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mm Gun Tank T42 |
1. 개요
194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개발된 중형전차.2. 제원
<colbgcolor=#006400><colcolor=white> T42 시제 중형전차 | ||
제원 | ||
전장 | 5.91m(차체) // 7.99m(주포 포함) | |
전폭 | 3.58m | |
전고 | 3.21m | |
중량 | 30.9t // 33.8t(전투 중량) | |
탑승인원 | 4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 |
공격력 | ||
주무장 | 90mm T119 | |
회전각 | 360° | |
부무장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2정(공축, 전차장용) | |
기동력 | ||
엔진 | 콘티넨탈 AOS-895-3 직렬 6기통 공랭식 가솔린 | |
마력 | 500hp | |
출력비 | 16.1hp/t(kW/t) | |
현수장치 | 토션 바 | |
도로 상 최고속력 | 51km/h | |
항속거리 | 110km(도로) |
3. 개발
2차 대전 말에 등장한 M26 퍼싱은 90mm 전차포와 신식 파워팩 설계를 도입하고 장갑도 두꺼워지면서 방어력을 비롯한 전반적인 성능이 셔먼보다 좋은 전차였으나, 엔진 성능의 한계 때문에 기동성과 연비가 영 좋지 않았다. 2차 대전 종전 후에도 미군은 대전기에 생산된 퍼싱들과 전후 생산형 퍼싱들을 운용해야 했는데, 당시 소련에서는 IS-3같이 더욱 강력한 전차를 운용하고 있었고, 미군도 전력 강화를 위해 퍼싱의 파워팩을 교체하여 기동성을 높인 개량형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이렇게 퍼싱의 개량형에서 시작하여 M46 패튼이 만들어졌는데, M46은 본질적으로 차체를 약간 늘리고 새로운 파워팩을 탑재한 퍼싱의 대규모 개량형이라 미군은 M46은 일단 구형 M4 셔먼과 퍼싱들을 대체하는 임시 방편으로 사용하고, 향후 M46도 대체하기 위해 1948년 9월에 디트로이트 아스널 공장에서 열린 회의에서 차기 전차 T42의 개발을 시작했다. 요구 사항은 M46 패튼보다 더 우수한 장갑을 채용하면서 동일한 무장을 사용하고, 2축 주포 스태빌라이저와 신형 반동 제어 메커니즘을 탑재하고 무게를 36톤으로 제한하는 것 등이었다. 또한 동시기에 미군 기갑차량 현대화 프로그램으로 T41(M41 워커 불독) 경전차와 T43 중전차도 개발되고 있었다.
T42가 처음 설계될때는 T37 시제 경전차의 설계를 기반으로 모양이 잡혔지만, 이후 몇차례의 설계 변경을 거치면서 T37과 닮은 부분은 많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포탑 측면에 B-25 폭격기처럼 커버가 덮인 기관총을 씌우려고도 했지만, 이는 최종적으로 취소되었다. 포탑링 지름도 처음에는 T37처럼 69인치였지만 이후 73인치로 확장되었다[1].
1950년 11월에 미군이 전차 제식명에서 체급을 제외하고 주포 구경장을 포함하면서 정식 프로젝트 명칭이 Medium Tank T42′에서 ’90mm Gun Tank T42’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구동계는 T37 경전차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더 무거워진 중형전차에 경전차의 구동장치를 올려놓은 결과 주행 성능은 M46만큼 좋지 못했고, 첫 주행시험에서도 주행성능에 대해 영 좋지 못한 평가를 들었다[2]. 이후 1950년 11월에 진행된 2차 시험에서는 알루미늄 부품을 일부 도입하여 227kg 정도 경량화한 T42에 기존보다 개선된 AOS-895-3 엔진과 CD-500-3 변속기가 탑재되어 시험된 결과 당초 계획했던 기동력이 나오면서 합격했다. 허나 미군은 여전히 엔진 출력이 부족하다고 만족하지 못하여 T42의 채택을 거부했다.
그래도 T42의 개발은 포기 없이 진행되어 1950년 말부터 본격적인 시제차 테스트에 들어갔는데, 하필 1번 시제차부터 구동계 조립 불량으로 구동계에서 빠진 핀이 연료탱크에 구멍을 낸게 뜨거운 엔진 부품을 건들이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 남은 시제차들로는 계속 테스트가 진행되어, 1951년 4월에는 2호차에 새로운 XT-500 변속기를 장착한 다음에 시험이 진행되었다[3]. 그리고 초기에 계획되다가 취소된 포탑 외장 기관총들은 소련의 초기형 T-54와 비슷하게 차체 전면 펜더 위에 설치한 조종수용 원격 조종식 기관총으로 바뀌어 추가되었다. 아이들러 휠 위에 M1919 브라우닝을 추가하고 원격 구동을 위한 공압 밸브와 솔레노이드 장치를 달아서 시험한 결과 제압사격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되어 아예 기관총이 상하좌우로 가동할 수 있게 하는 연구가 한동안 더 이어졌지만 결국 이러한 아이디어는 폐기되었다.
1953년이 되도록 별다른 진전 없이 여러 시험만 진행되는 상황에서, T42 프로젝트를 살리기 위해 아예 M46 패튼과 동급 이상의 전차로 만드는 처음의 목표는 포기하고 보다 가볍고 경제적인 중형전차로 선회하기로 정해졌다. 차체 전면을 곡면형으로 바꾸고, 지지륜 롤러를 없애서 궤도 형태를 T-54같은 소련제 전차처럼 바꾸는 등의 변경이 계획되었으나, T42 프로젝트가 1953년에 종료되면서 이러한 계획도 만들어지지 못했다[4].
4. 특징
차체 전면은 주조장갑으로 이루어졌고, 후면은 균질압연장갑을 용접하여 제작되었으며, 완성된 차체 전면과 후면을 용접하는 식으로 차체가 제조되었다.포탑은 확실히 M26/M46보다 새로워졌다. 동시기에 개발되고 있던 M41 워커 불독과도 모양이 어느정도 비슷하나, 포탑은 통째로 주조공정을 통해 생산될 계획이었다. 포탑 후방의 길게 빠진 버슬은 탄약고와 라디오 통신기를 배치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포탑 측면에는 스테레오식 거리 측정기가 달리는 등 상당히 새로워진 설계를 가졌다. 시제차에는 주무장으로 M46의 90mm M3A1 주포보다 더 강력하게 개발된 신형 90mm T119 주포가 장착되었다. 한때는 영국군 연락 담당자에게 20파운더 주포를 쓰면 어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이는 거부되었다.
구동계는 AOS-895 공랭식 가솔린 엔진과 제너럴 모터스 CD-500 변속기로 구성된 T37 경전차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첫 주행시험부터 주행성능은 영 좋지 못한 평가를 들었다. 이후에도 개량이 가해지긴 했지만 엔진 출력이 500마력대라서 기동성이 좋지 못한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전차는 경전차 T37, 중전차 T43과 함께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 측정기를 장착하려는 시도[5]가 이루어졌다. 비록 전차가 생산되지는 못했지만 광학 거리측정기가 달린 이 포탑은 이후 M46 패튼의 차체와 조합되어 M46E1의 개발에 쓰였으며, M46E1에서 일부 설계가 수정되어 개발된 M47 패튼 포탑의 기반이 되었다.참고영상
이 광학거리측정기에서 썰이 있는데, M47 패튼 운용 중 포신과 가까운 거리에 거리측정기가 설치돼 주포 사격 시 파손이 발생하는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역으로 허니컴(Hunnicutt) 책자에선 이런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M103의 파이팅 몬스터 닉네임 같이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만 나오는 것이라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M47 패튼과 같은 방식으로 포수가 사격제원 계산하는 레오파르트 1 방식에선 주포에 근접해서 달았고, M47의 후기형인 M48 패튼과 M60 패튼은 전차장이 산출하는 걸로 넘어가 위치를 바꿨다는 것이 주장.
5. 파생형
- T69 : T42의 차체에 요동 포탑과 90mm T178[6] 주포와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를 올린 전차.
- T87 : 차체전면의 재질을 주강으로 하며 장갑을 둥글게 제작하고, 더 납작한 트랙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 M46E1 : M47 패튼 시제기로, M46 패튼 차체에 T42의 포탑을 장착했다.
6. 최후
경전차를 기반으로 설계된 중형전차에 M46 이상의 성능을 요구하는건 너무 무리한 요구였으며, 나온 물건도 M4A3의 후기형과 동급취급을 받았다. 생산 비용이 예상보다 더 높게 나왔으며 개발도 기동성과 구동계의 문제 때문에 지연되어 어느덧 1952년을 지나 1953년이 되었는데도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다.결국 개발이 끝나지 못하는 동안, 1950년에 6.25 전쟁이 터졌고, 신형 전차가 다급하게 필요해진 미군은 빠르게 M46 패튼의 차체에 T42의 포탑을 올려놓은 M46E1을 기반으로 개발된 M47 패튼을 도입하였고, 동시기에 M48 패튼도 개발이 시작되어 1953년에는 이미 채택되었다[7]. 반면 T42는 개발 단계에서 별다른 발전이 없었고, 1953년에 쓸모 없다고 판단되어 개발이 중단되었다. 시제차 6대가 완성되어 애버딘 성능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은 시점도 1950년 12월이었다.
그나마 T42의 개발이 중단된 이후에 요동 포탑을 활용한 자동 장전 장치 탑재 전차의 개발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도 이러한 전차들이 개발되자, T42 3번 차량의 차체에 새로운 요동포탑과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를 탑재한 시제차량 T69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1950년대 중후반에 실시된 테스트에서 발견된 성능과 신뢰성 문제로 폐기되었다.
7. 미디어
7.1. 월드 오브 탱크
미국 8티어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나왔다. 또한 T42의 포탑이 미국 중형전차 트리의 M46 패튼의 업그레이드 포탑 부품으로 등장한다.8. 참고 자료
9.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이는 T42 기반의 포탑을 장착한 M47 패튼도 동일하다[2] 첫 주행 시험에는 T42 실차가 아니라 남아도는 T40(M46 프로토타입)이 사용되었다.[3] 장착을 위해서 차체 후방을 많이 고쳐야 했지만 XT-500은 CD-500보다 저렴하면서 설계도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다.[4] 만약에 이 계획이 만들어졌다면 T87이라는 명칭을 얻었을 거라는 말도 있다[5] 이것외에도 보조 조종수 즉 차체 기관총을 운영하는 인원을 배제시킨 설계가 적용됐다.[6] 퍼싱과 M46에도 적용된 90mm M3 주포 계열의 자동 장전 장치용 버전이다.[7] 이미 1951년~1952년부터 미군 사령부는 T42에 대해 흥미를 잃었고, 새로 등장한 M47 패튼과 당시 개발에 들어간 M48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T42를 실전 테스트에 투입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T42의 성능 때문에 실전 투입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실전 투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