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0:33:09

쾰른 선제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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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선제후국
Kurfürstentum Köln
파일:쾰른 선제후국 국기.svg 파일:Wappen_Erzbistum_Köln.png
국기 국장
파일:800px-Locator_Electorate_of_Cologne_with_Duchy_of_Westphalia_(1560).svg.png
953 ~ 1803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로렌 공국 프랑스 제1공화국
신성 로마 제국
헤센-카셀 방백국

[[나사우 공국|
나사우 공국
]]
비에드-룬켈
위치 중유럽 독일
수도 쾰른 (953~1288)
(1597~1794)
정치 체제 제정일치, 군주제
국가 원수 선제후
언어 독일어
민족 독일인
종교 로마 가톨릭
주요 사건 953년 대주교 승격
1031년 이탈리아 왕국 제국재상
1288년 제국자유도시 승격
1803년 멸망

1. 개요2. 상세3. 역대 대주교-선제후

[clearfix]

1. 개요

쾰른 선제후국(독일어: Kurfürstentum Köln 또는 Kurköln)은 오늘날 쾰른을 중심으로 오늘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 있던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국이다.

2. 상세

이탈리아 왕국령의 제국재상(Reichserkanzler für Italien)으로 제국 내 서열 2위에 해당했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금인칙서 제정 초창기에는 황제선거가 끝나면 쾰른 대주교의 주관으로 아헨에서 독일왕 대관식이 치러질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초창기에는 교회법을 철저히 지켜 2개 이상의 교구를 겸직하지 않았으나 후대로 갈수록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선제후 대부분이 인근의 뮌스터파더보른주교를 겸했다. 또한 베스트팔렌과 엥게른[1]의 공작(Herzog von Westfalen-Engern)을 겸하는 등 여러모로 비범한 지역이었다.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의 여파로 2명의 선제후 헤르만 폰 비트(Hermann von Wied 1477~1552)와 게프하르트 폰 발트부르크(Gebhard Truchsess von Waldburg 1547~1601)는 각각 루터파, 칼뱅파로 개종했다가 전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압력으로 퇴위했고 후자는 쾰른 전쟁이라는 종교 분쟁으로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의 에른스트(Ernst von Bayern 1554~1612)[2]에게 선제후 자리를 넘겨주었다. 에른스트는 1597년에 시민들의 입김이 강한 쾰른을 떠나 인근의 본으로 이주했고, 이후 쾰른 선제후들은 쾰른이 아닌 본에서 머물렀다. 또한 이때부터 1761년까지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쾰른 대주교직을 숙질계승으로 반세습화하여 승계했다.
파일:1648 주교후.png
1648년 신성로마제국 내 주교령

18세기에는 형님 국가이자 선제후들의 모국인 바이에른 선제후국과 동맹을 맺었다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같은 참화에 휘말렸다.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의 차남 클레멘스 아우구스트(Clemens August von Bayern 1700~1761)를 끝으로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의 준세습화도 막을 내렸고, 마지막 두 선제후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배출했다. 그러나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프랑스 혁명전쟁의 결과로 1797년 라인강 서안의 영토를 혁명 프랑스에게 빼앗겼고, 마지막 남은 영토도 1803년 인근 영방 국가들에게 분할당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 역대 대주교-선제후[3]

  • 콜로니아-아그리피나(Colonia Agrippina) 주교 (88~784)
    • 마테르누스 1세 (88~128)
    • 파울리누스
    • 마르켈리누스
    • 아킬리누스
    • 레볼두스 (248~285)
    • 마테르누스 2세 (285~315)
    • 에우프라테스 (315~348)
    • 세베리누스 (348~403)
    • 에버기실 1세 (403~440)
    • 솔라티우스 1세 (440~470)
    • 순노바이우스 (470~500)
    • 도미티아누스
    • 카렌티누스
    • 에버기실 2세 (580?~600)
    • 레데미우스 (600?~611?)
    • 솔라티우스 2세(611?~622)
    • 쿠니베르트 (623~663)
    • 보다투스 (663~674)
    • 스테파누스 (674~680)
    • 알두인 (680~695)
    • 기소 (685~708)
    • 아노 1세 (708~710)
    • 파라문두스 (710~713)
    • 아길롤프 (713~717)
    • 레긴프리트 (718~747)
    • 힐데가르 (750~753)
    • 베르텔무스 (753~763)
    • 리콜푸스 (763~784)
  • 쾰른 대주교 (784~1238)
    • 힐데볼트 (784~818)
    • 하트볼트 (818~842)
    • 리우트베르트 (842)
    • 힐두인 (842~848/849)
    • 군타르 (850~863)
    • 후고 벨프 (864)
    • 빌리베르트 (870~889)
    • 헤르만 1세 (889/890~924)
    • 비히프리트 (924~953)
    • 브루노 1세 (953~965)
    • 폴크마어 (965/966~969)
    • 게로 (969~976)
    • 바린 (976~985)
    • 에베르거 (985~999)
    • 헤리베르트 (999~1021)
    • 필그림 (1021~1036)
    • 헤르만 2세 (1036~1056)
    • 아노 2세 (1056~1075)
    • 힐돌프 (1076~1078)
    • 지게빈 폰 아레 (1078~1089)
    • 헤르만 3세 폰 회흐슈타덴 (1089~1099)
    • 프리드리히 1세 폰 슈바르첸부르크 (1100~1131)
    • 브루노 2세 폰 베르크 (1131~1137)
    • 후고 폰 슈폰하임 (1137)
    • 아르놀트 1세 (1137~1151)
    • 아르놀트 2세 폰 비트 (1151~1156)
    • 프리드리히 2세 폰 베르크 (1156~1158)
    • 라이날트 폰 다셀 (1159~1167)
    • 필리프 1세 폰 하인스베르크 (1167~1191)
    • 브루노 3세 폰 베르크 (1191~1193)
    • 아돌프 1세 폰 알테나 (1193~1205)
    • 브루노 4세 폰 자인 (1205~1208)
    • 디트리히 1세 폰 헹게바흐 (1208~1215)
    • 엥엘베르트 1세 폰 베르크 (1216~1225)
    • 하인리히 1세 폰 뮐레나르크 (1225~1238)
  • 쾰른 대주교-선제후 (1238~1803)
    • 콘라트 1세 폰 회흐슈타덴 (1238~1261)
    • 엥엘베르트 2세 폰 팔켄부르크 (1261~1274)
    • 지크프리트 2세 폰 베스터부르크 (1274~1297)
    • 비크볼트 폰 홀테 (1297~1304)
    • 하인리히 2세 폰 비르네부르크 (1304~1332)
    • 발람 폰 율리히 (1332~1349)
    • 빌헬름 폰 게네프 (1349~1362)
    • 아돌프 2세 폰 데어 마르크 (1363~1364)
    • 엥엘베르트 3세 폰 데어 마르크 (1364~1368)
    • 프리드리히 3세 폰 자르베르덴 (1370~1414)
    • 디트리히 2세 폰 뫼르스 (1414~1463)
    • 루프레히트 폰 데어 팔츠[4] (1463~1478)
    • 헤르만 4세 폰 헤센 (1473~1508)
    • 필리프 2세 폰 다운 (1508~1515)
    • 헤르만 5세 폰 비트 (1515~1547)[5]
    • 아돌프 3세 폰 샤움부르크 (1547~1556)
    • 안톤 1세 폰 샤움부르크 (1556~1558)
    • 요한 게브하르트 폰 만스펠트 (1558~1562)
    • 프리드리히 4세 폰 비트 (1562~1567)
    • 잘렌틴 폰 이젠부르크 (1567~1577)
    • 게브하르트 폰 발트부르크 (1577~1582)
    • 에른스트 폰 바이에른[6] (1583~1612)
    • 페르디난트 폰 바이에른[7] (1612~1650)
    • 막시밀리안 하인리히 폰 바이에른[8] (1650~1688)
    • 요제프 클레멘스 폰 바이에른[9] (1688~1723)
    • 클레멘스 아우구스트 폰 바이에른[10] (1723~1761)
    • 막시밀리안 프리드리히 폰 쾨니크제그-로텐펠스 (1761~1784)
    • 막시밀리안 프란츠 폰 외스터라이히[11] (1784~1801)
    • 안톤 빅토어 폰 외스터라이히[12] (1801~1803)


[1] 앵글로색슨 중 앵글로(Anglo)의 어원이 된 곳으로 현재 독일 베저 강 북서부 일대.[2] 프라이징, 리에주, 힐데스하임, 뮌스터까지 총 5개의 주교를 겸했다.욕심쟁이[3] 괄호 안은 재위 기간[4] 팔츠 선제후 루트비히 3세의 3남. 1473년 성무에서 제외당했고, 1478년 사망까지 직함만 유지했다.[5] 종교 개혁을 지지하다 교황에게 파문당했다.[6] 바이에른 공작 알브레히트 5세의 차남으로 막시밀리안 1세의 숙부.[7]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5세의 3남으로 막시밀리안 1세의 동생.[8]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의 조카.[9] 바이에른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의 차남.[10]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의 3남.[11] 마리아 테레지아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막내 아들.[12]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의 8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