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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국어 | 잘츠부르크 역사 지구 |
영어 | Historic Centre of the City of Salzburg | |
프랑스어 | Centre historique de la ville de Salzbourg | |
국가·위치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 잘츠부르크 | |
등재 유형 | 문화유산 | |
등재 연도 | 1996년 | |
등재 기준 | (ii)[2], (iv)[3], (vi)[4] | |
지정 번호 | 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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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 주도(州都)이다. 잘츠부르크 시는 로마 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유서깊은 도시이며, 옛날부터 암염 광산이 있었다. 도시 이름을 잘츠부르크로 붙인 이유도 잘츠가 소금(Salz)을 의미한 것에서 유래했다.2023년 기준 15만 명 정도의 인구에 2,93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유럽 유수의 관광도시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클래식음악의 대표주자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세기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배경(촬영지)이라 유명하기 때문이다.[5] 또한 호엔잘츠부르크성, 미라벨 궁전, 헬브룬 궁전 등 중세시대~바로크~근대 시대의 건축물이 상당수 남아있어 독특한 도시 분위기를 자랑하고, 알프스의 관문 지역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것도 한몫을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광지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몰려있어 여행 동선을 짜거나 각종 변수가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쉽다. 철도나 버스 등의 교통도 매우 편리하게 갖춰져 있는데 배차간격이 짧은데다가 시내 주요구간(중앙역~구시가지 구간)은 겹치는 노선이 많아 아무 버스나 타도 될 정도로 관광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편이다.
즉 잘츠부르크는 역사, 건축, 문화, 자연 등 다방면으로 유럽여행의 정수가 모여있는 도시로 매년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거의 모든 콘텐츠와 함께 수많은 관광객을 수용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2. 역사
로마 제국 시기에는 노리쿰 속주에 속했고 유바붐(Juvavum)이라 불렸다. 이후 8세기 초에 대교구가 설치되며 암염 채굴업으로 발전했다. 신성 로마 제국 시기에 잘츠부르크는 대주교가 통치하는 대주교령이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이름을 남겼다.1803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라인 강 서안이 점령되자,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은 오스트리아에 병합된 후 토스카나의 대공이던 페르디난트의 영지가 되었고 이후에도 오스트리아와 역사를 함께하게 된다.
3. 관광
잘츠부르크 관광정보 - 오스트리아 관광청 공식사이트 (한국어) |
Travel Guide to Salzburg (영어) |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구조물로 유명하며, 대표적으로 잘츠부르크 대성당, 미라벨 정원 등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의 폭격이 있었지만[6] 바로크 양식의 많은 건축물은 손상되지 않았다. 그래서 도시 자체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몇 안 되는 경우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이유로 1996년 잘츠부르크 역사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1. (필수)잘츠부르크 카드
잘츠부르크 카드라는 물건이 있는데 24시간, 48시간, 72시간 이용권이 있으며 이 카드로 잘츠부르크의 대중교통과 주요 관광지를 유효시간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잘츠부르크 관광객 중에 이 카드 안 사는 사람은 바보일 정도로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므로 반드시 구입하도록 해야한다.또한 각 관광지는 1회에 한해 사용이 가능하므로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Festungsbahn 강삭철도, 묀히스베르크 엘리베이터는 각각 호엔잘츠부르크 성과 묀히스베르크 미술관의 입장권으로 취급되어 강삭철도만 이용한 뒤 나중에 다시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방문할 계획이거나, 산 위에 있는 호텔에 묵어서 묀히스베르크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해야 한다면 티켓을 거듭 구매해야 한다.
3.2.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축제로, 유럽에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더불어 양대 음악 축제로 불리며 매년 7월과 8월에 열려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여름 축제와 별도로 매년 부활절 기간에도 여름 축제보다 작은 규모의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가 열리고 있다.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여러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실내악단, 독주자들이 초빙되어 오페라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회를 연다. 오페라의 경우 모차르트의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3.3. 잘츠카머구트
잘츠카머구트는 잘츠부르크 동쪽에 있는 잘츠부르크에 걸친 호수 지역으로, 깨끗하고 넓은 호수 뷰를 보고 싶다면 방문하는게 좋다. 아터제, 몬트제, 볼프강제 등이 있는데 아터제는 호숫가 따라 걷기에는 너무 크다. 볼프강제나 몬트제 쪽을 가면 좋다.3.4.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쿠겔[7]이라 한다.온갖 마트와 가판대며 상점에서 모차르트 그림이 들어간 초콜렛을 일명 모차르트 초콜릿이라고 딱지붙여서 파는데 카페 휘어스트(cafe fuerst)라는 곳에서 파는 구슬 모양의 초콜릿만이 100년 넘는 근본을 가진 오리지널이니 참고하자. 나머지는 근본도없는 양산형 짝퉁이다.3.5.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2주 전부터는 크리스마스 마켓(Weihnachtsmarkt)이라 하여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야외 특설매장이 시내 광장 곳곳에서 열린다. 주로 수공예품이나 장식용 물건 같은 것들을 파는데 예쁘긴 하나 가격은 비싸다. 혹하는 순간 돈을 꺼내게 되니 주의.4. 물가
호텔은 등급이 낮거나 위치가 안 좋은 곳은 10만원 후반대부터 시작하며 시내 중심가에 있거나 전통과 역사가 있는 3~5성급 호텔은 1박당 수십만~수백만 원의 가격을 자랑한다. 성수기, 주말 혹은 예약이 늦어질수록(즉, 미리 예약하지 않고 숙박일에 가깝게 서둘러 예약할수록) 가뜩이나 높은 가격이 2~3배로 뛰고, 너무 늦지 않게 3~4성급 호텔을 예약한다면 1박에 평균적으로 30~50만원은 잡아야 한다. 물론 6베드 도미토리 같은 유스호스텔, 한인민박 등 공용숙소는 비수기 평일 기준 1박에 3~5만원대인 곳도 있지만 가격이 저렴한 대신 숙박환경이 열악하고 각종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니 장기간 머무르지 않고 1~2박만 한다면 현명하게 판단할 것. 오스트리아가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더라도 잘츠부르크는 엄연한 관광지이고, 현지 사정이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어눌한 관광객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 안전에 들어가는 약간의 비용을 아끼려다가 수백~수천만원짜리 여행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하자.각종 음식 역시 한국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센 편이다. 오스트리아나 유럽 평균 외식 물가를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이 말은 잘츠부르크 물가가 한국 물가랑 비교하면 비싸지만 오스트리아 타 지역이나 서유럽 전체의 평균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심한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시 외곽이나 덜 유명한 관광지를 가보면 시내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오스트리아 현지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물론 이런 곳들은 외국인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므로 의사소통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기본적인 영어는 할 줄 안다.
어찌됐든 관광객 입장에서 식비를 신경 안 쓸 수는 없는데, 위생에 의심이 가는 케밥이나 길거리음식, 혹은 아시아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에서 싸게 먹으려고 해도 1인당 10유로~15유로(약 1.5만원~2만원대 초반) 정도라 비싸다고 느껴진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파는 한식은 우리가 아는 한식이 아닌 한식 모양을 흉내낸 무언가 다른 요리이므로 기대를 안 하는 편이 낫다. 제대로 된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면 메뉴 하나당 20유로~28유로 선(약 3만원대 초반~4만원대 중후반)으로, 둘이 간단한 메뉴 1개씩 총 2개를 주문하며 생수 한 병과 맥주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50~80유로(약 8만원~12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다. 생수나 맥주 등의 음료수는 당연히 무료가 아니며 고급 식당이 아닌 평범한 식당 기준으로 1병(1잔)당 대개 생수나 탄산수는 4유로(6천원), 맥주는 8~12유로(1.2만원~1.8만원) 가량이다. 수돗물(tap water) 정도는 공짜로 주는 식당도 있지만 물을 시켰는데 주방에서 수돗물을 퍼서 갖다주는 건 우리나라 정서로서는 아무래도 찝찝한 감이 있다. 게다가 2020년 이후에는 수돗물이라도 떠다주는 식당마저 찾아보기 쉽지 않은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포장(밀봉)된 시판 생수나 음료수만 판다고 하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5. 대중교통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정차한 고속열차인 레일젯 | 잘츠부르크 S반(S1) |
트롤리버스 | 굴절버스 |
중앙역을 중심으로 인근 도시들과 철도망이 잘 연결되어 있다. 소요시간은 독일 뮌헨에서 약 1시간 30분, 빈에서 2시간 30분이다.
다른 유럽 도시와 달리 트램이나 지하철은 아예 없고 버스, 트롤리버스와 굴절버스, 기차가 있다. 트롤리버스와 굴절버스는 일반시내버스 등급이기 때문에 기본요금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1칸만 달려있는 일반형 버스도 존재한다. 대중교통 티켓은 기차역, 버스 정류소에 있는 자판기[8] , 담배가게(TABAK TRAFIK 간판이 달린 가게) 등지에서 살 수 있다.
시내 1시간 이용권 --- 2.40유로
시내 24시간 이용권 --- 4.70유로
시내 1년 이용권 --- 365유로
주의: 표를 사고 나서 승차후 차내에 있는 개표기에 표를 집어넣어 개표를 해야 한다.개표되지 않은 표나 정해진 유효시간이 지난 표는 무효다!
승차 시 일일히 검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표를 안 끊고 맘대로 타보려는 어리석은 도박은 접어라. 사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암행 검표원들이 갑자기 허리춤에 가려놓은 직원명찰을 보여주며 승차권을 보여달라고 하면 약 105유로 가량의 벌금을 내야 한다. 다만 검표율은 매우 낮은데, 매일 버스를 타는 현지 주민들도 검표원을 보는 날은 한 달에 한 번 꼴이라고 할 정도.
타 유럽 도시와 다르게 시내버스의 자리배치가 한국의 일부 버스처럼 처음부터 맨뒤까지 1열로 의자가 내측없이 창측만 존재하여 1개씩만 배치되어있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게다가 굴절버스나 트롤리버스마저도 1x1로 자리가 배치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가 다소 불편할 수도 있으니 유의하도록. 물론 창측과 내측 2개 다 있는 차량도 다니는 편이다.[9]
공항이 있기는 하지만 단거리 노선 위주이다.
6. 기타
-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관련 상품도 활발히 판매 중. 사실상 모차르트가 먹여살리는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10] 다만 일부 시민들은 너무 모차르트만 중심으로 하는 관광 사업 때문에 잘츠부르크의 다른 명소나 인물이 많이 묻힌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 도플러 효과의 바로 그 크리스티안 도플러도 여기서 태어났다.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병원도 있다. 그런데 물리에는 관심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놈의 모차르트에 밀려 압도적인 콩라인이다.
- 천주교의 잘츠부르크대교구 주교좌성당 소재지로, 한국의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1968년에 자매결연을 맺었다. 대성당은 744년에 잘츠부르크의 성 루페르토가 처음 세웠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17세기 초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1] 독일식 발음이 아닌 오스트리아 현지 발음은 살쯔부르크(고전적인 발음) 또는 살쯔부억(현대 발음) 내지 소이쯔부어크(Soizburg)이다.[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잘츠부르크 교외에 가면 미국인, 영국인, 캐나다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화 촬영지를 투어하는 관광사들이 매우 많다.[6] 어떤 건물벽에는 '이 건물은 2차 대전 때 폭격당했다가 복구되었음', 혹은 '이 건물은 나치 게슈타포에게 점거 당한 적 있음' 등의 팻말이 붙어있다[7] 쿠겔Kugel은 구슬이라는 뜻.일명 모차르트 초콜릿이라 불린다.[8] 이것들은 잔돈 거스름 기능이 없다.주의해야 한다.[9] 대한민국에서도 오래전에 전멸한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의 업체들이나 울산광역시 시내버스나 천안시 시내버스, 통영시 시내버스, 진주시 시내버스, 김해시 시내버스, 창원시 시내버스, 경원여객, 강동교통, 인헌운수, 신명운수라던가 기타 지방의 시내버스 업체에서도 1x1 자리배치가 차츰 줄어들어 2x2로 바꾸어나가는 곳이 매우 많다. 맨뒤까지도 의자가 1개씩만 있는 옵션은 한국 버스 외에는 매우 보기 힘든 옵션인데 신기한 모습이다.[10] 그런데 정작 모차르트는 고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잘츠부르크에서는 당시 영주였던 콜로레도 대주교와의 성격차로 인해 박대를 받았고 빈에 가서야 비로소 음악가로 대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