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44 |
1. 개요
T-44 기동 영상 |
2. 제원
소련 육군 | |
T-44 중형전차 | |
개발 및 생산 | |
개발 설계국 | 니즈니타길 OKB-520 설계국[2] |
생산공장 | 제75호 하리코프 기계 공장 |
개발연도 | 1943~44년 |
생산연도 | 1944~47년 |
운용연도 | '1945~70년대 |
생산댓수 | 1,823대 |
운용국가 | 소련 |
제원 | |
전장 | 6.07 / 7.65m (차체 전장 / 포신 포함 시) |
전폭 | 3.18m |
전고 | 2.41m |
전투 중량 | 31.8t |
탑승 인원 | 4명 (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
화력 | |
주무장 | 54.6구경장85×629mm ZiS-S-53 강선포 (58발) |
부무장 | 7.62mm DTM 동축기관총 2정 |
주포조준장치 | TS-16 |
상하 부각 | −5~+25° |
좌우 회전각 | 360° |
승무원 무장 | |
기동력 | |
변속기 | 유압식 수동변속 5단 전진&1단 후진 |
엔진 | V-44 4행정 12기통 액랭식 디젤 엔진 |
최고 출력 | 500ps (368kW) |
출력비 | 15.6ps/t |
현가 장치 | 토션 바 |
최고속도 | 60 / 25~30km/h (평지 / 야지 주행 시) 후진 10km/h |
항속거리 | 200~250 / 180~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
접지길이, 접지압력 | m, 0.83kg/cm² |
초호능력 | m |
초월능력 | 0.73m |
등판능력 | ° |
잠수도하능력 |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
방어력 | |
장갑 | 주조 및 압연 균질 강철 장갑 |
차체 전면 상단 장갑 두께/경사각도 | 85mm/60° |
차체 전면 중단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차체 전면 하단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차체 측면 상단 장갑 두께 /경사각도 | mm/° |
차체 측면 하단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차체 후면 장갑 두께 | mm |
차체 하단 장갑 두께 | mm |
차체 상단 장갑 두께 | 30mm |
포방패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포탑 전면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포탑 측면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포탑 후면 장갑 두께/경사각도 | mm/° |
포탑 상단 장갑 두께 | mm |
3. 상세
3.1. 배경
독소전쟁 개전 후로 소련군의 중형전차인 T-34와 중전차 KV-1은 독소전 초기 나치독일의 전차를 압도하는 높은 성능으로 많은 활약을 하였지만, 독소전이 개시된지 1년이 되어가는 1942년 초중반이 되면서 그 성능우위를 상당부분 상실하게 된다. 이 두 전차중 T-34는 침공 초기 나치독일의 주력이었던 3,4호 전차보다 강력한 성능으로 T-34 쇼크라는 용어까지 탄생케 했으나[3], 중전차인 KV-1은 빠르게 증가된 나치독일의 화력에 정비례하여 빠르게 노후되었고 더이상 독소전 초기의 KV쇼크를 보여주지 못했다.물론 KV-1도 꾸준히 개량되어 같은 76mm 구경의 포[4]라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업그레이드를 해나갔고 증가장갑을 덧붙이는 방법과 장갑두께 자체를 늘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뒤떨어져가는 방어력도 만회하려 했다.
그러나 1942년이 되면 독일군이 이미 PaK 40 같은 고성능 대전차포를 전선에 대량으로 배치한 상태여서 42년형 KV-1의 최대 130mm의 두터운 장갑도 예전같은 KV쇼크를 재현해내기는 부족했고 오히려 증가된 장갑으로 인해 48톤의 거구가 되어 몹시 무거워져 기동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어서 T-34와의 합동운용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전차의 3요소인 공수주에 있어 KV-1은 T-34와 비슷한 수준[5]의 공격력과 떨어지는 기동성을 가진 반면 방어력면에서 우위가 있었는데 PaK 40 같은 개량된 대전차포는 KV-1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방어력 우위를 상당부분 퇴색시켜 버렸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모스크바는 비싼 중전차인 KV-1의 전투력이 저렴한 T-34의 전투력보다 오히려 떨어진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KV-1은 단종되어 생산라인이 전부 T-34 라인으로 변경될 위기에 처하지만 일단은 생산량을 줄이는 상태에서 장갑을 줄여서 기동성을 증가시켜 T-34와 함께 운용이 가능한 KV-1S를 생산하는것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모스크바는 이 떨어지는 성능의 중전차를 대체할겸 성능우위가 사라진 T-34도 교체할겸 중전차에 필적하는 높은 성능을 가진 중형전차를 만들어 중전차와 중형전차를 통합하는 단일기종을 대량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1942년 6월부터 양대 전차를 통합하는 주력 전차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이에 따라 KV-1 수준의 방어력을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여 중형전차를 만드는 방향으로 연구한 측[6]과 T-34를 바탕으로 장갑을 증가시키고 전투효율을 개량한 측이 경쟁을 하게 되었는데 양측의 결과물인 KV-13과 T-43이 T-34에 비해 비싸고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과 화력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채택 거부당하고 그냥 T-34를 많이 만들게 되어 소련의 이 주력전차 계획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KV-13은 다시 대형화되어 경사장갑을 대폭 도입하여 42년형 KV-1을 훨신 뛰어넘는 방어력을 확보하면서도 42년형 KV-1에 비해 오히려 가벼운 무게로 돌파전차에 걸맞은 기동성까지 갖춘 IS 중전차로 나아갔고 T-43은 기존 T-34를 바탕으로 했기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근본적인 개선을 하여 T-44가 된다.
3.2. 특징
1. 엔진의 장착위치를 비롯하여, 기존의 T-34 차체 설계 자체를 뒤엎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엔진의 방향을 측면으로 돌려서 장착함으로서 기존의 BT 전차에서부터 내려온 차체 절반을 차지하는 수준의 거대한 엔진룸의 길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7]여기에 차체 자체의 모양을 크게 뜯어고쳤다. 최후미 (5번) 바퀴의 로드암이 나머지 보기륜들과 조금 떨어져서 반대 방향으로 장착된 이유도 토션바를 피해야 엔진을 더 낮은 위치에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런 설계는 같은 현가장치 유형이 이어진 T-54, T-55, T-62에도 적용되었다.[8] 이는 차체 구조 뿐 아니라 포탑의 위치와 구동계의 배치 형태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21세기에도 러시아의 T-90이 본질적으로는 T-44의 엔진룸 설계의 원칙을 따르는 등 소련군 전차의 중요한 특징을 결정하였다.[9]
2. 포탑의 위치가 차체 중앙으로 이동되었다. 이는 엔진룸의 길이 축소와 가로배치 구동계 설계에 따른 것으로, 역시 T-34의 고질적 문제였던 '포탑이 전면으로 중심이 쏠리는 현상'을 제거하였다. 따라서 전면 장갑을 크게 강화하더라도 차체중심이 앞으로 쏠리지 않는다.[10] 이런 설계 덕분에 차체의 전면 장갑 두께도 기존 T-43의 75mm에서 90mm로 더 늘리면서도 실내 공간과 차량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3. 포탑이 차체 중앙으로 이동함에 따라, 차체 전면의 상부에 여유공간이 생기면서 지붕에 조종수 출입용 해치를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전기는 KV-85부터 포탑에 설치하였기에 이를 따랐지만, 차체 기관총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고정식으로 운전수가 운용하도록 기관총 총신만 살짝 나올 수준의 작은 구멍만 파는 실수를 했다.[11] 이에 따라 불완전하지만 T-34의 전면장갑에 있던 양대 약점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방어력이 크게 증대되었다. 더 이상 독일군이 핀포인트 사격을 통해 전면장갑의 약점을 공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4. T-43과는 달리 더 이상 T-34와의 호환성을 중시하지 않아도 되므로, 현가장치도 크리스티 현가장치에 비해 더 넓은 전차 내부공간을 가질 수 있는 토션바 서스펜션을 채용했으며, 변속기도 T-43의 5단 수동변속기를 더욱 개량한 물건을 채용하여 전진 기어 단수가 기존 T-34-76/T-34-85의 4단에서 5단으로 하나 늘어났다.[12] 이에 따라 차체 높이를 더 낮출 수 있었고, 속도의 감소 없이 T-34보다 편하게 조종이 가능하며, 선회력이나 급가속이 더 편리해졌다.
5. 주무장도 T-34-85와 동급의 주포를 장착한 포탑을 채용하였으며, 내부 용적을 더 넓히고 전면과 측면 방어력을 증대시켜서 내부전투효율이 높고 방어력이 튼튼한 물건을 만들었다. 따라서 대전 종결때까지 1선급 전투능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로 인해 T-44는 T-34-85보다 약간 가벼우면서도 더 강력한 방어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전차는 1944년 11월에 T-44로 정식채용되었으며,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한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보기륜으로는 T-43에서부터 적용되었던 거미줄형 보기륜[13]이 적용되었다.
4. 개발
비록 T-43은 채택불가명령이 떨어졌지만, 해당 전차의 포탑을 기존의 T-34 차체에도 장착이 가능하도록 하고 85mm 주포를 T-43-85 시험기보다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14] 약간 손본 물건이 T-34-85로 제식화되면서 일단 85mm 주포를 장착한 주력전차가 당장 급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벗어났으므로, T-34의 주임 설계기사이던 알렉산드르 모로조프를 위시한 개발진들은 이전의 개발기간에 비하면 약간 여유를 가지고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서 전작인 T-43이 주로 포탑과 단순한 차체 장갑에 치중했던 개량인데 반해, T-44는 차체의 구조까지 뒤집어엎는 대규모의 개량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참조4.1. 1차 프로토타입
T-44의 개발은 1943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44년 봄에 시제차량들이 완성되었다. T-43부터 계획한 중형전차의 기동력+강력한 중전차급 전면 방어력을 달성하고자 했으며, 오비옉트 136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 #1943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이후 1944년 1월에 1차 프로토타입 차량 3대가 제작되었다. T-44 1차 프로토타입 차량들은 이전의 T-34-85보다 낮아진 차체에서 조종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차체에 돌출된 설계의 조종실을 가졌고, 여기에 조종수 시야확보를 위한 큰 개폐식 관측창 해치가 조종실 전면에 위치했다. 또한 양산형 모델과 달리 포탑링 지름이 1800mm로 제작되었다.
T-44-122(좌)와 T-44-85(우) |
T-44-122 |
또한 1차 프로토타입에서는 조종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차체에 해치가 돌출되도록 설계했다는 큰 약점이 있었다. 조종수가 탑승한 공간이 튀어나온 구조는 대놓고 약점을 알려주는 모양이었을뿐더러, 조종실이 불룩 튀어나온 설계 때문에 포탑의 전면부도 함께 높아지면서 앞쪽 포탑링이 노출되는 문제가 생겼다. 일단 T-34보다 차체의 거주성이 약간 나아지기는 했어도 차체 높이가 낮아졌기 때문에 포탑 내부가 좁게 느껴지는 문제는 여전했다.
1944년 4월에는 사격시험용 차체가 추가적으로 1대 생산되어 소련제 76mm F-34와 85mm 52-K를 대상으로 사격 시험을 거쳤는데, 시험 결과 우려했던 대로 돌출된 조종석이 쉽게 관통당하였고[16], 차체 하부와 측면은 맞은 즉시 관통당하지는 않았지만 용접부위가 깨져나갔다. 결국 돌출된 조종석을 재설계하고 차체 하단의 경사를 늘려야하고, 측면은 여러 철판을 용접하지 말고 최대한 하나의 두꺼운 장갑을 용접하는 공정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덤으로 아이들러 휠 장착부위도 재설계해야 되는 등 여러 부위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4.2. 2차 프로토타입
T-44-85 2차 프로토타입(4번 차량) |
2차 프로토타입부터는 1차 프로토타입에서 약점으로 지적받은 돌출된 조종실이 제거되어 조종실이 차체 전면 내부에 완전히 포함되도록 바뀌면서 탑승구 해치 이외에는 차체 상단이 깔끔하게 변경되었다. 조종수의 전면 관측창도 이전보다 작아졌다.
조종실 높이가 줄어든 결과 포탑도 기존보다 더 낮아지도록 재설계할 수 있게 되면서 1차 프로토타입에서 노출되었던 포탑링을 더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더 낮아진 모양으로 재설계된 포탑은 1차 프로토타입의 것보다 전체적으로 두꺼워졌다. 또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포탑링 지름이 1800mm에서 다시 1600mm로 줄어들었다.[17] 주무장도 1944년 봄부터 85mm D-5T가 단종됨에 따라서 후기형 T-34-85와 동일한 85mm ZIS-S-53으로 변경되었다. 보기륜은 1차 프로토타입에 쓰인것들보다 조금 더 작아졌다.
특이 사항이라면 2차 프로토타입 2대의 측면 장갑 두께가 다르게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만들어진 1대는 측면이 60mm, 조금 나중에 만들어진 1대는 측면이 75mm로 나왔고, 측면이 75mm인 차량은 측면이 60mm인 차량보다 약 900kg 더 무거웠다. 측면이 75mm인 5번[18] 차량에는 스플래쉬 가드(Splash Guard, 물튀김 방지대)가 있는데 반해서 측면이 60mm인 4번 차량에는 스플래쉬 보드가 없다는 외형적인 차이가 있다. 두 차량은 스플래쉬 가드의 유무와 측면의 두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모두 동일하며, 결론적으로 둘다 주행 테스트를 통과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2차 프로토타입 차량들에도 문제가 완전히 없던 건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조종실을 차체 모양에 따라서 납작하게 줄여버린 결과 조종수의 거주성이 크게 악화되었고, 차체 전면의 조종수 관측 해치가 1차 프로토타입보다 작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약점부위였다는 사실은 변함 없었다. 또한 전면 장갑의 두께는 여전히 75mm라서 판터의 7,5cm를 상대로는 700m거리 이내에서, 나스호른의 8,8cm에는 최대 2km에서 장갑이 관통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장갑 강화의 중요성이 제기되었으며, 2차 프로토타입의 결함과 단점들을 모두 해결하는 방향으로 3번째 프로토타입이 설계되기 시작했다.
한편 3번째 프로토타입이 설계되던 시점에도 2차 프로토타입 차량들은 개발 절차상 사격 테스트에 사용되었는데 이번에도 소련제 76mm와 85mm가 사용되었다. 사격한 결과 우려한 것처럼 전면이 관통당하면서 3번째 프로토타입에는 장갑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강해졌다.
4.3. T-44A
1944년 7월부터 1차와 2차 프로토타입들에서 발견된 문제점과 결함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개선한 T-44A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전면부 장갑을 강화하는 등의 설계변경을 거치는 것이 허용되면서 전면 장갑을 늘리는 것과 같이 이전부터 구상해왔던 많은 개선사항들이 적용되었다. #이전의 프로토타입들에서 발생한 조종석 설계 관련 문제도 여기서 모두 끝났다. 전면부의 방어력을 유지하면서도 조종실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승무원 탑승부의 높이를 엔진룸과 동일한 높이까지 올리기로 경정했다. 이와 함께 포탑링의 위치도 살짝 높아졌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약점을 제거하기 위해 차체 전면부의 조종수 관측 해치가 제거되었고 그 대신에 차체 상부에 관측창 2개가 달린 조종수 출입 해치로 조종수 관측장비가 통합되었다.[19]
또한 주행성능과 무게배분을 개선하기 위해서 현가장치에도 많은 개선이 가해졌다. 토션바 서스펜션의 암들도 재설계되었고[20], 스프로켓의 지름은 줄어들었지만 보기륜들은 T-34-85의 것들과 동일한 직경을 가진 지름 830mm 타입을 장착했다. 그리고 원활한 무게배분을 위해 보기륜 사이 간격도 조정되었다.
이외에도 엔진 라디에이터가 재설계되었고 차체 후방에 경사진 장갑판 구조물을 용접하여 공간장갑을 마련했다. 원래는 포탑도 새로 설계[21]할 계획이었으나 포탑은 2차 프로토타입의 것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되면서 신형 포탑은 개발되지 않았다.
1944년 7월 중으로 완성된 V-44 엔진을 설치하면서 실차 조립이 완성되었고, 8월부터 실차 테스트에 돌입했다. 1944년 9월에는 테스트 결과에 따라서 조종석을 포함하여 20가지 개선돼야할 사항이 나왔고, 2달 후인 1944년 11월에 T-44A를 기반으로 개선점을 적용한 T-44의 양산이 허가되면서 생산이 시작되었다. 같은 달에 양산형 T-44 5대가 생산되어 소련 육군에게 전달되었다. T-44A라는 명칭은 양산형에서도 유지되었다.
5. 개량형
T-34-85와 더불어 T-44 역시 현대화 개량 작업이 진행되었다.5.1. T-44M
T-44M |
이로써 T-54와 거의 외형상 비슷해졌으나, 포탑과 주포를 기존 그대로 유용하고 추가장갑을 달지 않은 점에서 방어력과 화력이 그대로였다. 추가로 원래부터 달고있던 구닥다리 DTM 동축기관총 역시 폐지되거나 다른 신형으로 교체되지 않았다.
5.2. T-44S/T-44MS
주포에 사이클론 2축 안정화 장치(스태빌라이저)가 장착된 개량형. 현대화 개량형인 T-44M에 사이클론 스태빌라이저가 적용된 차량은 T-44MS다. 1966년에 등장했다.6. 파생형
6.1. T-44MK
현대화 개량형인 T-44M의 지휘차량 사양. 통신장비로 R-112 라디오가 추가되었다. 차량 내부 통신장비 추가로 탄약 적재량이 15발 줄어든 46발이 되었다.6.2. 우랄마쉬-1 (SU-101/102)
Уралмаш-1 (СУ-101/102) |
6.3. BTS-4A
자세한 내용은 BTS-4 문서 참고하십시오.6.4. SU-122-44
СУ-122-44 |
6.5. T-44-100
T-44는 후기형 T-34-85와 동일한 포로 무장했기에 독일군 중형전차들을 상대들로는 교전이 충분히 가능했지만, 대전 말기에 등장한 티거 2나 야크트티거같은 독일군 중전차와 구축전차의 혈전은 85mm급 주포도 한계점을 맞이하기 충분하도록 만들었으며, 종전 후 이제 잠정적인 적이 될 서방 연합군을 감안해보더라도 주포의 구경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물론 소련군에는 122mm 주포를 장착한 IS-3같은 중전차들도 있었지만 그거와는 별도로 중형전차들도 화력강화를 할 필요가 있었다.T-44-100 |
T-44-100은 T-44B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후 T-54의 개발로 이어지는 첫 걸음이 되었다. T-44-100의 시험 결과를 본 소련 육군은 이를 지금 당장 생산하지 말고 더 많이 개량한 다음에 생산하는게 좋다고 판단하였고[26], 이후 T-44B를 기반으로 개량이 진행되던 끝에 새로운 전차 T-54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27]
7. 배치
T-44 "즈나멘스키" |
사실 2차 대전 말에 생산이 시작된 IS-3가 만주에 배치된 적이 있었던 것과 같이 T-44도 마찬가지로 시험삼아 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아무리 각종 테스트를 거쳤다고 해도 직접 전투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의 질과 양이 더 많고 방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이미 상대편인 독일군은 국민척탄병으로 대표되는 예비군 내지 민병대에 불과한 허접한 병력을 전선에 내보내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선 등장한 적 전차가 T-34인지 T-44인지 IS-2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고 역량도 없다. 설령 상대에게 대전차무기가 있어서 운좋게 파괴했더라도 소련군이 이 악물고 격파된 차량을 낼름 다시 가져갔을거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저 심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8. 말로
T-44는 1945년 초에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완료하고 46년부터 선행 양산형이 실전 배치된 T-54에게 밀려서 빠르게 1선급 전차의 위치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화력 외 나머지 문제는 준수한 편인지라 1960년대까지 2선급 부대의 무장으로 활용되었고, 1970년대까지도 일부 차량이 훈련용으로 현역에 존재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련제 전차들과 달리 아예 외국으로 수출되지 않았고 오로지 소련군만이 운용했다.현재 남은 T-44 중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가 좋은 것은 매우 드물다. 나머지 T-44/44M들은 주로 레플리카로 개조된다.
일부 차량은 BTS-4 구난전차로 전환되고나서 더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사용되었다. BTS-4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러시아군이 동원한걸로 파악되었다. 출처
9. 평가
T-44에서 확립한 각종 기술이 그 이후의 소련전차의 기본을 만들어냈으며, T-44의 차체 설계와 레이아웃이 후속작 T-54를 시작으로 나온 냉전기 소련군 주력전차의 기본을 확립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전차가 기술력 발전의 계보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 한눈에 알 수 있다. T-44의 차체 설계 장점들은 T-54에도 이어졌다.참조이는 이후에 과거 T-44와 마찬가지로 신기술을 대폭 적용한 전차였던 T-64가 매우 낮은 신뢰성과 비싼 가격으로 인해 운용면에서도,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도 반쯤 실패한 전차가 되어 이후의 소련/러시아의 주력전차 선정에 있어서 제2의 T-64가 탄생하지 않도록 매우 보수적인 기준으로 돌아서게 된 원인[28]이 된 전차임을 고려해볼때 T-44는 적절한 물량이 적절한 수준으로 생산되어 적절히 후계기에 자리를 주고 떠난 명품 전차라 할 수 있다.
10. 실전
10.1. 헝가리 혁명
부다페스트에서 주행하는 T-44 |
그러나 애초에 전장이 넓은 평야에서 전차끼리 싸우는 전차전이 아닌 도심에서의 시가전이었고, 헝가리 반소 시민군들 중 일부는 2차 대전 당시 참전자들로 과거 부다페스트 공방전에서 독일군, 나치 친위대와 함께 소련군을 상대로 시가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화염병 공격이 상당히 유용하다는 점을 알았고 당연히 소련군 전차들을 상대로 이를 그대로 써먹었다. 다만 같이 투입된 T-34나 T-54, IS-3 등과 달리 T-44는 헝가리에서 격파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11.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T-44/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2. 모형
12.1. 프라모델
- 트럼페터
워낙 인지도가 없어 틈새 공략으로 유명한 트럼페터에서도 발매하지 않고 있었으나 발매했다.
- 미니 아트
1:35 35193 T-44 SOVIET MEDIUM TANK |
1:35 37002 T-44M SOVIET MEDIUM TANK |
우크라이나의 모형 메이커 미니 아트에서 1:35 스케일로 2016년 2월 말에 발매했다.
실제 키트의 품질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일부의 인테리어 키트가 내부를 조립하면 외부가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니아트 T-44에서는전혀 그런 문제 없이 깔끔하게 조립이 가능하다. 에칭과 클리어 파츠 등 구성품들도 충실하고, 다양한 차종을 재현할 수 있도록 마킹도 충실히 들어 있다. 심지어는 가상의 독일 국방군 노획버전도 재현 가능하다.
형상이나 디테일들도 무리 없이 재현되었으며, 주조질감 표현도 적절하고, 각부의 디테일들도 세세하게 잘 살아 있다. 플라스틱도 가공이 어렵지 않은 소재라, 흔히 생각하는 동구권 키트의 악랄한 플라스틱 질은 아니며, 오히려 평균 수준의 괜찮은 플라스틱이므로 안심해도 괜찮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우선은 역시 많은 부품수. 총 부품수가 700개 이상이라 소요 시간이 오래 걸리며, 동봉 에칭도 많은데다가, 에칭의 크기가 매우 작고 가공을 필요로 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에칭(PE파츠)에 익숙지 않은 모델러들이라면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내부 재현형밖에 없다는 것도 아쉬운점. 이후의 미니아트 키트들은 내부형, 외부형을 함께 발매하여 모델러들의 조립 부담을 줄여 주었지만, T-44는 아직까지 외부형 키트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인테리어 파츠를 빼고 외부 부품만 조립하는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연결 가동식 궤도 및 가동식 토션바 방식을 표방했지만, 부품들이 너무 작아 내구도 문제가 있어, 결국은 접착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가동식을 표방하지 않고 견고하게 접착하도록 구성하는 게 나았을듯.
그러나 1/35 스케일의 T-44를 재현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단점을 극복할 만큼 품질 자체는 상당히 뛰어난 제품이므로 T-44를 좋아하는 모델러라면 적극 추천할만 하다. 가격은 5만원 초반대로 약간 비싼 편이나 국내 수입 AFV키트들의 가격에 비해 보면 평균적인 수준의 가격이다.
현대화 개량형인 T-44M 또한 출시 되었으며, T-44의 반응에 힘 입어 T-54 계열도 내부 재현형으로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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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러시아의 주력전차/러시아식 분류 | |
시대별 세대 구분 | MBT 세대 구분(서구권) |
1세대 전차 T-34-76, T-34-85, T-44 | |
2세대 전차 T-54, T-55, T-62 | 1세대 MBT T-54, T-55 |
3세대 전차 | 2세대 MBT T-62, T-64(A/BV), T-72(A/B/BA), T-80(B/BV/U) |
4세대 전차 T-90 | 3세대 MBT T-64(BMU/EU), T-72(B3U/B3MU), T-80(U/UK/BVMU), T-90 |
5세대 전차 T-14 | 3.5세대 MBT |
※ T-34부터 T-64(Object 432)까지 중형전차, T-64A(Object 434)부터는 주력전차로 분류 ※ 윗첨자U: 소련 해체 이후 개발된 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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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T-44를 얼핏 보면 포탑은 T-34-85, 차체는 T-54같은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2] OKB-520 설계국은 원래는 하리코프의 설계국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하리코프 183공장의 설계국이었으나 이들은 2차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피난, 니즈니 타길의 우랄바곤자보드와 합쳐졌다.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공장은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되찾은 후 75번 디젤엔진 공장 명칭으로 재건되고 OKB-520 설계국의 핵심 인물이자 하리코프 공장 출신의 모로조프는 OKB-520 설계국에서 T-44와 T-54를 설계한 뒤 50년대 초 하리코프에 재건된 75번 디젤엔진 공장으로 돌아가 새로 KB-60 설계국을 만들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하리코프가 사용하던 183공장 번호와 OKB-520 설계국은 그대로 우랄바곤자보드에 합쳐진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내려온다. 즉 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의 사람들이 우랄바곤자보드에서 설계했던 차량이라 보면 된다.[3] 그러나 T-34도 얼마뒤엔 티거쇼크를 먹는데다 결정적으로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의 신형 중형전차인 판터에게도 당하면서 85mm 주포를 장착하게 된다.[4] 예를들어 KV-1의 경우 똑같은 76mm주포라도 39년형의 L-11부터 40년형 F-32, 41년 F-34를 거쳐 41년 후기형부터 42년형은 최종적으로 ZiS-5를 쓸 만큼 일단 꾸준히 업그레이드는 되었다. T-34도 40년형에 L-11을 쓰다가 41년에 F-34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은 같다.[5]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수준의 주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기동력이 더 높은 T-34가 KV-1에 비해 실질적인 공격력이 더 높다고 할 수도 있다.[6] 설계안 233/KV-13, IS-2항목에 설명되어 있다.[7] 기존의 세로배치형 구동계로는 V형 12기통 엔진과 변속기가 합쳐진 길이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엔진룸도 길어지면서 포탑과 전투실이 앞으로 밀려났다. T-44부터는 구동계를 가로배치로 돌리고 변속기도 엔진에 밀착시키는 구조로 변경되면서 차체 폭이 조금 늘어났지만(T-34 3.0m,T-44 3.25m) 엔진룸이 차지하는 길이를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8] 다만 이러한 설계는 엔진룸 공간을 크게 줄이고 엔진이 차체 폭에 맞게 끼워넣는 모양이라 용적이 제한되어서, T-44 이후의 소련군 전차들의 엔진 업그레이드가 힘들어졌다는 평가도 있다.[9] T-72 개발의 시작은 T-44로 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완전한 신규 전차인 T-64의 V형 디젤엔진 버전이었으나 T-72는 초기 T-64의 처참한 엔진 신뢰성을 보완하기 위해 BT, T-34, T-44, T-54, T-62등의 전통적인 소련 전차계보를 직계로 이어가던 전차였던 Object 167 기술과 부품을 대폭 사용하면서 당연히 T-44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T-90은 그 T-72의 개량형이므로 BT전차에서부터 시작되는 전통적인 소련 전차 계보가 이어지는 전차로 이런 공통점이 남아있는 것들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소련의 정통 전차 계보는 Object 187과 195를 통해 차기 주력전차인 T-14에게 까지 이어진다.[10] 다만 무게중심의 위치가 장갑 강화에 지장을 줄 정도로 정면으로 쏠리지는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11] 이는 이미 M3 리가 사용해보고 쓸모 없다는걸 깨달은 설계였다. 물론 소련도 결국은 깨달아 T-54 개량형과 T-55 후기형에서 폐기하고 탄약고를 늘렸다.[12] 5단 전진 1단 후진 기어 구성은 T-64에서 전진이 7단으로 늘어나기 전까지 유지되어 T-54, T-55, T-62까지 적용되었다.[13] 1944년에 생산된 후기형 T-34-85에도 적용되었다.[14] T-34에 85mm를 올리라는 명령이 떨어진 직후 T-43 개발진이 가장 먼저 한 것이 T-43에 85mm 주포를 올려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T-43-85를 시험해 본 결과 불편함이 있어서 이를 개량한 포탑이 T-34-85의 포탑으로 사용되었다.[15] IS-2에도 탑재된 D-25T를 기반으로 포탄을 일체형 장약식으로 교체하고 머즐 브레이크를 개선한 주포.[16] 이는 돌출된 부위가 피격당하면 조종수가 즉사한다는 의미였다.[17] 이는 T-34-85에 쓰인 1600mm 포탑링 설계로 통합하여 설계를 간편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름 1800mm 포탑링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추가 작업들이 필요했다.[18] 1차 프로토타입 3대를 1~3번 차량으로 구분한데 이어서 번호를 붙였다.[19] 단 차체 전면을 완전히 막은건 아니라 조종수가 관측할 수 있는 슬릿 하나는 남겼다. 이 슬릿은 방탄유리 블록으로 막을 수 있게 되었다.[20] 암의 길이가 이전보다 짧아졌고 돌출되었던 암 마운팅들도 모두 차체 안쪽으로 옮겨졌다.[21] 전면부는 주조로 제작한 두께 115mm 장갑으로 만들고 측면은 90mm 균질 압연 장갑으로 이루어질 계획이었다.[22] 보기륜 교체 없이 기존의 거미줄형 보기륜을 계속 사용한 차량들도 있다.[23] 총 연료 적재량이 650L에서 800L로 늘어나면서 주행거리도 늘어났다.[24] T-34의 것과 비슷한 기존 전조등에서 T-54와 유사한 것으로 변경되었다.[25] 반동을 줄인 100mm 주포 시제품. 명칭은 라브렌티 베리야에서 따왔다고 한다.[26] T-44-100이 테스트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는 했지만 무게가 기존 T-44보다 과도하게 늘어나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점들과 같은 한계도 있었다. 덤으로 차체가 100mm 주포의 반동을 완벽히 버텨내지는 못했다.[27] 정확히 하자면 완벽히 둥근 현재 T-54하면 생각나는 그 반구형 포탑은 T-54 49년형부터 장착되었으며 그 이전에 나온 극초기형 T-54의 포탑은 T-44 포탑을 좀 둥글게 깎아놓은 것처럼 생겼다.[28] 물론 T-64가 신기술을 많이 도입하고 생산 초반에 문제가 심각했으나 전차 자체의 문제가 아닌 구동계쪽에 문제였고 이를 수정한 후 잘 써먹었다. 또한 소련이 T-64를 설계하고 난 이후에 진보적인 설계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단지 무너저가는 소련은 그러한 신기술을 꾸준히 연구할 능력이 없었고 군대들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 성향이 합쳐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소련은 IS-3 전차 등 신기술을 걔량해 성공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