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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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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언어별 표기3.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발생한 전쟁
3.1. 이탈리아 대전쟁(1494~1559, 총 66년)의 진행과정
3.1.1. 제1차 이탈리아 전쟁(1494~1495)3.1.2. 제2차 이탈리아 전쟁(1499~1504)3.1.3. 제3차 이탈리아 전쟁(1508~1516, 또는 캉브레 동맹 전쟁)3.1.4. 제4차 이탈리아 전쟁(1521~1526)3.1.5. 제5차 이탈리아 전쟁(1526~1530, 또는 코냑 동맹 전쟁)3.1.6. 제6차 이탈리아 전쟁(1536~1538)3.1.7. 제7차 이탈리아 전쟁(1542~1546)3.1.8. 제8차 이탈리아 전쟁(1551~1559)3.1.9. 이탈리아 대전쟁의 결과
3.2. 전쟁의 영향
3.2.1. 군사적
3.2.1.1. 군대 편제3.2.1.2. 총3.2.1.3. 대포
3.2.2. 사회적
4. 같이보기

1. 개요

르네상스 시대 풍요로운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두고 독일•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와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66년 동안 격돌한 대전쟁[1]이다. 화기인 총과 대포가 중요한 전술 무기로 등장해 세계전쟁사에 한 획을 그었다.

2. 언어별 표기

이탈리아어Guerre d'Italia del XVI secolo
프랑스어Guerres d'Italie
스페인어Guerras italianas
독일어Italienische Kriege
영어Italian wars

3.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발생한 전쟁

1494년에서 1559년까지 8차례에[2] 걸쳐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놓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스페인 등이 벌인 전쟁으로, 이 밖에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등 이탈리아의 5대 도시국가들[3]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도 참전한 국제전쟁이었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아예 종교도 다른 오스만 제국까지도 참전하는 등, 실제로 당시 지중해권-유럽 세계의 관점에서는 세계 대전이라 부를 만한 대규모 장기전이었다.

시작은 프랑스 국왕 샤를 8세나폴리 왕국의 왕위를 요구하며 이탈리아 원정을 시도하면서부터였다. 이때 프랑스는 대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새로운 전술로 이탈리아 반도 각국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나폴리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스페인 연합왕국의 구성국이 된 아라곤 왕국은 1280년부터 시칠리아를 지배해 이탈리아 남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알폰소 5세는 나폴리 왕국을 점령해서 아들 페르디난도 1세에게 물려주기까지 했다. 알폰소 5세에게서 따로 아라곤을 물려받은 동생 추안 2세의 아들 페르난도 2세는 삼촌의 자손들을 나폴리에서 몰아낸 프랑스를 경계해서 개입했고, 이어서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도 개입함으로써 도합 8차례 전쟁과 강화가 되풀이되었다.

3.1. 이탈리아 대전쟁(1494~1559, 총 66년)의 진행과정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탈리아 삼국 전쟁.
8차례의 전쟁을 아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1.1. 제1차 이탈리아 전쟁(1494~1495)

프랑스 발루아 왕가와 아라곤의 트라스타마라 왕가는 모두 이탈리아 반도에 영지 계승 주장권이 있었으므로, 1453년 백년전쟁이 종결된 후의 프랑스와 1492년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레콩키스타를 완수한 아라곤이 이탈리아 반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필연이었다. 1454년 로디 화약과 이탈리아 5강의 동맹 이래 유지되던,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가 짜놓은 '힘의 균형'이 깨진 건 프랑스에게 침공의 빌미를 주었다.

이탈리아 5강 중 남부의 강국이던 나폴리 왕국알폰소 2세는 북부 강국인 밀라노 공국의 어린 공작, 잔 갈레아초 스포르차 대신 실권을 휘두르며 찬탈의 야욕을 드러내는 섭정 루도비코 스포르차를 고까워했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결탁해 반(反) 루도비코 연합을 조직했다. 이에 맞서 루도비코는 군사적 영광을 바라고 있던 프랑스의 젊은 국왕 샤를 8세에게 카페 왕조의 방계인 앙주 가문의 나폴리 왕위 계승권을 명분으로 침공하라고 꼬드겼다.

1494년 9월 초, 샤를 8세는 25,000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남하하기 시작했다. 피렌체 공화국에선 당시 '정의의 곤팔로니에레'(국가원수)였던 피에로 데 메디치가 나폴리 지지선언을 했지만, 압도적인 군세를 내세워 남하하는 프랑스군에게 겁에 질려 11월 평화교섭을 시도하다 분노한 시민들에게 쫓겨나고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권좌에 올랐으며, 사보나롤라는 샤를 8세를 죄악이 가득한 교황을 징벌하는 하느님의 칼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해 샤를 8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연말에 샤를 8세는 로마에 입성해 교황을 반 프랑스 연합에서 이탈시키고 젬 술탄까지 데려간다. 이듬해 2월에는 나폴리를 점령했다. 부왕 알폰소 2세가 도망치고 왕위를 이어받은 나폴리 왕 페르디난도 2세는 사촌인 시칠리아 국왕 페르난도 2세에게 의탁했다. 페르난도 2세는 아라곤 국왕, 즉 카스티야-아라곤 동군연합의 공동왕을 겸하고 있었다. 이는 스페인이 프랑스의 적으로 이탈리아 전쟁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군이 파죽지세로 피렌체군, 나폴리군을 깨부수고 나폴리를 약탈한 데 질겁한 베네치아 공화국 등 이탈리아 북부의 각국과 교황,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안 1세는 1495년 3월 베네치아 동맹을 맺었다. 여기엔 샤를 8세가 밀라노 또한 집어삼키려 함을 깨달은 루도비코 스포르차 또한 편을 갈아타며 가담했다. 북부 육로가 끊기며 고립된 샤를 8세는 길베르 드 몽펜시에, 버나드 스튜어트 등이 인솔하는 얼마간의 주둔군을 나폴리에 남긴 채 북상했고, 귀국로를 가로막는 동맹군을 1495년 포르노보 전투에서 돌파하는 데 성공, 본국으로 철군했다.

한편, 샤를 8세가 나폴리에 두고 간 프랑스군은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스페인 원정군과 맞섰다. 그러나 히네테, 로델레로 등 경장병을 중심으로 편성된 스페인군장다르메스위스 용병을 주력으로 한 프랑스군에게 1495년 세미나라 전투에서 대패했다. 원정군의 패배를 지켜본 스페인군의 부장, 곤살로 데 코르도바는 프랑스 주둔군의 보급로를 끊으며 장기전으로 나서는 한편, 이를 계기로 훗날 스페인군에 대대적인 군제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세미나라 전투에서 소소한 승리를 거뒀다 한들, 프랑스의 나폴리 주둔군은 본질적으로 끈 떨어진 연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제노바령 라팔로 항구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함대도 나포당하며 해로 보급 또한 끊겼다. 결국 보급이 차단된 프랑스 주둔군은 몇 차례의 소규모 접전 후 1497년 정전협정을 맺고 스페인군에게 항복했다.

샤를 8세에게는 실패한 원정에 불과했지만, 1494년의 프랑스 침공은 이탈리아의 정치구도를 완전히 뒤바꿨다. 메디치 가문을 쫓아내고,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주도하는 신정부가 들어선 피렌체 공화국은 그새 독립한 피사 공화국 등 속국들을 다시 무릎 꿇리려 나섰고, 전쟁에 피폐해진 나폴리 왕국은 스페인에 반 종속되었다. 밀라노 공국의 루도비코는 국내 불안과 프랑스 왕가의 비스콘티 가문 계승 주장 양편을 신경써야만 했다. 전쟁에서 나폴리령 오트란토, 브린디시, 트라니를 획득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육상제국'(테라페르마)의 확장을 꾀했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사생아 체사레 보르자를 내세워 로마냐 평정에 이은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꿈꾸었다.

3.1.2. 제2차 이탈리아 전쟁(1499~1504)

1498년, 재침공을 준비하던 샤를 8세의 사고사 이후, 프랑스 왕위를 계승한 발루아-오를레앙 왕조의 루이 12세는 이탈리아에 대한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다섯 강국[4] 중 지난 전쟁에서 가장 많은 걸 얻은 베네치아가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이미 나폴리의 항구들을 강점하고, 피렌체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이는 피사를 지원하던 베네치아는 크레모나의 영유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프랑스의 1499년 밀라노 침공을 지원했다. 밀라노에서 도망친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군사를 모아 반격을 시도했지만, 1500년 노바라 전투에서 휘하의 스위스 용병들이 동포와의 싸움을 거부하며 배신하자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혔다.

밀라노 공국을 확보해 전초기지를 마련한 루이 12세는 선왕이 추진했던 나폴리 정복에 나섰다. 나폴리의 남단 칼라브리아 지방에서는 산세베리노의 친프랑스파 영주들이 페르디난도 2세의 왕권을 와해했다. 루이 12세는 본격적인 공격에 앞서 이전 전쟁에서 가장 문제였던 스페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1500년, 프랑스와 스페인은 그라나다 조약을 체결해 나폴리를 분할하는 데 합의했다. 북쪽의 아브루치, 캄파냐를 프랑스가 영유하고, 남쪽의 칼라브리아, 풀리아는 스페인이 영유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아라곤 국왕 페르난도 2세는 나폴리의 분할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1442년 알폰소 5세의 아라곤 제국 재건을 꿈꾸었다. 1501년,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사전 합의대로 나폴리를 침공했고, 북과 남을 갈라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스페인은 1503년 포지아의 관세 문제에서 개전명분을 찾았고, 곤살로 데 코르도바의 스페인군은 프랑스군과의 전쟁에 나섰다.

코르도바가 단련한 스페인군은 예전의 약골 스페인군과는 크게 달랐다. 장창과 총포를 내세운 스페인군은 1503년 체리뇰라 전투, 가릴리아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나폴리 왕국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1505년, 프랑스는 스페인과 리옹 조약을 맺으며 나폴리에 대한 계승권 주장을 포기하고, 대신 밀라노 공위를 인정받았다.

한편, 이탈리아 중부에서도 전란이 지속되었다. 피렌체에서는 사보나롤라의 신권정치가 붕괴하고, 피에로 디 토마소 소데리니가 이끄는 공화정부가 출범했다. 한편, 교황의 사생아 체사레 보르자는 루이 12세를 이용하여 로마냐와 마르케를 아우르는 세속국가를 세우려 꾀했지만, 결정적인 성공을 앞둔 1503년에 부친 알렉산데르 6세가 전염병으로 죽고 본인도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며 주도권을 상실했다. 스페인파와 프랑스파 사이에서 갈라진 추기경단이 서둘리 선출한 새 교황 비오 3세가 26일만에 죽자,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가 율리오 2세로 선출되었다. 새 교황이 처음으로 벌인 사업은 체사레 보르자가 일군 로마냐 영토의 무력 재정복이었다.

3.1.3. 제3차 이탈리아 전쟁(1508~1516, 또는 캉브레 동맹 전쟁)

1508년, 보르자 가문령 로마냐의 재정복을 완수한 율리오 2세는 베네치아가 점유하고 있던 로마냐의 나머지 또한 정복하길 원했고, 따라서 반베네치아 동맹인 캉브레 동맹을 결성했다. 알프스 산맥 북부의 3대 열강, 즉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스페인이 전부 동참한 캉브레 동맹군은 1509년 5월 아냐델로 전투에서 베네치아군을 격파했다.

베네치아는 육지 영토인 테라페르마 대부분을 잃고 위기에 내몰렸지만, 승자인 캉브레 동맹에서는 곧 내분이 일어났다. 베네치아를 치워두니 프랑스가 독주할 기미를 보인다는 걸 알아챈 율리오 2세는 이번에는 프랑스와 대적할 새로운 신성동맹을 1511년에 선언했다. 끌어들인 나라들로는 스페인 뿐만 아니라 영토를 약속해 끌어들인 스위스, 프랑스를 적대하여 참전하게 된 헨리 8세의 잉글랜드, 그리고 1509년에는 율리오 2세에게 파문되었지만 이제는 동맹국으로 돌아온 베네치아 등이 있었다.

1512년, 신성동맹의 스페인군을 뒤에 업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되찾았고, 베네치아 또한 과거 테라페르마의 대부분을 수복했다. 1512년 4월, 루이 12세의 프랑스군은 반격하여, 신성동맹군을 라벤나 전투에서 대파했다. 하지만 명장 가스통 드 푸아(Gaston de Foix)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5월에는 스위스 연맹군 20,000명이 교황군으로 가담해 루이 12세가 직접 이끄는 프랑스군을 밀라노 근처 노바라에서 대파하여(노바라 전투) 프랑스는 점차 열세에 몰렸다.

게다가 전쟁은 이탈리아 반도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스페인군은 나바라 왕국을 공격했고,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친정하는 잉글랜드군-제국군 연합은 1513년 긴가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며 저지대를 노렸다. 루이 12세의 프랑스군이 이에 대처하기 위해 본국으로 회군하면서 루이 12세의 전쟁은 막이 내려졌다.

1515년, 루이 12세가 죽고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 왕위를 계승했다. 2년 전 율리오 2세의 죽음으로 신성동맹이 해체된 상황에서, 프랑수아 1세는 밀라노 재정복에 나섰다. 1515년 9월 마리냐노 전투에서 스위스군을 박살낸 프랑스군은 밀라노를 탈환했다. 메디치 가문 출신의 신임 교황 레오 10세는 얼른 프랑스의 밀라노 영유를 인정하며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한편 마리냐노의 패전을 계기로 스위스도 프랑스와 영구적인 평화를 체결했고, 이후로는 프랑스의 적국에 용병을 보내지 않기로 하며 동맹을 맺었다. 이후 프랑스군 보병 전력의 주축은 스위스군이 전담하는 양상이 되었으며, 이는 위그노 전쟁 때의 가톨릭군까지 지속되는 군사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조의 국왕 제임스 4세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지켜 왕이 원정나간 잉글랜드를 공격했지만 플로든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고 귀족들 대부분과 함께 전사했다.

3.1.4. 제4차 이탈리아 전쟁(1521~1526)

하지만 이제 이탈리아 전쟁은 합스부르크 왕조와 발루아-앙굴렘 왕조 사이의 전쟁의 성격을 띄게 되었기에, 평화는 얼마 가지 않았다. 151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죽으며 황제의 손자이자, 스페인의 왕인 카를로스 1세가 카를 5세로 제위에 선출되었다. 카를 5세는 스페인, 독일, 저지대, 시칠리아, 나폴리, 아메리카 신대륙 부왕령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보편제국으로 엮으려 했다. 그러나 이엔 많은 반발이 따랐다. 카스티야 국내의 코무네로스 반란은 빠르게 진압당했지만, 최대 적국인 프랑스와 오스만 제국의 위협, 그리고 독일의 루터교 제후들의 반발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카를 5세가 권력을 다지는 기반으로 선택한 건 이탈리아였다. 1522년, 교황, 만투아, 피렌체 등과 동맹한 스페인군은 이탈리아로 출병, 밀라노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스포르차 가문을 복위시켰다. 1524년, 프랑스군 30,000명이 반격해 밀라노를 다시 점령하자 신임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메디치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편에 붙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전쟁의 최대 분수령이었던, 1525년 2월 24일의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대패하고 친정하던 프랑수아 1세는 스페인군의 포로로 전락하여, 1526년 1월 굴욕적인 마드리드 조약에 서명했다. 즉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대한 주장권을 일체 포기한다는 조약이었다.

3.1.5. 제5차 이탈리아 전쟁(1526~1530, 또는 코냑 동맹 전쟁)

그러나 풀려나자마자 강제로 체결한 조약의 무효를 선언한 프랑수아 1세는 반스페인 동맹인 코냑 동맹(Guerra della Lega di Cognac)을 추진했다. 프랑스, 교황령,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및 잉글랜드가 가담한 동맹이었지만, 정작 주력이 되어야 할 프랑스는 파비아 전투의 충격으로 당장 군대를 내지 못했다.

당시 신임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확대된 합스부르크를 경계하며, 전임 교황이 체결한 반프랑스 동맹 갱신도 거부하고, 친프랑스 기조로 돌아서 프랑수아 1세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박살나자 교황은 다시 카를 5세와 이전 관계를 복구하였다. 그러나 1526년 2월 프랑수아 1세가 석방되자 다시 변심하여 카를 5세를 멀리하며 프랑스, 밀라노 등과 반-합스부르크 방위동맹인 코냑동맹을 추진하였다.

이에 반발한 친 합스부르크였던 폼페오 콜론나(Pompeo Colonna) 추기경이 로마를 무력으로 장악한 후, 교황과 가진 협상에서 코냑동맹에서 탈퇴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콜론나 추기경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서 물러나자 교황은 약속을 저버리고, 다시 코냑 동맹에 가입했다.통수만 3번째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교황의 정책과, 코냑 동맹에 격노한 카를 5세는 황제군을 로마로 남하시켰다. 먼저 밀라노를 공격하여 밀라노 공작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굴복 시킨 후, 중부 이탈리아를 남하하여 로마로 진군했다. 명목상 코냑 동맹군 지휘관이던 우르비노 공작은 황제군에 대적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했고, 로마 이후 1527년 5월 6일, 루터교 신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황제군(란츠크네흐트)은 지휘관인 샤를 드 부르봉의 전사에 격분해 로마 대약탈을 저질렀다.(사코 디 로마)

사코 디 로마는 학자에 따라선 르네상스 시대의 종결로 보기도 하는 대사건으로, 이탈리아가 쇠락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산탄젤로 성에 피신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항복을 선언했다. 교황의 처참한 패배를 지켜본 피렌체는 통치하는 메디치 가문을 몰아냈다.[5]

오데 드 푸아 로트레크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1528년에야 뒤늦게 도착하여, 나폴리를 포위했지만, 함대를 이끌던 제노바의 안드레아 도리아 제독이 갑자기 배반하며 황제군에 붙었다. 설상가상으로 진중에 이질이 돌았고, 사령관 로트레크까지 병사하면서 프랑스군은 퇴각했다. 1529년, 교황은 카를 5세와의 바르셀로나 조약에 서명했고, 프랑수아 1세도 캉브레 조약에 서명했다. 즉 프랑스는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저지대와 아르투아 지방의 주장권 또한 포기하고, 밀라노 공국의 현 스포르차 공작이 죽으면 밀라노는 스페인령이 된다는 굴욕적인 패전조약이었다.

3.1.6. 제6차 이탈리아 전쟁(1536~1538)

하지만 1535년, 밀라노 공작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후계자 없이 죽자 프랑수아 1세는 다시금 밀라노 공위를 주장하며 군사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무려 기독교 세계의 숙적인, 오스만 제국과 정식으로 동맹하면서까지였다. 프랑스 함대가 합류한 대제 쉴레이만 1세의 오스만 함대가 이탈리아 해안을 휩쓰는 동안, 프랑스군은 1536년 사보이아 공국을 공격해 점령하고, 밀라노 공격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프랑스는 사보이아 공국을 점령해 프랑스 행정관을 세웠고,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2세베르첼리, 니차, 쿠네오, 발레다오스타만 겨우 유지하며 연명했다. 하지만 제노바를 뚫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프랑스군은 전쟁 내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쟁은 교황 바오로 3세가 중재한 1538년 니차 화약, 1539년 톨레도 조약으로 애매하게 끝났다.

3.1.7. 제7차 이탈리아 전쟁(1542~1546)

니차 화약은 태생부터 불안정한 일시 휴전에 불과했고, 서로 조약 불이행을 거론하며 대립하는 와중 1542년 외교관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합스부르크-발루아 전쟁이 재개되었다. 프랑수아 1세는 다시 한번 오스만 제국 함대와 동맹을 맺어 1543년 수•륙 양동으로 사보이아 공국의 니차를 공격하고, 세레솔 전투(Battle of Ceresole)에서 합스부르크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카를 5세와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프랑스 본토의 불로뉴를 공격해 포위하자, 롬바르디아와 밀라노를 공격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이탈리아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았다. 이제 밀라노 등은 개전명분에 지나지 않았고, 주전장은 이탈리아가 아닌 스페인-프랑스 국경이나 저지대 등이 되었다. 프랑스, 스페인, 오스만, 잉글랜드 등 모든 참여국의 재정을 빨아들인 전쟁은 확실한 승자없이 끝났고, 각자 자국의 재정사정이나 슈말칼덴 전쟁과 같은 내부 사정 등으로 인해 서로에게 간섭하지 못하는 상태에 한동안 빠졌다. 프랑수아 1세는 1544년 크레피엥발루아 조약에서 이탈리아 주장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번엔 1547년에 죽으면서 약속을 지켰다. 합스부르크의 단독강화 이후에도 헨리 8세는 한동안 불로뉴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전쟁을 지속하다 1546년 아르드레 조약으로 프랑스와 강화했다.

3.1.8. 제8차 이탈리아 전쟁(1551~1559)

1551년, 카를 5세를 물리치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패권을 가져오겠다는 앙리 2세의 개전으로 마지막 이탈리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2차 슈말칼덴 전쟁을 틈탄 동부의 로렌 방면 공세는 성공적이었으나, 시에나 공화국과 동맹한 프랑스군의 1553년 토스카나 침공은 1554년 마르치아노 전투에서 좌절되었고,[6] 1555년에는 토스카나-스페인 연합군에게 시에나가 함락당하면서 프랑스군은 이탈리아에서 축출되었다. 이 여파로 시에나 공화국은 오랜 독자적인 도시국가의 역사가 끝나고, 토스카나 공국에 합병되었다.

1557년, 생캉탱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사보이아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가 이끈 플랑드르 주둔 스페인군에게 대패하자 앙리 2세는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을 체결했다. 이번에야말로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대한 주장을 모두 포기하고 스페인 제국의 이탈리아 종주권을 인정했다. 한편 펠리페 2세의 왕비인 메리 1세가 다스리는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동맹군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잉글랜드의 마지막 대륙 거점이었던 칼레 항을 상실했다.

3.1.9. 이탈리아 대전쟁의 결과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의 결과로 프랑스는 밀라노 공국의 계승권을 포기하고(이탈리아 북부 포기),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이탈리아 남부 포기), 사르데냐에서 스페인의 통치권을 인정하면서 이탈리아 문제에서 손을 뗐고, 프랑수아 1세 치세에 점령했던 사보이아 공국을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에게 돌려주었다.[7]

대신 프랑스는 옛 부르고뉴 공국의 지배권을 확실히 했고, 제8차 이탈리아 전쟁(1551~1559) 중 점령한 , 메츠, 비르텐로렌의 3개 주교구 방어에 성공하여 현재까지 프랑스 영토로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잉글랜드령 칼레도 점령해 잉글랜드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대륙 거점을 잃었다.

앙리 2세는 평화를 기념하기 위한 마상시합에 직접 출전했다가 어이없는 사고로 요절했고, 장남 프랑수아 2세 또한 요절하며 차남 샤를 9세가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어린 왕을 대신해 섭정하던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기즈 공작 가문[8]과 동맹하여 개신교도인 나바라 여왕 호아나 3세(잔 달브레)와 대립했고, 이들의 정쟁은 가톨릭-개신교 간 대립으로 이어져 156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터지게 되었다. 36년간에 걸친 참혹한 위그노 전쟁에 휩싸인 프랑스는 더 이상 이탈리아 패권을 추구할 여력이 없었기에 이탈리아 반도에서의 스페인 제국의 패권은 견고하게 굳혀졌다.

스페인은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아 공국, 토스카나 대공국, 교황령 정도를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 여러 국가들을 간접적 또는 직접적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본래 아라곤 국왕의 속령이었던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에 더해 밀라노 공국까지 스페인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나폴리, 팔레르모, 칼리아리에는 부왕이, 밀라노에는 총독이 파견되었다. 펠리페 2세 시대에는 본래 아라곤 평의회에서 주관하던 이탈리아 통치를 나폴리, 시칠리아, 밀라노에서 선출된 자국민 대표와 카스티야인 대표들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평의회로 이관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이탈리아 반도 지배는 압스부르고 왕조의 스페인 통치가 끝난 1700년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사보이아 공국을 돌려받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공국의 공용어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로 바꾸었고, 1562년에 공국의 수도사부아샹베리에서 피에몬테토리노천도하면서 사보이아 가문이 추구했던 프랑스 정체성을 버리고 이탈리아화했다. 이로써 훗날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전신인 사보이아 공국이 이탈리아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3.2. 전쟁의 영향

3.2.1. 군사적

3.2.1.1. 군대 편제
한편 이탈리아 전쟁으로 유럽의 군대 편제는 크게 달라지게 되었는데, 먼저 여러 종류의 병종을 한 부대에 편제하는. 이른바 '제병연합' 전략이 본격적으로 틀이 잡히게 되었다. 백년전쟁 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기병만 우루루 몰려가거나 거의 대부분 궁병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를 편제하거나 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현상이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군대에서 보병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스위스와 독일(란츠크네흐트) 용병들의 파이크병들이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밀집으로 모여 있는 보병 대형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3.2.1.2.
또한 총이라는 무기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역사상 총에 맞아 전사한 최초의 지휘관으로 알려진 인물은 1503년 체리뇰라 전투 당시 전사한 프랑스군의 지휘관 느무르 공작 루이 다르마냑(Louis d'Armagnac, Duke of Nemours)이다.
3.2.1.3. 대포
샤를 8세가 이탈리아에 포병대를 이끌고 가 굉장한 파괴력을 보여주었던 것을 계기로 대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축성술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무조건 높게만 쌓아올리면 OK였던 경향 대신 낮지만 튼튼하게 쌓아올리는 경향이 생기면서 보방식 요새가 등장했다.

3.2.2. 사회적

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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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스페인 전쟁
,1898,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미국
리프 전쟁
,1921 ~ 1926,
파일:Flag_of_the_Republic_of_the_Rif.svg 리프 공화국
독소전쟁
,1941 ~ 1944,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이프니 전쟁
,1957 ~ 1958,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녹색행군
,1975,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보스니아 전쟁
,1992 ~ 1996,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전쟁
,2003 ~ 2017,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제1차 리비아 내전
,2011,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


[1]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와 합스부르크의 전쟁' 이 주된 레퍼토리이지만, 그렇게만 정의할 수는 없다. 8차례 벌어진 전쟁마다 참전국이 모두 제각각이었고, 그 가운데 단골이 프랑스와 스페인이었지만 잉글랜드 왕국, 교황령, 베네치아 공화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등등이 뒤따르기 때문이다.[2] 다만, 전쟁의 양상이 합스부르크 왕가 대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가 되는 1521년부터 1559년까지의 5차례의 전쟁을 '합스부르크-발루아 전쟁' 이라 부르기도 한다.[3]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교황령, 나폴리 왕국[4]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 교황령,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5] 이후 메디치 가문은 카를 5세와 관계를 회복하여 황제군의 도움을 받아 피렌체를 공격했다. 피렌체 시민들은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다시 함락되었고, 이후 피렌체 공화국은 메디치 가문이 세습 승계로 이어지게 되어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이어진다.[6]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토스카나 공국을 다스리던 메디치 가문의 지안 자코모 메디치는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로 하여금 기념화를 피렌체 베카오 궁전에 그리게 했다. 유명한 르네상스 작품이지만 하필 바사리가 그린 마르치아노 전투 그림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잃어버린 작품 <앙기아리 전투>위에 그려졌다는 전설이 있어 어째 후자가 더 주목받고 있다.(...)[7] 프랑스에게 사보이아 공국 대부분을 잃은 후 카를로 2세는 8세의 어린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를 아들의 외가쪽 친척인 카를 5세에게 보내 교육시켰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이모부 카를 5세와 외사촌 펠리페 2세 휘하에서 복무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생캉탱 전투에서 플랑드르군을 이끌어 프랑스군에게 승리했고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2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공국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앙리 2세의 여동생인 마르그리트 공주와 결혼했다.[8] 카롤루스 대제의 후손인 로렌 가문의 방계였다. 그 때문에 프랑스 왕위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