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6 02:40:18

싯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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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ruby(執權, ruby=しっけん)])

1. 개요2. 역대 싯켄3. 같이보기

1. 개요

가마쿠라 시대정이대장군(쇼군)을 대신하여 막부의 정무를 총괄하던 직책. 한마디로 헤이안 시기 조정의 관백, 무로마치의 간레이, 에도의 다이로처럼 막부의 재상직이지만, 후술하듯 본래 무관직으로 시작했다 군주가 된 쇼군처럼 특정 가문이 독점하고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권력을 확립하게 되면서 사실상의 전제군주화 되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요리토모의 장인 호조 토키마사가 임명된 것이 시초로 이후 호조씨에서 대대로 계승했으며, 요시토키의 대에는 싯켄이 실권을 장악하여 실질적인 막부의 수장이 되었다. 이때의 호조씨 가문은 센코쿠 시대의 호조 가문(후호조씨)과는 다른 가문이다.

즉, 일본의 기존 국가원수인 천황을 대신해 통치하는 쇼군을 대신해 통치하는 싯켄이 일본을 대대로 다스리게 된 셈.

하지만 100년도 못 가 1284년 도키무네 사후부터는 싯켄마저 가신들에게 모든 실권이 넘어가 버린 상태로 영락하다 1333년 멸망을 맞는다. 오히려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 50년이나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1]

130년 내외에 싯켄이 16명이나 있었는데, 이는 상당히 특이한 것으로 종가에서 요절하는 경우가 많아 그 공백을 친척들이 채우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키무네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매우 자주 일어나, 호조씨의 약화로 이어졌다.

고다이고 덴노가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트리고, 고대 시절처럼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로 바꾸기 위해 겐무 신정을 시행하면서 싯켄직은 쇼군, 막부, 관백 등 천황의 권력을 제한하는 관직과 기구를 죄다 폐지하는 바람에 끊겼다.

2. 역대 싯켄

파일:北条氏康の家紋アイコン (1).png
가마쿠라 막부 싯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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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호조 도키마사 호조 요시토키 호조 야스토키 호조 쓰네토키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호조 도키요리 호조 나가토키 호조 마사무라 호조 도키무네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호조 사다토키 호조 모로토키 호조 무네노부 호조 히로토키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호조 모로토키 호조 다카토키 호조 사다아키 호조 모리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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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北条氏康の家紋アイコン.png
가마쿠라 막부의 역대 싯켄
이름 재임기간 비고
1대 호조 도키마사 (北条 時政) 1203 ~ 1205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장인
2대 호조 요시토키 (北条 義時) 1205 ~ 1224 요리토모의 처남. 조큐의 난 제압으로 전권 장악
3대 호조 야스토키 (北条 泰時) 1224 ~ 1242
4대 호조 쓰네토키 (北条 経時) 1242 ~ 1246
5대 호조 도키요리 (北条 時頼) 1246 ~ 1256 1256년 출가. 실권은 계속 장악.[2] 회국 전설[3]
6대 호조 나가토키 (北条 長時) 1256 ~ 1264
7대 호죠 마사무라 (北条 政村) 1264 ~ 1268
8대 호조 도키무네 (北条 時宗) 1268 ~ 1284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9대 호조 사다토키 (北条 貞時) 1284 ~ 1301 도키무네의 아들, 다카토키의 아버지.[4]
10대 호조 모로토키 (北条 師時) 1301 ~ 1311
11대 호조 무네노부 (北条 宗宣) 1311 ~ 1312
12대 호조 히로토키 (北条 煕時) 1312 ~ 1315
13대 호조 모토토키 (北条 基時) 1315
14대 호조 다카토키 (北条 高時) 1316 ~ 1326 1326년 자리에서 물러나고 출가하나 실권은 계속 보유.[5] 실질적 최후 싯켄.[6]
15대 호조 사다아키 (北条 貞顕) 1326 10일간 재임.[7]
16대 호조 모리토키 (北条 守時) 1327 ~ 1333 [8]

3. 같이보기



[1] 보통 국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권신이나 또다른 세력이 득세하면 권력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권신이 급사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권력이 갑자기 쏠리면 국가 역량 쇠퇴 위험과 외부 세력의 침략 위험이 더 높아진다. 하물며 가마쿠라 막부 시기 일본은 본래 군주인 천황의 권력도 유명무실 해진것도 모자라 권신인 쇼군의 권력도 사라지고 또다른 권신인 싯켄의 권력마저 가신들에게 뺏기는 마트료시카식 막장 정치구조가 팽배했으니 일본이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기 어려운 섬나라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권력싸움만 하다가 반란이나 외적의 침입같은 국가적 재난을 당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섬나라에다 아시아에서 변방이었다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이정도로 끝난 것이다.[2] 1263년에 죽었다. 8대 집권 도키무네의 아버지로 도키무네를 다룬 NHK 사극에서 와타나베 켄이 이 인물 역을 맡았다.[3] 廻国伝説. 도키요리는 후대의 미토 고몬 비슷하게 백성의 생활을 살피기 위해 나라를 돌며 암행했다는 전설이 있다.[4] 도키무네가 34세로 죽어 12세로 싯켄이 되었고 이때에 모든 권력은 가신들에게 완전히 넘어간다. 성년이 되어서도 정사를 포기하고 일체 권력에 관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도키요리처럼 회국전설이 있기는 하나 이미 막부의 권위가 떨어져서 큰 효과는 없었던 듯하다. 그래도 호조씨를 끝낸 아들 다카토키만큼은 평이 나쁘진 않다.[5] 뒤의 두 사람은 바지사장이고, 다카토키가 1333년 패하여 자살하면서 가마쿠라 막부도 호조가문도 끝이 난다. 편의상 실권 보유라곤 했지만, 다카토키는 취임 시 꼴랑 13세로 그의 일생 전체에서 실권은 가신 나가사키 엔키의 손에 있었고 엔키는 호조가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한다.[6] 그의 아들이 호조 가문 재흥을 위해 나카센다이의 난을 일으킨 호조 토키유키이다.[7] 사다아키 자신은 별로 특기할 게 없지만, 그 아들인 호조 사다유키는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멸망해가는 호조가를 지키기 위해 제법 잘 싸웠으며, 호조가가 끝난 1333년 음력 5월 22일 다카토키는 그를 로쿠하라 탐제로 임명했는데 일설에는 싯켄으로 임명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날 사다아키는 싸우다 죽고 다카토키 등은 자살해서 의미는 없으나, 사다유키가 17대 싯켄이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8] 여동생이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아내였으나 그녀는 오빠를 배신하고 남편에게 붙었다. 호조가가 망하기 며칠 전 전사했다. 그래서 위의 사다아키의 아들 사다유키가 죽기 얼마 전 싯켄직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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