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1 14:07:32

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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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nagoyaavec.jpg
사건 당시 가해자들 중 유일한 성인이었던 타카시 켄이치(高志健一, 당시 20세)의 사진

名古屋アベック殺人事件

1. 개요2. 사건3. 가해자들의 이름과 나이4. 재판

1. 개요

1988년 일본 나고야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과 더불어 20세기 일본 최악의 청소년 범죄로 꼽힌다.

미성년자에게 1심에서 사형 판결을 언도한 흔치 않은 사건 중 하나. 아베크(avec)는 프랑스어로 '~와 같이'라는 뜻으로 보통 이 단어만 쓰면 남녀동반을 뜻한다. 참고로 90년대 한국에서는 카섹스를 하는 커플을 '아베크족'(アベック族)이라고 불렀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잦았기 때문에 카섹스 유행은 사그러들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사어화되었다.

2. 사건

1988년 2월 22일, 남자 4, 여자 2의 6인조 10대들이 시너를 흡입하며 널부러져 있다가 그 중 한 명이 강도질을 하자고 꼬드겼다. 2대의 차에 나눠 타서 나고야로 간 이들은 2대의 승용차를 습격해 8만 엔[1]을 털었다. 그 다음엔 오오다카 녹지공원으로 갔다.[2] 23일 오전 4시 반, 주차되어 있는 차 한 대를 발견하고 이 차를 습격해 미용사 노무라 아키요시(野村昭善, 당시 19세)와 여자친구 스에마츠 스미요(末松須弥代, 당시 20세)를 폭행하고 여자인 스미요는 남자 3명이 윤간했다.

얼굴이 들켰으니까 남자는 죽탕쳐 버리고 여자는 팔아넘기자고 19세인 청년이 주장했고, 다들 동의하면서 아이치현 나가쿠테정(長久手町)[3]에 옮겨 노무라를 교살했다.[4] 시체를 자기들의 차 트렁크에 싣고 스미요를 납치해 우에노시(上野市)[a]로 도망갔다. 아침에 사건이 발생한 오오타카 녹지공원에서 부서진 차가 발견되자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24일, 일행은 차에 감금한 스미요를 어찌 할지 고민하다 죽이기로 했다. 노무라와 동일하게 끈으로 목을 졸라 교살한 후, 미에현 아야마군(阿山郡) 오오야마다촌(大山田村)[a] 인근 산에 구멍을 파서 피해자들을 서로 끌어안은 것처럼 만들어 넣은 후 묻는다.

27일 일행 중 2명이 체포되었고, 시체가 있는 곳을 자백하여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3. 가해자들의 이름과 나이

  • 코지마 시게오(小島茂夫, 당시 19세)[7]
  • 토쿠마루 노부히사(徳丸信久, 당시 17세)[8]
  • 콘도 히로유키(近藤浩之, 당시 18세)
  • 타카시 켄이치(당시 20세)[9]
  • 류조지 리에(龍造寺リエ, 당시 17세)[10][11][12]
  • 츠츠이 요시에(筒井良枝, 당시 18세)

이들은 거의 다 야쿠자[13]와 엮여 있었으며[14][15][16], 남성 피해자를 살해한 장소인 나가쿠테정[17]은 원래부터 그들이 소속된 조직에서 애용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4. 재판

1989년 6월 나고야 지방재판소에서 주범 코지마 시게오에게 사형을, 토쿠마루 노부히사(당시 17세) 등 다른 멤버는 형량 순으로 무기징역, 17년, 13년을 선고하고 여자 멤버 2명[18]에겐 5~10년의 부정기형을 내렸다. 이후 항소에서 1심 사형 판결을 파기하고 주범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988년엔 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 두 사건이 이후 소년법 개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 현재 가치로 약 200만 원 이상[2] 그래서 이 사건을 이곳에서 유래된 오오타카 녹지공원 아베크 살인 사건(大高緑地公園アベック殺人事件 おおたかりょくちこうえんアベックさつじんじけん)라고도 칭하기도 한다.[3] 현 나가쿠테시(長久手市)[4] 이때 유일한 성인이었던 타카시 켄이치는 차가 고장나서 수리를 맡기러 갔기 때문에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노무라 아키요시에 대한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a]이가시(伊賀市)[a] [7] 주범격인 범인이다.[8] 다른 주범격인 범인이며, 잔혹성은 코지마 시게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9] 범행 당시 유일한 성인이었다.[10] 이 범인은 스낵바에서 일하고 있다가 손님으로 온 야쿠자의 구성원인 타카시 켄이치를 알게 되어 타카시 켄이치와 사귀었으나, 체포될 당시엔 주범인 코지마 시게오와 사귀고 있었다.[11] 타카시 켄이치가 야쿠자 조직에서 코지마 시게오보다 서열이 낮았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류조지 리에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12] 만기 출소하고 난 후 결혼해서 성씨가 '유키마루 리에(雪丸リエ)'로 바뀌었다.[13] 야마구치구미 계열 코도카이(弘道会) 분파인 소노다구미(薗田組)[14] 이후에 일어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범인들도 야쿠자와 엮여 있었다.[15] 하지만 살인사건을 일으켜 체포되기 전까지의 저지른 범죄 횟수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가해자들이 더욱 많다.[16] 이 사건은 스에마츠 스미요의 전신에 담배를 지지거나 음부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등 잔혹성이 높지만 굳이 잔혹성을 따지자면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쪽이 조금 더 수위가 높은 편이다.[17] 야쿠자 멤버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18] 츠츠이 요시에(당시 18세), 류조지 리에(당시 1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