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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파운더

1. 개요2. 제원3. 역사
3.1. 실전투입
4. 포탄 목록5. 관통력6. 관련 문서

1. 개요

1940년대 말에 영국에서 개발한 구경 84mm(정확히는 83.4mm) 전차포.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맹활약한 기존의 17파운더 대전차포를 대체하기 위해 1948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105mm 로열 오드넌스 L7으로 대체되었다.

2. 제원

Ordnance QF 20 pounder
개발사 Royal Ordnance
포탄 84×618mm R
구경 84mm (3.31 인치)
포신길이 5.75m (66.7 구경장)
상하각도 -10° 에서 +18° (센추리온 Mk 5 기준)
포구초속 600 m/s (고폭탄), 1430 m/s (분리철갑탄)

3.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개발된 17파운더는 압도적인 생산력과 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영국군영연방군의 주력 대전차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17파운더에는 포구 화염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고, 앞으로 있을 서방과 소련의 대립에서 등장할게 예상되는 IS-3와 같은 더 강력한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어서 17파운더보다 더 강력한 신형 대포가 필요했다.

이런 배경에서 개발된 20파운더는 구경을 17파운더의 76.2mm에서 84mm로 더 키움으로써 화력을 증가시켰고, 설계가 개선되면서 주포 신뢰성이나 사용 안정성 면에서도 17파운더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포탄도 17파운더와 마찬가지로 APDS(분리철갑탄)를 사용했는데, 17파운더에서 처음 상용화되었을 때는 APDS탄이 이탈피 분리 문제 때문에 탄도 안정성에 문제가 많았지만, 20파운더가 나올 때 쯤에는 설계와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안정성같은 문제들이 크게 개선되었다. 다만 APDS는 여전히 비싼 가격 등의 한계가 있어서 실제로는 17파운더와 마찬가지로 APDS보다 APCBC같은 다른 탄종이 더 많이 쓰이곤 했다.
파일:Centurion_Mk_3_front-right_2017_Bovington.jpg 파일:Centurion_MK_III_Seite_-_Schweizer_Armee_-_Steel_Parade_2006.jpg
20파운더는 영국군의 첫 1세대 MBT이자 최후의 순항전차센추리온 전차의 개량형(Mk.3부터)에 처음으로 탑재되었고[1], 센추리온 전차가 천천히 생산되는 동안 공백을 메꾸기 위해 기존의 크롬웰 전차에 20파운더를 장착한 개량형으로 개발된 채리어티어에도 장착되었다. 그리고 120mm 주포를 위한 포탑이 나오기 전에 제작된 FV214 컨커러의 초기형 모델(FV221 카나번)의 주포로 쓰이는 등 2차 세계 대전 직후 개발된 영국제 전차들의 주무장으로 쓰였다. 이 중에서 20파운더의 경우 주포가 개발 이후에도 개량이 됨에 따라 배연기가 없던 초기형 20파운더(A형)와 달리, 후기형 20파운더(B형) 주포의 경우 배연기가 주포 중앙에 대칭적으로 위치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20파운더의 시대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1956년에 일어난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의 새 전차였던 T-54가 시위대에 의해 노획되어 영국 대사관으로 입수되었는데, 이를 분석하였더니 T-54의 주포와 장갑이 동시대 영국의 전차인 센추리온을 능가하는 성능을 보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영국은 T-54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하여 20파운더를 기반으로 105mm 로열 오드넌스 L7을 급히 개발하였다. L7 105mm는 20파운더에서 구경만 105mm로 키운 것으로, 기존에 20파운더를 장착할 수 있는 차량은 L7 105mm 주포를 장착할 수 있었다. 이후 L7 105mm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구권 국가들에서 2세대 전차~3세대 전차 초기형의 표준 전차포로 자리잡게 되었다.

20 파운더는 L7이 개발되는 동안까지 1선급 전차포로 사용되었고, 1950년대에 스위스에서 개발된 판처 58 일부 차량에도 주포로 장착되었다.(스위스 제식명 8,4cm Pak 55) L7이 개발된 이후에도 20파운더가 바로 퇴역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센추리온 Mk.5/1을 호주군이 투입했듯 한동안은 더 사용되었다.

1950년대에 영국에서 적연질산같은 물질을 추진장약으로 사용하는 액체 장약 20파운더가 개발되어 실험되기도 했지만 배합비에 따라 성능이 오락가락하는 액체 장약의 문제 때문에 취소되었다. 해당 포는 시험을 위해 센추리온 Mk.3에 탑재되기도 했다.참조

3.1. 실전투입

20파운더로 무장한 센추리온 전차가 투입된 6.25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두 차례의 인도-파키스탄 전쟁, 제2차 중동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채리어티어가 투입된 레바논 내전에서도 사용되었다.

4. 포탄 목록

Shot Mk. 1 : 초기부터 사용된 APCBC탄

APDS Mk. 1 : 1947년에 등장한 분리철갑탄. 추진장약으로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사용한다.

DS/T PRAC Mk. 2 : APDS Mk. 1의 훈련용 형식. 검은색 송탄통(새보)에 칠해진 노란색 띠의 존재로 일반탄과 구분할 수 있다.

APDS-T Mk. 3 : 1950년에 등장한 개량형 분리철갑탄으로 예광탄 기능이 추가되었다.

DS/T PRAC Mk. 4 : APDS-T Mk. 3의 훈련용 형식. DS/T PRAC Mk. 2와 마찬가지로 연철 송탄통에 칠해진 노란색 띠로 구분된다. 1955년에 등장했다.

Shell Mk. 1 : 고폭탄. RDX/BWX 폭약과 No. 410 Mk. 1 순간 신관을 사용한다. 올리브 드랩이나 황토색 바탕색에 빨간색과 검은색 띠가 칠해졌다.

SMK BE Mk. 1 : 연막 캐니스터 3개가 들어있는 연막탄. 탄저부 방출 장치가 있다.

CAN : 검은색 금속 실린더에 580개의 강철 펠렛이 들어있는 탄자 무게 9.5kg 캐니스터탄. 229m의 유효 반경을 가졌다.

5. 관통력

20파운더는 약실 압력이 상당히 높아서 포미부가 상당히 거대해진 대신에 탄환의 포구속도가 빨라졌다. APDS탄을 사용했을 때 관통력은 1000야드 (910m)에서 RHA 330mm로 당시로써는 상당히 강력한 수준이었지만, 경사장갑을 상대로는 관통력이 많이 줄어들어서 같은 거리에서 60도 경사장갑을 상대로는 LOS 174mm를 관통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1000m 정도의 거리에서 소련의 최신 T-54/55 전차도 상대할만 했지만, 당시 영국의 전차포에 요구되는 성능은 압도적 수량의 소련 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해 원거리에서 먼저 저격해서 확실하게 파괴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같은 시대 서방 내에서 라이벌 격인 미국의 90mm 대전차포에 비교하면 구경이 작아서 고폭탄 화력이 열세에 있었고, 특히 장거리 교전에서는 90mm포의 HEAT탄(대전차 고폭탄)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2] 하지만, 20파운더의 약실 압력이 더 높아서 포구속도는 20파운더가 우위에 있었고, 명중률도 20파운더가 더 좋았다. 이 때문에 운동에너지로 장갑을 뚫는 철갑탄의 경우, 20파운더의 APDS탄이 90mm포의 주력탄종인 APC탄(피모철갑탄)에 비해 관통력과 명중률에서 근소한 우세에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실전에서도 나타나서, 6.25 전쟁 당시 센추리온에 탑재된 20파운더가 관통력과 명중률면에선 90mm 주포보다 더 우수함을 입증했다. 또한 1965년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Asal Uttar 전역에서 20파운더를 장비한 인도군센추리온 마크 3는 105mm L7으로 업그레이드 된 마크 7과 함께 당시 인도군에게 골칫거리였던 파키스탄군M48A1 100여대를 상대편 전술 실책과 업그레이드 차이, 우수한 관통력 등에 힘입어 격파하기도 했다.

6. 관련 문서



[1] 처음 20파운더를 장착한 Mk.3에는 초기형(A형) 버전, 조금 뒤에 나온 Mk.5에는 후기형(B형) 버전이 쓰였다.[2] 참고로 20파운더에는 HEAT탄을 사용하지 않았다[3] 초기형 카나번 한정[4] Mk.3과 Mk.5는 주포로 20파운더를 탑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