으로 쓰였던 헤렌하우젠 궁전의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또한 하노버는 독일의 교통 요충지인지라, 하노버를 기점으로 니더작센 주의 여러 독일 소도시들을 당일치기하기에도 좋다. 힐데스하임, 고슬라어, 브라운슈바이크, 괴팅겐 등이 대표적. 특히 하노버 남쪽 동네들은 과거 호엔슈타우펜 왕조 시절의 신성로마제국의 주요 거점이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심한 폭격을 받았지만 로마네스크양식의 건물들이 일부 보존되어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위치상 니더작센 지역을 여행 중 들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한번쯤을 둘러볼만 하다.
2. 역사
중세 시기 한적한 어촌이었다가, 라인강의 수운을 이용하면서 브레멘, 함부르크 등 한자동맹 소속 도시 국가들의 무역을 독일 남부 지방과 이어주는 거점으로 이용되면서 도시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됐다. 이후 니더작센 지역에서 나오는 풍부한 은과 철을 바탕으로 더더욱 번성하였고, 17세기 중반에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이 곳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절정기를 누린다.헤렌하우젠 궁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은 이후 17세기 후반에 선제후로 지위가 상승되었고 그에 따라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국으로 격상되었다.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국이 정식명칭이지만 보통은 하노버가 도읍이었기에 하노버 선제후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1714년에는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으로 추대되면서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룬다. 이것이 오늘날 윈저 왕가로 이어지는 하노버 왕조의 시작이다.[4]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하고 이 곳의 관리들은 하노버 선제후가 아니라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의지의 하노버 선제후 조지 3세는 끝까지 영국 군대를 파견해서 나폴레옹과 맞서싸웠다. 그리고 이러한 기여를 인정받아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열린 빈 회의를 통해 하노버는 선제후국에서 왕국으로 지위가 상승했으며, 영토 역시 라인강까지 확장됐다.
이후로도 영국과 동군연합을 계속했지만 1837년 윌리엄 4세의 사망으로 동군연합이 끝났다. 영국은 왕위계승률에 따라 윌리엄 4세의 조카인 빅토리아 여왕[5]이 계승했다. 하지만 하노버에서는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이 있어서 조지 3세의 다섯째 아들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를 새 임금을 추대하면서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속된 동군연합은 종료된다. 사실 영국 정치권이 하노버를 영국의 이익에 필수적인 지역으로 여겼다면 이렇게 동군연합이 끝나든 말든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정치권은 유럽 대륙에 깊숙이 발을 들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역대 국왕들의 소망과 달리 죽 하노버 문제에 큰 관심을 안 가졌다. 따라서 영국에 여왕이 즉위하면 동군연합이 해체되는 건 불가피한 수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영국 정치권이 하노버를 중시했다면 하노버가 계속 영국의 영향권 안에 묶어 둘 수 있게 뭔가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정치권은 하노버에 큰 관심이 없어서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동군연합이 종료되고 말았다. 만약 영국이 하노버를 세력권 안에 묶어 두기 위해 노력했다면 유럽과 세계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동군연합이 해체된 뒤 하노버 왕국은 보오전쟁 당시 줄을 잘못섰다가 망했어요. 하노버 왕국은 멸망하고 프로이센 왕국 산하의 지역으로 합병되어 독일 제2제국의 일부가 된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공업화가 이루어져 19세기 후반 이후로는 독일 내 주요한 공업 중심도시 중의 하나가 됐다.
한편 영국과 하노버의 동군연합이 깨진 뒤에도 두 나라 간의 유대 관계는 어느 정도 이어졌었다. 하노버 국왕은 영국 내에서 공작을 겸했고, 하노버 왕국이 멸망하자 국왕을 비롯한 하노버의 왕족들은 친척들이 사는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동군연합이 깨지고 하노버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는 1901년까지 한참 동안 하노버 왕가가 군림했다. 그런데 마지막 하노버 국왕 게오르크(조지) 5세의 조카이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6]이 사망하자 게오르크 5세의 아들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에게 계승되었다. 이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빌헬름 2세의 딸과 결혼했고 빌헬름 2세는 자신의 사위에게 친척으로부터 물려받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승계를 인정했다. 그렇게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1913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즉위했고, 독일 제국의 제후가 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독일 편을 들었다가 영국 내 컴벌랜드 공작 작위를 박탈당했다.[7] 그리고 독일이 패전국이 되자 망했어요.
하노버는 공업 도시라는 특징상 2차 대전 기간 동안에 100회에 가까운 공습을 받게 된다. 종전 후에는 영국군의 점령 지역이 되었고 영국군은 하노버를 중심으로 하는 '하노버 주'를 이 일대에 신설하려고 했지만, 본래 하노버 왕국의 소속이 아니었던 지역(올덴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친 듯. 이를 둘러싼 토론 끝에 니더작센으로 주 이름이 결정되었고 하노버는 이 주의 새로운 주도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하노버의 인구는 도시권을 제외하고 약 54만 8천명[8]이다.
3. 언어
- 참고 문서: 저지 독일어
어느 지방의 독일어 방언이 표준에 가장 가까운가?
독일어라는 언어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도시인데, 하노버 방언은 적어도 음운면에서는 표준 독일어(Hochdeutsch)에 가장 가깝기에,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노버 및 브라운슈바이크 등의 지역민들이 사용하는 독일어는 소위 사투리가 적고 알아듣기 가장 깔끔한 독일어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하노버가 표준 독일어에 가까운 것은 역사적으로 독일의 중심이 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9]에서 니더작센 쪽으로 옮겨간 하나의 사회적 영향에 의한 선입견일 뿐이라는 견해도 많다. 실제로 북독일에 고지독일어가 널리 퍼진 이유는 프로이센 왕국에 의해 고지독일어가 반강제적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인데, 저지독일어와 고지독일어는 외국어 수준으로 달랐기 때문에 북독일인들은 고지독일어를 거의 제2외국어처럼 배웠다. 그리고 그런 식의 교육이 오래되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발음이 남부 방언들보다 오히려 더 순수한 고지독일어에 가깝다. 그리고 하노버 인근이나 브라운슈바이크 등 니더작센 남부의 억양은 이러한 경향이 극단적으로 강화되어 타 북독일 지역들과 다르게 저지독일어의 억양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혀 볼 수가 없다. 즉 억양이 가장 중립적이기 때문에 하노버의 독일어가 가장 표준독일어에 가깝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동부에 살던 많은 독일인들이 서쪽으로 도망쳤고 전쟁 종결 후 동프로이센이나 슐레지엔 등에 살던 독일인들이 강제추방 당하면서 많은 수의 독일인들이 구 서독에 정착했는데, 대부분 정착한 곳이 주로 니더작센이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등 현대 표준 독일어 사용 지역들이었다. 본래 하노버가 위치한 니더작센 주 자체는 저지독일어권(Platt)에 있었는데, 저지독일어를 들어보면 표준독일어 억양과 전혀 비슷하지 않고 오히려 덴마크어나 영국 영어 억양과 더 유사하다.
반면 베를린의 표준독일어 구사자들은 대부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사람들이어서 상당수가 생활 수준이 더 나은 서독으로 이탈하면서 수도인 베를린(동베를린 한정)이 아니라 북독일에 표준 독일어가 정착할 수 있었단 견해가 있다. 실제로 노동계급에 속하는 독일인들은 사실상 반강제로 그냥 남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사람들의 억양은 영국으로 따지면 노동계급이 구사하는 코크니 악센트에 해당됐다. 여기에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언어 정책으로 인해 구 동독지역에서 사용되는 어휘들 중 공산정권 수립 이후 생겨난 어휘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베를린 방언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동독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졌다.[10]
4. 여담
- 사실 원래 독일어 발음으로는 [haˈnoːfɐ]라 '하노파'(외래어 표기법대로 쓰면 '하노퍼')에 가깝다. 독일어는 v를 [f]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하노버'는 영어발음 영향을 받은 듯하다.
- 2000 하노버 엑스포를 개최하기도 했다. 나름 인상적이긴 했는데 경제적으로 성공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스콜피온스가 부른 주제곡인 Moment of glory는 꽤 유명하다. 하노버 박람회장은 주차장을 포함하면 1,000,000m²다. 전시 가능한 총면적 496,000m²라는 우월한 박람회장 크기로 인해 박람회로도 상당히 유명한 동네인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들은 산업박람회인 하노버 메세(Hannover Messe)와 컴퓨터 박람회인 세빗(CeBIT)이 있다.
- 스콜피온스가 처음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한 동네이다. 사실 중심 멤버인 루돌프 솅커부터 하노버 근처에 있는 중소도시인 힐데스하임 출신이다. 리드보컬인 클라우스 마이네는 아예 하노버 출신이다.
- 스콜피온즈 외에 이 동네 출신 유명인으로는 페어 메르테자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대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 등이 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이 곳 출신이 아니지만 하노버에서 뼈를 묻었을 정도로 하노버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다.
- 하노버 중앙역을 중심으로 한 8개의 S반 노선 뿐만 아니라 시내는 지하에서 운영하는 경전철도 방향에 따라 크게 3개로 분류되어있는 총 8개의 노선이 있어 굳이 버스를 탈 필요도 없을 정도로 대중교통은 매우 편리한 편이다. 불시 검표시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독일의 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60유로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하며, 반달리즘으로 인한 차량 파손 등의 사건이 생겼을 때 이를 목격하여 신고하면 포상금을 최대 500유로까지 받을 수 있다.
- 하노버 96 와 하노버 레젠트의 연고 지역이다.
- 과거부터 공업도시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 지금도 공업이 비교적 발달한 편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크게 발달한 편. 일단 볼프스부르크와 가장 가까운곳에 위치한 대도시라는 점 때문인지 폴크스바겐 상용차 사업부 본사와 공장도 있고 타이어 등 자동차 부품으로 유명한 콘티넨탈도 이쪽에 본사가 있다. 기타 제조업 회사들도 비교적 있는 편. 유명한 만년필 브랜드 펠리칸의 본사와 공장이 여기에 있다. 젠하이저도 엄밀히 얘기하면 틀렸지만 일단 하노버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는 맞다. 세계 최초로 콤팩트 디스크를 생산한 필립스[11]의 공장도 있었다. 3차 산업도 상당히 발전했는데 유달리 손해보험업이 흥하는 동네다.
[1] 멀쩡한 자기들 이름 놔두고 지금도 서로 동부파이네니 서부파이네니 깎아내리는 호칭으로 부른다. 참고로 파이네는 두 도시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름이다.[2]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를 잇는 남북선과 루어지방과 베를린을 잇는 동서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하노버를 기차 타고 가본사람은 안다. 하노버 시내는 사람이 별로 안붐벼도 하노버 중앙역 내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환승객이 엄청 많다.[3] 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독일 대도시들처럼 하노버도 폭격을 받았는데, 시청 바로 뒤에 호수가 있던 덕분에 폭격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건물이다.[4] 특히나 독일 태생으로 성인이 돼서야 영국으로 간 조지 1세와 조지 2세는 영국에서의 국정 보다 독일 내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영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샀다.[5] 윌리엄 4세는 조지 3세의 셋째 아들인데 사생아밖에 없어서 조카한테 왕위가 넘어갔다. 빅토리아의 아버지는 조지 3세의 넷째 아들인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인데, 그는 윌리엄 4세보다 먼저 세상을 떠서 즉위하지 못하고 어린 빅토리아가 즉위하게 되었다.[6]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하노버 왕가(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의 방계 가문이다.[7] 당시 영국과 독일 양국에 발을 걸친 귀족이 여럿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자 양자택일을 강요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한 쪽의 작위를 박탈당하는 귀족들이 여럿 있었다.[8] 2024년 현재[9] 독일 통일을 달성한 프로이센 왕국의 중심지는 동프로이센이 아니라 브란덴부르크였다.[10] 현재도 동독 붕괴 이후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베를린 방언을 구사하는 인구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11] 당시 Philips-Dupont Optical. 현재는 필립스가 폴리그램을 다른 회사에 매각하면서 여러 회사를 전전한 끝에 이 공장도 같이 매각이 되었는데, 현재는 유니버셜 뮤직 그룹이 이곳에 있는 CD 공장마저도 다른 회사에 매각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