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0 18:19:29

지증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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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갈문왕 | 至都盧 葛文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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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전경
출생
(음력)
437년
사라 서라벌 사탁부[1]
사망
(음력)
514년[2] (향년 77세)
신라 서라벌
능묘 천마총(天馬塚) (추정)
재위기간
(음력)
신라 마립간
500년 11월[3] ~ 503년 10월 (2년 11개월)
신라 제22대 국왕
503년 10월 ~ 514년 (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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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로(智大路) / 지도로(智度路) / 지철로(智哲老)
지정(智訂) / 지증(智證)[4]
부모 부왕 습보 갈문왕
모후 조생부인 김씨
형제자매 김아진종[5], 소지왕의 왕후
왕후 연제부인 박씨
자녀 왕자 김원종, 김입종, 김진종(?)
왕녀 어사추(?)[6]
신체 160cm 내외[7], 34.5~36cm[8]
시호 지증대왕(智證大王)[9]
존호 지도로 갈문왕(至都盧 葛文王)[10]
별호 지증 마립간(智證 麻立干)
지정 마립간(智訂 麻立干) }}}}}}}}}
파일:external/times.postech.ac.kr/8332_23479_544.jpg
포항 냉수리 신라비

1. 개요2. 배경3. 생애4. 기타5. 《삼국사기》 기록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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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년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창업하신 이래로 국호가 정해지지 않아 혹은 '사라'라 일컫고, 혹은 '사로'라 일컬었으며, 혹은 '신라'라고도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신'이란 글자는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라는 글자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니,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또 예로부터 나라를 가진 이들을 보면 모두 '제'나 '왕'을 일컬었으니,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워 지금에 이르기까지 22세 동안 단지 우리 말로만 왕호를 일컫고 정식 칭호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신라 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그대로 좇았다.
신라의 제22대 임금. 무려 63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증왕보다 고령으로 즉위했다고 알려진 왕으로는 일성 이사금이 있으나, 건국 초기의 기록인지라 확실하다고 보기 어려워 신라의 왕으로는 사실상 최고령 즉위자라고 볼 수 있다. 한국사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인데 백제 혜왕의 기록을 역추적하면 60대 중반에 즉위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생년이 확실하지 않다.[11] 또한 고구려 차대왕, 신대왕이 각각 75세(차대왕) 및 76세(신대왕)에 즉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생년에 논란이 있어 지증왕보다 고령이었는지 논란이 많다.[12]

2. 배경

늦게 왕위에 올랐지만 14년을 재위하고 승하한 나이가 77세로, 당시로는 장수했고 지금 기준으로도 천수를 누린 나이로 볼 수 있다. 이름인 '지철로(智哲老)'에서 한자 哲의 원음은 /tiet/에 가까워 "톗"에 가까운 발음이었고, 종성 ㄷ과 ㄹ의 전호 현상을 감안하면 다른 표기인 '지대로(智大路)', 지도로(智度路) 등과 큰 차이가 없다. 신라의 상대등과 유사한 관직인 상신(上臣)의 훈을 《석일본기》에서 '마카리타로(萬加利陁魯)'라고 써 놓은 점을 감안하면 '등'의 당시 음이 '타로'에 대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증왕의 '증(證)'자는 '대로' 또는 '도로'에 가깝게 읽혔을 것으로 보인다.

내물 마립간후손인데 이에 대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에 다른 점이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내물 마립간의 증손자이자 습보(習寶) 갈문왕[13]의 아들, 《삼국유사》에서는 눌지 마립간의 동생 기보(期寶)[14] 갈문왕의 아들로 나온다. 지증왕의 어머니는 눌지 마립간의 딸 조생부인(鳥生夫人)인데 오생부인(烏生夫人)이라고도 한다. 맨 앞의 한자만 다른데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리기 쉽다. 한 획이 있냐 없냐의 차이기 때문.

기보 갈문왕은 소지 마립간장인이기도 하다. 지증왕은 부계만 봤을 때 《삼국사기》에서는 소지 마립간의 6촌, 《삼국유사》에서는 소지 마립간의 5촌이며 처남이 된다. 지증왕이 내물 마립간의 증손자인지 손자인지에 대해서는 보통 《삼국사기》 기록이 옳다고 보며, 보통 기보 갈문왕과 습보 갈문왕은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 문제는 소지 마립간의 장인과 관련된 기록인데 이건 보통 《삼국사기》 내용 기준으로 보기에 습보 갈문왕이 소지 마립간의 장인이라고는 설명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역사학계에서는 기보 갈문왕과 선혜부인의 아버지 내숙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낮게 본다. 《삼국유사》 내용이 틀렸다고 보거나 소지 마립간이 왕비를 두 번 맞이했다고 보는 편. 다만 후자의 경우 벽화부인까지 합쳐 소지 마립간의 왕비가 3명이나 되어버리는 문제가 생겨서 일반적으로는 내숙/잉숙의 딸이라고 서술한 《삼국사기》의 내용을 정설로 본다.

어찌 되었든 눌지 마립간의 직계가 끊긴 이후, 왕위에 오르는데 이미 눌지 마립간 이후 왕들이 복호와 미사흔의 딸과 손녀를 왕비로 맞아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지증왕 역시 이미 왕비족의 일원으로 어느 정도 왕실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소지 마립간의 사후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소지 마립간의 경우 최후가 불분명하고[15] 지증왕이 상당히 연로한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점을 감안한다면 아래의 연제부인 설화나 이후 박씨들이 왕비족으로 꽤나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즉위는 박씨 가문의 영향력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해보자면 지속적으로 미사흔계에게 왕비 배출 가문이 밀리고 있던 복호계의 수장으로 박씨 가문과 손 잡고 신라 왕위를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아들이 없었던 소지 마립간에게 아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16]이었기에 여러모로 급박하게 일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

재위 도중에 신라 임금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으로 바꾸었기에 보통은 지증왕이라고 하지만 간혹 지증 마립간이라고도 한다. 왕비인 연제부인과의 사이에서 법흥왕김입종 등을 두었고, 1814년에 건립한 경순왕전비에서는 원성왕의 직계 선조로 나오는 김진종이 나온다.[17][18] 즉위했을 당시 고령이라서 업적 중 상당수도 지증왕 대신 젊은 아들 법흥왕이 태자로서 권력을 가지고 미리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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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파일:천마총 입구.jpg
  • 왕릉은 문헌상 비정되는 곳은 없으나, 현대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대릉원천마총이 바로 지증왕의 왕릉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 신라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할 때도 절대로 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왕이지만, 사극에선 주인공은커녕 조연으로도 나온 적이 없다.
  • 2017년 5월, 국내 최초로 경주 월성 서쪽 성벽의 기초층에서 인신공양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발굴됐다. 6세기 지증왕 때까지 순장을 했으니 인신공양 문화 자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실제 근거가 밝혀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무려 1자 5치나 되어 마땅한 신붓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19] 그래서 왕은 각 지방에 사자를 보내 배필을 수소문하였다. 어느 날 한 사자가 모량부에 도착해 동로수(冬老樹) 아래에 쉬고 있는데, 2마리가 크기가 북만 한 똥덩어리를 양쪽에서 물고 다투고 있었다. 사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 변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한 소녀가 아뢰었다.

"이것은 모량부 상공 어른의 따님께서 빨래를 하다 숲속에 숨어서 눈 변입니다."

사자가 그 집을 찾아가 소녀가 말한 처녀를 보니 키가 7자 5치[20]나 되었다. 사자는 왕에게 그 사실을 갖추어 아뢰었고, 왕은 수레를 보내 그 여자를 궁중으로 불러 황후로 삼았다.
삼국유사》 〈기이〉 中 지철로왕 #
  • 상징적인 설화인데다가 왕의 신체적 위엄을 내세우는 기록이므로 실제로도 큰 편이었다 해도 부풀렸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크기를 기반으로 하되 왕의 위대함을 신격화하기 위해 과장해서 퍼뜨린 전설이라는 것. 단위의 차이라고 하기엔 바로 아래에서 연제부인의 키가 7자 5치라고 소개되는데 1자 5치라면 연제부인 키의 1/5이나 된다. 연제부인도 1자 = 23~24cm를 적용해 170cm대 후반이라는 고대 여성 기준으로는 어마무시하게 큰 키였다는 것이 정설인데 이걸 그대로 1자 5치에 적용하면 34~36cm나 된다. 아무리 연제부인이 덩치가 컸더라도 자신의 1/5이나 되는 길이를 감당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현실적인 요소를 대입해보면 연제부인의 키는 아예 왕비로 옹립하기 전이나 후에 키를 재거나 옆에 비슷한 키를 가진 사람이나 물건을 세워 금방 확인이 가능하지만 왕의 사이즈를 그렇게 잴 수는 없었을 테니 매우 크다는 의미로 부풀려서 적었다고 하면 앞뒤가 맞는다.
  • 소재가 거시기해서 그런지 어린이역사 만화책에서는 덩치가 너무 커서 장가를 못 갔다고 변형하기도 했다.[21] 물론 《삼국사기》에서 기골이 장대하고 덩치가 크다고 했고 덩치가 크면 당연히 성기의 크기도 몸집에 비례하기 마련이므로 애둘러 표현했을 뿐 아주 왜곡한 건 아닌 셈.
  • 단군 신화의 정치적인 해석처럼 현실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지증왕이 박씨 귀족 세력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은 것을 은유한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22] 박혁거세 추모 시설로 추정되는 시조묘를 신궁으로 업그레이드한 게 소지 마립간 시기인 것도 이와 연관짓기도 하며 이 시기를 지증왕과 연제부인이 연결된 시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든 젊은 소지 마립간의 죽음 이후 핏줄로는 한참 먼 지증왕이 연로한 나이에 즉위한 점도 결국 박씨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 아니냐 볼 수 있으며 지증왕 즉위시 나이가 10대에 불과했던 법흥왕이 지증왕의 뒤를 이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박씨들의 도움이 어느 정도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또한 굳이 정치적인 해석이 아닌 현실적인 신체의 이야기라고 해도 역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하게만 생각해도, 전제군주제 고대의 국왕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남근이 크다는 단순한 이유로 주변에 평범한 여성이 받아들일 수 없어 후손을 보기 힘든데, 연제부인 박씨 같이 적어도 왕과 비슷한 덩치의 왕비감을 찾다가 나왔다[23] 라고 하면 굳이 설화나 해석이 필요없이 맞아 떨어진다.

5.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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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증 마립간 본기〉
一年 지증 마립간이 즉위하다
三年春二月 순장을 금지하다
三年 신궁에 제사지내다
三年春三月 농사를 권장하고 를 부려서 논밭을 갈다
四年冬十月 나라 이름의 칭호를 정하다
五年夏四月 상복에 관한 을 제정하여 시행하다
五年秋九月 인부를 징발하여 12성을 쌓다
六年春二月 나라 안의 주·군·현을 정하다
六年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로 삼다
六年冬十一月 얼음을 저장하고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하다
七年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다
十年春一月 서울에 동시를 설치하다
六年春三月 함정을 설치하여 맹수의 피해를 없애다
六年秋七月 서리가 내려 콩이 죽다
十一年夏五月 지진이 일어나 사람이 죽다
十一年冬十月 천둥이 치다
十三年夏六月 우산국정벌하다
十五年春一月 아시촌에 소경을 설치하다
十五年秋七月 6부와 지방 사람들을 옮기다
十五年 왕이 죽다

기록 자체는 소략한 편에 속하지만, 매우 중요한 업적들이 다 적혀있다. 특히 진한 글씨로 표시된 것들은 현행 국가시험의 한국사 과목에 매우 빈번하게 출제되므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산국 정벌 기사는 현재에 와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지증왕부터 《삼국사기》 4권이 시작된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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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친 습보 갈문왕
아내 연제부인
장남 김원종 · 차남 김입종 · 왕녀 어사추?
관련 장소 천마총
관련 문서 포항 냉수리 신라비 · 포항 중성리 신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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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항 냉수리 신라비에 지증왕이 사탁부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다. #[2] 신라 왕 중 유일하게 사망한 달이 기록되지 않았다. #[3] 《삼국유사》에 따르면 남제 영원 3년(501년)에 왕이 즉위했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4] 마립간 호칭 앞에 붙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름이므로, 지정(智訂)과 지증(智證)이 같은 이름의 다른 표기라면 지증 자체가 이름이다.[5]삼국유사》에 실린 이차돈의 가계 기록에서 이차돈의 조부이자 김습보의 아들로 언급된다. #[6]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 참조.[7] 출처 천마총의 피장자 키로 천마총 피장자가 지증왕이라고 가정하면 지증왕의 키는 160cm 내외가 된다고 한다. 160cm는 신라인의 평균 키인데 삼국사기에는 반대로 체격이 컸다는 언급이 나온다.#[8] 《삼국유사》에서 음경 길이가 1자 5치이라 나온다. 다른 각주에도 서술하지만 현재의 척은 일본이 개항이후 피트를 척으로 번역한 것이 넘어온 것이다. 고대사의 1척은 거의 전한의 1척인 23~24cm를 기준으로 한 것. 평균적인 음경 길이를 감안하면 굉장히 길이가 긴 편이다.[9] #[10] 당대 금석문인 〈포항 냉수리 신라비〉의 기록으로, 본명 뒤에 갈문왕 칭호를 붙인 것이다. 윤진석 박사의 의견에 따르면 지증왕이 전왕과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왕위에 오르면서 이렇게 표기되었다고 하는데, 장남인 법흥왕과 차남인 입종갈문왕의 금석문에서의 표기명인 '탁부 모즉지매금왕'과 '사탁부 사부지갈문왕'을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소지는 탁부 매금왕이었는데, 그의 후계로 사촌이며 사탁부의 수장인 지증이 신라의 전체 통치권을 계승하고, 지증의 장남인 법흥이 탁부의 수장직을, 차남인 입종이 사탁부의 수장직을 이어받았다고 보는 것이다.)[11] 혜왕은 재위 1년만에 사망했다. 즉위부터 나이가 많았어서 자연사일 수도 있고 암살 정황도 있다.[12] 지증왕과 대조적으로 가장 최연소 즉위한 군주는 5세에 즉위한 효소왕이다.[13] 복호의 아들[14] 일반적으로 사보(斯寶)의 오기로 본다.[15] 승하하기 두 달 전인 500년 9월에 벽화를 경주 왕궁으로 불러들였고, 결국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두 달만인 500년 11월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승하하는데 이는 꽤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다.[16] 500년 소지 마립간이 후궁으로 맞이한 벽화부인은 실제로 아들을 출산했다.[17] 원성왕은 흔히 내물 마립간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원성왕이 본인과는 달리 지증왕의 직계 후예는 아닌 나물 마립간의 후예였던 선덕왕을 '동생'으로서 잇는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울 선덕왕, 원성왕, 무열왕계의 공통조상이 나물 마립간이었던 데 있다. 원성왕 자체는 실제로는 지증왕의 직계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18] 『삼국사기』에는 원성왕의 고조부인 법선까지, 『삼국유사』에는 법선의 아버지인 마질차까지 나와 있고, 그 이상은 정식 사서에 나오는 바가 없다. 경순왕전비에 따르면 지증왕의 3남 김진종의 아들이 흠운이고, 흠운의 아들이 ‘마차’라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는 삼국이 망한 지 몇 백 년이 지나 편찬된 사서고 누락된 내용이 상당히 많아 거기에 없다고 다 부정하면 삼국 시대 역사는 제대로 된 재구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진종, 흠운, 마차는 경순왕의 후손인 김재명(金再鳴)이 신라가 망하고서 무려 900년이나 지난 1814년 건립한 『신라경순왕전비』에 처음 등장한다고 그것만이 부정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경순왕전비에 나오는 흠운은 7세기 중반 삼국통일전쟁 시기에 활약한 동일인물과 분명히 한자가 다르며, 설령 한자가 달라도 같은 이름을 표기할 가능성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곧 흠운이란 성명이 있는 자가 7세기 중반에만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19] 실제로 현대에도 40cm에 달하는 성기를 가진 인물이 너무 커서 성관계를 한번도 하지 못했다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20] 지증왕 시대에는 큰 덩치가 농업 생산력의 강화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21] 《만화로 보는 신라왕조 1000년》에서는 지증왕의 덩치가 너무 큰 나머지 옥좌에 앉아도 몸이 꽉 찰 정도로 묘사되며, 색시감을 찾아오라는 지증왕의 명에 신하들이 "어디서 저런 거인의 배필을 찾으란 말인가."라며 한숨을 쉰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에서도 몸집이 크다고 순화되었다.[22] 물론 당시에 김·박 같은 성씨를 직접 쓰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훗날 김씨, 박씨로 소급될 혈족 집단은 존재하고 있었다. 박씨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 이후로 왕위를 잃고 신라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박씨는 지증왕 이전에 오랫동안 왕비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고, 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의 경우, 눌지 마립간의 형제들에 해당하는 복호미사흔의 자손들이 왕비를 배출하고 있었다. '음경이 크니까 훌륭한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자기 조건에 맞는 연제부인 박씨를 찾아내다.'는 것은 당시 전통적으로 하던 방식으로 결혼 상대를 찾지 않았다는 의미다. 실제로도 지증왕 대부터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까지 갑자기 박씨에서 왕비가 많이 나온다.[23] 흔히 연제부인의 커다란 누런 변에 대한 이야기도 고대의 기록으로는 대변도 왕성한 식욕에 그만큼 싼다! 라는 심플한 기록인데 그 정도를 소화시키고 싸는 덩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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