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6 Pershing |
1. 개요2. 제원3. 개발사4. 형식5. 파생형6. 실전7. 운용국8. 평가9. 미디어
9.1. 게임
10. 모형11. 둘러보기12. 관련 문서9.1.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9.1.2. 워스토리9.1.3. 맨 오브 워 시리즈9.1.4. Tanktastic9.1.5.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9.1.6. 강철의 왈츠9.1.7. 소녀전선9.1.8. 워 썬더9.1.9. 월드 오브 탱크
9.2. 소설9.3. 만화1. 개요
M26 퍼싱 기동 영상 |
명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유럽 원정군 총사령관인 존 조지프 퍼싱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리고 퍼싱은 조지 S. 패튼,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등과 달리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이름이 붙은 전차를 볼 수 있었다.
M46 패튼→M47 패튼→M48 패튼으로 구성된 패튼 전차 계보의 전신이 된다는 점에서 초기의 미국제 주력 전차로 보는 경우도 있다.
2. 제원
<colbgcolor=#808000><colcolor=#fff> M26 "Pershing" M26 퍼싱 | |
개발기관 | 미 육군 병기부 |
개발 연도 | 1943년 ~ 1944년 |
생산기관 | 피셔 바디 디트로이트 조병창 |
생산 연도 | 1944년 11월 ~ 1945년 12월 |
생산 대수 | 2,811대 |
운용 국가 | 미국 포함 도합 10여개국 사용 |
운용 연도 | 1944년 ~ 1961년[2] |
전장 | 6.33m / 8.65m (차체 / 포신 포함 시) |
전폭 | 3.51m |
전고 | 2.78m |
전비 중량 | 41.9t |
차체 장갑 | 전면 장갑: 101mm (46°) 측면 장갑: 76.2mm 후면 장갑: 51mm 엔진 데크, 차체 상판, 하단 장갑: 22.2mm |
포탑 장갑 | 포탑 전면 101mm 측, 후면 76mm 포방패 144mm |
엔진 | V8 가솔린 포드 GAA/GAF[3] |
최대 출력 | 500hp |
출력비 | 11.9hp.t |
사용 연료 | 가솔린 |
주무장 | 90mm M3 전차포 1문 (70발) |
부무장 | 12.7mm M2HB 중기관총 1정[4], 7.62mm M1919 기관총 2정[5] |
추가 무장 | T99 칼리오페, 90mm/L73 T15E1/E2 주포(T26E4-1, T26E4) |
항속 거리 | 161km |
최고속력 | 전진: 48km/h 후진: 16km/h |
현가 장치 | 토션바 현가장치 |
탑승 인원 | 5명 (전차장, 조종수, 포수, 장전수, 부조종수) |
3. 개발사
시제 중전차 T26E1 |
M26 퍼싱의 장갑 배치도 |
영국이 독자적으로 개조해 17파운더 대전차포를 장착한 셔먼 VC, 셔먼 IC, 셔먼 IC 하이브리드는 안정적으로 티거와 판터를 관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원거리 명중률에 문제가 있는데다가 기반이 셔먼인지라 장갑 방어력은 같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티거와 판터를 잡을 수는 있었지만 결코 대등하게 싸울 수는 없었다. 때문에 미국도 17파운더와 파이어플라이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해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군은 17파운더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채용하게 된다면 17파운더 포탄의 생산 라인을 따로 여는 삽질을 해야 했을 것인데, 아무리 돈이 많은 미국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보급선을 더 꼬이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장 티거를 압도적으로 때려잡아도 시원찮을 판에[6] 티거를 잡을 수 있을까 말까한 병기 따위는 미국에게는 고려대상조차 아니었다.[7] 즉 미국의 궤도차량 중에서 티거와 판터 시리즈를 전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76mm M7 포를 장비한 대전차 자주포인 M10 GMC와, 90mm M3 포를 장비한 대전차 자주포인 M36 GMC 뿐이었다.
때문에 미군은 독일군의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한 본격적인 T29등의 신형 중전차를 개발하기 시작했고[8], 강력한 90mm 포, 114mm의 두툼한 장갑, 50구경 기관총 1정과 30구경 기관총 2정으로 무장한 본격적 중전차 M26 퍼싱을 장갑이 상대적으로 얇았던 T25를 대신해 차기 중형전차로 선정하고 2,432대나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원래는 중전차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잠정형 전차였던 M4 셔먼의 후계 전차, 즉 중형전차로서 생산이 시작되었다.[9] 당장 M4 자체가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이 확실시되면서 급속한 군비 확충을 위해 서둘러 양산에 착수한 전차였다. 당연히 성능은 물론이고 여러가지 면에서 미군은 셔먼에 그리 만족하지 못했고, 마침 전차 기술 자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시기라 미군은 M4 셔먼의 양산이 확정된 시점에서부터 곧바로 후계 전차 계획에 착수했다. 이런 추세는 사실 당시 거의 모든 열강국의 공통적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1944년 9월 병기국 차원(셔먼과의 구분을 위해)에서 분류를 중전차로 변경하는 바람에 2차 대전에는 중전차 명목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퍼싱이 다시 중형전차로 재분류된 것은 종전 후인 1946년 7월이었다.
M4 셔먼에서 이어져온 원시적 헌터 킬러 기능을 가지고 있어 전차장이 포탑을 조종할 수 있었다.
3.1. 개발 과정
자세한 내용은 T20 문서 참고하십시오.현대 미국이야 M1 에이브람스를 필두로 하여 세계 최강의 기갑전력을 구사하고 있지만 초창기 미국 기갑부대는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냉전 종식 직전까지는 미국의 기갑전력은 최상위권이기는 하지만 소련이나 독일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어서 오늘날처럼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미국이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선 것은 소련 붕괴로 러시아군이 정신줄을 놓고, 서유럽의 군대들 또한 군축으로 맛이 가버린 상태인 반면 미국은 혼자 꾸준히 발전한 덕분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M4 셔먼 중형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미 군수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양산이 미뤄지는 와중, 트라이던트 회담(1943년 5월 25일)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잡혔다. 신형 전차가 D-Day전에 완성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신형 주포인 76 mm gun M1만 상륙작전 전인 1943년 6월부터 셔먼에 T23의 포탑을 장착하여 양산 준비에 들어가 1944년 1월 양산을 시작했고(M4A1E6셔먼), 90 mm 대전차 자주포도 생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둘 다 대서양을 건너면서 D-Day에서는 투입되지 않아, 독일의 전차들과 셔먼은 75mm를 장착한체 마주했다.
하지만 그렇게 장착한 신형 주포는 시원치 않았고, 90mm 대전차 자주포는 자주포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90mm 장착 전차에 대한 전선에서의 요구가 쇄도하여 M26E3를 M26 퍼싱으로 선정하고 양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았고 전쟁이 끝나서까지 해결을 지속하여, 추중비는 M46, 기동 신뢰성은 M47, 연비는 M60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개발과 생산을 전적으로 책임진 육군 병기부의 관할하에 많은 방위산업체들이 참여했는데, 1942년 제너럴 모터스가 처음으로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었다. T20으로 명명된 이 전차는 기존 전차들보다 강화된 전면장갑, M18 헬캣의 76mm M1 전차포와 진보한 자동 변속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육군 병기부는 서스펜션과 변속기의 시험, 개량을 위해 프로토타입 전차 4대의 추가생산을 명했고, T22라 명명된 2대는 크라이슬러가, T23이라 명명된 나머지 2대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맡았다. T22에는 M4 셔먼의 변속기 개량형을 장착한 모델이고, T23은 M6 전차 개발과정에서 나온 T1E1의 전자 변속장치를 장착했다.
1943년 5월 생산된 프로토타입 T20은 수평 현가장치(HVSS)의 장착과 유체 구동 변속기등 서스펜션이 더욱 개량되었고, 엔진은 M4A3 셔먼이 가진 포드사의 500마력 V8 심장을 가진, 여전히 진일보한 셔먼에 가까웠다. 출력대 중량비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엔진과 변속기가 합치면서 현대의 전차들이 사용하는 파워팩의 시작은 이 T20에서 시작되었다.출처
T23 |
퍼싱에 장착된 포드 GAF 엔진 |
3.2. 미 육군 고위층의 오판
고위층의 핵심적인 오판은 미완성인 퍼싱의 조기 배치를 보류한 것이 아닌[10], 퍼싱이 개발 중인 동안 셔먼의 업건을 보류하고는[11] 공백기간 동안 76mm 대전차자주포를 배치했으니 충분하다고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이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정해졌지만 T20의 완성이 이를 맞추지 못할것 같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AGF는 곧바로 셔먼의 업건 준비에 착수, 업건한 셔먼의 생산을 1944년 1월부터 시작했으나 대서양을 건너느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고작 200대만 영국으로 수송완료된데다 지급받은 부대를 기종변환훈련 시간도 없어 보병 제압력이 더 좋은 75mm 포가 낫다고 판단되어 M4A1 (76) W 셔먼은 상륙 후에 투입되었다.거기다 90mm 포 탑재에 관해서도 맥네어 장군을 필두로 한 AGF의 오판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로, 기갑국은 셔먼(전차)에 90mm를 장착해서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병기국은 76mm에 만족하면서 T25(전차)에 90mm를 탑재할지 말지(90mm가 필요한지)로 논쟁을 하다가 90mm를 대전차자주포에 장착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길어진 논쟁으로 1944년 4월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76mm 셔먼과 마찬가지로 D-Day를 놓쳤고, 실전에 투입하니 90mm를 장착하였어도 대전차자주포의 한계로 인해 전선에서는 90mm를 장착한 전차의 요구가 쇄도했다. 결국 90mm를 장착할 역량이 충분했던 셔먼은 90mm 장착 전차의 전선수요가 발생한 다음에 다시 고려되었으나, 퍼싱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90mm 셔먼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비슷하고, 퍼싱의 양산에 방해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와버려 포기했다.
만약(전후의 평가이기는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에 셔먼의 76mm환장과 대전차 자주포 90mm 업건을 끝냈다면 셔먼이 판터에게 일방적으로 쓸려나가지 않았을 것이며, 더 나아가 대전차자주포를 포기하고 90mm로 업건한 셔먼을 단일 생산했다면 퍼싱은 6.25 전쟁 끝까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12]
다음에 나오는 퍼싱 개발 과정에서의 논쟁들은 완성도 되지 않은 전차에 관한 논쟁이기 때문에 참고만 하면 된다. 다만 미국은 해전과 항공전 병기를 주력으로 태평양 전선에 집중하느라 지상전 병기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준비 단계[13]에서부터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참작하며, 미군이 신형전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14]
3.2.1. 개발 과정에서의 논쟁
1943년 5월 24일 일단 T26의 생산은 승인되었지만 정작 군부는 회의적이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 또한 신형 90mm 주포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했고, 그들의 눈에는 이 돼지같은 전차는 셔먼처럼 재빠른 진지돌파와 속전속결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애초에 1,500여대의 T26 중전차의 생산이 승인되었지만, 군부는 생산되더라도 500여대 이하만 보유하기를 원했다. 그게 아니라면 가벼운 T25 전차에 76mm 포를 달아 중(中)전차화 하여 7,000여대 정도 생산하는 것을 반겼다. 무엇보다도 군부는 T26의 생산으로 인한 M4 셔먼의 생산의 차질은 원하지 않았다.1943년 9월 13일 여러가지가 개량된 T26E1 전차 10대가량 생산되었고, 육군 병기부는 T26E1 전차를 추가적으로 500여대 정도 생산할 것을 계획하였지만, AGF의 레슬리 맥네어 장군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바다 건너 병기를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송 체계의 한계를 시험하는 40톤급 중전차는 보급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배에 싣고 가는데 퍼싱의 40톤이나 셔먼의 30톤이나 무슨 차이냐!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당시 전차 수송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대형 선박에 램프로 그대로 타고 올라가서 싣는 게 아니라, 일반 화물선에 크레인으로 전차를 달아 올려서 차곡차곡 싣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M4 전차를 보면 차체 전후면에 이렇게 크레인으로 줄을 묶어 달아 올리기 위한 철제 고리가 장착되어 있으며, 이는 퍼싱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40톤급은 이런 크레인이 다룰 수 있는 무게의 한계였기 때문에 수송에 어려움이 생겼던 것.
그래서 장거리 보급으로 인한 어려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맥네어는 전방으로부터 "전선 수요(Battle Need)"가 있는, 즉 전투병이 조우한 전투 상황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는 병기를 우선 제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맥네어는 이 방침을 통해 전간기식의 허황된 전투 병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1940년대 초반까지 미군 전차 승무원들이 누리던 기술적인 우위를 이끌었지만, 이후 먼저 배치된 셔먼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아직 전선 수요가 없는 후속 전차의 개발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15]
아직 티거와 판터를 조우하지 않은 대다수 미군 전차 승무원은 75mm 포만으로도 대전차와 대보병 임무를 모두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크고 무거운 포에 대한 전선 수요가 거의 없었고, 자신이 싸우는 유럽 전장이 더 무겁고 강한 후속 전차가 쏟아져나오는 군비경쟁의 장이 될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일반 전차 승무원은 군비경쟁과 같은 대전략적 판단을 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승무원들의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대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맥네어가 일선 승무원의 호의적인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현실에 안주해버렸던 것이었다.[16] 그래서 승무원들로부터 더 강력한 주포를 탑재한 전차에 대한 "전선 수요"가 발생한 시점에서 이미 많은 전차 승무원들이 희생된 지 오래였고, 이 전선 수요가 상층부에까지 전달되어 신형 전차가 개발되고 대서양을 건너 수송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17]
1943년 11월 13일, 당시 영국에 부임해있던 서부전선 사령관 제이콥 데버스는 국방성을 상대로 "강력한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5대의 셔먼에 1대의 T26은 꼭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으나, 그러한 주장은 역시나 AGF의 수동적인 태도에 막혀버렸다. AGF의 생각은 이랬다. "티거는 별로 많지도 않을 것이고, 나머지 독일 전차는 셔먼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18] 그러나 이런 생각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막된 이후로 산산히 부서졌다. 게다가 이렇게 안주한 기간은 소련기갑에 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독일 전차개발사에 있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신형 중전차 개발을 시작한지가 1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만 낭비된 셈이었다. 조지 S. 패튼 또한 부정적이었다고 전해지나, 사실 패튼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데다가 패튼이 안좋아한 것은 퍼싱의 기동력이지, 화력과 방어력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애초에 패튼은 떡장갑인 점보 셔먼의 강한 장갑에 만족하여 보급요청까지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제한된 독일군 전차에 대해 선전한 M4 셔먼 전차를 과대평가하며 맹신하고 있었고, 다수의 셔먼으로 소수에 그칠 독일의 티거와 판터를 상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미군은 노르망디 이후 간단히 독일군을 압도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많은 전차와 승무원들의 쓸데없는 희생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시간에 무능한 장성들은 뒤에서 팔자좋게 있었다.
티거 전차에게 격파 당해 궤도가 끊어진 셔먼 |
라이프치히에서 격파된 셔먼[19] |
이 지경이 되자 미 육군부는 그제서야 후회했다. 물론 지휘부의 장성들이 그런 보고를 받아보는 동안에도 죄 없는 전차들은 유럽 곳곳에서 격파되어 나갔다. 게다가 측면이 얇은 수직장갑이라는 것등의 약점을 노출해서 정면에서는 포탄을 튕겨버릴 각종 2선급 대전차화기에도 약점이 노출되어 파괴당했다. 캉 점령전 때만 해도 200여대의 M4 셔먼 전차가 희생되었던 영국 육군은 하루만에 131대의 M4 셔먼 전차를 잃기도 했다.
그나마 전차에 M3 90mm 주포 장착계획을 극렬히 반대했던 맥네어 장군이 아군기의 오폭으로 전사하면서 이 계획 자체를 막을 사람은 없었으나 이런 상황을 깨달았다고 갑자기 신형전차를 뽑아낼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멕네어 이외에도 바보같은 장성들이 쓸데없는 체면 때문에 계획 진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데다 미군의 항공지원 의존도가 대단히 높아서 중전차 생산계획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싱이 양산체제를 급하게 갖추는 상황에서도 셔먼의 손실은 계속되어, 어떤 기갑사단 예하 전차대대는 1944년 6월부터 1945년 3월까지 9개월 동안 장비손실율 300% 이상, 즉 전차의 전선 운용 기대수명이 길어야 3개월 이내라는 충격적인 상황까지 겪었다.그러나 당장은 수적우세를 바탕으로 계속 독일군을 격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1944년 12월 들어 처음으로 유럽 주둔 미군에 퍼싱의 선행 배치가 시작되었다.
미군은 아프리카에서 티거가 튀어나오기 전에도 76.2mm 주포를 탑재한 셔먼을 테스트 할 만큼 강력한 주포와 관통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90mm 주포를 탑제한 M36 GMC의 활약상과 평판을 비롯, 90mm 주포를 장착한 퍼싱을 서둘러 배치하고자 하였으나, 발목을 잡은 건 퍼싱의 결함과 퍼싱 생산까지 버텨줄 90mm 전차의 부재이지 퍼싱의 조기배치를 미룬 것이 미군 수뇌부의 오판이 아니다. 독일의 판터를 예로 들면, 결함을 싸그리 무시하고 쿠르스크 전투 시기에 맞춰 무리하게 생산한 결과 엄청난 수의 비전투 손실이 일어났다.
적국이 점령한 유럽을 가로질러 공세를 펼쳐야 하는 미군의 입장에서 이런 구동부 결함은 사실 심각한 리스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중전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퍼싱이 필요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어 여러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3.2.2. 반론
위의 중전차 퍼싱이 없어서 셔먼과 미군 기갑부대 손실이 컸다는 얘기는 지나치게 과장된 평가이다.애초에 보급이 수월한 미군 전차부대는 장갑이 관통되거나 궤도가 끊어지는 정도의 손상을 입으면 바로 후방으로 보내 청정비를 맡기고 새로운 전차를 지급받았는데 이런 소파, 중파된 전차들까지 모두 '손실'으로 분류되어 윗 문단에서의 전차 손실율 37%라는 수치가 나온 것이며 전투불능에 빠질 정도로 큰 손상을 입은 전차는 훨씬 적었다.
1946년 미 육군부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전투 및 비전투 사망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육군 병과별 사망자의 규모를 볼 때, 장교를 제외하고 기갑부대는 1,579명, 보병은 13만 1,315명이 전투중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미육군 전체의 전투중 사망자 22만 5,618명 중에서 기갑부대의 비율은 0.7%밖에 안되지만 보병은 58%에 달한다.
기갑병과 중 해외로 파병된 병력의 규모는 총 49,516명이었고, 이중 1581명이 전투중 사망하거나 부상으로 인해 사망함으로서 총 전사자 비율은 3.2%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보병병과 중 해외로 파병된 병력의 규모는 75만 7,712명이었고, 14만 2962명이 전사함으로서 전사자 비율은 18.9%에 달한다.
기갑병과 사망자 비율은 미육군 전체 사망자나 파병된 기갑병과 전체 기준으로도 아주 적은 편이다. 반면에 보병 사망자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유럽전선에서 약 7000여대의 전차 및 대전차자주포 손실이 있었지만, 1944년 6월 2,202대였던 유럽전선의 셔먼이 44년 12월까지 2,270대를 손실하면서도 4,076대까지 증강되는 것을 볼 때 전차의 대규모 손실이 있어도 대량공급을 통해 오히려 전력증강이 가능했다.
대전 후반기로 갈수록 조우할 가능성이 적은 중전차 대응을 위해 무리하게 90mm 전차를 뽑는 것보단 당장 손실이 큰 보병 지원을 위한 M4 셔먼 전차를 대량공급하는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퍼싱배치가 늦어진 건 수뇌부의 오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퍼싱 중전차의 부재로 인한 기갑부대의 희생도 크지 않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M4 셔먼을 우선시해서 보병 손실을 줄였다고 볼 수 있겠다.
3.3. 개량
T26E1은 90mm M1 고사포를 개량한 T7 전차포를 장착하고 부족한 포탄 탑재량을 늘렸다. 그러나 T26E1은 라디에이터와 포탄 사격시 심각한 기계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것을 개량한 것이 T26E3, 그러니깐 M26 "퍼싱"이다. 앞서의 어처구니없는 방해로 인해 심각하게 늦은 1944년 11월에야 생산이 시작되었고 1945년 2월까지 242대가 생산되었다. 퍼싱이란 이름은 1945년 3월에야 붙여졌다. 원래 중형전차로서 개발되다가 중전차로 변경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늦어버린 T26E3는 1945년 1월에서야 유럽에 배치되었다. T7 주포는 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된 M3 90mm 주포로 변경되었다. 다만 엔진은 여전히 M4A3 셔먼의 400마력 포드 GAA를 개량한 500마력 포드 GAF 엔진이었는데, 이 때문에 기동력을 많이 깎아먹었다. 비록 속도는 상당했으나 지형적응력이 비교적 부족한 편이었다고 한다.주포의 경우 원심 주조의 가열이 아닌 상온 온도에서 눌러 늘이는 방식인 냉간압연 가공법으로 제조되어 포신은 훨씬 튼튼했고 명중률도 좋았으며 매우 빠른 포구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 철갑탄인 M77 철갑탄은 576m 거리 이상에서는 판터 정면 차체 상부 장갑을 관통시키기 어려웠고 때론 수 발의 90mm 포탄을 연사해서 판터 정면 상부 장갑을 관통시키기도 했는데, 이는 연속된 피격으로 약화된 장갑재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개선된 신형 T30E16 90mm 고속철갑탄은 벌지 전투가 벌어진 후인 1945년 1월이 되어서야 전선에 도착했다.
4. 형식
4.1. M26
M26 |
4.2. M26A1
M26A1 |
M26A1 퍼싱 복원 영상 |
M26A1 퍼싱 기동 영상 |
5. 파생형
5.1. 미국
5.1.1. 현대화 개량형
5.1.1.1. M26E2
M26E2 (M46 Patton) |
5.1.2. 장비 추가 파생형
5.1.2.1. M26 T99
M26 T99 |
5.1.3. 무장 교체 파생형
5.1.3.1. M45 중형전차
M45 Medium Tank |
5.1.3.2. T26E4
두번째 슈퍼퍼싱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기획된 사양으로 양산형인 M26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두번째 슈퍼퍼싱 프로토타입에는 T26E1-1 기반의 첫번째 차량과 달리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은 90mm T15E2 분리 장약식 주포를 장착되었는데, 이는 테스트에서 T15E1 주포의 무겁고 긴 일체형 장약 포탄이 장전 속도를 떨어뜨리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22]. 또한 T26E3 기반 두번째 시제차까지는 장포신 주포 조절을 보조할 2연식 코일 스프링이 포탑 위에 존재했다.양산할 것으로 계획한 T26E4 형식부터는 포탑 내부에 유압식 평형기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첫번째와 두번째 시제차량에 있었던 외부 코일스프링은 제거되었다. 원래 T26E4 사양이 퍼싱의 강화형으로 1000대 주문되어 기존의 퍼싱을 대체하기로 계획 되었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25대로 주문이 줄어들었고, 개발은 M26E1으로 이어진다.참조
또한 T26E4에 쓰려고 한 T15E2 포의 분리장약식 포탄은 분리장약 방식 자체의 단점이 있었기에 결국 다시 일체형 장약식 포탄을 쓰는 방향으로 갔고, 이 개선사항은 전후 T54로 명명된 T15 계열 포의 발전형에 반영되었다.
5.1.3.3. M26E1
90mm T54 주포로 무장한 사양. 사실상 T26E4 슈퍼퍼싱의 완성형으로 전후 등장한 사양이다. T54 주포는 T15 주포의 발전형이자 전후 재명명된 것으로, 분리장약식 포탄을 다시 일체형으로 바꾸는 대신에 탄피의 직경을 늘려 길이를 줄였다. 그러나 개발비 문제와 M26E2의 등장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5.1.3.4. M26A1E2
M26A1E2 |
티거 2의 8,8cm KwK 43 주포를 의식하여 장포신 90mm 73구경장 T15E1 주포로 무장했다. 90mm M3보다 더 무겁고 포신의 전장이 매우 길어졌으며, 고속포로 제작된 T15E1 주포로 인한 포탑의 전방 쏠림을 막기 위해 포탑 뒷면에 균형추용 장갑이 추가되었고, 기존의 주포 부앙각 조절기로는 무거운 장포신을 들어올리기 무리인지라 이를 도와줄 2연식 코일 스프링 고저장치를 포탑 지붕에 장착하였다[24]. 이후 해당 차량은 유럽으로 수송되어 제3 기갑사단에 배치되었다. 주포와 화력은 강화되었어도 방어력은 그냥 퍼싱과 동일했기 때문에 유럽의 야전에서 격파된 판터의 80mm 전면 장갑을 뜯어다 포방패에 용접했다. 또한 38mm 두께의 보일러 철판 두 장을 2중 구조로 차체 전면에 추가로 용접하였고[25], 포방패 측면에는 뿔모양의 철판 겸 무게추를 용접했다. 여기에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포탑 후방에도 카운터 웨이트 무게추가 추가로 용접되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기존 M26 퍼싱보다 7톤 가량 무거워졌는데, 서스펜션과 엔진은 개량되지 않아서 무리가 갔다.(즉 슈퍼퍼싱 시제차는 두 대이며, 실전 투입 및 포방패,측면, 차체 전면 공간장갑 증설이 된 슈퍼퍼싱은 한 대이다.) 전후 유럽으로 보내진 해당 차량은 독일의 카셀에 있는 기갑차량용 폐차장에서 폐기 처분되었다.
참조
슈퍼 퍼싱의 개발비화와 최후를 다룬 블로그 글
5.1.4. 장갑 증강 파생형
5.1.4.1. T26E5 점보 퍼싱
T26E5 "Jumbo Pershing" |
T26E4 Super Pershing / T26E5 Jumbo Pershing | |
전체(차체)길이 | 10.31(6.36)m / 9.48(6.38)m |
폭 | 3.51 / 3.54m |
높이 | 2.78m / 2.80m |
중량 | 46.4t / 50.5t |
주무장 | 90mm 73구경장 T15E2 (54발) |
/ 90mm 52구경장 M3 (70발) | |
부무장 | 7.62mm 기관총 1정 |
/ 12.7mm 기관총 1정, 7.62mm 기관총 1정 | |
장갑 | 25 ~ 194mm / 25 ~ 279mm |
마력 - 엔진 | 500마력 - 포드사 GAF V8 가솔린엔진 |
톤당마력 | 10.7hp/tonne / 9.9hp/tonne |
속도 - 항속거리 | 40Km/h - 160km |
승무원 | 5명 |
생산댓수 | 25대 + 2대 / 27대 |
5.1.5. 자주포 개수형
5.1.5.1. T92/T93
240mm HMC T92 |
203mm GMC T93 |
5.1.5.2. T84 HMC
203mm HMC T84 |
5.1.6. 기술 기반 파생형
5.1.6.1. T32
T32 |
6. 실전
6.1. 제2차 세계 대전
6.1.1. 서부전선
6.1.1.1. 연합군의 독일 본토 침공
엘스도르프의 201호 티거와 그 티거에게 반파된 T26E3 38번 퍼싱 'Fireball' |
유럽 전선에 투입된 퍼싱은 슈퍼 퍼싱을 포함하여 310대였는데 그중에 격파된 퍼싱은 나스호른에게 피격된 단 1대뿐이고 반파된 퍼싱이 2대였다. 완파된 퍼싱은 슈퍼 퍼싱이 아니라 M26(T26E3) 퍼싱으로, 1945년 3월 6일 쾰른 북쪽의 닐(Niehl)에서 나스호른이 퍼싱의 후방을 근거리에서 가격, 격파한 예가 있다.
또한 반파된 퍼싱은 1945년 2월 26일 독일 엘스도르프(elsdorf)에서 매복한 6호 전차 티거 201호에게 100m 거리에서 8.8cm 포탄 세 발을 얻어 맞아 반파되었는데 첫발은 동축 기관총구를 뚫고 들어가 탄약수와 포수를 사망시켰고, 또 한발은 머즐 브레이크를 찢어 버렸다. 나머지 한 발은 포탑 정면의 우측 끄트머리를 맞고 튕겨져 나갔다. 실제 운이 나빴다기보단 독일의 베테랑 승무원의 숙련된 솜씨라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연도가 1945년 2월이라 숙련병은 얼마 남지 않았을 시점으로서 가능성이 낮다. 이 201호는 퇴각 중 장애물에 걸려 기동불능이 되자 유기되었다.
전투가 끝나고 미군은 이 반파된 퍼싱 전차를 유기하지 않고 다시 수리해 전선에 투입했는데 완전히 망가진 머즐 브레이크와 포방패, 그리고 포탑 내부의 일부 부품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탄약고나 연료탱크에 피격당해 포탄이나 연료가 유폭되어 말 그대로 산산조각난 경우가 아니라면 반파된 전차는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여 재사용이 가능하다. 동부전선에서는 독일 육군과 소련 육군이 상대방의 격파된 전차를 수리하여 노획무기로 사용한 사례가 많았다.
뒤셀도르프에서 퍼싱의 반파를 뒤로 하고, 2월 27일 제33기갑연대 E중대의 40번째 M26 퍼싱이 엘스도르프 근처에서 티거를 823m(1천 야드) 거리에서 기동중에 네 발을 사격하여 격파하고 1,097m 거리에서 4호 전차 두 대를 격파했다.
그것말고도 반파된 퍼싱은 1945년 3월 1일, 라인강의 레마겐(Remagen) 지역에서 독일군의 15cm 야포 세례를 받고 반파되었다.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으나 이 전차 또한 수리되어 다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6.1.1.1.1. 쾰른 대성당 전차전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소속 M26 퍼싱에 격파당한 독일 국방군 소속 판터 |
쾰른 대성당 전차전 기록 영상[26] |
포성의 초탄은 측면을 관통했고 판터는 차내 포탄의 유폭으로 연기를 뿜으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가망이 없음을 안 전차장을 포함한 모든 전차 승무원들은 탈출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차탄이 발사되었으나 판터의 포방패에 맞고 도탄되었다. 그렇게 모든 승무원들이 탈출하면서 무력화된 판터 전차는 이후 확인사살겸 날아오는 2발을 더 맞고 대폭발을 일으킨다. 이때의 경험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탈출해 생존한 판터 전차장은 전후에도 자신의 판터를 격파한 것은 퍼싱이 아니라 미군에게 노획당한 판터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 전차전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편인데,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이 정도로 명확하게 영상으로 기록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차전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당시 전차전은 절대다수가 참전자들의 수기에 의존하고 전후 사진이라도 남아있으면 다행인 수준인데, 이쪽은 아예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온전히 영상으로 녹화되었다. 게다가 전투에 휘말린 전차가 대전 후반에야 투입되어서 활약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M26 퍼싱이라는 점과, 전투의 장소 역시 쾰른의 명소 중 하나인 대성당 앞이라는 점 역시 이러한 인기에 크게 작용했다. 현재도 이 전투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서 인터넷에 가보면 시간별 전투 분석은 기본이오, 판터 전차가 관통당한 구획을 설계도면상에 표시해둔 자료까지 있다.
당시 찍힌 기념사진
당시 이 퍼싱의 포수였던 95세의 참전용사 클래런스 스마이어 씨가 뉴스에 나왔다.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뒷이야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당시 M26 퍼싱 포수 클라렌스 스마이어(Clarence Smoyer)와 그에게 격파당한 5호 전차 판터 포수 구스타브 쉐퍼 (Gustav Schaefer)가 둘 간의 교전 중 희생당한 독일 민간인 추모 이야기 쾰른 대성당 난전 중 스마이어 씨가 탄 M26 퍼싱은 쉐퍼 씨의 판터의 조준을 피해 우회하는 도중 독일 민간인 식료품 가게 점장과 여점원 카타리나 엣세가 차를 타고 피난하는 것을 보고 퍼싱, 판터 양측이 동시에 공축기관총으로 사격했다. 후에 이 둘 모두 한참 잘못된 목표를 향해 쏘았다는 것을 알곤 두고두고 잊지 못하다 전쟁이 끝나고도 50여년 뒤에 우연히 서로가 만나 숨진 엣세 씨를 추모했다. | }}}}}}}}} |
한 일반인이 직접 쾰른에 방문해 이 전투에서 판터가 격파된 자리를 찾고는 당시 사진과 대조를 했다.
6.1.1.2. 데사우 조우전: 슈퍼 퍼싱의 데뷔전
이 중 눈여겨볼 만한 증언으로, 45년 4월경에 T26E4-1 슈퍼 퍼싱이 티거 2를 격파했다는 증언이 있다.티거 2는 독일에서 거의 고갈되어 있었고, 위에서 보듯 슈퍼 퍼싱도 전 유럽을 통틀어 2대, 그 중 실전투입과 야전개수가 된 문제의 슈퍼퍼싱은 해당 차량 하나밖에 없었다. 만날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지만 1945년 데사우(Dessau)에서 그토록 바라던 티거 2와 교전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있다.미 육군 3기갑사단 역사재단 홈페이지의 역사기록 부문에서 소개된 이 전투는 다음과 같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역사재단 홈페이지 작성글 번역본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
티거 II 와의 결투 |
위 3명의 단체사진 중 중간의 인물, 그리고 독사진 속에서 나온 이는 1945년 경 촬영된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소속 슈퍼 퍼싱 전차장이던 메사추세츠 주 출신 조셉 마두리(Joseph Maduri) 육군 하사이다. 단체사진 맨 오른쪽의 인물은 팬실베니아 주 출신 존 P. 어윈(John P. Irwin) 육군 상병이다. 단체사진 맨 왼쪽의 인물은 “피트(Pete,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성)”로 추정이 되는 바이다. 이 외의 2명(조종수와 기관총수)의 승무원들은 사진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마두리 가문 제공)
1945년 4월 21일에 있던 데사우에서의 결투
선두에서 일대일로 맞서 싸운 전차전 승리
작성자: 미 육군 제3기갑사단 공식 역사재단사이트(3AD.com) 관계자 빅 데이먼(Vic Damon)
1945년 4월 21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 제3기갑사단의 공식적인 마지막 전투작전을 불과 사흘 앞둔 날이었다. 해당 부대 예하 33기갑연대의 슈퍼 퍼싱이 2차세계대전에서 가장 강력한 중무장 스펙을 지닌 독일산 전차 티거 2 또는 타이거 로열(Tiger Royal)등으로 알려진 77톤급의 전설적인 킹타이거를 조우하여 격파했다. 그 사실은 오늘날까지 군사 역사학자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53톤급 M26 퍼싱을 개조한 슈퍼 퍼싱(Super Pershing)이 킹타이거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전한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다.
미 육군 제3기갑사단은 서부유럽 전선에서 유일하게 기존형(M26)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주포를 탑재하고 단 두대만 개조되어 탄생된 슈퍼 퍼싱을 운용하는 부대였다. 대전 말기(1945년 3월)에 미 본토에서부터 늦게나마 도착한 이 전차는 독일 내에서 야전 시험과 개조가 이루어졌고, 파데르본 전투 이후 약 열흘 간의 실제 전투가 있었으며, 며칠 후 시작되어 엘베 강 근처의 데사우 전투로 공식 전투는 종료되었다.
미국 기갑병기 설계안 코드번호 T26E4-1의 일명 슈퍼 퍼싱은 T15E1 90mm의 긴 신형 주포를 장착해, 킹타이거의 독일산 고속 88mm 71구경장 43식 전차포의 성능을 능가하도록 설계됐다. 미국의 이 신형 주포는 시험에서 1,000야드 거리에서 30도 경사의 8.5인치의 장갑판을 성공적으로 관통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은 100야드 거리에서 13인치의 장갑판을 관통했다는 것이다. 90mm의 특수 탄약은 초속 3,850피트, 즉 킹 타이거의 88mm보다 600피트 더 빠른 속도로 발사되었다. 또한 90mm의 신형 탄약은 이전 버전에 비해 뛰어난 사거리와 정확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육군의 기술자들은 이 신형 전차가 킹타이거에 대항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투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1945년 4월까지 베를린 서쪽에 있던 전선의 독일군의 전차는 연료가 바닥날 만큼 부족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기에 이 독일산 괴물 전차를 발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4월 21일 데사우에서, 10개월 연속 전투에 참가한 베테랑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조셉 조 마두리 육군 하사가 지휘하는 슈퍼 퍼싱 대원들이 괴물과 조우할 행운이 돌아갔다.
당시 미 육군 제3기갑사단은 해당 도시인 데사우에 네 갈래로 나눠 공격을 시작하였는데, 강렬한 저항으로 방어되었다. 사단의 전차들은 콘크리트 전차 장애물이 파괴되고 나서야 고전 끝에 도심으로 서서히 진격하게 되었다. 제 3기갑사단이 흩어지며, 미 육군 제36보병연대 병력이 뒤를 따랐고, 이 슈퍼 퍼싱이 중심교차로에 다다르자 우측으로 차체를 돌리기 시작했다. 슈퍼 퍼싱의 전차 승무원들은 몰랐겠지만, 이들이 들어선 교차로와 같은 방향에 약 두 블록, 혹은 600야드 정도 거리에 킹타이거가 매복 대기중임이 분명하였다.
이 킹타이거는 자신의 능력선에서 정리될 것이라 파악하고 충분한 거리에서 슈퍼 퍼싱에게 포를 발사하였다. 하지만 전쟁 내내 미군의 많은 전차와 차량을 격파해 온 그 악명높은 88mm의 고속 탄에도 불구하고, 슈퍼 퍼싱의 상부로 날아가 명중은 고사하고 근접한 방향으로 날아가지도 못하였다. 18살의 어린 나이였던 포수 존 “잭” 어윈 육군 상병은 거의 즉각적으로 킹타이거 차체 정면의 큼지막한 경사장갑에 포를 발사하여 대응을 하였다. 그러나 관통목적이 아니었던 고폭탄이었기에 효과는 전무하였다. 이 고폭탄은 장갑에서 도탄이 되었고, 킹타이거 상부로 날아가 아무런 피해 없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어윈 상병은 시가지에서 전차가 아닌 건물이나 적 보병, 그리고 경형 대전차포 등의 다른 표적을 상대하리라 예상하여, 슈퍼 퍼싱 주포에 위해 고폭탄을 장전된 상태였었다. “당장 철갑탄을 장전해!!“라며 어윈은 급박하게 소리쳤고, 전차장전수(탄약수)였던 “피트”가 철갑탄을 곧이어 장전하게 되었다.
그때, 전차장 마두리 하사와 다른 승무원들은 포탑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굉음이 코앞의 킹타이거의 공격인지, 아니면 다른 대전차 무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심각한 피해는 없었고, 비스듬하게 도탄되었거나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곧바로, 어윈은 이 고성능의 괴물이 부서진 잔해 돌무더기를 밟고, 위를 바라보며 등판하기 시작하자, 준비된 두 번째 포탄을 발사하였다. 90mm 철갑탄은 이 킹타이거의 정면 하단을 관통하였고, 탄약 적재공간에 명중하여 포탑이 유폭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거의 확실하게도, 킹타이거의 내부 승무원들은 전원 폭사하였다.
하지만 슈퍼 퍼싱 승무원들은 그들이 잡은 사냥감을 확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슈퍼 퍼싱은 이미 처참하게 격파되어 불길이 오른 킹타이거를 지나 다음 거리를 따라 전투를 지속하였다. 독일군 대전차 보병화기인 판처파우스트와 기관총이 창문과 문틈에서 발사되며, 여전히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킹타이거와의 접전은 20초도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평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격렬한 전차전은 아니었지만, 재빠르게 반응한 슈퍼 퍼싱과 승무원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데사우 전투는 이후 약 이틀이 지나서 종료되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5호전차 판터로 추정되는 독일 중형전차를 단 2발로 사냥을 한 바가 있다. 초탄은 판터의 기동륜을 박살냈고, 차탄은 측면을 완전히 관통하였다. 판터 또한 적재된 탄약으로 인해, 내부 폭발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이후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을 이끄는 마두리와 승무원들이 독일 중형전차의 전차장에게 저항없이 무조건 항복하라고 강요하였다. 주포 탄약을 모두 소진하여 결국 항복한 독일군 전차 승무원들이 보고 기겁한 슈퍼 퍼싱이 탑재한 위협적인 외관의 90mm 장포신 주포는 이들의 그나마 남겨진 전투의지를 완전히 꺾었고, 아니면 아예 탈주하게 하였다.
원문출처.}}}}}}}}} ||
첫 번째로, 당시 데사우 근처에는 티거 2를 보유하고 있었던 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교전이 일어났던 45년 4월 21일 즈음에 티거 2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던 부대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제501중전차대대 | 파더본 근처에서 이미 해산됨 |
제502중전차대대 | 4월 19일 하르츠 산에서 이미 해산됨 |
제503중전차대대 | 스트롱스트로프 근교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에서 전투 중 |
제504중전차대대 | 이탈리아 페라라 근처에서 작전 중 |
제505중전차대대 | 오스트프로이센 주 에서 대대 자체가 해체됨. 보유중이었던 마지막 티거 2가 4월 15일에 격파되었음. |
제506중전차대대 | 4월 14일에 아이서론 (루르 인근)에서 해산됨 |
제507중전차대대 | 4월 11일에 오스터로데 (하르츠)에서 마지막 티거 운용이 있었음 |
제508중전차대대 | 이탈리아에 있었고 기록상 티거 2는 보유하지 않았음.[29] |
제509중전차대대 | 남부 오스트리아 세인트 폴텐와 암스테텐 사이에서 작전중 |
제510중전차대대 | 4월 18일 보드 계곡에서 해산됨 |
무장친위대 소속 제501중전차대대 | 오스트리아 에슈체나우 에서 작전중 |
무장친위대 소속 제502중전차대대 | 포르트슈텐발데 (베를린 남부) 근처에서 작전중 |
무장친위대 소속 제503중전차대대 | 베를린에서 작전중 |
두 번째로, 해당 교전이 일어났음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체도 부족하다. 티거 2와 슈퍼 퍼싱의 교전이 일어났음을 주장하는 글들은 대부분 3AD.com 또는 존 어윈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으며, 3AD.com의 게시글 또한 어윈의 자서전을 출처로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티거 2와 슈퍼 퍼싱의 교전이 일어났음을 주장하는 자료는 어윈의 증언 하나뿐이다. 또한, 슈퍼 퍼싱을 현지에서 개조한 벨톤 Y. 쿠퍼(Belton Y. Cooper)는 슈퍼 퍼싱이 판터뿐 아니라 티거 2를 상대로도 충분히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슈퍼 퍼싱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으며, 3월 30일에 벌어졌던 셔먼 열일곱 대 및 잭슨 한 대와 티거 열 대 간의 교전 또한 상세히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죽음의 덫》(Death Traps)에서 해당 교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더러, 교전 사실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만일 슈퍼 퍼싱과 티거 2 간의 교전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 해당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당 전투 이후 미군이 데사우를 점령했는데, 만일 실제로 티거 2가 격파되었다면, 아군 전차가 적의 최신예 전차를 격파했음을 알려서 홍보 가능했을 것이고, 이것을 홍보하는 데 사용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증거나 기념 형식의 사진 자료는 남길 수도 있었을 테지만 사진 자료 하나 남아 있지 않다는것은 슈퍼 퍼싱과 티거 2 간의 교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세 번째로, 해당 교전이 일어났음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신뢰성에도 많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윗 문단에서 말했듯이, 티거 2와 슈퍼 퍼싱간의 교전을 주장하는 자료는 어윈의 증언 하나뿐이다. 어윈의 증언에서, 실제 교전한 전차는 판터 또는 4호 전차였음에도, 티거 2라고 착각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윈은 45년 1월경에야 자대에 배치되어 전선에 투입된 신병이었고, 당시 미군은 독일 전차를 보면 무턱대고 티거라고 지칭하였다는 점,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베테랑이었던 오토 카리우스조차도 소련의 IS-2와 티거 2를 착각하였다는 점 등은 어윈이 적 전차가 티거 2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어윈은 히스토리의 다큐멘터리에 출현해 티거 2라고 증언했으나 인터뷰 시점보다 훨씬 젊었을 때 작성되었으며, 3AD.com에서 인용했던 어윈의 자서전인《Another River, Another Town》(또 다른 강, 또 다른 읍내)에선 자신의 슈퍼 퍼싱이 상대한 전차를 티거 2라고 서술하지 않았고, 단지 티거라고만 서술하였다는것은 참전자의 증언에서, 적 전차의 종류에 대한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오히려 나중에 더 이야깃거리가 되는 방향으로 살이 붙여져서 티거 2라고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네 번째로, 어윈의 전투 상황에 대한 증언 역시 적 전차가 티거 2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어윈은 자신의 자서전에, 적 전차에 고폭탄을 한 발 발사하고 후에 적의 차체 하단에 철갑탄을 꽂아 넣자 전차가 유폭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티거 2는 차체 측면과 포탑 후방 버슬에만 탄약을 적재하고 차체 하단 부분에는 탄약을 적재하지 않았으므로, 차체 하단에 맞은 철갑탄이 탄약을 유폭시켰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조종수 뒤편에 탄약을 적재하던 판터와 4호 전차, 포탑 바로 아래쪽에도 탄약을 적재하던 티거 1은 차체 하단을 관통한 철갑탄이 탄약을 유폭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추가적으로 판터나 티거는 4호 전차와는 달리 항상 포탑 아래쪽에 탄약을 적재하고 있던 것이 아니므로 만일 교전이 실제로 발생하였다면 적 전차는 4호 전차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를 종합해 보았을 때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과 독일 전차 사이에서 교전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허구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3기갑사단은, 데사우에서 전투에 참여한 티거 부대는 하나도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미군들이 독일 전차를 전반적으로 티거라고 불렀음을 감안하면 어윈이 자서전을 작성할 때 이전에 있었던 전투와 착각했거나, 아니면 아예 적 전차와의 전투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과 티거 2 사이에서 교전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데사우에서 전차 간 교전이 일어났다는 증언 자체가 허구거나,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과 독일 전차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는 것까지는 사실이나 그 독일 전차는 티거 2가 아닌 티거와 비슷하게 생긴 4호 전차 H형이나 티거 2와 비슷하게 생긴 판터[30]였다고 보는 것이 정황 증거상 더 가능성이 높다.
6.1.1.3. 체코슬로바키아 해방
체코슬로바키아 플젠을 해방한 미 육군 제8기갑사단의 M26 퍼싱 |
6.1.2. 태평양 전쟁
유럽전선 승리 이후 태평양 전선에서도 오키나와 전투, 일본 본토 상륙작전을 위해 투입되었다. 하지만 오키나와에선 패잔병 소탕을 위해 포격 몇 번 하다 끝나고 일본 본토 상륙은 일본이 핵 2방에 항복하여 물거품이 되었다.6.2. 6.25 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포격 지원 중인 미 육군 소속 M26 퍼싱 |
낙동강 방어선 전투 당시 T-34-85를 상대한 미 해병대 소속 M26 퍼싱을 다룬 영상 |
당시 미국에서는 소련의 IS-3같은 신형 전차들을 경계하고 있었고, 미국 육군사령부는 소련과 있을 냉전에 대비하기 위해 기갑전력 업그레이드를 계획했다. 신형 전차들의 개발 계획이 잡히기 전에 우선 미군은 보유한 M26들을 대상으로 기동성을 중심으로 성능을 강화하기로 결정하여, 차체 후방을 확장하고 신형 엔진과 변속기를 장착, 신형탄 사용이 가능한 M3A1 주포를 장비한 M46 패튼을 개발하였고 많은 퍼싱들을 M46으로 개수하기 시작했다. 다만 종전 직후의 군비 감축에 의한 예산 문제로 인하여 구동계는 손대지 못한 채 주포를 비롯한 일부 개수만 거친 M26A1도 상당수였다.
전쟁 전 이승만 대통령은 100여 대 가량의 퍼싱을 요청하였는데, 미국은 당장 셔먼은 커녕 M36 GMC나 M10 GMC, 심지어 M3 GMC같은 대전차 자주포도 줄 생각과 시간적 여유나 예산도 없었던 터라 당연히 무시당했다. 다른 말로는 당시 트루먼 정권이 호전적인 이승만 정권에게 퍼싱같은 전차를 주면 당장 남침이 아니라 역으로 북침이 일어날 거라 생각해서 안 줬다는 말도 있다. 일단 강경한 태도 때문에 공격용으로 쓸 만한 무기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다.
애초에 미군은 한반도의 지형을 보고 전차는 별로 한국에서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한국과 비슷한 지형을 가졌던 이탈리아 전역에서 고생했던 전훈[31]을 고려했던 것이긴 하지만 개전과 동시에 대전차능력이 변변찮은 상대에게 전차라는 무기체계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간과한 생각이었음이 드러났다.[32] 그 결과 T-34-85의 공세로 스미스 특임대가 전차여단을 앞세운 북한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한다. 당시 미군은 북한 T-34에 대해 일본에 배치해둔 M24 채피 경전차로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고 채피들이 T-34에게 신나게 박살나자 셔먼뿐만 아니라 퍼싱도 필요하게 되었다. 당시 미군 기갑부대가 흐트러진 상황이라 미군은 기지에 기념물로 둔 퍼싱까지 다시 재생해서 쓰는 난리법석을 떨게 된다.
흔히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M24 채피가 성능이 부족하여 초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였다고 평하는데, 이에 대하여 채피에 대한 변론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채피의 성능은 당대 전차들과 비교하여도 절대로 낮은 성능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시대의 경전차들 중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전차였으며, 불과 겨우 5년전인 2차 세계 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자기보다 상위 체급인 4호 전차를 역으로 부수고 다니는 정도였다. T-34-85와 성능적인 비교를 하자면 T-34가 채피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오직 화력과 장갑뿐인 수준이다. 물론 전차에게 있어서 화력과 방어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어찌하여 T-34-85에게 쓸려나가게 되었는가 하면 우선 주일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장갑이 약한 대신 기동성이 뛰어난 우회전술 및 정찰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전차의 특수한 지위를 무시하고 상위 체급의 전차와 전면전으로 나선다는 전술을 구사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사용하는 탄종의 문제점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위에서 설명하였듯 교육이 부족하였기에 대전차전에서 대전차용인 철갑탄이 아닌 대인용 내지는 축성진지 파괴용 고폭탄을 사용하는 등의 문제점을 보였으며,[33] 결국 체급의 무시와 교육의 부족으로 인한 참극이라 논할 수 있을 것으로, 조금만 더 시간이 있어서 전술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었더라면 오히려 북한군을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참 아쉬울 따름.
이렇게 급하게 재생하여 한국으로 보내 배치된 퍼싱은 3대로 T-34에게 속절없이 털리던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의 희망이었으나 곧 북한군에게 털려서 모두 노획되었고 뒤이어 배치된 M4 셔먼도 주행을 시작하자 곧 엔진에서 연기가 나는 등 초기 UN군의 기갑병기는 쇠퇴 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한국전에 300대가 배치되었으며 T-34를 상대로 강력한 위력을 보여줬다. 의외로 초기에 미군들은 소 잡는 칼인 퍼싱보다 닭 잡는 칼인 이지에잇 셔먼(M4A3E8)을 선호했다. 일단 이지에잇 셔먼도 HVAP 철갑탄을 충분히 지급받았기에 T-34와의 교전에서 선제탄을 쏜다면 불리하지 않았고, 당시 퍼싱을 지급받은 승무원들 대부분이 훈련소에서 셔먼으로 교육을 받은 상태라 조종성이 너무 좋은 퍼싱에 적응하지 못해 사고가 속출한 것, 그리고 40톤을 넘는 중량에는 상당히 부족한 편인 500마력대 엔진 때문에 한국 지형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셔먼의 고폭탄 화력 부족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90mm 포를 탑재한 퍼싱의 인기가 더 높아졌고, 더욱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M46 패튼에 이르러서는 잠정생산 전차임에도 불구하고 셔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기동성을 발휘하여 승무원들의 인기를 누렸다. 최초 기갑전은 다부동 전투에서 치러졌으며 여기서 북쪽에서 남하하던 북한군 T-34 떼를 가로막고 격파에 성공하여 더이상 전차를 이용한 공세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다.
M26의 이런 활약 덕분에 명예 훈장 수훈자도 생기는데, 어니스트 R. 코우마 상사의 사례가 그것으로, 1950년 8월 31일 낙동강 전선에서 호위하는 보병도 없이 단 한 대의 M26 퍼싱으로[34] 길을 틀어막고 500명의 북한군을 상대로 9시간 동안 버텨내었는데 북한군이 전차에 들러붙자 포탑과 포신을 돌려 북한군을 쳐서 떨어뜨리는 상황까지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약 250명의 북한군이 단 한대의 전차에 도륙당했고 코우마 상사는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전차 승무원으로선 최초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반대로 손쉽게 격파당한 사례도 있는데, 1950년 9월 15일 두곡리에서 미 해병대 소속 M26 퍼싱 한 대가 T-34-85 두 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격파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M26 퍼싱은 한국전쟁 기간의 작전 중 약 32%를 담당하였으며 최소 97대의 T-34 전차를 격파하였다.
북한강을 도하중인 M45 퍼싱 |
전차호에 언덕을 쌓고 그 위로 올라가 포격을 가하는 M26 퍼싱의 기록 영상[35] |
초기부터 엔진과 구동계에 문제점이 지적되었는데, 조종계통 자체는 우수한 편이었지만 M4A3의 포드 GAA엔진을 개량한 포드 GAF 엔진의 출력이 500마력에 불과한 것이 문제였다. 판터와 비슷한 중량에 출력이 200마력 딸리는데 최고속도는 판터와 비슷하게 조정되었으니 당연히 엔진과 구동계통 전반에 무리가 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량형 차량이 냉전시기 미군과 서방 세계 주력 전차로 활약한 패튼 패밀리의 원조 M46 패튼이며 M46도 M26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다. 또한 중전차로 억지 변경되었던 것 역시 1946년 1월에 다시 중형전차로 조정되었으며, 제한적인 개수를 거친 M26A1이 미 육군 및 해병대에서 운용되었다.
그러나 일단 부족한 엔진 출력 등의 과도기적인 측면이 많아 한국전쟁에 투입된 차량 중에서 미군이 사용하던 전차는 모두 1951년까지 철수했지만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 의하면 미군이 사용하던 전차의 일부는 M46 패튼과 함께 남아서 대한민국 국군에게 공여되었다고 한다. 특히 M26 퍼싱의 개량형이자 1세대 전차인 M46 패튼의 경우 1961년 6월에 제작된 대한뉴스 316호에서 등장한다. 물론 철수한 퍼싱의 경우 그 즉시 M46 패튼으로 대체되었다. 미 육군 정규군에서의 공식적인 퇴역은 1952년이었고, 퇴역 장비는 즉각 외국에 공여되었다.
7. 운용국
7.1. 아메리카
7.1.1. 미국
텍사스 군사 박물관 소장 미 육군 소속 M26 퍼싱 |
7.2. 유럽
7.2.1.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 소장 영국 육군 소속 M26 퍼싱 |
7.2.2. 벨기에
1944년 겨울 박물관 소장 벨기에 육군 소속 M26 퍼싱 |
7.2.3. 이탈리아
돈 카밀로 박물관 소장 이탈리아 육군 소속 M26 퍼싱[36] |
7.2.4. 프랑스
소뮤아 기갑 박물관 소장 M26A1 퍼싱 |
7.2.5. 소련
우랄 전투 영광 군사 박물관 소장 M26 퍼싱 |
소련은 1000대의 퍼싱을 요구했으나 단 1대의 T26E3만이 랜드리스 되었다. 원문 해당 퍼싱은 노획한 티거 1에 발사사격등의 실험후 레닌그라드로 보내졌으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전쟁 당시 노획된 M26과 M46이 소련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참고로 공산군이 격파해서 노획한건 아니고 미군 전차 승무원들이 밀려나는 전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방치한 것을 주워간 것이다.
7.3. 아시아
7.3.1. 북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소장 조선인민군 노획 M26[37] |
7.3.2. 중국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소장 중국 인민지원군 노획 M26A1 퍼싱 |
8. 평가
티거, 판터의 대항마.[38] 그리고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입장으로는 한국전쟁 초기부터 혼란스러웠던 UN군에게 후반부터 늘어가는 소련제 중전차인 IS-2의 위협으로부터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차[39]가 됨과 동시에 IS-2 등장 이전까지 한반도를 통틀어 최강의 기갑차량이었다. 중공군의 참전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온 IS-2에 의해 한반도 최강의 기갑차량의 자리를 양분당하게 되었으나,[40] IS-2가 UN군 지상부대와 접촉한 빈도 자체가 그리 높지 않았다. 큰 손실을 입고있던 셔먼을 그냥 놔둘 수 없으니 개발했지만 각종 실책과 삽질과 여러가지 악수가 겹친 끝에 배치가 엄청나게 늦고 말았는데 이미 퍼싱 전차의 개발목적인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완전히 소모가 되어가는 와중이었다. 늦게 배치되어도 너무나도 늦게 배치되었던 것이다.퍼싱은 전쟁 후반기 유럽전선에 310대가 배치되었고, 목표했던 티거 중전차와 대등 이상의 교전을 치러내며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펼쳤으나 너무 늦게 투입되었던 탓에 커다란 전과는 세우지 못하고 종전을 맞았다. 대신 이후 6.25 전쟁에서나마 활약했다.
그러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끝끝내 발목을 잡았고[41], 전쟁이 끝나고 맞수들이 사라지자 종전 이후의 군비 축소 열풍속에서도 빠르게 M46 패튼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많은 M26/M26A1이 공장 오버홀을 통해 M46으로 개수되었고, 개수되지 않은 차량들은 퇴역했다.
허나 비록 사용된 기간이 짧기는 했지만, 냉전 초기에 개발된 M46 패튼, M47 패튼, M48 패튼과 진정한 미국형 MBT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M60 전차같이 거의 반세기 동안 사용되는 미군 주력/중형 전차[42]계열의 시초이자 토대를 만들어놓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꾸준한 개량만으로 계속 쓰일 수 있을 만큼 기본 설계 자체는 충분히 우수한 셈. 대표적인 것은 미국의 리턴롤러와 토션바 서스펜션은 여기서 시작했다. 곁다리로 퍼진 건 T21에서 시작한 M24 채피와 M18 헬캣이 있지만 주력전차는 퍼싱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화력이나 방어력은 당대 최상급중 하나였다. 88mm를 장비한 티거 전차나 85mm를 장비한 T-34-85보다 화력으로도 앞서고, T-34-85의 경우 6.25 전쟁에서 퍼싱이 큰 피해 없이 T-34를 파괴하고 다녔다.
워게이밍의 전 부사장[43]인 SerB는 판터가 아닌 퍼싱이 최초의 MBT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는 성능보다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44] 판터는 무게가 중전차급이지만 화력은 75mm 포를 장착하는 데 그쳤고, 전면 방어력은 우수하지만 티거를 포함한 당시 독일 중전차들과 비교해도 측면이 훨씬 약하기에 혼자 중전차 중형전차 역할을 모조리 책임지는 현대 주력전차의 개념과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퍼싱은 당시 기준으로 막강한 방호력과 주포를 가졌으며 중형전차급의 기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9. 미디어
2차세계대전에서 중전차급 포지션인 미군전차이지만 의외로 매체에 등장이 적다. 그 이유는 배치년도가 전쟁 말기인 1945년 초였기 때문. 따라서 고증을 중시하는 상당수의 전략게임에서는 미국은 다른 진영[45]과 달리 중전차가 없어 중전차의 역할인 탱킹과 강력한 화력을 M4 셔먼으로만 매꿔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자주 발생[46]한다.[47]9.1. 게임
9.1.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9.1.1.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 등장한 미육군 소속 M26 퍼싱 |
블리츠크리그 모드에서는 파생형인 슈퍼퍼싱과 함께 미군 기갑중대의 중전차로 등장한다. 일반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와는 다르게 미군 기갑중대를 선택하면 전차공장에서 뽑을 수 있다. 보유 가능 수량은 제한이 없으며 100mm 이상의 장갑과 잭슨의 90mm 주포로 무장한 퍼싱은 티거도 1v1로 쉽게 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블리츠크리그 모드의 독일군의 최종티어 전차 티거 2는 파생형인 슈싱과는 다르게 쉽게 못 잡는다. 또한 슈퍼 퍼싱도 등장하는데, 미군 기갑중대를 선택했을 시에만 등장하며 보유 가능 수량은 단 1대, 그것도 한 전장에서 단 1대만 부를 수 있다. [48]
하지만 슈퍼퍼싱은 독일군의 티거 2와는 다르게 한 전장에서 단 1대만 부를 수 있는 대신, 강한 화력의 압도적인 위력은 제대로 발휘한다. 블리츠크리그 모드의 어느 전차보다 긴 사거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독일군의 티거와 티거 2마저 일격에 박살, 혹은 주포나 엔진을 격파할 수 있는 길고 아름다운 90mm/L73 구경장 장포신 주포의 정당한 화력을 지녔다. 장전속도는 실차량이 일체형/분리형 탄을 쓴걸 고증하여 길지만 마스터를 찍으면 5초당 1발의 장전속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티거 2와는 다르게 장갑이 퍼싱과 비슷해 판저파우스트나 티거의 주포에 종종 뚫리곤 한다. 즉 긴 사거리로 먼저 발견해서 초탄으로 장거리 저격을 가해 일격에 박살을 내버리고 튀는 미국식 대전차자주포 느낌의 운용방식으로 공략가능하다. 라인을 뚫어내는 용도로 쓴다면 50cal 기관총 업그레이드도 없고, 고폭탄 스킬도 없기 때문에 보병 억제력이 거의 없으며, 포신이 길고 속도도 느리고 굼뜨며 포탑 반응속도가 늦어 헤처 등의 기동전술에 측면을 공략당할 수 있으니 '크로커다일', 50cal 업을 마친 M4A3(76)W 셔먼 등을 호위로 붙여주면서 천년 조이기식으로 가는 편이 좋다. 같은 숫자의 전차끼리 붙는다면 뒤에서 한 방으로 하나씩 추축군 전차를 갈아버리는 슈퍼퍼싱을 보유한 연합군쪽이 압도적으로 교환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추축군에 계속 손해를 강요할 수가 있다.
9.1.1.2.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 등장한 미육군 소속 M26 퍼싱 |
9.1.2. 워스토리
미군 중전차로 등장하며 35캐시에 판매중이다. 문제는 독일군 캐쉬템중 하나인 킹타이거와 동급의 괴수다 사실 이건 고증오류가 아닌 벨런스상의 문제다. 회피하난 잘하는 놈이니 PVP나 미션에 자주끌고나가주면 좋다.9.1.3. 맨 오브 워 시리즈
맨 오브 워 , 후속작인 어설트 스쿼드 1/2, Men of War II: Arena에서 미군 진영의 중전차 유닛으로 등장하며, 맨 오브 워에서는 T29 중전차가 미군의 최종 전차유닛이자 스페셜 유닛으로 등장했으나, 어설트 스쿼드 1/2부터 T26E4-1 슈퍼 퍼싱으로 바뀌었다. 슈퍼 퍼싱은 어설트 스쿼드 1에서는 차체와 포방패 전면에 증가장갑이 없었으나, 어설트 스쿼드 2에서부터 증가장갑이 추가되어 방어력이 상승했다.Gates of Hell에서도 퍼싱과 슈퍼 퍼싱이 미군 DLC 중전차/스페셜 유닛으로 등장한다. 고증대로 장거리에서 타이거까지 전부 한방에 저격이 가능하며 처치 가능하지만, 판터에게는 잘못하면 뚫릴 수도 있고 티거2나 야크트판터, 야크트티거 등은 측면을 노려야 하며, 죽이기도 어렵고 순식간에 격파당한다. 일반 퍼싱은 판터보다 살짝 좋은 수준의 유닛이고 슈퍼 퍼싱은 티거2보다 살짝 부족한 수준의 유닛이다.
9.1.4. Tanktastic
Tanktastic의 M26 퍼싱 |
9.1.5.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의 M26 퍼싱 |
9.1.6. 강철의 왈츠
3성중형전차인 헬레나 퍼싱으로 등장하는데 프로필을 보면 웨스트포인트 교관이라고 나와있다.그외 파생형들은 중전차로 등장한다.
9.1.7. 소녀전선
인형소극장 치유편 3화에서 T99 칼리오페 로켓발사대 탑재형 잔해로 지나가는 씬에서 출현한다. # 재밌는 점은 소녀전선 배경은 동유럽이고, 3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2060년대이다.9.1.8. 워 썬더
M26 | M26 "D.C.Ariete |
M26E1 | M26A1 |
M26 T99 | T26E1-1 |
T26E5 |
미 지상군 4랭크를 먹여살리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있었다. 지속된 너프와 버프의 반복으로 1.63패치 현재 BR6.3으로 T-44, 킹타이거(p)와 같은 BR을 가진다. 과거에는 미국 트리에서 4랭크에 제대로 된 전차가 퍼싱을 포함해서 몇 없었으나 계속된 패치로 여러 전차가 추가되며 퍼싱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6.0~6.7 미국 유저 중 퍼싱을 타는 유저의 수가 적다. 퍼싱 말고도 탈 만한 다른 전차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불독, T92, M56 스콜피온, T25, T34, T28, T95등등 해당 BR에서 미국 유저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전차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퍼싱의 스펙은 BR6.3에서도 영 좋지 않은 축에 속한다. 공수주 모두 최악의 전차이다. 장갑은 포탑이든 차체든 맞으면 뚫린다. 특히 BR6.3 특성상 6.7방에 무조건 끌려가는데 소련과 독일은 122mm와 100mm, 88mm L/71을 들고 다닌다. 6.3방에서도 122mm과 88/71을 가지고 다니는 전차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퍼싱이 장갑으로 뭘 해볼수가 없다.
90mm M3 주포는 워썬더에서 특출나게 구리다고 평가 받는 주포이다. 기본탄인 관통력 188mm의 AP로 판터나 IS-2 초기형을 상대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딱 그 이상을 할 수 없다. AP는 생철갑이기에 파편 생성량이 적은편이고 6.7에 넘쳐나는 킹타이거와 판터 2, IS-2 44년식, T-44 시리즈를 상대하는데 무리가 있다. 게다가 언락해서 쓰는 APCR은 이 게임 최악의 쓰레기 탄종이라 써먹을수가 없다. 그렇다고 측면을 잡고 164mm의 APCBC로 줘패자니 퍼싱의 포탑회전속도와 주포 부앙속도는 미국 중형전차중 최악인 수준이다. 게다가 연사마저도 88mm L/71보다 느리다.
기동성은 당연히 몹시 굼뜨다. 같은 BR의 중형전차들 보다 나은점이 없다.
퍼싱전에 연구하는 중형전차인 T25는 퍼싱에 비해 장갑이 약하지만 적절한 기동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같은 90mm M3을 사용하기 때문에 퍼싱보다 훨씬 즐겁게 탈 수 있다.
과거에 이지에잇과 함께 4랭크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MM에서 랭크가 빠진 지금은 이지에잇과 엮일 일이 거의 없다.
1.57 패치로 미국의 강습전차-중전차 라인에 T26E4-1(T26E1-1) 슈퍼 퍼싱이 추가 되었다. BR은 6.7로 점보 셔먼(76)W(BR 6.3)과 T32(BR 7.3) 사이의 머나만 차이를 메워줄 중전차의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미국의 4티어 중전차의 부재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다. 증가장갑은 동티어 중전차의 탄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수준이지만 6.7의 BR로 인해 성형작약탄에 무력화 되기 쉽고, 기동은 굼떠졌음으로 상위BR의 매칭이 잡히면 정말 할게 없다. 또한 포탑 좌측의 준비탄 가대에는 항상 예비탄이 있는데 이 탄약고는 정면에서 타격이 가능하고, 그곳을 보호하는 포탑장갑은 퍼싱과 달라진점이 없는 150mm 대의 물리탄 방호를 재공하기에 일격에 폭사하기 딱 좋다.
또한 포방패 윗쪽의 보강되지 못한 부분과 옆동네 게임에서 김밥 두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2연식 코일 스프링 고저장치에 작약탄이 터져도 포탑인원 몰살과 더불어 이 탄약고가 터지며 죽거나, 고저장치가 박살나 포신 부양각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이부분을 가리고 반대편을 내밀면 똑같은 약점에 차체 기관총구까지 노출된다. 헐다운을 한다면 전차장 해치나 장전수 해치, 기존의 퍼싱 포탑이 노출된 부분에서 작약탄이 폭발해 죽는경우도 있다.
길어진 탄약 대비 포탑 용적은 변화가 없기에 기본 장전속도 또한 15초대로 느린편. 여러모로 훌륭한 동시에 부족한 점이 두드러져 아쉬운 7.3BR대 장비.
M26E1이라는 M26에 90mm 73구경장 T15E2 장포신 고속 주포를 장착한 버전과 T99 로켓런처를 장착한 버전의 두 종이 프리미엄 전차로 등장한다. 다만 M26 T99는 가격대비 성능은 오히려 더 안 좋다는 평이 많다. 심지어 BR대비 로켓의 성능도 칼리오페보다 안 좋다는 평까지 듣는다.
하지만 2021년 현재 퍼싱전에 나오는 T25는 최근 BR로 인하여 6.3으로 올라 퍼싱과 동 BR을 가지게 되었다. 그거 탈바엔 그냥 퍼싱타는게 낫다.
2021년 10월 Ground Breaking 업데이트로 T26E5 점보 퍼싱이 점보셔먼(76)과 슈퍼퍼싱 사이에 추가되었다.
9.1.9. 월드 오브 탱크
M26 퍼싱 |
M26의 경우 미국 특유의 좋은 부앙각 수치에 기동력, 명중률은 나쁘지 않고, 줌 속도도 좋은 편이지만 90mm의 데미지가 조금 약해 저지력은 약간 부족한편.[49] 장전속도도 승무원 100% 찍으면 7초대로 준수한 편이다. 포탑 전면장갑은 수치상으론 얇지만 포방패가 전면 대부분을 덮고 있기 때문에 실제 방어력은 높은 수준이다. 다만 미국 특유의 하체부실은 여전하다. 옆구리는 2티어 낮은 탱크들에게도 뚫리는 편이다. 뭔가 딱히 특출난건 없지만 그렇다고 나사하나 빠진듯한 성능은 아니라 명품전차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고증에 맞지 않게 M46 패튼의 704마력 엔진을 쓰고, 최대속도가 고증보다 8km/h 더 높은 48km/h에 최종포는 90mm T15E1보다 좋은 허구의 포이며, 이 포를 달면 슈퍼퍼싱과 같이 밸런스 웨이트를 후방에 달아야 하는데 그조차도 없고, 최종 포탑의 형태는 105mm 보병 지원용 단포신 주포를 단 M45 전차의 포탑이다. 단. 후면 방어력은 고증에 어긋나게 76.2밀리에서 63.5밀리로 얇아진다. M45 전차의 포탑이 최종 포탑이라 105밀리를 이상하게 최종 포탑에만 쓸 수 있는 것이다.
9.0 이전에는 포탑을 업그레이드 하면 미국 중형 전차중에서 가장 높은 포탑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후의 전차들은 퍼싱보다 떨어졌으나 1.0인 2018년 3월 기준으론 오히려 9튼, 10튼의 포탑 방어력이 강화돼 퍼싱이 훨씬 낮아졌다. 이 이유는 퍼싱은 HD를 받으면서 포방패 뒤의 장갑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이전보다 방어력이 약해져서 그 차이가 더욱 커졌다.
T25E4 슈퍼 퍼싱 |
8티어 미듐 중에선 슈퍼 퍼싱과 더불어 고속철갑탄이 258(슈퍼 퍼싱), 268로 굉장히 상위권이라서 8탑방만 가도 퍼싱의 골크탄으로 뚫지 못하는 것은 손에 꼽고, 10탑방에서도 이빨이 조금 먹히는 수준이다. 슈퍼퍼싱의 경우 9탑방까지만 가서 그보다 압박이 덜하다.
T26E5 점보 퍼싱이 프리미엄 8티어 중전차로 나온다.
9.2. 소설
9.2.1. 별이 펄럭일 때
파생형인 T26E4-1 슈퍼퍼싱과 함께 원래 역사보다 일찍 등장하는데, 그 이유가 레슬리 맥네어 를 필두로 한 퍼싱 반대파들이 이 소설판 아오지 탄광인 알래스카에 다녀와서. 레슬리가 반대한 건 대구경포 장갑 차량이고 퍼싱 자체는 신뢰성 문제로 개발이 느려진 건 사실이지만 레슬리 멕네어를 대표로 한 세력이 싹 숙청당했다면 전차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좀 더 빨리 이뤄질 순 있었을 것이다.9.3. 만화
9.3.1. 걸즈 앤 판처
걸즈 앤 판처의 M26 퍼싱 |
극장판에서 대학 선발팀의 중대장들인 아즈미와 메구미, 그리고 루미의 지휘 전차 및 주전력으로 등장. 2차 세계대전 후반에 등장해 미국 최강의 중전차라고 봐도 손색이 없는 이 전차가 24량이나 등장한다. 나머지는 시마다 아리스의 대대장 지휘전차인 센추리온 전차, T28, 600mm 자주박격포 칼, 정찰용 M24 채피 3량. 현립 오아라이 여학원은 88mm급이 포르셰 티거에 증원군으로 도착한 다른 학교 팀을 합쳐도 쿠로모리미네 여학원의 6호 전차 티거, 티거 2 정도가 대등한 화력을 갖췄을 뿐이다. 역사상의 활약을 보면 프라우다 고교의 T-34-85가 있긴 하지만 이건 역으로 털린 게 더 많고, 구경만 보면 프라우다 고교의 KV-2와 IS-2가 있긴 하지만 장전속도가... 덕분에 칼의 화력을 등에 업고 평야 전투에서는 오아라이를 밀어붙이지만, 칼 자주박격포의 포격을 받고 후퇴하는 프라우다 고교 대열을 쫓을 때 논나의 IS-2에 2량이 격파된 후 연합팀이 칼을 발견했을 땐 칼이 89식 중전차와 CV-33의 어시스트를 받은 헤처에게 털리는 중에 BT-42에 무려 2량이 털리며 칼도 1팀킬을 한다. 그 후 전장이 유원지로 옮겨진 후 유원지 정문 고스펙 전차들의 합동작전, 집오리팀과 치하탄 학원의 유격전, 하마팀의 위장술, 안초비의 정보, 레오폰팀의 EPS, 미호와 마호의 연계 플레이 등 각종 신묘한 전술에 의해 털린 끝에 전멸당한다.
10. 모형
10.1. 프라모델
10.1.1. 드래곤 모델
1994년에 발매되었다.10.1.2. 타미야 모형
2002년 제품으로, 일부 파츠를 추가하여 슈퍼 퍼싱으로도 발매되었다.10.1.3. 하비보스
2009년에 발매되었다. 타미야와 마찬가지로 슈퍼 퍼싱 제품군들로도 출시되었으며 초기형/중기형/후기형 세 가지로 나뉜다. 포방패와 포탑 측면 공간장갑+후면 무게추+차체 전면 공간장갑이 장착된 초기형을 모형화시킨 T26E4 Super Pershing Pilot 1은 월드 오브 탱크의 슈퍼 퍼싱과 가장 비슷하게 생겼으니 혹시 월탱 버전 슈퍼 퍼싱을 원한다면 이쪽을 추천한다. Pilot 2는 후면 무게추+고저장치 스프링만 있는 버전이고, Pilot 3은 타미야의 슈퍼 퍼싱 형식과 같다.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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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관련 문서
[1] 수동변속기 한정이며, 파워팩 자체는 퍼싱의 개발 단계에서 나온 T20부터 적용해왔다. 파워팩은 이후 서방권 전차 설계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자동 변속기 형식의 파워팩은 T29 계열과 T32에서 시작해 M46 패튼으로 이어진다. 자세히 것은 링크와 T32 항목 참고. 참고로 엔진과 변속기가 결합된 형태는 사실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발명가인 크리스티가 먼저 만들었다. 이후 크리스티의 설계가 소련에 팔려가서 BT 전차 시리즈의 설계에 쓰였으며, BT 전차에서 시작한 기초 설계는 이후 T-34의 설계에도 쓰였다. 다만 정비를 위해서는 이후 나온 서방의 파워팩 설계과는 달리 후면장갑을 들어내던지 엔진과 변속기를 먼저 분리한 다음에 따로 들어내야 했다. 차체 설계를 상당히 뜯어고친 T-44부터는 이 문제가 없었다.[2] 이탈리아 한정. 미국에서는 1952년 퇴역하였다.[3] 2차대전 후에 제너럴 모터스의 엔진으로 교체한 개량형도 나왔지만 파워팩의 변경으로 차체 후방이 조금 바뀌면서 다른 전차로 분류 되었다.[4] 포탑 후방 대공용 마운트.[5] 공축기관총 및 보조 조종수용 볼마운트.[6] 실제로 나치 독일군은 (티거 하면 가장 많이 유명한) 티거 1을 뛰어넘는 티거 2와 야크트티거, 야크트판터와 같은 티거 1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 가는 전차들을 배치한 적 있었고, 간단히 말해 당시 미군 주력전차 계열들에게 있어 티거나 판터는 주력전차(내지는 주 전력)끼리의 1:1 비교에서 1차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최초 통과점이었지, 최종 통과점은 아니었던 것.[7] 미군은 이미 구형 D50878 포탑에 76mm M1 전차포를 장착한 형식인 M4A1(76)W를 개발했지만, 포탑 용적이 지나치게 작아서 전투 효율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고는 다시 75mm포를 장착해서 사용했다. (Zaloga, S., Laurier, J., M4(76mm) Sherman Medium Tank 1943-65, 2013, p.3-7) 그런 작은 포탑에 76mm M1보다 포미가 훨씬 큰 17파운더를 장착했으니 미군은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8] 가장 먼저 만들어진 중전차 개념이 적용된 M6, M26 퍼싱과 T29, T30, T34 차체와 중간에 해당하는 T32, 그리고 티거 2와 같은 전차를 교전하기로 상정한 T29. T30, T34, 초중전차 T28이 있다. 이 중 M6만이 제식 생산되었으나 퍼레이드와 90mm와 105mm 포를 장비 및 T29의 시제 포탑 시험기로 썼고, 나머지 또한 시험 용도로만 썼다. 이 중에서 T29, T30, T32, T34는 크로스 드라이브 변속기가 적용된 파워팩 시험을 진행하여 M46 패튼부터 시작된 미국의 자동변속기 적용 파워팩 개발 데이터로 쓰였다.[9] 실제로 단순히 전비중량만 비교해보면 동시대의 독일 국방군 중형전차인 판터와 엇비슷하며, 오히려 몇톤 더 가볍다.[10] 워게이밍 고증 자문 니콜라스 모런은 TankFest Northwest 2015에서 퍼싱의 기계적 결함과 중량, 신뢰성 문제가 있어 배치가 지연되었다고 주장했다. 퍼싱 전차가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문제인 엔진의 출력과 신뢰성은 결국 한국 전쟁에서 발목을 잡아 M4A3E8 셔먼의 재등장과 M46 패튼의 배치를 초래한다.[11] 완성되면 셔먼을 대체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대전에는 너무 등장이 늦어서 대체하지 못하고 같이 사용하며 셔먼을 중형전차, 퍼싱을 중전차로 분류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셔먼과 같은 중형전차로 강등하였고, 한국 전쟁 발발시기에는 원칙상 모든 전차는 퍼싱으로 대체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져있는 미군의 전차를 대체할 수 없었고, 본토는 M46 패튼이 완성되어 배치되고 있었다.[12] 6.25 전쟁 기간 전차에게는 최악의 지형이였던 한반도에서 가벼운 셔먼보다 퍼싱이 인기있던 것은 한국전이 초기를 지나면서 참호전과 같은 양상으로 회귀함에 따라 76mm의 고폭탄 화력 부족이 큰 이유중 하나였다.[13] 트라이던트 회담이 1943년 5월 25일에 끝나고 작전 실행 일자가 결정된 직 후 6월부터 셔먼의 업건 준비에 들어감[14] 실제로 전간기 대공황으로 군 예산은 매우 감축되었으며, 바다로 둘러쌓인 해양 대륙국가인 미국의 특성상 육군, 특히 기갑병과에 대한 예산은 최우선 감축 대상이었다. 1939년 미국 전차개발부서에의 일년 예산은 $85,000였다고 하며, 이는 1945년 셔먼의 가격이 $44,556–64,455였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매우 적었다.[15] Zaloga 2008, Armored Thunderbolt p. 46–48, 120–125[16] 전쟁이 끝난 뒤 10년 후 미국은 자신이 최강국이라는 이유로 현실에 잠시 안주했다가 스푸트니크 쇼크로 소련에게 호되게 얻어맞는다. 이후 미국은 타 국의 기술적 우위를 인지하여 DARPA를 비롯한 연구 기관을 창설했고, 타 국가의 기술적인 역량을 파악하고 전 분야에서 최소 한 세대 이상 앞서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R&D에 목숨을 건다.[17] Ibid.[18] 문제는 그 나머지에 판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19] 밑에 임시로 덮인 전차병의 시신이 보인다.[20] 중대원 1/3이 전사했다고 생각해보면 된다. 이 정도 손실이면 사실상 전투불능이다.[21] T26E1과 비교해서 외형상 큰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주포에 이중 포구제퇴기가 추가되었으며, 포탑도 부분적으로 수정되어 지붕에 환풍기가 생기고, 장전수 해치가 달라지고 그 앞에 관측창이 추가되는 것 등의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 외에도 포가 부품이 기존 T99E1 형식에서 개선된 T99E2 형식으로 바뀌었고 90mm 탄약 적재량도 T26E1의 42발에서 70발로 늘어났다.[22] 포탄 전장이 약 50인치 정도로 너무 긴 나머지 장전 도중에 포탑링에 끼는 문제가 발견되었으며 사진이 남아있다.[23] 정확히는 10대 만들어진 T26E1(퍼싱의 프로토타입)중에서도 첫 번째 차량으로 만들었다. 만들어질 당시 T26E1의 첫번째 차량이라는 점에서 포탑 측면에 T26E1-1이 적혀있었다.[24] 화력이 더 강해진 고위력 주포의 반동을 버티기 위한 용도도 있었다.[25] 철판 두장은 포방패를 보호하는 공간장갑 효과도 냈다.[26] 25초나 3분 18초 등에서 쾰른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2분 24초 탈출하는 셔먼 전차장의 다리가 잘려나갔다.[27] 위스콘신 주 출신 "칼 케르너" 전차장이 몰던 전차였다. 후술하는 탈출 도중 다리가 절단된 사람으로, 과다출혈로 사망.[28] 비록 실루엣만 비교하면 판터와 퍼싱은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두 전차 모두 전면에 경사장갑을 채용했고 장포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는 충분히 범할 수 있는 오류였다.[29] 이 대대는 최악의 졸전(...) 기록으로도 유명하다.[30] 실제로 많은 미군들이 판터를 티거 2로 오해를 자주 했다고 한다. 만약 어윈이 적 전차를 데사우에서 조우했고, 그것이 티거 2라고 식별했다는게 사실이라면 판터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다.[31] 이탈리아 전선에서 티거와 판터는 위용을 뽐내던 동부전선과 다르게 험준한 이탈리아의 산악과 언덕을 오르다 엔진이 과부하를 견뎌내질 못해 퍼져서 유기되는 추태를 보일 정도였다. 오히려 가벼운 나스호른이나 Mk.I 아처같은 대전차 자주포나 중량이 많이 나감에도 1차대전 시절의 참호전을 고려해 접지 면적이 매우 넓은 궤도를 가진 처칠 전차가 상상도 못할 고지로 올라가서 상대를 격파하는 기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군이 안일했으며 49년에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가져간 M18 헬캣이나 M7 프리스트를 두고 갔어야 했다.[32] 사실 한반도가 산악 지형이 많기는 하지만 산과 산 사이에는 상당 규모의 기갑 세력이 기동할 만한 지형이 있다. 사단급은 무리라도 연대 내지는 여단급이 전투를 벌이기는 충분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군도 여태 기갑사단은 만들지 않으면서도 대규모의 전차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33] 이는 북한군도 마찬가지여서 대전차전에서 고폭탄을 사용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과는 다르게 북한군이 사용한 포의 화력은 구경이 10mm가 더 큰 85mm였으며 경전차인 채피는 경사도에 의존하는, 두께 자체는 매우 얇은 장갑을 가졌으므로 대구경 고폭탄에 취약했다.[34] 원래는 두 대였으나 한 대는 고장나 쓸 수가 없었다.[35] 낙동강 전선에서 촬영된 영상이다.[36] 머즐브레이크가 변경된 차량이다.[37] 6.25 당시 미군이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하면서 유기한 것을 북한군이 노획한 것. '미제침략군 중땅크《M26》','주체 40 (1951)년 4월 인민군부대들이 린제-차평리 일대에서 적을 포위섬멸하고 노획한 땅크.'이라고 적혀있다. 북한 정권은 미국과 이 전차를 모욕하기 위해 미 제국주의 침략군의 중전차라 표현한 것도 모자라서 격파된 전차마냥 주포 고각을 최대한 내려놓았다. 다른 북한 전차는 전부 주포가 위로 올라가 있다.[38]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서는 중전차로서 퍼싱에 대하여 'Ameria's answer to the Tiger'라고 이야기하고 있다.[39] 실제로도 중공군이 IS-2를 끌고오기 이전까지 퍼싱은 공산군 내 최강의 전차였던 T-34-85를 영국군 및 영연방군의 센추리온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우세한 화력으로 격파했다. 개전 초기의 대한민국 국군에게 있어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공군력의 야크기도 아닌 T-34 전차였다.[40] 사실 IS-2는 포탑 전면이 100mm에 불과해 그냥 포탑에 90mm 한 대 갈기면 폐차였다.[41] 퍼싱이 개발된 이유가 역시 신뢰성 문제로 고생하고 있던 티거, 판터를 잡으려는 것임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독일 중전차의 대항마를 만들었더니 독일 중전차의 결함까지 베낀 셈이다. 사실 이는 중전차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해서 소련의 KV/IS 전차들 역시 신뢰성 문제가 심했다.[42] M60 이전 전차들은 개발 당시 주력 전차가 아닌 중형 전차로 분류가 됐긴 했지만 여러모로 보았을 때 주력전차가 맞기는 하다.[4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하여 러시아 옹호 논란으로 퇴사했다.[44] 힐멜스식 전차 세대 구분법이 나온 뒤에 미국의 1세대 MBT로 평가되는 M46 패튼과 M46을 기반으로 개발된 M47 패튼도 기본적으로 퍼싱의 차체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45] 소련의 KV-1이나 IS-2, 독일의 6호 전차 티거나 티거 2, 영국의 처칠 전차.[46] 대표적으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47] 점보 셔먼이 등장하면 그나마 나은 경우겠지만, 대다수 미디어에서는 기본형만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48] 자원은 맨파워만 1900을 요구한다. 연료 지역을 점령하지 못했지만 맨파워 지역은 사수하는데 성공했거나, 강력한 비대칭전력이 요구될 때 탱크와 보병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맨파워 소모를 줄여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맵이 좁거나 전선 형성이 어렵다면 난타전에 쓸 셔먼 펌핑+모래주머니 업그레이드에 우선순위를 두는게 좋고, 반대로 전선 형성이 쉽게 되는 다리 맵 등이라면 칼리오페, 소수의 셔먼, 기관총 등으로 얼추 막은 후에 간간히 셔먼을 뽑아주면서 슈퍼퍼싱을 빨리 띄우는게 좋다.[49] 하지만 동티어의 다른 중형전차도 데미지는 비슷하다.[50] 골탱의 경우 고증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7월 18일자 질답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