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7 13:51:39

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



1. 개요2. 참고3. 관련 문서

전쟁이 끝난 1945년 초여름, 복수심에 불탄 프라하 시민들과 소련군이 벌인 독일인 학살. 길에 독일인들을 일렬로 세우고 총살한 후,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시신의 두개골을 트럭으로 으깨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희생자는 763명으로 추산되며, 이들의 시신은 체코 민주화 이후 발견되었다. 자신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체코인들이 자행한 살인"을 통해 이 영상을 공개한 체코의 방송 프로듀서 David Vondráček에 따르면, 위 학살은 2차 세계대전과 스레브레니차 학살[1] 사이에 벌어진 가장 거대한 규모의 보복 학살이라고 한다. 이 영상은 2010년에 공개된 직후 독일과 체코 양쪽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 개요

신성 로마 제국 시절부터 천 년 동안 이어진 독일계의 동방식민운동을 한 방에 리셋시켜버린 사건 이로 인해 엘베 강 동쪽 동유럽에서 오데르-나이세 선 이서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독일계가 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1950년에 동유럽권에서 일어난 독일인의 해외 추방 및 도주에 관해 설명하는 문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동유럽에 이주한 독일인들은 독일군의 패주와 함께 도망칠 수 밖에 없었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계 주민들이 도주하여 총합 최소 1000만 명 이상이[2]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 강제 추방되거나 도주하였고, 천만 명 수준의 난민 중 대략 2백만 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추산되고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도 독일계가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그나마도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독일계가 대부분 독일로 이민가버려 독일계 인구가 크게 줄었다.[3]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동유럽에서 많은 전쟁 범죄를 자행한 것에 대한 증오 때문에 일어난 경향이 강한 것도 부정하긴 힘들어 독일에서는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Federation of Expellees 같은 추방된 독일인이 세운 단체 등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동유럽에 살고 있던 독일계 주민조차도 추방당했다는 점도 있지만 그 전에 일어난 비 독일계 주민들의 추방 등이 얽혀 있어서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소련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독일인에 대한 증오와 더불어, 동유럽에서 독일계를 추방하면 훗날 다시 독일이 보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에 동유럽 국가들이 더욱 소련에 의존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2. 참고

3. 관련 문서


[1]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가 벌인 학살.[2] 1200만~1650만으로 추산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략 오데르-나이세선 동쪽 구 바이마르 공화국 영토에서 950만, 단치히 자유시에서 38만, 체코에서 350만, 구 폴란드 제2공화국 영토에서 120만, 기타 국가(발트 3국,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소련)에서 200만 등.[3] 1930년 745,421명, 1977년 359,109명, 2011년 36,04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