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7 20:22:43

브라운슈바이크


1. 독일 니더작센 주에 위치한 도시
1.1. 역사1.2. 소개
2.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2.1. 역대 군주
3.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1. 독일 니더작센 주에 위치한 도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unschweig_Kohlmarkt.jpg
파일:external/gotravelaz.com/Braunschweig_4232.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ingerbrunnen_Braunschweig.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unschweig_Luftaufnahme_Innenstadt_(2011).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unschweig.jpg
참고로 이건 1900년 사진이다

파일:20150503_120656.jpg
브라운슈바이크 중앙역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건 트램 환승센터이다. 25만 인구의 도시 치고는 중앙역과 환승센터가 꽤 잘 정비되어 있는 편.
브라운슈바이크
Braunschweig
파일:Flagge_Stadt_Braunschweig.png
브라운슈바이크 시의 문장
국가 독일
니더작센
시간대 UTC+1 (서머타임 준수)
한국과의 시차 -7시간

영어권에서는 역사적으로 Brunswick이라고 표기되었지만, 현재는 영어권에서도 원어명칭을 존중하여 Braunschweig이라는 표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다만 Brunswick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등 역사적인 지명을 표기할 때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미국 조지아 주브런즈윅시의 명칭의 기원이기도 하다.

1.1. 역사

중세 시대부터 작센 공국의 일부였다. 브라운슈바이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바로 벨프 가문하인리히 사자공에 의해서였다. 하인리히 사자공은 1142년에 브라운슈바이크를 작센 공국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브라운슈바이크는 17세기까지 니더작센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사자공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 권력 투쟁을 하다가 결국에는 오직 브라운슈바이크 일대만 제외하고 영토의 대부분을 몰수당하고 말았다. 사자공이 죽고 나서 벨프 가문은 1235년 다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베르크 공국을 일으켰다. 이후 브라운슈바이크는 한자 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17세기까지 브라운슈바이크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베르크 공국의 수도 중 하나였으나 1636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베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수도를 하노버로 옮겼고 공국도 하노버 공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 후 빈 회의에서 하노버 공국이 왕국으로 승격하면서 남부 지역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독일 제국에 속하게 되고 1945년까지 브라운슈바이크 주의 주도(州都)였다. 1946년 영국 군정은 하노버 주를 중심으로 주변의 브라운슈바이크 주 등을 통합하여 니더작센 주를 설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브라운슈바이크는 오늘날에도 하인리히 사자공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며 사자공 및 벨프 가문과 깊은 관련성을 유지하고 있다.

1.2. 소개

생명공학, 항공우주공학, 건축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도 제법 인정받는 브라운슈바이크 공대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도시 볼프스부르크를 본진으로 하는 폭스바겐과의 산학 협력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며, 덕분에 기계공학 분야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관련 분야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수학자 가우스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히틀러와 관련한 흑역사가 있는 도시이기도 한데, 나치당이 당시 독일 정치계의 대세로 급부상하던 1930년대 초, 정작 그 중심인물이었던 히틀러에게는 독일 국적이 없었다.[3] 이에 브라운슈바이크 지방정부가 나서서 히틀러에게 1932년 시민권, 즉 독일 국적을 부여하여 명실상부한 독일인을 만들어주었던 흑역사가 있다. #

이 도시의 축구 클럽으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유명하다.

하노버와 관계가 나쁜데, 하노버가 번영하기 전에는 브라운슈바이크가 니더작센 일대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2.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wiki style="color:#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북독일 연방 |} 호엔촐레른 왕가
왕국 프로이센 | 바이에른 | 작센 | 뷔르템베르크
대공국 바덴 | 헤센 | 올덴부르크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국 안할트 | 브라운슈바이크 | 작센코부르크고타 | 작센마이닝엔 | 작센알텐부르크
후국 리페 | 샤움부르크리페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 로이스게라 | 로이스그라이츠 | 발데크피르몬트
기타 함부르크 | 브레멘 | 뤼베크 | 엘자스로트링겐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Brunswick_%281871%29.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ge_Herzogtum_Braunschweig.svg.png
우크라이나 국기와 똑같다

한국어 :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독일어 : Herzogtum Braunschweig
영어 : Duchy of Brunswick

13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이었으며 수도는 브라운슈바이크(1번 항목).
1905년 기준으로 면적 3,672 km², 인구 49만 4천 가량.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0px-Braunschweig_Brunswick_Muenze_1861_Brunonia-2-brightened.jpg
브라운슈바이크를 모에화(?)시킨 "브루노니아(Brunonia)"

이 지역은 원래 작센 공국의 일부였다. 12세기 벨프 가문과 작센 공국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하인리히 사자공이 브라운슈바이크를 작센 공국의 수도로 삼으며 이 지역은 북부 독일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사자공이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의 권력 싸움에서 패하면서 사자공의 영지 대부분은 몰수당해 바르바로사 황제의 측근들에게 재분배되었으며 오직 브라운슈바이크 일대만이 사자공과 벨프 가문에게 남겨졌다.

사자공과 바르바로사 황제가 모두 죽은 후 1235년 마인츠에서 열린 제국 의회는 바르바로사 황제가 벨프 가문에게 내려진 가혹한 조치를 다소 완화했다. 벨프 가문은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 일대를 중심으로 구 작센 공국의 일부를 환수받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을 세웠다. 이후 이 영지는 분할 상속과 재결합을 거치며 수 차례 영지가 나눠졌다가 합쳐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이어져 온다.

그러다가 1636년 본가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공국의 수도를 하노버로 옮기면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은 하노버 공국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후 선제후국으로 승격되었다. 1714년은 본가의 게오르크 1세가 영국왕 조지 1세가 되어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고 빈 회의가 열렸고, 1815년 벨프 가문의 본가이자 하노버 왕조가 다스리는 지역이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었고, 방계 가문이 다스리던 브라운슈바이크 -볼펜뷔텔 공작령(Fürstentum Braunschweig-Wolfenbüttel)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즉 벨프 가문이 이어오면서 분가가 형성되며 영지가 나눠졌다 합해졌다 하면서 이어져 왔고, 18세기 들어 본가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이 영국 왕위에 당첨(?)되어 독일과 멀어지며 방계 가문만이 독일에 남은 것이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왕실은 호엔촐레른 가문과 본가인 하노버 왕실[4]과 여러 대에 걸쳐 혼인이 잦았다. 대표적으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배우자 엘리자베스-크리스티네 왕비와, 프리드리히 대왕의 동생 빌헬름 왕자의 배우자이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어머니인 루이제가 브라운슈바이크 볼펜뷔텔 공작가 출신. 참고로 카를 6세의 부인도 이 가문 출신이지만 이 결혼은 루이 14세의 위협으로 인해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출이 힘들어지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해 친 오스트리아 세력이 필요해진 탓(바이에른 선제후가 루이 14세에게 가담)에 레오폴트 1세가 자신을 지지해줄 세력을 포섭하면서 이 사람과 카를을 결혼시킨 것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종교 차이로 결혼이 힘들었다. 여담이지만 이 과정에서 요제프 1세조지 1세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하고 뤼네부르크 계(훗날 영국 국왕)은 하노버 선제후가 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은 프로이센 왕국으로 격상되었다.

1871년, 독일 제국의 한 영방이 되었다가, 1918년 독일의 주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니더작센의 일부.
대부분의 독일 영방들이 그랬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국도 여러 부분의 월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2.1. 역대 군주


1815 이전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rulers_of_Brunswick-Wolfenb%C3%BCttel

1815년 빈 회의 이후
  • 카를 2세 (1815~1880)
  • 빌헬름 (1830~1884)
  • 섭정기 (1884~1913)[5]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913~1918) [6]

3.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1] 역사적 명칭. 과거에는 Brownswick, Brunswic 등의 철자도 쓰였다. 캐나다뉴브런즈윅 주도 이 Brunswick에서 따왔다.[2] 현대 독일의 행정구역인 브라운슈바이크는 대개 독일어 표기를 그대로 쓰는 편이다. 물론 전통적인 영어명인 Bruswick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3] 잘 알려져있는 것처럼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국적을 포기했으나 정작 독일 국적은 바로 취득하지 못해 사실상 무국적자나 다름 없었다.[4] 조지 3세의 누나는 이 가문의 페르디난트 공작(프로이센 육군원수)에게 시집갔고 그 사이의 딸은 조지 4세에게 시집갔다.[5] 하노버 왕국이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된 뒤 하노버 왕과 4촌 관계인 브라운슈바이크의 빌헬름이 자신이 죽은 뒤 공위를 하노버 왕가에게 넘기겠다고 했으나, 벨헬름이 죽은 뒤 프로이센 왕국이 하노버 왕가와 화해한 1913년까지 하노버 왕가가 브라운슈바이크를 상속받지 못 했다.[6] 상술 한대로 하노버 왕조는 선제후가 되기전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 가문으로 친척지간이었다. 그 후손이 끊기면서 친척인 전(前)하노버 왕국 왕자가 상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