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03:16:39

신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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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신덕왕(神德王)
성씨박(朴)
경휘(景暉) / 경휘(景徽)
왕후 의성왕후(義成王后) 김씨[1]
왕태자 박승영(朴昇英)
왕자 박위응(朴魏膺)
친아버지? 박문원(文元)(?)
부왕 선성대왕(宣聖大王) 박예겸(朴乂兼 또는 朴銳謙)
모후 정화태후(貞和太后)
생몰년도 음력???년 ~ 917년 7월[2]
재위기간 음력912년 ~ 917년 7월 (6년)

1. 개요2. 즉위
2.1. 사실은 김씨?
3. 치세4. 신덕왕릉5. 삼국사기 기록6. 신덕왕 대의 사람들

1. 개요

신라의 제53대 국왕. 시호는 신덕왕(神德王). 태자 경명왕 대에 지은 태자사 낭공대사 비문엔 '성고대왕(聖考大王)'이라고 불렸다. 고(考)는 족보 상 아버지를 이르는 말인데 지금 임금의 아버지니 거룩할 성(聖) 자를 붙혀 성고(聖考)라고 부른 것.

휘는 경휘(景暉). 신라 초기의 마지막 박씨 왕이었던 아달라 이사금의 머나먼 직계 후손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선성대왕으로 추증된 예겸(乂兼 또는 銳謙)이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花夫人)이다. 예겸은 의부이고 친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라고도 한다.[3] 그의 왕비는 헌강왕의 딸 의성왕후(義成王后) 김씨이다.

2. 즉위

신덕왕의 즉위는 큰 의미가 있는데, 바로 아달라 이사금이 죽고 728년만에 신라에서 박씨 왕이 다시 즉위한 것이다.[4][5]

이는 당시 신라가 완전히 막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덕왕은 경문왕계가 4대 연속으로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가 헌강왕의 사위로 경문왕가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왕위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신덕왕은 효공왕의 처남이기도 하다. 즉 그의 아버지 혹은 의부로 보이는 예겸의 딸이 효공왕의 왕비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과거 석탈해김미추가 전왕과 성이 다른데도 왕위에 올랐던 과정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6]

김씨에 의해 왕위가 독점적으로 세습되고 나서도 시조묘와 신궁나정 주변에서 박혁거세와 하늘신에 제사는 계속해 지내오고 있었는데, 왕위계승 위협때문에 박씨가 김씨에 의해 어느 정도 숙청되었다 하더라도 100% 멸족시켜서 계승권을 단일화 시킨다면 그 또한 시조묘에 제사를 지낼 이유가 없다. 즉, 숙청당해 박씨의 권력이 많이 줄긴 했지만 신라의 시조로써 실권은 없으나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며 계통이 이어져왔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신덕왕은 아달라이사금의 왕자계통이 아닌 서자 등 방계후손일 가능성도 높고 아예 파사왕 계통일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신덕왕 본인에 그치지 않고 박씨 계승이 신덕왕의 아들에게 이후 계속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신덕왕 시대에는 박씨가 신라 조정의 실권을 잡고 박씨 왕조를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2.1. 사실은 김씨?

사실 박씨라는 점이 중요하기보다는 신덕왕 자신은 효공왕의 처남으로서 왕위에 오른 것인데, 자신이 왕위계승권 1위임에도 처남으로서 왕위에 오른다고 하면 정통성에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아달라 이사금은 왕자가 없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 신라를 연구한 역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에 의하면 신덕왕은 원래 김씨인데 왕위에 오르면서 박씨를 칭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하자면, 석씨와 박씨와 김씨는 신라의 국성으로써 한 집안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서로 통혼을 매우 많이 한다, 박씨는 김씨부인, 김씨는 박씨 부인 이런식으로 근친통혼한게 1000여 년간 몇백번은 족히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같은 성씨끼리의 근친혼도 덤이다. 사실 합스부르크 가문 저리가라 할 정도의 근친혼 문화가 고대한국왕족들 사이에서 이루어 졌다, 이정도면 두 집안의 DNA가 하나로 합쳐진 수준인데, 예외는 천 년 신라사 전체를 찾아봐도 김유신의 여동생 문명왕후성왕(백제)의 딸성왕의 딸은 진흥왕의 후궁으로 온 것이기에 그다지 중요도가 높지 않지만, 문명왕후는 어머니가 만명부인으로 진흥왕의 동생 숙흘종의 딸이다. 또한 혜공왕 사후 즉위한 선덕왕의 조부 이름이 대체적으로 위서로 판단하는 <화랑세기>에서 유신의 동생인 흠순의 아들과 한자까지 동일하기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왕까지 된 것이 된다.과 같이 제한적이다. 이는 신라의 특징적인 모습으로 고구려 백제와는 상당히 많이 다른 부분이다, 이는 권력을 하나로 모으기에 꽤 효율적인 방법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족 혹은 귀족들끼리의 분열을 막기 위함이라 추정되고,[7]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같은 성씨 쪽에서 일어난 것이라, 한 쪽이 진압되어 처형되고 재산이 몰수되더라도 가문 전체의 재산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김씨 중에 한 명이 박씨를 칭한다 하더라도 유전자상으로나 정통성으로나 별다른 문제는 없다. 물론 김씨가 왕이 되었던 때가 이미 700년 전이나 된 박씨를 칭하지 않아도 왕위를 계승하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진짜 박씨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금 역성혁명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늘 크고 작게 왜곡되거나 잊혀지는 것이 역사이기에 진실은 추정될 뿐 누구도 알 수 없다.

3. 치세

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후삼국시대의 신라 왕들 중에서는 경애왕과 함께 나름대로는 선전했던 모양으로, 916년 대야성에 처들어온 견훤을 막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뿐. 뭐, 사실 이 때 신라는 영토가 더욱 작아져 나라 꼴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으므로 능력이 웬만큼 있어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신라가 현 경상남도 일대인 강주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지만 불과 4년 뒤인 경명왕 때 낙동강 이서지역이 죄다 털린다(...).

특이한 이변으로, 915년 6월에 참포(槧浦, 현 포항시 흥해읍의 곡강(曲江) 추정)의 물과 동해의 물이 서로 부딪쳐 물결의 높이가 20장(丈) 쯤이나 되었는데 3일만에 그쳤다는 기록이 있다. 참포는 당시 신라사독의 하나로, 국가에서 제사지내는 중요한 하천이었다. 그 외에도 916년 10월에 큰 지진이 났다는 기록도 있다. 일반적으로 백두산 폭발에 따른 영향으로 추정하는 듯.

슬하에 승영(昇英)·위응(魏膺)·효렴(孝廉) 등이 있었는데, 승영은 54대 경명왕이 되었고 위응은 55대 경애왕이 되었다. 4남 1녀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상 아달라 이사금의 바로 옆에 묻혔고 나중에 아들도 옆에 묻혀 지금의 배동 삼릉이 됐다.

4. 신덕왕릉

파일:Baedongsam.jpg

배동 삼릉 중 가운데 있는 능이 신덕왕릉이다. 아래쪽은 먼 조상인 8대 아달라왕릉, 위쪽은 아들인 54대 경명왕릉.

1963년 7월 19일에 도굴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원래 왕릉으로 지목된 능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후손들[8]의 좋지 않은 시선도 감안해 발굴조사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만, 도굴로 훼손된 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3개의 능 모두 돌로 방을 만들고 문이 있는 전형적인 굴식 돌방무덤이며, 왕과 왕비의 합장묘이며, 능 내부에서는 신라 왕릉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채색 벽화의 흔적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원래는 사신이 그려져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으며, 벽화 외 다른 유물은 이미 없었다.

5. 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덕왕
一年夏四月 신덕왕이 즉위하다
一年夏五月 아버지를 추존하다
一年夏五月 아들 승영왕태자로 삼다
一年夏五月 이찬 계강을 상대등으로 삼다
二年夏四月 서리가 내리고, 지진이 일어나다
三年春三月 서리가 내리다
三年春三月 궁예연호를 정개로 고치다
四年夏四月 참포의 물과 동해의 물이 서로 부딪치다
五年秋八月 견훤대야성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다
五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다
六年春一月 태백이 달을 범하다
六年秋七月 왕이 죽다

자연재해에 관한 이야기와 궁예, 견훤 이야기를 제외하면 아버지 추존, 아들을 태자로 삼은 거 밖에 없다.

6. 신덕왕 대의 사람들

  • 계강
  • 예겸
  • 의성왕후
  • 정화부인


[1] 헌강왕의 딸[2] 장인헌강왕인데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위를 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하할 당시의 나이는 아무리 많이 잡아봤자 40대 중후반 정도일 듯하다.[3] 삼국사기엔 이런 말이 없다.[4] 참고로 이 시간차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즉위부터 위키러가 이 문서를 보는 2019년 사이의 간극보다도 백 년이나 더 긴 시간이다. 1392년에 왕족의 지위를 잃어버린 고려의 왕씨가 2120년(!)에 다시 이 나라의 권력을 쥐었다고 생각해보라. 딱 그만큼의 시간이다.[5] 유사한 경우로는 오초칠국의 난에서 반역자인 초왕 유무의 후손인 송무제가 유송을 세운 경우가 있지만 이조차도 겨우 6세기 남짓이었다.[6] 생각해보면 신라의 왕위계승은 사망한 왕의 子女 모두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男女간의 차이보다는 출생의 순서가 계승순서가 된 것 같다.) 따라서 효공왕 사후 가장 가까운 근친인 신덕왕이 즉위하는 것이 결코 이상할 이유가 전혀 없다.(경순왕의 아버지인 효종도 신덕왕과 마찬가지로 헌강왕의 사위인데, 여기서는 헌강왕 딸의 출생 순서가 작용하여 박씨인 신덕왕이 즉위하였다. 만약 부계 혈족으로만 왕위 계승을 했었다면, 문성왕의 후손인 효종이 즉위했어야만 한다.)[7] 당장 고구려나 백제도 외척가문때문에 국력을 낭비하고 나라가 망할 뻔했던 적이 있다. 고구려는 안원왕 문서 참고. 백제는 대성팔족. 반면 신라는 이런 이유로 난리가 났던 적은 별로 없는 편이다.[8] 한국에 존재하는 박씨의 80%를 차지하는 밀양 박씨의 시조 밀성대군 박언침이 신덕왕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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