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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21대 천황 유랴쿠 천황 雄略天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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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F001F><colcolor=#dca600> 출생 | 418년 10월 | ||
사망 | 479년 9월 8일 (향년 60세) | ||
재위기간 | 제21대 천황 | ||
456년 12월 25일 ~ 479년 9월 8일 | |||
능묘 | 다지히노타카와시노하라노릉 (丹比高鷲原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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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 시호[2] | 오오하쓰세와카타케루노미코토 오오하쓰세와카타케(大泊瀬幼武尊) 와카타케루노미코토(幼武尊)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3] 大長谷若建命,大長谷王[4] | ||
휘 | 오오하쓰세와카타케(大泊瀬幼武), 무(武) | ||
아버지 | 인교 덴노 | ||
형제자매 | 안코 덴노 | ||
자녀 | 세이네이 덴노 | ||
황거 | 하츠세노아사쿠라노미야(泊瀬朝倉宮) | }}}}}}}}} |
1. 개요
일본의 제21대 천황.시호는 오하쓰세와카타케루노미코토(大泊瀬幼武尊)였다. 《고사기》에서는 大長谷若建命, 大長谷王으로 표기하며, 대악천황(大悪天皇), 유덕천황(有徳天皇)이라고도 한다. 왜5왕 중 무(武)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제19대 인교 덴노의 아들로 제20대 안코 덴노의 동생이었다.
2. 행적
《일본서기》 및 《고사기》에 의하면, 안코 덴노가 재위 3년 만에 마요와 왕(眉輪王)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5].태자 시절의 이름은 오하쓰세 황자(大泊瀨皇子)였다.
안코 덴노는 제16대 닌토쿠 덴노의 아들로 자신의 숙부였던 오쿠사카 황자(大草香皇子)에게 황자의 누이동생인 쿠사카노하타비히메 황녀(草香幡梭姫皇女)를 안코 덴노의 친동생이었던 오하쓰세 황자(즉 유랴쿠 덴노)의 비(妃)로 삼을 것을 명령했다.[6]
중개역을 맡았던 네네노 오미(根臣)가[7]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황자가 보낸 '오시키노 다마카쓰라'(押木玉鬘)[8]를 탐내어 일부러 안코 덴노에게는 '오쿠사카 황자가 거절했다'라며 거짓으로 말을 꾸며 전했다.
이에 격노한 안코 덴노는 오쿠사카 황자를 죽이고 그의 아내였던 나카시노히메노미코토(中蒂姫命)를 자신의 황후로 삼아버렸다. 마요와 왕은 나카시노히메가 오쿠사카 황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이 사건은 마요와 왕이 부친의 원수인 안코 덴노를 암살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전한다.
형 안코 덴노의 암살을 알게 된 오하쓰세 와카타케루는 자신의 형제들을 의심하여 야쓰리노시로히코 황자(八釣白彦皇子)를 죽이고, 이어서 사카이노쿠로히코 황자(坂合黒彦皇子)와 마요와 왕을 죽이려고 했다.
두 사람이 오오미(大臣)였던 카츠라기노 쓰부라(葛城円)의 저택으로 도망쳐 숨자 오하쓰세는 저택에 불을 질러 이들 두 사람은 물론 카츠라기노 쓰부라도 태워 죽였다.
사촌 형제였던 이치노헤노오시하 황자(市辺押磐皇子)·미와노 황자(御馬皇子) 형제도 살해하여 자신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그 해 11월 오오키미(대왕)가 되었다.
즉위한 뒤 유랴쿠 덴노는 쿠사카노하타비히메 황녀에게 구혼하러 가는 도중에, 시키노 아가타누시(志貴県主)의 저택이었던 '가쓰오키'(鰹木)에 올라가 베를 두른 흰 개를 손에 들었다. 이것을 혼인선물로 하여 쿠사카노하타비히메를 황후로 맞았다.
즉위 후에도 사람을 처형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나중에 대악천황(大惡天皇)이라는 혹평을 받았다고 하나, '대악천황'이란 기술은 부레쓰 덴노 조에도 보이므로,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헤구리노 마토리(平群真鳥)를 오오미(大臣, 대신), 오오토모노 무로야(大伴室屋)와 모노노베노 메(物部目)를 오무라지(大連, 대련)로 삼고, 군사력으로 전제왕권을 확립한 오오하쓰세노와카타케루노 오오키미(유랴쿠 덴노)는 연합적으로 이어져 있었던 주변 지역의 소왕국들을 자신의 야마토 왕권하에 복속시키려고 했다.
특히 당시 최대의 지역 정권이었던 기비(吉備)씨를 반란 진압이란 명목으로 토벌했다.
기비씨의 난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기비노 시모쓰미치노오미 사키쓰야(일본어: 吉備下道臣前津屋)나 기비노 가미쓰미치노오미 다사(일본어: 吉備上道臣田狭)의 '반란'을 군사적으로 토벌하고, 기비씨 정권의 약체화를 추진하여, 오오키미 사후에는 기비 씨족을 외가로 둔 호시카와 황자(星川皇子)의 난을 오토모노 무로야 등이 진압함으로써 야마토 대왕권의 우위를 결정짓게 한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따로, 469년 하리마(播磨)의 아야시노 오마로(文石小麻呂), 474년 이세(伊勢)의 아사케노 이라쓰코(朝日郎)를 군사적으로 토벌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야마토 왕권(왜)에서 '오국'(吳國)이라 불리던 남북조 시대 중국의 남조 유송(宋)으로부터 수공업자인 아야하토리(漢織), 구레하토리(吳織) 등을 초빙했으며, 흩어져 있었던 하타 씨(秦氏, 진씨, 신라계 도래인으로 추정) 백성에 대한 통솔을 강화하고 양잠업을 장려했다고 한다.
재위 22년 1월 1일(478년 2월 18일), 아들인 시라카 황자(白髪皇子, 훗날의 세이네이 덴노)를 황태자로 삼고, 이듬해인 8월에 병으로 붕어했는데, 오오키미의 사망은 오오키미 재위 23년째 일로서 서력으로 환산하면 479년의 일이지만, 중국의 기록인 《양서》(梁書)의 양무제 천감(天監) 원년(502년)에 '무'(武)라는 이름의 왜왕을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 진호(進號)한 기록이 있다. 이 왜왕 무를 오하쓰세 오오키미, 즉 유랴쿠 덴노로 비정하는 견지에서, 실제 오오키미의 사망 시기가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적힌 것보다 나중의 일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애초에 왜왕 무를 유랴쿠 덴노로 비정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9]
왜왕 무를 유랴쿠 덴노로 보는 견해는 이나리야마 고분 철검에서 유랴쿠 덴노를 가리키는 말로 생각되는 '와카타케루'(獲加多支鹵大王, 幼武尊)에서 '武'(무)만을 따온 것으로 여긴다.
왜왕 무를 유랴쿠 덴노로 볼 수 없다는 견해는, 유랴쿠 덴노의 재위 기간은 456년에서 479년인데 무(武)가 478년 유송에 보낸 상표문(上表文)에서 당시 자신이 아버지의 상중임을 밝히고 있어 456년에 즉위한 유랴쿠 덴노와는 일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유랴쿠 덴노의 아버지인 인교 덴노는 453년에 사망했으나 왜왕 무(武)의 아버지는 478년에 사망했으므로 유랴쿠 덴노와 무(武)는 동일 인물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유랴쿠 덴노의 이전 4명의 천황 역시 각각 《송서》(宋書)에 나오는 찬(讚), 진(珍), 제(濟), 흥(興)과 동일 인물일 수가 없다.
유랴쿠 덴노 이후 천황은 한동안 고고학적,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3. 대악천황(大悪天皇)
《일본서기》에서는 사람을 자주 처형했다고 하여 사람들로부터 대악천황(몹시 나쁜 천황)으로 비난받았다고 나온다. 이 혹평은 훗날 제25대 부레쓰 덴노에게도 보이는 평가로 《일본서기》의 유랴쿠 덴노와 부레쓰 덴노는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부레쓰 덴노의 시호는 오하쓰세, 와카라는 말이 겹친다.[10]《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사냥을 나간 천황이 멧돼지를 보고 쏘아 죽이지 못하는 부하를 죽이려고 하자 옆에서 황후가 "지금 멧돼지를 먹자고 부하를 죽이는 것은 승냥이나 이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라며 말렸다고 한다.
승냥이[11]나 이리를 잔인한 사람에 빗대는 것은 《후한서》에도 기술되어 있기에 이러한 일화는 후대의 창작일 수도 있지만, 유랴쿠 덴노에 대한 영 좋지 않은 당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아가 앞서 설명한 쿠사카노하타비히메 황녀를 비롯해 오오키미의 왕후 및 왕비의 결정은 주로 그 친정이 주벌당한 뒤에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유력한 왕족이나 호족들을 숙청하고 그 잔당을 포섭해 야마토 대왕권에 통합시키기 위해 왕비로 삼았다는 것이다.
안코 덴노가 대왕권의 강화를 위해 왕족들을 억압하던 방식을 그대로 배웠을 뿐 아니라 유력 호족들에게까지 그 방식을 확대 적용함으로써 대왕권의 강화를 하는 과정에서 숙청된 왕족과 호족의 원망이 유랴쿠 덴노를 '폭군'이라고 한 기술 속에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랴쿠 덴노가 이런 광기 어린 수준의 행적을 보였던 이유는 다름 아닌 '왕위계승 일원화'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 이후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대왕위 계승이 부계 조상을 공유하는 단일 씨족으로 일원화된 시기는 다름 아닌 리추 덴노-한제이 덴노-인교 덴노 형제기에 가서였고, 그 이전에는 서로 인척지간이었을 뿐인 비혈연 계승이 주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12] 옛 고구려 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 형제가 그랬듯이 이들은 친형제가 아니라 항렬이 같을 뿐인 친척 형제로 추정되지만 이런 '세대주의적 계승'을 통해 왕계가 일원화되기 시작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세대주의적 계승원리'는 한 씨족의 힘을 집결시켜 다른 씨족들을 밀어내고 왕계를 일원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이내 대왕위를 둔 한 씨족 내의 분란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인교 덴노 사후 장남인 키나시노카루 황자가 여동생 또는 계모인 소토오리노이라츠메와의 간통 사실이 발목을 잡혀 3남인 안코 덴노가 즉위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원래 계승권자인 카나시노카루 황자가 사고 친 것을 이용해 안코 덴노가 카나시노카루 황자를 밀어내고 대신 즉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왕위계승의 불안정성을 초래했고,[13] 이런 상황에서 안코 덴노가 전대 대왕가였던 닌토쿠 덴노의 아들인 오오쿠사카 황자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다가 그 아들인 마요와 왕에게 죽이는 사고를 치면서 안코 덴노가 마요이 왕에게 죽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14]
이런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대왕위에 오른 것은 유랴쿠 덴노였고, 유랴쿠 덴노는 자신의 왕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닌토쿠계는 물론이고 자신보다 부계 서열이 더 높은 종친들을 몰살시킨 것으로 추정된다.[15] 이러한 행적은 당연히 반발을 사기 쉬웠고, 유랴쿠 덴노 사후 친아들이나 3촌 조카로 추정되는 세이네이 덴노 사후 유랴쿠의 직계가 아니라 유랴쿠의 대숙청에서 살아남았던 6촌 형제인 겐조 덴노와 닌켄 덴노의 즉위라는 결과를 부른 듯하다. 닌켄 덴노의 뒤를 이은 부레쓰 덴노는 18세에 죽었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유년에 즉위한 것이 발목을 잡혀 10촌 형제였던 게이타이 덴노에게 왕위를 빼앗긴 듯하고, 결국 게이타이 덴노의 사후에야 안칸 덴노-센카 덴노-긴메이 덴노라는 친형제 계승으로 단일화된다.
유랴쿠 덴노와 안코 덴노간의 정확한 관계는 불확실하다. 안코 덴노 또한 키나시노카루 황자와 달리 인교 덴노의 친아들인지 불확실함을 고려하면 유랴쿠 덴노도 인교 덴노의 친아들이 아니라 친척 조카일 가능성도 있다. 송서 478년에 유랴쿠 덴노로 비정되는 왜왕 무(武)가 보낸 국서에 따르면 과거 고구려가 변방을 공격하여[16] 자신들을 노략질해 아버지인 제(濟)가 이에 맞서고자 했지만 아버지와 형이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하는데, 송서 왜5왕의 기록과 인교 덴노-안코 덴노-유랴쿠 덴노에 대한 국내 기록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음을 고려하면 유랴쿠 덴노는 안코 덴노의 친동생이 아니라 친척 동생이었고, 유랴쿠의 친아버지와 형은 고구려와 싸우다가 전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왜5왕 기록에 따르면 왜왕 제(濟)는 전대인 진(珍)과 무슨 관계였는지 정확히 남아있지 않으며, 462년에 세자(世子)인 흥(興)에게 '살아있을 때 작위를 계승하였고'(병이 심했다는 중국 기록을 고려하면 중병 때문으로 추정된다) 377년 흥이 사망하여 동생인 무(武)가 왕위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반면 일본 기록에서는 인교 덴노 사후 원래 계승자였던 키나시노카루 황자가 근친상간 논란으로 인해 변방에 유배당하고 동생인 안코 덴노가 즉위하였으며, 454년 안코 덴노가 닌토쿠 덴노의 아들인 오오쿠사카 왕자(大草香王子)를 죽이고 그 아내인 나카시히메(中蔕姬)를 아내로 삼자 오오쿠사카 왕자와 나카시히메의 아들인 마요와 왕(眉輪王)이 안코 덴노를 죽였고, 안코의 동생인 유랴쿠 덴노가 마요와 왕은 물론이고 친형제들과 4촌 형제들까지 마구잡이로 죽인 끝에 457년 즉위하였다고 기록했다. 일본서기의 기년 인상을 배제하고 봐도 제-흥-무의 계승 과정과 인교-안코-유랴쿠의 계승 과정에는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데, 당대 일본이 중앙집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왜왕 제와 왜왕 흥이 인교 덴노-안코 덴노와 타인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4. 한국사와의 관계
453년 11월, 대박뢰황자(大泊瀨皇子)[17]로 불리던 시절, 인교 덴노가 죽고 신라측에서 사신을 보내어 조문을 해오자, 신라측 사신이 후궁과 정을 통했다는 잘못된 전언을 듣고, 그 신라인을 가두어 고문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신라측과 신라 사신이 원망하여 왜국에 바치는 공물을 줄였다고 적혀 있다.《일본서기》는 유랴쿠 덴노 8년 2월에 일본부(日本府)의 군대가 고구려(高句麗)를 쳐부수고, 이듬해인 9년 5월에 다시 신라를 공격했으나, 장군인 기노 고유미(紀小弓)가 전사하는 바람에 패주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유랴쿠 덴노 8년은 서기로 환산하면 464년인데, 《삼국사기》<신라본기>에 의하면 왜인의 침공은 자비 마립간 5년(462) 5월과 6년(463) 5월에 있었고, 앞서의 침략에서는 활개성(活開城)이 왜인에게 함락당해 신라인 1,000명이 잡혀가기도 했지만, 결국 이듬해(463) 다시 왜인이 삽량성(歃良城)을 치다가 벌지(伐智)와 덕지(德智) 두 장군의 매복 작전으로 패퇴함으로써 신라가 왜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전하고 있다.
20년에 고구려가 한성백제(百濟)를 쳐서 개로왕을 처형하고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을 때, 백제의 나머지 군사들을 모두 죽이자는 권고에 장수왕이 말했다.
"백제는 일본 천황의 관가로서 그 유래가 오래되었는데 지금 그것을 멸망시킨다면 천황의 노여움을 살 것이다.
결국 고구려군이 백제의 군사들을 몰살시키는 것은 그만두었다. 이후 21년에 오하쓰세노 오오키미가 임나(任那)의 하치호리현에 속한 구마나리(久麻那利)의 땅을 백제에게 내주어 백제를 부흥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실제 《삼국사기》에 따르면 장수왕의 한성 공략과 개로왕 서거는 475년 9월에 있었고, 개로왕의 뒤를 이은 문주왕은 그 해에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또한 479년 4월에 백제의 삼근왕(三斤王)이 사망하자 당시 왜에 인질로 있었던 부여곤지의 둘째 아들인 말다(末多, 동성왕)에게 츠쿠시(筑紫)의 병사 500명을 주어 귀국을 도왔을 뿐 아니라 그 병사를 이끌었던 아치노오미(安致臣)·우마카히노오미(馬飼臣) 등이 수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토벌했다고 전하고 있다.[18]
백제 측에서 귀인 모니부인의 딸 적계여랑(適稽女郞)[19]을 궁녀로서 왜국에 보냈는데 이시카와노 타테(石河 楯)라는 남자와 간통하다가 발각되어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를 소위 우네메(采女) 사건이라고 한다.[20]
5. 가계
- 황후: 쿠사카노하타비히메 황녀(草香幡梭姫皇女) - 닌토쿠 덴노의 딸
- 왕비: 카츠라기노 카라히메(葛城韓媛) - 카츠라기노 츠부라(葛城円) 오오미(大臣)의 딸
- 3남: 세이네이 덴노
- 딸: 다쿠하타히메노히메 황녀(栲幡姫皇女)
- 왕비: 키비노 와카히메(吉備稚媛) - 키비노 시모츠미치노 오오미의 딸로, 원래 키비노 카미츠미치노오미타사(吉備上道臣田狭)의 아내였다. 유랴쿠 덴노는 키비노 카미츠미치노오미타사가 미녀로 자자한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는 것을 듣고, 그를 다른 지방으로 파견보낸 후 와카히메를 취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이 때문인지 와카히메는 유랴쿠 덴노가 죽은 뒤에 아들 호시카와카미야 황자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한다.
- 아들: 이와키 황자(磐城皇子) - 겐조 덴노의 황후 나니와노오노노미코(難波小野王)의 할아버지
- 아들: 호시카와노와카미야 황자(星川稚宮皇子) - 어머니에게 설득당한 그는 어머니의 말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화재로 인하여 본인과 와카히메,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많이 불에 타 죽었다. 와카히메의 전남편 키비노 카미츠미치노오미타사는 호시카와노와카미야 황자를 돕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가고 있었는데 사망 소식을 듣고 회군했다.
- 왕비: 와니노와라와키미(和珥童女君) - 카스가노와미미노오미후카메(春日和珥臣深目)의 딸
- 딸: 카스가노오이라츠메 황녀(春日大娘皇女) - 닌켄 덴노의 황후
세이네이 덴노에겐 자식이 없었으며, 후에 유랴쿠 덴노의 증손녀 나니와노오노미코와 혼인한 겐조 덴노도 자식이 없었기에 유랴쿠 덴노를 부계로 하는 황통은 단절되었다. 하지만 딸인 카스가노오이라츠메 황녀가 제24대 닌켄 덴노의 황후가 되어 낳은 딸 타시라카 황녀가 긴메이 덴노를 낳음으로서, 모계를 통해 현재의 일본 황실까지 이어지고 있다.
==# 천황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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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왕궁 및 능묘
유랴쿠 덴노의 수도는 긴키(近畿)의 하쓰세노아사쿠라노미야(泊瀬朝倉宮)로, 이나리야마 고분(稲荷山古墳)에서 출토된 금착명철검에 보이는 '시키노미야'(斯鬼宮, 磯城宮)가 아사쿠라노미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21].전승지는 지금의 일본 나라현(奈良県) 사쿠라이시(桜井市)의 쿠로사키{黒崎, 일설에는 이와사카(岩坂)}인데, 1984년에 시의 하키모토(脇本)에 있는 하키모토 유적에서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굴립주혈(掘立柱穴)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아사쿠라노미야 유적이라 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후 한동안 하츠세(初瀬)에 천황의 거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한편 《일본영이기》(日本霊異記)에는 이와레노미야(磐余宮)에도 있었다고 한다.
사후 유랴쿠 덴노는 다지히노타카와시노하라노미사사기(丹比高鷲原陵)에 묻혔다. 오사카 부(大阪府) 하비키노시(羽曳野市)의 시마이즈미(島泉)에 있는 시마이즈미마루 산 고분(島泉丸山古墳, 둥근 부분 둘레 76m)과 히라츠카 고분(平塚古墳, 네모난 부분 둘레 50m)으로 비정된다. 현의 마츠바라시(松原市)의 니시오쓰카(西大塚)와 하비키노시의 미나미에가노쇼(南恵我之荘)에 걸치는 가와치 오츠카 산 고분군(河内大塚山古墳, 전방후원분으로 전체 길이 335m)이라는 설도 있으나, 하니와(埴輪)가 없는 점 등의 특징으로 미루어 전방후원분 종말기의 것일 가능성이 높고, 유랴쿠 덴노의 사망 시기와 그 축조 연대에는 수십 년이나 차이가 난다.
《고사기》에는 제23대 겐조 덴노의 아버지 이치노헤노오시하 황자의 복수를 위해 오오케노미코토(意祁命, 훗날의 24대 닌켄 덴노)가 몸소 유랴쿠 덴노의 무덤 일부를 파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서기》에도 겐조 덴노가 유랴쿠 덴노의 능을 파괴하려 했으나 동궁의 만류로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아 겐조 덴노가 유랴쿠 덴노의 능을 훼손시키려고 한 시도는 있었던 모양이다.
7. 기타
중국 사서인 《송서》와 《양서》에는 왜왕 무가 주변 여러 국을 공략하고, 세력을 확장한 양상이 표현되어 있는데, 구마모토현 다마나 군 나고미 정의 에타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은 상감 철검 명문과 사이타마현 교다시의 이나리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금착명(金錯銘) 철검 명문에 나오는 '獲加多支鹵大王'(획가다지로대왕)이라는 명칭은 '幼武尊'(와카타케루노미코토)의 음을 따서 적은 것으로 해석되어, 유랴쿠 덴노는 고고학적으로 실존이 증명되었다.아마테라스 여신을 모시는 이세 신궁(伊勢神宮)의 외궁(外宮)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세 신궁은 본래 제11대 스이닌 덴노가 만든 것이라고 하며, 이전 시기부터 내려오던 것이었다.
원래 도요우케노오카미(豊受大神)는 카츠라기씨가 섬기던 신으로 카츠라기씨가 몰락한 뒤 제대로 섬겨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숭경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단바국에서도 모시고 있었던 것을 유랴쿠 덴노 22년, 즉 서거 1년 전에 외궁을 세워 수습하기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
도요우케노오카미와 이름이 비슷한 이이토요노스메라미코토(飯豊天皇)는 그 여진 속에서 정무를 맡았을 가능성도 있다.
유랴쿠 덴노의 황녀로서 재궁(斎宮)이 되었다는 다쿠하타히메(栲幡姬)가 유에(湯人, 왕자녀의 목욕 등을 맡은 직책) 다케히코(武彦)의 아이를 가졌다는 아베노오미 구니미(阿閇臣国見)의 참언 때문에 무죄를 호소하며 자결한 사건이 《일본서기》 유랴쿠 3년 4월 조에 실려 있는데, 황녀의 어머니인 카츠라기노 가라히메가 아버지 카츠라기노 쓰부라에 의해 즉위 이전의 유랴쿠 덴노에게 비로서 바쳐졌다는 기사로부터 약 3년 뒤에 벌어진 일로서, 바쳐지기도 전에 가라히메가 다쿠하타히메를 낳았다는 것은 연대상 맞지 않으며, 오히려 앞에서 기록한 참언 사건이 외궁의 건립과 연대가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또한 아베노오미 구니미는 참언이 거짓으로 드러난 뒤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으로 달아났다.
《고사기》에는 즉위 전의 유랴쿠 덴노를 '오오하쓰세노미코'(大長谷王)로 표기한 것이 자주 보이는데, 통상 즉위 이전의 천황을 '미코토'(命)라 부르는 《고사기》에서 '미코'(王)라는 칭호가 쓰인 것은 이례적이다.
유랴쿠 덴노의 치세는 당대 치고는 길었지만, 그에 대한 일화를 보면 가족들을 죽이며 대왕위를 차지하고, 유지를 위해 누구든지 죽이는 그 모습에서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비정하고 뒤숭숭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휘(이름)가 아닌 왕이 죽은 뒤 왜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3] 이나리야마 고분 철검.[4] 《고사기》[5] 《고사기》에는 당시 7세였다고 하나 이것은 오기인 듯하다.[6] 오쿠사카 황자와 쿠사카노하타비히메 황녀는 오하쓰세 황자에게는 숙부와 고모뻘이 되었다.[7] 《일본서기》에 사카모토노 아손(坂本臣)이라는 집안의 시조로 기록된 인물이다.[8] 고대 일본의 장신구로 많은 구슬을 꿰어서 머리에 걸도록 만든 것이다. '금동관'이라고도 한다.[9] 그러나 479년과 502년 책봉은 신왕조 개창 기념으로 남제나 양나라가 각각 일방적으로 진호를 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단순히 저 두 기록만으로는 479년 이후로도 왜왕 무가 집권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10] 한자는 다르지만, 그렇게 따지면 와케 계열도 한자는 다 다르고, 당시에는 자국말을 한자로 음차해 썼다.[11] 특히 승냥이의 경우에는 왜5왕 중 유라쿠 덴노와 동일인물로 추정되는 '무'(武)가 송나라에 보낸 상표문에서 고구려를 승냥이와 이리에 빗대어 비하하기도 했다.[12] 그 이전에도 같은 씨족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즉위가 확인되기는 하나 3대를 넘어가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13] 고구려는 왕계가 일원화된 신대왕 이후 고국천왕&산상왕 형제가 즉위했고, 백제는 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진사왕, 신라는 내물 마립간&실성 마립간(5촌/동서)-눌지 마립간(아들/사위)-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지증왕(6촌) 순으로 직계 축소가 빨랐다.[14] 다만 마요이 왕은 사서에서 유랴쿠 덴노의 추궁에 대해 "천황 자리에는 관심 없고 그저 아버지의 복수를 한 것뿐"이라 대답했고 사카이노 쿠로히코 황자(인교 덴노의 차남이자 유랴쿠 덴노의 형)가 그 말을 듣고 도움을 요청하자 같이 츠부라노 오오미(圓大臣) 집에 도망친 것을 고려하면 마요이 왕은 순수하게 복수가 목적이었던 듯하며 인성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결국 분노한 유랴쿠 덴노가 츠부라노 오오미의 집을 불태우면서 다 같이 불태워 죽이지만.[15] 이는 나이의 여부와 상관없이 선대의 서열이 더 높다는 뜻이다.[16] 유랴쿠 덴노가 보낸 국서에서 '백제'를 따로 지칭하기 때문에 고구려가 일본 열도로 쳐들어가 약탈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있다.[17] 물론 실제로 당대에 황태자였을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교 덴노가 죽고 대왕위에 즉위하는 사람은 그의 이복형인 안코 덴노이기 때문이다.[18] 《삼국사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19] 고대 일본어로 '챠쿠케이에하시토'라는 훈이 달렸는데 '챠쿠케이'는 '적계'를 그냥 음독한 것이지만 '에하시토'는 현대의 '아가씨'와 관련된 고대 한국어의 백제어로 추정된다. 여기서 '에하시토'야 당연히 존칭이고, '적계'는 본명이거나 별명 혹은 존칭을 나타낸 것이 된다. 부여적계에게는 일본측에 의해 '이케츠히메'(池津媛)라는 '못의 여인' 혹은 '못의 공주'라는 뜻의 별명이 주어졌다.[20] '우네메'란 일본 궁중에서 천황과 황후의 식사 등의 자잘한 가사를 가까이서 도맡던 궁녀의 직급이다. 즉 부여적계에겐 우네메의 직급이 주어졌다.[21] 따로 카와치 국의 시키(志紀), 즉 지금의 오사카부 야오시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